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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계7:3~9 |
|---|---|
| 설교자 : | 석원태 목사 |
| 참고 : | 경향교회 http://www.ghpc.or.kr/ |
1. 누구의 인인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다. 요한계시록 7장 2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라고 했다. ① 하나님의 절대하신 주권성을 의미했다. ② 하나님의 불변하신 영원성을 의미했다. ③ 하나님의 절대하신 능력에서 오는 안전성, 소유권을 의미했다. 그 누구도 빼앗거나 무효화시키거나 그 효력을 정지할 수 없는 영원한 효력을 갖고 있는 인을 뜻함이다.
2. 인친다 함은 무슨 뜻인가?
요한계시록 7장 3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라고 했다.
1) 자기 소유권의 표식이다.
아가서 8장 6절에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고 했다. 이것은 소유의 표시이다. 이사야 43장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다. 노예는 그 손이나 이마나 몸에 그가 소속하고 있는 주인의 이름인 인이 찍혀 있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주인의 소유된 표식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는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소유이다.
2) 절대 안전의 표식이다.
주권자의 인을 쳐 놓으면 아무도 그것을 손 못 댄다.
예컨대 빌라도가 예수의 무덤에 인봉을 했다(마 27:66). 그것은 빌라도 외에 그 누구도 개봉할 수 없는 권위를 갖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 빌라도의 권위를 무색케 해버렸다. 일곱 인으로 봉한 책(계 5:1)은 하늘 위, 땅, 땅 아래 그 어느 곳에도 개봉할 자가 없었다. 오직 주님 자신만이 개봉할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 7장 3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고 했다. 인침 받은 사람은 절대 안전과 보호를 받게 된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기록의 목적 중에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최후 승리, 궁극적 승리이다.
3)성별의 표식이다.
요한계시록 7장 3절에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닌 자들과 구별시키는 표식이다. 그것은 사단의 인(표), 666을 받은 자와 구별시키는 표식이다.
소유물에 소유주를 날인함은 그것을 새 주인에게로 옮겨오는 표식이다. 갈라 세우는 표식이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소유권을 구분시키는 표식이다.
4) 진짜임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계 7:2)이다. 다리오 왕의 어인(단 6장), 아하수에로 왕의 어인(에 3:2)은 모두 왕 자신의 인격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 법령이 진짜임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침은 하나님 자신의 참된 실존을, 구원 성도가 받은 구원의 참됨을 자증하는 표식이다. 인감이나 인감증명서는 사실 확인을 위함이다.
5) 성도의 궁극적 구원의 표식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는 망하지 아니한다. 온갖 죽음의 박해 곧 붉은 용, 땅에서 올라온 짐승,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짐승의 표 666, 바벨론 음녀들의 무서움 속에도 그 신앙이 변절되거나 그 영이 망하지 아니한다. 하나님의 인장 권세는 세상 끝 날까지 성도를 지키고 보호하는 불기둥이요, 구름기둥이다. 그는 하나도 잃어버릴 수 없고(눅 15:3~4),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요일 5:18). 인장 효력은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장이다. 그렇다면 그 인장의 효력은 영원하다. 그 인장의 효력이 영원하다 함은 성도들의 궁극적 구원 보장을 확실케 함이다.
3. 누구에게 인을 쳤나?
요한계시록 7장 3절은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라고 하였다.
이는 어떤 특정인을 지적함이 아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기로 작정된 거룩한 무리, 곧 하나님의 자녀들을 총칭한 것이다. 신령한 이스라엘이다. 성경에서 이들은 빛의 자녀, 의인, 성도, 신자, 그리스도인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본문에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라고 함으로 그 깊은 뜻을 암시하고 있다.
1) 저들은 사 낸 사람들이란 말이다.
값을 주고 속량해 온 자들이다. 요한계시록 5장 9절에 밝힌 대로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린」바 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소속을 바꾼 자들이다. 사단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옮긴 자들을 뜻함이다.
2) 저들의 충성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함으로 저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임을 암시하고 있다. 평생에, 아니 영원토록 저들은 하나님 섬기는 축복과 영예를 누리는 자들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간증했다(갈 6:17).
3) 구원받은 택자들임을 나타낸다.
저들은 십사만 사천 인이요(계 14:1), 각 나라와 방언과 족속들로부터 모인 이루 셀 수 없는 무리들이요, 흰 옷을 입은 자들이요,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있는 자들이다(계 7:9).
4. 어디에 인을 쳤나?
요한계시록 7장 3절은 또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는 십사만 사천 인들이 시온산에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22장 4절에는 ‘이마’에 인을 받은 자만이 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간다고 했다.
여기 이마에 인을 쳤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그것은 그의 인격의 지성소에 구원의 복음을 심었다는 의미이다. 이유는 이마는 인격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
그것의 본질적 표현은 십자가 구원의 사랑이다. 그것을 이마에 찍었다 함은 범죄 타락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하였다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원의 사랑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새롭게 창조하신 사실을 가리켜 이마에 인을 쳤다고 한 것이다. 의와 진리의 거룩으로 새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의 은총(엡 4:23~24, 고후 5:17)을 입는 것을 말한다. 심령 비에 새로 새긴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한다(고후 2:3).
5. 어떻게 인을 쳤나?
1)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인을 쳤다(창조의 인).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그 이마에 새겨져 있다고 했다. 이는 성부 하나님의 창조의 인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의 절정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사람 창조를 통하여 나타났다. 결코 사람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인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2) 어린양 예수의 이름으로 인을 쳤다(구속의 인).
요한계시록 14장 1절은 다시 말하기를 어린양의 이름이 그 이마에 있다고 했다. 이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인이다. 성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가 죄로 인하여 타락하여 잃어버려졌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그를 사서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확인시킨 것이다.
3) 성령의 인을 쳤다(성화와 영화의 인).
에베소서 1장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다.
성령께서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믿음과 회개를 일으키셔서 의롭다 함을 받도록 유도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고, 우리를 자라게 하시고, 마침내 영화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신다.
성령으로 인을 쳤다는 말은 성령께서 감동하사 신앙 고백을 하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고전 12:3), 그를 증거케 하심을 의미한다(고전 9:2, 딤후 2:19). 그래서 이사야에는 성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성자 예수께서 구속하셨고, 성령께서 지명하여 불렀기 때문에 이스라엘(하나님의 자녀)은 나의 것, 곧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언했다(사 43:1).
6. 인 맞은 자의 총수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라고 했다.
누구의 인인가?
1) 잘못된 해석
(1) 여자적(如字的) 해석이다.
구원 얻을 자들의 수가 실제로 14만 4천 밖에 안 된다고 하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많이 나타나는 다른 모든 표현들도 여자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2) 유대인들의 구원 수효라는 해석이다.
요한계시록 7장 4절의 14만 4천 인은 본방 유대인들의 구원 수이고(계 7:5~6), 요한계시록 7장 9절의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이방인의 구원 수라고 생각하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시온산에 서 있는 구원의 수가 14만 4천만 나오는데 이방인들은 어디에 갔는가?
요한계시록 7장 4절의 14만 4천 인은 요한계시록 9장 10절의 이루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같은 것이다. 14만 4천이라고 하는 상징적 숫자를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로 반복해서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3) 기독교인 중의 특수한 계급, 즉 순교자나 다른 특정 무리들로 보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도 불가능함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꼭 같이 일만 이천 명씩 순교자가 나올 수 있겠는가?
(4) 혹 사이비 기독교 단체들의 아전인수 격인 해석이 있다.
2) 참된 해석
이것은 영적인 이스라엘의 총수를 의미한다. 자금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기로 작정된 예정의 총수인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수(삼위일체)와 신실한 구약 교회 이스라엘의 수효(12지파), 신약교회의 수(12사도)와 관계되는 수이다. 그렇다면 십사만 사천 인은 구약과 신약(전 역사 세기)시대에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이상적인 구원의 총수를 의미한다.
이유는,
(1) 교회는 참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나 유대인 상관없이 교회는 참 이스라엘이다(롬 2:9, 29, 갈 6:16, 약 1:1).
(2) 하늘나라 열두 진주 문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교회와 동일한 것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계 21:12).
(3)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서 분명히 십사만 사천 인을 구원받은 백성으로 총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7장 4절 + 요한계시록 7장 9절 + 요한계시록 14장 1절’이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에는 7장 4절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 인이 우주적 교인임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이고 그것을 여자적인 수로 표시하려고 하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라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 ‘각 나라’는 이 세상 집단들이다. ‘족속’은 혈통 관계이다. ‘방언’은 언어들을 따라 이합 집산하는 종족과 종족 간의 원근을 의미한다. ‘백성’은 정치적 공동체의 집단들이다.
그렇다면 십사만 사천 인은 그 지역에 있어서 우주적이요, 종족에 있어서 우주적이요, 혈통 관계에 있어서 우주적(초혈통적)이요, 정치 집단에 있어서 초정치적이라는 말이다. 수에 있어서 수학적 표현이 불가능한 초숫자적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구원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은 ① 절대하신 주권적 계획이요, ② 공평한 사랑이요, ③ 최다수의 구원을 목표한 것을 보여주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다. 요한계시록 7장 2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라고 했다. ① 하나님의 절대하신 주권성을 의미했다. ② 하나님의 불변하신 영원성을 의미했다. ③ 하나님의 절대하신 능력에서 오는 안전성, 소유권을 의미했다. 그 누구도 빼앗거나 무효화시키거나 그 효력을 정지할 수 없는 영원한 효력을 갖고 있는 인을 뜻함이다.
2. 인친다 함은 무슨 뜻인가?
요한계시록 7장 3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라고 했다.
1) 자기 소유권의 표식이다.
아가서 8장 6절에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고 했다. 이것은 소유의 표시이다. 이사야 43장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다. 노예는 그 손이나 이마나 몸에 그가 소속하고 있는 주인의 이름인 인이 찍혀 있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주인의 소유된 표식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는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소유이다.
2) 절대 안전의 표식이다.
주권자의 인을 쳐 놓으면 아무도 그것을 손 못 댄다.
예컨대 빌라도가 예수의 무덤에 인봉을 했다(마 27:66). 그것은 빌라도 외에 그 누구도 개봉할 수 없는 권위를 갖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 빌라도의 권위를 무색케 해버렸다. 일곱 인으로 봉한 책(계 5:1)은 하늘 위, 땅, 땅 아래 그 어느 곳에도 개봉할 자가 없었다. 오직 주님 자신만이 개봉할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 7장 3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고 했다. 인침 받은 사람은 절대 안전과 보호를 받게 된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기록의 목적 중에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최후 승리, 궁극적 승리이다.
3)성별의 표식이다.
요한계시록 7장 3절에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닌 자들과 구별시키는 표식이다. 그것은 사단의 인(표), 666을 받은 자와 구별시키는 표식이다.
소유물에 소유주를 날인함은 그것을 새 주인에게로 옮겨오는 표식이다. 갈라 세우는 표식이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소유권을 구분시키는 표식이다.
4) 진짜임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계 7:2)이다. 다리오 왕의 어인(단 6장), 아하수에로 왕의 어인(에 3:2)은 모두 왕 자신의 인격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 법령이 진짜임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침은 하나님 자신의 참된 실존을, 구원 성도가 받은 구원의 참됨을 자증하는 표식이다. 인감이나 인감증명서는 사실 확인을 위함이다.
5) 성도의 궁극적 구원의 표식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는 망하지 아니한다. 온갖 죽음의 박해 곧 붉은 용, 땅에서 올라온 짐승,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짐승의 표 666, 바벨론 음녀들의 무서움 속에도 그 신앙이 변절되거나 그 영이 망하지 아니한다. 하나님의 인장 권세는 세상 끝 날까지 성도를 지키고 보호하는 불기둥이요, 구름기둥이다. 그는 하나도 잃어버릴 수 없고(눅 15:3~4),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요일 5:18). 인장 효력은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장이다. 그렇다면 그 인장의 효력은 영원하다. 그 인장의 효력이 영원하다 함은 성도들의 궁극적 구원 보장을 확실케 함이다.
3. 누구에게 인을 쳤나?
요한계시록 7장 3절은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라고 하였다.
이는 어떤 특정인을 지적함이 아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기로 작정된 거룩한 무리, 곧 하나님의 자녀들을 총칭한 것이다. 신령한 이스라엘이다. 성경에서 이들은 빛의 자녀, 의인, 성도, 신자, 그리스도인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본문에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라고 함으로 그 깊은 뜻을 암시하고 있다.
1) 저들은 사 낸 사람들이란 말이다.
값을 주고 속량해 온 자들이다. 요한계시록 5장 9절에 밝힌 대로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린」바 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소속을 바꾼 자들이다. 사단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옮긴 자들을 뜻함이다.
2) 저들의 충성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함으로 저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임을 암시하고 있다. 평생에, 아니 영원토록 저들은 하나님 섬기는 축복과 영예를 누리는 자들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간증했다(갈 6:17).
3) 구원받은 택자들임을 나타낸다.
저들은 십사만 사천 인이요(계 14:1), 각 나라와 방언과 족속들로부터 모인 이루 셀 수 없는 무리들이요, 흰 옷을 입은 자들이요,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있는 자들이다(계 7:9).
4. 어디에 인을 쳤나?
요한계시록 7장 3절은 또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는 십사만 사천 인들이 시온산에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22장 4절에는 ‘이마’에 인을 받은 자만이 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간다고 했다.
여기 이마에 인을 쳤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그것은 그의 인격의 지성소에 구원의 복음을 심었다는 의미이다. 이유는 이마는 인격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
그것의 본질적 표현은 십자가 구원의 사랑이다. 그것을 이마에 찍었다 함은 범죄 타락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하였다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원의 사랑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새롭게 창조하신 사실을 가리켜 이마에 인을 쳤다고 한 것이다. 의와 진리의 거룩으로 새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의 은총(엡 4:23~24, 고후 5:17)을 입는 것을 말한다. 심령 비에 새로 새긴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한다(고후 2:3).
5. 어떻게 인을 쳤나?
1)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인을 쳤다(창조의 인).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그 이마에 새겨져 있다고 했다. 이는 성부 하나님의 창조의 인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의 절정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사람 창조를 통하여 나타났다. 결코 사람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인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2) 어린양 예수의 이름으로 인을 쳤다(구속의 인).
요한계시록 14장 1절은 다시 말하기를 어린양의 이름이 그 이마에 있다고 했다. 이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인이다. 성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가 죄로 인하여 타락하여 잃어버려졌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그를 사서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확인시킨 것이다.
3) 성령의 인을 쳤다(성화와 영화의 인).
에베소서 1장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다.
성령께서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믿음과 회개를 일으키셔서 의롭다 함을 받도록 유도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고, 우리를 자라게 하시고, 마침내 영화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신다.
성령으로 인을 쳤다는 말은 성령께서 감동하사 신앙 고백을 하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고전 12:3), 그를 증거케 하심을 의미한다(고전 9:2, 딤후 2:19). 그래서 이사야에는 성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성자 예수께서 구속하셨고, 성령께서 지명하여 불렀기 때문에 이스라엘(하나님의 자녀)은 나의 것, 곧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언했다(사 43:1).
6. 인 맞은 자의 총수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라고 했다.
누구의 인인가?
1) 잘못된 해석
(1) 여자적(如字的) 해석이다.
구원 얻을 자들의 수가 실제로 14만 4천 밖에 안 된다고 하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많이 나타나는 다른 모든 표현들도 여자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2) 유대인들의 구원 수효라는 해석이다.
요한계시록 7장 4절의 14만 4천 인은 본방 유대인들의 구원 수이고(계 7:5~6), 요한계시록 7장 9절의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이방인의 구원 수라고 생각하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시온산에 서 있는 구원의 수가 14만 4천만 나오는데 이방인들은 어디에 갔는가?
요한계시록 7장 4절의 14만 4천 인은 요한계시록 9장 10절의 이루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같은 것이다. 14만 4천이라고 하는 상징적 숫자를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로 반복해서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3) 기독교인 중의 특수한 계급, 즉 순교자나 다른 특정 무리들로 보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도 불가능함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꼭 같이 일만 이천 명씩 순교자가 나올 수 있겠는가?
(4) 혹 사이비 기독교 단체들의 아전인수 격인 해석이 있다.
2) 참된 해석
이것은 영적인 이스라엘의 총수를 의미한다. 자금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기로 작정된 예정의 총수인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수(삼위일체)와 신실한 구약 교회 이스라엘의 수효(12지파), 신약교회의 수(12사도)와 관계되는 수이다. 그렇다면 십사만 사천 인은 구약과 신약(전 역사 세기)시대에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이상적인 구원의 총수를 의미한다.
이유는,
(1) 교회는 참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나 유대인 상관없이 교회는 참 이스라엘이다(롬 2:9, 29, 갈 6:16, 약 1:1).
(2) 하늘나라 열두 진주 문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교회와 동일한 것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계 21:12).
(3)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서 분명히 십사만 사천 인을 구원받은 백성으로 총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7장 4절 + 요한계시록 7장 9절 + 요한계시록 14장 1절’이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에는 7장 4절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 인이 우주적 교인임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이고 그것을 여자적인 수로 표시하려고 하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라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 ‘각 나라’는 이 세상 집단들이다. ‘족속’은 혈통 관계이다. ‘방언’은 언어들을 따라 이합 집산하는 종족과 종족 간의 원근을 의미한다. ‘백성’은 정치적 공동체의 집단들이다.
그렇다면 십사만 사천 인은 그 지역에 있어서 우주적이요, 종족에 있어서 우주적이요, 혈통 관계에 있어서 우주적(초혈통적)이요, 정치 집단에 있어서 초정치적이라는 말이다. 수에 있어서 수학적 표현이 불가능한 초숫자적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구원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은 ① 절대하신 주권적 계획이요, ② 공평한 사랑이요, ③ 최다수의 구원을 목표한 것을 보여주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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