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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삶과 나의 태도

창세기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239 추천 수 0 2009.12.29 00: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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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50:15~21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7. 27. 주일 4부 설교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더불어 '주어진 삶과 나의 태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절대로 변화시킬 수 없는 자아와 변화시킬 수 있는 자아를 겸하여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1936년 2월 14일 경상남도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31번지에서 조두천 아버지와 김복선 어머니의 맏아들로 태어난 사실은 아무리 노력해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운명입니다. 이것은 나의 힘으로는 바꿀 수가 없는 변화시킬 수가 없는 자아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의 성장기를 통해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운명인 것입니다.

<본론>
1.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라
첫째로, 자기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원망치 말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출생과 주어진 환경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농촌에서 태어났든 도시에서 태어났든지, 부잣집에서 태어났던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던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던지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던지, 좋은 시절에 태어났던지 나쁜 시절에 태어났던지 이와 같이 주어진 환경은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나는 그러한 환경 속에 우리 부모님에 의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변화시킬 수 없는 사실이므로 이러한 것을 원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신체조건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난 것이나, 여자로 태어난 것,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나, 평범한 모습으로 태어난 것, 큰 키, 작은 키 등등은 주어진 운명인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에 있던 한 여학생은 자기가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항상 탄식을 하고 원망하던 것 지금도 내 마음에 기억납니다. "내가 왜 남자가 되지 못하고 여자가 되었느냐." 그때도 제가 생각하기를 여자로 태어났으면 만족해야지 왜 자꾸 남자가 되려고 하느냐. 지금도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기의 출생과 주어진 환경도 어찌할 도리가 없고 자기의 신체조건도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까 원망, 불평, 탄식하지 말고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태어난 사회적 신분 다시 말하면 상류사회에서 태어났던지, 중류사회에서 태어났던지, 하층사회에서 태어났던지 자기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부모가 상류사회에 살았으면 상류사회에 태어난 것입니다. 부모가 중산층이면 중산층 가정에 태어나고, 부모가 하층사회에 살았으면 하층사회에 태어난 것이요, 그것을 저항하고 원망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자기가 태어난 국가를 원망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 아무리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아.. 내가 미국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영국이나 구라파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남미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런 쓸데없는 소리할 이유가 없습니다. 태어난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북한에서 안 태어난 것만 해도 기가 막히게 감사할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난 것도 자기의 운명이니까 운명은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원망치 말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게 지혜인 것입니다.

2.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그러나 둘째로,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곳에서 새 삶을 꿈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진흙이요 하나님은 토기장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진흙을 가지고 하나님은 훌륭한 토기를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진흙이라도 토기장이가 어떠한 그릇을 만드는가에 따라서 장단지도 될 수가 있고 화병도 될 수 있고 밥상에 올라가는 아름다운 밥그릇도 될 수 있고, 국그릇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처지를 원망하지 말고 우리 진흙인 우리를 하나님께 맡기고 새로운 삶을 꿈꾸면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다른 점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운명에 던져지고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어떠한 운명에 변화시킬 수 없는 환경에 태어났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므로 우리의 진흙 같은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새로운 삶을 줄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하나님은 토기장이로써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사야 64장 8절에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되면 처참한 환경에서 위대한 인물이 많이 태어난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삶을 꿈꿀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주어진 환경을 내어 맡길 때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있는 처지에서 원망과 불평과 탄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나라를 원망하고, 자기 운명을 원망하지 말고 있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내 힘으로 운명을 거역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운명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로 6절에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22장 13절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희망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 하시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니라. 둘째 날에 궁창이 있으라 하시고 저녁이 되니 아침이 오니 둘째 날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저녁같이 어두워도 예수 믿는 사람은 아침이 오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녁을 변하여 아침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항상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온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오면 아침이 온다. 내 인생이 아무리 어둡고 캄캄하고 좌절과 절망이 올지라도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은 아침을 만들어 내시는 소망 찬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있는 처지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처지를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요셉의 운명과 삶과 믿음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17살 때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렸습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원수에 잡혀서 노예로 팔린 것 아니고, 친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요셉을 잡아서 애굽 노예로 팔아버린 것입니다. 노예로 간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10년 동안 노예생활과 그 다음에는 또 모함을 당해서 3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나이 30세가 될 때까지 그는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을 계속한 것입니다. 얼마나 운명을 원망하고 탄식하고 형들을 미워하고 이를 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저녁이 왔으면 반드시 아침이 올 것을 기대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그의 노예 생활은 캄캄한 어둠이었던 것입니다. 어두운 밤의 10년 생활 그 다음에는 보디발의 아내의 참소로 3년 동안 정치범 감옥소에 들어가서 썩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밤이었습니다. 밤을 바라보고 탄식하고 가슴치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오면 아침이 온다. 나에게 반드시 아침이 온다. 그래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아침이 다가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가 요셉을 등급 시켜 애굽의 국무총리로 만든 것입니다. 바로가 꿈을 못 꾸는 해석을 못하는데 요셉이 꿈을 해석해 주고 바로에게 뽑혀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고 애굽을 다스리는 놀라운 권력자가 된 것입니다. 나중에 형들이 다 요셉을 의지하고 애굽에 와서 먹고 살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두려워서 요셉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아버지가 죄를 용서하라고 유언을 하시고 돌아가셨다고 거짓말로 꾸며 댔을 때 요셉이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형들에게 간곡히 위로했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형들은 요셉을 해하려고 했었습니다. 밤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침으로 변화시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선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앞날에 무엇이 캄캄한 밤이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께 의지하면 그것을 아침으로 바꾸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소망으로 바꿉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보다 더 비참한 절망이 어디 있습니까? 그가 무덤에 들어 간지 사흘 만에 하나님은 무덤 문을 열어 버리고 부활시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어둠은 지나가고 밝은 아침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인 것입니다. 죽음 뒤에 부활을 항상 꿈꾸는 우리 성도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3. 과거는 십자가 밑에서 용서하고 청산하라
셋째로, 우리 과거는 십자가 밑에서 용서하고 청산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늘 걸머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은 비극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과거는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과거는 떠나간 물고기 같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물고기를 손에 잡았다가 물에 놓쳐 버리십시오. 헤엄쳐서 도망치고 다시 손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사건인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담가 놓고 아무리 그것을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슬퍼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실체는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내 마음에 남아서 상처를 주고 있을 따름인 것이므로 내 마음에 남아있는 과거를 예수님 십자가 밑에서 용서하고 청산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8절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3절에도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간다고 말한 것입니다.
뒤에 일은 하나님께서도 잊어버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 선생도 뒤에 일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서 나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뒤에 일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크나큰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네가 나를 이렇게 했지. 옛날에 나를 고통 주게 했지. 나에게 괴로움을 갖다 주었지.' 옛날은 지나가 버렸는데 기억만 가지고서 늘 이를 갈고 피를 흘리고 있으면 그것이 나에게 독이 되어 나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킬 따름인 것입니다. 옛날은 흔쾌하게 잊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다 청산해 버리고 던져 버리고 과거를 청산해 버리고 나쁜 독을 빼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배운 교훈만 가지고 지혜를 얻기 바랍니다. 과거에 내가 잘못해서 고통을 당했으면 그 과거는 지나가 버렸으니 용서하나 거기에서 지혜로운 교훈을 배워서 다시 똑같은 실수를 안 할 수 있도록 마음속에 작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8장 33절에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면 더 지혜롭게 되고 지혜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잘못했으면 그것이 훈계가 되어서 다시 그런 것을 하지 않도록 지혜를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자꾸 짓고 실패하고도 그것을 반복하는 것은 지혜를 얻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람이 지혜를 얻으면 교훈을 받고 새로워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내가 고난당하고 난 다음에 깨닫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법을 배워서 다시는 고난 안 당하는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옛날 일을 자꾸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과거는 청산하되 과거에서 배운 교훈은 마음속에 간직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과거의 기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과거의 죄를 늘 마음속에 기억하고 죄 때문에 탄식하고 과거에 당한 고통에 늘 피를 흘리고 과거에 실패를 원망하고 탄식하고 가슴을 치고 과거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학대를 생각하고 분노를 품고 있으면 나만 괴로웠지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는데 내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7절과 9절에 보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를 사해 주시고 깨끗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과거에 죄도 십자가 밑에서 청산하고 고통도 청산하고 실패도 청산하고 분노도 청산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 자매님 한분이 제게 신앙상담을 왔는데 과거 때문에 그 마음에 굉장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굉장한 성공한 사업가로써 아주 부자로 살았었습니다. 생활환경이 좋고 행복하지만 그 부인은 병들어서 죽어가게 되고 불면증에 걸리고 소화불량증에 걸리고 몸도 약하고 고통을 당하고 병원에 가서 아무리 치료해도 치료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나에게 와서 신앙상담 왔을 때는 몸이 아주 초췌했었습니다. 그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러운지 내가 이야기 하라고 하니까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피난시절이 얼마나 괴로웠었습니까? 어머니하고 그가 부산피난생활을 가서 고통을 당하고 단칸방에서 살다가 지금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지 않고 같이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대소변을 가리지 않고 온갖 것을 다 찢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데 조그마한 비둘기 통만한 단칸방에서 그렇게 하니까 남편이 더 이상 살지 못하겠다. 어머니와 떠나든지 나에게 떠나든지 둘 중 에 하나를 택하라고 말했었습니다. 이 어린 소녀가 결혼도 안하고 만난 남편과 같이 사는데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서 똥, 오줌을 싸고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니 누가 그 남편이 살려고 합니까?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어머니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 시골로 가서 버스정류장에 내려놓고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죽은 지 살은 지 모릅니다. 살기에 바빠서 어머니 버린 것조차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수복이 되고 난 다음 서울에 올라와서 그 남편은 대성을 했습니다. 큰 중소기업의 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과거의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버린 그 죄가 마음속에 고통이 와서 그는 너무나 너무나 괴롭게 된 것입니다. 하루를 편안하게 살수가 없습니다. 과거는 지나갔습니다. 6.25사변의 그 고통은 지나갔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는데 고통은 지나가고 이제는 편안하고 잘살게 되었는데 환경은 지나갔지만 마음속에 있는 과거는 지나가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자매님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버린 것은 참으로 잘못했지만 그때 환경에 저도 6.25사변을 당했지만 앞길을 가릴 도리가 없는 고통스러운 생활이었습니다. 입에 풀칠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든지 굶어죽는 사람이 비일비재한 그 상황에서 소녀의 몸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니가 지금 살아 계신다면 자기 하나밖에 없는 딸이 고통을 당하고 병들어 죽기를 원하겠습니까? 자기 딸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니는 딸보다도 마음이 다릅니다. 어머니가 지금 살아계신다면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딸의 행복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것은 지금 마음에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버린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털어 버리십시오." 마음을 털어버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당신이 죄를 대신 짊어지고 못 박혀서 몸 찢고 피를 흘렸습니다. 예수께 나오면 보혈이 당신 마음을 씻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꿇어 앉아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난 다음에 그 마음에 과거를 씻었습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과거가 깨끗하게 되자 마음이 가벼워지고 얼마나 기뻐하고 즐거워했던지 그 다음에 교회에 얼마나 충성하고 헌신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주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과거는 이미 지나간 사건이지만 내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 그것이 내 마음에 독이 되고 나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과거를 청산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 십자가에서 회개하고 보혈로 씻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9절로 10절에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우리 과거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옛사람을 끌어안고 청산해 버리고 새사람으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님 안에서만 새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과거의 기억을 정화해야 되는 것입니다.
흑인 사생아로 빈민가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 성폭행을 당하고 열네 살에 임신을 하고 20대에는 마약에 빠져 지냈던 오프라 윈프리는 누가 보아도 인생의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오프라 윈프리라고 말하면 여러분 영어를 아는 세계 속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놀라운 토크쇼의 천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실패의 위기와 고난을 극복하는 흑인 여성들의 강인한 삶을 다룬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약점과 부끄러운 과거를 이겨낼 의지를 길렀습니다. 그리고 더욱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토크 쇼의 프리마돈나'로 추앙 받으며 배우로서,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로서, 자선가로서, 그리고 사업가로서 실패를 극복한 산 증인으로 서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 1년간 미국 TV방송 진행자 중에서 최고로 많은 돈을 버는 스타로 오프라 윈프리를 꼽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상처를 지혜로 바꿔라." 오프라 윈프리가 자기의 과거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십자가에서 그 상처를 다 청산하고 자기를 성폭행하고 어린 소녀를 임신 시키고 버린 남자를 용서하고 재기할 수 있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그는 오늘날 세계적인 인물이 된 것입니다. 실패는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지혜를 열어주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과거의 기억을 청산하고 과거에 배운 교훈에서 지혜를 얻어서 새 출발하는 우리가 되어야 될 것인 것입니다.

4. 더 나은 내일에 대한 꿈과 믿음을 가져라
넷째로, 더 나은 내일에 대한 꿈과 믿음을 우리는 마음속에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은 변하지 않았더라도 꿈과 믿음은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꿈과 믿음이란 내 마음속에 가지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갖다 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운명은 저항할수록 나를 더 붙잡습니다. 과거를 원망하고 불평하고 현재 환경을 탄식하고 가슴을 치면 칠수록 더 부정적인 마음이 다가오고 더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과거에 저항하지 말고 과거를 용서해 버리십시오. 현재에 원망, 불평하지 말과 하나님께 내어 맡겨 버리십시오. 여러분은 내일을 향해서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운명을 바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3장 5절로 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이 우리의 과거를 청산하고 현재를 변화시켜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줄 토기장이로써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우리가 맡기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가지고 자꾸 계산하고 집도 잃어 버렸다. 자식도 잃어 버렸다. 건강도 잃어 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 하나님도 무심하다. 이런 인생을 살아서 뭐냐. 이렇게 탄식하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잃어버린 것을 계산하지 말고 그래도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계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래도 나는 살아 있다. 그래도 나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나는 건강이 있다.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해야지 없는 것을 자꾸 들춰서 원망, 불평하면 아무도 그를 도와줄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도 이미 지나간 것을 놓아 버리고 현재 고통스러운 환경은 바라보지 말고 그 가운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면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태양을 주시고 태양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에 연연해하지 마세요. 이전보다는 작겠지만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과 꿈이 바로 행복의 조건입니다. 마음속에 꿈이 있나요? 그렇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겁니다." 이 말은 베제트 병으로 죽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임임택 씨의 말인 것입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한쪽 눈을 실명하고, 21살 때 두 눈을 모두 실명한 상태에서 피부염이 걸리고, 구내염이 걸리고, 관절염, 고혈압의 합병증으로 고통 가운데 혀에 구멍이 일곱 개나 뚫어졌었습니다. 음식물은 물론 물도 마시지 못했습니다. 의사도 포기하고 가족들도 곧 죽을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우연히 참석한 전도 집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무서운 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이후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까'만을 생각하다가 새벽예배에 피아노 반주자가 없는 것을 보고 '저 자리가 내 자리다'라는 생각으로 오로지 독학으로 30대에 피아노를 배워 새벽예배 피아노 반주자로 7년간 봉사를 했습니다. 장님인데 선생도 없고 아무도 없는데 지팡이 짚고 새벽기도회에 나갔는데 새벽기도에 피아니스트가 없어 음악 반주를 못하니까 '저 자리가 내 자리다. 나는 비록 눈을 보지 못하고 배운 것이 없지만 손이 성하니까 피아노를 배워서 새벽 반주를 해야 되겠다고. 그래서 그날부터 피아노를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해 가지고서 피아노 반주자가 되어서 교회 새벽기도회에 7년 동안 피아노 치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 이후에 작곡과 편곡, 피아노 조율을 배우고 40대에 컴퓨터를 배웠으며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50대가 된 지금은 세계적인 미디어 뮤지션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처한 상황이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겸허이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주님을 의지하여 꿈과 소망을 가지고 내일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삶과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운명을 붙잡고서 울면 무엇하는 것입니까? '왜 장님이 되었나. 왜 여러 가지 병이 들어왔냐. 왜 혀가 일곱 군데나 구멍이 뚫어졌나. 나는 왜 이렇게 버림받은 인생이 되었나.'하나님도 원망하고 부모도 원망하고 운명과 환경을 원망한다면 그는 버림받고 아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가서 말씀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결과에 하나님이 병을 다 고쳐 주셨습니다. 비록 장님이지만 손발이 있으므로 그것을 가지고 피아노를 배워서 피아니스트가 되고 교회 봉사하게 되고 그는 피아노 작곡도 하고 편곡도 하고 조율도 배우고 컴퓨터도 배우고 이제는 당당한 사회인으로서 성공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있는 것을 가지고서 감사하고 그를 통해서 꿈과 희망을 가진 이상 그를 중지시킬 사람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있습니까?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여러분 가만 보십시오. 여러분 두 눈이 있지요. 귀가 있지요. 입술을 열어서 말할 수 있지요. 두 손이 있지요. 건강을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삼시세 때 밥 잡숫고 나오셨지요.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6.25를 통해보지 않은 사람은 저 말이 실감이 안날 것입니다. 저는 6.25를 통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때 여러분 모든 사람들은 다 잃어 버렸습니다. 가족도 건강도 직장도 아무것도 없는 정말 하늘과 땅 아래 외로운 빈손 들고 그래도 삶을 이어나간 것입니다. 거기에 비교하면 지금은 부자 중에 부자요, 행복한 중에 행복한 것입니다.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우리는 조급하게 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꿈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시간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려야 돼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원하는 데로 신속히 다가오지 않더라도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시편 123편 2절 우리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야훼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기다린다. 종이 상전의 손을 바라보고 여종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고 무엇을 시킬지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85세에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90살이 되고 95살이 되고 100살이 될 때까지 15년을 기다려서 아들 이삭을 얻은 것입니다. 85세에 약속 받은 것 15년 동안 그는 낙심하지 않고 기다린 결과에 아들을 얻은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20년 처가살이 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렸다가 20년 만에 하나님이 큰 은총과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40대 이루지 못한 꿈을 80에 하나님이 이루어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결코 우리 인간의 생각대로 하나님이 늦게 오신다고 탄식하지 말고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한 건물의 입구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 얼굴에는 주름이 많고 옷차림도 허름했습니다. 그러나 늘 밝은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한번은 건물의 주인이 지나가다가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늘 좋은 일이 있나 봐요. 늘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고 있으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제 걱정은요. 트럭에 담으면 100대도 넘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밝은 얼굴을 가지고서 삽니까? 무슨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나요?" 할머니는 그에게 행복한 삶의 비결을 들려주었습니다. "내게 특별한 비결이 하나 있어요. 저는 고통이 닥치면 예수님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셨던 사흘을 생각하면서 사흘 동안 견디자. 나흘째가 되면은 좋은 일이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슬픔과 고통이 다가오면 나는 예수님 사흘 동안 무덤에 있는 캄캄한 밤을 생각하고 사흘을 기다린 것입니다. 나흘이 되면은 상태가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흘 뒤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해가 뜬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에 처할 때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고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할머니처럼 사흘만 인내하면 대부분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용기와 희망이 생겨나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서둘지 말고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줄 것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은 10년을 기다린 것을 보통으로 여겼습니다. 20년, 30년을 보통으로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는 열흘을 못 기다리고 한 달을 못 기다릴 때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기다리고 주를 바라보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1년간 해도 안 될 것 주님이 찾아오면 하루 만에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순식간에 다가와서 모든 것을 바꿔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주님을 앙망하고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고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 낙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실까? 나를 관념하실까? 나를 기억하실까?' 이렇게 생각하면 초조해지지요. 주님이 나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을 알면 주님이 나를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기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과 37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을 리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자기를 십자가에 내어 놓고 몸 찢고 피 흘리기 까지 참으면서 우리를 위해서 죽을 리가 있겠습니까? 오늘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은 무궁한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어떻게 알아줄까요? 여러분 하나님이 부르지 아니하시면 주께로 나올 자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수많은 사람 중에 여러분이 오늘 교회 와서 앉아 계신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아시고 택해서 불렀기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 보았나요? 예수님 얼굴을 쳐다 본적이 있나요? 하나님을 본적도 없고, 예수님을 본적도 없지만 예수님을 믿고 나온 것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여러분을 택해서 여러분을 불렀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르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아시고 여러분은 예수님을 못 보았으나 예수님은 여러분 보시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미리 사랑하시사 예정하시고 불러 주셨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맡겨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집이 높은 지대에게다 집을 지어놓고 난 다음에 그 다음 마당은 낮은데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님께서 내 어릴 때 나를 높은데 마루에 세워 놓고 난 다음에 "뛰어 내리라. 내가 안아 주마. 뛰어 내리면 안아 주마" 그런 일이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나는 겁이 났어요. 아버지가 만일 안 안아주면 나는 박살이 날 터이니까. "아버지 정말 날 안아줄래?" "안아준다니까. 자 뛰어라! 뛰어!" "그러면 뛴다. 뛴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난 못해!" "왜, 아버지가 안아 준다는데 왜 못하느냐. 뛰어라 뛰어!" "그러면 정말 뛴다. 요잇 뛴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아, 난 못해! 나 못해!" 아버지가 "네가 나를 못 믿느냐. 네가 나를 다치게 할지라도 너를 다치게 안한다. 뛰어라!" 그래서 나중에는 눈을 딱 감고 뛰니까 아버지가 덥석 안아 주시더라구요. 한번 안아주면 그 다음에는 아버지가 멀리 있는데도 "뛴다. 뛴다. 뛴다." 아버지가 기겁을 하고 뛰어와서 나를 안아주시곤 했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주님께 맡기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여러분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고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주님을 앙망하고 기다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바꿀 수 없는 운명과 환경은 많잖아요. 제가 조두천 장로님과 김복선 권사님의 맏아들로 태어난 것 못 바꾸잖아요. 제가 경상남도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31번지에 태어난 것 못 바꾸잖아요. 바꿀 수가 없어요. 그것은 부모님이 나를 낳을 때 주어진 환경인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와서 내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길은 많습니다. 저는 17살에 폐병에 걸려서 쓰러지고 난 이후에 그 다음 고향을 떠나서 20살에 서울로 올라와서 내 인생이 많이 바꾸어졌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주어진 그 환경에서 많이 바꾸어진 것은 내 몸으로 못 바꿀지라도 마음으로 바꿀 수가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느니라. 몸으로 환경으로 못 바꾼 것은 마음으로 바꾸는 바꾸어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마음으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이 없어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가 없어도 내가 마음으로 내 운명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십시오.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바꾸십시오. 마음이 늘 부정적이고 원망하고 불평하면 운명은 바꿔지지 않습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을 주님을 의지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바꾸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희망찬 마음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희망을 버린 사람은 자기 운명을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환경이 아무리 어둡고 캄캄하고 좌절되고 절망될지라도 마음에 희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희망의 불길을 끄지 말고 희망의 생각으로 가득 채워 놓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인은 용서받은 의인이 될 희망이 있고, 세상에 묶인 사람은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될 희망이 있고, 병든 사람은 치료받을 희망이 있고, 저주받은 사람은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을 희망이 있고, 죽는 사람은 천국 영생을 얻을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희망이 놀라운 것입니다. 희망을 저버린 사람은 하나님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세상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생각을 긍정적으로 희망차게 가져야 그 사람은 운명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주어진 환경은 내가 아무리 바꾸려도 해도 바꿀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꿈과 희망은 내가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꿈을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입을 여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채우는 것은 내가 못해도 입을 여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입을 열면 채우는 것은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꿈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 랜드럼이 쓴 「신화가 된 사람들」은 야구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나 세계적인 농구 선수 윌마 루돌프나 신이 내린 축구 천재라는 말을 듣는 펠레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권투의 무하마드 알리 등 세계적인 수퍼스타 운동선수들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이들이 성공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신체적인 우월성을 타고 난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 이들의 운동신경, 점프력, 근육의 힘, 반사 신경 등을 평가해 봤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허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특별함은, 신체적인 조건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이들의 공통점은 확고한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열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달랐어요. 세계적인 운동선수와 운동 체력이 강해서 점프력이 강해서 신체조건이 좋아서 되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TOP가 되겠다는 열렬한 꿈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꿈이 운명을 바꿔 놓은 것입니다. 환경은 자기들이 변화 시킬 수 없지만 신체조건은 부모가 낳아 준대로 그대로 변할 수 없지만 마음속의 꿈은 자기가 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꿈이 이루어질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그들의 투지와 노력은 늘 자신이 최고 정상의 자리에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미 이룬 것으로 늘 고백함으로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사차원의 원리를 사용한 것입니다. 희망찬 생각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꿈을 믿고 꿈이 이루어진 것을 입으로 시인하면서 열심히 한 결과에 세계적인 TOP운동선수들이 된 것인 것입니다. 더 나은 내일에 대한 꿈을 가지십시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는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입술의 고백을 굳게 잡을 때 우리는 주어진 삶에 더욱 최선을 다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잘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속에서 그것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희망을 가지십시오. 그렇게 꿈을 꾸십시오. 그렇게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렇게 입술로 고백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운명은 변화 시킬 수가 없고 환경은 변화 시킬 수 있고 내 주변은 변화 시킬 수 없지만 마음은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변화시켜서 운명과 환경을 변화 시키고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변화 시키지 않으면 결코 여러분의 자원은 동원할 곳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린 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도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릴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입니다. 하나님을 본 자가 있나요?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고 다스리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창조하고 다스리는 능력을 하나님은 주신 것입니다. 인물이 잘나고 못난것 상관없습니다. 키가 크고 작은 것 상관할 것 없습니다. 몸무게가 나가고 안 나가고 상관할 것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여러분 스스로가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희망을 가지고 마음에 최고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마음에 굳센 믿음을 가지고 입술로 창조적인 고백을 하고 나가는 이 사람은 운명과 환경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사용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태어나서 자란 환경을 돌아보고 원망, 탄식하지 말고 지금 살고 있는 여러분, 내일에 대한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옵니다. 마음에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내일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내일은 바로 여러분 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속을 하나님 말씀으로 가꾸고 개발하면 상상을 초월한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믿음을 행사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각 사람에게 이미 믿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와서 "주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까 주님이 "옛다. 믿음을 가져라." 그렇게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믿음이 이미 있는데 있는 믿음의 겨자씨 한 알만 사용하면 이 산들에 명하여 바다에 던져야 될 것이요. 못할 일이 없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미 있는 믿음 중에 겨자씨만한 것만이라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믿음을 달라는 제자들에게 믿음을 더 줄 필요가 없다. 이미 있는 믿음 중에 겨자씨만한 믿음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겨자씨 여러분 보았지요? 목걸이도 있고, 전화기에 다는 것도 있고 펜에도 있고 거기에 겨자씨가 얼마나 적습니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사용하라는데 그것은 여러분이 이미 겨자씨만한 믿음은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기 보십시오. 겨자씨 들어 있잖아요. 빨갛게... 그러므로 믿음이 없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습니다." 더 큰 믿음 필요 없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충분해요. 산만 옮겨 가면 되었지 더 이상 뭐가 필요한 것입니까? 그러므로 믿음을 행사하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안 믿는 사람은 이 믿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없는데 뭘 믿으라구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누구든지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그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로마서 4장 17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니 이 하나님을 믿으면 가슴 펴고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입술이 고백을 굳게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찬송을 열심히 하면서 손바닥을 치고 찬송 부르는 것을 제가 가만히 보고 또 텔레비 스크린에 보니까 어떤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입만 들썩들썩 해요. 왜 찬송이 중요합니까? 찬송은 여러분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찬송 부르는 데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를 쓰고 찬송을 부르는 것은 내 입술의 고백을 찬송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고백은 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찬송은 입술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가마다 여러분 구원과 축복과 치료와 영광에 대한 찬송을 부르는데 이것을 입술로 고백하기 때문에 이 고백을 통해서 여러분 생활 속에 이것이 이루어질 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에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입술의 고백으로 땅에서 묶고 땅에서 푸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성공으로 묶는 것이고 안 된다. 못한다. 나는 패배자라고 말하면 실패로 나를 묶는 것입니다. 입술이 말이 여러분의 운명의 행로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어디를 향해서 갑니까? 낭패와 실망과 절망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낭패와 실망의 절망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성공과 승리와 축복을 향해 가는 사람은 성공과 승리와 축복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말이 우리의 가는 길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말이 우리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고치가 입술에 나오는 실로써 자기 집을 짓는 것처럼 누에가.. 여러분도 입에서 나오는 말로 여러분의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입술의 말로 내가 사로잡힌다고 말한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이 여러분, 우리의 운명을 바꿔가는 것입니다. 입술이 고백은 돈드는 것이 아니지요. 운명과 환경에 따라서 입술의 고백을 우리가 하고 못하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선택하는데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설교한 것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운명이 있고,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환경이나, 사회적 지위나, 그런 것은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으로써 바꾸면 환경이 바꾸어진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희망찬 생각으로 마음에 꿈으로 마음에 믿음으로 입술로 고백을 가지고 열심히 밀고 나가면 기적이 일어나고 내 살아갈 운명과 환경은 바꾸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
푹 썩은 퇴비에서 좋은 화초나 곡식이 자라는 것입니다. 내가 깨어지고 아집이 썩어지고 전적으로 주님께 의지하면 그곳에서 하나님은 아름다운 꽃이 피게 하시는 것입니다. 죽음은 절대절망이지만 그 죽음 위에 예수님의 부활의 꽃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절망이 다가와도 우리에게 희망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더 좋아질 희망을 가지고 더 찬란한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입술의 고백을 가지고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희망하고 없는 것을 꿈꾸고 없는 것을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운명이 있고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태어난 우리의 날짜나 우리의 처지나 우리의 환경은 바꿀 수가 없지만 우리가 자라나는 환경 속에서는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 그 운명을 바꾸는 힘이 우리 속에서 나오는 것이지 밖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희망차고 꿈이 있고 믿음이 있고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있으면 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그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을 압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성도들이 모두다 오늘에 서서 내일을 창조해 나가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창조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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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2642 창세기 바벨탑 창11:1-9  이정원 목사  2009-12-30 2728
2641 창세기 노아의 실수 창9:18-29  이정원 목사  2009-12-30 2991
2640 시편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107:1-32  이정원 목사  2009-12-30 2325
2639 창세기 무지개 언약 창9:8-17  이정원 목사  2009-12-30 3629
2638 창세기 은혜로 사는 인생 창9:1-7  이정원 목사  2009-12-30 2316
2637 요한복음 성만찬 공동체 요6:52-59  정용섭 목사  2009-12-29 2967
2636 에배소서 예배로서의 삶 엡5:15-20  정용섭 목사  2009-12-29 2417
2635 사무엘하 다윗의 통곡 삼하19:1-9  정용섭 목사  2009-12-29 2397
2634 요한복음 하늘생명의 밥 요6:22-33  정용섭 목사  2009-12-29 2483
2633 마태복음 예언의 성취 마26:47-56  정용섭 목사  2009-12-29 2188
2632 사무엘하 다윗왕조의 존재근거 삼하7:1-17  정용섭 목사  2009-12-29 2497
2631 마가복음 현재의 고난 막6:14-29  정용섭 목사  2009-12-29 2078
2630 마태복음 하나님 나라의 전복성 마20:1-16  정용섭 목사  2009-12-29 2163
2629 마가복음 거룩한 두려움 막4:35-41  정용섭 목사  2009-12-29 2359
2628 고린도후 생명이 죽음을 삼키다. 고후5:1-10  정용섭 목사  2009-12-29 2205
2627 예레미야 토기장이와 질그릇 렘18:1~6  조용기 목사  2009-12-29 3497
2626 데살로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 살전5:16~18  조용기 목사  2009-12-29 2154
» 창세기 주어진 삶과 나의 태도 창50:15~21  조용기 목사  2009-12-29 2239
2624 요한복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 요9:1~7  조용기 목사  2009-12-29 2461
2623 고린도후 예수님의 죽으심을 짊어진 사람들 고후4:10  조용기 목사  2009-12-29 1650
2622 로마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롬4:17  조용기 목사  2009-12-29 2927
2621 고린도후 은혜의 하나님 고후13:13  조용기 목사  2009-12-29 2199
2620 누가복음 잃어버렸다가 찾았으며 죽었다가 살아남 눅15:11~24  조용기 목사  2009-12-29 2148
2619 요한복음 니고데모의 고민 요3:1~17  조용기 목사  2009-12-29 8115
2618 마가복음 믿으려고 해도 안 믿어질 때 막9:17-24  조용기 목사  2009-12-29 2614
2617 창세기 사람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3:1-9  장윤재 교수  2009-12-28 2156
2616 요한복음 의미의 반석 요1:1-18  길희성 형제  2009-12-28 1971
2615 역대하 이유를 모르고 어려움을 당할 때 대하14:9-15  김필곤 목사  2009-12-28 2176
2614 역대상 승리 뒤에 오는 실패를 통해 얻는 교훈 대상13:13-17  김필곤 목사  2009-12-28 2198
2613 요나 은혜로 사는 인생 욘4:1-11  김필곤 목사  2009-12-28 3481
2612 누가복음 아름다운 기억 하나 눅15:11-24  김필곤 목사  2009-12-28 2094
2611 에스겔 살아야 할 사람, 살려야 할 사람 겔37:1-10  김필곤 목사  2009-12-28 2869
2610 신명기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는 길 신5:16  김필곤 목사  2009-12-26 2400
2609 고린도후 보배를 품은 질그릇 고후4:7-15  김필곤 목사  2009-12-26 2788
2608 요한복음 장애, 장애가 아닌 인생 요9:1-7  김필곤 목사  2009-12-26 2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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