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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굴로의 풍랑을 맞은 세계 경제

사도행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504 추천 수 0 2010.01.18 15: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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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27:18~25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12. 14. 주일 4부 설교 
<서론>
오늘 저는 “유라굴로의 풍랑을 맞은 세계 경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 선생이 예루살렘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많이 얻어맞고 로마의 주둔군에게 끌려가서 거기에서 심문을 당하고 고생을 하다가 로마 황제의 재판을 받기 위해서 율리오라는 로마의 백부장이 이끄는 죄수들과 함께 수갑에 채여서 배를 타고 가게된 것입니다. 그들의 배가 그레데 섬의 미항에 도착했을 때 바울이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 마음 속에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이번에 출항하면은 화물도 다 잃어버리고 배도 파선할 것이고 같이 가는 사람들의 인명에도 큰 타격과 손상이 있을 것이라는 지시를 받고 그가 선주와 선장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내가 보니 이번 미항에서 출발하면 큰 손해가 날 것이다. 화물도 다 잃어버리고 배도 파선되고 생명에도 큰 지장이 있을 것이니 겨울을 미항에서 머물고 봄이 오면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선주와 선장이 “뭘 바울이 바다를 안다고 큰 소리냐? 우리는 뱃사람으로써 잔뼈가 다 굵었으니 바다는 우리가 알지 어떻게 네가 아느냐?” 그 백부장 율리오가 가만히 들어보니까 바울은 종교인이고 신앙인이지 뱃길은 모르는 사람인데 바울의 말을 들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출발합시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호는 276명의 손님을 싣고 로마를 향해서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무사히 가니까 좋다고 다들 기뻐했는데, 그런데 그만 육지에서 유라굴로라는 대풍랑이 불어와서 바다를 치매 파도가 태산처럼 몰려오고 배는 도저히 방향을 잡지 못해서 그냥 파도에 밀려 나갔던 것입니다. 이틀 째 되던 날 도저히 배가 가라 앉을것 같으니까 선장과 화주들이 짐을 전부 다 바다에 풀어 버렸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은 얼마나 절망했는지 배에 기구를 다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배를 가볍게 해야 배가 침몰하지 않을 것이니까. 그런데 나흘째,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계속해서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대작하는데 하늘에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천지가 캄캄합니다. 사람들은 다 절망했습니다. 살 희망이 다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울이 일어나서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안 떠났으면 이런 고통 안 당했을 것 아닌가. 그러나 이제는 안심하라. 왜냐하면 어제 저녁에 내가 속한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와서 말하기를 ‘바울아 네가 반드시 로마의 황제 앞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 되겠고 이 배에 탄 276명의 모든 사람들은 네게 주었으니 이 배는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그러므로 여러분 머리털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니까 염려하지 마라.”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배가 점점 육지에 가까이 다가오는 기미가 보이니까 뱃사공들이 배를 버리고 달아나려고 닻을 내리는 척 하고서 구명보트를 내려놓고 타고 달아나려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깨닫고 율리오 백부장이 말하기를 “저 사람들이 이 배를 떠나면 여러분들이 구원을 못 받는다.” 그러니까 군인들이 그 구명보트의 줄을 끊어서 떠내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바울이 서서 여러분 14일 동안 먹지 못하고 토하고 뒹굴고 고통을 당했으니 이제는 안심하고 먹어도 좋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 구원할 것이니까.. 그리고서 떡을 떼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그 사람들 앞에서 먹으니까 사람들이 다 따라서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환난과 풍파를 당하니까 배를 지휘하는 것은 선장과 선주가 아니고 죄수인 바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말에 따라서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 먹고 난 다음에 배가 점점점.. 육지에 가까워지는 것이 물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아침이 되어 보니까 섬이 보입니다. 그 섬에 그들이 무사히 도착해서 생명을 구원했다는 기록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오늘 제가 알아보고 싶은 것은 이 세상에 경제적인 유라굴로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 치고 경제적인 위기에 처하지 않은 나라가 없고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기업의 토대가 흔들리고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고 가계가 엉망인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되었느냐.

<본론>
1. 탐욕과 욕심을 버리고 삶을 가볍게
오늘날 다가온 경제적인 유라굴로는 미국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왜 유라굴로의 풍랑이 불기 시작한 것입니까? 미국이 국채를 국민들과 여러 나라에 많이 팔았습니다. 국채를 팔고 나니까 그 국채를 산 개인이나 나라에 이자를 매달마다 지불해야 되는데 이자가 너무 많이 나가니까 미 재무성에서 이자를 적게 물려고 미국에 대출이자를 1%로 낮췄습니다. 여러분 이자돈 1%밖에 안 되면 공짜인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미국 정부는 그 기회에 서민들이 모두 다 내 집 갖도록 하는 정책을 세워서 담보 없이 값싼 이자로 집을 사는데 90%에서 95%까지 돈을 융자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집 없는 사람들이 담보도 없이 정부시책에 따라서 은행에서 90%에서 95%의 돈을 빌려 주니 얼씨구나 좋다고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은행의 돈을 빌려서 집을 사니 굉장히 부동산 붐이 일어나고 건축 붐이 일어나고 돈이 흥청망청 씌여지고 경기가 좋은 것 같다가 그만 경기가 시들어지기 시작하고 그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니까 집값이 떨어지는데 폭락을 해서 반값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은행에 1% 이자를 주고 90%에서 95%의 빚을 내어서 집을 산 사람이 은행에서 빌린 돈보다 집값이 더 떨어지거든 그러니까 집을 포기해 버립니다. 우리 집 은행에서 도로 가져가라! 그 말입니다. 은행에서 도로 받으니까 살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은행은 돈 다 빌려줬는데 돈은 안 갚지요. 집값이 폭락하자 월부금, 할부금, 이자도 안내니까 은행이 들것이 났습니다. 우리 한국 동포 한 사람의 예를 들어보면 은행의 돈을 빌려가지고서 13억짜리 집을 샀어요. 좋다고 그래서 할부금도 내고 이자도 냈는데 13억 짜리가 10억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은행에서 빌린 돈이 13억인데 집값은 10억 이하로 떨어졌으니까 도저히 이제는 할부금을 내고 이자를 낼 이유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포도 그 집을 은행에 돌려주었습니다. 가져가라! 나는 이제 못 갚겠다. 은행이 그 집을 도로 맡았으나 살 사람이 없어요. 집값이 폭락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교포는 그 집에서 그냥 눌러 사는 것입니다. 할부금도 안내고 이자도 안내고 나 죽여라. 나 빼째라. 그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 형편이에요. 미국이.. 그러니까 은행은 돈을 빌려 주고 돈을 못 찾으니까 은행이 텅텅 비게 된 것입니다. 은행과 보험사가 부실하게 되므로 은행이나 보험사에서 만든 금융상품이 휴지가 되었어요. 은행에서 발행한 금융상품을 산 사람들이 그것도 휴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돈을 안 쓰고 소비가 위축되니까 공장이 파산하고 공장이 파산하니까 실업자가 대거로 몰려와서 정부에 보조를 받아야 먹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증권시장이 폭락하니까 증권을 가진 사람, 펀드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다 거지가 된 것입니다. 이런 폭풍이 미국에 불어오니까 그 여파가 중국에 일본에 한국에까지 미친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세계 경제국들이 모두 다 미국에 수출해서 먹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은 한국 GNP의 60%를 수출로써 먹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경제가 들것이 났으니까 수입을 하지 않지 않습니까? 우리가 못 팔아먹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자동차도 못 팔아먹고 컴퓨터도 못 팔고 핸드폰도 못 팔고 거의 공장들이 가동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그리고 가격이 떨어지고 직장을 잃게 되고 경제적인 한파가 우리에게도 다가온 것입니다. 엄청난 한파가 미국을 통해서 유라굴로가 불어와서 이 풍랑이 온 세계를 뒤엎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의 IMF는 뺨칠만한 것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IMF때는 공장이 망하니까 융자를 해주고 은행이 무너지니까 은행에 융자를 해주어서 버텼는데 지금은 개미떼같이 많은 사람들이 집을 포기해 버리니까 정부가 그 한사람 한 사람의 빚을 다 걸머지고 해결해야 되니까 기가 막힌 일이지요. 그래서 하루 이틀에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뭐 공장 수백 개, 은행 수십 개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수백만의 사람들의 집이 다 무너졌으니까 그 사람들 다 데리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이 안 걸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금년도에 유라굴로의 풍랑이 일어났으니 명년에는 해도 안보이고 달도 안보이고 별도 안보이고 캄캄한 풍랑 가운데 엄청난 고통이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온 세계에 다가오고 우리 한국도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2. 경제 폭풍을 잠재우려면
경제적인 폭풍의 유라굴로를 잠재워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제적인 유라굴로를 잠재우고 안 빠져 죽고 살수가 있겠습니까?
제일 먼저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이런 어려움을 당할 때 왜 어려움이 당한지를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어려움을 당한 것입니까? 탐욕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기 분수대로 사람이면 사람으로 살지 마귀가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이 된다고 그러니까 왜 사람이 사람으로 살지 하나님 되려고 탐욕을 가지고 하나님 뜻을 거역해서 선악과를 따먹고 반역해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쫓겨났던 것입니다. 탐욕이 원죄인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에 일어난 그 유라굴로의 경제적인 폭풍도 미국 정부와 국민들의 탐욕인 것입니다. 돈 빌려 가고 난 다음에 이자 적게 내려고 이자율을 낮춘 것 하고 사람들 담보도 없이 은행이자를 90~95%로 빌려줘서 집사게 하는 것은 탐욕 아닌 것입니까? 내가 능력이 없는데 얼씨구나 좋다고 욕심으로 다 사들이고 결국 무너진 것입니다. 분수에 뛰어넘는 욕심은 반드시 결과에 파멸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인간들은 원래부터 타락한 그 마음이 탐욕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 아니라 나도 탐욕에 잡힐 때가 많습니다. 구두 한 켤레 신으면 아직 안 떨어지고 좋은데 다른 사람이 멋진 구두를 신으면 “나도 저것 한번 사 신어야 되겠다.” 그래서 아직 말짱한 구두 두고서 그 구두 사 신어요. 구두 신고 얼마 안 있으니까 유행이 달라져 다른 구두가 나오면 “나 또 그 구두도 사야 되겠다.” 그러다가 나중에 구두장에 구두가 가득한 것입니다. 안 신는 구두가... 내 신기는 싫고, 남 주기는 아직 아깝고... 구두가 쌓이는 것이에요. 우리 여성도들 보면 옷 자기가 입던 옷 그대로 아직도 몇 년은 더 입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행에 떨어지니까 새로운 유행의 옷을 사 입습니다. 그 다음 친구들 보니까 그보다 더 나은 옷을 사 입으니까 또 그것 두고서 또 그 옷을 삽니다. 옷장을 열어보면 옷이 가득해요. “왜 이렇게 옷을 많이 옷장에 넣어? 이것 나누어주지?” “나누어 주기는 아직 너무 아깝고 내 입기는 이미 철이 늦었고...” 그렇게 옷이 쌓여가는 것입니다. 가방도 그래요. 가방도 우리 구역장들이 가지고 있던 가방 들고 다니는 사람 요사이 별로 없어요. 집도 그렇습니다. 30평짜리 집을 사가지고서 좋아서 제일 처음 박수를 치고 있다가 가만히 보니까 이웃 친구들은 40평 짜리가 있거든. “아이구 우리도 40평 사야지.” 그래서 허리를 졸라매고 애를 써서 40평을 사서 좋다고 했다가 그 다음 다른 친구 보니까 50평짜리 살고 있거든. 그래서 40평이 마음에 안 맞다 말이에요. 그러니까 50평 사려고 죽을 애를 써가지고 50평 사놓으면 그 다음에는 친구들 보니까 독립 집에서 산다 말이에요. 우리도 독립 집에서 살아.. 여보, 우리 친구는 자기 독채로 사는데 이 아파트에서 이게 무슨 생활이야? 여보 돈 좀 더 벌어. 더 벌어. 밤잠을 못자고 남편이 애를 써서 독립 집을 사 놓으면 그 다음에는 친구들이 콘도미니엄을 가지고 있다 말입니다. 우리도 콘도미니움, 우리도 콘도미니움. 욕심은 한번 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 욕심을 채우려고 하니까 스트레스에 걸리고 마음이 불만스럽고 불행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옛날 이야기에 보면 세 강도가 우리 강도질 하지 말고 새사람이 되어 살자. 약속을 하고 우리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수련하는 곳으로 가자고 새사람이 손을 잡고 가다가 길거리에 보따리가 하나 있는데 들춰 보니까 금덩어리가 들어 있거든. 좋다고 세 사람이 금덩어리를 안고서 우리 이것 나누어 가지자고. 그리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는데 그만 한사람을 확 밀어 가지고서 물에 빠뜨려 버렸거든. 그 두 사람이 허허허 웃으면서 우리 둘이 나누면 이젠 우리가 더 부자가 되겠다. 저 놈은 빠져 죽었으니 되었다고 그래서 두 사람이 배에서 내려서 들을 가다가 배가 고픈데 한 집에 오두막집에 불빛이 있으니까 한 친구가 하는 말이 “내가 가서 음식을 좀 구해 올테니까 네가 여기에 기다려라!” 음식 구하러 간 동안에 물병에다가 기다리는 놈이 독을 넣었다 말입니다. 독을 넣어서 물병을 딱 세워 놓고 음식 먹을 때 그 놈 보고 마시게 하려고.. 그런데 음식을 구하러 간 그놈이 음식을 구하지 않고 부엌에 들어가서 칼을 숨겨 와서 콱 찔러 죽여 버렸습니다. 친구를... 그리고 “야 이놈아! 너는 죽을 팔자다. 금덩어리 나 혼자 찾았으니 좋다.”고 허허 웃으면서 목이 마르니까 병을 끌러가지고서 물을 마셨다 말이에요. “켁” 하고 죽어 버렸어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욕심 때문에 세 사람 다 죽고 금덩어리는 그대로 들에 버리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결국에는 끝없는 욕심으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불만족한 가운데 불행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비교가난으로 불행한 것입니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불행을 느끼지 않습니다. 가만히 제가 세계를 다녀 보니까 부자 나라에 갈수록 사람들이 웃지를 않아요. 구라파나 미국의 부자나라에 갈수록 얼굴이 대리석 같고 웃지 않아요. 그런데 인도나 방글라데시나 저 가난한 아프리카에 가면 사람들이 잘 웃어요. 너털웃음을 웃어요. 왜냐하면 부자나라에는 탐욕 때문에 긴장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더 돈을 벌어야지. 더 돈을 벌어야지. 더 잘살아야지 하고 애를 쓰는데 아주 없는 사람은 다 포기하고 난 다음 베짱 좋게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이 크고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다 버리는 것이 좋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고 했는데 있는 바를 족한 줄 알면 행복해지는데 있는 바를 족한 줄 아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오늘날 ‘성공학’의 대가인 데일 카네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과로가 원인이 되어 죽지는 않는다. 그의 죽음의 원인은 다름 아닌 낭비와 번민 때문에 죽는다.” 일을 많이 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먹고 마시고 그리고 과로를 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는다.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합니다. 그런데 1974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 가장 기본적인 생활에서 벗어나면 행복지수가 쑥 올라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 소득이 많아져도 그 만큼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스털린 패러독스’라고 불리는 이 보고서 내용은 이후 사람들의 마음속에 “돈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을수록 행복할 것 같은데 돈이 많을수록 더 불행해지고 더 스트레스를 받고 더 마음에 고통이 많다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마시는 문제만 해결되고 그 다음에 더 애쓰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행복을 가지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20평 대 아파트를 사면 그 다음엔 30평 대, 40평 대를 갖고 싶은 욕심 때문에 사람들은 현재를 오히려 더 불만족스럽게 여기며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현재 상태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내면 낼수록 마음은 불만족해지고 불행해지고 스트레스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모두 다 욕심 때문에 죄를 짓게 되고 파탄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휩쓰는 경제적인 유라굴로는 바로 욕심이 가져온 태풍인 것입니다. 자기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다가 경제적으로 곤두박질을 치고 망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유라굴로의 풍랑에서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까? 바울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서 14일 동안 해와 달과 별이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풍랑에 뒹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났었습니까? 14일 동안 사도바울 선생과 그 제자들과 그 배에 있는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이 가만히 있을 분입니까? 그 사람들을 전도해서 모두 다 결사적으로 기도한 것은 성경에 그 276명을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었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 배에 타고 14일 동안의 고통 가운데 이는 또한 그 사람들을 다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고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하나님 살려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회개를 하게 된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면 회개하게 돼요. 평안할 때는 회개 안합니다. 고난을 당하면 회개가 돼요. 편안하면 누워서 기도하다가 좀 답답하면 앉아서 기도하고 더 답답하면 꿇어 앉아 기도하고 더 답답하면 새벽기도 나오고 더 괴로우면 기도원에 금식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고통에 정비례해서 하나님께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글을 읽어 보았었습니다.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이 살아 계실 때 비서실장을 한 장로님인데 그가 비서실장에 되기 전에 그때 우리 한국사회가 6.25 이후로 굉장히 가난했지 않습니까? 돈을 벌겠다고 결심하고 생선 장사를 했습니다. 원산지에 가서 생선을 사서 배에 싣고 와서 서울에 와서 노점상이나 개인상점에게 나눠주는 그러한 장사를 해서 돈을 꽤 벌었어요. 톡톡히 재미가 있었습니다. 점점 돈을 버니까 주일날 교회 가서 예배 보는 것이 아깝거든 그래서 주일날 교회 가지 않고 집에서 간단히 성경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 미안합니다. 오늘 장사를 합니다.” 하고 나갔습니다. 돈이 더 벌리니까 십일조가 자꾸 많아지니까 “아이구 이것이면 생선 몇 상자를 더 사겠는데?”하고서 그래서 십일조도 안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날도 안 나가게 되고 십일조도 안내게 되고 예수 믿는 것은 악세사리가 되고 주인은 바로 돈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생선을 싣고 배를 타고 오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가 뒤집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고통과 괴로움이 휩쓸어 왔습니다. 그는 배 밑바닥이 출렁 거리는데 뒹굴면서 엎드려서 “하나님, 생선도 내놓습니다. 돈도 내놓습니다. 다 내 놓을테니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한번만 살려주면 내가 올바르게 살겠습니다.”하고 통곡을 하고 기도를 했더니 몇 시간 기도하고 난 다음에 풍랑이 잠잠해져서 살아나고 난 다음에 다 털어 버리고 교회 주일날 열심히 나오고 십일조 바치고 장로가 되고 나중에는 한경직 목사님 비서실장까지 되었다는 기록을 읽어 본 것입니다. 풍랑 안 만났으면 지금까지도 생선장사 할련지 모릅니다. 풍랑을 만났기 때문에 변화가 된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유라굴로의 풍랑을 만난 이 시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이 일어나서 뭐라고 했습니까?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행 27:21)
하나님의 말씀을 일찌감치 들었으면 이러한 풍랑을 안 만날 것인데 사람의 욕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아서 풍랑을 만났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를 회개해야 돼요. 내가 소식을 들으니까 요사이 미국의 교회가 꽉꽉 들어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동안에 하도 호황 때 교회가 텅텅 비었어요. 주일날 텅텅 비고 수요일날 저녁예배는 문을 닫는 교회가 많았는데 요사이는 수요일날도 꽉 차고 주일날도 줄을 서서 교회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곽선희 목사님을 만났는데 곽선희 목사님도 “수요일날은 우리 한국에도 교회 교인들이 많이 안 왔는데 요사이는 꽉 들어찬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실직자가 많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을 찾는 수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를 봐서는 고난당하는 것 좋지 않지 않아요. 고난당해야 교회를 찾아오지 좋으면 놀러가고 교회를 안찾아 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할 때 우리가 고난을 이길수 있는 것은 결사적으로 회개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자기 정체성을 다시 확립해야 되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바로 잡아야 돼요. 삶의 목적이 출세에 있고 혹은 돈에 있고 명예에 있고 지위에 있었으면 고난당하면 돈도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다 날라 가게 되었으니 그것에서 중심을 옮겨서 하나님 중심으로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소속했느냐. 돈에 소속했느냐.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세상 쾌락에 속했느냐. 하나님께 속했느냐. 다시 한번 고난당하면 그것을 생각해 볼 때가 온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마귀에 속하든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께 속하든지 둘 중에 하나밖에 없는 것을 중간상태는 없습니다. 고난당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므로 우리의 정체성이 확립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 23절에 바울은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였느니라”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어디에 속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았어요. 마귀에 속하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하고 그는 돈을 섬기거나 세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속하고 내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돈도 벌고 하나님 섬기기 위해서 지위도 있고 명예도 있고 권세도 있어도 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목적이 되어야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이 내가 잘 먹고 잘 입고 잘살고 출세하는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해 가지고서 돈도 벌고 하나님을 이용해서 지위와 명예와 권세와 쾌락도 얻으려고 하면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풍랑을 만나면 삶의 목적과 방향을 올바르게 재정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의 말을 들은 그 모든 사람들은 바울선생의 말에 머리를 끄덕 거렸습니다. 배는 출렁거리고 바람은 부는데 바울이 “당신들 어디 속했소?” “나는 하나님께 속했소.”“당신들은 어디 속했소?”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그들은 불안과 공포와 좌절과 절망에 떨었습니다. 바울만 떨지 않았지 다 떨었어요. 왜냐하면 천지와 만물을 지은 하나님께 속한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면 살고 하나님의 뜻이면 죽어도 천당 가니까 두렵지 않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어지면 자기도 세상도 다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이니까 좌절과 절망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소속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고 누구를 섬기는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가 하나님의 중심에 서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지요. 하나님을 이용해서 나를 섬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가 우상이 되어서 기도도 자기 섬기기 위해서 하고 찬송도 자기 섬기기 위해서 하고 믿음도 자기 섬기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자기의 유익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 이용하려고.. 잘못된 것을 섬깁니다. 자기를 우상화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환난을 당하면 자기라는 것이 산산조각이 나잖아요. 잘못된 섬김을 돌이켜서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도 하나님 섬기기 위해서, 좋은 집을 사는 것도 하나님 모시기 위해서 지위와 명예를 얻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하나님 중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야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풍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을 긍정적으로 가지고 희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풍랑이 다가온다고 우리는 다 죽었다. 우리는 다 망한다. 우리는 절단이다. 이제는 희망을 잃어 버렸다.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이 되면 안돼요. 두 사람의 죄수가 감방에 들어가 있는데 매일같이 창살을 통해서 밖을 내다보는데 한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고 “아~ 태양이 반짝인다. 밤에는 별들이 아름답구나. 바람이 부니 나무가 팔랑거리고 참 아름다운 세상이구나.” 언제나 기뻐하고 즐거워했는데 다른 사람은 창살을 통해서 땅을 내다보고 “아이구 먼지가 많이 나네.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니니까 먼지가 많이 나! 비가 오면 진흙창 아이구 땅은 진흙창 밖에 없네. 인생은 먼지투성이고 진흙창 밖에 없네. 저 발이 더러운 것 봐라. 저 구두가 다 떨어진 것 봐라! 저 헐벗은 옷을 봐라!” 전부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았습니다. 감옥의 임기를 마치고 두 사람이 다 출소했는데 한사람은 기다리는 가족의 품에 들어가서 새로운 직장을 얻고 즐거운 새로운 인생을 출발했는데 땅만 바라보던 사람은 부정적이고 탄식하고 원망하다가 정신병에 걸려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똑같은 사실을 볼 때도 부정적으로 보면 절망입니다. 지금 다가오는 유라굴로의 풍랑을 볼 때 여러분 부정적으로 보면 절대로 못살아 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희망을 가지고 회개하고 주님 중심으로 서고 하나님 섬기는 생활로 들어오면서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살 수 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냐 죽음이냐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크게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므로 넉넉히 이긴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언제나 긍정적이고 밝고 맑고 환한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긍정적이 되고 부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부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바울에게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바울은 희망을 사람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 22절에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7장 24절로 25절에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희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님이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통해서 몸 찢고 피 흘려 우리 일생의 죄악을 다 청산하고 우리를 의롭다 일러 주시고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도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죄로써 절망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다. 어떻게 세속적이고 세상의 악한 습관에 묶이고 부패한 사람도 예수님의 보혈이 십자가에서 다 마음을 씻어 주시고 몸을 씻어 주시고 마음도 새롭게 하고 몸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영인 성령을 주셔서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어떠한 술주정뱅이에도 희망이 있고 어떠한 아편중독자에게도 희망이 있고 어떠한 도둑놈이라도 희망이 있고 어떠한 방탕자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세속과 마귀를 멸하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병든 사람도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절망적인 병이 들어도 희망이 있어요. 오늘 우리가 교회소식지에 나온 간증 봤지요? 78살 먹은 할머니가 대변을 보는데 자꾸 피가 나오고 피가 섞여 나오는데 자녀들이 걱정할까 싶어서 숨겨 놓았다가 나중에 피가 너무 나오니까 친정에 온 딸에게 들켰어요. 딸이 놀래가지고서 오빠들하고 어머니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조사를 하니까 항문이 암 3기가 되었어요. 그래서 의사가 가족들 보고서 “나이도 많으시고 수술해도 못살아난다. 그대로 두시면 한 3개월 조금 살다가 세상 뜨실 것이다.”고 그러더랍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 딸들이 어머니를 데리고 우리 예배시간 이 4부 예배에 왔어요. 와서 어머니 설교나 듣고 위로 받으라고.. 그런데 제가 설교하고 병자위해 기도 다하고 그 다음에 앉아서 헌금을 거두고 난 다음에 축도하기 전에 나오더니 “오늘 여기에 항문에 종기가 난 사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말은 그 딸들이 그 어머니를 보고 암이라고 말하면 어머니가 낙심할까 싶어서 “어머니 항문에 혹이 났어요. 종기가 났어요. 그냥 있으면 났는다고 그럽디다.” 그렇게 거짓말을 했는데 “여기 항문에 혹이 난 사람 종기가 난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제가 하더랍니다 그날.. 그러니까 그 어머니가 “할렐루야~”하고 일어나가지고서 즐거워했는데 그 다음 병원에 데려가니까 “아 충분히 수술해서 고칠 수가 있게 쪼그라 들었다.” 그래서 수술하고 깨끗이 나아 버렸었어요. 어떠한 절망적인 병에 걸려도 희망이 있습니다. 좌절하고 절망해 버리면 죽지만 하나님은 할 수 없는 것이 없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일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희망이 있으니까 희망을 버리면 안됩니다. 희망을 향해서 나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빚쟁이에 쪼달리더라도 자살하면 안돼요. 요사이 탤런트들이 고통을 당하고 자살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알면 자살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주께서 같이 하신 것입니다. 주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시련과 환난이 되어도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계신 이상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시므로 절대로 환경을 보고 낙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죽을 때도 낙심할 필요가 없어요. 바울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외쳤는데 주님이 죽었으나 사흘 만에 부활했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생을 얻은 사람들은 죽음조차도 낙심할 것 없는 것은 죽음의 터널을 통하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절대로 희망을 가져야지 이 어려운 때 희망을 포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평상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야단법석을 하고 당황을 하고 탄식을 하고 좌절하고 절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그 모든 사람이 열나흘 동안 굶었잖아요. 이제는 평상심으로 돌아가서 밥먹고 건강을 유지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 33절로 36절에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어야 돼요. 환난과 고난당한다고 안 먹으면 죽어요. 평상심대로 먹고 마시고 잠자고 그래야 환난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괴로움을 당한다고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고 잠도 안자고 날뛰면 환난이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태도가 그를 죽이고 마는 것입니다. 평상심이 있어야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리고 난 다음에 환난을 이기기 위해서는 뭉쳐야 돼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이 어려울 때 뭉쳐야 돼요. 따로따로 놀면 죽어요. 어떤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전에 임종에 모인 아들 세 사람을 불러 놓고 난 다음 막대기 하나를 각자 주면서 한번 꺾어 보라고 했었습니다. 맏이가 철컥 꺾으니까 둘째도 철컥, 셋째도 철컥 꺾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가 막대기 세 개를 합쳐가지고서 맏이보고 꺾으라고 했습니다. 안 꺾이거든.. 둘째보고 꺾으라고 했는데 안 꺾이거든. 셋째도 못 꺾거든. 그러더니 아버지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너희 한 사람이 나가면 꺾인다. 세 사람이 뭉치면 세상에서 너희를 꺽을 자가 없다. 내가 죽으면서 너희에게 다른 것은 나누어 주지 못했지만 이 유언을 남길까 하니 꼭 형제간에 하나가 되어 살아라. 그러면 너희를 꺾을 자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전도서 4장 12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보십시오. 어려움을 당할 때 합쳐야 돼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3절로 14절에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화목하고 격려하고 붙들어 주어서 하나가 되어야지 흩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회사가 살려면 사원이 일치단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회사가 부도직전인데 사주하고 노조들이 합쳐서 머리띠를 메고서 싸우면 망하지요. 미국의 GM(제너럴모터스)자동차 회사가 그렇습니다. 몇 만 명의 고용원들이 있는데 정부의 지금 구제 금융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국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노조들 월급 깎아라 그러면 구제 금융을 주겠다. 노조가 우리는 임금 못 깎겠다. 옛날대로 받아야 되겠다. 그러니까 상원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그러면 너희들 고생해 봐야 된다고 구제금융 못준다 하고 탕하고 부결해 버렸습니다. GM은 얼마 있지 않아서 문 닫게 돼요. 문 닫으면 몇 만 명의 직원들이 다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노사가 하나가 되고 일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0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보십시오. 어려울 때는 말도 같은 말을 하고 마음도 같은 마음 가지고 뜻도 같이 하는 것이다. 합쳐야 되는 것입니다. 합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우리 아버님이 우리 어릴 때 늘 해주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가 졸탁동시(?啄同時)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한자어라 졸탁동시(?啄同時)가 뭐냐면 암탉이 병아리가 알을 품고 있다가 알을 품고 난 후 알이 나오게 되면 귀를 딱 기울이고 있으면 톡톡톡 하고 병아리가 알 안에서 찍습니다. 찍는 소리가 들리면 어미가 바깥에서 콱콱콱 찍어서 병아리가 깨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에서 톡톡톡 하면 밖에서 콱콱콱 찍어서 껍질을 벗겨 새끼가 태어난다. 졸탁동시라고 그렇게 아버님이 늘 말씀하시면서 서로 뜻이 맞아야 일이 되지 뜻이 안 맞으면 안 된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는데 여러분 오늘날 이 어려운 시대에 살아나기 위해서는 대게 회사에 큰 회사나 적은 회사나 회사주나 노조원들이 마음이 합쳐야 돼요. 가정만 마음이 합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도 마음을 합쳐서 단결하면 살아나갈 수 있어요. 허리띠를 묶고 새로 출발하는 기분으로 서면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론이 일치하고 정치가 안정돼야 돼요. 나라가 갈라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야 돼요. 옛날에 IMF때 우리 국민 전체가 합쳐서 금과 은을 다 내놓지 않습니까? 농장에 있는 금과 은을 다 내놓고 합심해서 나라를 위해서 힘쓰니까 IMF를 거뜬히 이겨내지 않았습니까? 이 어려울 때 국론이 일치 되어야 돼요. 그러나 요사이 국회 보면 가슴을 치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은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는데 나 몰라라 자기끼리 놉니다. 국회 정치하는 사람들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지 자기끼리 놀고 자기끼리 잔치하고 백성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국민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정쟁만 하는 이런 국회가 있으면 나라가 망하지요. 지금 여당과 야당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가 되어서 국민을 살려야죠.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어려운 고난을 국민들이 당해야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국민들을 대변하는 그들이 있는 힘을 다해서 국론을 통일하고 나라를 살리고 국민들을 고통에서 건지려고 애를 써야지요. 우리 국민들이 질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신차리도록..
아모스 5장 24절에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우리 정치인들이 되어야 우리 국민들이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국민에게 분명한 희망과 꿈을 제시해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민에게 분명한 희망과 꿈을 줘야 돼요. 이 나라가 어디를 가는지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정말 희망이 있는지 꿈이 있는지 알려줘야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앞에 서서 국민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어서 인도하는 것이지 지도자가 왔다 갔다 하고 마음이 분명하지 못하면 국민들이 누구를 쳐다보고 따라가는 것입니까? 목자가 지팡이를 들고 앞을 인도하면 양들이 다 목자를 보고 따라가는데 목자가 우왕좌왕 하면 양들이 흩어지고 이리가 와서 양을 물고 찢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분명한 희망과 꿈을 제시해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욥기 11장 18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
희망이 있어야 안전하고 두루 살펴보아서 평안하게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폭풍우를 당하고 경제적인 고통에 빠졌을지라도 지도자가 우리에게 꿈을 심게 해주고 평안을 주면 우리는 능히 이겨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대통령이 확실한 꿈과 비젼을 국민에게 줄 수 있도록 여러분 매일 기도할 때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다 같이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유라굴로의 풍랑이 우리에게 큰 재앙으로 오는 것 같지만 우리가 잘만 대처하면 이것이 오히려 큰 축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쓸데없는 것을 다 배에서 던져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호화 사치하는 것 다 배에서 던져 버려야 돼요. 우리는 가장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헛된 욕심과 탐심을 가지고 잔뜩 모아놓은 필요 없는 것은 다 청산해 버리고 꼭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살 수 있는 그것만 챙겨 가지고서 어려움을 이겨야지 내가 가진 것 다 끌어안고 이 어려운 난국을 격파하려고 하면은 배가 뒤집어지고 가정이 뒤집어가지고 빼져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림을 줄여야 돼요. 내 생활을 줄여야 돼요. 내 형편을 줄여야 돼요. 필요 없는 것은 전부 다 청산해 버려야 돼요. 그리고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야 돼요. 그러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내 인생의 삶의 목적과 방향을 올바르게 정해야 돼요.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으로 돌아서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 주야로 기도하고 그 다음 마음을 긍정적으로 적극적인 희망을 가지고서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꿈꾸고 희망을 믿고 희망을 선포해야 돼요. 이때 절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합쳐야 돼요. 가정이 합쳐야 되고 회사가 합쳐야 되고 국민이 단결해야 돼요. 그리고 국민을 이끄는 지도자가 분명한 꿈을 가지고 앞장서서 나가면 역경이 오히려 좋은 찬스가 되고 어려움이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유라굴로의 풍랑으로 다 침몰할 수도 있고 살아남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살아남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또다시 재출발해서 새로운 인생을 건설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바로 이런 것들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보다 앞장서서 우리 불요불급한 것은 다~ 짐을 풀어 버리십시다. 우리는 단순하게 사십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호화 사치를 다 중지하고 단촐하게 인생을 살면 가벼워져서 우리 배가 출렁거리지도 무너지지 않고 뒤엎어지지 않습니다. 더욱 옛날보다 더 기도 많이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고 회개하고 우리 신앙을 똑바로 서면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를 돌보시는데 겁날 것 없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서고 하나님 섬기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어떠한 환난에도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을 단결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꿈과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꿈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 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진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할 필요 없이 단결해서 서로 ‘사랑과 행복’을 나누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구역이 단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역원들을 서로 도와주면서 살아야 되고 교회가 단결해서 교회 어려운 사람들을 협조해 주고 도와주고 이웃을 이끌어주는 그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밝고 맑고 환한 날이 쉬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미증유의 고통을 우리가 당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유라굴로를 만나서 우리 개인가정이나 회사나 우리 사회가 뒤엎어질 위험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풍랑이 언제 끝날지 모르게 계속하는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안 보이는 풍랑입니다. 이 풍랑을 그치고 살아남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이 성경에 바울이 체험한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므로 우리도 그를 본 따서 우리 인생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쓸데없는 잡동사니는 전부 배 밖으로 던져버리게 도와 주시옵시고 배를 가볍게 하여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인생의 배를 가볍게 해서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에게 성령으로 은혜를 주셔서 우리 잘못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중심에 서고 하나님 섬기는 삶으로 확실히 돌아오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부정적으로 파괴적인 말을 하고 생각한 것을 회개하고 언제나 희망적이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인생을 대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단결해서 하나가 되어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힘을 합쳐서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면 천을 뚫고 둘이면 만을 쫓는다고 했었습니다. 합쳐서 나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이 난국을 격파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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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2 출애굽기 삶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 출14:10-14  이한규 목사  2010-01-21 2826
2771 창세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창20:8-18  이정원 목사  2010-01-21 2938
2770 창세기 우리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은혜..... 창20:1-7  이정원 목사  2010-01-20 2574
2769 창세기 구원 이후의 삶 창19:30-38  이정원 목사  2010-01-20 3402
2768 시편 시온의 대로 시84:1-12  이정원 목사  2010-01-20 4665
2767 창세기 소돔의 멸망 창19:15-29  이정원 목사  2010-01-20 2671
2766 이사야 그 이름..... 사9:6-7  이정원 목사  2010-01-20 2905
2765 창세기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창19:1-14  이정원 목사  2010-01-20 2114
2764 창세기 하나님의 친구(2) 창18:16-33  이정원 목사  2010-01-20 1945
2763 누가복음 시몬의 하나님 경험 눅5:1-11  정용섭 목사  2010-01-20 3237
2762 예레미야 예레미야의 소명 렘1:4-10  정용섭 목사  2010-01-20 4576
2761 고린도전 카리스마의 영적 원리 고전12:12-31  정용섭 목사  2010-01-20 2465
2760 요한복음 포도주 사건의 실체와 의미 [2] 요2:1-12  정용섭 목사  2010-01-20 4688
2759 에배소서 그리스도의 비밀, 교회의 비밀 엡3:1-13  정용섭 목사  2010-01-20 3432
2758 이사야 솔깃한 말, 터무니없는 말 사30:8-17  정용섭 목사  2010-01-20 2366
2757 누가복음 두 여자의 만남 눅1:39-56  정용섭 목사  2010-01-20 2770
2756 스바냐 그 날이 오면... 습3:11-20  정용섭 목사  2010-01-20 2291
2755 빌립보서 영광과 찬양의 삶이란? 빌1:3-11  정용섭 목사  2010-01-20 2586
2754 누가복음 사람의 아들”이 온다. 눅21:25-36  정용섭 목사  2010-01-20 3342
» 사도행전 유라굴로의 풍랑을 맞은 세계 경제 행27:18~25  조용기 목사  2010-01-18 2504
2752 누가복음 구원과 낙원과 음부 눅23:39~43  조용기 목사  2010-01-18 2560
2751 히브리서 흔들리지 않는 터전 히12:28  조용기 목사  2010-01-18 2573
2750 예레미야 하나님의 주소 렘31:35  조용기 목사  2010-01-18 1923
2749 창세기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창32:24~32  조용기 목사  2010-01-18 3496
2748 요한복음 빚단련 요19:30  조용기 목사  2010-01-18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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