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창32:24~32 |
---|---|
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8. 11. 16. 추수감사주일 4부 설교 |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졌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서론>
오늘 저는 "야곱에서 이스라엘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인본주의적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되는 데는 반드시 걸림돌이 되는 자아가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처음 결혼한 가족은 적응하는 기간 동안 상당한 고통을 당하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자기주장을 강하게 세우면 충돌이 오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을 하면은 자기주장을 꺾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내도 자기주장을 꺾고 남편도 자기주장을 꺾고, 좋아하는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못 끊으면 풍파가 일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완전히 인본주의로 내 중심으로 살다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 섬기면서 살고 하나님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고 하나님 싫어하는 것 내가 싫어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자면 내가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자아가 깨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다 이 변화의 체험을 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살려면은 누구를 불구하고 이 변화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침례와 성찬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침례와 성찬에 이어 고난을 '제3의 성례'라고 말했습니다.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을 확인한 후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했다 할지라도 고난 가운데 자아가 깨어지지 아니하면 아무리 침례를 받고 아무리 성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에 참여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침례 받고 성찬 떼고 고난을 통해서 자기를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적은 고난에 확삭 깨어지면 좋지요. 어린 아이를 교육할 때 매 한 대 완전히 애가 깨어져서 순복하면 좋지만 고집을 부리면 열대를 때리고 20대를 때리고 30대를 때립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고난을 주실 때 우리가 쉽게 순종하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고 나오면 간단히 해방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고 반항하고 내 길로 가면은 얼마나 많이 맞을지 형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안 때려요. 세상 사람 때려서 뭐합니까? 여러분, 여러분 자식 때리지 이웃집 자식 때립니까? 이웃집 자식이야 흙탕물에 뒹글든 대소변을 보든 무엇을 관계 할 것이 있습니까? 내 자식은 흙탕물에 들어가면 끌어내어서 엉덩이를 때리고 꾸짖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어떻게 살든 종국은 심판받아 멸망 받을 사람이니까 하나님 관심 갖지 않지요.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 원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이 예를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가 알아보십시다.
<본론>
1. 귀향하는 야곱과 그 가족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20년 머슴살이한 끝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굉장히 축복을 받았어요. 상상을 초월하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으로 거부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가 창세기 32장 10절에 기도할 때,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외삼촌 집으로 도망 올 때는 지팡이 하나 집고서 왔는데 이제 20년 세월이 흘러가고 난 다음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한 떼 두 떼 바다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짐승 떼를 거느리고 거부가 되어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올 때 마음에 고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형하고 사이가 나빴거든요.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나중에는 형처럼 양털을 온 손에 바르고 목에 발라서 눈이 어두운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형이라고 속이고 축복을 다 받고 그의 형이 노해서 죽이려고 하니까 어머니가 친정집으로 도망을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20년 후에 돌아와도 그 마음에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거든.. 그래서 사람을 미리 보냈었어요. 아우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형님이 용납해 주십시오. 그런데 얍복 나루터에 왔는데 헐레벌떡 하고 보낸 사자들이 와서 하는 말이 “큰일 났습니다. 주인님! 형님이 400인의 장정을 거느리고 분도막심해서 일어나 찾아옵니다.”
창세기 32장 6절로 7절에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다."
한판 싸우기 위해서 400명이나 장정을 거느리고 오니 이제는 야곱은 죽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아무리 부자가 되어서 돌아온들 형 400인의 장정들이 와서 칼로써 치기 시작하면 다 죽고 재산 다 뺏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형에게 어떻게 하든지 인간적 수단으로 마음을 얻어 볼까 싶어서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숫양 20마리, 젖 나오는 낙타 30마리, 그 새끼,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 그 새귀 나귀 10마리를 예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창세기 32장 20절에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그래서 물질을 보내어서 형의 마음을 녹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마음에 안심이 안돼요. 형의 성격을 안 것입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형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형이 선물로 준 선물은 다 빼앗고 또 사람을 죽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먼저 얍복강을 건너게 한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2절로 23절에 보면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다 건너보내고 자기는 안 건너갑니다. 왜냐, “최악의 경우에 도망치겠다. 처자야 죽든 말든 내가 살아 야지뭐. 내 죽고 처자가 살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처자는 죽더라도 내가 살아야 되겠다.” 이게 야곱입니다. 얼마나 자아가 강한지 다 오는데 “여보 당신은 안 가오?”, “나 여기 볼 일 있어. 너희들 먼저 가!”, “아빠 같이 가!”, “아니야 아빠는 여기 볼 일 있어. 너희들 먼저 건너가!” 후안무치하게 처자들과 짐승들을 다 버려 놓고 난 다음에는 그는 쪼그리고 앉아서 상황을 봅니다. 왜냐하면 형이 와서 자기를 죽이려면 처자들부터 먼저 칼로써 죽일 것이라.. 그때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치겠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11절에 보면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주옵소서 "
2.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
그는 창자가 끊어진 듯이 부르짖고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는데 어떠한 분이 나타나가지고서 야곱의 멱살을 잡거든요. 그리고 난 다음 “야, 이놈아 건너가라! 처자와 함께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살아라!” “아 이 사람이 누구야? 나는 못갑니다.” “가라!” 그래서 일본 씨름을 합니다. 일본 씨름은 밀었다가 밀기 아닙니까? 한국 씨름은 허리 바를 잡고서 이렇게 하지만 일본 씨름은 밀기거든. 막 이 사람이 야곱을 밀어서 얍복강을 건너가라고 하니 야곱은 안가겠다고 같이 밀고 둘이가 밤새도록 밀고 당기는데 야곱의 고집이 얼마나 센지 날이 샐 때까지 양보 안하는 거예요. 나는 처자는 죽더라도 나는 살아야 될 테니까. “야 이놈아! 처자가 죽으면 너도 같이 죽어야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되지 않겠느냐? 너 건너가라! 건너가라!” “못 건너가요. 못 건너가요.” 그때까지도 야곱은 자기가 씨름하는 것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자인데 그때 하나님의 사자는 육신으로 오기 전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하고 밤새도록 씨름을 하는데 예수님이 도저히 안 되겠다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어떻게 했느냐..
3. 야곱이 깨어진 장면
손을 들어서 환도뼈를 쳤습니다. 환도뼈가 어그러지니까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절름발이가 되었지요. 절단 났습니다. 꿈이 다 깨졌습니다. 도망을 쳐야 되는데 이제는 환도뼈가 어그러졌으니까 이러고 어떻게 도망을 칩니까? 이제는 큰일 났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을 부여잡았습니다. 부여잡고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복을 주십시오. 나에게 복을 안주면 당신 절대 놓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제 허벅다리가 어긋났으니 절름발이가 되어서 형이 오면 도망도 못치고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도망치겠다는 인간적 계획이 허물어졌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에 거역된 일을 하면 하나님이 허벅다리를 치시는 것입니다. 가정의 허벅다리, 사업의 허벅다리, 신체적 허벅다리를 치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교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축복이 있어야 안 무너지지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고, 자식을 기르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고, 사업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는 것이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환도뼈를 쳐서 어그러져서 인간의 힘으로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못해요. 못해요.” 제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지을 때 돈은 없고 인부들은 돈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교회는 무너진다 그러고, 비는 줄줄 세고 제가 여기에 엎드려서 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나는 못해요. 나는 못해요. 주여 나는 못해요. 하늘에서 하나님이 도와주지 아니하면 나는 못해요. 나는 못해요.” 다른 기도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외마디 소리밖에 없습니다. “나는 못해요. 하나님이 안도와 주시면 나는 못해요. 이대로 죽게 해 주시옵소서. 철골이 떨어져서 내 머리 위에 떨어져서 맞아죽게 해 주시옵소서.” 바로 야곱이 그런 심정입니다. 이제 큰 일 났습니다. 이제는 처자들과 같이 갈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고 하나님이 복을 받아 하나님이 같이 했어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6절에 "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때 그 천사가 뭐라고 물었냐면 “네 이름이 뭐냐?”, “야곱이니이다.” ‘야곱’이라는 말은 속이는 자, 빼앗는 자, 발꿈치 잡은 자인 것입니다. 왜 야곱이라고 했냐면 쌍둥이 에서와 같이 태어났는데 먼저 야곱이 태어나려고 하다 도로 들어가서 에서가 나왔는데 나올 때 보니까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오거든 그래서 요~ 꾀 많은 사기꾼, 빼앗는 자, 발꿈치 잡은 자라는 이름의 야곱인 것입니다. 이름치고는 더러운 이름이지요. 이름 잘 지어야지. 이름 듣기도 좋고, 의미도 있어야지 이름이 좋지 않으면 안 되는데 야곱은 자기가 자기 이름을 불러도 빼앗는 자, 속이는 자, 발꿈치 잡는 자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때 이 하나님의 사자가 그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4. 변화된 야곱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 32:27~28)
하나님과 씨름해서 져야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면 계속 야곱입니다. 지면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깨어져서 항복하면 이스라엘이 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겨루는 씨름에 끝까지 내가 고집을 부려서 야곱으로 있으면 하나님은 같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먼저 내가 깨어져서 변화되면 상대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켜야 야곱을 통해서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먼저 너부터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내게 신앙상담 오는 사람들이 많이 그럽니다. “우리 남편 좀 변화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어떤 때는 민망스러울까 싶어 말은 못하지만 “당신이 먼저 변해야 된다. 당신이 먼저 깨어지고 완전히 가루가 되고 주님께 의지하면 그를 통해서 주님이 남편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아내 좀 바람 피우지 않게 좀 도와주십시오.” 하는 남편도 나를 찾아 많아 와요. 옛날에는 그런 것 없었는데 요사이는 아내가 바람 피워서 남편이 골치를 앓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내가 말합니다. “당신이 먼저 깨어져서 완전히 하나님 중심으로 서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이 아내의 마음을 변화 시켜야지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마음을 변화 시키냐” 여러분, 마음은요 자기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 자기 마음대로 합니까? 성 안내려고 하는데 성 나오지요? 사랑하려고 하는데 사랑 안 되지요? 기뻐하라고 하는데 안 기쁘게 되지요? 내 마음 나도 몰라. 내 마음 나도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겠습니까?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깨어져서 내가 변화되면 이웃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기도하고 주님을 앙망하면 매일같이 주님이 와서 우리가 씨름하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큼직한 씨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은 씨름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기 싫은 마음이 있는데 하나님은 오셔서 교회 가라고 합니다. 교회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씨름하는 것입니다. 십일조 드릴까 말까? 드릴까 말까? 씨름하는 것입니다. 전도할까? 하지 말까? 씨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크고 적은 믿음에서 끊임없이 마음 속에 하나님과 씨름할 때 여러분이 결국 항복해서 하나님 좋으면 나도 좋고, 하나님 싫으면 나도 싫습니다. 나는 하나님 편에 서서 따라 가겠습니다. 항복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해서 교회 갈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 주시고 기뻐할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 주시고 전도할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여 주셔야지요. 내 힘으로 되나요? 그런데 야곱이 환도뼈가 어그러져서 완전히 무너지고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서 나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복을 안주면 나는 놓지 않겠나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사기꾼에게서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자로 변화시켜 준 것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승리의 생활을 하려면 깨어지십시오. 하나님 앞에 무너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스스로가 놀랄 만큼 내가 이렇게 변화될 수가 있느냐. 예수 믿고 난 다음 깜짝 놀랄 사람 많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변화 되었느냐. 내가 어떻게 교회에 가게 되고 어떻게 찬송을 부르게 되고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어떻게 아까운 돈을 십일조를 드리게 되고 어떻게 사역 봉사를 하게 되었느냐 야~ 내 마음 나도 몰라.. 내가 이렇게 변화될 줄 모르겠다.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변했느냐? 얘들아 네가 어떻게 그렇게 변했느냐?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내가 불광동에서 개척할 때 우리 교회 와서 고통을 많이 주던 박종선 목사.. 의정부교회 담임인 박종선 목사님 그때 주먹 잡이였었습니다. 교회 와서 촛대고 뭐고 모조리 다 가지고서 팔아먹어 버리고.. 심지어는 산소통, 종까지 짊어지고 가서 팔아먹어 버려요. 심심하면 교회 물건 가지러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도 주먹이 세고 그냥 왈가닥하는 사람이라 감당을 못해요. 싸움을 해서 이빨 하나 자기 이빨이 없습니다. 다 뽑혀지고.. 그런데 주일날 예배 준비하기 위해서 토요일 날 제가 그 옆에 있는 조그마한 집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애들이 막 죽는 소리를 해요. 아~~~~~ 고함을 치고 막 부르짖는 소리가 나서 이것 큰일 났구나. 뛰어 나가 보니까 이 박종선이가 왔는데 교회학교 애들이 5살, 6살, 7살, 10살짜리들이 자기들이 토요일 날 모임이 있어서 왔다가 박종선이 오니까 매달렸어요. 목에 매달리고, 어깨에 매달리고, 팔을 잡고, 다리를 끌어안고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그러니까 애들이 개미떼처럼 오니까 엎드렸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조그마한 교회학교 남, 녀 애들이 올라탔어요. 목에도 올라타고, 허리에도 올라타고, 엉덩이도 올라타고 누르고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 마귀야 물러가라! 마귀야 물러가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그런데 또 놀라운 것은 “어헝~ 어헝~어헝~” 운다 말입니다. 애들 거기에.. 훔치러 왔다가 울어요. 어헝~ 엉엉... 그래서 난 모른 체 하고 나왔어요. 그때 그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교회 참석하기 시작하고, 청년 지도자가 되고 전도를 열심히 하고 늘 교회 와서 찬송 부르고 북치고 오늘날 세계적인 주의 종으로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그 마음을 누가 변화시킵니까? 어린 아이들이 기도하니까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깨어지니까 하나님이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시는 기적은 놀라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살면서 마음에 변화를 받아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란 그 당시에 기분이 좋고 몸이 찌릿찌릿하고 불을 확 받았다고 그게 은혜가 아니라 내 마음에 변화되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 편안한 마음으로 변화되고 미운 마음이 고운 마음으로 변화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되고 참을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고 이해와 동정과 사랑과 인내할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 이게 참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되려면 하나님 앞에 내가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죄를 회개하고 나의 고집을 다 저버리고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깨어지면 하나님께서는 변화의 작업을 시작하고 여러분이 변화되면 남편도 변화되고, 아내도 변화되고, 자식들도 변화되고, 친구들도 변화되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자는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항복시키기 위해서 여러분과 계속 씨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씨름이 바로 고난인 것입니다. 장난친다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고난은 괴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고.. 침례 받고, 성찬 떼고 주님과 한 몸이 되었을 지라도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계셔서 여러분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씨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깨어진 그 날, 기념이 있습니다. 절름발이 야곱이 가는 길에는 태양이 떠올랐다고 말한 것입니다. 밤새도록 씨름하고 상처투성이가 되고 더벅머리가 되고 얼굴을 갈아서 아주 피멍이 들고 옷은 남루하게 되었지만 절뚝거리고 일어나서 하나님 의지하고 변화 되어서 가는 그 앞에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창세기 32장 30절로 31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절어도 좋아요. 인생에 태양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기어가도 좋아요. 인생에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밤같이 캄캄하게 어두운 고통 속에 살다가 그 고통이 다 사라지고 내 마음속에 태양이 떠올랐다. 20년 세월동안 형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살았었습니다.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천사와 씨름하고 자기가 깨어지고 난 다음에 자기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 맡겼습니다. 이제 절뚝발이가 되었으니 도망을 못 치니 사나 죽으나 하나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도 하나님께 맡기고 살고 죽는 것도 하나님께 맡기고 먹고 사는 것도 하나님께 맡기고 처자도 하나님께 맡기고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나니까 그 마음속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두움이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어두운 그림자라도 있으면 여러분 하나님께 부르짖어 의지하고 맡기고 여러분 마음속에 태양이 떠오르게 하십시오. 비록 그는 절뚝거리고 갔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같이 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입니다. 그가 얍복강을 건너갈 때에 가족들이 보고 놀랐습니다. 밤새도록 안 오더니만 온 머리는 다 산발이 되고 얼굴은 시커멓게 멍이 들었고 옷은 찢어지고 흙투성이가 되고 그것도 좋은데 절뚝거리고 그렇게 오는데 얼굴은 보니까 저녁에 얼굴은 아주 흉악한 얼굴이더니만 아침에 절뚝거리고 오는 얼굴은 태양이 떠올랐었습니다. 그렇게 기쁨이 충만하고 평안하고 웃음이 넘치면서 절뚝절뚝 하면서 “오너라.. 오너라.. 가자. 가자. 네가 내 뒤에 서라. 내가 앞장선다.” 다 거느리고 앞장서서 갑니다.
5. 위대한 승리의 행진
이제는 깨어지고 변화되었으므로 가족을 책임지게 된 것입니다. 가족 버리더라도 내 살겠다는 것 아닙니다. 내가 죽더라도 가족은 살리겠다. 그리고 그는 이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진하는 것입니다. 형이 이를 갈고 칼을 뽑고 단칼에 베려고 뛰어 오는데 보니까 뭐가 머리가 산발이 다 된 놈이 온 옷은 찢어지고 흙투성이가 된 것이 구부러져서 이러고 오거든.. 형이 보니까 저거 한주먹도 안돼요. 저것을 뭘 칼로써 찌르겠느냐. 형이 곁에 오는데 하나님 능력이 야곱과 함께 해서 형에게 임하니까 형의 마음이 녹았습니다. 아주 얼음 녹듯이 녹아 버리고.. 내가 자꾸 눈물이 날라고 카네? 형이 말에서 뛰어 내려서 동생을 끌어안았습니다. 20년의 원한이 눈처럼 녹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했지 사람 힘으로 안 됩니다. 형이 집을 떠날 때는 완전히 야곱을 박살을 내려고 떠났는데 애가 절뚝거리는 야곱 앞에 와서 절름발이에게 형이 400인의 장정을 거느리고 항복을 하는 것입니다. 형의 원한이 사라지고 동생의 목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형의 그 완악한 마음이 어떻게 녹아질 수 있었습니까? 야곱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형의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하나님이 형의 마음을 변화시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먼저 내가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면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홍해수도 갈라지고 여리고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인데 무엇을 못하겠어요? 먼저 내가 변화되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역사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여기 보여주는 것입니다. 형이 동생의 목을 끌어 앉고 “야 이놈아, 20년 동안 형을 배반하고 가서 있더니 들어오는데 고작 이 절름발이가 돼서 돌아오느냐?”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끌어안아 주고 “내 400인의 군대를 너 호위병으로 줄 테니까 나와 같이 가자!” 죽이러 온 사람이 호위병이 되고 만 것입니다. 죽이러 온 사람이 호위병이 되었어요. 우리는 휴전선을 앞두고 북한과 우리 대한민국이 형제이면서도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됩니다. 총칼로 문제가 해결 안 됩니다. 북한이 아무리 원자탄을 만들어도 원자탄으로 해결 안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병력을 증강해도 병력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북한과 우리 사이에 마음이 녹아서 화해되어야 되는데 그 마음은 북한 사람보고 녹아지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녹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고 회개하고 우리가 녹아져서 사랑의 손길을 베풀 때 하나님이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 줘야 되는 것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됩니다. 정치가의 우수한 정치적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정인의 위대한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행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에 사랑을 베풀어야 돼요. 배고픈 사람 먹여야 돼요. 병든 사람 치료해줘야 돼요. 불쌍한 사람 도와줘야 돼요. 억지를 부리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변화되어서 나아가면 저들은 변화 안 되는 것 소용이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변화되면 하나님이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되어야 되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3장 4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20년 원한을 가지고 이를 갈던 원수가 동생 앞에 와서는 이리 와서 그냥 운 것이 아나라 그를 안고 달려와서 끌어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또 입까지 맞추었네? 양치질 하지 않은 입에 구린내도 날것인데 입까지 맞추고 그리고 엉엉 울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요. 하나님만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못해요. 하나님은 이런 기적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창 33:12) 얼마나 놀랍습니까? 야곱이 죽고 이스라엘로 변화되면 그 때 참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육신을 생각해서 내가 죽으면 내가 손해나지. 아 부부간에 싸우면서 내가 지면 나만 손해나지 않느냐. 그래서 부부간에 싸울 때 없는 말, 있는 말 다 하는 것은 상대방의 창자를 뒤엎을라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싸울 때 말 믿으면 안돼요. 그것은 어쩐지 상대방의 창자를 뒤엎어 놓으려고 부인도 남편에게 있는 말, 없는 말 다 하고 남편도 부인에게 있는 말, 없는 말 다하는데 진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이 아니에요. 그것은 선전용인 것입니다. 그 말을 믿으면 안돼요. 내가 이겨야 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그것은 육신의 생각이요. 그럴 때 내가 거꾸러져서 깨어져서 내가 울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항복하면 하나님이 “야, 이놈아! 변화되라! 야, 너 변화되라!” 하나님이 햇빛을 비취면 어느 얼음장사가 얼음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얼어붙은 동산도 봄이 오면 녹아져요. 봄이 오면 녹아져요. 하나님이 앞에 안 녹아질 사람 누가 있는 것입니까?
<결론>
이사야 41장 14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십시오. 너, 버러지 같은 야곱아. 허..버러지 상대가 됩니까? 꿈틀 꿈틀 꿈틀 기어오는 버러지, 그 바람에도 날라 가고 발로 차버리면 날라 가고 밟으면 터져 버리는데.. 나는 버러지 같습니다. 나는 우리 집에서 버러지 취급 받습니다. 나는 내 친구들 가운데 버러지 같이 취급 받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내가 예수 믿고 버러지가 되면은 내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훼가 말하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버러지가 되면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도우시는데 누가 망하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자도 없습니다. 하나님 일으켜 세운 사람 끌어 내려올 수가 없고 하나님이 끌어 내려온 사람 일으켜 세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버러지가 되는 것 주님 앞에 깨어져서 절름발이 버러지가 되는 것 여러분은 패배자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깨어지고 지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가 유럽을 제패하고 대 로마제국이 된 것은 콘스탄틴 황제 시절입니다. 주후 312년 콘스탄틴은 막강한 군대를 가진 막센티우스와 로마의 티베르 강에서 서로 대치하여 밀비안 다리에서 전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기는 자가 로마와 전 세계를 점령한 것입니다. 그래서 큰 고통에 빠진 이 콘스탄틴 황제는 고민을 하고 자기 막사에서 이 전쟁을 어떻게 이길까 하는데 환상이 나타났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고, 죽어가는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말씀이 들려 왔습니다. “너가 승리를 하면은 이 로마제국을 주님을 믿는 나라로 만들겠느냐? 너 황제가 되면 깨어지고 주님의 종이 되겠느냐?” 그는 말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기면 로마제국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고 나는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십자가를 주시면서, “이 십자가로 이겨라!” 그래서 그는 당장 그 환상을 보고 난 다음 그가 본 십자가로 로마 군인의 투구에 전부 십자가를 그리고, 방패에다가 십자가를 그리고, 그러고 난 다음에 전쟁에 나가서 적은 군대로써 큰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 막센티우스의 군대를 괴멸시켰었습니다. 그리고 대승을 거두었었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온 천하에 공인하고 그냥 강제로 어떤 나라든지 예수 안 믿으면 가만 안 둔다. 그래서 구라파가 기독교 국가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서 야곱인 그가 이스라엘로 하나님 앞에 깨어지고 하나님 종이 되겠다고 하자 하나님이 그와 함께 싸워 주셔서 전쟁에 이기고 로마가 하나님 손에 쥐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콘스탄틴 대제에게도 또한 오늘 우리에게도 그러한 변화의 얍복강을 주십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명령했던 대로 우리에게도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얍복강을 건너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얍복강이 있어요. 남편이 얍복강이 될 수도 있고, 아내가 내 얍복강이 될 수 있고, 자식이 얍복강이 될 수 있고 사업이 얍복강이 될 수 있고 살아야 되겠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통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 얍복강을 승리로 건너게 하는 자는 하나님이신데 태양이 떠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얍복강에서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인생에 태양이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졌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서론>
오늘 저는 "야곱에서 이스라엘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인본주의적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되는 데는 반드시 걸림돌이 되는 자아가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처음 결혼한 가족은 적응하는 기간 동안 상당한 고통을 당하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자기주장을 강하게 세우면 충돌이 오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을 하면은 자기주장을 꺾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내도 자기주장을 꺾고 남편도 자기주장을 꺾고, 좋아하는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못 끊으면 풍파가 일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완전히 인본주의로 내 중심으로 살다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 섬기면서 살고 하나님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고 하나님 싫어하는 것 내가 싫어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자면 내가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자아가 깨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다 이 변화의 체험을 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살려면은 누구를 불구하고 이 변화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침례와 성찬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침례와 성찬에 이어 고난을 '제3의 성례'라고 말했습니다.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을 확인한 후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했다 할지라도 고난 가운데 자아가 깨어지지 아니하면 아무리 침례를 받고 아무리 성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에 참여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침례 받고 성찬 떼고 고난을 통해서 자기를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적은 고난에 확삭 깨어지면 좋지요. 어린 아이를 교육할 때 매 한 대 완전히 애가 깨어져서 순복하면 좋지만 고집을 부리면 열대를 때리고 20대를 때리고 30대를 때립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고난을 주실 때 우리가 쉽게 순종하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고 나오면 간단히 해방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고 반항하고 내 길로 가면은 얼마나 많이 맞을지 형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안 때려요. 세상 사람 때려서 뭐합니까? 여러분, 여러분 자식 때리지 이웃집 자식 때립니까? 이웃집 자식이야 흙탕물에 뒹글든 대소변을 보든 무엇을 관계 할 것이 있습니까? 내 자식은 흙탕물에 들어가면 끌어내어서 엉덩이를 때리고 꾸짖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어떻게 살든 종국은 심판받아 멸망 받을 사람이니까 하나님 관심 갖지 않지요.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 원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이 예를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가 알아보십시다.
<본론>
1. 귀향하는 야곱과 그 가족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20년 머슴살이한 끝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굉장히 축복을 받았어요. 상상을 초월하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으로 거부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가 창세기 32장 10절에 기도할 때,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외삼촌 집으로 도망 올 때는 지팡이 하나 집고서 왔는데 이제 20년 세월이 흘러가고 난 다음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한 떼 두 떼 바다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짐승 떼를 거느리고 거부가 되어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올 때 마음에 고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형하고 사이가 나빴거든요.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나중에는 형처럼 양털을 온 손에 바르고 목에 발라서 눈이 어두운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형이라고 속이고 축복을 다 받고 그의 형이 노해서 죽이려고 하니까 어머니가 친정집으로 도망을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20년 후에 돌아와도 그 마음에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거든.. 그래서 사람을 미리 보냈었어요. 아우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형님이 용납해 주십시오. 그런데 얍복 나루터에 왔는데 헐레벌떡 하고 보낸 사자들이 와서 하는 말이 “큰일 났습니다. 주인님! 형님이 400인의 장정을 거느리고 분도막심해서 일어나 찾아옵니다.”
창세기 32장 6절로 7절에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다."
한판 싸우기 위해서 400명이나 장정을 거느리고 오니 이제는 야곱은 죽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아무리 부자가 되어서 돌아온들 형 400인의 장정들이 와서 칼로써 치기 시작하면 다 죽고 재산 다 뺏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형에게 어떻게 하든지 인간적 수단으로 마음을 얻어 볼까 싶어서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숫양 20마리, 젖 나오는 낙타 30마리, 그 새끼,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 그 새귀 나귀 10마리를 예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창세기 32장 20절에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그래서 물질을 보내어서 형의 마음을 녹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마음에 안심이 안돼요. 형의 성격을 안 것입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형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형이 선물로 준 선물은 다 빼앗고 또 사람을 죽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먼저 얍복강을 건너게 한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2절로 23절에 보면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다 건너보내고 자기는 안 건너갑니다. 왜냐, “최악의 경우에 도망치겠다. 처자야 죽든 말든 내가 살아 야지뭐. 내 죽고 처자가 살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처자는 죽더라도 내가 살아야 되겠다.” 이게 야곱입니다. 얼마나 자아가 강한지 다 오는데 “여보 당신은 안 가오?”, “나 여기 볼 일 있어. 너희들 먼저 가!”, “아빠 같이 가!”, “아니야 아빠는 여기 볼 일 있어. 너희들 먼저 건너가!” 후안무치하게 처자들과 짐승들을 다 버려 놓고 난 다음에는 그는 쪼그리고 앉아서 상황을 봅니다. 왜냐하면 형이 와서 자기를 죽이려면 처자들부터 먼저 칼로써 죽일 것이라.. 그때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치겠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11절에 보면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주옵소서 "
2.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
그는 창자가 끊어진 듯이 부르짖고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는데 어떠한 분이 나타나가지고서 야곱의 멱살을 잡거든요. 그리고 난 다음 “야, 이놈아 건너가라! 처자와 함께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살아라!” “아 이 사람이 누구야? 나는 못갑니다.” “가라!” 그래서 일본 씨름을 합니다. 일본 씨름은 밀었다가 밀기 아닙니까? 한국 씨름은 허리 바를 잡고서 이렇게 하지만 일본 씨름은 밀기거든. 막 이 사람이 야곱을 밀어서 얍복강을 건너가라고 하니 야곱은 안가겠다고 같이 밀고 둘이가 밤새도록 밀고 당기는데 야곱의 고집이 얼마나 센지 날이 샐 때까지 양보 안하는 거예요. 나는 처자는 죽더라도 나는 살아야 될 테니까. “야 이놈아! 처자가 죽으면 너도 같이 죽어야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되지 않겠느냐? 너 건너가라! 건너가라!” “못 건너가요. 못 건너가요.” 그때까지도 야곱은 자기가 씨름하는 것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자인데 그때 하나님의 사자는 육신으로 오기 전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하고 밤새도록 씨름을 하는데 예수님이 도저히 안 되겠다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어떻게 했느냐..
3. 야곱이 깨어진 장면
손을 들어서 환도뼈를 쳤습니다. 환도뼈가 어그러지니까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절름발이가 되었지요. 절단 났습니다. 꿈이 다 깨졌습니다. 도망을 쳐야 되는데 이제는 환도뼈가 어그러졌으니까 이러고 어떻게 도망을 칩니까? 이제는 큰일 났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을 부여잡았습니다. 부여잡고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복을 주십시오. 나에게 복을 안주면 당신 절대 놓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제 허벅다리가 어긋났으니 절름발이가 되어서 형이 오면 도망도 못치고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도망치겠다는 인간적 계획이 허물어졌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에 거역된 일을 하면 하나님이 허벅다리를 치시는 것입니다. 가정의 허벅다리, 사업의 허벅다리, 신체적 허벅다리를 치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교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축복이 있어야 안 무너지지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고, 자식을 기르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고, 사업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는 것이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환도뼈를 쳐서 어그러져서 인간의 힘으로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못해요. 못해요.” 제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지을 때 돈은 없고 인부들은 돈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교회는 무너진다 그러고, 비는 줄줄 세고 제가 여기에 엎드려서 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나는 못해요. 나는 못해요. 주여 나는 못해요. 하늘에서 하나님이 도와주지 아니하면 나는 못해요. 나는 못해요.” 다른 기도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외마디 소리밖에 없습니다. “나는 못해요. 하나님이 안도와 주시면 나는 못해요. 이대로 죽게 해 주시옵소서. 철골이 떨어져서 내 머리 위에 떨어져서 맞아죽게 해 주시옵소서.” 바로 야곱이 그런 심정입니다. 이제 큰 일 났습니다. 이제는 처자들과 같이 갈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고 하나님이 복을 받아 하나님이 같이 했어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6절에 "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때 그 천사가 뭐라고 물었냐면 “네 이름이 뭐냐?”, “야곱이니이다.” ‘야곱’이라는 말은 속이는 자, 빼앗는 자, 발꿈치 잡은 자인 것입니다. 왜 야곱이라고 했냐면 쌍둥이 에서와 같이 태어났는데 먼저 야곱이 태어나려고 하다 도로 들어가서 에서가 나왔는데 나올 때 보니까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오거든 그래서 요~ 꾀 많은 사기꾼, 빼앗는 자, 발꿈치 잡은 자라는 이름의 야곱인 것입니다. 이름치고는 더러운 이름이지요. 이름 잘 지어야지. 이름 듣기도 좋고, 의미도 있어야지 이름이 좋지 않으면 안 되는데 야곱은 자기가 자기 이름을 불러도 빼앗는 자, 속이는 자, 발꿈치 잡는 자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때 이 하나님의 사자가 그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4. 변화된 야곱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 32:27~28)
하나님과 씨름해서 져야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면 계속 야곱입니다. 지면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깨어져서 항복하면 이스라엘이 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겨루는 씨름에 끝까지 내가 고집을 부려서 야곱으로 있으면 하나님은 같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먼저 내가 깨어져서 변화되면 상대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켜야 야곱을 통해서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먼저 너부터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내게 신앙상담 오는 사람들이 많이 그럽니다. “우리 남편 좀 변화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어떤 때는 민망스러울까 싶어 말은 못하지만 “당신이 먼저 변해야 된다. 당신이 먼저 깨어지고 완전히 가루가 되고 주님께 의지하면 그를 통해서 주님이 남편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아내 좀 바람 피우지 않게 좀 도와주십시오.” 하는 남편도 나를 찾아 많아 와요. 옛날에는 그런 것 없었는데 요사이는 아내가 바람 피워서 남편이 골치를 앓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내가 말합니다. “당신이 먼저 깨어져서 완전히 하나님 중심으로 서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이 아내의 마음을 변화 시켜야지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마음을 변화 시키냐” 여러분, 마음은요 자기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 자기 마음대로 합니까? 성 안내려고 하는데 성 나오지요? 사랑하려고 하는데 사랑 안 되지요? 기뻐하라고 하는데 안 기쁘게 되지요? 내 마음 나도 몰라. 내 마음 나도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겠습니까?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깨어져서 내가 변화되면 이웃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기도하고 주님을 앙망하면 매일같이 주님이 와서 우리가 씨름하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큼직한 씨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은 씨름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기 싫은 마음이 있는데 하나님은 오셔서 교회 가라고 합니다. 교회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씨름하는 것입니다. 십일조 드릴까 말까? 드릴까 말까? 씨름하는 것입니다. 전도할까? 하지 말까? 씨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크고 적은 믿음에서 끊임없이 마음 속에 하나님과 씨름할 때 여러분이 결국 항복해서 하나님 좋으면 나도 좋고, 하나님 싫으면 나도 싫습니다. 나는 하나님 편에 서서 따라 가겠습니다. 항복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해서 교회 갈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 주시고 기뻐할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 주시고 전도할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여 주셔야지요. 내 힘으로 되나요? 그런데 야곱이 환도뼈가 어그러져서 완전히 무너지고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서 나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복을 안주면 나는 놓지 않겠나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사기꾼에게서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자로 변화시켜 준 것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승리의 생활을 하려면 깨어지십시오. 하나님 앞에 무너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스스로가 놀랄 만큼 내가 이렇게 변화될 수가 있느냐. 예수 믿고 난 다음 깜짝 놀랄 사람 많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변화 되었느냐. 내가 어떻게 교회에 가게 되고 어떻게 찬송을 부르게 되고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어떻게 아까운 돈을 십일조를 드리게 되고 어떻게 사역 봉사를 하게 되었느냐 야~ 내 마음 나도 몰라.. 내가 이렇게 변화될 줄 모르겠다.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변했느냐? 얘들아 네가 어떻게 그렇게 변했느냐?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내가 불광동에서 개척할 때 우리 교회 와서 고통을 많이 주던 박종선 목사.. 의정부교회 담임인 박종선 목사님 그때 주먹 잡이였었습니다. 교회 와서 촛대고 뭐고 모조리 다 가지고서 팔아먹어 버리고.. 심지어는 산소통, 종까지 짊어지고 가서 팔아먹어 버려요. 심심하면 교회 물건 가지러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도 주먹이 세고 그냥 왈가닥하는 사람이라 감당을 못해요. 싸움을 해서 이빨 하나 자기 이빨이 없습니다. 다 뽑혀지고.. 그런데 주일날 예배 준비하기 위해서 토요일 날 제가 그 옆에 있는 조그마한 집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애들이 막 죽는 소리를 해요. 아~~~~~ 고함을 치고 막 부르짖는 소리가 나서 이것 큰일 났구나. 뛰어 나가 보니까 이 박종선이가 왔는데 교회학교 애들이 5살, 6살, 7살, 10살짜리들이 자기들이 토요일 날 모임이 있어서 왔다가 박종선이 오니까 매달렸어요. 목에 매달리고, 어깨에 매달리고, 팔을 잡고, 다리를 끌어안고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그러니까 애들이 개미떼처럼 오니까 엎드렸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조그마한 교회학교 남, 녀 애들이 올라탔어요. 목에도 올라타고, 허리에도 올라타고, 엉덩이도 올라타고 누르고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 마귀야 물러가라! 마귀야 물러가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그런데 또 놀라운 것은 “어헝~ 어헝~어헝~” 운다 말입니다. 애들 거기에.. 훔치러 왔다가 울어요. 어헝~ 엉엉... 그래서 난 모른 체 하고 나왔어요. 그때 그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교회 참석하기 시작하고, 청년 지도자가 되고 전도를 열심히 하고 늘 교회 와서 찬송 부르고 북치고 오늘날 세계적인 주의 종으로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그 마음을 누가 변화시킵니까? 어린 아이들이 기도하니까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깨어지니까 하나님이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시는 기적은 놀라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살면서 마음에 변화를 받아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란 그 당시에 기분이 좋고 몸이 찌릿찌릿하고 불을 확 받았다고 그게 은혜가 아니라 내 마음에 변화되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 편안한 마음으로 변화되고 미운 마음이 고운 마음으로 변화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되고 참을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고 이해와 동정과 사랑과 인내할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 이게 참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되려면 하나님 앞에 내가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죄를 회개하고 나의 고집을 다 저버리고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깨어지면 하나님께서는 변화의 작업을 시작하고 여러분이 변화되면 남편도 변화되고, 아내도 변화되고, 자식들도 변화되고, 친구들도 변화되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자는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항복시키기 위해서 여러분과 계속 씨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씨름이 바로 고난인 것입니다. 장난친다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고난은 괴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고.. 침례 받고, 성찬 떼고 주님과 한 몸이 되었을 지라도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계셔서 여러분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씨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깨어진 그 날, 기념이 있습니다. 절름발이 야곱이 가는 길에는 태양이 떠올랐다고 말한 것입니다. 밤새도록 씨름하고 상처투성이가 되고 더벅머리가 되고 얼굴을 갈아서 아주 피멍이 들고 옷은 남루하게 되었지만 절뚝거리고 일어나서 하나님 의지하고 변화 되어서 가는 그 앞에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창세기 32장 30절로 31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절어도 좋아요. 인생에 태양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기어가도 좋아요. 인생에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밤같이 캄캄하게 어두운 고통 속에 살다가 그 고통이 다 사라지고 내 마음속에 태양이 떠올랐다. 20년 세월동안 형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살았었습니다.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천사와 씨름하고 자기가 깨어지고 난 다음에 자기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 맡겼습니다. 이제 절뚝발이가 되었으니 도망을 못 치니 사나 죽으나 하나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도 하나님께 맡기고 살고 죽는 것도 하나님께 맡기고 먹고 사는 것도 하나님께 맡기고 처자도 하나님께 맡기고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나니까 그 마음속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두움이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어두운 그림자라도 있으면 여러분 하나님께 부르짖어 의지하고 맡기고 여러분 마음속에 태양이 떠오르게 하십시오. 비록 그는 절뚝거리고 갔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같이 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입니다. 그가 얍복강을 건너갈 때에 가족들이 보고 놀랐습니다. 밤새도록 안 오더니만 온 머리는 다 산발이 되고 얼굴은 시커멓게 멍이 들었고 옷은 찢어지고 흙투성이가 되고 그것도 좋은데 절뚝거리고 그렇게 오는데 얼굴은 보니까 저녁에 얼굴은 아주 흉악한 얼굴이더니만 아침에 절뚝거리고 오는 얼굴은 태양이 떠올랐었습니다. 그렇게 기쁨이 충만하고 평안하고 웃음이 넘치면서 절뚝절뚝 하면서 “오너라.. 오너라.. 가자. 가자. 네가 내 뒤에 서라. 내가 앞장선다.” 다 거느리고 앞장서서 갑니다.
5. 위대한 승리의 행진
이제는 깨어지고 변화되었으므로 가족을 책임지게 된 것입니다. 가족 버리더라도 내 살겠다는 것 아닙니다. 내가 죽더라도 가족은 살리겠다. 그리고 그는 이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진하는 것입니다. 형이 이를 갈고 칼을 뽑고 단칼에 베려고 뛰어 오는데 보니까 뭐가 머리가 산발이 다 된 놈이 온 옷은 찢어지고 흙투성이가 된 것이 구부러져서 이러고 오거든.. 형이 보니까 저거 한주먹도 안돼요. 저것을 뭘 칼로써 찌르겠느냐. 형이 곁에 오는데 하나님 능력이 야곱과 함께 해서 형에게 임하니까 형의 마음이 녹았습니다. 아주 얼음 녹듯이 녹아 버리고.. 내가 자꾸 눈물이 날라고 카네? 형이 말에서 뛰어 내려서 동생을 끌어안았습니다. 20년의 원한이 눈처럼 녹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했지 사람 힘으로 안 됩니다. 형이 집을 떠날 때는 완전히 야곱을 박살을 내려고 떠났는데 애가 절뚝거리는 야곱 앞에 와서 절름발이에게 형이 400인의 장정을 거느리고 항복을 하는 것입니다. 형의 원한이 사라지고 동생의 목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형의 그 완악한 마음이 어떻게 녹아질 수 있었습니까? 야곱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형의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하나님이 형의 마음을 변화시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먼저 내가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면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홍해수도 갈라지고 여리고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인데 무엇을 못하겠어요? 먼저 내가 변화되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역사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여기 보여주는 것입니다. 형이 동생의 목을 끌어 앉고 “야 이놈아, 20년 동안 형을 배반하고 가서 있더니 들어오는데 고작 이 절름발이가 돼서 돌아오느냐?”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끌어안아 주고 “내 400인의 군대를 너 호위병으로 줄 테니까 나와 같이 가자!” 죽이러 온 사람이 호위병이 되고 만 것입니다. 죽이러 온 사람이 호위병이 되었어요. 우리는 휴전선을 앞두고 북한과 우리 대한민국이 형제이면서도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됩니다. 총칼로 문제가 해결 안 됩니다. 북한이 아무리 원자탄을 만들어도 원자탄으로 해결 안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병력을 증강해도 병력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북한과 우리 사이에 마음이 녹아서 화해되어야 되는데 그 마음은 북한 사람보고 녹아지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녹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고 회개하고 우리가 녹아져서 사랑의 손길을 베풀 때 하나님이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 줘야 되는 것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됩니다. 정치가의 우수한 정치적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정인의 위대한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행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에 사랑을 베풀어야 돼요. 배고픈 사람 먹여야 돼요. 병든 사람 치료해줘야 돼요. 불쌍한 사람 도와줘야 돼요. 억지를 부리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변화되어서 나아가면 저들은 변화 안 되는 것 소용이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변화되면 하나님이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되어야 되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3장 4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20년 원한을 가지고 이를 갈던 원수가 동생 앞에 와서는 이리 와서 그냥 운 것이 아나라 그를 안고 달려와서 끌어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또 입까지 맞추었네? 양치질 하지 않은 입에 구린내도 날것인데 입까지 맞추고 그리고 엉엉 울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요. 하나님만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못해요. 하나님은 이런 기적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창 33:12) 얼마나 놀랍습니까? 야곱이 죽고 이스라엘로 변화되면 그 때 참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육신을 생각해서 내가 죽으면 내가 손해나지. 아 부부간에 싸우면서 내가 지면 나만 손해나지 않느냐. 그래서 부부간에 싸울 때 없는 말, 있는 말 다 하는 것은 상대방의 창자를 뒤엎을라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싸울 때 말 믿으면 안돼요. 그것은 어쩐지 상대방의 창자를 뒤엎어 놓으려고 부인도 남편에게 있는 말, 없는 말 다 하고 남편도 부인에게 있는 말, 없는 말 다하는데 진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이 아니에요. 그것은 선전용인 것입니다. 그 말을 믿으면 안돼요. 내가 이겨야 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그것은 육신의 생각이요. 그럴 때 내가 거꾸러져서 깨어져서 내가 울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항복하면 하나님이 “야, 이놈아! 변화되라! 야, 너 변화되라!” 하나님이 햇빛을 비취면 어느 얼음장사가 얼음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얼어붙은 동산도 봄이 오면 녹아져요. 봄이 오면 녹아져요. 하나님이 앞에 안 녹아질 사람 누가 있는 것입니까?
<결론>
이사야 41장 14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십시오. 너, 버러지 같은 야곱아. 허..버러지 상대가 됩니까? 꿈틀 꿈틀 꿈틀 기어오는 버러지, 그 바람에도 날라 가고 발로 차버리면 날라 가고 밟으면 터져 버리는데.. 나는 버러지 같습니다. 나는 우리 집에서 버러지 취급 받습니다. 나는 내 친구들 가운데 버러지 같이 취급 받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내가 예수 믿고 버러지가 되면은 내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훼가 말하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버러지가 되면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도우시는데 누가 망하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자도 없습니다. 하나님 일으켜 세운 사람 끌어 내려올 수가 없고 하나님이 끌어 내려온 사람 일으켜 세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버러지가 되는 것 주님 앞에 깨어져서 절름발이 버러지가 되는 것 여러분은 패배자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깨어지고 지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가 유럽을 제패하고 대 로마제국이 된 것은 콘스탄틴 황제 시절입니다. 주후 312년 콘스탄틴은 막강한 군대를 가진 막센티우스와 로마의 티베르 강에서 서로 대치하여 밀비안 다리에서 전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기는 자가 로마와 전 세계를 점령한 것입니다. 그래서 큰 고통에 빠진 이 콘스탄틴 황제는 고민을 하고 자기 막사에서 이 전쟁을 어떻게 이길까 하는데 환상이 나타났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고, 죽어가는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말씀이 들려 왔습니다. “너가 승리를 하면은 이 로마제국을 주님을 믿는 나라로 만들겠느냐? 너 황제가 되면 깨어지고 주님의 종이 되겠느냐?” 그는 말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기면 로마제국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고 나는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십자가를 주시면서, “이 십자가로 이겨라!” 그래서 그는 당장 그 환상을 보고 난 다음 그가 본 십자가로 로마 군인의 투구에 전부 십자가를 그리고, 방패에다가 십자가를 그리고, 그러고 난 다음에 전쟁에 나가서 적은 군대로써 큰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 막센티우스의 군대를 괴멸시켰었습니다. 그리고 대승을 거두었었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온 천하에 공인하고 그냥 강제로 어떤 나라든지 예수 안 믿으면 가만 안 둔다. 그래서 구라파가 기독교 국가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서 야곱인 그가 이스라엘로 하나님 앞에 깨어지고 하나님 종이 되겠다고 하자 하나님이 그와 함께 싸워 주셔서 전쟁에 이기고 로마가 하나님 손에 쥐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콘스탄틴 대제에게도 또한 오늘 우리에게도 그러한 변화의 얍복강을 주십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명령했던 대로 우리에게도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얍복강을 건너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얍복강이 있어요. 남편이 얍복강이 될 수도 있고, 아내가 내 얍복강이 될 수 있고, 자식이 얍복강이 될 수 있고 사업이 얍복강이 될 수 있고 살아야 되겠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통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 얍복강을 승리로 건너게 하는 자는 하나님이신데 태양이 떠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얍복강에서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인생에 태양이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