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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침체에서 일어나는 방법

역대하 김필곤 목사............... 조회 수 3208 추천 수 0 2010.01.16 13: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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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대하29:1-11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성경에 보면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할 정도로 영적 침체에 빠진 세 사람이 나옵니다. 모세와 엘리야, 요나입니다. 능력의 사람들이었습니다. 200만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이끈 민족지도자입니다. 모세는 홍해를 가른 사람입니다. 돌에서 물을 나게한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850명의 이방 선지자를 물리친 사람입니다. 놀라운 기적은 나타낸 사람입니다. 요나도 니느웨 사람 12만명을 회개시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죽여달라고 할 정도로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생활하지만 때로는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약화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집니다. 하나님의 일에 열정이 사그러 집니다. 헌신의 마음이 없어집니다.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는 일에 게을러집니다. 경건생활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죄에 대하여 두려움이 적어집니다. 이런 영적 침체에서 어떻게하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1.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영적 침체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버지 아하스 때를 보십시오. 역대하 28장 23-25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에돔 나라와 블레셋 나라가 쳐들어 왔습니다. 성읍들이 침노를 당하였습니다.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합니까?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도움 받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의 전 문을 닫습니다. 예루살렘 구석 구석마다 이방신을 섬기는 단을 쌓았습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2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온 이스라엘이 망합니다. 25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습니다. 죽어 열왕의 묘실에도 장사하지 못했습니다. 민족적인 영적 침체을 맞았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영적 침체에서 일어서기 위해 쓴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가 왕이 되자 마자 한 일이 무엇입니까? 히스기야가 영적 침체에서 영적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합니다. 10절 보십시오. 언약을 세웁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부지런히 수종들어 섬기고 분향하게 합니다. 현대적인 말로 하면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바른 예배의 대상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다른 사람보다 예배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예배는 마치 질병이 걸린 사람이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질병에 걸려 무기력해지면 다가 오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입맛이 없어지고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포도당을 줍니다.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영적 침체에서 회복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역사합니다. 죽은 영혼에게 생명을 줍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 5:25)"
위로를 줍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시 119:50)"
말씀을 들을 때 능력을 받습니다. "내게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잠 8:14)"
소망을 잃은 자들이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절망하는 자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길은 잃은 자들이 바른 길로 인도받습니다.
예배가 부패화 되면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러시아가 그러했습니다. 영국이 40내에 기독교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럽이 그렇습니다. 이제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쾌락의 우상을 섬깁니다. 경제의 우상을 섬깁니다. 건강의 우상을 숭배합니다.
그러나 경제 회복도 도덕회복도 가정의 행복의 회복도 국민 건강의 회복도 예배 회복이 될 때 이루어집니다.
정신위생계에 있어서 세계적인 학자인 데이비드 핑크 박사는 "안정을 위한 4박자 균형"이라고 하는 논문에서 인간에게 시급한 것은 정신적인 안정이라고 했습니다. 경제적 안정이나 정치적 안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안정이라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네 가지가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첫째가 일(워크 Work), 둘째가 놀이(플레이Play), 셋째가 사랑(러브 Love), 넷째가 예배(워십 Worship)이라고 했습니다. 약자로 WPLW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성직자가 아닙니다. 이 방면에 학자일 뿐이요 교수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 예배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온전히 위탁하는 그런 예배적 행위, 예배적 정신 자세가 아니면은 인간은 결코 안정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건강도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있는 인간연구소(HPL)의 윌리엄 J 스트로브리지 박사팀이 지난 30년간의 연구에 의하면 예배에 자주 참석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사망율이 낮다고 합니다.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가 주일 예배에 매주 나가는 사람이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장수한다고 보도 했습니다. 예배에 매주 한 차례 나가는 사람들의 예상 평균 수명은 82세,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75세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해럴드 쾨니히박사도 "예배에 자주 참석하는 사람은 사망률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46%나 낮았다"고 밝혔습니다. 미 국립 건강연구센터 소장 데이빗 라슨박사는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고혈압 뇌일혈 등의 발병률을 줄이고 약물처방을 잘 받아들이게 하며 장수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어느 통계에 보니까 매주 교회에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47%가 매우 행복하다고 답한 반면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은 27%만이 매우 행복하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에 와서도 세상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배 중에도 전화를 받기 위해 핸드폰을 켜 놓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배드리는데 릴리리야 릴리리야가 나옵니다. '밀양 아리랑’이 나옵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은 사회의 지위와 위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만 있을 뿐입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나온 것입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최상의 가치를 최상의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최상의 행위입니다. 예배는 만유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인간의 적극적인 응답입니다(대상 29:11-13) 그러므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예배는 교회의 최대 사명이고 예배 중에 성도의 교제와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예배는 성도에게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예배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누리게 되고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예배의 감격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날나리 세상! 닐니리 교회?"라는 글에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이렇게 분류해 놓았습니다.
설교시간에 멀거니 강단을 응시하는 멀대파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눈은 설교자를 바라보는데 생각은 멀리 출장중에 있습니다. 주보에 밑줄 긋고 교정까지 보는 꼼꼼파가 있다고 합니다. 졸면서 끄덕끄덕 콤마를 찍는 아멘파,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 보는 안절부절파, 옆사람과 글로 대화하는 청각장애파, 예배 후에 있을 회의만을 생각하는 회의 염려파, 설교시간에만 성경읽기로 시간 떼우는 나홀로파, 찬송 부를 때 입만 벙긋대는 붕어파, 기도시간의 틈을 노려 묵상(?)에 잠기는 기회주의파, 어제 못잔 잠 보충하는 것입니다. 누가 왔나, 안왔나 두리번 거리며 인원체크하는 경비파 등이 있다고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배는 감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말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누리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 107:9)"
잘못된 예배를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십니까?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말 1:10) "
신학자 칼 바르트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려면 내 속에 있는 자아를 깨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대통령 출마 선거 유세를 하고 있을 때,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웬만하면은 표를 얻기 위해서 큰 교회에 나가야 하겠지만 아니요. 그는 그 바쁜 일정에도 고향으로 돌아가 조지아주에 있는 작은 교회, 자기 나가던 교회에 나가서 23년 동안을 개근하며 아이들을 가르쳐 왔는데 20명을 앞에 놓고 성경을 가르치고 하나님 앞에 경건히 예배했습니다. 그 바쁜 시간에도……. 했더니 기자들이 70명이 몰려왔어요. 기자들과 만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찾아 주시니 고맙기는 합니다 만은 다음 주일부터는 다 당신들이 나가는 교회에 나가십시오."라고 부탁했답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합니다. “내가 내 입으로 [주님께]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양하였도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소리에 주의하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시 66:17-20) 이런 예배의 감격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영적 탯줄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생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2. 믿는 사람들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모태에 있는 어린아이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탯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끝어지면 끝입니다. 예배가 하나님과 우리와의 영적 생명선이라면 아이가 출산하여 건강하게 자라려면 홀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웃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감기 걸린 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면 감기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건강한 자들과 함께 있을 때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사귈 때 공부 잘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이지 날라리고 사귀면 날라리 되기 쉽습니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들과 만나야 합니다. 나 홀로 있거나 세속적인 사람들과 만나면 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한 것이 백성들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동편 광장에 모았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있어야 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믿은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야 합니다. 좋은 신앙인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활기가 있고 힘이 납니다. 마치 환자가 운동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건강하려면 운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성도는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활력을 얻고 힘을 얻습니다.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여기에 초대 교회 영적 부흥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6)"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5)"라고 말씀합니다.
성도가 성도끼리 모여 신령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홀로 있으면 영적 침체가 옵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갈멜산에서 불을 내려 이방신을 섬기는 선지자 850명을 이긴 사람입니다. 능력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홀로 골짜기에 있을 때 영적 침체가 찾아옵니다.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나 홀로 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할 때 오는 영적 침체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5)"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하여도 홀로가 아닙니다.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돕고 우리에게 힘을 주고 위로를 주며 한 시대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이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영적 침체에 빠저 낙심하지 않고 능력있는 사도로 일을 할 수 있었던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바울 곁에는 늘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들 같은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몸을 돌보아 주는 누가가 있었습니다.
요나를 아실 것입니다. 요나도 능력의 사람입니다. 말씀을 전하니까 니느웨 사람 12만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마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부흥 운동을 일으킨 사람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흥 운동을 일으킨 후 어떻게 합니까? 죽여달라고 합니다. 영적 침체에 들어갔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하기를 요나 주변에 요나와 진정한 교제를 할 하나님의 사람 몇 사람만 있었으면 그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해 봅니다. 힘겨울 때 참으로 어려울 때 성도의 교제는 우리를 영적 침체에서 일어나게 합니다.
지난 주 어는 목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자신의 간증을 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여 한 100여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IMF 경제 위기를 맞이하여 교회가 어려움 당하니까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대출을 받았는데 집이 두채나 있는 분이 3000만원 담보 잡힌 것 갚아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매일 그러는데 견딜 수 없어 결국 교회를 줄여 빗을 갚아 주고 지하 작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거의 다른 교회로 가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처음 등록한 초등학생 만은 7년이 되었는데(한 아이 지금은 중학생) 여러 차례 옮겼는데도 끝까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데 말입니다. 이 아이들이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찬양을 하여 목사님이 물었답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찬양하느냐? 저희라로 열심히 찬양해야 목사님이 힘이 나시지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집에 가보니 자기 할머니가 서울에 있는 교회에 다니는데 문 앞에는 할머니가 출석하는 교회의 교패가 붙어있고 자기들의 방문에 자신들이 다니는 교패를 붙여 놓아더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도의 교제는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다윗이 어려움 당할 때 요나단이 힘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도들간의 올바른 교제는 신앙을 성숙케하고 상호의 인격에 큰 도움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요한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요한은 기록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것과 같이 나의 동료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친교인 것입니다.
본회퍼는 성도의 사귐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으로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였습니다. 첫째는 이웃을 위해서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요, 둘째는 성도들이 서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의 기도와 행동이며, 세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 서로의 사죄를 허락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친교란 인간의 어떠한 테크닉이나 기술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일어나는 친교는 연령, 사회적 지위, 국가, 인종과 이해 관계로 말미암아 생기는 장벽을 초월하여 한 형제 한 자매 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지체됨을 누리는 것입니다.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연관성으로서 서로 속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감사와 감격에서 출발하고 강제 동원이나 의무는 아닙니다. 교회는 사교장이 아닙니다. 때로는 부딪칩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부딪치면서 아름다운 인격과 자랑스러운 생활습관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안됩니다.
카네기는 아주 인간관계를 중히 여긴 사람입니다. 실질적으로 강철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우리들은 85%가 실력이고, 15%가 인간관계라고 생각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카네기 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람은 15%가 실력이고 나머지 85%가 인간관계라는 것입니다
근세 유명한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현대인의 인간관계를 세 가지로 진단했습니다. 하나는 '그것과 그것의 관계'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치 물건처럼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차버립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이 없는 무인격의 관계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부버는 또 하나의 관계로 '나와 그것의 관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물건처럼 이용해도 나는 상대방을 끝까지 인격으로 대할 때, 그때 '나와 그것의 관계'가 성립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로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인격으로 그리고 당신도 나를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을 인격으로 믿어 주고 당신이 나를 인격으로 믿어 주어도 우리들 사이에는 언제나 그 인격적인 관계가 깨질 수 있는 긴장이 있다. 이것이 인간성의 연약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너 사이에는 언제나 이 인간관계를 중매하는 하나의 촉매자가 필요하다." 부버는 그 촉매자를 '영원자 너'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영원한 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인간과 인간으로 부딪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서 얼마나 많은 단점을 발견합니까?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상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3. 성결해야 합니다.
이것은 환자가 세균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세균에 감염된 환자를 건강하게 하려면 세균으로부터 격리시키고 그 세균을 죽여야 합니다. 성결은 환자의 세균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죄에 오염되어 있으면 영적으로 침체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성결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을 향하여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성결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을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이것는 나의 내적인 문제입니다. 내가 저항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기력해지고 영적으로 침체되는 것입니다. 죄의 늪에 빠지면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능력있는 다윗도 죄의 늪에 빠지니까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간음죄를 짖고 살인 죄를 저지릅니다. 삼손같은 능력있는 사람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무기력해 집니다. 죄는 우리는 깊은 침체로 끌고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끗이 씻어버려야 합니다.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성결케 주십니다. 죄로 인해 무기력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한 스승이 4명의 제자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사람이 죄의 유혹을 당할 때 그것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가” 4명의 제자가 심사숙고한 뒤, 각각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답니다.“우리의 죽음을 생각하면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어요” “죽음 이후의 심판을 떠올리면 됩니다” “하늘나라의 기쁨과 소망을 생각하면 죄를 몰아낼 수 있어요” “죄의 유혹을 물리치는 최상의 방법은 죽음 뒤에 닥칠 지옥의 고통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스승은 제자들을 향해 말했습니다.“너희들의 대답은 모두 옳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 있단다. 그것은 죄의 유혹을 만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피를 생각하는 것이다. 죄악을 물리치는 데 이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이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8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 성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힘이 납니다. 능력이 생깁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살맛이 납니다.
어느 방귀를 잘 뀌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시집을 갔는데 걱정입니다. 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어도 방귀를 뀌지 말라고 했습니다. 참고 참았습니다. 얼굴 변합니다. 창백해집니다. 생활에 활기가 없습니다. 늘 불안하고 근심걱정에 쌓입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무슨 걱정이 없느냐? 어쩔 수 없이 말을 하였습니다. 3년 동안 참았습니다. 야 걱정 말고 뀌라고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시아버지에게 앞문고리잡으로고 했습니다. 시어머니 뒷 문고리잡으로고 했습니다. 남편은 자신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남편 천장, 시아버지 앞마당 시어머니 뒷마당에 떨어졌습니다. 나올 때 뀌어야 합니다. 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 모든 것 내려 놓아야 합니다. 가식 부릴 것 없습니다. 우리 인간 뻔한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모든 것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8)"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1)"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 43:25)"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믿는 사람들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성결해야 합니다.


영적 침체에서 일어나는 방법 /역대하 29:1-11/김필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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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7 마가복음 새벽을 깨우는 신앙 막1:35-39  김필곤 목사  2010-01-16 3163
2736 디모데후 인생의 가을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딤후4:9-18  김필곤 목사  2010-01-16 2716
» 역대하 영적 침체에서 일어나는 방법 대하29:1-11  김필곤 목사  2010-01-16 3208
2734 에배소서 고난 중에 찬송해야 할 이유 엡1:3-10  김필곤 목사  2010-01-16 2975
2733 출애굽기 고난 중에 준비해야 할 그릇 출3:1-12  김필곤 목사  2010-01-16 2629
2732 마태복음 다 잃었다고 생각하는데서 얻는 방법 막5:25-34  김필곤 목사  2010-01-16 2771
2731 열왕기상 나의 삶이 남길 가장 큰 유산 왕상2:1-4  김필곤 목사  2010-01-16 2757
2730 이사야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들 사41:8-16  김필곤 목사  2010-01-16 3362
2729 역대하 기준이 분명한 신앙인 대하19:1-7  김필곤 목사  2010-01-16 2834
2728 고린도전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들 [1] 고전16:15-18  김필곤 목사  2010-01-16 3806
2727 요한복음 부족한 중에 감사하는 믿음 요6:4-13  김필곤 목사  2010-01-16 2924
2726 사도행전 운명을 극복하는 주체적인 삶 행21:7-14  이한규 목사  2010-01-15 2608
2725 사도행전 아름다운 삶을 위한 3대 요소 행21:1-6  이한규 목사  2010-01-15 2628
2724 사도행전 검은 마음과 하얀 마음 행20:33-38  이한규 목사  2010-01-15 2838
2723 사도행전 진짜 부자 행20:31-38  이한규 목사  2010-01-15 2540
2722 시편 예측할 수 없는 일 시95:6-7  한태완 목사  2010-01-14 1971
2721 사도행전 영향력 있는 리더의 5대 요소 행19:20-21  이한규 목사  2010-01-14 2176
2720 이사야 최악을 최선으로 만드는 길 사60:1-3  이한규 목사  2010-01-14 3923
2719 마태복음 내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 마3:16-4:11  이동원 목사  2010-01-13 3560
2718 레위기 초막절의 감사 레23:39-44  이동원 목사  2010-01-13 3702
2717 창세기 제단을 쌓는 인생 창12:4-9  이동원 목사  2010-01-13 4443
2716 창세기 축복을 위한 떠남 창12:1-3  이동원 목사  2010-01-13 3338
2715 고린도전 절제의 열매 고전9:24-27  이동원 목사  2010-01-13 3856
2714 고린도전 우상의 제물과 그리스도인의 자유 고전8장  이동원 목사  2010-01-13 3606
2713 고린도전 결혼의 문제 file 고전7장  이동원 목사  2010-01-13 2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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