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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행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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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최장환 목사 |
| 참고 : | http://cafe.daum.net/smbible |
행 9:1-9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최장환 목사
행9:1-9까지의 말씀으로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지금 졸업하는 철입니다.
3월에 가면 입학하는 철인데 어떤 사람이 우스갯 소리를 써놨더라구요.
졸업은 뭐냐 그랬더니 졸지에 업이 바꾸어 지는 것이라고 써놨고
입학은 입장이 바뀌어서 학교 가는 것이라고 써놨더라구요. 그것은 아니죠.
세상사람들은 졸업을 하고 또 새로운 학교로 한단계 올라가면
더 위에것을 공부한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옛사람이 새 사람으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졸업이 입학으로 되는 것은 내가 여러 가지 삶속에서 옛날 속에 있었던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 내가 다른 과정을 배우러 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받아드려야 될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삶에서 못된 것. 잘못된 것은 졸업을 하고 정말로 귀하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영적이고 우리가 꼭 가야 될 길을 가는 그런 새 길로 가는, 새사람으로 되려고 입학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받아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여기 본문에 사울이라고 하는 사람은 유대교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둘째가라면 서운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외에 기독교를 믿는 예수를 믿는 사람은 전부 틀렸다고 잡아 가두고,
스데반을 죽일때도 바로 옆자리에 있었던 그런 사람이 바울입니다.
나중에 바울로 바뀌었는데 지금까지는 사울인데 이 사울이 예수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대 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서 지금으로 말하면 영장을 받아서
저 위에 있는 다메셋까지 가고있는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가고 있는 도중에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서
이 사울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캄캄해져 버립니다.
그리고는 거기에서 소리가 나는데 '사울아 사울아,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자기 생각과는 너무너무 다릅니다. 자기는 최고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그랬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핍박한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랬습니다.
그래서 누구냐고 하니깐 부활하신 예수님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메섹으로 들어가면 네가 할 일을 알려줄거라고 얘기를 해서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3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
그 과정들이 있고 난 후에 아나니아에 의해서 반눈이 뜨여지고 회복되고 나서
바울은 전혀 다른 새 사람으로 변했던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속에 빠져있는 옛 사람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사람으로 우리는 바뀌어져야 할 것입니다.
사울이 전에 있었던 잘못된 삶은 옛사람이었고
우리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서 깨닫고 나서 사울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다메섹에서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기 시작했던 사울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뀌어 지는 귀한 역사를
우리가 이루어 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뀌어져야 할 것인가 본문을 먼저 보겠습니다.
1절,2절을 보겠습니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첫 번째, 자기 생각속에서 빠져 나와서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꿔져야 합니다.
지금 1절에 보면 사울은 그렇게 합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그랬습니다.
사울 이사람은 유대교를 믿는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는 유대교가 최고이고 자기가 믿는 유대교 만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고.
자기는 고기 가운데 토막 같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이
착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 바로 사울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전부 잘못된 것으로 알고
여기에 1절에 보면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다 그랬습니다.
자기가 믿는 유대교 외에 예수를 믿는 기독교는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잡으려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해서 그 도를 좇는,
예수를 좇는 기독교 종교를 갖은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에 공문을 가지고 갔다고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울은 자기 고정관념에 빠져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괜찮다는 그런 삶 속에서 자기만이 최고로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속에 빠져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잘한 것이 아니라 잘 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만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나외에는 없다고
착각을 하는 수가 있고 어떤 사건이나 문제를 볼 때 내 속으로 내 눈으로
내 관점으로 어떤 것인지 보아서 오해를 하고 그것을 못 알아 듣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바로 이 사울은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을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옳다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옳다고 하는 것.
그 고정관념에서 우리는 빠져나와야 합니다.
항상 평가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판단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 아까 서집사님 기도하시는 대로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나만이 옳고 또 다른 사람은 틀리다라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항상 내 생각속에 빠지고 내 고정관념에 빠지고 내 선지식에 빠지면
오해를 낳게 되고 잘못되게 됩니다.
우리 안에서는 내가 먼저 알고 있는 것이 나를 지배합니다.
내가 먼저 알았다고 내 속에서 정돈 된 것이 나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무얼 배우고 어떻게 배웠냐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를 계속해서 끌고 갑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그것이 금방 나온 것이 선지식입니다.
내가 먼저 알고있는 것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선지식을 올바르게 내 속에 정돈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바로 반응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내 고정관념 속에 빠져서 그 고정관념 틀 속에서 문제를 본다던지 사건을 본다던지 사람을 본다던지 일을 보게되면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 사울도 자기 생각속에 빠져서 공문을 받아서 사람을 잡으려고 갔던 것입니다.
형사들이 범인을 잡으려고 하면 어떻게 다니죠?
형사는 선글라스를 끼고 까만 잠바를 입고 장갑을 끼고 그렇게 다니잖아요.
그때 그런 옷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아마 그런 류의 사울은 살기가 등등해서
예수믿는 사람을 잡으러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됐다고 우리의 부활하신 주님이 선언하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 생각속에 빠져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거기서 빠져나와서 옛 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뀌어 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나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다시스로 갔던 사람입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는 니느웨 하나님이 원하는 곳은 가기가 싫어서 자기가 원하는 다시스로 가서 배를 타고 갔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틀렸다고 풍랑을 통해서
나중에 바다에 요나가 던져져서 그 이후에 정말로 이 요나는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고 나중에 새로운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그런 요나가 되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생각 속에 빠져 들어간다는 것. 참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 고정관념에 빠져있다는 것.
혹여라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속에 빠져있는 가를 늘 생각해보고
그것을 늘 말씀에 적용 해보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야 될줄 믿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내 생각속에 빠져나온다고 하는 것은
새로운 사람으로 걸어가는데 가장 먼저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고정관념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어떤 일이던지 보면 그 고정관념 속에서 보게됩니다.
내 입장에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 입장에서 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오해가 싹트고 싹터서 나중에는 큰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내 고정관념이 틀릴수도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그 생각속에 빠져서 살아가는 그런 신앙생활이 아니라 거기에서 빠져 나와서
신앙생활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3절 4절을 보겠습니다.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두 번째, 자기 잘못된 점을 뒤돌아 보아서 옛 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꿔져야 합니다.
지금 다메섹에 가까이 갈 때에 하늘로써 빛이 비췄습니다.
그래서 이 사울은 땅에 엎드려 졌습니다.
그랬는데 소리가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그러면서 네가 어찌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상상도 못한 일이 생긴 겁니다. 자기같이 옳고 자기같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하나님을 똑바르게 믿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자부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하는 한마디에
바울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이 유대교의 생활이 한마디로 뒤집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자기는 잘한다고 했는데 잘 못했다고 하면 사울은 얼마나 심난하겠습니까.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뉘시옵니까 하며 물었습니다. 누구길래 이 얘기를 하느냐는 겁니다.
그랬더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라고 하는 겁니다.
자기는 상상도 못하고 생각 할 수도 없는 일이 지금 벌어진 것입니다.
지금 사울은 잘못했다고 평가가 떨어진 겁니다. 그러면 사울은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잘못된 점을 뒤돌아보고 그것을 고쳐서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가야 될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평가나 판단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사람의 평가, 판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판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했지만 결과는 하나님이 잘못했다고 얘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나니아를 통해서 안수받고 나중에 눈이 떠지고
이후에 예수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갔다가 자기가 예수를 믿어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을 다메섹 그 성안에서 전하고 또 죽이려고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광주리에 담아서 내려서
다메섹을 도망나오는 사울이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사울은 자기 잘못을 뒤돌아 보고 많이 울었을까요.
정말로 하나님을 잠 섬기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칭찬이 아니라
네가 나를 왜 핍박하느냐고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그 신앙이 헛것인지를 알고
잘못됐다고 하니까 허망하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눈은 안보이죠.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혹여라도 말씀을 통해서
내가 잘못된 점을 깨닫는다던가 말씀을 들을때에 잘못된 점을 혹시라도 깨달으면
바로 즉시 하나님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야될 것입니다.
그래서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꾸어지는 것. 너무나 귀한것입니다.
하나님은 잘못한 것만 절대 보지 않습니다. 잘못한 것을 통해서 나중에 잘되게 되면
그것이 나중에 전화위복이 되는 큰 계기가 되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사울은 정말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핍박했지만 나중에 새사람이 되고
난 이후에 일생을 예수를 위해서 바쳐서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은 책을 쓴 사람이 바울입니다.
종류로 13권의 책을 쓴 사람입니다.
자기 일생을 결혼도 하지 않고 새사람으로 변해서
일생을 주님을 소개하다가 죽은 사람이 이 사울입니다.
이름이 사울에서 바울로 바뀌는 겁니다. 사울은 큰자요 바울은 작은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작은자가 되게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면
큰 자라고 자기를 자랑하고 다닙니다.
바울은 그것이 너무나 잘못된 것을 알고
내가 엉터리였구나 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신앙생활 하면서 내가 항상 나를 말씀으로 점검해보고 혹여라도
내가 잘 가고 있는 지 잘못된 점은 없는지 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에 의해서 평가도 받아보고 찬양을 부른다던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에게 여쭙고 하나님의 음성도 듣고 하나님의 의도하심도 깨달아서 우리가 내 잘못된 점이 드러났다고 하면 바로 뒤돌아 보고 거기를 통해서
내가 새롭게 더 발전해 갈수 있는,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그런 귀한 역사를 이루어야 될줄 믿습니다.
나만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람의 큰 장군이었는데 문등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나라 왕이 북 이스라엘의 왕에게 편지를 써서
나만의 문등병을 고쳐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왕이 아람이 워낙 힘이 좋으니까 부담스러워서 어떻게 고치냐고
그러고 있을 때 엘리사가 그 내용을 알고 나에게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라만 장군이 엘리사의 집에 왔습니다.
큰 대장이니까 말타고 왔을거 아닙니까. 그 뒤에 따라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라만 장군 생각에는 엘리사가 와서 장군님 오셨냐고 너무나 수고 하셨다고 이리 들어오시라고 두손이 벗겨지도록 안수를 해야 하는데 문도 열어보지도 않고 저기서 하는 말이 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란 말을 듣고 너무나 실망하고 화가 나서 어찌할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가면 요단강 보다 더 좋은 강이 많은데 하필이면
그 좁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하는냐고 성질이 났습니다.
그랬더니 조그만한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 그것도 못합니까.
일곱 번 씻는게 뭐가 어렵냐고 그냥 씻으라고.
그래서 그말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을 씻었더니
이 문등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라만이 그때 뭐라고 말했을까요.
내가 잘못을 해도 큰 잘못을 했네. 그리고는 엘리사를 찾아와서 그때는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선생님, 우리의 예물좀 받아주세요. "그랬더니 선생님은 예물을 절대 받지 않았습니다.
다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나만이 처음에 왔을 때 얼마나 교만을 떨고 자기 자랑에 왔다가 나중에 하나님이 가르쳐 줘서 완전히 무릎을 다 꿇고 자기 잘못된 점을 뒤돌아 보고는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꾸어 졌던 라만 장군을 보게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혹여라도 잘못된 점이 내가 발견되면 그것을 뒤돌아보고 고쳐서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뀌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8-9절입니다.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세 번째, 자기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워서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여기 8절에 보면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다른사람에 이끌려서 들어가는 사흘동안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사흘이 사울이 하나님의 의도를 다시한번 깨닫고 배우는 기간입니다. 아픔을 통해서 사흘동안에 눈안보이는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는 시간이 이 3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나니아의 집에 들어가서 안수를 함을 통해서
사흘 후에 눈이 다시 보여지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일을 새사람이 되어서 이 사울이 시작하게 됩니다.
여기에 이 아픔은 자기가 신앙생활 잘 한다고 하는 속에 있을 때는
이것을 못 보고 못 만난겁니다.
자기가 다메섹에 공문을 가지고 거기를 가는 잘못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적해서
왜 네가 나를 핍박했냐고 가다가 이제는 3일동안 눈이 안 보이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나쁜거 같지만 이것이 나중에 보면
이 사울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는데 꼭 필요한 아픔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신앙생활을 해보고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실수도 하게 되고
잘못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그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관심을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귀한 관심을 거기서 깨닫고
전혀 옛날과는 다른 신앙생활 하는 새사람으로 바뀌어 지는 것이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바로 이 바울은 3일동안에 아픔속에서 안보이고 식음을 전폐하는 그 속에서
얼마나 자기를 뒤돌아 봤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나중에 아나니아를 통해서
다시 눈을 뜨고 났더니 바울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던 겁니다.
이 사흘동안에 이 아픔, 눈이 안보이는 아픔은 사울에게는 너무나 귀한 아픔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배우는 기간이었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하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아픔을 주는 수도 있습니다.
그럴때에 우리는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혹여라도 원망하지 말고
그것을 통해서 더 하나님에게 가까이 다가갈수 있는 귀한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이해를 하시고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많이 배워서 하나님에게 더 다가감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이 새사람으로 바뀌어 지는 귀한 역사가 이루어 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여기에서 안보이는데 그전만 해도 발걸음도 세게 걸어갔던 사람이 한걸음도
다른 사람이 안잡아주면 못갈 정도가 됐을 때 얼마나 이 사울은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하나님의 의도는 그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신앙생활하면서 아픔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픔을 내가 잊어보려고 하고 내가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 그런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환경을 만드셨다는 것을 이해하고 아픔을 통해서 여기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 가를 내가 깨달으면 그것이 도리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꼭 아픔을 통해서 낙심하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배워서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뀌어가는 귀한 역사를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뀌어져야 하는데
첫 번째는 자기 생각속에서 빠져나와야 됩니다.
두 번째는 자기 잘못된 점을 뒤돌아 보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자기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다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되는 귀한 역사를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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