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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5:1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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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임영수 목사 |
참고 : | 주님의교회 주일 설교말씀 1998년12월 6일 |
본문은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 주인이 먼 타국에 출타한 기간 주인으로부터 어떤 삶의 과제를 위임받은 종들의 삶의 유형이 그려져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인이 돌아오는 그 시간 동안 종들에게 책임이 부여되고 주인이 돌아와서 그 책임을 묻는 비유입니다. 대강절의 주제는 `기다림'입니다. 단순한 기다림이 아닌 어떤 희망에서 어떤 삶의 모습으로 기다리는가 입니다.
이 비유에 기다림의 삶의 유형으로 두 가지 형태가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 그 다음은 두 달란트 받은 사람, 다른 하나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다섯 달라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신의 책임에 신실한 긍정적인 유형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신실하지 못한 부정적인 유형입니다. 비유에서 긍정적인 유형보다 부정적 유형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이 타국으로 떠날 때 종들에게 맡기고 떠난 달란트는 그 시대에 통용되고 있던 화폐 단위의 일종입니다. 본문의 비유에서 달란트는 화폐를 의미하기보다 종들에게 그들의 능력에 따라 맡긴 하나님의 선물을 뜻합니다. 그 선물이 재능일 수도 있고, 구원일 수도 있고, 복음 또는 재화일 수도 있습니다.
비유의 내용을 다시 검토해 보면 주인이 타국으로 떠날 때 세 종을 불러 각각 그들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그 다음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라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각각 배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서 그것을 숨겨 두었습니다. 때가 되어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습니다. 배를 남긴 두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칭찬과 상을 받았고, 한 달란트를 그대로 묻어 둔 사람은 엄한 벌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게 된 동기는 예수님 자신이 세상을 떠날 시간을 얼마 앞두고 제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사는 삶으로, 그들의 책임과 창조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서 이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종교 생활이 잘못하면 지나치게 자기 의와 자신의 안전에 만 몰두하는 소극적인 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그는 하나님 나라와는 멀리 있게 되고, 이미 받은 선물까지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위기는 소극성에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율법의 근본 정신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책임과 창조적인 삶을 가르치기보다 자기 자신의 의와 안전만을 추구해 가는 소극적인 삶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한 종교 생활에는 아무런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삶이 요청됩니다. 그러한 삶의 태도에서 받은 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고 더욱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비유에서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있는 자란 주인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배를 남긴 사람이며, 없는 자란 주인으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소극적인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이미 주어진 것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들은 바를 실천하고 사랑을 베풀며 살아갈 때,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더 생기고 믿음에 더 부요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들은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으로 끝내고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약화되고 신앙이 침체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의 창조적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서 그 분을 만나게 되고 이미 듣고 배운 바가 확실하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는 반드시 신앙 문제에서만이 아닌 한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발견되는 재능에서도 확인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예능의 소질이 탁월한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연마하지 않으면 무용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연마해서 다른 사람과 사회를 위해 사용하면 그 달란트는 더욱더 빛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는 묻어 두면 없어집니다. 그것을 빼앗긴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란트는 창조적 삶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창조적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통해 표현됩니다.
비유에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의 삶의 태도인 책임과 창조의 문제와 관련한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서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자기 것의 발견입니다. 비유에서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 달란트의 액수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나 그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이미 받은 바의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는가를 물으십니다.
최선은 자기 것에 대한 가치를 발견했을 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것을 묻어 두게 됩니다. 자기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될 때 다른 사람의 것을 넘나 보며 부러워하거나 비교하는 데서 해방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내적 문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오는 좌절·시기·질투입니다. 성서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데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것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기만의 고유한 자랑할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작은 것으로 행복하게 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창조적 삶은 모방이나 흉내가 아닙니다. 자기의 것을 발견해서 그것을 독창적으로 표현해 가는 것입니다.
한 젊은 화가가 자신의 그린 삽화들을 들고 신문사를 찾아다녔으나 매번 거절당했습니다. 어떤 신문사 편집장은 대놓고 그에게 아무 재능이 없어 보인다고 혹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화가는 자신의 재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더 많은 언론 매체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마침내 그는 어느 교회 출판물에 삽화 그리는 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싸구려 차고에 세를 든 그는 생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사 줄 것이라는 희망 속에 계속 작품을 그려 나갔습니다. 하루는 작업 도중에 그는 차고 안을 뛰어 다니는 생쥐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미키 마우스라는 이름의 동물 캐릭터를 창조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월트 디즈니는 전설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요구되는 것은 신실성입니다.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자들에 대한 보상은 주인이 그들에게 더 많은 일을 맡기겠다는 것과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은 종이 장사해서 남긴 달란트의 액수를 칭찬하지 않고 그의 신실성을 칭찬했습니다.
신실성은 정직성과 관련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직하면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되고 손해본다는 것이 삶의 좌우명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속이고 숨길려고 합니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의 관계는 언제나 파상적이고 모든 일의 거의 요식행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정직할 때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서적 의미에서 정직은 영적 성숙의 정도입니다. 영적 성숙 없이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에 참여해 가기 어렵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정직한 자의 것입니다. 핑계·책임 회피·원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와 선물을 놓치게 합니다.
저희 첫째 아이가 고등학교 삼 학년 때 너무 불평과 핑계가 많았습니다. 저는 아들의 그러한 부정적 모습이 학교 공부는 힘들고 생각대로 모든 것이 되어 가지 않는데서 오는 정신적 부담에서 나오는 행동임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보기에는 그 상태로 놔두면 아무 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아 불러서 매우 엄하게 꾸짖고 타일렀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보다는 그러한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습니다. 그후 그는 반성하고 그의 삶의 태도를 많이 바꾸었습니다. 물론 대학에도 입학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요구되는 것은 모험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가 주인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모험을 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물질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되는 투기가 아닙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향한 모험을 요구하십니다. 폴 투르니에 박사는 "인생은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모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모험을 거부하고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안일하게 보존해 갈려는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모험을 거부하는 이유는 모험에는 너무나 많은 두려움과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모험을 할 때 우리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모험을 좋아하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모험에 참여해서 그 분을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생의 모험을 요구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그것을 거부하였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복된 미래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모험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 길은 매우 어렵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많은 위험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모험의 길에서 인간의 나약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 안에서 모험을 떠났기 때문에 실수를 범했지만 하나님은 결국 이 사건에서 저 사건으로 그를 인도하셔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지까지 도달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 살아오면서 지금까지의 과정이 모험이었습니다. 목회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모험은 매우 다양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 새로운 신학 서적을 읽어가는 일, 기도, 묵상, 주일마다 새로운 내용의 설교 준비, 해외 연구 모두 모험입니다. 이 모험을 포기하고 신학교 입학할 때 가지고 있었던 확신과 지식에 안주했다면 저는 목회도 할 수 없었을 것이며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살아 계시는 인격적인 분으로 고백해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모험의 과정에서 많은 실수도 하였고, 고뇌와 불면의 밤도 있었고, 깊은 회의, 좌절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생은 모험입니다. 위험과 곤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모험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확실성과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우리의 실패와 실수를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서적 모험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 모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창조적 표현의 한 형태입니다.
* 모험은 모방이 아니고 독창적입니다.
* 모험은 하나의 최종 목표를 추구하는 가운데 통일성을 지닙니다.
* 모험의 목표는 사랑입니다. 목표를 제안하는 것도 사랑이며 그 모험의 과정을 유지시켜 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 모험은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의 우리의 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언제인가는 우리와 결산을 하실 것입니다. 그때가 없다면 우리의 생은 진정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 결산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달란트의 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의 가치를 찾아냈는가, 당신은 정직했는가, 당신은 모험을 했는가를 물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답변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끝으로 제목이 "어느 졸업생의 기도"라는 시를 소개해 드리면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주님, 내가 약간의 지식을 얻었사오니
슬기롭게 사용하여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
그런 길을 보여 주시옵소서
고뇌 많은 삶을
좀더 뜻있게 살고자 원하오니
믿음과 용기를 베푸시어
나의 나날에 목적을 심으소서
가장 큰 열매를 맺도록
당신 섬길 길 보이시고
나의 모든 배움과 지식과 기술이
당신 뜻 행함을 배워
참 열매 맺게 하소서
내 모든 일 행할 때
언제나 깨닫게 하소서
지식은 배움에서 비롯함이며
지혜는 당신께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H. S. 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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