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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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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8. 7. 13. 주일 4부 설교 |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의 죽으심을 짊어진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옛날 로마의 사형 가운데 죄를 크게 지은 사형수는 어떻게 죽였느냐 하면은 죽은 시체를 나무에다 매달고 그 시체하고 같이 묶어 놓습니다. 눈은 눈대로 코는 코대로 입은 입대로 몸은 몸대로 시체하고 같이 묶어서 매달아 놓습니다. 그러면 시체가 썩어서 점점 산사람의 몸에 병균이 퍼져 들어오고 독이 들어와서 시체와 함께 죽어 부패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선생은 염두에 두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의 죽은 시체를 우리 몸에 걸머지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4:10) 예수의 죽은 몸을 걸머지고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장사지내고 나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부활시킬 때 우리를 함께 부활시켜 주신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본론>
1. 예수님의 죽음
첫째로, 예수님의 죽음과 우리가 하나 되었다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로 16절 함께 읽어 보십시다.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여기에 보면 계속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고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흉악한 죄인입니다. 우리의 지은 죄는 머리털 보다 더 많고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의로운 행동으로 우리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끌어안고 십자가에 못박혔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덕분에, 예수님의 은혜로, 예수님 축복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복을 누리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을 몸이 걸머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떠한 의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몸에 걸머지고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해서 함께 천당 가는 예수와 함께 영원히 사는 우리들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은 홀로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와 함께 이 땅에서 부터 영원한 천국까지 같이 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세상 나라에 대해서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었습니까? 이 세상을 걸머지고 죽은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 없이 마귀를 섬기고 사는 세상나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나라에 태어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나라를 품에 품고 세상나라에 끌려 살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품고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죽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더불어 마귀와 세상에 대해서 죽어서 우리와 인연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인연이 끊깁니다. 아무리 부모 자식 간에 사랑을 해도 부모가 죽고 난 다음에 자식이 죽은 부모를 가정에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무덤에 묻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옛사람이 세상과 같이 살다가 예수님을 모시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대해서 죽어 버렸으므로 세상을 하직하고 만 것입니다. 별세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는 체제이고 온 세상은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온 세상이 악한 자에게 처해 있는데 그 악한 자의 세상에 우리는 별세해 버리고 만것입니다. 죽어 버렸었습니다. 세상과 인연이 끊어졌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법적으로 세상에 속해있지 아니하고 이제 하나님의 아들 나라에 속해 있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몸에 걸머진다는 것은 이제는 세상하고 이별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탐욕을 벗어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탐욕에 대해서도 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에 지배되어 탐욕에 끌려 다니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므로 탐욕에 대해서도 죽었고 인연이 끊어지고 만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마귀의 본성이 탐욕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40주 40야 금식하고 광야에서 나왔을 때 마귀가 제일 먼저 유혹한 것이 탐욕인 것입니다. "돌을 변하여 떡을 만들어 먹어라." 떡은 쌀로써 만들어야지 돌로써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생기면 돌로써 떡이라도 만들려고 달라드는 탐욕으로 유혹한 것입니다. "뾰충탑에서 뛰어 내려라! 하나님이 돌보아 주어서 발이 땅에 부딪혀 부서지지 아니하면 사람들을 그를 보고 너를 칭찬하고 따라올 것이다." 탐욕인 것입니다. 비정상적으로 명예를 얻으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아주 인간적인 흉악한 방법으로 명예를 얻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마귀에게 절하면 온 천하만국을 다 주겠다고 말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마귀와 짝을 해서 살으라고 것입니다. 이러한 탐욕에 대해서 예수님은 전부 거부했었습니다. 예수님은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상나라에 대해서 죽고 세상 탐욕에 대해서 죽어버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기중심의 체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삶의 임금이요, 자기가 자기 삶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자기가 자기 주인이지요. 자기가 자기의 임금인 것입니다. 자기 원대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을 임금으로 자기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손님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내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나의 임금님으로 모셔 들여서 예수님이 나를 점령하시고 다스리시고 예수님이 소유하게 한 것이 참 신앙인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8절로 29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자기가 주인이 되고 마귀가 임금이 되니까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생겨나고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게 되고 수군수군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 주인 따라서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이면 타락한 마귀의 종 아닙니까? 마귀가 임금으로 점령하니까 마귀의 행실을 다하지요. 그런데 이 속사람이 주인이 죽고, 예수가 주인이 되고 임금으로 모셔 들이는 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은 내 마음에 내가 주인이 되지 아니하고 마귀가 주인이 되지 않고 내 마음의 주인은 예수님이 되고 임금님은 예수님이 되도록 변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리스도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 죽고, 탐욕에 대해서 죽고, 세상에 주인과 임금 노릇하는 자기와 마귀에 대해서 죽고 세상을 하직해 버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별세해 버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구 아버님이 건강하세요?"라고 물으면 "작년에 별세했습니다." "예? 별세하셨다구요?" "어머니는 건강하십니까?" "금년도에 별세했습니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안녕하십니까?" "예. 별세했습니다." "언제했나요?" "10년 전에 했습니다." "5년 전에 했습니다." "살아있는데요?" "예. 예수 안에서 세상과 별세했습니다. 세상 임금하고 별세하고 세상 주인하고 별세하고 세상 탐욕하고 별세하고 세상 삶과 별세를 하고 나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지고 별세하고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나라로 옮기심
둘째로,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진다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나라로 하나님이 옮기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하고 세상에서 죽었으니 이제 어디를 갑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들 나라로 하나님이 옮겨 주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여러분은 예수를 믿을 때 이사를 갔습니다. 세상에서 살던 여러분이 세상과 하직을 하고 별세를 하고 하나님이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그 사랑의 아들나라로 이사를 가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의 하늘 나라에 이사를 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요, 하늘나라 아들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나라에 살지 않고 하나님 아들이 다스리는 하늘나라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여러분을 통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통치하는 것입니다. 마귀에 속해있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에게 소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나라에서 별세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속에 예수님이 주인으로 와서 계시고 임금으로 예수님이 들어와 계시고 하늘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우리 안에 하늘나라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세상나라가 속에 들어와 있고 마귀가 그 속에 들어와 있는데 우리는 마귀와 세상나라에 별세하고 난 다음 예수를 통해서 하늘나라가 우리 속에 들어와 있고 예수님이 임금으로 주인으로 들어와 있으니 하늘나라 안에서 우리는 하늘나라의 은총을 살게 된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우리가 들어와 있어요.
영국 웨스트민스터에서 오랫동안 목회하시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20세기에 참으로 설교를 잘하는 목사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런데 원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젊은 시절 영국 황실에서 의사 선생님으로 병원을 결석하고 환자를 돌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환자를 의술로써 치료해주고 난 다음에 한 2~3개월 지나면 도로 그 병이 도져서 찾아오곤 합니다. 또 치료해 주면 또 한 2~3개월 지나서 또 병이 들려서 오곤 했는데 그래서 이 로이드 존슨 의사 선생님은 가만히 생각하기를 "아무리 내가 의사로서 껍데기 사람을 치료해 줘봤자 소용이 없는구나. 속에 있는 주인을 치료해야 진짜 치료가 되지 겉만 치료해 놓고 나니까 마음에 부정적인 마음, 긍정적이지 않은 마음, 절망적인 마음, 원망, 불평, 탄식, 절망을 가지고 있으니까 병이 도로 돌아오고 만다. 껍데기를 치료해 봤자 소용이 없다. 알짜 속사람을 치료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병원을 버리고 그는 목사로써 출발한 것입니다. 1년 동안 목사로써 받은 월급이 병원에서 한 달 받은 월급보다 작았습니다. 그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치료해야 된다. 그 사람을 아무리 치료해 봤자 영혼이 병들어 있으면 도로 병이 돌아오기 때문에 영혼을 치료해야 영혼도 살고 그 사람도 산다. 그렇게 해서 그는 훌륭한 주의 종이 되고 설교자가 되어서 나중에 영국에서 제일가는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최고의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우리를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를 받아서 영혼이 변화를 받아야 우리의 육체가 변화를 받고 영혼이 변화를 받아야 우리 삶이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하늘나라에 들어왔고 예수님과 함께 사니 예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역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며, 영혼이 잘되며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하늘나라의 역사인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기적이 하늘나라에 들어와 사는 사람에게는 늘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에 사는 사람은 세상나라 마귀의 흉악한 일들이 늘 일어나는 것처럼 하늘나라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의 역사가 우리의 생활 속에 늘 일어나게 돼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에 들어오면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미움과 원망과 불평이 늘 넘쳐났는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 아닙니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이 사랑이라고 아무리 행복한 결혼을 해서 돈이 많고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산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좋은 집, 좋은 음식, 좋은 옷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삶을 살아도 마음에 사랑이 있으면 행복하게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육자가 열심히 아동들을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내 자식처럼 가르치지 아니하고 직업적으로 가르친다면 아무리 훌륭하게 가르쳐도 그는 기계적인 직업인이요, 교사가 될 수없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제자들을 가르치면 훌륭한 교사가 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사랑이 모든 것에 제일인 것입니다. 장사를 해도 물건을 사가는 사람을 참으로 사랑해서 내 가족처럼 여기고 물건을 팔아야 그 사람이 축복을 받고 돈도 벌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대통령은 사랑을 가지고 국민을 다스려야 되고, 또 목회하는 목사는 목회에 설교만 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 참 사랑을 가지고 성도를 돌봐야 참 목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배하는 세계는 사랑의 세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들어와서 주님이 사랑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을 억지로 할 수 있나요? 미움을 억지로 버릴 수도 없고 사랑을 억지로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들어와 있으면 예수님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넘쳐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4절로 5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나님이 적은 사랑이 아니라 큰 사랑을 베풀어서 허물투성이인 우리, 죄투성이인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시고 부활시켜 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허락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우리는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사랑으로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먹고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수많은 슬픔에서 해방되고 수많은 범죄에서 해방되고 수많은 고통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나누기 운동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자는 운동이요, 사랑을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고 미움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나누기 운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하나님 중심 체계인 나라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 나라에 들어와 산다는 것은 내 중심으로 살고 세상중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주인이에요. 하나님이 나의 임금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나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 살았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예수님이 원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님이 이것을 했으면 무슨 말씀을 했을까. 예수님이 어떻게 할 것인가.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뜻을 따르고 예수님을 섬기는 삶이 하늘나라에 들어와서 사는 우리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5절에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라고 말한 것입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우리의 왕이요, 우리의 주인이 되었으니 이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3. 대속의 죽음 17:27
셋재로, 여러분 예수님의 죽음을 걸머지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왜 죽으셨습니까? 쓸데없이 순교 당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서 값을 지불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인을 건져 내어서 용서와 의와 영광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예수 죽음을 몸에 걸머지고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와 허물에서 죽고 그리스도의 의와 영광을 선물로 받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의 생명에 참여해요. 우리 힘으로 의롭게 될 사람 누가 있습니까? 우리는 죄를 옷 입듯이 다 입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먹고 마시고 사는 것입니다. 죄 덩어리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수 없어요. 하나님의 광명한 빛이 비취면 어두운 죄가 다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발가벗고 군중들 앞에 설 수 없는 것처럼 도망을 치고 말 것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옷을 받아 입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고 갚어 버리고 죄 없는 의로운 옷을 벗어서 우리에게 입혀 주었으니 예수님의 옷을 입었으므로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설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밝은 빛이 비춰서 부끄럽지 않은 것은 예수의 의로운 옷을 받아 입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값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인이 아니라 의롭게 되었는데 행위로 이루게 된 것이 아니라 공짜로 예수를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죄인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값없이 공짜로 은혜의 옷을 받아 입었습니다. 지금은 의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강제로 의인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어요. 죄인은 결코 하늘나라에 못 들어 갑니다. 의인만이 들어가는 곳인데 행위로써 의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행위로 의롭게 될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의 의로운 옷을 받아 입으면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히기 위해서 죄악의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십자가에서 성결의 생명에 참여 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 동안에는 여러분 더러운 부패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와 세속에 속해서 생각이 더럽고 부패하고 마음이 더럽고 부패하고 행위가 더럽고 부패합니다. 무엇을 봐도 더럽고 부패한 것이 꽉 들어차 있는 것입니다. 돼지소굴과 같은 곳에 살고 있고 구더기와 같이 화장실 속에 살고 있는 것과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우리 힘으로 거룩하게 될 수가 없어요. 깨끗하게 안돼요. 참말을 아무리 하려고 해도 자꾸 거짓말을 하게 돼요. 방탕을 안하려고 해도 방탕하게 돼요. 도둑질 안하려고 해도 자꾸 도둑질 하게 돼요. 미워 안하려고 해도 자꾸 미워하게 돼요. 우리의 힘으로 거룩하고 성결하게 안 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세상과 마귀를 못 박아 버리고 우리에게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 함께 읽어 보십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씻어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우리의 힘으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 의지하면 성령이 여러분을 거룩하게 살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곤하면 박카스를 마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원비디를 마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힘을 얻으려고 하는데 여러분 영적으로 박카스와 원비디는 바로 성령인 것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며 성령이여 나를 도우사 거룩한 생각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도우사 거룩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도우사 참말을 하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 우리에게 힘을 부쩍부쩍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과 죄악을 멸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예수님이 짊어지고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치료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우리가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도 늘 마음도 병들고 몸도 병듭니다. 이 세상에 병 안드는 사람이 누가 있는 것입니까? 한평생을 살면서 모두다 병들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더구나 공기가 부패하고 물이 부패하고 생활의 모든 환경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음식도 다 오염된 음식이요, 물도 다 오염되고 생활도 다 오염되니까 그것을 먹고 마시는 우리가 건강해 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심신이 다 고달프고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치료할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생기와 생명을 주어서 우리를 깨끗하고 건강하게 만들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건강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우리 베드로전서 2장 24절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 말씀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고 당신도 나음을 얻었고 여러분도 나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지 않습니까?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여러분 나음을 얻었습니다. 오늘 건강을 얻은 것을 축하합니다. 박수로 축하합니다. 하루에 천번도 만번도 나는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 나는 나았다. 나는 나았다. 나는 나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나았다고 외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진리를 통해서 질병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병이 안들 수는 없습니다. 병이 들어도 우리는 고침 받을 수 있는 능력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우리에게 아담이 갖다 준 저주에서 해방시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되고 네가 복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복덩어리가 될 것이다. 우리가 복을 받은 사람이 들에 가면 들이 복을 받고 집에 들어오면 집이 복을 받고 떡반죽 그릇을 만지면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짐승을 키우면 짐승의 새끼까지 복을 받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하고 같이 살면 복이 훨훨 넘쳐 들어오는 것입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이냐. 예수를 믿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사람이 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다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우리를 저주에서 피로서 값 주고 사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누구라구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복덩어리입니다. 당신은 복덩어리입니다. 여러분은 복덩어리입니다.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됩니다. 저주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여러분 매일같이 말하십시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복을 받았으므로 저주가 나를 넘어뜨리지 못한다. 나는 망할 수가 없다. 나는 저주받을 수가 없다. 여러분 네 입의 말로 네가 묶였으며 네 입의 말로 내가 사로잡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꾸 말하면 복이 여러분을 묶고 사로잡아 놓는 것입니다. 사람은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만 잘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되는데 그 복은 예수님을 통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복을 받아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린 것은 저주를 담당하시고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그 대속의 은혜에 참여하기 위해서 예수의 죽음을 몸이 걸머지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활 영생의 생명에 참여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이 땅에서 죽음에 처했을 때 그대로 버려 놓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죽고 육체로 부활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주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죽으면 육체를 벗어 버리고 영혼이 낙원에 갑니다. 낙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주님 강림하시는 날엔 주와 같이 와서 부활해서 이제는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낙원에 들어가 있다가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부활의 영생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죽음이 없습니다.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은 철폐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멸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므로 사망과 음부는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약속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살고,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살고,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살고, 엎어져도 살고, 넘어져도 사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살고,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산다. 뭐 항상 사는 것이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 영생을 얻었으니 축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 십자가에 죽은 것을 우리가 끌어 안고 짊어지고 있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값주고 사주신 용서와 의의 영광도 우리에게 다가오고 거룩함과 성령충만한 역사도 다가오고 치료의 역사도 다가오고 아브라함의 축복의 역사도 다가오고 부활 영생 축복의 역사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내 죽음이요, 그리스도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해에 거두려거든 곡초를 심어라. 십 년 뒤에 거두려거든 나무를 심어라. 백 년 뒤에 거두려거든 사람을 심어라. 영원을 거두려거든 복음 즉, 예수를 심어라." 또한 이런 말도 있습니다. "돈을 잃은 것은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아니요, 건강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요, 인격과 영혼을 잃은 것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것은 모든 것을 잃어 버립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의와 결과 치료의 생명에 참여할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복과 함께 부활영생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항상 걸머지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우리 신앙생활이 중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지 하나님이 우리를 천사를 통해서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인 우리의 죄,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마귀와 더러움을 짊어지시고 사람의 병을 짊어지시고 사람의 저주를 짊어지시고 사람의 죽음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다 멸하시고 청산해 버리고 부활했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걸머지면 예수의 생명도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서 예수님과 더불어 살고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며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주장하는 역사를 베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신학적인 이론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4. 우리가 사는 두 세상
넷째로, 지금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두 가지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예를 들어보면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에서 살았나요? 애굽에서 살았지요. 애굽은 바로가 그들의 임금이었습니다. 바로를 섬기며 바로가 주는 복을 받아 살고 바로 밑에서 노예생활을 한 것입니다. 혹독한 노예생활을 한 것입니다. 애굽에 살 동안에는 별 도리 없이 바로를 섬겨야 되고 바로가 주는 음식을 먹고 물과 양식을 먹고 살아야 되고 바로의 종노릇 하고 살아야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6절에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했는데 사백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산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를 통해서 해방되어 광야에 나왔을 때는 이제 바로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아 살고 자유와 해방 속에 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 세계 속에 살았습니다. 바로의 지배하에서 살다가 광야로 나와서는 하나님의 지배하에 살게 된 것입니다. 바로에게 복을 받아서 살던 그들이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만나를 받아먹고 물이 바위에서 솟아나고 쓴물이 달아지고 하나님이 치료해 주시고 신발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시고 의복이 닳지 않게 해주시고 하나님이 평안을 주신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게 된 것입니다.
신명기 7장 8절로 9절에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야훼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들이 옛날에는 하나님 없이 살았지만 이제 하나님 모시고 살고 옛날에는 바로의 손에서 인간적으로 도움을 받고 살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제는 기적으로 살고, 옛날에는 바로의 종살이했지만 이제는 자유와 해방 속에 사는 것입니다.
5. 우리의 삶
우리의 삶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두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는 세상에 살지 않았습니까? 마귀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세상 복을 따라 살았었습니다. 세상에서 애쓰고 힘쓰며 땀을 흘리고 세상 복을 따라서 살고 죄와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산 것 입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사람은 세상 나라의 삶을 살고 마귀의 지배를 받아 살고 세상 복을 따라서 살고 죄와 탐욕의 노예가 되는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서 별세하고 예수님의 나라에 들어온 우리들은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살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살뿐 아니라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의 복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 복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복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 세상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이요 너희 하늘나라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을 줄을 아시느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경제가 나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세상나라 식으로 살면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식으로 사니까 땅보고 살지 않고 하늘 쳐다보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만나처럼 내려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복을 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기 때문에 세상이 어두울지라도 겁날 것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사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의 복인 것입니다.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을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놀라지 말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바랍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가 너를 붙들어 주리라. 내가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없이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살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짊어져 주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은혜로 살게 되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나라에 들어와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자유와 해방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5장 1절 다시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는 자유와 해방이 있는 것입니다. 마귀와 악의 종노릇하지 않습니다. 습관에 종노릇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유를 얻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의와 평강과 희락 가운데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예수님 나라에 들어와서 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세상 나라와 예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동시에 임하여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나라에 들어오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변화를 받고 사는 것입니다.
교회사 가운데 예수님을 만난 후, 확실하게 변화되어 위대한 인물이 된 분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한분이 고아와 기도의 아버지로 유명한 죠지뮬러 목사님인 것입니다. 그는 16살 때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갔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술과 여자, 노름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20살에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과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3천명의 고아를 기르고 수많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도와주는 성인으로서 인생을 사는 변화를 받게 된 것입니다. 중세의 위대한 교부인 어거스틴 역시 젊은 시절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여 결혼도 하지 않고 동거하여 아들을 낳기도 하고 이단에 빠지고 그 어머니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못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32살에 마음에 회개하고 예수 믿고 난 다음 "옛 어거스틴은 죽었고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 위대한 성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두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쾌락을 따라 노예의 생활을 하는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며 자유와 해방 속의 삶으로 살 것인가. 이 두 가지 세계를 우리가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자유와 해방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는 영광과 기쁨을 삶을 살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는 두 나라가 우리를 서로 빼앗으려고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나라가 여러분과 나를 시시각각으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는 성령이 여러분을 지키고 보호하고 은총과 사랑과 역사를 베풀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모두다 예수 죽음을 몸에 걸머지면 세상과 마귀와 별세를 하고 하직을 하고 예수의 나라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 죽음, 내 죽음을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같이 아침에 일어나면 십자가 바라보고 낮에도 십자가 바라보고 저녁에도 십자가 바라보고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천국 내 천국을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이와 같은 은총을 입게 된 것입니다.
<결론>
예수 믿는 신앙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에 하나가 되어 함께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세상 나라의 체계를 따라 살지 않고 우리 안에 임하신 예수님의 나라 체계를 따라 삽니다. 세상의 복과 하나님의 복은 그 근본이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세상복은 마귀와 세상을 따라오고 하나님의 복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통해서 하늘나라에 들어왔으니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을 믿고 기도하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십시오. 여러분은 홀로 살지 않습니다. 예수 플러스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에게는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가 있기 때문에 좋은 일이 안 일어 날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세상과 별세를 했습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 나라에 속하지 아니하고 마귀의 노예도 아니하고 세상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져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예수님의 축복과 도우심을 받고 살고 성령의 자유와 해방 속에 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게 됨을 감사합니다. 우리 인생은 외롭게 혼자 살지 않고 예수 플러스 생활을 하고 좋은 일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감사하며 찬송하고 살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우리 모든 성도들을 도와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옛날 세상과 별세 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희망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입술의 시인을 가지고 살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의 죽으심을 짊어진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옛날 로마의 사형 가운데 죄를 크게 지은 사형수는 어떻게 죽였느냐 하면은 죽은 시체를 나무에다 매달고 그 시체하고 같이 묶어 놓습니다. 눈은 눈대로 코는 코대로 입은 입대로 몸은 몸대로 시체하고 같이 묶어서 매달아 놓습니다. 그러면 시체가 썩어서 점점 산사람의 몸에 병균이 퍼져 들어오고 독이 들어와서 시체와 함께 죽어 부패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선생은 염두에 두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의 죽은 시체를 우리 몸에 걸머지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4:10) 예수의 죽은 몸을 걸머지고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장사지내고 나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부활시킬 때 우리를 함께 부활시켜 주신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본론>
1. 예수님의 죽음
첫째로, 예수님의 죽음과 우리가 하나 되었다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로 16절 함께 읽어 보십시다.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여기에 보면 계속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고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흉악한 죄인입니다. 우리의 지은 죄는 머리털 보다 더 많고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의로운 행동으로 우리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끌어안고 십자가에 못박혔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덕분에, 예수님의 은혜로, 예수님 축복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복을 누리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을 몸이 걸머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떠한 의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몸에 걸머지고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해서 함께 천당 가는 예수와 함께 영원히 사는 우리들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은 홀로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와 함께 이 땅에서 부터 영원한 천국까지 같이 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세상 나라에 대해서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었습니까? 이 세상을 걸머지고 죽은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 없이 마귀를 섬기고 사는 세상나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나라에 태어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나라를 품에 품고 세상나라에 끌려 살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품고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죽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더불어 마귀와 세상에 대해서 죽어서 우리와 인연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인연이 끊깁니다. 아무리 부모 자식 간에 사랑을 해도 부모가 죽고 난 다음에 자식이 죽은 부모를 가정에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무덤에 묻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옛사람이 세상과 같이 살다가 예수님을 모시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대해서 죽어 버렸으므로 세상을 하직하고 만 것입니다. 별세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는 체제이고 온 세상은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온 세상이 악한 자에게 처해 있는데 그 악한 자의 세상에 우리는 별세해 버리고 만것입니다. 죽어 버렸었습니다. 세상과 인연이 끊어졌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법적으로 세상에 속해있지 아니하고 이제 하나님의 아들 나라에 속해 있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몸에 걸머진다는 것은 이제는 세상하고 이별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탐욕을 벗어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탐욕에 대해서도 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에 지배되어 탐욕에 끌려 다니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므로 탐욕에 대해서도 죽었고 인연이 끊어지고 만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마귀의 본성이 탐욕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40주 40야 금식하고 광야에서 나왔을 때 마귀가 제일 먼저 유혹한 것이 탐욕인 것입니다. "돌을 변하여 떡을 만들어 먹어라." 떡은 쌀로써 만들어야지 돌로써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생기면 돌로써 떡이라도 만들려고 달라드는 탐욕으로 유혹한 것입니다. "뾰충탑에서 뛰어 내려라! 하나님이 돌보아 주어서 발이 땅에 부딪혀 부서지지 아니하면 사람들을 그를 보고 너를 칭찬하고 따라올 것이다." 탐욕인 것입니다. 비정상적으로 명예를 얻으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아주 인간적인 흉악한 방법으로 명예를 얻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마귀에게 절하면 온 천하만국을 다 주겠다고 말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마귀와 짝을 해서 살으라고 것입니다. 이러한 탐욕에 대해서 예수님은 전부 거부했었습니다. 예수님은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상나라에 대해서 죽고 세상 탐욕에 대해서 죽어버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기중심의 체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삶의 임금이요, 자기가 자기 삶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자기가 자기 주인이지요. 자기가 자기의 임금인 것입니다. 자기 원대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을 임금으로 자기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손님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내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나의 임금님으로 모셔 들여서 예수님이 나를 점령하시고 다스리시고 예수님이 소유하게 한 것이 참 신앙인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8절로 29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자기가 주인이 되고 마귀가 임금이 되니까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생겨나고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게 되고 수군수군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 주인 따라서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이면 타락한 마귀의 종 아닙니까? 마귀가 임금으로 점령하니까 마귀의 행실을 다하지요. 그런데 이 속사람이 주인이 죽고, 예수가 주인이 되고 임금으로 모셔 들이는 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은 내 마음에 내가 주인이 되지 아니하고 마귀가 주인이 되지 않고 내 마음의 주인은 예수님이 되고 임금님은 예수님이 되도록 변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리스도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 죽고, 탐욕에 대해서 죽고, 세상에 주인과 임금 노릇하는 자기와 마귀에 대해서 죽고 세상을 하직해 버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별세해 버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구 아버님이 건강하세요?"라고 물으면 "작년에 별세했습니다." "예? 별세하셨다구요?" "어머니는 건강하십니까?" "금년도에 별세했습니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안녕하십니까?" "예. 별세했습니다." "언제했나요?" "10년 전에 했습니다." "5년 전에 했습니다." "살아있는데요?" "예. 예수 안에서 세상과 별세했습니다. 세상 임금하고 별세하고 세상 주인하고 별세하고 세상 탐욕하고 별세하고 세상 삶과 별세를 하고 나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지고 별세하고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나라로 옮기심
둘째로,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진다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나라로 하나님이 옮기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하고 세상에서 죽었으니 이제 어디를 갑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들 나라로 하나님이 옮겨 주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여러분은 예수를 믿을 때 이사를 갔습니다. 세상에서 살던 여러분이 세상과 하직을 하고 별세를 하고 하나님이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그 사랑의 아들나라로 이사를 가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의 하늘 나라에 이사를 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요, 하늘나라 아들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나라에 살지 않고 하나님 아들이 다스리는 하늘나라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여러분을 통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통치하는 것입니다. 마귀에 속해있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에게 소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나라에서 별세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속에 예수님이 주인으로 와서 계시고 임금으로 예수님이 들어와 계시고 하늘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우리 안에 하늘나라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세상나라가 속에 들어와 있고 마귀가 그 속에 들어와 있는데 우리는 마귀와 세상나라에 별세하고 난 다음 예수를 통해서 하늘나라가 우리 속에 들어와 있고 예수님이 임금으로 주인으로 들어와 있으니 하늘나라 안에서 우리는 하늘나라의 은총을 살게 된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우리가 들어와 있어요.
영국 웨스트민스터에서 오랫동안 목회하시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20세기에 참으로 설교를 잘하는 목사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런데 원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젊은 시절 영국 황실에서 의사 선생님으로 병원을 결석하고 환자를 돌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환자를 의술로써 치료해주고 난 다음에 한 2~3개월 지나면 도로 그 병이 도져서 찾아오곤 합니다. 또 치료해 주면 또 한 2~3개월 지나서 또 병이 들려서 오곤 했는데 그래서 이 로이드 존슨 의사 선생님은 가만히 생각하기를 "아무리 내가 의사로서 껍데기 사람을 치료해 줘봤자 소용이 없는구나. 속에 있는 주인을 치료해야 진짜 치료가 되지 겉만 치료해 놓고 나니까 마음에 부정적인 마음, 긍정적이지 않은 마음, 절망적인 마음, 원망, 불평, 탄식, 절망을 가지고 있으니까 병이 도로 돌아오고 만다. 껍데기를 치료해 봤자 소용이 없다. 알짜 속사람을 치료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병원을 버리고 그는 목사로써 출발한 것입니다. 1년 동안 목사로써 받은 월급이 병원에서 한 달 받은 월급보다 작았습니다. 그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치료해야 된다. 그 사람을 아무리 치료해 봤자 영혼이 병들어 있으면 도로 병이 돌아오기 때문에 영혼을 치료해야 영혼도 살고 그 사람도 산다. 그렇게 해서 그는 훌륭한 주의 종이 되고 설교자가 되어서 나중에 영국에서 제일가는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최고의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우리를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를 받아서 영혼이 변화를 받아야 우리의 육체가 변화를 받고 영혼이 변화를 받아야 우리 삶이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하늘나라에 들어왔고 예수님과 함께 사니 예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역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며, 영혼이 잘되며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하늘나라의 역사인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기적이 하늘나라에 들어와 사는 사람에게는 늘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에 사는 사람은 세상나라 마귀의 흉악한 일들이 늘 일어나는 것처럼 하늘나라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의 역사가 우리의 생활 속에 늘 일어나게 돼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에 들어오면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미움과 원망과 불평이 늘 넘쳐났는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 아닙니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이 사랑이라고 아무리 행복한 결혼을 해서 돈이 많고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산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좋은 집, 좋은 음식, 좋은 옷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삶을 살아도 마음에 사랑이 있으면 행복하게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육자가 열심히 아동들을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내 자식처럼 가르치지 아니하고 직업적으로 가르친다면 아무리 훌륭하게 가르쳐도 그는 기계적인 직업인이요, 교사가 될 수없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제자들을 가르치면 훌륭한 교사가 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사랑이 모든 것에 제일인 것입니다. 장사를 해도 물건을 사가는 사람을 참으로 사랑해서 내 가족처럼 여기고 물건을 팔아야 그 사람이 축복을 받고 돈도 벌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대통령은 사랑을 가지고 국민을 다스려야 되고, 또 목회하는 목사는 목회에 설교만 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 참 사랑을 가지고 성도를 돌봐야 참 목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배하는 세계는 사랑의 세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들어와서 주님이 사랑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을 억지로 할 수 있나요? 미움을 억지로 버릴 수도 없고 사랑을 억지로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들어와 있으면 예수님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넘쳐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4절로 5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나님이 적은 사랑이 아니라 큰 사랑을 베풀어서 허물투성이인 우리, 죄투성이인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시고 부활시켜 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허락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우리는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사랑으로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먹고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수많은 슬픔에서 해방되고 수많은 범죄에서 해방되고 수많은 고통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나누기 운동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자는 운동이요, 사랑을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고 미움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나누기 운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하나님 중심 체계인 나라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 나라에 들어와 산다는 것은 내 중심으로 살고 세상중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주인이에요. 하나님이 나의 임금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나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 살았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예수님이 원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님이 이것을 했으면 무슨 말씀을 했을까. 예수님이 어떻게 할 것인가.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뜻을 따르고 예수님을 섬기는 삶이 하늘나라에 들어와서 사는 우리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5절에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라고 말한 것입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우리의 왕이요, 우리의 주인이 되었으니 이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3. 대속의 죽음 17:27
셋재로, 여러분 예수님의 죽음을 걸머지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왜 죽으셨습니까? 쓸데없이 순교 당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서 값을 지불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인을 건져 내어서 용서와 의와 영광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예수 죽음을 몸에 걸머지고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와 허물에서 죽고 그리스도의 의와 영광을 선물로 받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의 생명에 참여해요. 우리 힘으로 의롭게 될 사람 누가 있습니까? 우리는 죄를 옷 입듯이 다 입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먹고 마시고 사는 것입니다. 죄 덩어리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수 없어요. 하나님의 광명한 빛이 비취면 어두운 죄가 다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발가벗고 군중들 앞에 설 수 없는 것처럼 도망을 치고 말 것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옷을 받아 입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고 갚어 버리고 죄 없는 의로운 옷을 벗어서 우리에게 입혀 주었으니 예수님의 옷을 입었으므로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설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밝은 빛이 비춰서 부끄럽지 않은 것은 예수의 의로운 옷을 받아 입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값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인이 아니라 의롭게 되었는데 행위로 이루게 된 것이 아니라 공짜로 예수를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죄인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값없이 공짜로 은혜의 옷을 받아 입었습니다. 지금은 의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강제로 의인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어요. 죄인은 결코 하늘나라에 못 들어 갑니다. 의인만이 들어가는 곳인데 행위로써 의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행위로 의롭게 될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의 의로운 옷을 받아 입으면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히기 위해서 죄악의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십자가에서 성결의 생명에 참여 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 동안에는 여러분 더러운 부패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와 세속에 속해서 생각이 더럽고 부패하고 마음이 더럽고 부패하고 행위가 더럽고 부패합니다. 무엇을 봐도 더럽고 부패한 것이 꽉 들어차 있는 것입니다. 돼지소굴과 같은 곳에 살고 있고 구더기와 같이 화장실 속에 살고 있는 것과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우리 힘으로 거룩하게 될 수가 없어요. 깨끗하게 안돼요. 참말을 아무리 하려고 해도 자꾸 거짓말을 하게 돼요. 방탕을 안하려고 해도 방탕하게 돼요. 도둑질 안하려고 해도 자꾸 도둑질 하게 돼요. 미워 안하려고 해도 자꾸 미워하게 돼요. 우리의 힘으로 거룩하고 성결하게 안 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세상과 마귀를 못 박아 버리고 우리에게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 함께 읽어 보십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씻어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우리의 힘으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 의지하면 성령이 여러분을 거룩하게 살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곤하면 박카스를 마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원비디를 마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힘을 얻으려고 하는데 여러분 영적으로 박카스와 원비디는 바로 성령인 것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며 성령이여 나를 도우사 거룩한 생각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도우사 거룩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도우사 참말을 하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 우리에게 힘을 부쩍부쩍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과 죄악을 멸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예수님이 짊어지고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치료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우리가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도 늘 마음도 병들고 몸도 병듭니다. 이 세상에 병 안드는 사람이 누가 있는 것입니까? 한평생을 살면서 모두다 병들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더구나 공기가 부패하고 물이 부패하고 생활의 모든 환경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음식도 다 오염된 음식이요, 물도 다 오염되고 생활도 다 오염되니까 그것을 먹고 마시는 우리가 건강해 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심신이 다 고달프고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치료할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생기와 생명을 주어서 우리를 깨끗하고 건강하게 만들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건강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우리 베드로전서 2장 24절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 말씀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고 당신도 나음을 얻었고 여러분도 나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지 않습니까?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여러분 나음을 얻었습니다. 오늘 건강을 얻은 것을 축하합니다. 박수로 축하합니다. 하루에 천번도 만번도 나는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 나는 나았다. 나는 나았다. 나는 나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나았다고 외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진리를 통해서 질병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병이 안들 수는 없습니다. 병이 들어도 우리는 고침 받을 수 있는 능력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우리에게 아담이 갖다 준 저주에서 해방시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되고 네가 복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복덩어리가 될 것이다. 우리가 복을 받은 사람이 들에 가면 들이 복을 받고 집에 들어오면 집이 복을 받고 떡반죽 그릇을 만지면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짐승을 키우면 짐승의 새끼까지 복을 받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하고 같이 살면 복이 훨훨 넘쳐 들어오는 것입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이냐. 예수를 믿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사람이 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다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우리를 저주에서 피로서 값 주고 사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누구라구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복덩어리입니다. 당신은 복덩어리입니다. 여러분은 복덩어리입니다.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됩니다. 저주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여러분 매일같이 말하십시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복을 받았으므로 저주가 나를 넘어뜨리지 못한다. 나는 망할 수가 없다. 나는 저주받을 수가 없다. 여러분 네 입의 말로 네가 묶였으며 네 입의 말로 내가 사로잡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꾸 말하면 복이 여러분을 묶고 사로잡아 놓는 것입니다. 사람은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만 잘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되는데 그 복은 예수님을 통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복을 받아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린 것은 저주를 담당하시고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그 대속의 은혜에 참여하기 위해서 예수의 죽음을 몸이 걸머지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활 영생의 생명에 참여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이 땅에서 죽음에 처했을 때 그대로 버려 놓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죽고 육체로 부활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주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죽으면 육체를 벗어 버리고 영혼이 낙원에 갑니다. 낙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주님 강림하시는 날엔 주와 같이 와서 부활해서 이제는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낙원에 들어가 있다가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부활의 영생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죽음이 없습니다.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은 철폐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멸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므로 사망과 음부는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약속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살고,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살고,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살고, 엎어져도 살고, 넘어져도 사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살고,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산다. 뭐 항상 사는 것이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 영생을 얻었으니 축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 십자가에 죽은 것을 우리가 끌어 안고 짊어지고 있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값주고 사주신 용서와 의의 영광도 우리에게 다가오고 거룩함과 성령충만한 역사도 다가오고 치료의 역사도 다가오고 아브라함의 축복의 역사도 다가오고 부활 영생 축복의 역사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내 죽음이요, 그리스도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해에 거두려거든 곡초를 심어라. 십 년 뒤에 거두려거든 나무를 심어라. 백 년 뒤에 거두려거든 사람을 심어라. 영원을 거두려거든 복음 즉, 예수를 심어라." 또한 이런 말도 있습니다. "돈을 잃은 것은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아니요, 건강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요, 인격과 영혼을 잃은 것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것은 모든 것을 잃어 버립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의와 결과 치료의 생명에 참여할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복과 함께 부활영생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항상 걸머지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우리 신앙생활이 중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지 하나님이 우리를 천사를 통해서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인 우리의 죄,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마귀와 더러움을 짊어지시고 사람의 병을 짊어지시고 사람의 저주를 짊어지시고 사람의 죽음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다 멸하시고 청산해 버리고 부활했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걸머지면 예수의 생명도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서 예수님과 더불어 살고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며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주장하는 역사를 베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신학적인 이론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4. 우리가 사는 두 세상
넷째로, 지금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두 가지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예를 들어보면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에서 살았나요? 애굽에서 살았지요. 애굽은 바로가 그들의 임금이었습니다. 바로를 섬기며 바로가 주는 복을 받아 살고 바로 밑에서 노예생활을 한 것입니다. 혹독한 노예생활을 한 것입니다. 애굽에 살 동안에는 별 도리 없이 바로를 섬겨야 되고 바로가 주는 음식을 먹고 물과 양식을 먹고 살아야 되고 바로의 종노릇 하고 살아야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6절에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했는데 사백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산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를 통해서 해방되어 광야에 나왔을 때는 이제 바로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아 살고 자유와 해방 속에 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 세계 속에 살았습니다. 바로의 지배하에서 살다가 광야로 나와서는 하나님의 지배하에 살게 된 것입니다. 바로에게 복을 받아서 살던 그들이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만나를 받아먹고 물이 바위에서 솟아나고 쓴물이 달아지고 하나님이 치료해 주시고 신발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시고 의복이 닳지 않게 해주시고 하나님이 평안을 주신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게 된 것입니다.
신명기 7장 8절로 9절에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야훼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들이 옛날에는 하나님 없이 살았지만 이제 하나님 모시고 살고 옛날에는 바로의 손에서 인간적으로 도움을 받고 살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제는 기적으로 살고, 옛날에는 바로의 종살이했지만 이제는 자유와 해방 속에 사는 것입니다.
5. 우리의 삶
우리의 삶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두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는 세상에 살지 않았습니까? 마귀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세상 복을 따라 살았었습니다. 세상에서 애쓰고 힘쓰며 땀을 흘리고 세상 복을 따라서 살고 죄와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산 것 입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사람은 세상 나라의 삶을 살고 마귀의 지배를 받아 살고 세상 복을 따라서 살고 죄와 탐욕의 노예가 되는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서 별세하고 예수님의 나라에 들어온 우리들은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살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살뿐 아니라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의 복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 복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복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 세상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이요 너희 하늘나라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을 줄을 아시느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경제가 나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세상나라 식으로 살면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식으로 사니까 땅보고 살지 않고 하늘 쳐다보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만나처럼 내려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복을 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기 때문에 세상이 어두울지라도 겁날 것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사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의 복인 것입니다.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을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놀라지 말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바랍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가 너를 붙들어 주리라. 내가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없이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살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짊어져 주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은혜로 살게 되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나라에 들어와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자유와 해방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5장 1절 다시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는 자유와 해방이 있는 것입니다. 마귀와 악의 종노릇하지 않습니다. 습관에 종노릇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유를 얻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의와 평강과 희락 가운데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예수님 나라에 들어와서 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세상 나라와 예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동시에 임하여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나라에 들어오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변화를 받고 사는 것입니다.
교회사 가운데 예수님을 만난 후, 확실하게 변화되어 위대한 인물이 된 분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한분이 고아와 기도의 아버지로 유명한 죠지뮬러 목사님인 것입니다. 그는 16살 때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갔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술과 여자, 노름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20살에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과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3천명의 고아를 기르고 수많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도와주는 성인으로서 인생을 사는 변화를 받게 된 것입니다. 중세의 위대한 교부인 어거스틴 역시 젊은 시절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여 결혼도 하지 않고 동거하여 아들을 낳기도 하고 이단에 빠지고 그 어머니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못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32살에 마음에 회개하고 예수 믿고 난 다음 "옛 어거스틴은 죽었고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 위대한 성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두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쾌락을 따라 노예의 생활을 하는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며 자유와 해방 속의 삶으로 살 것인가. 이 두 가지 세계를 우리가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자유와 해방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는 영광과 기쁨을 삶을 살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는 두 나라가 우리를 서로 빼앗으려고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나라가 여러분과 나를 시시각각으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는 성령이 여러분을 지키고 보호하고 은총과 사랑과 역사를 베풀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모두다 예수 죽음을 몸에 걸머지면 세상과 마귀와 별세를 하고 하직을 하고 예수의 나라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 죽음, 내 죽음을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같이 아침에 일어나면 십자가 바라보고 낮에도 십자가 바라보고 저녁에도 십자가 바라보고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천국 내 천국을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이와 같은 은총을 입게 된 것입니다.
<결론>
예수 믿는 신앙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에 하나가 되어 함께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세상 나라의 체계를 따라 살지 않고 우리 안에 임하신 예수님의 나라 체계를 따라 삽니다. 세상의 복과 하나님의 복은 그 근본이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세상복은 마귀와 세상을 따라오고 하나님의 복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통해서 하늘나라에 들어왔으니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을 믿고 기도하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십시오. 여러분은 홀로 살지 않습니다. 예수 플러스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에게는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가 있기 때문에 좋은 일이 안 일어 날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세상과 별세를 했습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 나라에 속하지 아니하고 마귀의 노예도 아니하고 세상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져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예수님의 축복과 도우심을 받고 살고 성령의 자유와 해방 속에 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게 됨을 감사합니다. 우리 인생은 외롭게 혼자 살지 않고 예수 플러스 생활을 하고 좋은 일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감사하며 찬송하고 살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우리 모든 성도들을 도와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옛날 세상과 별세 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희망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입술의 시인을 가지고 살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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