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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수6:1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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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8. 1. 27. 주일설교 |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바친 것'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첫발을 디딜 때 그들의 막힌 담이 여리고성이었습니다. 가나안땅 입구에 있는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성으로써 굉장히 튼튼한 방위 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엿새 동안 돌고 일곱째는 여섯 번 돈후에 큰 고함을 쳤습니다. 그러자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럴 때 여호수아가 그 성을 공격하기 전에 미리 백성에게 말하기를 "여리고 성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드린 물건이니 하나님께 드릴 물건에 손대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이 진노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들어가서 모든 생명을 도륙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그 다음 여리고성 정복 후에 그 다음성은 바로 아이 성이었는데 여리고보다도 성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만했습니다. '뭐 아이성 쯤은 문제도 아니니 백성이 다 올라갈 필요 없이 한 2,3천명만 올라가면 능히 정복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그렇게 해서 여호수아는 한 3천명의 이스라엘 군인들을 아이 성에 보냈는데 의외로 아이 성 백성들이 나와서 쳐서 36명이나 당장 그 자리에서 죽고 비탈로 내리 쫓겨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쳐 본진에 들어와서 그들은 쓰러졌습니다. 그것을 보자 여호수아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간담이 녹고 물이 쏟은 것 같았었습니다. 여호수아를 더불어 모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저녁 해질 무렵까지 있다가 통곡을 하고 "하나님이여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요단강을 건너게 해서 다 아모리 사람에게 멸절 당하게 하나이까? 이럴 바에야 무엇 때문에 애굽에서 우리를 이끌어 오셨습니까? 요단강을 건너지 않은 것이 좋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야 왜 엎드리느냐? 일어나라!" 그리고 하신 말씀이 "너희 중에 내게 드린 물건을 훔친 사람이 있다. 나와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내가 너희와 같이 하지 아니하므로 아이성에서 패한 것이다." 내일 아침에 그 사람을 찾아내어서 처치하고 불로 살아라. 그 이튿날 아침에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한곳에다 모으고 하나님 앞에 서니까 하나님이 유다지파를 택했습니다. 유다지파에서 또 하나님이 한 부족을 택하고, 또 부족 중에서 한 가계를 택하고 가계 중에서 한 족속을 택했는데 택하고 보니 아간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아간을 보고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무엇을 했느냐? 나에게 고백하라." 아간이라는 사람이 몰래 시날산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된 금덩이 하나를 취하여 자기 장막에 숨겼는데 그것을 고백했습니다. 사람을 보내어서 조사해 보니 정말로 그 외투와 은과 금이 장막에서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 따라서 아간을 잡고 그 가족들을 다 잡고 짐승들조차도 다 붙잡아서 아골이라는 골짜기에 내려가서 "이스라엘을 괴롭힌자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라"고 돌로 쳐서 다 죽이고 불러 태워서 돌무더기로 만들어 버리고 만것 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돌이켜 아이 성을 공격한 결과에 아이 성이 쉽게 함락이 되고 승리를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께 드린 것을 모르고 인생을 살아가면 언제나 실패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1485년 영국의 국왕 리처드 3세는 영국의 통치권이 달린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이에 앞서 마부를 보내 자신이 가장 아끼는 말을 준비하라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대장장이는 "며칠 전 모든 말에게 새 편자를 박으라고 명령하셔서 준비한 편자를 다 써버렸습니다. 새 편자를 만들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서둘러 만들도록 지시했습니다. 급히 새 편자를 만든 대장장이는 말굽 위에 고정시키기 위한 못을 박기 시작했는데 한 개가 모자랐습니다. "못이 하나 모자랍니다. 잠깐이면 새 못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시간이 없으니 아무것이나 그냥 박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전장으로 나간 왕은 이제 적진으로 돌격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허술하게 박혔던 말 편자가 떨어지면서 말은 고꾸라졌고 위에 타고 있던 국왕 역시 바닥으로 뒹굴어지고 만 것 입니다. 그는 곧 적들에게 포위를 당했고 전쟁에서 패하고 만 것 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소홀히 할 때, 그것으로 인해 큰일을 그르칠 수가 있습니다. 아간은 전리품 가운데 사소한 몇 가지를 숨겼지만 그 일로 인해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했고 그의 가족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이것쯤이야. 하나님이 눈감아 주시겠지. 이것쯤이야 괜찮겠지." 사소한 일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눈감고 나가면서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하는 일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면 가슴을 치고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왜 나는 도와주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이 여러분의 생애 속에 사소한 일에 하나님께 바친 것을 도적질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께 무엇이 바쳐진 것을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주일은 하나님께 드린 날
하나님께 바쳐진 첫째는 날입니다.
유대인의 십계명 중에 제4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인 것입니다. 창조의 날을 기념해서 준 하나님의 날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로 10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야훼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안식일의 계명을 어기면 하나님이 죽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민수기 15장 32절로 36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이 사람이 안식일에는 나무하러 갔다가 잡혀서 결국 하나님의 명령으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것이 아니라 엿새 동안은 우리 것이 되어서 일하나 이레째는 하나님의 날이므로 하나님께 드려야지 하나님의 날을 우리가 도적질하면 도둑놈이 되고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는 사망의 세력, 저주가 따라오지 축복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신약시대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즉 믿음과 사랑의 계명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로 31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우리는 주 예수님을 믿고 사랑함으로 구원을 얻지 율법행위로 구원을 받지는 않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었었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부활의 날, 주일을 기념합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도 주일입니다. 성도들의 전통을 따라서 거룩하게 예배를 드립니다. 신약 성도들에게는 주일날이 바로 안식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토요일 안식일은 하나님이 창조를 기념으로 하는데 주일 안식 새 언약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 안식이요, 성령이 강림하신 날이 주일 안식일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내지만 구약 하에서 그렇게 하였고 신약시대에는 주님께서 새 계명을 주셨는데 새 계명 하에서는 주일날이 바로 우리의 안식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창조일이 아니라 부활하신 날이 우리의 안식이요, 성령이 강림하신 날이 바로 안식인데 그날이 주일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명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13절로 14절을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야훼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야훼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야훼의 입의 말씀이니라"
놀라운 축복의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로 사도 시대부터 예배일로 정해진 날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주의 날"이라고 기록되었고, 사도행전 20장 7절에는 "그 주간의 첫 날"이라고 하여 주님이 다시 살아나신 날을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창조사건을 기억케 하는 것이면 신약의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게 하는 날인 것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드린 날인 것입니다.
지난주 우리교회 순복음 가족신문에서 저는 기쁜 소식을 발견 했습니다. 우리교회 대학선교회 소속 윤혜준 양이 행정고시 교육행정직에 수석 합격했다는 것입니다.
간증을 보니 윤혜준 양은 주일 예배를 철저히 지키고 바라봄의 법칙을 실천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년 전 윤 양은 행시를 보겠다는 결심을 부모님께 말씀하고 새벽 예배로 작정 여리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일주일 후 윤혜준 양은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는 다윗이 든 돌멩이와 같다. 다윗이 든 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 같이 너는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 나아가는 돌멩이다." 이 말씀을 응답이라 여기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윤혜준 양은 무엇보다도 주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주일 3부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캠 대학선교회에서 예배를 드렸고 소교구 모임에도 참석을 했습니다. 이렇게 온전하게 주일을 지키고 나면 윤 양은 일주일간 공부하느라 지쳤던 몸과 마음에 새 힘이 솟아났고 시험에 대해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또한 바라봄의 법칙을 실천하여 윤 양은 하루에 12번 씩 합격하는 상상을 하며 친구들을 만나도 "공부가 힘들다"라는 부정적인 말은 일체하지 않았었습니다. 오히려 "잘 될 거야, 합격할거야, 수석할거야"라고 말했었습니다. 그 모습을 늘 상상하고 꿈꾸었습니다. 윤 양은 예배 시간에 꿈을 크게 가지라는 저의 설교에 도전 받아 교육을 통해 나라를 이끄는 리더가 되겠다는 비전을 갖게 되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온전한 주일 성수와 바라봄의 법칙을 실천하여 귀한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날인 것입니다. 주의 날 우리가 기쁨 가운데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주님은 우리의 삶에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을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주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날이요, 성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 예수님이 교회에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주일은 성령이 교회에 임하여서 우리를 품에 품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님과 동행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주일에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찬송 드릴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주일을 내가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것이요, 주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대접하지 않는데 어려울 때 주님께 도움을 구한다고 해서 주님이 그 기도를 들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소한 것을 등한이 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승리를 했지만 아인성에서 대패를 하고 만 것 입니다. 도둑질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2.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린 성물
두 번째,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물건인 것입니다.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을 야훼의 것이니 야훼의 성물이라고 레위기 27장 30절에 말하는 것입니다. 물질도 십분의 일은 야훼의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얻은 수입 중에 십분의 구는 우리 것이지만 십분의 일은 야훼의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십분의 일에 손을 대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꾸짖음을 보십시다.
말라기 3장 7절로 12절 우리가 다같이 읽으십시다.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 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야훼의 말이니라."
십일조를 떼먹으면 떼먹는 것이 아닙니다.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떼먹으면 도둑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둑질하는 사람을 저주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저녁에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에도 실패하는 것은 저주가 따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주가 따르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손해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성경에 우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우리를 복되다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복받 았구나. 정말 대단하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구나" 그렇게 놀라운 감탄을 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고 우리가 높이 받드는 아브라함은 많은 삶에 시련을 받았지만 그는 가난하지 않았었습니다. 특별히 성경에 보면 그돌라오멜왕과 그 연합군들이 소돔과 고모라를 쳐서 파하고 조카 롯과 그 모든 식구를 포로로 잡아 갔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기른 군인 318인을 거느리고 밤중에 습격을 해서 그돌라오멜왕을 대파하고 잃어버린 소돔과 고모라성의 사람들과 롯과 그 조카 롯과 백성들을 구하고 승리하여 보무당당하게 돌아왔습니다. 그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렇게 일렀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14:19~20)
가나안 땅에 살렘왕 즉, 평강의 왕 부모도 후손도 기록되지 않은 족보가 하나인 평화의 왕 멜기세덱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팔레스타인에서 하나님이 대제사장으로 이름이 나있었습니다. 그분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매 아브라함이 얻은바 십분의 일을 다 바쳤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 십일조를 실행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아브라함은 거부가 되고 창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자손들에게 십일조를 드리기를 철저히 교육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이삭도 보십시오.
창세기 26장 12절로 13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야훼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판자촌에서 살아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거지로 살아야 된다. 사탄이 하는 거짓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얻어먹고 동냥으로 살면은 전도도 안되고 덕도 안되고 영광도 안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했는데 이웃을 사랑하려면 말로만 가지고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주었습니다. 독생자를 주었습니다. 우리도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살아갈 길을 열어주고 도와주어야 되겠는데 우리가 도움을 받기 원하는 처지에 있는데 무엇을 도와 준다는 말인 것입니까? 우리가 축복을 받아야 이웃을 도와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하나님께 복을 받으니까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으나 타락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거부였고 이삭도 거부였고 야곱도 거부였습니다만 거부는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부자가 된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이 같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부자가 된 사람은 그것이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부자는 그 돈과 재물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부자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천국에 들어가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런 부자가 천당 가려면 바싹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지가 되어야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님께 회개하고 나오면 새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부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되는 부자는 저주고 하나님 모시고 축복받은 부귀는 크나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십일조 서약을 보십시오. 형의 낯을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칠 때 들에서 잠을 자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는 이렇게 서약했습니다.
창세기 28장 20절로 22절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야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다. 아버지 이삭에게 배웠고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배운 교훈인 것입니다. 그 결과 야곱은 창대하고도 거부가 되어서 20년 후에 고향땅으로 돌아올 때 많은 짐승에 노비의 주인이 되어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도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0절로 21절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십일조는 우리 신앙과 사랑을 증명하는 시금석입니다. 내가 아무리 주님을 사랑한다고 나팔을 불고 다녀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은 그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것은 하나님께 반드시 드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와 책임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위대한 부흥사인 빌리그래암 목사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범하는 가장 큰 죄 중의 하나는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것을 도둑질한 것입니다.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은 헌금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그러므로 우리가 십일조조차 드리지 않으면서 헌금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헌금은 십일조 이외에 특별히 드리는 물질이고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믿음을 시험하고 사랑의 진실함을 시험하기 위해서 직접 떼가지 아니하시고 우리보고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경외하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떼먹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십일조는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진실성과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한 것이 십일조인 것입니다.
철저한 십일조 생활로 복을 받은 사람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미국의 부호 록펠러입니다. 그는 소년 시절에 공장에 다니며 주급 1불 50전을 받았는데 그때 어머니께 십일조 생활을 배워 시작함으로써 나중에는 엄청난 금액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치약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윌리엄 콜게이트는 16살에 비누 공장을 만들 꿈을 꾸고 뉴욕으로 가던 중 한 선장으로부터 십일조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는 '시리얼'을 만들어 거부가 된 크로웰, 아이보리 비누로 유명한 아이보리, 맨소래담으로 이름이 난 하이드, 10만 불의 부채가 있으면서도 먼저 십일조를 드렸던 크래프트, 기관차를 만들어 거부가 된 마티아스 볼드윈 등 세계적 거부들 대부분이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실천한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스탠리 탐은 십일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플라스틱 사업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의 운영권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전부를 드리고 자신은 봉급만 받는데도 엄청난 거부가 되었습니다. 뉴질랜드의 한 사업가는 「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주급 3불을 받아서 십일조를 드리다가 그 다음에는 월급의 15%, 그 다음에는 20%를 드렸고 25살부터는 수입의 절반을 드렸는데 45년 후 나는 주체하지 못할 만큼 수백 배나 축복을 받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므로 우리의 신앙과 사랑을 증명하는 시금석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는데 바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을 우리가 도둑질 하면 반드시 저주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간 때문에 아이성 전쟁에서 패한 것처럼 우리가 날도 도둑질하지 말아야 되고 돈도 도둑질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도둑놈이 되어서 주님을 찬미할 수가 없고 하나님을 예배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우리 몸은 하나님께 드린 것
셋째로 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제물이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로 2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께서 몸 찢고 피를 흘려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을 예수님이 몸찢고 피흘린 대가로 사주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요, 주님의 것입니다. 어떤 북부신사 한 사람이 미국의 남부 주에 가니까 노예시장에 가보았었습니다. 많은 노예들을 시장에 데리고 와서 팝니다. 이빨을 들여 보고 이빨이 튼튼하다고 하고 팔도 힘이 있다고 하고 옷을 벗겨 보고 건강하다고 그러고 노예의 가치를 높이 불러서 노예를 파는데 한곳에 가보니까 한 노예 남자와 한 노예 여자가 끌어안고 울고 있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지금 막 팔렸는데 남편은 다른 데로 팔리고 여자는 다른 데로 팔려서 영원히 생이별 하게 되었다고 통곡을 하고 우는데 새로 산 주인이 채찍으로 때립니다. 북부인사가 얼마면 이 두 노예를 팔겠냐고.. 자기가 산 것이 갑절을 달라고 합니다. 선뜻 갑절을 주고서 그 노예를 사고 노예문서를 가지고 시 밖으로 나와서 노예 문서를 그들에게 돌려주면서 "이제는 당신들은 자유입니다. 자유롭게 가십시오." 그 두 노예가 북부 인사에게 무릎을 꿇고 손을 빌면서 빌었습니다. "우리는 이 노예 문서를 가지고 자유를 얻어 나갔다가도 곧장 잡혀서 또 노예가 될 것 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좋은 주인을 만났은즉 우리 평생에 당신을 섬기겠으니 노예로 데려가 주십시오." 그래서 이 북부인사는 그 두 분을 북부로 데려가서 평생을 형제같이 돌보아 주었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귀의 종이 되어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데 예수님 새 주인이 오셔서 몸 찢고 피 흘려 하나님 앞에서 값 주고 사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 믿고서 구원을 받고 난 다음 예수님 떠나가면 마귀에게 도로 잡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원히 주인으로 삼고 살 때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과 평화가 다가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두 주인 중에 한 주인을 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와 세상을 택할 것이냐. 예수님과 하늘나라를 택할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할 것이지 중립은 있을 수 없습니다. 중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때 마귀의 종으로 세상과 지옥의 사슬에 메여 있더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피 값으로 구원을 받아 천국백성이 되었는데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착각을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 올 때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팔려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로 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라 값을 주고 산몸이 되었으니 이제는 우리 마음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이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 것처럼 삽니다. 도둑놈입니다. 하나님의 재물을 도둑질하는 도둑놈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몸을 가지고 마음대로 술독을 만들어 놓고 굴뚝을 만들어 놓고 온갖 세상의 더러움에 뒹굴어서 더럽게 하고 "내 몸이니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잔소리냐?" 웃기는 소리 하네요. 하나님은 당신의 것을 주장할 때 못쓸 것이면 깨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멸하면 멸함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몸을 가지고 하나님을 가장 더럽게 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거룩한 재물인 몸을 창녀의 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몸에 대한 범죄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5절로 18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우리는 주님께 바친 마음과 몸인 것입니다. 거룩한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입니다. 이 하나님의 전을 가지고 우리가 창녀하고 합치면 이 몸이 창녀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전이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동시에 거할 수 없습니다. 신전이 벨리알의 전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명과 흑암과 혼합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쳐서 멸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이라고 마음대로 합니까?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많은 죄가 있지만 음행을 피하라고 한 것입니다. 다른 죄는 몸밖에 짓는 죄지만 음행은 몸 안에 짓는 죄므로 이 죄를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에 임하는 것은 온 세계가 엄청나게 음란의 세계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은 사람들이 노아와 홍수 때 같이 몸으로 성령이 거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노아 홍수에도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흙이 같이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다른 색을 쫓아 행하며 방탕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가 하나님께 심판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젊은이로부터 늙은이까지 음란하고 방탕하고 세상에 소속하고 호색하고 음행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할 수 있는 전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가면 진노의 심판이 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 값을 주고 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소유물을 망가지는데 가만히 보고 계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몸을 깨끗이 하지 않고 세속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엉터리 같은 일인 것입니다.
테니슨은 그의 작품 「왕의 전원시」에서 기사로서의 서약을 말했습니다. "기사의 삶은 순결하게, 말은 진실하게,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왕을 따른다. 그렇지 않으면 왜 태어났는가?"
이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삶의 좋은 좌우명이 됩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므로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왕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결하게 진실하게 올바르게 따르고 섬겨야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천하를 호령하던 군주들이 패망한 것은 강력한 적수를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 것이 그 원인으로 드러납니다. 은나라의 주왕은 달기라는 여인으로 인해, 주나라의 유왕은 포사 때문에,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로 말미암아, 로마의 영웅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마음을 빼앗겨 결국 그 삶이 실패했습니다. 성경에 이스라엘의 왕 다윗도 처음에는 밧세바로 인해 죄를 지었고, 인류 지혜의 모범이 되었던 솔로몬 왕도 말년에 이방 여인으로 인해 우상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한 남자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것도 어머니와 아내로 말미암아 승리하고 망하는 것도 여인으로 인하여 망하는 것입니다. 나실인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으로 그의 인생에 실패를 거듭했고,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을 정도로 음란에 빠졌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의 전이므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로 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흑암에서 광명으로 마귀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세계로 옮김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본받는 자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거룩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하나님을 본받고 거룩하게 살기로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 거룩하게 만들어 달라고 백날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 마음에 결심을 안 내리면 기도는 아무 힘을 발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결심하오니 나를 거룩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단호하게 결심을 하면 그때부터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일날 도둑질 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주일날 예배드리지 않고 놀러 가면서 놀러가는 길에 '주여 도와주소서. 다음부터는 안하게 해주시옵소서. 다음부터는 주일날 놀러가지 말게 해 주시옵소서. 다음날 주일날 골프 치러 가지 말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말을 해서 소용이 없습니다.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다시는 주일날을 도둑질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십일조 떼먹지 말아야지. 십일조 떼먹지 말아야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하나님이여 십일조를 도둑질하지 않는 마음 주시옵소서. 마음 주시옵소서.' 아무리 그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안하겠다고 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앞에 태도는 결심을 따라서부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음란하고 방탕했으면 '이제 음란하지 말아야지. 방탕하지 말아야지. 이 몸을 하나님의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는 몸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을 하고 서약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습니다. 믿습니다. 해도 결심 안하면 안돼요. '내가 이제부터 전도하고 살아야지. 오~ 주여 전도할 마음을 주옵소서. 마음을 주옵소서.' 백날 그래봤자 그 기도만 하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그날부터 전도를 시작하면 전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결단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는 믿겠다고 결단을 내릴 때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천사들이 박수를 치고 성령께서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 드린 것을 우리가 맘대로 취하면 교만하고 불경스럽고 또 도둑이 됨으로 하나님의 노하심을 받게 되고 복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스펄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일조를 바치지 않고 내가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요,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은 것도 도둑질하는 것이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주일 도둑놈이요, 예배시간에 예배하지 않은 것은 예배 도둑놈이며,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도둑놈이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것을 우리 맘대로 취하면 도적이 되므로 하나님의 노하심을 받게 되고 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해를 살면서 언제나 마음에 다짐할 것은 다짐해야 되는데 우리 인생에 꼭 세 가지는 하나님이 것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일날은 하나님의 것이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 몸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하고 도둑질하지 아니하면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같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같이 하셔서 승리하고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는 사람이 되지만 여기에서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아간과 같이 되어서 조그마한 아이성에도 참패하고 몰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에게는 주일은 하나님의 것이요 성일이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요, 거룩한 재물이요, 우리 몸은 산 재물이요,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것을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지 않고 하나님이 축복 속에 살고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바친 것'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첫발을 디딜 때 그들의 막힌 담이 여리고성이었습니다. 가나안땅 입구에 있는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성으로써 굉장히 튼튼한 방위 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엿새 동안 돌고 일곱째는 여섯 번 돈후에 큰 고함을 쳤습니다. 그러자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럴 때 여호수아가 그 성을 공격하기 전에 미리 백성에게 말하기를 "여리고 성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드린 물건이니 하나님께 드릴 물건에 손대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이 진노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들어가서 모든 생명을 도륙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그 다음 여리고성 정복 후에 그 다음성은 바로 아이 성이었는데 여리고보다도 성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만했습니다. '뭐 아이성 쯤은 문제도 아니니 백성이 다 올라갈 필요 없이 한 2,3천명만 올라가면 능히 정복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그렇게 해서 여호수아는 한 3천명의 이스라엘 군인들을 아이 성에 보냈는데 의외로 아이 성 백성들이 나와서 쳐서 36명이나 당장 그 자리에서 죽고 비탈로 내리 쫓겨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쳐 본진에 들어와서 그들은 쓰러졌습니다. 그것을 보자 여호수아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간담이 녹고 물이 쏟은 것 같았었습니다. 여호수아를 더불어 모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저녁 해질 무렵까지 있다가 통곡을 하고 "하나님이여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요단강을 건너게 해서 다 아모리 사람에게 멸절 당하게 하나이까? 이럴 바에야 무엇 때문에 애굽에서 우리를 이끌어 오셨습니까? 요단강을 건너지 않은 것이 좋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야 왜 엎드리느냐? 일어나라!" 그리고 하신 말씀이 "너희 중에 내게 드린 물건을 훔친 사람이 있다. 나와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내가 너희와 같이 하지 아니하므로 아이성에서 패한 것이다." 내일 아침에 그 사람을 찾아내어서 처치하고 불로 살아라. 그 이튿날 아침에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한곳에다 모으고 하나님 앞에 서니까 하나님이 유다지파를 택했습니다. 유다지파에서 또 하나님이 한 부족을 택하고, 또 부족 중에서 한 가계를 택하고 가계 중에서 한 족속을 택했는데 택하고 보니 아간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아간을 보고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무엇을 했느냐? 나에게 고백하라." 아간이라는 사람이 몰래 시날산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된 금덩이 하나를 취하여 자기 장막에 숨겼는데 그것을 고백했습니다. 사람을 보내어서 조사해 보니 정말로 그 외투와 은과 금이 장막에서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 따라서 아간을 잡고 그 가족들을 다 잡고 짐승들조차도 다 붙잡아서 아골이라는 골짜기에 내려가서 "이스라엘을 괴롭힌자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라"고 돌로 쳐서 다 죽이고 불러 태워서 돌무더기로 만들어 버리고 만것 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돌이켜 아이 성을 공격한 결과에 아이 성이 쉽게 함락이 되고 승리를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께 드린 것을 모르고 인생을 살아가면 언제나 실패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1485년 영국의 국왕 리처드 3세는 영국의 통치권이 달린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이에 앞서 마부를 보내 자신이 가장 아끼는 말을 준비하라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대장장이는 "며칠 전 모든 말에게 새 편자를 박으라고 명령하셔서 준비한 편자를 다 써버렸습니다. 새 편자를 만들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서둘러 만들도록 지시했습니다. 급히 새 편자를 만든 대장장이는 말굽 위에 고정시키기 위한 못을 박기 시작했는데 한 개가 모자랐습니다. "못이 하나 모자랍니다. 잠깐이면 새 못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시간이 없으니 아무것이나 그냥 박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전장으로 나간 왕은 이제 적진으로 돌격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허술하게 박혔던 말 편자가 떨어지면서 말은 고꾸라졌고 위에 타고 있던 국왕 역시 바닥으로 뒹굴어지고 만 것 입니다. 그는 곧 적들에게 포위를 당했고 전쟁에서 패하고 만 것 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소홀히 할 때, 그것으로 인해 큰일을 그르칠 수가 있습니다. 아간은 전리품 가운데 사소한 몇 가지를 숨겼지만 그 일로 인해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했고 그의 가족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이것쯤이야. 하나님이 눈감아 주시겠지. 이것쯤이야 괜찮겠지." 사소한 일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눈감고 나가면서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하는 일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면 가슴을 치고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왜 나는 도와주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이 여러분의 생애 속에 사소한 일에 하나님께 바친 것을 도적질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께 무엇이 바쳐진 것을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주일은 하나님께 드린 날
하나님께 바쳐진 첫째는 날입니다.
유대인의 십계명 중에 제4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인 것입니다. 창조의 날을 기념해서 준 하나님의 날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로 10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야훼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안식일의 계명을 어기면 하나님이 죽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민수기 15장 32절로 36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이 사람이 안식일에는 나무하러 갔다가 잡혀서 결국 하나님의 명령으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것이 아니라 엿새 동안은 우리 것이 되어서 일하나 이레째는 하나님의 날이므로 하나님께 드려야지 하나님의 날을 우리가 도적질하면 도둑놈이 되고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는 사망의 세력, 저주가 따라오지 축복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신약시대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즉 믿음과 사랑의 계명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로 31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우리는 주 예수님을 믿고 사랑함으로 구원을 얻지 율법행위로 구원을 받지는 않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었었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부활의 날, 주일을 기념합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도 주일입니다. 성도들의 전통을 따라서 거룩하게 예배를 드립니다. 신약 성도들에게는 주일날이 바로 안식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토요일 안식일은 하나님이 창조를 기념으로 하는데 주일 안식 새 언약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 안식이요, 성령이 강림하신 날이 주일 안식일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내지만 구약 하에서 그렇게 하였고 신약시대에는 주님께서 새 계명을 주셨는데 새 계명 하에서는 주일날이 바로 우리의 안식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창조일이 아니라 부활하신 날이 우리의 안식이요, 성령이 강림하신 날이 바로 안식인데 그날이 주일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명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13절로 14절을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야훼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야훼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야훼의 입의 말씀이니라"
놀라운 축복의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로 사도 시대부터 예배일로 정해진 날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주의 날"이라고 기록되었고, 사도행전 20장 7절에는 "그 주간의 첫 날"이라고 하여 주님이 다시 살아나신 날을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창조사건을 기억케 하는 것이면 신약의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게 하는 날인 것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드린 날인 것입니다.
지난주 우리교회 순복음 가족신문에서 저는 기쁜 소식을 발견 했습니다. 우리교회 대학선교회 소속 윤혜준 양이 행정고시 교육행정직에 수석 합격했다는 것입니다.
간증을 보니 윤혜준 양은 주일 예배를 철저히 지키고 바라봄의 법칙을 실천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년 전 윤 양은 행시를 보겠다는 결심을 부모님께 말씀하고 새벽 예배로 작정 여리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일주일 후 윤혜준 양은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는 다윗이 든 돌멩이와 같다. 다윗이 든 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 같이 너는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 나아가는 돌멩이다." 이 말씀을 응답이라 여기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윤혜준 양은 무엇보다도 주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주일 3부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캠 대학선교회에서 예배를 드렸고 소교구 모임에도 참석을 했습니다. 이렇게 온전하게 주일을 지키고 나면 윤 양은 일주일간 공부하느라 지쳤던 몸과 마음에 새 힘이 솟아났고 시험에 대해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또한 바라봄의 법칙을 실천하여 윤 양은 하루에 12번 씩 합격하는 상상을 하며 친구들을 만나도 "공부가 힘들다"라는 부정적인 말은 일체하지 않았었습니다. 오히려 "잘 될 거야, 합격할거야, 수석할거야"라고 말했었습니다. 그 모습을 늘 상상하고 꿈꾸었습니다. 윤 양은 예배 시간에 꿈을 크게 가지라는 저의 설교에 도전 받아 교육을 통해 나라를 이끄는 리더가 되겠다는 비전을 갖게 되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온전한 주일 성수와 바라봄의 법칙을 실천하여 귀한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날인 것입니다. 주의 날 우리가 기쁨 가운데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주님은 우리의 삶에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을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주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날이요, 성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 예수님이 교회에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주일은 성령이 교회에 임하여서 우리를 품에 품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님과 동행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주일에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찬송 드릴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주일을 내가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것이요, 주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대접하지 않는데 어려울 때 주님께 도움을 구한다고 해서 주님이 그 기도를 들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소한 것을 등한이 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승리를 했지만 아인성에서 대패를 하고 만 것 입니다. 도둑질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2.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린 성물
두 번째,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물건인 것입니다.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을 야훼의 것이니 야훼의 성물이라고 레위기 27장 30절에 말하는 것입니다. 물질도 십분의 일은 야훼의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얻은 수입 중에 십분의 구는 우리 것이지만 십분의 일은 야훼의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십분의 일에 손을 대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꾸짖음을 보십시다.
말라기 3장 7절로 12절 우리가 다같이 읽으십시다.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 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야훼의 말이니라."
십일조를 떼먹으면 떼먹는 것이 아닙니다.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떼먹으면 도둑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둑질하는 사람을 저주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저녁에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에도 실패하는 것은 저주가 따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주가 따르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손해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성경에 우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우리를 복되다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복받 았구나. 정말 대단하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구나" 그렇게 놀라운 감탄을 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고 우리가 높이 받드는 아브라함은 많은 삶에 시련을 받았지만 그는 가난하지 않았었습니다. 특별히 성경에 보면 그돌라오멜왕과 그 연합군들이 소돔과 고모라를 쳐서 파하고 조카 롯과 그 모든 식구를 포로로 잡아 갔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기른 군인 318인을 거느리고 밤중에 습격을 해서 그돌라오멜왕을 대파하고 잃어버린 소돔과 고모라성의 사람들과 롯과 그 조카 롯과 백성들을 구하고 승리하여 보무당당하게 돌아왔습니다. 그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렇게 일렀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14:19~20)
가나안 땅에 살렘왕 즉, 평강의 왕 부모도 후손도 기록되지 않은 족보가 하나인 평화의 왕 멜기세덱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팔레스타인에서 하나님이 대제사장으로 이름이 나있었습니다. 그분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매 아브라함이 얻은바 십분의 일을 다 바쳤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 십일조를 실행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아브라함은 거부가 되고 창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자손들에게 십일조를 드리기를 철저히 교육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이삭도 보십시오.
창세기 26장 12절로 13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야훼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판자촌에서 살아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거지로 살아야 된다. 사탄이 하는 거짓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얻어먹고 동냥으로 살면은 전도도 안되고 덕도 안되고 영광도 안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했는데 이웃을 사랑하려면 말로만 가지고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주었습니다. 독생자를 주었습니다. 우리도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살아갈 길을 열어주고 도와주어야 되겠는데 우리가 도움을 받기 원하는 처지에 있는데 무엇을 도와 준다는 말인 것입니까? 우리가 축복을 받아야 이웃을 도와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하나님께 복을 받으니까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으나 타락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거부였고 이삭도 거부였고 야곱도 거부였습니다만 거부는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부자가 된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이 같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부자가 된 사람은 그것이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부자는 그 돈과 재물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부자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천국에 들어가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런 부자가 천당 가려면 바싹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지가 되어야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님께 회개하고 나오면 새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부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되는 부자는 저주고 하나님 모시고 축복받은 부귀는 크나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십일조 서약을 보십시오. 형의 낯을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칠 때 들에서 잠을 자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는 이렇게 서약했습니다.
창세기 28장 20절로 22절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야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다. 아버지 이삭에게 배웠고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배운 교훈인 것입니다. 그 결과 야곱은 창대하고도 거부가 되어서 20년 후에 고향땅으로 돌아올 때 많은 짐승에 노비의 주인이 되어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도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0절로 21절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십일조는 우리 신앙과 사랑을 증명하는 시금석입니다. 내가 아무리 주님을 사랑한다고 나팔을 불고 다녀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은 그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것은 하나님께 반드시 드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와 책임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위대한 부흥사인 빌리그래암 목사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범하는 가장 큰 죄 중의 하나는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것을 도둑질한 것입니다.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은 헌금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그러므로 우리가 십일조조차 드리지 않으면서 헌금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헌금은 십일조 이외에 특별히 드리는 물질이고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믿음을 시험하고 사랑의 진실함을 시험하기 위해서 직접 떼가지 아니하시고 우리보고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경외하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떼먹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십일조는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진실성과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한 것이 십일조인 것입니다.
철저한 십일조 생활로 복을 받은 사람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미국의 부호 록펠러입니다. 그는 소년 시절에 공장에 다니며 주급 1불 50전을 받았는데 그때 어머니께 십일조 생활을 배워 시작함으로써 나중에는 엄청난 금액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치약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윌리엄 콜게이트는 16살에 비누 공장을 만들 꿈을 꾸고 뉴욕으로 가던 중 한 선장으로부터 십일조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는 '시리얼'을 만들어 거부가 된 크로웰, 아이보리 비누로 유명한 아이보리, 맨소래담으로 이름이 난 하이드, 10만 불의 부채가 있으면서도 먼저 십일조를 드렸던 크래프트, 기관차를 만들어 거부가 된 마티아스 볼드윈 등 세계적 거부들 대부분이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실천한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스탠리 탐은 십일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플라스틱 사업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의 운영권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전부를 드리고 자신은 봉급만 받는데도 엄청난 거부가 되었습니다. 뉴질랜드의 한 사업가는 「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주급 3불을 받아서 십일조를 드리다가 그 다음에는 월급의 15%, 그 다음에는 20%를 드렸고 25살부터는 수입의 절반을 드렸는데 45년 후 나는 주체하지 못할 만큼 수백 배나 축복을 받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므로 우리의 신앙과 사랑을 증명하는 시금석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는데 바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을 우리가 도둑질 하면 반드시 저주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간 때문에 아이성 전쟁에서 패한 것처럼 우리가 날도 도둑질하지 말아야 되고 돈도 도둑질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도둑놈이 되어서 주님을 찬미할 수가 없고 하나님을 예배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우리 몸은 하나님께 드린 것
셋째로 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제물이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로 2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께서 몸 찢고 피를 흘려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을 예수님이 몸찢고 피흘린 대가로 사주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요, 주님의 것입니다. 어떤 북부신사 한 사람이 미국의 남부 주에 가니까 노예시장에 가보았었습니다. 많은 노예들을 시장에 데리고 와서 팝니다. 이빨을 들여 보고 이빨이 튼튼하다고 하고 팔도 힘이 있다고 하고 옷을 벗겨 보고 건강하다고 그러고 노예의 가치를 높이 불러서 노예를 파는데 한곳에 가보니까 한 노예 남자와 한 노예 여자가 끌어안고 울고 있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지금 막 팔렸는데 남편은 다른 데로 팔리고 여자는 다른 데로 팔려서 영원히 생이별 하게 되었다고 통곡을 하고 우는데 새로 산 주인이 채찍으로 때립니다. 북부인사가 얼마면 이 두 노예를 팔겠냐고.. 자기가 산 것이 갑절을 달라고 합니다. 선뜻 갑절을 주고서 그 노예를 사고 노예문서를 가지고 시 밖으로 나와서 노예 문서를 그들에게 돌려주면서 "이제는 당신들은 자유입니다. 자유롭게 가십시오." 그 두 노예가 북부 인사에게 무릎을 꿇고 손을 빌면서 빌었습니다. "우리는 이 노예 문서를 가지고 자유를 얻어 나갔다가도 곧장 잡혀서 또 노예가 될 것 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좋은 주인을 만났은즉 우리 평생에 당신을 섬기겠으니 노예로 데려가 주십시오." 그래서 이 북부인사는 그 두 분을 북부로 데려가서 평생을 형제같이 돌보아 주었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귀의 종이 되어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데 예수님 새 주인이 오셔서 몸 찢고 피 흘려 하나님 앞에서 값 주고 사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 믿고서 구원을 받고 난 다음 예수님 떠나가면 마귀에게 도로 잡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원히 주인으로 삼고 살 때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과 평화가 다가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두 주인 중에 한 주인을 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와 세상을 택할 것이냐. 예수님과 하늘나라를 택할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할 것이지 중립은 있을 수 없습니다. 중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때 마귀의 종으로 세상과 지옥의 사슬에 메여 있더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피 값으로 구원을 받아 천국백성이 되었는데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착각을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 올 때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팔려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로 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라 값을 주고 산몸이 되었으니 이제는 우리 마음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이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 것처럼 삽니다. 도둑놈입니다. 하나님의 재물을 도둑질하는 도둑놈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몸을 가지고 마음대로 술독을 만들어 놓고 굴뚝을 만들어 놓고 온갖 세상의 더러움에 뒹굴어서 더럽게 하고 "내 몸이니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잔소리냐?" 웃기는 소리 하네요. 하나님은 당신의 것을 주장할 때 못쓸 것이면 깨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멸하면 멸함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몸을 가지고 하나님을 가장 더럽게 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거룩한 재물인 몸을 창녀의 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몸에 대한 범죄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5절로 18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우리는 주님께 바친 마음과 몸인 것입니다. 거룩한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입니다. 이 하나님의 전을 가지고 우리가 창녀하고 합치면 이 몸이 창녀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전이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동시에 거할 수 없습니다. 신전이 벨리알의 전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명과 흑암과 혼합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쳐서 멸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이라고 마음대로 합니까?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많은 죄가 있지만 음행을 피하라고 한 것입니다. 다른 죄는 몸밖에 짓는 죄지만 음행은 몸 안에 짓는 죄므로 이 죄를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에 임하는 것은 온 세계가 엄청나게 음란의 세계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은 사람들이 노아와 홍수 때 같이 몸으로 성령이 거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노아 홍수에도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흙이 같이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다른 색을 쫓아 행하며 방탕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가 하나님께 심판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젊은이로부터 늙은이까지 음란하고 방탕하고 세상에 소속하고 호색하고 음행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할 수 있는 전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가면 진노의 심판이 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 값을 주고 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소유물을 망가지는데 가만히 보고 계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몸을 깨끗이 하지 않고 세속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엉터리 같은 일인 것입니다.
테니슨은 그의 작품 「왕의 전원시」에서 기사로서의 서약을 말했습니다. "기사의 삶은 순결하게, 말은 진실하게,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왕을 따른다. 그렇지 않으면 왜 태어났는가?"
이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삶의 좋은 좌우명이 됩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므로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왕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결하게 진실하게 올바르게 따르고 섬겨야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천하를 호령하던 군주들이 패망한 것은 강력한 적수를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 것이 그 원인으로 드러납니다. 은나라의 주왕은 달기라는 여인으로 인해, 주나라의 유왕은 포사 때문에,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로 말미암아, 로마의 영웅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마음을 빼앗겨 결국 그 삶이 실패했습니다. 성경에 이스라엘의 왕 다윗도 처음에는 밧세바로 인해 죄를 지었고, 인류 지혜의 모범이 되었던 솔로몬 왕도 말년에 이방 여인으로 인해 우상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한 남자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것도 어머니와 아내로 말미암아 승리하고 망하는 것도 여인으로 인하여 망하는 것입니다. 나실인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으로 그의 인생에 실패를 거듭했고,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을 정도로 음란에 빠졌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의 전이므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로 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흑암에서 광명으로 마귀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세계로 옮김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본받는 자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거룩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하나님을 본받고 거룩하게 살기로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 거룩하게 만들어 달라고 백날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 마음에 결심을 안 내리면 기도는 아무 힘을 발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결심하오니 나를 거룩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단호하게 결심을 하면 그때부터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일날 도둑질 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주일날 예배드리지 않고 놀러 가면서 놀러가는 길에 '주여 도와주소서. 다음부터는 안하게 해주시옵소서. 다음부터는 주일날 놀러가지 말게 해 주시옵소서. 다음날 주일날 골프 치러 가지 말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말을 해서 소용이 없습니다.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다시는 주일날을 도둑질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십일조 떼먹지 말아야지. 십일조 떼먹지 말아야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하나님이여 십일조를 도둑질하지 않는 마음 주시옵소서. 마음 주시옵소서.' 아무리 그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안하겠다고 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앞에 태도는 결심을 따라서부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음란하고 방탕했으면 '이제 음란하지 말아야지. 방탕하지 말아야지. 이 몸을 하나님의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는 몸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을 하고 서약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습니다. 믿습니다. 해도 결심 안하면 안돼요. '내가 이제부터 전도하고 살아야지. 오~ 주여 전도할 마음을 주옵소서. 마음을 주옵소서.' 백날 그래봤자 그 기도만 하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그날부터 전도를 시작하면 전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결단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는 믿겠다고 결단을 내릴 때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천사들이 박수를 치고 성령께서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 드린 것을 우리가 맘대로 취하면 교만하고 불경스럽고 또 도둑이 됨으로 하나님의 노하심을 받게 되고 복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스펄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일조를 바치지 않고 내가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요,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은 것도 도둑질하는 것이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주일 도둑놈이요, 예배시간에 예배하지 않은 것은 예배 도둑놈이며,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도둑놈이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것을 우리 맘대로 취하면 도적이 되므로 하나님의 노하심을 받게 되고 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해를 살면서 언제나 마음에 다짐할 것은 다짐해야 되는데 우리 인생에 꼭 세 가지는 하나님이 것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일날은 하나님의 것이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 몸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하고 도둑질하지 아니하면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같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같이 하셔서 승리하고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는 사람이 되지만 여기에서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아간과 같이 되어서 조그마한 아이성에도 참패하고 몰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에게는 주일은 하나님의 것이요 성일이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요, 거룩한 재물이요, 우리 몸은 산 재물이요,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것을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지 않고 하나님이 축복 속에 살고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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