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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계6: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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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석원태 목사 |
| 참고 : | 경향교회 http://www.ghpc.or.kr/ |
| 2006' 경향의 강단 요한계시록강해(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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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인 : 제단 아래 순교자" 요한계시록 6:9~11절 석원태 목사 |
| 1. 전도자 사도 요한에게 공개된 계시이다.
요한계시록 6장 9절에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라고 했다. 2. 다섯째 인의 장면은 하늘(천국)이다. 요한계시록 6장 9절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라고 했다. 여기 제단은 구약에 짐승들이 도살을 당하여 흘린 피를 뿌리고, 제물이 불태워지는 번제단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단 아래에는 양이 아닌 죽임을 당한 사람의 영혼들이 있다고 했다. 여기 ‘죽임을 당한 영혼들’도 순교자들을 의미한다. 여기 ‘영혼’은 생명이라고 번역해도 좋다. 피는 생명이다(레 17:11). 죽임을 당한 생명(영혼)이란 순교자들이 흘린 피를 의미한다. ‘제단 아래’ 있다 함은 천국(천당)의 지성소를 말함이다. 3. 순교당한 이유 요한계시록 6장 9절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라고 하였다. 1) 하나님의 말씀 신앙 때문에 순교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계 6:9)라고 해야 옳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순교의 원인이다. (1) 참된 말씀이다. (2) 주님의 참제자가 되게 하는 말씀이다. (3) 깨끗하게 하여 주는 말씀이다. (4) 자유케 해 주는 말씀이다. (5) 그 말씀은 세상에서는 미움을 당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6) 그 말씀의 약속은 너무 영화롭다. (7)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의 명령이다. |
1) 하나님의 말씀 신앙 때문에 순교했다.
2) 저희의 가진 증거 때문에 순교했다.
요한계시록 6장 9절은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라고 했다. 여기도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고 해야 좋다. ‘증거’란 말은 법적 용어이다. 이는 법정에 출두하여 어떤 사건을 책임을 지고 증언하여, 그 사건을 확증하는 데 쓰이는 말이다.
그렇다면 ‘증거’는 곧 증인과 관계되는 말이다. 증인은 어떤 사건에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고, 그 제시하는 바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자기가 제시하는 증거 때문에 죽음까지도 불사한다는 말이다. 목숨과 바꾸는 정도로 그 사실 증거는 중대하다.
그렇다면 참된 증거를 하는 증인에게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① 어떤 사건이든지 확실히 보아야 한다. ② 또 들어야 한다. ③ 그 보고 들은 것만을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한다. ④ 그 말을 하기 위하여 법정(증거무대)에까지 나타나야 한다. ⑤ 자기의 증거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순교자들의 증거자로서의 생명이 있는 것이다. 증인으로서의 지상교회의 생명이 있는 것이다.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들이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역사의 증인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라고 하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 증거 정도는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1장 1~2절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라고 했다.
요한일서 1장 3절 중에는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이라고 했다.
사도행전 4장 20절에는「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했다. 순교자들은 확실한 사실(증거)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 사심, 죽으심, 부활, 승천하심, 성령이 강림하심, 교회를 세우심(증인), 그리고 다시 오실 것과 영생과 영벌의 실존의 세계인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예수의 진리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저들에게 살아 있는 체험적 진리였다. 예수의 진리가 바로 자기의 것이 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귀한 예수의 생명을 전할 사명까지 띠고 있었다. 그래서 저들은 무수한 역사의 광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라고 증거했다. 그 결과 죽임까지 당하는 뼈아픈 생명의 희생을 지불했다.
사도행전 26장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증거하다가 미친놈이라는 역사의 오인을 받았다(행 26:24~26). 스데반은 이 일 때문에 돌에 맞아 죽었다(행 6:54~60). 사도 요한은 이 일 때문에 밧모섬에 정배를 당했다.
보헤미아의 순교자 제롬(Jerome)은 바른 신앙(말씀)과 증거 때문에 붙잡혀 화형을 받게 되었다. 그는 화형장에서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가시 면류관을 쓰셨던 것처럼 나는 그를 위하여 기쁨으로 능욕의 면류관을 쓰노라.”고 했다. 그는 불꽃 중에서 15분 동안이나 찬송하면서 숨져 갔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 시 베렙사댁이라는 여신도는 자기의 다섯 아들과 함께 순교했다. 로마의 관헌은 먼저 그에게 배교하여 생명을 구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 뿐 아니라 너의 다섯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 소리를 듣자 그 여신도의 다섯 아들은 일제히 큰 소리로 “마음을 담대히 하여 주님을 위해 기쁨으로 순교하자.”고 했다. 그 결과 그녀의 다섯 아들은 영광스럽게 순교했다. 이때 그 여성도는 기도하기를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여종에게 다섯 아들은 주시고, 여종이 그 중 하나도 잃지 않게 하시고, 다 주의 나라로 가게 하였으니 감사합니다. 이제 계집종의 영혼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하고 순교했다. 실로 영광스러운 증거자의 최후였다. 늠름한 승리의 모습이었다.
무디(D. L. Moody)는 말하기를 “밤이 어두울수록 별빛이 더욱 밝고, 용광로의 열도가 높을수록 금은 더욱 순결해진다.”라고 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교회의 생명 중의 하나가 지상의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계명(말씀)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계 12:17, 14:12). 이것은 교회가 받은 전 소유이다.
하나님의 계명(말씀)은 우리가 신앙하는 것이며, 증거는 그 말씀(계명) 신앙을 입증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말씀에 대한 신앙은 구원이다. 말씀 증거에 의한 행위는 상급이다. 이렇게 신앙은 구원이고, 증거(행위)는 행함에서 오는 상급이다.
그 행함은 생명을 바치는 순교에 이른다. 여기에 신앙과 행위의 일치가 나오는 것이다. 신학의 정통(말씀 신앙)과 생활의 순결(증거)이 있다. 신학은 정통인데 행위(증거)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죽은 정통이다. 행위를 강조하면서 정통신앙(말씀신앙)을 멀리함은 인본주의 윤리이다. 구원 생명이 없는 윤리는 주 앞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과 증거’는 신앙과 행위이다. 그것은 바로 구원과 상급(축복)의 정비례이다. 구원 생명(말씀)이 증거하는 근원이 된다. 진정 생명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또한 생명에 이르는 증거가 있다.
좋은 나무는 구원의 말씀 곧 신앙, 좋은 열매는 증거의 열매(행위)이다. 이것은 순교자들의 영광이었다. 말씀과 증거, 신앙과 행위는 구원과 축복이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순교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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