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막5:25-34 |
---|---|
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낮은 울타리에 실린 "인생의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라는 글을 읽어 본적 이 있습니다. 월남전에 참전한 한 병사 오지근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20대에 월남전에 참전하였습니다. 당시 공중에서는 이름 모를 약품 같은 것이 매일 뿌려져 숲 속을 뒤덮곤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고엽제’였다는 사실을 제대 후에야 알았다고 합니다. 제대 후 매일 밤 귀가 야구공만큼 퉁퉁 부어서 끙끙거리며 잠을 청했다고 합니다. 목수, 광부, 노가다판 잡부 과일행상 등을 하여 작은 임대 아파트라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행복감은 잠깐이었다고 합니다. 눈이 자꾸 흐려지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가니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1급 시각장애인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생계가 막막했습니다. 아내가 공장에 다니며 식구를 먹여 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들 금철이가 군대에 갔는데 구보 훈련받는 도중에 유난히 숨이 차고 가슴이 아파와 병원에 갔는데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빨 사이에서 피가 나고 코피가 쏟아져 큰 병원에 갔는데 정밀 진단 결과는 골수암이라는 거였습니다. 아버지는 자신 때문에 아들이 그 몹쓸 병에 걸렸다고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동안 있는 돈 다 털어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하였습니다. 머리카락은 물론 손톱과 발톱이 빠져나갔습니다. 앞못보는 아버지, 자식을 살리기 위해 매일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 자식은 차라리 죽음이 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세상에도 이렇게 사는 가정이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자식이 기차에 치어 두 다리를 절단하고 절규하는 가정도 있고 뤼게릭 병에 걸려 죽지 못하여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가질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식도 많이 가지고, 돈이 점점 많아지게 되고, 자녀도 점점 더 잘되고 지위도 점점 높아질 것으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 않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질병에 들어 건강을 잃어 버립니다. 어느날 직장을 잃어 버립니다. 부모를 잃습니다. 지식을 잃습니다. 어느 가정은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식구를 잃어 버리기도 합니다. 결혼 하여 행복할 줄 알았는데 살면 살수록 더 잃어 버린 것이 많아집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Ⅰ.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인생
아마 부유한 집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병원에 찾아가는 것 자체가 경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많은 의원을 찾아다녔다고 하니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시집 갈 때는 푸른 꿈을 가지고 갔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들도 낳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혈루증에 걸렸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입니다. 당시 문둥병과 혈루증은 불치의 병으로 부정하다고 생각하여 가정에서도 마을에서도 쫓겨나게 되어 있었습니다.(레 15:25-28) 그런데도 12년 동안 치료받았다는 것을 보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선택해 본 것 같습니다. 자식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정들었던 집을 떠나야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래도 살기 위해 의사에게 희망을 걸고 수많은 의원을 찾아갔습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찾아 간만큼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있는 재산 다 허비해 버렸습니다.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병만 깊어졌습니다. 점점 죽음의 순간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이제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할 것입니다. 사랑도, 재산도, 건강도, 집도, 가족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잃었던 것을 어떻게 다시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는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불행을 향해 달리는 인생을 어떻게 행복의 인생으로 방향을 돌려 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Ⅱ. 잃은 것을 다시 얻는 방법
1. 잃은 것이 있으면 다 잃었다고 하며 그것에 집착하지 말고 잃은 것을 통하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인생의 비시와 에디가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은 한계상황, 절망적인 상황을 통하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을 보십시오. 건강을 잃었습니다. 그 건강에 집착을 합니다. 좋아집니까? 가면 갈수록 상황은 악화됩니다. 세상에는 집착해서 되어질 일이 있고 어떤 일을 집착해서 되지 않을 일이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아무지 집착해도 되지 않습니다. 엎질러진 물은 아무리 집착해도 다시 원래 상태로 될 수가 없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 문제는 아무리 집착해도 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족 중에 정들었던 사람이 어느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리 집착한다고 그 가족이 다시 살아오겠습니까? 집착하면 할수록 마음의 병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잃으면 잃은 것에 대하여 집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식을 투자하는 사람이 잃은 것에 집착하면 절대 돈을 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잃은 것이 있을 때 우리는 다 잃은 것이 아닙니다. 건강을 잃었다고 인생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돈을 잃었다고 돈을 벌 수 있는 재능까지 잃은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나의 인생까지 잃은 것은 아닙니다. 기회를 잃었다고 주어진 앞으로의 시간까지 다 잃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잃어도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있습니다. 이 여인을 혈루증으로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지만 아직 들을 귀가 있었습니다. 아직 걸어 갈 수 있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아직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이 여인이 이 병이 걸리지 않았으면 예수님을 만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하여도 성한 몸이었다면 예수님을 만나러 갔겠습니까?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에 절망적인 상황이 올 때 그것으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우리 인생에 근본적인 해답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인간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과기처 장관을 지내었고 현재 호서대 총장으로 있는 세계적 핵물리학자인 정근모 박사(장로)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요즈음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와서 사랑의 집짓기를 하고 있는 것이 텔레비전에 방영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사랑의 집짓기 운동 연합회 이사장이신 분입니다.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었는데 학교에서 한 학생이 유리를 닦다 추락하여 죽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죄책감 때문에 결국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 학위를 받고 1967년 뉴욕 공과 대학의 부교수로 임명되었고 서른 둘에 한국 과학원의 부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간염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열살된 아들 진후에게서 '만성 신장염' 증세 나타났습니다. 점점 병세가 나빠지기 시작하여 기계의 힘을 빌려 피를 세척해 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한번에 4시간이 소요되는 투석치료였습니다. 그는 과학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병을 났기 위해 교회에 찾아갔습니다. '구원'이니 '은혜'니 하는 말보다는 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될 뿐 진후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 속도가 느렸으며 학교 생활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여보, 이제부터는 참 크리스천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참신자 말이에요 "이화 여대를 다닐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왔으나 지극히 형식적인 신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아내의 말이었습니다. 1980년 진후는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아니오, 나의 신장을 주겠고. 당신보다는 나의 신장이 더 튼튼할 거요." 그러나 수술결과는 썩 좋지가 않았습니다. 진후는 우리 부부의 걱정에는 아랑곳없이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 정집사 부부가 먼저 참 기독교인이 되어야 아들의 병이 낫게 된다" 어느 권사님의 말씀이 계속 귓전을 때려왔습니다. 1982년 3월, 워싱턴 중앙 장로교회에서는 4일간의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집회를 앞두고서 계속 준비기도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이번 부흥회에서는 성령체험을 하게 해주소서. 뜨겁게 회개하며 깨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니고데모처럼 중생(born again)하는 크리스천이 되고 싶습니다." "왜 내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일까. 나도 남들처럼 은혜가 충만한 신자가 되고싶은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목사님이 에베소 2장 1-8절 말씀을 봉독한 뒤 설교를 시작했습니다."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씀을 듣는 중에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밤 예배시간이었습니다. 설교를 듣는 중에 다시 눈물샘이 터졌나왔습니다. 그때에 나는 너무나도 크고 분명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들아, 너는 네 아들에 대해 감사해 본 적이 있느냐?" 그건 뚜렷한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나의 가슴 밑바닥에는 항상 불만스런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내게 왜 이런 아픔을 주시는가. 나보다 더한 사람도 많은데..." 이런 의문이 순식간에 걷히는 순간이었습니다. 고통은 곧 축복으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껏 진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내가 돌보아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후는 내 보호의 손길을 벗어나서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하지 않았던가. 추락하던 차가 작은 소나무에 걸려 추락을 멈추었던 사건. 어찌 내 힘으로 아들을 보호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런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나의 잘못을 빌었습니다. 교만함과 불만에 가득찼던 생활을 고백했습니다. 그런 죄악들을 고백할 때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될 때에는 조금씩 흐느끼는 정도였으나 예배가 끝날 무렵에는 거의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체면이나 지위도 아랑곳없이 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쁘고도 감격스러운 날. 내가 다시 태어난 날. 그날이 바로 1982년 3월 14일이었답니다. 아내와 두 딸이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진후는 고개를 떨구며 울었습니다. 15년간이나 골반의 통증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던 형수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뚜렷한 일의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일이다. 아무리 세상일이 바쁘고 중요하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잃어 버린 것 다시 찾을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는 데 방해하는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병자가 의원을 찾아 다니며 12동안 고치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었겠습니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생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제산을 다 허비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최후의 상황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절호의 기회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는데 그 길이 쉬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길은 죽음을 각오한 길이었습니다.
무리 가운데 썩여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을 한 것입니다. 당시 문둥병 환자와 혈루증 환자는 격리 수용되었고 성에서 쫓겨났습니다. 정상인에게 손을 댈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돌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사회 통념상 여자로서 뿐 아니라 부정한 자로서 공중(公衆) 앞에 나설 수 없는(접촉 불가) 입장이었으나 그러한 사회, 종교적 장애를 극복하고 담대히 예수께 접근했던 것입니다(레 15:19-27).
우리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 받을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는 데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소문은 이 여인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종류는 다르지만 예수님을 믿고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하는데 장애물이란 있는 것입니다. 그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로 우리가 주님을 믿고 나아가는데 장애물 3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3장)
1) 길가(4, 19)입니다. 사람들이 다녀 굳어진 길입니다. 마음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복음을 받아 들이기를 거부한 자를 말합니다. 처음부터 배격하는 사람들입니다. 교만한 마음입니다. 반응이 없는 마음입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19)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워 영적 세계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소신이라고 합니다. 고집입니다. 전통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빗장을 쳐 놓고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그렇습니다. 행5:33, 행7:54에 나오는 유대인들이 그렇습니다. 복음을 듭습니다. 그런데 반응을 죽이려고 합니다.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행 5:33)"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4)" 똑같은 복음이지만 행2:37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합니까? 얼마나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까?(41-47)
2) 돌밭(5,20,21)입니다.
씨가 바위가 있어 흙의 두께가 얇은 지점에 떨어집니다. 바위의 온기로 싻이 빨리 나지만 뿌리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피상적으로 이해합니다. 속이 깨어지지 않습니다. 즉시 기쁨으로 말씀을 받습니다. 그러나 역경 만나면 신앙 버립니다. 감정에 지배받는 신앙입니다. 기쁨도 경건의 흔적도 없어집니다. 잠시 가졌던 평안 용서, 구원의 감격도 사라집니다. 복음에 대해서 감격하지만 복음에 충실히 응답하지 않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마음입니다. 핸드릭슨은 이러한 마음을 “충동적인 마음”(Impulsive heart)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제자 데마(골4:14; 딤후4:10 몬1:24)가 그랬습니다. 부자 청년(마19:16-22)이 그랬습니다. 해는 자양분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식물 성장에 에너지 제공합니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식물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해가 됩니다. 환난과 핍박은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신앙 성장의 필수인데 이것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은 더욱 견고해지지만(욥23:10; 시66;10; 사48:10; 히12:11; 벧전1:7) 돌밭같은 마음을가진 사람은 그것으로 쓰러지고 맙니다. 연약함입니다. 밭 자체기 흙이 얇은 돌밭입니다. 감정적입니다. 말씀을 인하여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 넘어집니다. 심정적으로 아주 연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살면서 잘되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살려고 합니다. 말씀으로 살다가 말씀 때문에 조그마한 문제만 있으면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담하고 원망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은혜 충만하지 못하니까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악한 것들이 기어 나옵니다.
3) 가시 떨기(7,22)입니다. 엇비슷하게 자라나 결국 가시떨기의 그늘과 부족한 양분으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복음을 받고 오랜 동안 신앙 생활을 하였지만 의와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핸드릭슨은 이 마음을 “이미 다른 것들이 차 있는 마음”(preoccupied heart)이라고 했습니다. 복잡한 마음이며, 필요 없는 것들이 꽉차있는 마음입니다. 가시는 주로 악을 행하는 자(삼하23:6 미7:6)로 상징됩니다. 복음의 기운을 꺽어 버리게 하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22절에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4절에는 하나를 더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눅 8:14)" 일락입니다. 1)세상의 염려입니다. 염려의 포로가 됩니다. 세계제2차대전 당시 전장에서 숨진 젊은이만 30만으로 보고 있는데 사회심리학자들은 남편이나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뒤 염려하다가 심장마비나 기타 다른 질병에 걸려 죽은 미국시민을 1백만으로 파악하고 있다.
2)재리의 유혹에 빠집니다. 재물의 유혹은 재물에 대한 필요 욕구라기 보다는 필요 이상의 재물을 구하는 욕심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막히게 합니다. 막혀는 질식시키다. 숨막히게 하다 뜻입니다. 생명력을 잃게 합니다.
3)일락입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쾌락 지상주의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풍성한 결실을 맺는 삶을 살려면 이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뛰어 넘어야 합니다.
김동신 육군참모총장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보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분의 신앙 간증의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인도해주셨어요.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하심이 없었더라면 제 삶은 정말 무의미했을 것입니다.가난과 고독이라는 `역경의 강'을 건너면서 제 삶은 한층 풍요롭게 변했습니다. 역경은 성숙한 사람을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진정 신앙인의 고백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3.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할 때에 모든 것을 잃어 버린 방법을 바꾸어 믿음의 방법으로 잃은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 여인은 잃은 건강을 찾기 위하여 의원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병은 의사가 낳을 수 있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그것은 상식이고 임상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의사를 찾아가면 낳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많은 의원을 찾아간 것입니다. 이 사람이 아니면 저 사람을 통해 낳을 수 있겠지? 이 약이 아니면 저 약으로 낳을 수 있겠지? 그러다 보니 결과는 무엇입니까? 괴로움은 더욱더 심해지고 있던 돈 다 허비해 버렸습니다. 요즈음 말로 한다면 자신의 몸도 났지 못하고 자식들에게까지 빚더미에 앉혀 놓는 꼴이 되어 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효험은 없고 병을 더 깊어졌습니다. 잘못된 신념의 결과입니다. 잘못된 방법의 결과입니다. 더욱 잃어 버릴 수 밖에 없는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사용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1)듣고 믿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2)예수님을 만지기만 하여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내가 그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함일러라"(엘레겐)는 미완료 시제로서 그녀가 마음속으로 그 같은 사실을 되뇌이고 또 되뇌였음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34절 보십시오. 이 여인의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잃었던 것을 찾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할 때에 예수님을 얻는 것이야 말로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혈루증 환자라고 불결하게 취급하고 짐으로 취급합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녀를 딸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딸이 된다는 것 얼마나 고귀한 일입니까?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의 딸이 되면 재산을 잃은 것, 건강을 잃은 것, 명예를 잃은 것, 직장을 잃은 것 무엇이 대수가 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데 얼마나 필요한 때 필요한 것으로 주시겠습니까? 영원한 천국이 우리의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습니다. 질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살롬, 인생의 평안을 선물로 받습니다. 영혼의 구원, 생활의 구원, 육체의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여인의 삶은 완전히 치료되었습니다. ①예수의 소문을 듣고 믿음을 가졌습니다.(29) ②예수를 따랐습니다(27). ③믿음에 따라 행함으로 치료받았습니다.(27) ④예수의 발 앞에 얻드려 병나은 것을 고백(33)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①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34)선포를 들었습니다. ②평안히 가라(34) "평화의 상태를 지니고 가라"고 말씀합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평화의 은총을 선사하신 것입니다. ③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34) ④건강해져라(34)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에 이런 환희가 있습니다. 죄인 취급받던 여인이 예수님으로부터 딸 취급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다 하여도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때가 더욱 중요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우리 주님 앞에 설 때가 옵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부자를 보십시오. 불꽃가운데 고통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잃으면 영원을 잃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사람들은 비록 이 땅에서 잃어 버린 것 있다 하여도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7:17)"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라고 말씀합니다.
서세원씨 부인 서정희씨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시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하여 겨우 아들을 낳고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 오니 “내가 네 남편을 대학까지 그리고 군을 제대할 때까지도 쭈욱보살펴줬으니까, 최소한 월 50만원은 줘야한다”고 못박으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고 시아버지도 암에 걸리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통증이 지나치면 아버지는 “너도 나가라”로 짜증을 내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조용히 병실을 나와 병실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기도를 드렸다고 합닏. 기도가 끝나면 항상 조용히 찬양했고 부르고 또 부르며 아버지를 위해기도했다고 합니다. 영혼이 불쌍해서입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약 10일 전에 하나님을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너 때문에 내가 믿는겨”하시고 무슨 일만 있으면“아멘이여.할렐루야여”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자신의 손을 꼭잡으며 “내가 하나님 옆에서 네가 잘 되는 모습을 지켜볼거여”라고말씀하셨고 그녀는 나는 아버지의 앙상한 손을 잡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치료하신던 한양대 병원 의사도 감동을 받아 신앙인이 되어 지금은 집사로 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것은 영원한 천국에 가는 구원입니다. 다 잃어도 이것만큼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다 잃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다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시간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 5:34)"라는 말씀이 여러분과 저의 생에 있기를 바랍니다.
다 잃었다고 생각하는데서 얻는 방법 /마가복음 5:25-34 /김필곤 목사
Ⅰ.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인생
아마 부유한 집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병원에 찾아가는 것 자체가 경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많은 의원을 찾아다녔다고 하니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시집 갈 때는 푸른 꿈을 가지고 갔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들도 낳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혈루증에 걸렸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입니다. 당시 문둥병과 혈루증은 불치의 병으로 부정하다고 생각하여 가정에서도 마을에서도 쫓겨나게 되어 있었습니다.(레 15:25-28) 그런데도 12년 동안 치료받았다는 것을 보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선택해 본 것 같습니다. 자식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정들었던 집을 떠나야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래도 살기 위해 의사에게 희망을 걸고 수많은 의원을 찾아갔습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찾아 간만큼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있는 재산 다 허비해 버렸습니다.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병만 깊어졌습니다. 점점 죽음의 순간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이제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할 것입니다. 사랑도, 재산도, 건강도, 집도, 가족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잃었던 것을 어떻게 다시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는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불행을 향해 달리는 인생을 어떻게 행복의 인생으로 방향을 돌려 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Ⅱ. 잃은 것을 다시 얻는 방법
1. 잃은 것이 있으면 다 잃었다고 하며 그것에 집착하지 말고 잃은 것을 통하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인생의 비시와 에디가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은 한계상황, 절망적인 상황을 통하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을 보십시오. 건강을 잃었습니다. 그 건강에 집착을 합니다. 좋아집니까? 가면 갈수록 상황은 악화됩니다. 세상에는 집착해서 되어질 일이 있고 어떤 일을 집착해서 되지 않을 일이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아무지 집착해도 되지 않습니다. 엎질러진 물은 아무리 집착해도 다시 원래 상태로 될 수가 없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 문제는 아무리 집착해도 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족 중에 정들었던 사람이 어느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리 집착한다고 그 가족이 다시 살아오겠습니까? 집착하면 할수록 마음의 병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잃으면 잃은 것에 대하여 집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식을 투자하는 사람이 잃은 것에 집착하면 절대 돈을 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잃은 것이 있을 때 우리는 다 잃은 것이 아닙니다. 건강을 잃었다고 인생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돈을 잃었다고 돈을 벌 수 있는 재능까지 잃은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나의 인생까지 잃은 것은 아닙니다. 기회를 잃었다고 주어진 앞으로의 시간까지 다 잃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잃어도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있습니다. 이 여인을 혈루증으로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지만 아직 들을 귀가 있었습니다. 아직 걸어 갈 수 있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아직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이 여인이 이 병이 걸리지 않았으면 예수님을 만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하여도 성한 몸이었다면 예수님을 만나러 갔겠습니까?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에 절망적인 상황이 올 때 그것으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우리 인생에 근본적인 해답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인간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과기처 장관을 지내었고 현재 호서대 총장으로 있는 세계적 핵물리학자인 정근모 박사(장로)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요즈음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와서 사랑의 집짓기를 하고 있는 것이 텔레비전에 방영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사랑의 집짓기 운동 연합회 이사장이신 분입니다.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었는데 학교에서 한 학생이 유리를 닦다 추락하여 죽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죄책감 때문에 결국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 학위를 받고 1967년 뉴욕 공과 대학의 부교수로 임명되었고 서른 둘에 한국 과학원의 부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간염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열살된 아들 진후에게서 '만성 신장염' 증세 나타났습니다. 점점 병세가 나빠지기 시작하여 기계의 힘을 빌려 피를 세척해 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한번에 4시간이 소요되는 투석치료였습니다. 그는 과학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병을 났기 위해 교회에 찾아갔습니다. '구원'이니 '은혜'니 하는 말보다는 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될 뿐 진후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 속도가 느렸으며 학교 생활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여보, 이제부터는 참 크리스천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참신자 말이에요 "이화 여대를 다닐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왔으나 지극히 형식적인 신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아내의 말이었습니다. 1980년 진후는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아니오, 나의 신장을 주겠고. 당신보다는 나의 신장이 더 튼튼할 거요." 그러나 수술결과는 썩 좋지가 않았습니다. 진후는 우리 부부의 걱정에는 아랑곳없이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 정집사 부부가 먼저 참 기독교인이 되어야 아들의 병이 낫게 된다" 어느 권사님의 말씀이 계속 귓전을 때려왔습니다. 1982년 3월, 워싱턴 중앙 장로교회에서는 4일간의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집회를 앞두고서 계속 준비기도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이번 부흥회에서는 성령체험을 하게 해주소서. 뜨겁게 회개하며 깨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니고데모처럼 중생(born again)하는 크리스천이 되고 싶습니다." "왜 내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일까. 나도 남들처럼 은혜가 충만한 신자가 되고싶은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목사님이 에베소 2장 1-8절 말씀을 봉독한 뒤 설교를 시작했습니다."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씀을 듣는 중에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밤 예배시간이었습니다. 설교를 듣는 중에 다시 눈물샘이 터졌나왔습니다. 그때에 나는 너무나도 크고 분명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들아, 너는 네 아들에 대해 감사해 본 적이 있느냐?" 그건 뚜렷한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나의 가슴 밑바닥에는 항상 불만스런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내게 왜 이런 아픔을 주시는가. 나보다 더한 사람도 많은데..." 이런 의문이 순식간에 걷히는 순간이었습니다. 고통은 곧 축복으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껏 진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내가 돌보아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후는 내 보호의 손길을 벗어나서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하지 않았던가. 추락하던 차가 작은 소나무에 걸려 추락을 멈추었던 사건. 어찌 내 힘으로 아들을 보호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런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나의 잘못을 빌었습니다. 교만함과 불만에 가득찼던 생활을 고백했습니다. 그런 죄악들을 고백할 때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될 때에는 조금씩 흐느끼는 정도였으나 예배가 끝날 무렵에는 거의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체면이나 지위도 아랑곳없이 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쁘고도 감격스러운 날. 내가 다시 태어난 날. 그날이 바로 1982년 3월 14일이었답니다. 아내와 두 딸이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진후는 고개를 떨구며 울었습니다. 15년간이나 골반의 통증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던 형수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뚜렷한 일의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일이다. 아무리 세상일이 바쁘고 중요하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잃어 버린 것 다시 찾을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는 데 방해하는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병자가 의원을 찾아 다니며 12동안 고치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었겠습니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생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제산을 다 허비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최후의 상황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절호의 기회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는데 그 길이 쉬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길은 죽음을 각오한 길이었습니다.
무리 가운데 썩여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을 한 것입니다. 당시 문둥병 환자와 혈루증 환자는 격리 수용되었고 성에서 쫓겨났습니다. 정상인에게 손을 댈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돌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사회 통념상 여자로서 뿐 아니라 부정한 자로서 공중(公衆) 앞에 나설 수 없는(접촉 불가) 입장이었으나 그러한 사회, 종교적 장애를 극복하고 담대히 예수께 접근했던 것입니다(레 15:19-27).
우리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 받을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는 데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소문은 이 여인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종류는 다르지만 예수님을 믿고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하는데 장애물이란 있는 것입니다. 그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로 우리가 주님을 믿고 나아가는데 장애물 3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3장)
1) 길가(4, 19)입니다. 사람들이 다녀 굳어진 길입니다. 마음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복음을 받아 들이기를 거부한 자를 말합니다. 처음부터 배격하는 사람들입니다. 교만한 마음입니다. 반응이 없는 마음입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19)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워 영적 세계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소신이라고 합니다. 고집입니다. 전통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빗장을 쳐 놓고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그렇습니다. 행5:33, 행7:54에 나오는 유대인들이 그렇습니다. 복음을 듭습니다. 그런데 반응을 죽이려고 합니다.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행 5:33)"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4)" 똑같은 복음이지만 행2:37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7)"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합니까? 얼마나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까?(41-47)
2) 돌밭(5,20,21)입니다.
씨가 바위가 있어 흙의 두께가 얇은 지점에 떨어집니다. 바위의 온기로 싻이 빨리 나지만 뿌리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피상적으로 이해합니다. 속이 깨어지지 않습니다. 즉시 기쁨으로 말씀을 받습니다. 그러나 역경 만나면 신앙 버립니다. 감정에 지배받는 신앙입니다. 기쁨도 경건의 흔적도 없어집니다. 잠시 가졌던 평안 용서, 구원의 감격도 사라집니다. 복음에 대해서 감격하지만 복음에 충실히 응답하지 않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마음입니다. 핸드릭슨은 이러한 마음을 “충동적인 마음”(Impulsive heart)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제자 데마(골4:14; 딤후4:10 몬1:24)가 그랬습니다. 부자 청년(마19:16-22)이 그랬습니다. 해는 자양분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식물 성장에 에너지 제공합니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식물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해가 됩니다. 환난과 핍박은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신앙 성장의 필수인데 이것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은 더욱 견고해지지만(욥23:10; 시66;10; 사48:10; 히12:11; 벧전1:7) 돌밭같은 마음을가진 사람은 그것으로 쓰러지고 맙니다. 연약함입니다. 밭 자체기 흙이 얇은 돌밭입니다. 감정적입니다. 말씀을 인하여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 넘어집니다. 심정적으로 아주 연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살면서 잘되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살려고 합니다. 말씀으로 살다가 말씀 때문에 조그마한 문제만 있으면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담하고 원망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은혜 충만하지 못하니까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악한 것들이 기어 나옵니다.
3) 가시 떨기(7,22)입니다. 엇비슷하게 자라나 결국 가시떨기의 그늘과 부족한 양분으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복음을 받고 오랜 동안 신앙 생활을 하였지만 의와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핸드릭슨은 이 마음을 “이미 다른 것들이 차 있는 마음”(preoccupied heart)이라고 했습니다. 복잡한 마음이며, 필요 없는 것들이 꽉차있는 마음입니다. 가시는 주로 악을 행하는 자(삼하23:6 미7:6)로 상징됩니다. 복음의 기운을 꺽어 버리게 하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22절에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4절에는 하나를 더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눅 8:14)" 일락입니다. 1)세상의 염려입니다. 염려의 포로가 됩니다. 세계제2차대전 당시 전장에서 숨진 젊은이만 30만으로 보고 있는데 사회심리학자들은 남편이나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뒤 염려하다가 심장마비나 기타 다른 질병에 걸려 죽은 미국시민을 1백만으로 파악하고 있다.
2)재리의 유혹에 빠집니다. 재물의 유혹은 재물에 대한 필요 욕구라기 보다는 필요 이상의 재물을 구하는 욕심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막히게 합니다. 막혀는 질식시키다. 숨막히게 하다 뜻입니다. 생명력을 잃게 합니다.
3)일락입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쾌락 지상주의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풍성한 결실을 맺는 삶을 살려면 이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뛰어 넘어야 합니다.
김동신 육군참모총장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보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분의 신앙 간증의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인도해주셨어요.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하심이 없었더라면 제 삶은 정말 무의미했을 것입니다.가난과 고독이라는 `역경의 강'을 건너면서 제 삶은 한층 풍요롭게 변했습니다. 역경은 성숙한 사람을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진정 신앙인의 고백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3.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할 때에 모든 것을 잃어 버린 방법을 바꾸어 믿음의 방법으로 잃은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 여인은 잃은 건강을 찾기 위하여 의원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병은 의사가 낳을 수 있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그것은 상식이고 임상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의사를 찾아가면 낳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많은 의원을 찾아간 것입니다. 이 사람이 아니면 저 사람을 통해 낳을 수 있겠지? 이 약이 아니면 저 약으로 낳을 수 있겠지? 그러다 보니 결과는 무엇입니까? 괴로움은 더욱더 심해지고 있던 돈 다 허비해 버렸습니다. 요즈음 말로 한다면 자신의 몸도 났지 못하고 자식들에게까지 빚더미에 앉혀 놓는 꼴이 되어 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효험은 없고 병을 더 깊어졌습니다. 잘못된 신념의 결과입니다. 잘못된 방법의 결과입니다. 더욱 잃어 버릴 수 밖에 없는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사용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1)듣고 믿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2)예수님을 만지기만 하여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내가 그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함일러라"(엘레겐)는 미완료 시제로서 그녀가 마음속으로 그 같은 사실을 되뇌이고 또 되뇌였음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34절 보십시오. 이 여인의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잃었던 것을 찾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할 때에 예수님을 얻는 것이야 말로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혈루증 환자라고 불결하게 취급하고 짐으로 취급합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녀를 딸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딸이 된다는 것 얼마나 고귀한 일입니까?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의 딸이 되면 재산을 잃은 것, 건강을 잃은 것, 명예를 잃은 것, 직장을 잃은 것 무엇이 대수가 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데 얼마나 필요한 때 필요한 것으로 주시겠습니까? 영원한 천국이 우리의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습니다. 질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살롬, 인생의 평안을 선물로 받습니다. 영혼의 구원, 생활의 구원, 육체의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여인의 삶은 완전히 치료되었습니다. ①예수의 소문을 듣고 믿음을 가졌습니다.(29) ②예수를 따랐습니다(27). ③믿음에 따라 행함으로 치료받았습니다.(27) ④예수의 발 앞에 얻드려 병나은 것을 고백(33)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①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34)선포를 들었습니다. ②평안히 가라(34) "평화의 상태를 지니고 가라"고 말씀합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평화의 은총을 선사하신 것입니다. ③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34) ④건강해져라(34)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에 이런 환희가 있습니다. 죄인 취급받던 여인이 예수님으로부터 딸 취급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다 하여도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때가 더욱 중요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우리 주님 앞에 설 때가 옵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부자를 보십시오. 불꽃가운데 고통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잃으면 영원을 잃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사람들은 비록 이 땅에서 잃어 버린 것 있다 하여도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7:17)"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라고 말씀합니다.
서세원씨 부인 서정희씨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시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하여 겨우 아들을 낳고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 오니 “내가 네 남편을 대학까지 그리고 군을 제대할 때까지도 쭈욱보살펴줬으니까, 최소한 월 50만원은 줘야한다”고 못박으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고 시아버지도 암에 걸리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통증이 지나치면 아버지는 “너도 나가라”로 짜증을 내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조용히 병실을 나와 병실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기도를 드렸다고 합닏. 기도가 끝나면 항상 조용히 찬양했고 부르고 또 부르며 아버지를 위해기도했다고 합니다. 영혼이 불쌍해서입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약 10일 전에 하나님을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너 때문에 내가 믿는겨”하시고 무슨 일만 있으면“아멘이여.할렐루야여”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자신의 손을 꼭잡으며 “내가 하나님 옆에서 네가 잘 되는 모습을 지켜볼거여”라고말씀하셨고 그녀는 나는 아버지의 앙상한 손을 잡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치료하신던 한양대 병원 의사도 감동을 받아 신앙인이 되어 지금은 집사로 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것은 영원한 천국에 가는 구원입니다. 다 잃어도 이것만큼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다 잃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다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시간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 5:34)"라는 말씀이 여러분과 저의 생에 있기를 바랍니다.
다 잃었다고 생각하는데서 얻는 방법 /마가복음 5:25-34 /김필곤 목사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