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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터전

히브리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573 추천 수 0 2010.01.18 15: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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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히12:28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11. 30. 주일 4부 설교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서론>
오늘 저는“흔들리지 않는 터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월이 참 빨라요. 20년 전, 1989년 10월 17일 오후 5시 4분 샌프란시스코에 큰 지진이 일어났었습니다. 여러분 신문을 보아서 기억이 난 사람은 기억할 것입니다. 제가 한참 세계를 다니면서 부흥회를 할 때인데 샌프란시스코에 부흥회를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내 제자 김흥준 변호사에게 호텔을 예약하라고 해놓았는데 김변호사가 우리 갈 때까지 깜박 잊어 버렸어요. 도착하니까 좋은 호텔은 사람이 꽉꽉 차고 들어갈 수 없고 목조 5층 건물 ‘라마다인’이라는 호텔로 들어갔는데 호텔이 아니라 여관이에요. 그리고 난 다음에 짐을 풀고 이제 저녁을 먹고 집회 가려고 열심히 한 1시간 이상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옷 다 정비하고 성경을 손에 들고 걸상에 앉아서 마지막 “주님 오늘 저녁에 성령께서 역사해 주시옵소서.” 하니까 집이 부르르 떨어요. ‘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구나! 성경에 보니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그들이 다 성령이 충만히 받고 성령으로 말씀을 담대히 증거하더라고 했는데 내 평생에 이런 건 처음이다. 야~ 획기적이다.’ 그런데 쾅 소리가 나더니 집이 그냥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엄청 흔들려요. 내 목이 막.. 몸도 막.. 이것 성령의 역사가 아니구나. 지진이구나. 창 너머 보니까 큰 굴뚝이 넘어지고 빌딩이 넘어지고 자동차가 고속도로에서 서로 부딪히고 야단인데 우리 건물은 삐걱삐걱 삐걱삐걱 소리가 나고 목조 건물이니까 금이 벽에 쫙쫙 나고 전등불이 떨어지고 침대가 뒤엎어지고 이제 죽었구나. ‘하나님, 성령 충만이 아니라 죽음 충만입니다. 살려주시옵소서.’ 그래서 벌벌 기어서 5층에서 뛰어 내리려고 밑에 풀이 있기 때문에 풀로 물속으로 뛰려고 보니까 얼마나 출렁거리던지 물이 다 쏟아져 버리고 시멘트 바닥밖에 안보여요. 그래서 창문틀을 잡고 서 있으니까 지진이 좀 잔잔하더라구요. 그 몇 초 동안만 더 흔들었으면 우리 5층집도 무너졌어요. 그런데 그때 어찌나 김변호사가 고맙던지 시멘트로 지은 고층빌딩에 있었으면 나는 죽었어요. 그런데 목조건물이 제일 안전하거든요. 삐그덕 삐그덕 하면서 잘 무너지지 않아요. 그런데 그것도 5층 건물에 들어갔지 큰 빌딩에는 20층, 30층에 들어갔으면 나 고스란히 기절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고 김변호사를 잊어버리게 만들어서 그래서 목조건물에 들어가서 편안히 살아나온 것입니다. 저는 그 경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내가 있는 그곳이 샌프란시스코 지진의 센터였습니다. 가장 중심부였습니다. 마..지진에 흔들렸던 사람 중 나만큼 흔들린 사람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체험에 목은 목대로 놀고, 팔은 팔대로 놀고, 다리는 다리대로 놀고 어디 잡을 수가 없어요. 정신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터가 흔들리면 인간이 세워놓은 모든 건물들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인간이 아무리 세워 놓은 건물이라도 터가 튼튼해야지 하나님이 흔드시면 터전은 무너진다.

<본론>
1. 하나님이 흔드시는 터전
노아의 후손들이 번성하매 시날 땅에 모여서 바벨탑을 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는 인종이 하나고 말이 하나니까 서로 화합이 잘된다 말입니다. “우리가 탑을 세워 공중에 닿게 하고 하나님까지 미치게 하고 우리 이름을 내고 지상의 흩어짐을 피하자.” 아주 교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다시 홍수가 나도 안정하도록 탑을 하늘에 닿아 하나님과 동등되게 되고 우리 이름을 내자고 했으므로 반역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그들은 힘을 모아가지고서 벽돌을 쌓아서 아주 높이 올라갔는데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께서 그들이 하는 작업을 보러 내려오셔서 말씀하기를 “이 종족이 하나고 언어도 하나니 이렇게 시작했으니 막을 자가 없겠다.”고 거기에서 하나님이 언어를 혼잡하게 했습니다. 영어, 불란서어, 독일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언어를 혼잡하게 하니까 위에서 벽돌 올리라카는데 역청을 올리고, 역청을 올리라고 하는데 돌멩이를 올리고 말이 안 통하니까 말이 안통하면 통일이 안 되고 일이 안 되서 그래서 뿔뿔이 흩어지고 만 것입니다. 바벨탑은 우리 인류에게 준 큰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저항하고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는 모든 터전은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흔들어 버리고 무너뜨린 소돔과 고모라를 보십시오. 소돔과 고모라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비옥한 토지인 것입니다. 농사가 잘되어서 산물이 풍부하고 짐승들도 잘 자라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부유했습니다. 그러니까 타락했습니다. 도박하고 술 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 남자가 남자끼리 살고, 여자와 여자끼리 사는 소돔이 동성연애가 바로 거기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 위해서 천사를 보내셨을 때 아브라함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러 간다고 하기에 아브라함이 간청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조카 롯이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소돔과 고모라를 의인 50명만 있으면 안 무너뜨리겠습니까?” “의인 50명이 있으면 안 무너뜨리겠다.” “그러면 의인 40명이 있으면요?” “그래도 안 넘어뜨리겠다.” “그러면 의인 30명이 있으면요?” “그래도 안 때리겠다.” “그러면 의인 10명만 있으면요?” “10명만 있어도 안 무너뜨리겠다.” 그러니 더 이상 이제 감히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아브라함이 계산해 보니까 롯과 롯의 처와 두 딸과 사위 예비 사위 두 사람과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 합치면 최고 한 10명은 아마 의로운 의인이 아니겠느냐 싶었는데 10명이 안되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롯과 그 가족을 끌어내시고 난 다음에 아침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땅이 갈라지고 하늘에서 유황비가 쏟아지매 모든 사람들이 다 타죽고 모든 건물이 다 타고 모든 인간이 만든 건축물들이 다 무너지고 소돔과 고모라는 지중해 해안에서 침몰되어 버리고 오늘날 흔적도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19장 24절로 25절에 보면 “야훼께서 하늘 곧 야훼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멸하였더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본주의에 서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영원히 살 줄 생각하는데 우주를 통치하는 주재자 하나님이 계십니다. 정의롭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어느 정도 참다가 심판하십니다. 왜 참으시냐구요? 여러분 집에 쓰레기통이 있지요. 쓰레기통을 언제 치웁니까? 반쯤 찼을 때 치웁니까? 쓰레기가 좋지 않은데 왜 치워 버리지 왜 그럽니까? 가득찰 때까지 기다려서 쓰레기통에 가득차면 쓰레기를 치우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보시고 죄악의 한도가 차면 심판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용서하고 참고 기다리시다가 계속해서 죄가 쓰레기처럼 차올라서 머리끝까지 차면 그때는 하나님이 손을 들어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터를 흔들면 안 무너질 것이 없습니다.
여리고성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는데 제일 처음 맞은 성이 여리고성입니다. 철벽성입니다. 거기에는 거장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에 들어와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루 여섯 바퀴씩 돌고 6일 동안 돌고 7일째는 여섯 바퀴 돌고 일곱 바퀴 전에는 고함을 쳐 부르짖어 찬양을 하면 여리고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에는 성문을 단단히 닫고 군인들이 잔뜩 무장을 하고 일전을 할 각오를 하고 있는데 본인이 오랜 광야에 방황하다가 들어온 너저리한 이스라엘 백성들 먹지도 못해서 빼빼하고 옷도 안 빨아서 더럽고 보잘것없고 무장도 잘 안된 사람들이 와서 쳐들어 올 줄 아는데 여리고성을 한 바퀴 빙 걸어 돌더니만 진으로 가서 그냥 자거든요. 또 이튿날도 보니까 또 빙 한 바퀴 돌더니만 또 진에 가서 자고, 사흘째 또 빙 돌더니만 진에 가서 자니까 그만 여리고성에 있는 군인들이 손가락질 하고 웃고 “아이고 저 꼬락서니를 가지고 우리를 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너희들 백날 돌아봐야 다리만 아프지 아무 일도 안 생길 것이다.” 그런데 7일이 되니까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세 바퀴 돌고, 네 바퀴 돌고, 다섯 바퀴 돌고, 여섯 바퀴 돌고 난 다음에 일곱 번째 여호수아가 나팔을 불게 하니까 일제히 사람들이 와~ 고함을 치니까 성이 우르르.. 우르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터를 흔들어 버리니까 아무리 철벽성이라도 밑둥이 흔들리면 안 무너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초가 흔들리는데요.
여호수아 6장 20절에 “이에 백성들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도 하나님을 대적하면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기업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反)기업을 하면 때가 차면 하나님이 그 터전을 흔들어 버립니다. 나라도 터전을 흔들어 버리면 망해요. 독일도 망했고, 일본도 망했고, 소련도 망했고 터전을 흔들어 버리면 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업을 잘한다고 해도 순식간에 망하는 거에요. 이번에 대경제공황이 오니까 어지간한 기업들은 다 도산하고 무너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터를 흔들면 안 무너질 것이 없어요. 개인의 삶도 그렇습니다. 개인의 삶도 하나님 없이 주지육림에 빠져 세상을 따라 살면 하나님이 기한이 자면은 터를 흔들어 버리면 개인의 삶도 박살이 나는 것입니다. 가정도 한가지요. 가정도 주님 중심으로 아름답고 화목하게 살지 않고 밤낮 물고 찢고 싸우고 그러면 하나님이 참다가 기한이 차면 가정을 흔들어 버리면 이혼을 하거나 죽거나 무서운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도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올바르게 살지 하나님이 우리 생명의 터를 흔들어 버리면 하루도 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서서 걸어 다니고 일어나서 밥 먹고 옷 입고 성경책 가지고 교회 올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빼앗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27편 1절에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집도 하나님 토대 위에 세워야 되고 성도 하나님 토대 위에 세워야 되지 하나님 없는 집과 성은 하나님이 터를 흔들어 버리면 박살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6절로 27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하나님 없이 지은 집이 아무리 아름답고 성이 강건하더라도 하나님 없이 지은 집과 성은 모래성입니다. 모래는 쉽게 기초가 무너지지 않습니까? 그런 모래 위에 지은 집이나 성은 흔들리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 없이 내 인생을 계획하면 모래 위에 지은 것입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언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환란이 다가오고 바람이 불고 인생에 창수가 나면 무너지되 적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터가 흔들리므로 심히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2. 마귀가 흔드는 터전
둘째로는 하나님이 흔드는 터전이 아니라 마귀가 흔드는 터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배반하고 반역하는 사람의 터전을 흔들지만 마귀는 우리 예수 잘 믿는 사람에게 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우리 터전을 흔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에 대한 참소와 공격을 보십시오. 성경에 대표적인 것이 욥인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주님을 잘 섬기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아들이 7명, 딸이 3명, 양이 7,000마리, 낙타가 3,000마리, 소가 500겨리, 암나귀가 500마리, 많은 종을 거느린 동방에서 제일 잘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욥을 보고 “야~ 하나님 믿으면 저렇게 된다. 하나님 섬기면 저렇게 된다.”고 칭찬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하나님께 와서 욥을 참수하는 것입니다.
욥기 1장 8절로 9절에 보면 “야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인정하고 칭찬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욥을 인정하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보십시오. 사탄이 “사탄이 야훼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빈정거리거든요. “욥이 뭘 까닭 없이 하나님을 순전하게 섬기고 따르겠습니까? 다 이유가 있지.” 마귀는 꼭 우리를 참수하고 빈정거리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고 마귀는 나쁜 마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우리가 언제나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기 1장 11절에 보면 욥이 이제는 하나님께 잘하니까 마귀가 참소를 합니다.“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지금 하나님을 찬미하고 감사하지만 주님을 손을 내어서 소유물을 다 쳐버리면 틀림없이 돌아서서 하나님 보고 욕을 할 것이다. 엄청난 참소입니다. 하나님이 대표적으로 욥을 내주었었습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와서 바람을 불게 해서 형제들이 잔치하는데 집이 무너져서 아들, 딸이 한꺼번에 다 죽었습니다. 벼락이 쳐서 앙떼들이 다 불타고 이웃 도적떼들이 와서 짐승을 다 빼앗아 가고 종들을 죽였습니다. 하루 아침에 욥은 거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뭐라고 했습니까? 욥이 말하기를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가져가신 이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찬양을 받을지로다” 원망 안했습니다. 욥이 정확하진 않지요.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고 빼앗아가는 이는 마귀인데 욥은 그러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빼앗아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니 범사에 하나님을 찬양할지로다 라고 하나님 앞에서 부정적인 불평을 안했었습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와서 두 번째 또 빈정댑니다. 끝까지 참소하는 것입니다.
욥기 2장 4절로 5절에 보면 “사탄이 야훼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습니까”
재물을 다 잃어도 목숨만 안 잃으면 감사하겠지요. 그러나 손을 펴서 그를 치면 온 전신이 병들고 고통을 당하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욕할 것입니다. 신앙별것 없어요. 뭐 욥이 하나님을 찬양한다구요? 다 입에 들어가는 것 있으니까 찬양하지 안 그렇습니다. “욥을 그러면 그 몸이 손을 대되 그 영혼은 손대지 마라.” 마귀가 내려가서 욥을 쳐서 온 전신에 종기가 나게 하고 옷도 못 입고 잿더미에 앉아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으니까 마귀가 그 부인을 통해서 들어와서 “너 이래도 하나님을 섬기고 정직하게 찬양하느냐? 죽으라 죽어!” 그리고 부인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니 욥은 자식 다 죽었지요. 재산 다 날라갔지요. 마지막 의지하는 부인조차 저주하고 떠나가 버렸었습니다. 가장 적막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욥의 세 친구가 또 와서 끊임없이 욥보고 “너 죄를 지었다. 회개하라”고 구박을 하니 욥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섬기고 정직하게 살았는데 이렇게 구박을 하니 끝까지 욥은 자기의 정직을 지키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마귀는 참패하고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서 축복을 주되 전에 보다 배로 축복을 주셨습니다. 욥에게 갑절의 축복을 주고 욥의 기사를 성경에 기록해서 세세에 알리도록 한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오면 사업과 생활과 가정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우리 사업을 잘한다고 하지만 사업을 마귀가 와서 흔들지요. 생활도 흔들지요. 가정에도 시험과 환난을 가져와서 마귀가 흔듭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
도둑이 들어올 때 여러분에게 좋은 것 주려고 오지 않습니다. 집에 있는 보물을 빼앗아 가려고 오지요. 눈이 번쩍번쩍 하면서 틈만 있으면 빼앗으려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는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눈이 번쩍 번쩍해서 우리의 보물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영혼도 안 되게 하고 범사도 망하고 병들고 패망하길 원하는 것이 마귀의 짓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한 것입니다.
사자가 배가 고프면 어르렁 거리고 짐승을 잡아먹으려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마귀는 온 지구상에 귀신 들고 함께 으르렁 거리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주님 앞에 몸을 낮추고 신앙으로 깨어 기도하고 말씀 위에 서야지 안 그러면 마귀에게 잡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마귀가 와서 날뛰어도 하나님이 붙들고 있으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붙들고 있으니까 재산 다 빼앗아 가고 그 후에 처참하게 병들게 해도 욥이 무너졌습니까? 안 무너졌습니다. 하나님 중심에 서 있으면 하나님이 붙들기 때문에 안 무너지지요.
로마서 8장 35절과 37절에 “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있으면 어떠한 마귀의 수작이 들어오고 마귀가 와서 내 개인, 가정, 생활, 사업을 뒤 흔들어도 안 무너집니다. 넉넉히 이깁니다.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마귀가 와서 뒤흔들 때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대적하면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10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보십시오. 이 보배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시고 우리를 의지하는데 우리는 힘이 없어요.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이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보배를 질그릇 같은 우리 몸에 담았으니 우리가 사방으로 마귀가 와서 우겨 쌓여도 쌓이지가 않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우리를 우겨 싸려고 해도 우리를 못 우겨 싸요. 왜, 우리 속에 보배인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리고 답답한 일을 당해서 이제는 갈 길이 없고 막다른 골목으로 죽어야 되겠다고 싶어도 낙심이 안 됩니다. 왜? 주님이 계시는데 낙심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용기와 힘을 얻고 은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고 온갖 조롱을 해도 주님이 같이 계시므로 버림받지 않고 하나님이 더 영접하고 축복을 주시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완전히 패가망신 시키려고 해도 욥처럼 되어도 버림받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항상 세상에 살면서 예수를 원수 마귀가 죽인 그 수단과 방법으로 우리를 죽이려고 해도 항상 예수의 생명이 우리 속에 나타나서 이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론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보배로운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 이름을 부르면 예수님께서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학교 나오는 내 손녀딸이 내게 와서 “할아버지 나 간증할 것 있어요.”라고 해요. 그래서“무슨 간증 있니?”라고 하니까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턱 서가지고서 문이 안 열리더랍니다. 어찌 겁이 나서 엘리베이터 문을 열려고 아무리 해도 이 문이 안 열리고 겁이 나서 가슴이 두근두근 했는데 자기가 하는 말이 그 동안에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예수님이 계시지 않느냐 라는 생각이 나서 “예수님이여 날 살려 주십시오. 나를 도와주십시오.”하고 버튼을 누르니까 문이 쏴악 열리더랍니다. 어린 교회학교 딸이라도 위기를 당해서 답답한 일을 당할 때 자기는 예수를 잊고 있었으나 그때 예수가 계신 것을 기억하고 기도를 하니 문이 열리더라. 그 정말 순진한 간증 아닙니까? 우리는 너무나 종종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 손녀딸처럼.. 세상일에 바빠서 예수님이 내 속에 계신 것을 잊어버리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황해서 어찌할 바 모르고 안절부절 하는데 그러다가 “아이구~ 내가 예수님 믿고 예수님이 나와 계시지?” 그래서 무릎을 꿇어 예수님께 의지하면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산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 죽인 원수 마귀가 우리에게 언제나 죽음을 가져와도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서 우리가 넉넉히 이기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3. 흔들리지 않는 터전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는 터전에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흔들리지 않는 터전입니까? 돈입니까? 여러분 경제공항이 오면 돈은 휴지쪽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권력입니까? 군부 10년으로 10년 이상 가는 권력이 없습니다. 명예입니까? 그 오래 의지할 것 못됩니다. 청춘입니까? 청춘으로 늘 남아 있을 사람 누가 있습니까? 나도 옛날에 청춘이었는데 지금 청춘 아니에요. 흘러가는 세월을 어떻게 잡습니까? 이 세상에 안 흔들리는 터전이 하나도 없어요. 다 흔들리는 것입니다. 세월이 가면 이빨도 흔들리고 머리도 흔들리고 손발도 흔들리고 안 흔들리는게 없어요. 그리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터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귀에게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흔들리는 터전인 죄를 걸머지고 불의와 추악을 걸머지고 병을 걸머지고 저주와 가난을 걸머지고 죽음까지 걸머지고 마귀에게 마귀에 내놓았었습니다. 마귀는 엄청나게 그리스도를 두드렸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예수님 흔들었습니다. 모든 인생의 죄를 다 예수님께 맡겼으니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죄의 잔을 들고 “하나님!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아버지는 인생들의 죄를 끝까지 마셔라. 여러분과 나의 원죄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지은 자(自)범죄를 처음부터 영원히 끝까지 다 예수님이 들이켰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것입니까? 똥도 진똥보다 더 더러운 죄악을 주님이 다 들이켰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왕인 마귀에게 끌려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며 온갖 짓밟힘과 고통을 다 당한 것입니다. 죄가 할 수 있는 예수님을 완전히 죽여 버리려고 전력을 기울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죄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다.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우리 아담 후손들은 부패했지 않습니까? 마음이 옛사람은 부패해서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예수님은 우리의 부패를 다 짊어지시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술 취하고 도박하고 거짓말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분노하고 온갖 부패한 성품을 다 짊어졌습니다. 자기 것 아닌데 우리 인류의 것을 대신 걸머지니 그러니 마귀가 온갖 구박을 하고 이로 말미암아 하늘이 캄캄해지도록 하나님과의 거리를 두게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했기에 하늘을 쳐다봐도 하나님도 안계시고 땅을 쳐다보니 전부 원수들만 있고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 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런 통탄을 했는데 하나님의 아들조차 통탄할 정도로 버림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병으로 흔들었습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앓는 마음의 병, 육신의 병을 예수님이 다 짊어지셨습니다.
“저는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그는 실로 우리의 질병을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모든 세상 사람의 병을 다 짊어졌으니 얼마나 아픕니까? 온 몸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욱신욱신 아프고 고통이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온 인간에게 내린 저주가 다 예수님께 넘쳤습니다. 성경에 저주받은 자는 나무에 매달으라 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나무에 매달린 것은 여러분과 나의 저주를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인생, 가정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면 가정에 늘 찔리고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사업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면 사업이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친구 간에도 엉겅퀴가 나면 서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가시와 엉겅퀴, 인류가 살아오면서 가시와 엉겅퀴를 제하려고 얼마나 애를 써도 안 되지 않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가시와 엉겅퀴를 대신 짊어지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라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여러분과 나에게 임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복을 아브라함에게 주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임하도록 하기 위해서 온 저주를 다 짊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주님에 내가 다 이루었다고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하여 죽음을 맛보고 음부에 내려가서 사흘 동안에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과 죽음을 청산해 버렸었습니다. 여러분, 빚이 없는 사람이 남의 빚을 맞고서 고생을 하다가 청산해 버리면 빚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으로써 영원한 자원을 가지고 하신 분인데 한정된 인간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그 빚을 청산하는데 사흘 걸렸습니다. 사흘 동안 지옥에 내려가서 주님께서 그 빚을 다 청산해 주고 사흘 만에 부활해 일어난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주님이 부활해서 일어날 때는 이제는 죄를 완전히 이겨 버렸었습니다. 죄가 흔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패를 완전히 이겼습니다. 병도 이기고 죽음조차 이겨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할 때 예수님의 능력을 감당할 아무런 세력도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함과 같이 주님께서 다 이겨 버리고 만 것입니다.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부정과 부패의 마음을 자유케 합니다. 질병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저주에서 자유를 줍니다. 죽음에서 영원한 영생과 부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가 바로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하나님 앞에 나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3절로 15절에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우리를 대적하는 죄를 용서해 버리시고 그리고 율법, 구약의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는데 율법을 주님이 다 이루어 버리시니 율법의 조문을 폐지해 버리셨습니다.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구원받지. 그리고 난 다음에 통치자들은 마귀와 귀신들, 권세들을 무력화했습니다. 무장해제 시켜 버렸습니다. 그냥 무력화한 것이 아니라 구경거리고 삼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구경거리고 삼았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주님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네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네가 사자와 뱀을 밟으며 젊은 사자와 독사를 밟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욥과 다릅니다. 구약시대 욥의 시대와 같지 않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참소하려고 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당한 권세를 가지고 사탄아 물러가라! 귀신아 떠나가라! 내가 너를 묶어 놓으니 묶음을 받을지어다.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치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죄에 대하여 죽고 부패에 대해서 죽고 병에 대해서 죽고 저주에 대해서 죽고 죽음에 대해서 죽고 부활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함께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여러분이 이미 하늘 보좌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육체에 있지만 영적으로는 하늘 보좌에 앉아 있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마귀와 귀신을 매일 쫓아내십시오. 여러분들의 가정을 혼란케 하는 원수 마귀가 오면 마귀야 물러가라! 귀신아 물러가라! 내 사업장을 훼방하는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우리의 자녀들을 괴롭히는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쫓아야 물러가는 것입니다. 아무 말도 안하고 있으면 그대로 같이 살아요. 오늘날 우리 많은 성도들이 마귀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러 오는데 우리 같이 살자. 사이좋게 살자.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귀가 얼씨구나 좋다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지요. 우리가 믿음을 강하게 하여 마귀를 쫓고 저주를 쫓고 흑암의 세력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사탄아 물러가라!” “귀신들아 떠나가라!” “이 시간에 예수 이름으로 묶음을 받을지어다.” 그렇게 대적하면 마귀는 여러분을 떠나가는 것입니다.
중세까지는 사람들이 마마에 걸려서 많이 죽었어요. 우리 어릴 때도 마마라고 하기도 하고 손이라고 하고 그래서 우리 친구들 중에 시골이니까 우두 맞는 법이 없었으니까 종두에 걸려서 여러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제너라는 사람이 가만히 보니까 목동들은 마마에 안 걸려요. 그것은 왜 그러냐면 소가 먼저 마마에 걸려서 콧물을 질질 흘리고 비틀 비틀 비틀 하다가 나중에 소는 마마를 이기고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소를 만지니까 소의 코에서 나오는 진물 흘리는 것이 이 목동의 손에 묻어서 피부로 들어가니까 아주 면역성이 생겨서 마마에 안 걸린다 말입니다. 그 제너가 그것을 보고 아 그렇구나.. 그래서 소에게 마마를 주사해 가지고서 소가 콧물을 질질 흘리고 하다가 마마를 이겼으면 그 소를 잡아서 피를 뽑아서 혈청을 만들어서 우두를 놔줍니다. 요사이는 흔적이 없지만 여러분 우리 나이된 사람은 팔만 보면 여기에 흉하게 도장이 꽉 콱 찍혀 있지요. 요사이는 기술이 좋아서 흔적도 없지만 아름다운 미인은 그 흔적이 있으면 웃옷을 벗고 다닐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것을 맞으면 마마가 와도 이기고 마는 것입니다. 몸 속에 면역이 생겼습니다. 자기 면역이 아닙니다. 소의 면역입니다. 소가 대신 마마와 싸워서 이긴 그 혈청을 내가 주사 받았으니까 소의 혈청을 받은 것입니다. 요사이는 그 기술이 발달 되어서 호열자가 와도 겁나지 아니하고 우리가 우두를 맞고 폐렴이 와도 미리 폐렴 주사를 맞으면 폐렴에 대한 면역성이 생기고 온갖 면역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개발된 것입니다. 이 면역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런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삶이 터전인 우리의 삶을 지진으로 흔들려도 우리가 넘어지지 않는 것은 예수님이 같이 계시므로 우리가 면역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므로 우리는 죄에 대한 면역, 부패에 대한 면역, 질병에 대한 면역, 저주에 대한 면역, 죽음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면역을 가지니까 넉넉히 이겨요. 우리가 세상에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죄 안 둘러 쌓입니까? 죄의 유혹을 당하고 죄에 둘러 싸여도 결국 한판 씨름을 하면 우리가 이기고 마는 것입니다. 부패한 마음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방탕하고 세상을 따라 나가는 유혹이 안 옵니까? 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로 말미암아 타락하지 않고 이깁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면역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병도 틀려요. 예수 믿는 사람 병도 틀려요. 여러 가지 병이 들리지만 예수님께 의지하면 그리스도의 치료의 면역이 나타나서 이깁니다. 어려운 일도 다가와요. 사업의 어려움도 다가오고, 파산할 위험도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오지만 우리는 예수님 이름으로 면역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도 우리에게 다가와도 우리는 넉넉히 이기고 부활해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영원히 면역을 하시고 영원히 흔들리지 않은 터전을 주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내가 면역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이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우리 손들고)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아멘~)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옆에 성도들 보고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님만이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증명된 만세 반석입니다. 그냥 반석이 아닙니다. 증명되었어요. 죽음으로써 모든 부정적인 세력을 멸하고 부활하시므로 증명된 반석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0절로 11절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 그리스도 이미 닦여진 터전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4절로 25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만세 반석 예수님이 내 생애 중심이 되고 내 속에 보배가 되니 바람이 불고 창수가 안 오는것 아닙니다. 인생살이에 바람 안부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세상 바람도 불어오고 창수도 와서 부딪히지만 우리는 안 무너집니다. 마귀가 마구 흔들어도 안 무너집니다. 왜냐? 반석위에 있기 때문에 그 반석은 모든 것을 이긴 만세 반석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사야 26장 4절에 “너희는 야훼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야훼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인본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저들의 삶의 터전을 흔들 때 영원히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흔드는데 안 무너질 자가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집을 세우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하나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헛되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고생의 떡을 먹음이 헛되다”고 말한 것입니다. 헛된 일을 하고 있어요. 세상과 세상 마귀를 따라가는 사람은 언제고 한도가 차면 하나님이 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안 흔들릴 사람이 없어요. 더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속은 주님께 멀고 주님 없이 세상에 방탕하면 하나님께서 당장 안 때립니다.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찰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쓰레기가 다 차면 하나님이 치우는 것입니다. 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하루아침에 기업이 다 무너지고 하루아침에 몸에 병들고 하루아침에 마누라가 죽고 자식이 죽고 절단이 나고 가정이 풍비박산 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심판으로 흔들면 견디지 못하지만 만세 반석 예수 그리스도에 서있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그리스도를 섬기고 사는 사람 아무리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서 뒤흔들어도 안 무너집니다. 주님이 붙잡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인생을 걸어가면 우리는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도 그 영화도 다 무너질 터전 위에 있지만 예수님만이 우리를 흔들리지 않는 만세 반석으로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제일주의, 예수 제일 먼저 사랑하고 예수 제일 먼저 섬기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온 세상은 흔들리는 터전 위에 서있습니다. 아담 하와 이후로 하나님을 저버리고 배반한 인생은 역사가 끊임없이 전개되어도 이 세상에 20개 이상의 문명이 다 무너졌습니다. 무너질 터전 위에 문명을 세우고 삶을 건설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터전인 예수님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만세 반석 구주로 모시게 됨을 감사합니다. 귀하고 귀한 보배를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경외하고 사랑하고 떨면서 섬기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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