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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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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8. 2. 24. 주일설교 |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회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집은 대문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담을 뛰어넘거나 창문을 뜯고 들어가면 주인이 아니고 도적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회개를 통해야만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회개 없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가짜 신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면서 그 사역을 시작했고,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하시고 지상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회개란 히브리어로 '슈브'인데, 그 말 속에는 '길을 바꾸다' '되돌아오다'라는 뜻인 것입니다. 즉 사람이 마음속 중심에 있는 죄에 대한 영적 자각으로 마음이 변화되고 돌이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에 대해 시편에는 통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예레미야에는 죄를 자복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에스겔에서는 죄를 떠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호세아는 야훼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스바냐는 야훼를 찾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쓰여진 헬라어로는 회개는 '메타노이아'인데 이 역시 마음의 변화, 돌이킴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는 그저 마음으로 후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깊은 책망과 가책으로 죄에서 180도 생활을 돌이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바로 이러한 회개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회개를 그냥 후회만 하고 자백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후회와 자백하는 것과 더불어 방향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살던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을 따라 살던 것을 주님을 따라 사는 중심으로 방향을 180도로 바꾸어서 인생을 새로 살게 되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본론>
1. 불신자의 회개
첫째로, 우리 불신자들은 회개를 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결코 들어올 수 없습니다. 불신자가 어떻게 회개를 해야 될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섬기지 않는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가장 큰 죄가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는데 그 독생자를 주신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배반하고 돌아 섰을 때 그 죄가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제 자기 죄 때문에 심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모든 죄는 예수님이 대신 다 갚아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흘려 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죄를 주님께서 다 청산해 주셨습니다. 이제 오직 우리가 믿지 않은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내가 네 죄를 다 갚았으니 나를 믿고 죄에서 용서를 받으라고 하는데 그를 배반하고 믿지 않은 죄가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책망하겠는데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지 않은 죄가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지옥에 가는 것은 안 믿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지 믿는 자는 지옥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상급 심판을 받아서 더 많은 상급을 받을 것이냐 못된 상급을 받을 것이냐, 차이는 있겠지만 지옥에 안 가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청산해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무서운 죄가 안 믿는 죄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뒤로 던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에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 돈이 하나님이 되고 쾌락이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의 악이란 하나님을 버리고 인본주의에 서서 자기의 지혜와 총명과 수단과 방법으로 인생의 우물을 팠으나 그 우물은 결국 터져서 물이 고일 수가 없는 우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엘서 2장 12절로 13절에 야훼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몸을 찢는 형식을 하지 말고 마음을 찢고 주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어떠한 죄라도 널리 용서해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냥 복음을 믿으라고 하지 않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라. 삶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회개란 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요 삶을 바꿔서 180도 돌아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의 은총을 베풀어 놓았을 이때에 우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제일 먼저 회개해야 될 것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내 중심으로 산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30장 9절로 10절에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야훼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야훼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 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가지고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뒤를 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이런 조목조목을 따져가며 내가 지은 죄를 회개하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는 조목조목을 따져서 내가 회개할 수 있는 대로 최대로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마음의 밭을 갈아엎어서 적은 돌맹이들과 가시넝쿨을 제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회개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죄를 제일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를 우리가 조목조목 따져서 회개해서 우리의 마음을 갈아엎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성령께서 특별히 지적하는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지적해서 이는 잘못됐다고 말하면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로 9절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했으니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한복음 3장 3절로 8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난다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성령이 마음속에 거듭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는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아버지께로 직접 태어나는 놀라운 역사가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셔서 생기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 속에서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으니 이는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난 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나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똑같은 영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하나님의 생명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자요,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나님 자녀로 태어나게 한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와 하나님께로 태어난 자가 천양지차의 삶의 질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태어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회개란 것은 깊이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씨뿌리는 비유에 보면 길거리에 뿌린 씨는 길거리가 딱딱해서 씨를 받아 들이지 않으므로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복음을 듣고도 무관심 하면은 마귀가 와서 복음을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자갈밭에 뿌린 것은 회개를 조금만 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되 회개를 깊이 하지 않고 조금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 들여서 신앙의 싹이 돋아나 햇빛이 나고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면 곧장 믿음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왜냐, 깊은 회개가 없습니다. 그냥 호미로써 파헤쳐서 씨를 심는 것과 같이 자갈을 뒤엎지 않았었습니다. 그 다음에 가시밭에 떨어진 씨는 낫이나 가시의 힘에 눌려 녹아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 쾌락을 원하는 탐욕이 찬 마음에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듣고 나도 교회 나가볼까. 교회 나와서 말씀을 받았으나 곧장 세상 탐욕에 짓눌려서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옥토에 뿌렸다는 것은 밭을 갈아엎어서 가시를 제하고 엉겅퀴를 제하고 돌맹이를 제하고 부드러운 흙으로 만들어서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여러분 가슴을 파헤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돌자갈 밭에 약간만 호미로 파서 심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듣고 교회 왔다 갔다 하다가 집어치워 버리는 그런 회개가 아닙니다. 깊은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을 듣는 사람 중에 밭을 갈듯이 마음을 파헤치고 돌 자갈을 다 제키고 부드러운 옥토로 만들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아니하고 그냥 자갈밭에 씨를 뿌려서 씨가 났으나 불리하면 포기해 버리는 신앙, 세상의 탐욕이 꽉 들어찼는데 그대로 복음을 뿌려서 교회 왔다 갔다 하다가 그냥 지워 버리는 그런 신앙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냥 예수 믿으라고 하지 않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회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해야 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를 내가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회개할 때 내 가슴을 파헤치고 모든 죄의 돌맹이를 옮겨 놓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성도의 회개
둘째로,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고 중생하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예수 믿는 성도들도 늘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로 오염된 세상 생활에 더러워지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공해 지대에 살았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런 무공해 지대에 살면서도 마귀의 유혹을 받아 넘어졌는데 하물며 우리는 이 세상의 죄의 공해가 꽉 들어찬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뜨면 죄가 보이고 어느 곳에 가도 죄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입니다. 죄의 공해가 꽉 들어찬 세상에 사니까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도 항상 죄에 물들고 죄에 빠지고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을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예수를 믿어도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10절에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나는 죄 없어요. 이 세상에 살면서 죄짓지 않고 살아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 언제나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몸은 깨끗해지나 발은 더러워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상에 사는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발을 씻기려고 하니까 "나의 발은 못 씻깁니다." "발을 씻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관계가 없느니라." "그러면 내 머리도 씻겨 주십시오." 한번 깨끗함을 입은 사람은 발밖에 씻길 필요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행위를 늘 씻어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 안 받은 사람은 온 전체가 죄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원죄에서 회개하고 씻음을 받았습니다. 이제 매일매일 짓는 죄에서 씻음을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모든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백을 안하면 죄가 점점 우리 속에 깊어지지만 자백을 하면은 매일 매일 씻어주는 것입니다. 회개치 않고 감추는 죄는 우리 몸에 있는 고름 주머니와 같습니다. 우리 몸이 아픈데 몸 안에 염증이 생겨서 고름 주머니가 생기면 점점 고름주머니를 통해서 병이 몸에 붙여 나가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염증을 그대로 두면 속으로 곪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염증을 터뜨려 고름을 뽑고 치료해야 되는 것입니다. 염증을 터뜨리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회개로써 죄악의 고름 주머니를 터뜨리고 그리고 죄의 고름을 뽑아내고 소독을 하는 것이 회개요, 청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염증 자체는 아픈 것입니다. 몸에 여러분 염증이 생기고 고름주머니가 생기면 아프잖아요. 회개치 않는 죄는 죄책이 되어서 양심에 고통을 주고 기도와 신앙이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는 몸속에 있는 염증의 고름주머니와 같아서 쏘고 아파서 열이 나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이 늘 문득문득 다가오고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추고 있으면 병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고름주머니를 터뜨리는 것은 아픕니다. 왜 사람들이 회개 안하려고 하느냐? 회개하는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회개하려니까 자기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을 드러내야 되고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자복해야 되니까 괴롭고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고름 주머니를 터뜨리는 것 아프지요. 회개 자체가 아프지만 터뜨리는데도 또 피가 나고 피고름이 나니 아프잖아요. 회개 자체도 아픈 것입니다. 회개는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럽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신앙의 길을 고치는 길인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하지 않고는 신앙의 병을 고치지 못합니다. 왜 나는 기도도 안 나오고 찬송을 해도 은혜가 없고 교회 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까?
마음에 병들었습니다. 병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자책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고름주머니를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회개하고 터뜨리자니 괴롭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수치스럽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감추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점점 그 죄는 영혼을 죽여가고 마모시키고 나중에는 교회도 안 나오고 찬송도 못하고 교회도 안 오고 세상으로 흘러가는 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은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라"
죄를 회개하고 고름 주머니를 터뜨려내고 씻어내고 병 고침을 위하여 기도하면 마음에 병도 낫고 육신의 병도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과 몸을 썩히는 것입니다.
나는 간증을 읽어 보았는데 어떤 부형님 한분이 갑상선암에 걸려서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고 나았습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간암이 또 생겨서 그것도 조기발견해서 병원에서 치료하고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인후암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서 조사하니까 이는 갑상선암 수술한데 옆에 인후암이 생겼으므로 수술 불가능하다. 이 암은 병원에서 의학적으로 못한다니까 그때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전에는 병원에 의지하고 의사가 수술하니까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고 교회는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했지만 회개를 안했습니다. 이제 의사가 병원에서는 의학으로는 고칠 수가 없다고 하니까 이제는 하나님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니까 죄가 가로막힌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오산리기도원에 가서 사흘 금식하고 죄를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교회에 충실히 나오지 못한 죄를 회개했습니다. 세상을 따라 산 죄를 회개했습니다. 십일조 낱낱이 떼어 먹은 죄를 회개했습니다. 기도안하고 말씀 안 읽은 죄를 회개했습니다. 이 죄를 다 회개하는데 굉장히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부르짖고 난 다음에 집에 내려와서는 그날부터는 성경 읽고 기도하고 새벽기도 꼭 나오고 주일날 예배 나오고 도적질한 십일조를 청산해서 하나님께 내고 난 다음에 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하니까 암이 온데 간데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잠언서 28장 13절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고 한 것 입니다.
죄를 숨기면 형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리를 두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를 자복하면 하나님이 꾸짖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서 씻어주시고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기 위하여 항상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는 길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누구든지 언제든지 나가서 죄를 회개하고 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특권이 주어져 있을 때 우리는 죄를 숨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3. 회개와 쓰레기 청소
셋째로, 회개는 쓰레기 청소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도 항상 쓰레기 청소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예수교인 들도 청소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 20절로 23절에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여러분 모든 사람은 이러한 더러운 죄가 다소간 다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온전히 깨끗하다. 나는 쓰레기 청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짓말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세상에 살면서 이와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 있습니다. 음란한 생각도 있고 도적질 생각도 있고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 나와서 우리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청소해야 되는 것입니다. 쓰레기가 있다고 탄식하지 말고 청소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한번 쓰레기 청소를 안 하려다가 아버지에게 혼이 난적이 있습니다. 피난 시절에 한방에서 아홉 형제가 사니까 방이 말이 아닌 것입니다. 아홉 형제가 한 방에서 바글바글 하니까 나이 많은 사람부터 어린 아이까지 있으니까 어지럽기가 짝이 없어요. 항상 소제를 날보고 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제일 장자니까 네가 소제를 해라." 아침에 일어나면 온데 쓰레기 더미고 온데 안갠 이불, 구겨진 옷, 소재하다가 하루는 제가 화가 나서 빗자루를 내던지면서 "밤낮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그대로 내버려 놓아야지!" 그러니까 아버님께서 "용기야, 이리 오너라." 그래서 가니까 "너 금시 뭐라고 말했노?" "밤낮 소제해 봤자 애들이 다 널어놓는데 그대로 두고 살지 뭐 하러 소제합니까?"
"야 이놈아, 인생이란 바로 밤낮 소제하고 끝나는 것이다. 인생이란 그저 소제해 놓으면 또 더러워지고 소제해 놓으면 또 더러워지고 그것이 인생이니까 불평하지 말고 한평생 너 그렇게 해라. 네가 나중에 자라서 너희 가족을 이루고 살 때라도 항상 청소는 해야 된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속으로 '우리 아버지 또 개똥철학 말하신다.' 어릴 때 아버님 철학이 개똥철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어른이 되고 보니 맞는 말이 많아요. 하루는 내가 "아이고 세상에 이렇게 고통스러워 사는 게 뭐냐. 출세도 못하고." 그러니까 아버님이 "이리 오너라. 인생이 뭔지 가르켜 줄까?" "가르켜 주십시오." "밥 먹고 사는 것이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세상에 밥 먹고 사는 것 누가 모르냐 말이야. 그런데 요사이 제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인생이 뭐냐. 예수 믿고 밥 먹고 사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죠. 점심도 또 먹죠. 저녁도 또 먹죠. 그 이튿날 또 먹죠. 그 이튿날 또 먹죠. 그 이튿날 또 먹죠. 밤낮 먹다. 살다. 자다. 죽다. 그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생활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항상 청소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제 회개했으면 오늘도 또 회개하고 내일도 또 회개하고 모레도 또 회개하고 한 달 회개하고 10년 회개하고 죽을 때까지 회개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샤워를 하듯이 항상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목욕했는데 귀찮스리 무슨 목욕을 하느냐.
한번 목욕했다고 몸에 때가 안 붙습니까? 세상에 나가 살 동안 먼지와 티끌이 묻어서 몸에 때가 오면 또 목욕 해야지요. 또 해야 되고 또 해야 돼죠. 그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 영혼을 항상 정결케 하면은 항상 주님 앞에 설 수 있지만 더러워지면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로 17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 하니라"
여러분이 성전인 이상 성전을 항상 청소해서 하나님이 와서 거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저분하고 더러워지면 하나님이 거할 수가 없고 정 더러워지면 하나님이 버리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한 여인은 가슴을 치고 울면서 "나는 큰 죄인입니다. 나는 큰 죄를 지었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다른 여인은 방실방실 웃으면서 "목사님, 나는 별로 죄 지은게 없어요. 자잘구레한 죄는 많이 지었지만 뭐 큰 죄는 기억날만한 것이 없습니다." 목사님이 가만히 보시다가 우는 여인을 중지시키고 "당신은 가서 큰 바위 하나를 가져 오세요." 그리고 다른 여인에게 "당신은 치마폭에 자잘한 돌을 많이 가져오세요." 얼마 있지 아니하여 울던 여인이 낑낑 거리면서 큰 바윗돌을 가지고 왔어요. 그리고 안 울던 여인은 치마폭에 자잘구레한 자갈을 잔뜩 가지고 왔어요. "이제 미안하지만 가지고 온 그 자리에 도로 갖다 놓으세요." 큰 죄를 지었던 큰 돌멩이를 가져온 부인은 쉽게 그 자리에 갖다 놓았는데 자잘구레한 돌을 잔뜩 치마폭에 가져온 여인은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난처하게 생각합니다. "왜 안 갖다 놓습니까?" "자잘구레한 것 하도 끌어 모아서 어디에 갖다 놓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보세요. 죄라는 것은 바로 지었을 때 그 자리에서 회개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 자매님이 큰 죄를 회개한 것같이 잔잔한 죄라고 회개 안하면 이 치마폭에 쌓아 놓은 잔잔한 돌멩이 같아서 나중에 회개하려고 해도 어디서 주워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또 몇 개인지 알지 못하므로 회개하기가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라는 것은 모아 놓지 말고 그때 그때 회개해서 청산해 버려야 됩니다." 그런 말을 했다는 소설책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여 마음의 쓰레기를 청소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죄를 변명하지 말고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지은 죄를 지적하면 타당화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아담아, 아담아!" 찾으신 것입니까? 아담이 나무 뒤에 숨은 것 몰라서 찾은 것 아닌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아담이 나무 뒤에 숨어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말씀하실 때는 아담이 나와서 죄를 자백하기를 원하신 것 입니다. 자백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고 구원해 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찾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죄를 자백하는 대신에 죄를 변명했습니다. 아담은 말하기를 "당신이 지어준 여인이 꼬이므로 내가 선악과를 먹었나이다." 자기 죄를 하나님과 여자에게 돌렸습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내가 죄를 지었지요. 그 여자가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지요. 여자보고 "하와야 네가 왜 그렇게 했느냐?"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죄를 내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남의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회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죄는 내 탓으로 겸손히 받아 들여서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여 내가 죄를 지은 것은 저 장로 때문에 지었습니다. 난 저 구역장 때문에 지었었습니다. 난 이웃 집사 때문에 지었습니다. 나는 내 스스로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죄가 아닙니다."여러분, 두 사람이 죄를 회개하러 왔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교인이요, 한 사람은 세리인데 세리는 저 뒤편에 앉아서 가슴을 치면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울고 기도하고 나갔습니다. 바리새교인은 "하나님 아버지여 나는 저 세리와 같이 죄를 짓지 아니하고 난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 다 내고 나는 깨끗하고 의로운 생활을 했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더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이냐?"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가슴을 치고 회개한 저 세리가 더 의롭다함을 얻고 나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자기 타당화가 아닌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적나라하게 드러 내놓고 고백하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괴롭지요. 자존심이 상하지요. 슬프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야 죄가 터뜨려지고 수술이 되고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2편 5절에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야훼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죄를 숨기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해도 죄를 고백하면 사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내가 회개하면 하나님이 멸시하고 나를 비웃을 것 갔지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고 소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기를 우리가 주저하지 말아야 됩니다.
회개하지 않고 위선자의 삶은 고달픈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안 지은 것처럼 뻔뻔하게 사는 것은 위선자의 삶이요 고달픈 삶입니다. 자기 양심과 끝없는 전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양심이 늘 고발하면 그를 늘 변명하고 덮어두고 감춰야 되는 고달픈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교인이나 사두개교인이나 교법사들이 바로 위선적인 삶을 살면서 거룩한 체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지적을 당하고 회칠한 무덤이라는 꾸중을 들은 것입니다.
디도서 1장 15절에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 사람은 그 마음에 양심에 끊임없는 고통을 당하고 위선자의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양심이 정결해 지고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양심의 고발이 그치고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죄가 있을 때 평안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수도사가 산길을 가다가 큰 개울가에 왔습니다. 물살이 센데 한 여자가 개울가에 들어왔다가 떠내려갈 위기에 처해서 벌벌 떨고 못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한 수도사는 눈도 거들떠보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같이 가던 수도사는 얼른 옷을 걷고 내려가서 "내가 업어서 건너 드리리다. 내 등에 업히십시오." 그래서 그 젊은 여인을 업고 물살을 그치고 건너편으로 건네주고 옷을 도로 입고서 걸어갔습니다. 한참 걸어가다가 앞에 간 수도사가 화를 냈습니다. "당신이 수도한다면서 젊은 여자를 업고서 개울을 건너다니 그게 무슨 수도사의 행위냐. 고약하다." 그러자 이 수도사가 한참 가만히 있다가 "나는 두 시간 전에 다 잊어 버렸는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냐? 나는 두 시간 전에 그 여인을 업고서 개울을 건너 주고 난 다음에 깨끗이 잊어 버렸어. 너는 마음에 지금 가지고 있느냐? 위선자 아니냐?" 위선자가 대게 위선자를 꾸짖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감추는 사람이 다른 사람 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종이 종을 다루면 촛대 뼈를 꺾어 놓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종이 종을 다루면 사정을 봐줄 것 같지만 더 무섭습니다. 시집살이 되게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 되게 시집살이 시킵니다. 안 그럴 것 같지만 그런 것 입니다. 자기 죄를 감추는 자가 남의 죄를 지적하고 남을 못살게 구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회개한 자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남이 죄를 짓는 것을 보면 불쌍히 여기고 어찌하든지 회개하도록 도와주지 비난하고 공격하고 옷을 벗기고 할퀴고 잿물을 뿌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위선자는 괴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고 의로운 척 하자니까 괴롭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는 수도자처럼 위선자가 되지 말고 솔직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자기가 아닌 연극을 하며 삽니다. 연극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고달픕니다. 여러분 연극해 보십시오. 배우들이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의 말을 하고 사는 것이 연기자의 삶인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살면 연극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 앞에서 연극을 해야 되고 아내 앞에서 연극을 해야 되고 사람들 앞에서 연극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면을 쓰고 산다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까?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낮에는 성자요 거룩한 의사이면서 밤에는 흉악한 하이드 라는 범죄인이 되는 것 이러한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괴로운 것입니다.
시편 101편 7절에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가면을 쓰고 살면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며 하나님 집안에 있지 못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떤 고등학교의 여교장인데 굉장히 선량하고 점잖고 근엄한 분입니다. 그런데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굉장히 고생을 하고 굉장히 율법적으로 무서운 여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예수를 잘 믿는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다가 의사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의사선생님 나는 왜 이렇게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고통을 당합니까? 너무나 괴로워서 이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의사선생님이 가만히 보니까 그 병의 근원이 몸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는 것을 보고 "혹시 마음에 누구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가만히 있더니만 "매일 아침마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지요." "누구를 미워합니까?" "10년 전에 이혼한 우리 남편을 미워합니다. 그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10년 전에 나를 버리고 재산을 다 가지고 밖을 나갔는데 나는 이혼을 했지만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매일 같이 그를 저주합니다." 의사선생님이 가만히 쳐다보고 "아직 이혼 안했군요?" "아니요. 10년 전에 했어요." "법적으로는 했지만 마음으로는 안했잖아요. 지금 남편이 아닌데 마음으로 자꾸 남편으로 생각하고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저주를 하니까 이혼 못했잖아요. 율법적으로 법적으로 이혼을 했으면 마음으로도 이혼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이 류마티스 관절염은 바로 이혼하지 않은 남편과 매일 밤낮으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미움으로 말미암아 생긴 류마티스 관절염입니다. 남편하고 마음으로 이혼하십시오." 가만히 있더니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맞았어요. 내 마음으로 이혼하지 못했어요. 매일같이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회개하고 떠나 보내세요. 마음에 평안을 가지면 나을 것입니다." 그 교장 선생님은 10년 동안 이혼을 하고 근엄하게 올바르게 산다고 했으면서 남의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가면을 쓰고 살았던 것입니다. 정말 회개하고 자복하고 용서하고 떠나보내자 그 관절염은 순식간에 나아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읽어본 것입니다. 법적이혼과 마음의 이혼이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연극을 하고 사는 사람은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죄가 우리를 위선자로 만들고 가면극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근본적인 죄는 회개하고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하나님 자녀가 된 다음에도 매일같이 발은 씻어야 되는 것입니다. 죄 없다 하면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다 죄가 있습니다. 크고 적은 죄를 매일 회개하고 매일 씻고 매일 정결함을 받아서 죄를 짓지 않도록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마태복음 7장 24절로 27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그대로 믿고 의지하고 매일 같이 매일 같이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보혈로 씻고 말씀으로 씻고 성령으로 변화 받아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더 아름답고 깨끗하고 거룩하고 정결한 사람이 되어서 주님 앞에 우뚝 서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은 받고 우리가 더 정결하면 더 정결해질수록 하늘에 가서 칭찬과 영광과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영원히 우리 죄를 씻는 샘물을 터뜨려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믿고 회개하고 돌아서면 구원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도 매일 발이 더러워지므로 매일같이 죄 없다고 자랑하지 말고 회개하고 정결하게 되어서 주님 앞에 빛난 옷을 입고 설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회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집은 대문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담을 뛰어넘거나 창문을 뜯고 들어가면 주인이 아니고 도적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회개를 통해야만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회개 없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가짜 신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면서 그 사역을 시작했고,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하시고 지상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회개란 히브리어로 '슈브'인데, 그 말 속에는 '길을 바꾸다' '되돌아오다'라는 뜻인 것입니다. 즉 사람이 마음속 중심에 있는 죄에 대한 영적 자각으로 마음이 변화되고 돌이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에 대해 시편에는 통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예레미야에는 죄를 자복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에스겔에서는 죄를 떠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호세아는 야훼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스바냐는 야훼를 찾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쓰여진 헬라어로는 회개는 '메타노이아'인데 이 역시 마음의 변화, 돌이킴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는 그저 마음으로 후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깊은 책망과 가책으로 죄에서 180도 생활을 돌이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바로 이러한 회개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회개를 그냥 후회만 하고 자백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후회와 자백하는 것과 더불어 방향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살던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을 따라 살던 것을 주님을 따라 사는 중심으로 방향을 180도로 바꾸어서 인생을 새로 살게 되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본론>
1. 불신자의 회개
첫째로, 우리 불신자들은 회개를 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결코 들어올 수 없습니다. 불신자가 어떻게 회개를 해야 될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섬기지 않는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가장 큰 죄가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는데 그 독생자를 주신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배반하고 돌아 섰을 때 그 죄가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제 자기 죄 때문에 심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모든 죄는 예수님이 대신 다 갚아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흘려 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죄를 주님께서 다 청산해 주셨습니다. 이제 오직 우리가 믿지 않은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내가 네 죄를 다 갚았으니 나를 믿고 죄에서 용서를 받으라고 하는데 그를 배반하고 믿지 않은 죄가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책망하겠는데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지 않은 죄가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지옥에 가는 것은 안 믿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지 믿는 자는 지옥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상급 심판을 받아서 더 많은 상급을 받을 것이냐 못된 상급을 받을 것이냐, 차이는 있겠지만 지옥에 안 가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청산해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무서운 죄가 안 믿는 죄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뒤로 던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에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 돈이 하나님이 되고 쾌락이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의 악이란 하나님을 버리고 인본주의에 서서 자기의 지혜와 총명과 수단과 방법으로 인생의 우물을 팠으나 그 우물은 결국 터져서 물이 고일 수가 없는 우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엘서 2장 12절로 13절에 야훼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몸을 찢는 형식을 하지 말고 마음을 찢고 주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어떠한 죄라도 널리 용서해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냥 복음을 믿으라고 하지 않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라. 삶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회개란 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요 삶을 바꿔서 180도 돌아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의 은총을 베풀어 놓았을 이때에 우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제일 먼저 회개해야 될 것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내 중심으로 산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30장 9절로 10절에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야훼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야훼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 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가지고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뒤를 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이런 조목조목을 따져가며 내가 지은 죄를 회개하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는 조목조목을 따져서 내가 회개할 수 있는 대로 최대로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마음의 밭을 갈아엎어서 적은 돌맹이들과 가시넝쿨을 제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회개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죄를 제일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를 우리가 조목조목 따져서 회개해서 우리의 마음을 갈아엎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성령께서 특별히 지적하는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지적해서 이는 잘못됐다고 말하면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로 9절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했으니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한복음 3장 3절로 8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난다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성령이 마음속에 거듭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는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아버지께로 직접 태어나는 놀라운 역사가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셔서 생기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 속에서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으니 이는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난 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나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똑같은 영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하나님의 생명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자요,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나님 자녀로 태어나게 한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와 하나님께로 태어난 자가 천양지차의 삶의 질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태어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회개란 것은 깊이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씨뿌리는 비유에 보면 길거리에 뿌린 씨는 길거리가 딱딱해서 씨를 받아 들이지 않으므로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복음을 듣고도 무관심 하면은 마귀가 와서 복음을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자갈밭에 뿌린 것은 회개를 조금만 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되 회개를 깊이 하지 않고 조금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 들여서 신앙의 싹이 돋아나 햇빛이 나고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면 곧장 믿음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왜냐, 깊은 회개가 없습니다. 그냥 호미로써 파헤쳐서 씨를 심는 것과 같이 자갈을 뒤엎지 않았었습니다. 그 다음에 가시밭에 떨어진 씨는 낫이나 가시의 힘에 눌려 녹아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 쾌락을 원하는 탐욕이 찬 마음에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듣고 나도 교회 나가볼까. 교회 나와서 말씀을 받았으나 곧장 세상 탐욕에 짓눌려서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옥토에 뿌렸다는 것은 밭을 갈아엎어서 가시를 제하고 엉겅퀴를 제하고 돌맹이를 제하고 부드러운 흙으로 만들어서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여러분 가슴을 파헤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돌자갈 밭에 약간만 호미로 파서 심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듣고 교회 왔다 갔다 하다가 집어치워 버리는 그런 회개가 아닙니다. 깊은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을 듣는 사람 중에 밭을 갈듯이 마음을 파헤치고 돌 자갈을 다 제키고 부드러운 옥토로 만들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아니하고 그냥 자갈밭에 씨를 뿌려서 씨가 났으나 불리하면 포기해 버리는 신앙, 세상의 탐욕이 꽉 들어찼는데 그대로 복음을 뿌려서 교회 왔다 갔다 하다가 그냥 지워 버리는 그런 신앙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냥 예수 믿으라고 하지 않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회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해야 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를 내가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회개할 때 내 가슴을 파헤치고 모든 죄의 돌맹이를 옮겨 놓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성도의 회개
둘째로,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고 중생하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예수 믿는 성도들도 늘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로 오염된 세상 생활에 더러워지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공해 지대에 살았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런 무공해 지대에 살면서도 마귀의 유혹을 받아 넘어졌는데 하물며 우리는 이 세상의 죄의 공해가 꽉 들어찬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뜨면 죄가 보이고 어느 곳에 가도 죄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입니다. 죄의 공해가 꽉 들어찬 세상에 사니까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도 항상 죄에 물들고 죄에 빠지고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을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예수를 믿어도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10절에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나는 죄 없어요. 이 세상에 살면서 죄짓지 않고 살아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 언제나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몸은 깨끗해지나 발은 더러워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상에 사는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발을 씻기려고 하니까 "나의 발은 못 씻깁니다." "발을 씻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관계가 없느니라." "그러면 내 머리도 씻겨 주십시오." 한번 깨끗함을 입은 사람은 발밖에 씻길 필요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행위를 늘 씻어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 안 받은 사람은 온 전체가 죄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원죄에서 회개하고 씻음을 받았습니다. 이제 매일매일 짓는 죄에서 씻음을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모든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백을 안하면 죄가 점점 우리 속에 깊어지지만 자백을 하면은 매일 매일 씻어주는 것입니다. 회개치 않고 감추는 죄는 우리 몸에 있는 고름 주머니와 같습니다. 우리 몸이 아픈데 몸 안에 염증이 생겨서 고름 주머니가 생기면 점점 고름주머니를 통해서 병이 몸에 붙여 나가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염증을 그대로 두면 속으로 곪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염증을 터뜨려 고름을 뽑고 치료해야 되는 것입니다. 염증을 터뜨리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회개로써 죄악의 고름 주머니를 터뜨리고 그리고 죄의 고름을 뽑아내고 소독을 하는 것이 회개요, 청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염증 자체는 아픈 것입니다. 몸에 여러분 염증이 생기고 고름주머니가 생기면 아프잖아요. 회개치 않는 죄는 죄책이 되어서 양심에 고통을 주고 기도와 신앙이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는 몸속에 있는 염증의 고름주머니와 같아서 쏘고 아파서 열이 나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이 늘 문득문득 다가오고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추고 있으면 병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고름주머니를 터뜨리는 것은 아픕니다. 왜 사람들이 회개 안하려고 하느냐? 회개하는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회개하려니까 자기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을 드러내야 되고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자복해야 되니까 괴롭고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고름 주머니를 터뜨리는 것 아프지요. 회개 자체가 아프지만 터뜨리는데도 또 피가 나고 피고름이 나니 아프잖아요. 회개 자체도 아픈 것입니다. 회개는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럽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신앙의 길을 고치는 길인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하지 않고는 신앙의 병을 고치지 못합니다. 왜 나는 기도도 안 나오고 찬송을 해도 은혜가 없고 교회 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까?
마음에 병들었습니다. 병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자책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고름주머니를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회개하고 터뜨리자니 괴롭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수치스럽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감추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점점 그 죄는 영혼을 죽여가고 마모시키고 나중에는 교회도 안 나오고 찬송도 못하고 교회도 안 오고 세상으로 흘러가는 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은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라"
죄를 회개하고 고름 주머니를 터뜨려내고 씻어내고 병 고침을 위하여 기도하면 마음에 병도 낫고 육신의 병도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과 몸을 썩히는 것입니다.
나는 간증을 읽어 보았는데 어떤 부형님 한분이 갑상선암에 걸려서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고 나았습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간암이 또 생겨서 그것도 조기발견해서 병원에서 치료하고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인후암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서 조사하니까 이는 갑상선암 수술한데 옆에 인후암이 생겼으므로 수술 불가능하다. 이 암은 병원에서 의학적으로 못한다니까 그때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전에는 병원에 의지하고 의사가 수술하니까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고 교회는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했지만 회개를 안했습니다. 이제 의사가 병원에서는 의학으로는 고칠 수가 없다고 하니까 이제는 하나님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니까 죄가 가로막힌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오산리기도원에 가서 사흘 금식하고 죄를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교회에 충실히 나오지 못한 죄를 회개했습니다. 세상을 따라 산 죄를 회개했습니다. 십일조 낱낱이 떼어 먹은 죄를 회개했습니다. 기도안하고 말씀 안 읽은 죄를 회개했습니다. 이 죄를 다 회개하는데 굉장히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부르짖고 난 다음에 집에 내려와서는 그날부터는 성경 읽고 기도하고 새벽기도 꼭 나오고 주일날 예배 나오고 도적질한 십일조를 청산해서 하나님께 내고 난 다음에 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하니까 암이 온데 간데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잠언서 28장 13절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고 한 것 입니다.
죄를 숨기면 형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리를 두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를 자복하면 하나님이 꾸짖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서 씻어주시고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기 위하여 항상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는 길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누구든지 언제든지 나가서 죄를 회개하고 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특권이 주어져 있을 때 우리는 죄를 숨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3. 회개와 쓰레기 청소
셋째로, 회개는 쓰레기 청소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도 항상 쓰레기 청소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예수교인 들도 청소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 20절로 23절에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여러분 모든 사람은 이러한 더러운 죄가 다소간 다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온전히 깨끗하다. 나는 쓰레기 청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짓말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세상에 살면서 이와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 있습니다. 음란한 생각도 있고 도적질 생각도 있고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 나와서 우리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청소해야 되는 것입니다. 쓰레기가 있다고 탄식하지 말고 청소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한번 쓰레기 청소를 안 하려다가 아버지에게 혼이 난적이 있습니다. 피난 시절에 한방에서 아홉 형제가 사니까 방이 말이 아닌 것입니다. 아홉 형제가 한 방에서 바글바글 하니까 나이 많은 사람부터 어린 아이까지 있으니까 어지럽기가 짝이 없어요. 항상 소제를 날보고 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제일 장자니까 네가 소제를 해라." 아침에 일어나면 온데 쓰레기 더미고 온데 안갠 이불, 구겨진 옷, 소재하다가 하루는 제가 화가 나서 빗자루를 내던지면서 "밤낮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그대로 내버려 놓아야지!" 그러니까 아버님께서 "용기야, 이리 오너라." 그래서 가니까 "너 금시 뭐라고 말했노?" "밤낮 소제해 봤자 애들이 다 널어놓는데 그대로 두고 살지 뭐 하러 소제합니까?"
"야 이놈아, 인생이란 바로 밤낮 소제하고 끝나는 것이다. 인생이란 그저 소제해 놓으면 또 더러워지고 소제해 놓으면 또 더러워지고 그것이 인생이니까 불평하지 말고 한평생 너 그렇게 해라. 네가 나중에 자라서 너희 가족을 이루고 살 때라도 항상 청소는 해야 된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속으로 '우리 아버지 또 개똥철학 말하신다.' 어릴 때 아버님 철학이 개똥철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어른이 되고 보니 맞는 말이 많아요. 하루는 내가 "아이고 세상에 이렇게 고통스러워 사는 게 뭐냐. 출세도 못하고." 그러니까 아버님이 "이리 오너라. 인생이 뭔지 가르켜 줄까?" "가르켜 주십시오." "밥 먹고 사는 것이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세상에 밥 먹고 사는 것 누가 모르냐 말이야. 그런데 요사이 제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인생이 뭐냐. 예수 믿고 밥 먹고 사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죠. 점심도 또 먹죠. 저녁도 또 먹죠. 그 이튿날 또 먹죠. 그 이튿날 또 먹죠. 그 이튿날 또 먹죠. 밤낮 먹다. 살다. 자다. 죽다. 그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생활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항상 청소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제 회개했으면 오늘도 또 회개하고 내일도 또 회개하고 모레도 또 회개하고 한 달 회개하고 10년 회개하고 죽을 때까지 회개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샤워를 하듯이 항상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목욕했는데 귀찮스리 무슨 목욕을 하느냐.
한번 목욕했다고 몸에 때가 안 붙습니까? 세상에 나가 살 동안 먼지와 티끌이 묻어서 몸에 때가 오면 또 목욕 해야지요. 또 해야 되고 또 해야 돼죠. 그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 영혼을 항상 정결케 하면은 항상 주님 앞에 설 수 있지만 더러워지면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로 17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 하니라"
여러분이 성전인 이상 성전을 항상 청소해서 하나님이 와서 거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저분하고 더러워지면 하나님이 거할 수가 없고 정 더러워지면 하나님이 버리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한 여인은 가슴을 치고 울면서 "나는 큰 죄인입니다. 나는 큰 죄를 지었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다른 여인은 방실방실 웃으면서 "목사님, 나는 별로 죄 지은게 없어요. 자잘구레한 죄는 많이 지었지만 뭐 큰 죄는 기억날만한 것이 없습니다." 목사님이 가만히 보시다가 우는 여인을 중지시키고 "당신은 가서 큰 바위 하나를 가져 오세요." 그리고 다른 여인에게 "당신은 치마폭에 자잘한 돌을 많이 가져오세요." 얼마 있지 아니하여 울던 여인이 낑낑 거리면서 큰 바윗돌을 가지고 왔어요. 그리고 안 울던 여인은 치마폭에 자잘구레한 자갈을 잔뜩 가지고 왔어요. "이제 미안하지만 가지고 온 그 자리에 도로 갖다 놓으세요." 큰 죄를 지었던 큰 돌멩이를 가져온 부인은 쉽게 그 자리에 갖다 놓았는데 자잘구레한 돌을 잔뜩 치마폭에 가져온 여인은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난처하게 생각합니다. "왜 안 갖다 놓습니까?" "자잘구레한 것 하도 끌어 모아서 어디에 갖다 놓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보세요. 죄라는 것은 바로 지었을 때 그 자리에서 회개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 자매님이 큰 죄를 회개한 것같이 잔잔한 죄라고 회개 안하면 이 치마폭에 쌓아 놓은 잔잔한 돌멩이 같아서 나중에 회개하려고 해도 어디서 주워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또 몇 개인지 알지 못하므로 회개하기가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라는 것은 모아 놓지 말고 그때 그때 회개해서 청산해 버려야 됩니다." 그런 말을 했다는 소설책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여 마음의 쓰레기를 청소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죄를 변명하지 말고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지은 죄를 지적하면 타당화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아담아, 아담아!" 찾으신 것입니까? 아담이 나무 뒤에 숨은 것 몰라서 찾은 것 아닌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아담이 나무 뒤에 숨어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말씀하실 때는 아담이 나와서 죄를 자백하기를 원하신 것 입니다. 자백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고 구원해 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찾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죄를 자백하는 대신에 죄를 변명했습니다. 아담은 말하기를 "당신이 지어준 여인이 꼬이므로 내가 선악과를 먹었나이다." 자기 죄를 하나님과 여자에게 돌렸습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내가 죄를 지었지요. 그 여자가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지요. 여자보고 "하와야 네가 왜 그렇게 했느냐?"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죄를 내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남의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회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죄는 내 탓으로 겸손히 받아 들여서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여 내가 죄를 지은 것은 저 장로 때문에 지었습니다. 난 저 구역장 때문에 지었었습니다. 난 이웃 집사 때문에 지었습니다. 나는 내 스스로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죄가 아닙니다."여러분, 두 사람이 죄를 회개하러 왔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교인이요, 한 사람은 세리인데 세리는 저 뒤편에 앉아서 가슴을 치면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울고 기도하고 나갔습니다. 바리새교인은 "하나님 아버지여 나는 저 세리와 같이 죄를 짓지 아니하고 난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 다 내고 나는 깨끗하고 의로운 생활을 했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더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이냐?"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가슴을 치고 회개한 저 세리가 더 의롭다함을 얻고 나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자기 타당화가 아닌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적나라하게 드러 내놓고 고백하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괴롭지요. 자존심이 상하지요. 슬프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야 죄가 터뜨려지고 수술이 되고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2편 5절에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야훼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죄를 숨기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해도 죄를 고백하면 사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내가 회개하면 하나님이 멸시하고 나를 비웃을 것 갔지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고 소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기를 우리가 주저하지 말아야 됩니다.
회개하지 않고 위선자의 삶은 고달픈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안 지은 것처럼 뻔뻔하게 사는 것은 위선자의 삶이요 고달픈 삶입니다. 자기 양심과 끝없는 전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양심이 늘 고발하면 그를 늘 변명하고 덮어두고 감춰야 되는 고달픈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교인이나 사두개교인이나 교법사들이 바로 위선적인 삶을 살면서 거룩한 체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지적을 당하고 회칠한 무덤이라는 꾸중을 들은 것입니다.
디도서 1장 15절에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 사람은 그 마음에 양심에 끊임없는 고통을 당하고 위선자의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양심이 정결해 지고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양심의 고발이 그치고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죄가 있을 때 평안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수도사가 산길을 가다가 큰 개울가에 왔습니다. 물살이 센데 한 여자가 개울가에 들어왔다가 떠내려갈 위기에 처해서 벌벌 떨고 못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한 수도사는 눈도 거들떠보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같이 가던 수도사는 얼른 옷을 걷고 내려가서 "내가 업어서 건너 드리리다. 내 등에 업히십시오." 그래서 그 젊은 여인을 업고 물살을 그치고 건너편으로 건네주고 옷을 도로 입고서 걸어갔습니다. 한참 걸어가다가 앞에 간 수도사가 화를 냈습니다. "당신이 수도한다면서 젊은 여자를 업고서 개울을 건너다니 그게 무슨 수도사의 행위냐. 고약하다." 그러자 이 수도사가 한참 가만히 있다가 "나는 두 시간 전에 다 잊어 버렸는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냐? 나는 두 시간 전에 그 여인을 업고서 개울을 건너 주고 난 다음에 깨끗이 잊어 버렸어. 너는 마음에 지금 가지고 있느냐? 위선자 아니냐?" 위선자가 대게 위선자를 꾸짖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감추는 사람이 다른 사람 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종이 종을 다루면 촛대 뼈를 꺾어 놓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종이 종을 다루면 사정을 봐줄 것 같지만 더 무섭습니다. 시집살이 되게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 되게 시집살이 시킵니다. 안 그럴 것 같지만 그런 것 입니다. 자기 죄를 감추는 자가 남의 죄를 지적하고 남을 못살게 구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회개한 자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남이 죄를 짓는 것을 보면 불쌍히 여기고 어찌하든지 회개하도록 도와주지 비난하고 공격하고 옷을 벗기고 할퀴고 잿물을 뿌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위선자는 괴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고 의로운 척 하자니까 괴롭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는 수도자처럼 위선자가 되지 말고 솔직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자기가 아닌 연극을 하며 삽니다. 연극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고달픕니다. 여러분 연극해 보십시오. 배우들이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의 말을 하고 사는 것이 연기자의 삶인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살면 연극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 앞에서 연극을 해야 되고 아내 앞에서 연극을 해야 되고 사람들 앞에서 연극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면을 쓰고 산다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까?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낮에는 성자요 거룩한 의사이면서 밤에는 흉악한 하이드 라는 범죄인이 되는 것 이러한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괴로운 것입니다.
시편 101편 7절에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가면을 쓰고 살면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며 하나님 집안에 있지 못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떤 고등학교의 여교장인데 굉장히 선량하고 점잖고 근엄한 분입니다. 그런데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굉장히 고생을 하고 굉장히 율법적으로 무서운 여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예수를 잘 믿는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다가 의사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의사선생님 나는 왜 이렇게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고통을 당합니까? 너무나 괴로워서 이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의사선생님이 가만히 보니까 그 병의 근원이 몸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는 것을 보고 "혹시 마음에 누구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가만히 있더니만 "매일 아침마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지요." "누구를 미워합니까?" "10년 전에 이혼한 우리 남편을 미워합니다. 그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10년 전에 나를 버리고 재산을 다 가지고 밖을 나갔는데 나는 이혼을 했지만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매일 같이 그를 저주합니다." 의사선생님이 가만히 쳐다보고 "아직 이혼 안했군요?" "아니요. 10년 전에 했어요." "법적으로는 했지만 마음으로는 안했잖아요. 지금 남편이 아닌데 마음으로 자꾸 남편으로 생각하고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저주를 하니까 이혼 못했잖아요. 율법적으로 법적으로 이혼을 했으면 마음으로도 이혼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이 류마티스 관절염은 바로 이혼하지 않은 남편과 매일 밤낮으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미움으로 말미암아 생긴 류마티스 관절염입니다. 남편하고 마음으로 이혼하십시오." 가만히 있더니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맞았어요. 내 마음으로 이혼하지 못했어요. 매일같이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회개하고 떠나 보내세요. 마음에 평안을 가지면 나을 것입니다." 그 교장 선생님은 10년 동안 이혼을 하고 근엄하게 올바르게 산다고 했으면서 남의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가면을 쓰고 살았던 것입니다. 정말 회개하고 자복하고 용서하고 떠나보내자 그 관절염은 순식간에 나아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읽어본 것입니다. 법적이혼과 마음의 이혼이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연극을 하고 사는 사람은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죄가 우리를 위선자로 만들고 가면극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근본적인 죄는 회개하고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하나님 자녀가 된 다음에도 매일같이 발은 씻어야 되는 것입니다. 죄 없다 하면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다 죄가 있습니다. 크고 적은 죄를 매일 회개하고 매일 씻고 매일 정결함을 받아서 죄를 짓지 않도록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마태복음 7장 24절로 27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그대로 믿고 의지하고 매일 같이 매일 같이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보혈로 씻고 말씀으로 씻고 성령으로 변화 받아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더 아름답고 깨끗하고 거룩하고 정결한 사람이 되어서 주님 앞에 우뚝 서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은 받고 우리가 더 정결하면 더 정결해질수록 하늘에 가서 칭찬과 영광과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영원히 우리 죄를 씻는 샘물을 터뜨려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믿고 회개하고 돌아서면 구원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도 매일 발이 더러워지므로 매일같이 죄 없다고 자랑하지 말고 회개하고 정결하게 되어서 주님 앞에 빛난 옷을 입고 설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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