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중심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성도)들의 최후 승리를 공개함에 있다. 지금 우리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난 다음(계 11:15)과 일곱 대접 재앙(계 16:1~21)이 일어나기 전, 그 사이에 벌어진 중간 계시를 보는 중에 있다. 그것은 작은 책과 그 책을 먹으라는 것이었다(계 10장). 그 책을 먹은 결과 증인의 사명을 다하고,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나는 최후 승리를 보았다(계 11장). 교회를 수난 속에 휘몰아 넣는 정체는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었다. 그의 활동 무대는 세상 곧 소돔이요, 애굽이라고 하는 큰 성 길이었다(계 11:7~8). 요한계시록 12장과 13장에서 그 짐승의 정체를 분명히 밝히고 증인의 정체를 다시 밝히고 있었다. 짐승은 곧 큰 붉은 용이요(사단), 무신론의 권력(세계 패권자)이요, 거짓 선지자(어용 종교)요, 666이요, 바벨론이었다. 이 무서운 적기독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했고, 그의 교회(단체)와 교회의 남은 자손, 곧 여인의 남은 자손(개인)들이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계명, 믿음과 인내, 666을 세는 지혜,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신앙 절개로 승리한다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0장은 서론이다. 이 권은 말씀 체험, 곧 복음 체험, 구원 체험, 예수 체험이었다(작은 책). 요한계시록 11장에서 12장은 적기독, 곧 예수의 원수, 진리의 원수, 교회의 원수의 정체로 그 본론과도 같다. 요한계시록 14장은 이 부분의 결론과도 같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최후 승리를 하고야 만다는 것이다(계 14:1~5). 그리고 큰 붉은 용과 그 추종자들은 심판을 당하고야 만다는 것이다(계 14:6~20). 그러므로 이 부분은 요한계시록의 전 과정을 축소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 승리하는 시온산 교회(구원, 계 14:1~5)
1) 어린양이 주도하는 교회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라고 하였다. 여기 어린양이 누구일까? 이는 예수님의 별칭이다. 이 말은 세례 요한이 쓰던 말이다.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한 바 있다(요 1:29, 36). 또한 사도 베드로가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고 한 말이 있다(벧전 1:18~19).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이 되셨다고 하였다. 이사야도 예수님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 털 깎는 자 앞의 잠잠한 어린양, 그 입을 열지 아니한 양으로 예언하였다(사 53:7~8). 어린양은 번제용으로 지명된 동물이었다(창 22:7~8, 출 29:38~41, 민 28:1~8, 11). 그것은 구약의 여러 제사에 필수적인 제물이었다. 예수를 어린양이라고 함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임을 뜻함이다. 그것은 곧 사람의 죄를 속하고,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가 성립되는 경우를 말함이다. 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의 어린양은 해방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종 되었던 애굽에서의 해방의 신호였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해방의 수단이었다. 그 피를 바른 자, 그 피 안에 들어 있던 자는 구원을 받고 출애굽을 하였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가리켜 어린양이라고 하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본문에 ‘시온 산’은 천국을 뜻함이다. 그것은 단수로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하고 숭고한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이다. 그 시온 산에 어린양이 서 있다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 계시다.’라고 하지 않고,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서 있다.’고 하였다. 무슨 의미일까?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다.’라는 말은.
(1)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뜻함이다. 요한계시록에 예수에 대하여 반복되는 어린양이란 말은 두 가지 경우에서 사용된다. 하나는 희생 제물로서의 어린양, 곧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의미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 고민, 눈물, 땀, 죽음을 의미한 것이다. 또 하나의 경우는 영예로운 승리의 의미이다. 승리의 왕, 승리의 천사, 승리의 주를 나타내는 의미로 어린양이란 말을 썼다. 이 본문의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뜻함이다. 그는 영광을 받으실 분이라는 뜻이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신다는 뜻이다. 이 세상 사단의 왕국에서는 큰 붉은 용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시온 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신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는 어린양이 보좌의 중앙에 있다고 하였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경배를 받으신다는 뜻이다. 확실히 그러하다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그에게 모든 찬양과 경배와 영광을 돌린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주제 중의 하나이다(계 5:8~14). 왜냐하면 어린양의 피로 속함을 얻은 자들만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죄 중에서 피로 사시고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계 5:9~10).
(4)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배하신다는 뜻이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게 역사의 지배력을 행사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떼고, 읽기에 합당한 자였기 때문이다(계 5:5~6). 그러므로 그는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는 보좌에 있었고, 시온 산에 서 있었다. 그에겐 무궁한 통치권이 주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는 영원한 시온 산의 영원한 왕이시다. 그만이 영원한 주권자이시다.
(5)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살아 계심을 뜻함이다. 그가 세세토록 살아 계심은 진리이다(계 1:18). 이것은 악도들에게 영원한 심판을 집행하시는 분으로, 성도들에겐 영원한 구원을 보장하시는 분이심을 보여 준다. 그가 시온 산에 서 계심은 우리의 영원한 믿음이요, 소망이요, 사랑이다. 그는 영원한 왕도(王都)의 영원한 권자(權者)이시다.
2) 성도만의 교회이다(14만 4천 인).
요한계시록 14장 1절 중에 다시 말하기를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라고 하였다.
(1)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다고 하였다.
이는 곧 세기 동안에 구원받은 성도들을 총칭함이다. 시온 산에는 구원받은 성도들만이 이르는 곳이다. ‘그와 함께…섰다’는 말은 참으로 의미가 심장하다. 저들은 이 세상에서도 예수와 함께 살았다. 저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와 함께 살았다. 마귀와 세상과 함께 살지 않았다. 그 일로 인하여 - 세상에서 세상과 마귀와 살지 않고 예수와 함께 삶을 인하여 - 슬픔과 핍박과 고통을 당하고 눈물을 흘린 자들이다. 인권 유린, 가산 탕진, 가족과의 이별, 더 나아가 죽음까지도 불사한 자들이다. 이토록 주와 함께 동고동락하기를 좋아한 저들은 마침내 시온에서 주와 함께 서 있게 되었다. 이것은 성도들의 영원한 승리, 영원한 만족, 영원한 생명, 영원한 축복을 뜻함이 아닌가? 저들이 세상에서 주와 함께 한 명백한 증거가 있으니 저들은, ① 주의 계명(말씀)을 파수하였다. ② 주의 몸인 교회와 함께 살았다. ③ 자기 몫에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졌다. ④ 하나님의 영이요 아들의 영인 성령의 뜻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였다. ⑤ 언제나 주의 은총을 덧입고 살기 위하여 기도하였다. ⑥ 주의 이름으로 영혼들을 사랑하였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면서 주를 따르는 제자(백성)로 삼았다 ⑦ 저들은 세상에서 숨질 때가 곧, 주를 만나는 시간이라고 소망하며 살았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불신자가 없다. 주와 함께 있는 자들은 모두 성도뿐이다. 그야말로 크리스천 천국이다. 여기 지상 교회에는 신자가 있고 교인이 있다. 신자는 시온 산에서 주와 함께 설 자들이다. 그러나 소위 교인 중에는 주와 함께 시온 산에 서지 못할 자들이 있다. 왜냐하면 지상 전투 교회는 세상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자라고 있는 곳(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온 산(천국)은 성도만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불신자는 없다. 있을 수도 없지만, 있어도 저들은 살 수가 없는 곳이다.
(2) 14만 4천 인은 구원의 표적이 있는 자들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다시 말하기를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그들의 구원의 표적은 무엇인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자들이었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① 누구의 이름인가? ⓐ 성부의 이름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그 이마에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이는 창조주의 이름이다. 곧 성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임을 알려 준다. 결코 사람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귀한 신적 산물(神的 産物)이다. 구원의 표적은 창조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이 있다고 하였다. 어린양의 이름은 예수이다. 곧 구원의 표적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나를 속량하여 주신 표적이다. ⓒ 성령의 이름이다. 에베소서 1장 13~14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하였다. 구원의 표적은 성령의 인치심이다. 성령은 우리의 구원을 현장에서 실시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구원의 표적이 있는 자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자들이다. ② 어디에 새겨져 있는 이름인가?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이마는 인격의 표상이다. 또한 이름도 인격의 대명사이다. 성도들의 이마에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쓰여 있다 함은 인격적인 인침을 뜻함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서명 날인 행위이다. ③ 무슨 뜻인가? 이마에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음은 인친다는 뜻이다. 인친다 함은, ⓐ 하나님의 자기 소유 표시 행위이다. 14만 4천 인은 오로지 하나님의 특별하신 소유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새로운 신분의 표상이다. ⓑ 불변적인 약속 행위의 표식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그 효력이 영원하고, 불변하며, 동일하심을 뜻함이다. ⓒ 성도의 궁극적 구원의 표식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장 권세는 그 효력이 영원하다. 아무라도 그 이름을 지우거나 무효화시킬 수가 없다. 이는 성도들의 궁극적 구원의 표식이다. ⓓ 절대 안전 보장을 뜻하는 표식이다.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은 666의 도전에서 성도들이 안전 보장됨을 받는 표식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인장을 받은 자는 그 어떤 짐승의 도전에도 절대 보호가 보장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표를 받은 자는 세상 끝 날까지(마 28:20), 끝까지(요 13:1), 하나도 잃지 않게(눅 15:4), 또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도록(요일 5:18) 보호를 받고 있다. ⓔ 성별의 표식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14만 4천 인은 666의 표, 곧 짐승의 표를 갖고 있지 않다는 표식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 된 표식이고, 새 사람이 된 표식이다(고후 5:17, 갈 6:17). ⓕ 하나님을 향한 절대 충성의 표식이다. 충성된 병사들은 항상 저들의 몸에 자기 사령관의 마크(표식)를 달고 있다. 이것은 그의 소속을 알리는 동시에, 그를 향한 자기 충성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 그것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표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14만 4천 인의 백성들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사실을 여러 번 읽고 들었다(계 13:8, 3:5, 17:8, 20:12, 15, 21:27). 또한 그것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시민권의 표식이기도 하다. 문제는 시온산 교회, 곧 승리하는 교회, 천상 교회, 14만 4천 인의 교회 멤버들은 결정적인 구원의 표식을 그 이마에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이 저들의 이마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666을 받은 짐승의 백성들과 구별하는 것이다. 실로 축복된 표식이다. 영광의 표식이다. 그것은 생명의 표식이요, 자랑스럽고 행복한 표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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