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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계8:1~9: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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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석원태 목사 |
| 참고 : | 경향교회 http://www.ghpc.or.kr/ |
일곱 나팔
요한계시록 8장1~9장 21절
석원태 목사
1. 서론적 묵시 (계 8:1~5)
우리는 요한계시록 6장에서 첫째 인부터 여섯째 인까지 떼시는 재앙을 보았다. 우리는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 요한계시록 7장에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장면을 보았다. 그것은 땅이 아닌 하늘이요, 심판이 아닌 구원의 장면이었다. 바로 그것은 14만 4천인의 세계였다. 이제 요한계시록 8장에서 다시 일곱째 인이 개봉된다. 그런데 일곱째 인이 개봉되기 전에 서론적인 묵시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하늘이 반시간 동안 고요한 장면이다.
1. 반 시 동안 고요한 하늘(계 8:1)
이 기간이 무엇을 의미함인가? 또 이 시간에 무엇을 하였을까?
1) 지극히 제한된 짧은 시간임을 의미한다.
물론 요한계시록 8장 1절에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 동안쯤 고요하더니」라고 했다. 물론 여자적으로 30분을 의미함은 아니다. 항상 신학은 수학을 초월하며, 신학 속에 수학이 포함되어 있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 그 내용이 공개되기 전에 일어난 정적의 기간이다. 그것은 짧은 기간을 암시하고 있다.
2) 고요한 잠정적 평화의 기간이다.
이제 일곱째 인을 떼면 일곱 나팔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피 섞인 우박 재앙, 불붙은 큰 산, 횃불같이 타는 큰 별, 일월성신의 부분적 기능마비, 땅에 떨어진 별, 큰 유브라데에 움직이는 마병대(계 8~9장)의 출현 등 무시무시한 재앙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우주적 소요 사태와 격변에 앞서 짧은 평화의 시기가 있음을 보여 주는 내용이다.
3)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예고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마치 이 기간은 전쟁의 포화가 터지기 직전 죽음의 고요가 전선을 감싸는 분위기와 같다. 그것은 마치 출애굽 전날 밤에 하나님의 천사가 출현하기 직전, 애굽 땅에 죽음의 곡성이 진동하기 직전 전 애굽 땅에 임한 최후의 고요함 같은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인간의 정황을 살피시며 각성과 회개를 촉구하는 기간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피는 어간에 성도들은 이 고요 속에서 회개하며, 경건을 연마하게 된다. 소란할 때 잘 들리지 않던 소리가 고요할 때는 너무나도 잘 들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바람과 폭풍 속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지만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과 그의 거동을 살필 줄 아는 영지 작용이 있어야 한다.
5) 무엇보다 이 반 시 동안 고요한 어간은 성도들의 기도가 주께 제물로 드려지는 시간이다(계 8:3~5).
이 반 시간 동안은 하나님 자신이 그의 섭리를 나타내는 기간이다. 그 섭리의 내용은 성도들이 기도의 향을 주 앞에 올리는 기간이었다.
2. 천사와 향연(계 8:2~5)
1) 일곱 천사의 작업준비(계 8:2)
요한계시록 8장 2절에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고 했다.
어떤 천사인가?
(1) 하나님 앞에 시위한 천사이다(계 8:2).
이들은 천계의 유력한 영물이다. 구속 운동에 있어서 하나님 보좌 앞에서 수종드는 자들이다. 누가복음 1장 19절에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고 했다.
(2) 일곱 천사이다.
혹자는 이 천사들이 가경에서 유래했다고 하나 잘못된 말이다. 여기 일곱 천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수행하기 위하여 임명받은 일곱 천사이다.
(3) 일곱 나팔을 받은 천사이다(계 8:2, 6).
이들이 일곱 나팔을 받았다 함은 일곱 나팔을 불기 위하여 임명받았다는 뜻이다. 성경에 천사들이 나팔을 부는 것은 여러 경우들이다. 본문의 일곱 나팔의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사건과 재림 사건에 관계되어 있다.
마태복음 24장 31절에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15장 52절에는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라고 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라고 했다. 이러한 천사의 나팔 소리는 곧 성도들에게는 기쁨의 소리요, 구원받지 못할 자들에게는 절망과 공포의 소리가 될 것이다.
2) 다른 천사의 출현(계 8:3)
요한계시록 8장 3절에 「또 다른 천사가 와서…」라고 했다. 여기 ‘다른 천사’는 요한계시록 8장 2절에 나팔 불기 위하여 동원된 일곱 천사는 아니다. 본문 3절에 나타난 천사는 성도의 기도와 상관하고 나타난 천사이다. 반 시 동안 고요한 하늘의 침묵 속에 나타나는 천사이다. 그는 분명히 성도들의 기도를 돕는 천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다른 천사는 어떤 천사인가?
(1) 그는 제단 곁에 있는 천사이다.
요한계시록 8장 3절에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라고 했다. 여기 ‘제단 곁’이란 죽임을 당한 영혼들 곧 순교자들이 자리를 잡고 호소하고 있는 곳이 아닌가(계 6:9)? 이것은 성소 안에 있는 지성소 입구의 금 제단을 말함인 듯하다(출 30:1~8). 그렇다면 이 천사는 이 시간 은혜의 보좌 앞에 서 있는 천사이다.
(2) 그는 금향로를 갖고 있는 천사이다.
요한계시록 8장 3절에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천사는 금향로에 성도들의 기도를 담아 하나님 보좌 앞에 올리는 일에 수종드는 천사이다. 그렇다면 일곱째 인을 뗀 후 일어날 나팔 재앙 전에 성도의 기도가 금향로에 담겨 제물로 드려지는 순서가 있음이 분명하다. 환난 전에 성도의 기도가 꼭 필요함을 보여 주는 계시이다.
3. 성도의 향연(기도, 계 8:4~5)
1) 제단 곁에서 나오는 기도
요한계시록 8장 3절은 또 말하기를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라고 했다. 천사가 지금 성도들의 기도를 금향로에 담기 위하여 제단 곁에 서 있다고 했다. 제단은 제물을 올려 놓는 곳이다. 그곳에 기도를 올림이 합당하다. 그러한 제단의 신약적 표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성경은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신 예수라고 말했다(히 1:20). 그곳이 바로 은혜의 보좌이다. 교회는 곧 예수 자신의 머리요, 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교회)에서 그에게 기도를 드린다.
2) 제물로서 가치를 지닌 기도이다.
요한계시록 8장 4절에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라고 했다. 성도의 기도를 향연에다 비유했다. 구약에 금단에서 피어나는 향연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제물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응답의 상징이기도 하다. 향연이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계 8:4)고 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성도의 기도가 제물로 불타오르는 장면이다. 가장 가치 있는 제물은 향기로 불타오르는 제물이어야 한다. 응답이 있는 기도가 제물로서 가치가 있다. 아브라함(창 22장), 마노아 부부(삿 13:1), 엘리야(왕상 18장)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응답을 체험한 자들이다.
3) 다량의 기도를 말함이다.
요한계시록 8장 3절에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8장 3절에 또 말하기를 「많은 향을 받았으니…」라고 했다. 수에 있어서 많은 성도들의 기도요, 양에 있어서 많은 향이다. 그것은 크고 많은 분량의 제물이다. 큰 기도요, 많은 기도이다. 개인과 개인, 가정과 가정, 교회와 교회, 교파와 교파, 나라와 나라들의 합심기도는 다량의 기도이다.
4) 주님의 속죄 공로를 통하여 상달되는 기도이다.
요한계시록 8장 3절에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고 했다.
여기 ‘향연’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합했다고 했다. ‘향연’이 성도들의 기도를 주장하고 있다. 이 향연은 주 예수의 속죄 공로요, 바로 그의 이름의 공로이다. 주 예수 십자가의 공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올려지는 기도를 뜻함이다. 결코 모든 기도는 인간의 공로나 의에 의함이 아니다. 주의 이름과 그의 십자가의 속죄가 우리 기도를 유효하게 한다.
5) 신본주의 기도이다.
요한계시록 8장 4절은 또 말하기를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고 했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 하나님 뜻을 성취하는 기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도가 신본주의 기도이다.
이 우주의 중심이 하나님이다. 교회 중심이 하나님이다. 구원 운동의 중심이 하나님이요, 개인 역사의 구심점이 하나님 자신이어야 한다.
6) 고난 받는 교회의 응답을 나타내는 기도이다.
요한계시록 8장 5절에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고 했다.
조금 전에 성도의 기도를 담아 운반했던 그 향로가 지금은 불을 담아다가 쏟는 진노의 도구로 변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 행위는 성도 기도의 응답이 아닌가? 순교자들의 기도의 응답이 아닌가(계 6:9)? 향로에 담긴 성도의 기도가 금단에 옮겨진 후에, 그 향로에 불이 담겨 땅에 쏟아졌다. 이 불이 뇌성과 번개와 지진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 내용이 첫째 나팔부터 전개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도는 결과적으로 승리를 확보하고 있다.
제물로서 가치 없는 기도와 가치 있는 기도(계 8:4), 이 차이는 응답 없는 기도와 응답 있는 기도의 차이이다. 하나님의 보좌 앞 금단에 올라갈 수 있는 기도와 올라가지 못하는 기도이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 반 시 동안 고요한 하늘의 정적 속에서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또 다른 천사에 의해 금향로에 담긴 향이 보좌 앞 금단으로 운반되는 장면을 보았다. 이 금향로에 담긴 향을 성도의 기도에 비유했다. 그 많은 향을 담은 ‘금향로’는 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영원한 속죄 공로를 의미한다. ②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 공로의 약속과 진실성과 불변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많은 기도 곧 향은 반드시 금향로에 담겨져야 보좌 앞 금단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성도들이 올리는 기도와 찬송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는 속죄 공로 없이는 전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금이 변하지 않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는 우리의 어떠한 조건과 환경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기도의 소망이다. 기도의 근거이다.
문제는 우리 기도가 금향로에 담길 수 있는 제물로서의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1. 향연이 못되는 기도
이는 응답 없는 기도의 경우이다.
(1) 이기주의적 기도이다.
야고보서 4장 3절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다. 육체의 소욕을 위한 기도이다. 그것은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기 때문이다(갈 5:17).
(2) 죄를 품고 올리는 기도이다.
이사야 59장 1~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했다. 불신앙의 죄(요 16:9), 불법의 죄(요일 3:4), 선을 알고도 행치 않은 죄(약 4:7)이다. 이 죄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요, 사람 앞에서의 죄이다. 시편 66편 18절이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했다.
(3) 마음에 우상을 섬기는 자의 기도이다.
에스겔 14장 3절에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고 했다. 두 주인을 섬기는 사람들의 기도, 다른 신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의 기도는 가증하다.
(4) 자비가 없는 기도이다.
잠언 21장 13절에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했다. 그것은 사랑하기를 그치고, 인색하며, 탐욕적인 사람들의 소행이다.
(5) 남을 용서치 못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마가복음 11장 25절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고 했다. 이것은 주기도의 교훈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 하는 기도의 실천이다. 자기는 더 많은 것을 탕감받고서도, 자기에게 빚진 자의 아픔을 탕감하지 않으면 큰 일이 아닌가?
(6) 부부 간에 불화할 때의 기도이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에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7) 두 마음을 품고 의심하는 자의 기도이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했다.
위와 같은 기도들은 천사들이 가지고 있는 금향로에 담겨 하나님 보좌 앞에 올려질 수 없다. 응답받을 수 없다. 그것은 제물로서, 향연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2. 향연이 될 수 있는 기도
이것은 응답이 있는 기도로 가치 있는 제물을 뜻함이다.
(1) 죄를 자복하는 기도이다.
그것은 세리의 기도와 같은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13~14절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고 했다.
(2)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이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곧 천국 운동이다. 그것은 곧 복음 운동이요, 교회 운동이다.
(3) 예수 공로만 의지하는 기도이다.
요한복음 14장 13~14절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했다. 요한복음 16장 23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고 했다.
(4) 낙망치 않는 기도이다.
누가복음 18장 7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했다.
그것은 원한이 맺힌 기도이다. 뜨거운 기도이다.
(5) 믿음의 기도이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고 했다. 병든 자를 위한 기도는 자비의 기도요, 사랑의 기도이다. 믿고 구하는 기도에 능력이 임한다.
(6) 간절한 기도이다.
야고보서 5장 17~18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했다.
(7)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의 기도이다. 마태복음 26장 39절에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라고 했다. 이는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기도이다.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했다.
(8) 생명을 거는 기도이다.
창세기 28장에 나타난 야곱의 기도는 서원의 기도였다. 그러나 창세기 32장에 나타난 얍복강 나루에서 올렸던 야곱의 기도는 생명을 건 기도였다. 그 기도는 밤중에 드린 기도요, 홀로 남아드린 기도요, 씨름하는 기도요,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포기하지 않은 기도요, 울면서 올린 기도요, 마침내 축복의 표징인 이스라엘을 응답으로 받고 말았던 기도이다(호 12:3-4).
(9) 계속하는 기도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다. 사무엘은 이 은혜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그는 기도하다가 쉬는 것을 죄라고 했다. 기도는 호흡과 같은 것이다. 호흡을 멈추는 것은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밤낮 구하는 택자들의 기도는 응답을 받는다.
(10) 겸손의 기도이다.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인 곧 가나안 여인은 자기를 개와 같은 존재라고 자인했다(마 15:27). 그러나 개들도 자기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했다. 자기와 자기 딸에게는 이러한 부스러기라도 족하다고 했다. 그 겸손한 소원의 기도에 주님은 부스러기가 아닌 큰 것을 주었다. 그 결과 그의 딸은 흉악한 귀신으로부터 해방 받았다(마 15:28).
주님 자신이 하나님이시다. 권능의 주님이시다. 그러나 그러한 주께서 기도를 중요시했다. 그는 군중보다 기도를 더 중요시했다. 그렇기에 군중이 그에게 모여들 때 오히려 그 군중을 떠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했다(눅 5:15~16). 주님은 주무시는 것보다 기도를 더 중요시했다. 그렇기에 그는 밤이 맞도록 기도할 뿐 아니라,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했다(눅 1:12). 주님은 기도함으로 사단의 도전을 막아내셨다. 시험에 들지 않고 승리하는 비결은 깨어 기도하는 것이었다(마 26:41). 기도 외에는 마귀를 쫓아낼 수 없다고 했다(막 9:29). 그는 이 세상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했다(히 5:7).
이런 기도가 금향로에 제물로서 담기는 것이다. 참으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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