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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맞은 자들의 최후의 축복

요한계시 석원태 목사............... 조회 수 1737 추천 수 0 2009.12.19 21:19:09
.........
성경본문 : 계7:15~17 
설교자 : 석원태 목사 
참고 : 경향교회 http://www.ghpc.or.kr/ 
2007' 경향의 강단 요한계시록강해(43.44)

"인 맞은 자들의 최후의 축복"
요한계시록 7장 15~17절
석원태 목사

1.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게 되는 축복이다.

  요한계시록 7장 15절에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라고 했다.
  여기 ‘하나님의 보좌’란 천국의 보좌 곧 주의 발등상을 이름이다. 이 보좌를 가리켜 은혜의 보좌, 영광의 보좌, 성결과 위엄과 공의와 자비의 보좌라고 했다(계 4장).
  저 구약의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왕궁과 보좌를 구경하고 솔로몬의 신하들이 왕 앞에서 항상 그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는 것을 보고 복되다고 경탄한 일이 있다.
  그렇지만 죄인들이 값없이 은혜로 얻어진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거룩의 보좌 앞에 설 때의 그 영광이 어떠하겠는가?
  시편 17편 15절에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22장 4절에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고 했다. 저들은 마태복음 5장 8절대로 하나님을 친히 보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보좌는 저들의 평생소원이었다. 이제 저들은 암혈과 토굴로 유리하는 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영원한 영접이다. 영광의 영접이다. 안연한 정착이다.

  2. 쉬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축복이다.

  요한계시록 7장 15절에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라고 했다.
  여기 ‘섬기다’(latreu,w)라는 말은 ‘예배드리다’, ‘제물을 드리다’, ‘종이 되다’하는 말인데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성전’은 영광의 왕도, 곧 천국이다. 천국 자체가 성전이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김은 제사장들의 특색이다. 이제 특수한 제사장은 전연 없게 된다. 만인이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된다. 그러나 이 제사는 죄를 위한 제사가 아니라 감사와 영광의 헌제이다. 이것은 구원받은 자의 특권이요, 영예며, 영원히 누릴 축복이다.
  ‘밤낮’으로 섬긴다 함은 쉬지 않는 경배를 의미한다. 이제 저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세세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을 전부로 여긴다. 정말 시편 84편 10절대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하는 예배에의 그리움이 꽃을 피우는 말이다.
  완전한 예배의 자유, 영원한 예배의 신성, 충만한 예배의 기쁨이 실현된다. 이제 다시는 예배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내어 쫓기고, 죽임을 당하는 뼈아픈 고통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지상의 예루살렘 성전은 이방 사람들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인이라도 20세 이상 되는 무흠한 남자만이 가능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간다 할지라도 제사장의 뜰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 전개되는 천상의 성전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없다. 남녀의 구별, 종들과 상전들, 빈부, 유무식의 차별이 없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들로부터 이루 셀 수 없는 큰 무리! 흰 옷을 입은 무리! 종려나무를 손에 잡은 무리들은 모두가 이 영광의 회중에 들게 된다. 저들은 거기에서 영광의 왕, 의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섬기며 즐거워한다.
  남편인 지아비를 섬기는 일은 아내의 특권이요 자랑이다. 임금을 섬기는 일은 신하된 자의 특권이다. 스승을 섬기는 일은 제자됨의 명예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흰 옷을 입은 큰 무리들만이 받은 영예요 축복이다.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 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부풀게 하는 말인가? 저들은 이 땅에서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신이나 피조물이나 사람을 섬기지 않으려다가 뼈아픈 수욕을 치른 자들이 아닌가? 이젠 저들의 예배에 완전 자유가 온 것이다.

  3. 영광의 보호를 받은 축복이다.

  요한계시록 7장 15절에 또 말하기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라고 했다.
  ‘장막을 친다’는 말인 스케노오(skhno,w)는 ‘천막을 치다’, ‘진을 치다’, ‘거처하다’, ‘살다’, ‘함께 거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Shechinah)이 저들을 안전 보장하고 있음을 뜻함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영광의 임재는 구약이나 신약의 경우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 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출 24:16)라고 했다.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출 24:17)라고 했다. 성막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구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었다.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 때문에 성막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의 낮을 인도한 하나님의 영광의 정체는 구름기둥이었고, 이스라엘의 밤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정체는 불기둥이었다(출 40:34~38). 솔로몬의 신전 봉헌식 때도 그러했다.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 차 있어서 제사장들이 그리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대하 7:1~3). 야곱은 이 영광을 벧엘에서 체험했다(창 28:16). 하박국은 이 영광을 그의 성전에서 체험했다(합 2:20). 이사야 선지자는 이 영광을 성전에서 체험했다(사 6:5). 먼 소라 땅에 살던 마노아 부부는 이 영광을 집에서 밭가에 있는 바위에서 체험하고 엎드려 버렸다(삿 13:20~23). 사가랴는 이 영광을 성전에서 체험하였다. 그가 불신할 때 벙어리가 된 일이 있다(눅 1:18~23). 마리아는 이 영광을 목도할 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화답하며 순종했다(눅 1:38-39).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이 영광에 접했을 때 저들의 마음과 몸이 뛰고 말았다(눅 2:15-18). 예루살렘 성전의 시므온과 안나가 이 영광을 목도했을 때 저들은 만족하고 기뻐했다(눅 2:33-34, 36-38).
  저 동방의 박사들이 이 영광에 접했을 때 꿇어 엎드려 경배했다(마 2:1-12). 세례 요한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이 놀라운 영광에 접했을 때 불가불 의의 사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이 영광에 접했을 때 그는 고꾸라졌고, 엎드렸고, 캄캄했고, 영음 앞에 예수를 만나게 됐다. 그 후 그는 어쩔 수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고 말았다(행 9:20).
  지금 흰 옷 입은 십사만 사천 인의 무리들이 이제 이 영광 앞에 충만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 자체가 저들의 장막이 아닌가?
  오늘의 우리들에게 영광의 장막이 무엇인가?
  그것은 신․구약 성경 계시 아래 머무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 영광의 집중적 표현이다. 성경 안에 내 삶의 장막을 치는 자는 한없는 영광의 빛 속에 사는 자이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교회사 시대 중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은총을 입은 자들은 구원됐다. 큰일을 했다. 그 영광의 옷자락 속에서 보호를 받았다. 그것이 저들 삶의 비전(vision)이 되었다.
  이제 햇빛, 달빛, 별빛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저들의 거할 장막이다. 영원한 장막이다. 거기에는 강도의 위험이나 박해자의 검이나 죽음의 위기가 엄습할 수 없다. 이유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저들이 거하는 장막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안전 보장인가? 이 얼마나 세상에서 객이 되었던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인가?

4. 다함이 없는 충족의 축복이다.

  요한계시록 7장 16절에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라고 했다. 거기엔 이제 주림이 없다. 거기엔 이제 목마름도 없다. 거기엔 이제 자연 공해의 상함도 없다. 온갖 육적인 굶주림과 악한 환경의 조건이 전혀 없다. 그야말로 마태복음 5장 6절의 성취이다. 의를 위하여 주리고 목말랐던 자가 이제 배가 부르는 축복을 받는 상태이다.
  요한복음 6장 35절의 성취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한 사실이다. 요한복음 4장 14절 대로 예수께서 주신 물은 마시는 자들이 그 속에서 솟는 영생의 샘물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교인들 가운데 많은 노예들이 있었다. 뿐 아니라 기독신자들이 예수 때문에 환난과 시험, 투옥, 재산 몰수, 죽음 등 무수한 핍박과 환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저들이야말로 헐벗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자들이었다. 배고프고 목마른 것이 어느 정도인가를 절감한 자들이었다. 뼈아프게 매여 일하는 고역과 채찍과 학대를 받는 것이 무엇임을 잘 알고 있었다. 감옥의 어둠과 답답함, 전율을 느끼게 하는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아는 자들이었다. 이 모든 것, 세상적인 냉대가 예수 신앙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
  실로 저들에게 천국이란 주림도 없고, 목마름도 없고, 온갖 고독의 고역에서 자유하고 온갖 죽음의 환경에서 해방된 세계라고 하는 예수의 약속이 전 소망이었다. 이러한 천국 실존의 약속을 저들은 믿음으로 씹고 마시고 소망하면서 오늘의 고난을 감수한 자들이 아니었던가? 이사야 선지자도 이 풍성한 만족 충만의 상태를 내다보고 영감 속에서 예언하기를 「저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사 49:10)고 했다.
  새 하늘, 새 땅! 영광의 보좌!
  거기엔 주림이 없다. 목마름이 없다.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이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 그곳은 바로 인을 받은 십사만 사천 인들의 고향이 아닌가?

  5. 어린양이 목자가 되는 축복이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라고 했다.
  목자에 대한 표현은 신․구약이 한결같이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시편 23편 1절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했다. 이사야 40장 11절에는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라고 했다. 요한복음 10장 11절, 14절에는 주께서 친히 자기를 가리켜 ‘나는 선한 목자’라고 했다. 베드로전서 2장 25절에는 예수를 가리켜 ‘우리 영혼의 목자’라고 했다. 히브리서 13장 20절에는 예수를 ‘양의 큰 목자’라고 했다. 이제 주께서 친히 목자가 되신다. 지상 교회 생활은 주께서 작은 목자들(사역자)을 세우시고 간접으로 우리를 먹였다. 그의 계시인 성경을 가지고 사역자들을 통하여 목양했다. 이젠 주께서 친히 목자가 되신다. 그러므로 이제 지도자 때문에 오는 부조리와 불만족은 없어진다. 여기 주께서 친히 ‘저희의 목자가 된다’는 말은 저희를 먹이시고, 돌보심을 의미한다. 영원히 먹이시고 영원히 돌보심을 의미한다.
  주께서 친히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고 했다. 사막의 땅 팔레스타인의 경우 샘이 솟는 물가로 인도받은 양 떼만큼 행복한 양이 없다. 그러므로 우물(샘)은 목자에게 중요 관심사였다. 이제 주께서 친히 생명수가 되사 그들을 만족케 하신다. 이제 저들에겐 강도나 절도, 삯군, 이리들 때문에 무서워하거나, 잘못 인도받거나, 해를 받는 일은 없게 된다.

  6. 모든 비운에서 해방되는 축복이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 하반절에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고 했다.
  시편 84편 6절에 성도는 이 세상을 눈물 골짜기라고 했다. 실로 이 세상은 눈물의 골짜기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들이다. 이 세상은 온갖 눈물로 강을 이룬 곳이다. 부모를 잃은 고아의 눈물이 있다. 남편을 잃은 과부의 눈물이 있다. 전쟁의 비운으로 빚어낸 온갖 불구와 죽음의 이별들의 눈물이 있다. 사업의 실패에서 오는 눈물, 주림의 눈물, 병고의 눈물, 온갖 절망의 눈물, 인생무상의 눈물, 아버지의 눈물, 어머니의 눈물, 남자의 눈물, 여자의 눈물 등 실로 이루다 말할 수 없는 눈물의 사연이 비애의 강을 이루고 만 것이 이 세상 역사가 아니던가?
  기독신자들에겐 다른 차원의 눈물이 있다. 죄로 인한 회개의 눈물, 핍박의 눈물, 사명의 눈물, 기도의 눈물, 찬송 속에 흐르는 감사의 눈물, 서원의 눈물들, 예수 때문에 흘리는 양의 눈물이 있다. 그래서 주께서 저희를 눈물 양식, 다량의 눈물 양식으로 먹였다고 했다. 이젠 눈물이 없는 세계가 도래하고 있다. 주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는 한 날이 오고 있다. ‘모든 눈물’이다. 모든 사연의 해결이다. ‘씻어주신다’함은 ‘기름 붓다’, 닦아 없앤다‘, ’도말해 버린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이 지상 전투 교회에서 흘린 성도들의 눈물을 완전히 보상해 주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종들! 그 이마에 인을 받은 종들! 그 몸에 흰 옷 입은 성도! 그 손에 종려가지를 잡은 성도! 그 입에 큰 함성의 신앙 고백이 있는 성도! 저들에게 불가불 이런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

  7.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축복이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된 자들이다(계 20:12, 3:15).
  이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 함은 구원보장을 뜻함이다.

  8. 저들은 예수의 계명과 증거를 갖고 있는 축복이다(계 12:12, 14:12).

  예수의 계명은 성경 진리를 파수할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신앙이다. 예수의 증거로 그 말씀을 나타내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신행일치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다.

  9. 저들은 666을 받지 아니한 축복이다(계 13:17~18).

  그것은 짐승의 표로 불과 유황에 참예하는 자들이 받는 불신앙의 표이다(계 14:9~11). 그 이마에 날인 받은 자들은 결코 두 가지 표를 받지 아니한다.

  10. 열린 문으로 들어가는 축복이다.

  요한계시록 21장 27절에는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그 이마에 예수의 이름이 있어서(계 22:4) 열린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이마에 인침 받은 자들이 받을 축복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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