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서론
1) 셋째 생물의 사회로 시작된다. 요한계시록 6장 5절에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라고 했다. ‘셋째’ 생물은 그 얼굴이 사람 같았다(계 4:7). 계시 사건의 진행은 언제나 하나님 자신의 주도적 사역에 의해서이다.
2) 전도자 요한에게 공개되었다. 요한계시록 6장 5절이 또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라고 했다. 역시 그는 검은 말 탄 자도 보았고, 생물의 호출 음성도 들었다. 그는 네 생물 사이에서 나는 듯한 음성도 들었다(계 6:6).
2. 검은 말 탄 자의 출현
요한계시록 6장 5절에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라고 했다. ‘검은’ 빛은 슬픔(비애)을 나타낸다. 예레미야애가 5장 10절에 「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라고 했다. 그 슬픔은 다음 구절의 내용을 보아 ‘흉년’ 때문인 것이다. 언제든지 전쟁 다음에는 흉년이 따라다닌다. 흉년은 배고픔을 가지고 온다. 그것은 슬프고 괴로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 계시는 하늘과 땅이 저주를 받아 전답이 자기 구실을 다 못하고, 그 결과 사람들이 영양실조가 되어버린 가난한 인간의 상태를 의미함이다.
3. 검은 말 탄 자의 사역
손에 저울을 갖고 있다. 요한계시록 6장 5절에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고 했다. 병사의 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흑마를 탄 병사의 손에 저울이 잡혀 있다. 레위기 26장 26절에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식량을 저울에 다는 것은 극한 흉년을 가리킨다. 에스겔 4장 16~17절에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경겁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민답 중에 물을 되어 마시다가 떡과 물이 결핍하여 피차에 민답하여 하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6장 6절에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 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라고 했다. 이러한 말은 임금(삯)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싼 값이다. 그렇다면 이 흑마 탄 자는 기근과 주림의 표상이다. 왜 흉년이 들까? 전쟁의 결과일 때도 있다. 전쟁의 결과 사람과 땅이 생산력을 놓쳐버린 일로 흉년에 든다. 비 오지 않은 결과일 때도 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로 하늘이 놋이 되어 버린 경우이다. 아합 왕 때 이런 재앙이 있었다. 이런 경우 진리의 종들이 고난 속에서 기적을 맛보게 된다. 엘리야나 남은 7,000명의 선지자, 사르밧의 여성도 등의 경우이다. 결실이 좋지 못한 경우일 때도 있다. 그것은 여리고 평지의 경우 수원의 수질이 좋지 못한 때문이었다. 또 백성들이 게을러서 소출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허랑하고 방탕하는 소비적인 낭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예수 재림 징조 중의 하나였다. 마태복음 24장 7절에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라고 했다. 왜 하나님이 이것을 사용하실까?
① 사람들의 배신과 교만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에겐 배불리 많이 먹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악한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잠언 30장 9절에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라고 했다. 실제로 밭에 소출이 풍성한 부자나 양털 깎던 부요한 나발이 바로 그런 자였다. ② 자살 행위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다. ③ 확실한 소망의 근거를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인생은 정함이 없고, 재물에 전 소망을 거는 연약함이 있다. 디모데전서 5장 6절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에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라고 했다. ④ 참된 미래를 가르쳐주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부를 믿고 내세의 실존을 부인하거나 무시해버린다. 그래서 저들은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사 22:13)라고 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고 마는 세상의 것인 줄을 모른다(약 4:14). 저들은 배를 신으로(빌 3:19) 믿고, 오직 땅의 일만 생각한다. 그래서 기근으로 인생을 교육하시며 섭리하신다. ⑤ 악인을 징치하는 도구이다. 엘리야 시대의 기근은 악독한 아합과 이세벨을 징치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4. 그러나 성도에게는 흉년(기근) 중에도 풍요한 은혜가 있다.
요한계시록 6장 6절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풍성한 생명의 종교의 상징이다. 야고보서 5장 14절에 보면 이것은 병자에게 바르는 약용으로 사용된다. 누가복음 10장 34절에는 강도 만난 자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는 데 사용했다. 이사야 55장 1절에는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했다. 이것은 극한 기근의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흉년을 이겨내는 생명의 만족이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오바댜는 극한 환난 중에서도 100명의 선지자들을 굴에 숨겨두고 떡과 물을 제공할 수 있었다. 사르밧 땅의 과부와 그 아들에게는 진리의 종 엘리야와 더불어 먹고 살 수 있었던 기적의 떡과 기름이 있었다. 감람유는 성전의 기름으로 불을 밝히는 데 사용했다. 포도주는 식료요, 또한 생명의 피에 대한 상징이다. 그렇다면 성령과 십자가의 진리가 흉년 속에서 상존한다는 뜻도 되겠다. 온 천하가 기근 속에 허덕여도 성령의 빛 속에서 십자가의 구원의 은총을 즐기는 자는 죽지 아니하는 것이다.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체험함이 성도가 받는 축복이 아닌가? 그렇다면 교회는 진노의 재앙 중에도 오히려 상처받은 자를 싸매주고, 기름을 발라주는 감람유와 포도주를 가질 수 있다는 소망이다. 시편 33편 18~19절에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라고 했다. 시편 37편 19절에 「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라고 했다. 기근의 흑마 중에도 성도는 감람유와 포도주를 가지고 있다! 할렐루야!
UN의 통계에 따르면 2006년 현재 60억 인구 중에서 사분의 일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약 16억 명이 먹을 것이 없어서 매일 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매일 4만 여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 끝에 죽어가고 있어서 한 해 동안 굶어죽는 자만해도 1,500만 명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이러한 기근 현상은 문명과 문화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증가 추세에 있다. 2015년이 되면 세계 인구는 70억 명이 넘을 전망이다. UN에서는 전 세계 빈곤인구의 수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감소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실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참된 교회(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은밀히 쌓아두신 은혜가 있다. 그것은 감람유와 포도주이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는 생활권을 박탈당하고 저들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그 결과 하나님의 자녀들에겐 위험이 예상된다. 그러나 분명히 확신해야 되는 것은 그 이마에 인 맞은 자들에게는 모든 안전 보장이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감람유와 포도주의 힘이 어느 정도일까? 어떻게 사용된 것인가? 하나님이 그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비밀스러운 장막에 쌓아두신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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