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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시2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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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 참고 : | 2009. 1. 11. 주일4부 설교 |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 23:1~6)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시편 23편 1절로 6절을 가지고 “신앙의 사계절”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을 통해서 보면 신앙이란 항상 축복만 쏟아지는 생활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고난만 다가오는 생활도 아니지요. 일 년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신앙에도 사계절이 있습니다.
<본론>
1. 은혜와 축복의 계절
첫째, 계절은 은혜와 축복의 계절입니다.
우리가 주를 믿을 때 먼저 체험하는 것은 은혜와 축복의 계절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봄이 다가와서 만물이 푸르러 청청하고 아름답고 아지랑이 끼고 생명이 충만한 것처럼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굉장한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고 생명이 넘치는 축복 속에 사는 때가 있습니다. 은혜의 말씀과 푸른 초장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2절에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푸른 풀밭에 누이신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면 양은 좀처럼 풀밭에 눕지 않습니다.
목사이며 작가인 필립 켈러는 원래 호주에서 양을 치는 목자였는데 목사가 된 이후 그는 「목자가 바라본 시편 23편」이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보면 양이 초장에 드러 누울 때는 네 가지 조건이 있어야 드러눕는다는 것입니다. 그 첫째 조건이 양을 잡아먹으려는 원수가 없어야 초장에 눕지 이리나 사자나 여우가 주위에 있으면 절대로 초장에 눕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양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화목해야 장에 눕지 뿔로써 싸우고 머리로써 밀치고 하는 싸움이 있을 때, 절대로 초장에 눕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초장에 눕지 않을 때는 몸에 빈대 벼룩이 있을 때는 절대로 초장에 눕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는 충분히 꼴을 먹고 배가 불러야 목장에, 푸른 초장에 드러 눕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눕힌다는 것은 우리에게 원수를 없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 가운데 화목함이 있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빈대벼룩을 없애 주시고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만족케 해주면 우리가 하나님 목장에 드러눕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계절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하심으로 원수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고 모두다 원수가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병든 것을 고치시고 염려, 근심을 재하여 주시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셔서 정말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사는 꿀맛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그런 계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와 축복의 계절에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알고 간증하고 찬송하고 기뻐합니다. 그때는 성령의 생명수가 마음에 넘칩니다. 우리가 목마르고 마실 물이 없을 때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지요. 옛날 제가 어릴 때는 여름철에 밭에 가서 일을 종종 했는데 콩밭을 매든지 여러 가지 밭농사를 지을 때 얼마나 더운지 말로다 할 수 없어요. 땀이 비같이 흐르는데 그때 우물에 가서 찬물을 길러 와서 그냥 찬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간장을 좀 섞어 가지고서 그래서 마시면 굉장히 시원합니다. 아예 천당 같아요. 제가 일정시대에 강제노동에 동원된 보국대들이 화물선을 타고 필리핀을 위시한 남방으로 운송될 때 체험을 들었었습니다. 화물칸에 꽉꽉 한국 노동자들을 태워서 물을 한 방울도 주지 않고 장시간 며칠을 항해를 하니까 사람들이 목말라서 죽을 지경입니다. 물 달라고 아우성을 쳐도 일본 사람들이 물을 안주니까 나중에 목을 쭉 뽑아서 픽 쓰러지고 쭉 뽑아서 푹 쓰러지고 그래서 제일 처음에는 급하게 물을 좀 갖다 먹이더니만 나중에 쓰러진 사람 많으니까 몽둥이를 가지고 두들겨 패고 물을 안줘서 수많은 사람이 목말라 죽었다는 말을 들어본 것입니다. 물을 나흘만 안마시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항상 광야를 지나면서 물이 없어서 불평을 하고 원망, 탄식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사는데도 우리 영혼이 언제나 갈급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라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이 죽었든 살았든 영혼을 사모하는 영혼이 있기 때문에 돈만 벌면 만족하지 싶어도 돈 가지고 만족하지 않습니다. 물질만 많으면 행복하지 싶어도 행복하지 않아요. 권력이 있으면 행복할까 싶어도 행복하지 않아요. 그 무언지 모르게 마음에 언제나 갈급함이 있어요. 무슨 갈급함인지 꼬집어 말하지 못하지만 갈급함입니다. 그 갈급함이란 하나님을 찾는 마음인 것입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이 항상 마음속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사람은 고향이 바로 하나님 품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사람은 모든 세상 것을 다 가져도 항상 마음에 그리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리움을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 쾌락으로 채워 보려고 하지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령의 생수를 마시기 전까지는 마음에 결코 안주함이 없고 만족함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 축복의 계절에는 푸른 풀밭에 누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생수를 마시게 해주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2절에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에 즐거워지고 상쾌해지는 것은 성령의 생수가 마음속에 솟아오르기 시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시면 마음이 흡족해지는 것입니다. 교회 늘 나오고 싶은 마음이 왜 생깁니까? 교회 나오면 마음이 상쾌해지고 평안해지고 즐거워지는 이유가 생명수를 마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는 영혼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킨다”
한참 은혜를 주실 때는 내 영혼이 살아서 홀쩍 홀쩍 뛰는 것입니다. 죽은 생선같이 눈이 썩어서 있지 않고 살아서 팔딱팔딱 뛰는 생선 같습니다.
에베소서 2장 4절로 5절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은혜를 부어 주셔서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전에 몰랐던 찬송을 부르게 되고 전에 못하던 기도를 하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보니 새로운 세계가 내게 다가오고 내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영적인 갈구가 없었는데 이제 주일날이 기다려지고 새벽기도가 기다려지고 수요일날이 기다려지고 철야기도가 즐겁고 말씀을 읽고 기도드리고 예배드리는 것이 굉장히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영혼이 소생해 일어났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 23편 3절에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날 누가 말을 하지도 않는데 이제는 죄의 길이 싫습니다. 옛날 세상 친구가 싫고 옛날에 술, 담배, 세상 쾌락을 쫓아가던 생활이 싫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믿는 친구들이 좋고, 교회가 좋고, 하나님 따라가는 것이 좋고, 죄를 버리고 의롭게 사는 것이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억지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어서 우리가 죄를 버리고 의를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의가 좋아야 의롭게 되지 의가 싫으면 의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죄를 좋아하고 세상을 좋아하기 때문에 죄와 세상을 따라가지만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의를 좋아하고 거룩함을 좋아하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주님을 따라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느니라”
우리가 주님께 나오면 하나님께서 죄를 버리고 값없이 선물로 의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것이 축복의 계절인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는 기가 막힌 좋은 계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이 계절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항상 예수만 믿으면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서 성령의 생수를 마시게 하시고 그리고 내 영혼이 살아서 벌떡벌떡 뛰게 하시고 나를 의의 길로 걸어가게 해 주시는구나!’하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2. 시련의 계절
봄은 지나가면 여름이 다가오는 것처럼 축복의 계절이 지나면 시련의 계절도 꼭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계절과 같습니다. 항상 봄이 있으면 좋지 않겠어요? 그러나 봄이 오면 봄이 가고 여름이 또 오는 것입니다. 축복의 계절이 있으면 그 축복의 계절 다음에는 시련의 계절이 옵니다. 대개 예수 처음 믿을 때 축복의 계절이 오지요. 처음 예수 믿을 때 얼마나 마음이 뜨거워지고 좋고, 기쁘고, 예수 믿는 것이 기쁘기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보고 “저 여자는 발뒤꿈치에 말발굽을 달았느냐? 아침 새벽부터 뛰어 다니면서 교회만 간다.”고 그렇게 비난하는 것을 내가 보았습니다만 그럴 정도로 좋습니다. 그러나 그 계절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가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던 것이 다 사라지고 사방이 어둑 캄캄해지고 눈앞에 캄캄하고 불안과 공포가 나를 휩싸는 어려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집안에 우환 질고가 생겨나고 잘되던 사업에 부도가 나고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고 육체에 어려운 병도 다가오고 아~ 그렇게 좋던데 왜 이렇게 되느냐? 하나님이 천리 만리 밖에 있는 것 같고 하나님이 완전히 나를 버린 것 같습니다. 교회와도 나는 외톨이 같고 부르짖어도 응답을 안 해 주는 것 같고 나는 완전히 하나님이 잊어버린 것 같은 그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꼭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망의 음침한 계절은 주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아홉 자녀를 낳았으니까 내가 우리 누님 다음 둘째로 태어났는데 동생들 보면 어린애부터 끝까지 젖을 먹이고 난 다음 그 다음 젖 떼려고 할 때 옛날에는 젖에다가 금계랍을 칠했어요. 굉장히 쓰거든요. 그러니까 어머니 젖을 물었다가는 막 화를 내서 울고 어머니 젖을 때리고 그냥 어머니를 쥐어박고 웁니다. 그래도 애에게 거기 젖꽂지에다 금계랍을 발라서 쓰게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는 너무 써서 빨다가 못 빨고 빨다가 못 빨다가 낙심하고는 그 다음에는 젖을 빨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젖을 빨지 밥을 안 먹으려고 하거든요. 우리 신앙생활도 축복의 계절을 체험한 사람은 전부 축복 속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찬송 부르고 춤만 추기를 원하지 고난의 길을 걸어가서 믿음으로 서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음을 가르치기 위해서 축복의 계절이 지나가고 고난의 계절이 다가오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시련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저히 하나님이 이제는 나를 버리고 그렇게 나를 사랑하던 사람이 사라지고 은혜도 다 가둬가 버리고 나는 완전히 버림받은 그런 심정을 느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43장 2절은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은 그렇게 해주는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는 성인이 되면 반드시 밤에 산에 올라가서 나무에다가 밧줄로 묶어 놓고 난 다음 혼자 밤을 지내야 되는 것입니다. 성인식을 하고 난 다음에 20세가 되면 그 아들을 아버지가 끌고 산에 가서 나무에 묶어 놓습니다. 점점 어두워지고 캄캄해지는데 짐승의 우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있지 아니하여 사나운 짐승이 곁에 와서 빙글빙글 돕니다. 그런데 짐승이 곁에 가까이 오기만 하면은 휙 하고 어디서 화살이 날아와서 짐승을 쏘아서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무서워서 부들부들 떠는데 짐승이 곁에만 오면 어디서 화살이 날아와요. 그래서 아침에 보니까 바로 앞 나무 위에 아버지가 올라 앉아 가지고서 아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짐승만 오면 화살로 쏘아 버리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바로 앞 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자기 혼자 나무에 묶여 있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보호하면서 곁에 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도 해를 받지 않도록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는 안 들리고 손에는 만질 수가 없어도 하나님은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를 받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면서 고통을 당해도 그 고통이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오고 절망을 가져오고 파괴를 가져오지 못하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숨어서 계실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제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오직 주님이 같이 계심을 믿음으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꿈으로도 환상으로도 계시가 오지 않고 은혜도 느낄 수 없을지라도 주님은 이제는 믿음으로 살아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눈으로 보는 것으로 믿지 말고 귀로 듣는 것으로 믿지 말고 손으로 만지고 느끼는 것으로 믿지 말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일지라도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주님이 같이 계신 것을 믿음으로 살아라. 그 믿음을 훈련하는 시절이 바로 고난의 시절인 것입니다. 캄캄한 밤을 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도 하나님은 주위에 숨어 계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살과 피를 가지고서 값주고 산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쉽게 내버리지 않습니다. 저는 50년의 목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더구나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지을 때 그때 오일쇼크가 와서 성도들이 생활이 어려워지고 직장을 잃고 헌금이 나오지 않고 건축업자들은 저를 고소하고 철근은 오랫동안 비를 맞게 해서 녹이 슬어 녹물이 떨어지고 얼마 있지 아니하면 전부다 거둬내야 된다고 하니 절망에 젖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대답도 없습니다. 꿈에도 나타나지 않고 환상도 주지 않고 음성도 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기도도 안 나오고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래서 교회 가운데 저기 엎드려 가지고 “하나님, 이 철골이 내 위에 떨어져서 합법적으로 죽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자살하면 지옥가지만 합법적으로 죽으면 천당은 갈 터이니까 “주님 내가 죽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고통치며 몸부림 친 것이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영원히 버린 줄 알았습니다. 영원히 나는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없는 줄 알았습니다만 지금 지나보니 옛날이 아주 우습고 재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저의 믿음을 자라게 만든 것입니다.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를 믿어라. 돌아보니 하나님이 그 환난 가운데서 다 건져 내시고 이렇게 훌륭한 교회를 짓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바로 이런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게 하는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고 귀에 안 들리고 만질 것 없고 느낄 수 없어도 하나님은 안 버린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하나님은 나를 안 버린다. 마귀가 아무리 나를 첩첩이 둘러싸도 하나님은 나와 같이 계신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보호하여 주시고 해를 받지 않게 해주신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보호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지팡이는 우리를 인도하는 지팡이입니다. 캄캄하고 아무것도 안보이고 내가 눈을 감고 걸어가도 내가 걸어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르게 지팡이로 인도하고 막대기는 짐승이 오면 내리치는 무기인 것입니다. 원수가 와서 나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면 주님의 권능의 막대기가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나님이 날 버린 것 같고 나는 버림 받은 것 같아도 하나님은 같이 계셔서 지팡이로 나를 인도하고 막대기로 원수를 쳐서 나를 멸하지 못하게 하고 그를 통해서 우리가 믿음을 연단 받고 튼튼한 믿음으로 서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젖만 먹지 말고 밥을 먹고 남의 도움만 받지 말고 스스로 일어나서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믿음의 용사가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잠언서 3장 5절로 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환난이 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다가온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이겨 놓고 너희와 같이 있으므로 너희는 마음에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내 안에서 평안을 가지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꼭 환난의 시절이 필요한 것은 이 환난의 시절을 통해서 우리가 굳센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성도들을 보면 우리 성도들이 환난을 당하지 않고 편안하게 자는 사람은 조그만 어려움이 당해도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조그마한 짐도 짊어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억센 시험과 환난을 당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은 무거운 짐도 짊어지고 나가고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넉넉히 이기고 나가며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란 성도가 되어야 되고 힘이 있는 성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운동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운동을 하는 것은 근육을 살려 놓기 위한 것입니다. 근육이 튼튼해야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운동을 안 하면 근육이 말랑말랑 해져서 힘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신앙의 근육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련의 계절을 주어서 시련을 통하여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하고 부르짖기도 하고 몸부림도 치고 울고 가슴을 치고 몸부림치는 그런 삶을 통해서 신앙의 근육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우리 신앙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이 어려운 세계를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능력 있는 신앙이 있어서 기도를 통해서 흑암을 물리치고 사탄을 이기고 고난과 괴로움을 승리로 이끄는 그런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날 큰 시련을 당한 성도가 호프먼 목사를 찾아와서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그와 같이 울부짖었습니다. 호프먼 목사가 기도해 주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으니 이 어려운 짐을 혼자 지지 말고 예수님께 맡기고 의지하면 주님께서 돌보아 주신다고 위로를 하고 난 다음 기도를 해주니까 이 성도가 말하기를 “그래요. 이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질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성도가 나간 후 갑자기 목사님에게 찬송시가 떠올라서 그 시를 지은 것이 찬송가 363장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우리 다함께 한번 1절만 불러 보십시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시련은 반드시 옵니다.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 신앙 스케쥴에 하나님이 그것을 넣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축복의 계절만 오는 것이 아니라 시련의 계절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은 아무리 시련이 어둡고 캄캄해도 주님께서 숨어서 나와 같이 계시며 내가 해를 받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나와 같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당해서 이제는 벼랑에서 떨어진다. 떨어진다. 이제는 떨어지면 죽는다고 할 때는 반드시 주님이 와서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홀로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근심과 고통 가운데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께 의지하고 나가면 주님이 반드시 우리를 붙들어 준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3. 원수와 싸우는 계절
셋째는 이제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처럼 시련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아휴~ 이제 한숨 돌리고 살겠다’싶은데 상당히 믿음이 강해졌지 않습니까? 그러면 원수와 싸우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제는 갑자기 내 주위에 원수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내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는데 대적하는 원수의 공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경쟁자의 시기와 질투와 비난, 사방으로 우겨 싸이고 답답한 일이 생기고 핍박을 당하고, 넘어뜨리고 온갖 괴로움이 다 다가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미 네가 믿음이 있으니까 이제 원수하고 한번 씨름을 해봐라. 실습을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계절에 반드시 원수와 싸우는 계절이 옵니다. 안 그렇더니 갑자기 남편이 사나워지고 혹은 아내가 바가지를 긁기 시작하고 자식이 부모를 대적하고 형제간에 원수가 되고 그렇게 친한 친구가 배반을 하고 사업적인 동업자가 원수가 되고 사면초가성입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 나하고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나를 그렇게 버릴 수가 있느냐. 마음이 답답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얼토 당토 않은 말로써 비난하고 공격하고 고발을 하고 고소를 당하고 얻어맞고 발길로 차이고 피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나를 이렇게 버리십니까? 그렇게 하지만 그것이 바로 원수와 싸우는 계절인데 왜 원수와 싸우게 하느냐. 하나님은 원수가 오면 축복의 밥상도 차려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원수와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축복해 주시고 승리로써 축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에게도 큰 축복을 받기 전에 반드시 원수의 진을 꿰뚫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의 진을 꿰뚫지 않고는 축복의 밥상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오늘날 있기 전까지는 얼마나 많은 원수와 싸웠는지 모릅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믿지 않는 세계와도 싸우고 같은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타 교단이 우리를 이단이라고 해서 우리를 몰아치고 싸우고 우리 본 교단에서 우리를 쫓아내고 고통을 당하고 우리 교회 내에서 성도들이 서로 분열해서 싸우고 온갖 투쟁과 고통을 다 당한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가 오면 밥상도 차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는 반드시 우리를 시험에서 다가오는 그 계절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갑자기 예수 믿고 평안하고 좋더니 왜 가정이 분란이 다가오느냐? 우리 남편이 안 그런 남편이 왜 지금 싸우고 달려들며 아내가 저렇게 온순하고 좋던 아내가 왜 투쟁을 부리고 대적을 하며 자식들이 왜 저렇게 나를 거역하는고? 내 친구들이 왜 나를 이제는 멀리하고 비난하는고. 내 동업자가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가. 왜 만사가 나를 우겨 싸고 답답한 일이 생기고 핍박을 하고 내가 넘어지고 자빠지는 것이 이 일이 왠일인가. 그럴 때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너희 친구와 너를 돕는 자는 주님밖에 없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는 나를 안 버려. 세상이 너를 버릴 때 일수록 너는 네 주님 품에 가까이 오라. 그것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 친척과 자기 이웃과 친구들을 의지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세상에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없고 하나님밖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 물론 남편도 있고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고 일가도 있고 친척도 있고 친구도 있지요. 옛날에는 그들을 전적으로 믿었다가 마음에 손상을 입고 고통을 당했지만 이 체험을 하고 나면은 그때 마음에 손상과 고통을 안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계신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므로 나는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께만 의지하고 산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 다 너를 버려도 주님은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님만 꽉 의지하고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마음에 인내를 가지고 나가라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원수와 싸우는 계절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7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환난이 다가와 보고 고난이 다가와 보고 기근이 다가와 보고 적신이 다가와 보고 칼이 다가와 보고 원수가 다가와 봐야 주님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진실한 하나님이고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체험해 봐야 영생을 체험할 수 있는 것처럼 고난을 체험해 봐야 평안을 주는 주님을 체험하는 것처럼 배가 고파 봐야 먹을 것을 주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처럼 원수가 와야 나의 영원한 친구는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주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 중심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것을 사랑하고 또 주님을 사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만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험하기 위해서 우리들을 원수의 진에 던져 놓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우리를 마음대로 취급하고 발길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짓밟아도 우리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셔서 그를 통해서 이기고 승리하고 오히려 원수들 보는 앞에서 밥상 차려주고 용용 죽겠지.. 용용 죽겠지.. 이렇게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밥상 차려진다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따라 말씀하세요. 원수가 오면 밥상도 온다. 반드시 주님이 좋은 일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좋은 일이 그 뒤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심하여 뒤로 넘어지면 안 되고 물러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수가 한길로 오면 하나님은 일곱 길로 물리쳐 주시는 것입니다. 성공과 축복을 주님이 원수 앞에서 내리시므로 원수 앞에 길을 당당히 세워주는 것입니다. 원수가 짓밟는데 하나님도 우리를 짓밟으면 우리가 갈 데가 없지 않습니까? 원수가 짓밟으면 하나님이 내가 너하고 같이 있노라 하고 밥상을 차려 주면 원수가 보고 속이 터져 죽을 지경입니다. 저것 죽어야 되는데 왜 저렇게 잘 사느냐? 북한이 6.25를 일으켜서 우리를 쳐서 우리를 멸하고 점령하려고 했는데 6.25가 나고 난 다음 60년째가 이제 명년이 되는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밥상을 차려 주셔서 세계 경제대국이 되게 만들어 주시고 북한은 우리를 보고 동동 발걸음을 치지 않습니까? 왜냐, 주님께서는 원수 앞에 밥상을 차려 주어서 내가 이 백성을 사랑하고 이 백성과 같이 있다는 것을 증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원수 때문에 속상하지 마십시오. 원수가 오면 여러분에게 좋은 일도 생겨나고 원수가 여러분을 도적질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더 채워 주시고 원수가 여러분을 쥐어박으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품에 더 안아 주시고 더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2절로 13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야훼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야훼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이런 일이 그냥 오는 것은 아닙니다. 원수 앞에서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원수가 보아야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원수도 없는데 나 혼자 있는데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복 받으려면 원수의 앞에서 고통을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가 여러분을 치거든 하나님이 복 주려고 준비하시는 줄 알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 신앙이 한 단계 높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고 원수가 오면 밥상도 차려주고 그 다음에는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서 여러분의 인생의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잔이 넘친다는 것 영혼이 잘되고 범사도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잔이 넘치는 삶은 반드시 축복의 계절도 지나가고 시련의 계절도 지나가고 원수의 공격을 받은 계절도 지나가면 그 원수의 계절이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밥상을 차려 주시고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셔서 여러분의 생활에 생명이 넘치고 축복이 넘치고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28편 8절로 9절에 “야훼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시옵소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만족과 기쁨과 행복과 감사가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이 결국에는 부족함이 없게 만든다. 인생의 가을철인 것입니다.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면 그 다음에는 가을은 추수기 아닙니까? 열매가 풍성하고 먹을 것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도 축복의 계절이 지나가고 시련의 계절이 오고 시련의 계절이 지나가고 싸움이 계절이 오고 싸움의 계절이 지나가면 이제는 가을의 계절이 오는 것입니다. 삶의 만족과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계절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종국에 가서는 전부 평안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행복과 만족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로 10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제는 도적은 완전히 지나가고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4. 뒤돌아보고 감격하고 천국으로 감
그리고 넷째로, 마지막에 시편 23편 6절에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뒤돌아보고 감격하고 천국으로 가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이가 먹어서 이제 인생길에 다 은퇴를 하고 앉아서 뒤를 돌아봅니다. 초년시절부터 중년, 장년, 노년이 될 때까지 시대를 지나오면서 그때는 괴로웠는데 이제 돌아보니까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이 되었구나. 축복의 계절, 시험과 환난의 계절, 원수의 공격을 받던 계절, 열매를 맺던 계절 모든 것이 다 합쳐서 내게 유익이 되었구나. 큰 축복이 되었구나.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17살에 형들에게 팔려서 종이 되어 끌려갈 때는 얼마나 큰 절망이었습니까? 그것은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의 극치였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더 어려운 고통이 들어갔어요.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어서 1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는데 그 때 종살이는 짐승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을 축복이라고 부를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겨우 종살이에서 쉬게 되고 가정총무가 되었을 때 보디발 아내의 참소를 받아서 그만 시위대뜰 감방에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에 감방은 완전히 생지옥입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3년을 감옥살이 합니다. 그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얼마나 큰 저주입니까? 그러나 결과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국무총리가 되어서 온 가족을 이스라엘에 있는 가족을 다 불러서 애굽 고센땅에 살게 하고 온 애굽 국민들을 다 먹고 살게 만들어 주고 벼슬이 높아지고 모든 사람이 그를 경배할 때 요셉은 뒤를 돌아보니까 형들이 종으로 판 것이 그때는 고난인데 나중에는 축복이었습니다. 안 팔았으면 애굽에 올 턱이 없습니다. 10년 동안 종살이 한 것이 큰 축복이었습니다. 종살이 안했으면 보디발의 집에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거짓말로 강간하려고 했다고 해서 고소해서 감옥에 들어온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가장 큰 절망이었지만 돌이켜 보니 그것이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서 남은 여생을 큰 영광중에 살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노년이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 뒤를 돌아 보십시오. 젊었을 때 당한 그 심한 고통과 괴로움이 지나고 보니 전부 축복으로 변한 것입니다. 전부 기적적으로 은혜가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뭣도 모르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했으나 이제 돌아보니 그것이 다 축복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평생에 주님은 선하시게 인도하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의 슬픔의 날들도 지나고 보면 늘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이 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5절에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른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당하는 고난은 나중에 장차 지나고 보면 정말로, 정말로 큰 축복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천만번 죽어야 할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구원해 주신 주님을 되돌아 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 은혜 고마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옆길로 나가고 죄많이 짓고 반역하고 마귀를 따라가고 하나님을 괴롭힌 나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나이 늙도록 지켜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격과 감사가 되돌아 볼 때 마음에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2절로 13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한 것처럼 이렇게 자상스럽고 긍휼히 여겨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가 보니 우리 행위로써 구원 받은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과에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의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게 되면 이제는 살아온 날은 다 과거가 되고 앞으로 죽을 날이 가까우므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70이 넘으면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할 것입니다. 요사이는 오래 살아서 80을 살고 90을 산다 해도 70이 되면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날을 생각하면서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죽기를 원해서 기도하게도 되고 죽음 저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천국을 생각하고 사모하고 기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절망과 슬픔이 앞에 다가오기 때문에 죽음의 날을 생각하면 몸서리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괴롭습니다. 어떻게 죽을까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하여 죽고 장사지냈다가 부활하시므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예수님 안에 영생과 복락과 천국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는 안 들리고 잡히는 것 없어도 이미 우리 속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우리의 상황의 변화에 불과한 것입니다. 육의 옷을 벗어 버리고 신령한 몸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그 변화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6절로 17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결론>
한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보면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의 한없는 선하심과 인자하신 손길을 마음에 깨닫고 우리는 감격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축복의 계절이 오거든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즐기십시오. 그 축복의 계절이 영원히 계속하지는 않습니다. 축복의 계절이 오면 젖 뗄 때가 오는 것입니다. 어머니 품에 앉아서 젖을 물고 어머니의 응석을 받던 계절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반드시 밥을 먹을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의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과 환난이 다가와서 몸부림치며 고통 하는 시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의 계절이 늘 계속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나가고 난 다음 이제 좀 살만하면 원수가 다가오는 계절이 오는 것입니다. 원수가 와서 여러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 계절이 있을 동안에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밥상 차려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주시고 여러분에게 잔이 넘치는 삶을 체험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절도 영원히 계속하지 않습니다. 그 계절도 지나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될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과거를 살펴보고 회개할 것 회개하고 감사할 것 감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앞에 내가 거할 영원한 집으로 갈 준비를 할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계절을 지나서 우리 인생이, 일생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라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원수가 와서 여러분을 대적할지라도 주님은 밥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 잔이 넘치게 해주시고 그 다음에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여러분 평생을 따랐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고 하나님의 집에 갈 준비를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절이 항상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이상한 일 당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 계신 것이구나 이를 통해서 나를 완성시켜서 영원한 영광의 집에 거하게 만들어 주시는구나. 이것을 알고 믿음으로 감사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체험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의 축복의 계절, 시련의 계절, 원수에게 공격을 당하는 계절, 하나님의 열매를 만끽하는 계절, 죽음의 계절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을 알고 아버지 하나님 낙심하지 말고 어떤 계절이 다가와도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의 영혼을 완성시킨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주와 함께 인생의 모든 계절을 다 지나고 난 다음에 이런 변화와 계절이 없는 천국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우리 성도들이 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시 23:1~6)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시편 23편 1절로 6절을 가지고 “신앙의 사계절”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을 통해서 보면 신앙이란 항상 축복만 쏟아지는 생활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고난만 다가오는 생활도 아니지요. 일 년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신앙에도 사계절이 있습니다.
<본론>
1. 은혜와 축복의 계절
첫째, 계절은 은혜와 축복의 계절입니다.
우리가 주를 믿을 때 먼저 체험하는 것은 은혜와 축복의 계절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봄이 다가와서 만물이 푸르러 청청하고 아름답고 아지랑이 끼고 생명이 충만한 것처럼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굉장한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고 생명이 넘치는 축복 속에 사는 때가 있습니다. 은혜의 말씀과 푸른 초장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2절에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푸른 풀밭에 누이신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면 양은 좀처럼 풀밭에 눕지 않습니다.
목사이며 작가인 필립 켈러는 원래 호주에서 양을 치는 목자였는데 목사가 된 이후 그는 「목자가 바라본 시편 23편」이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보면 양이 초장에 드러 누울 때는 네 가지 조건이 있어야 드러눕는다는 것입니다. 그 첫째 조건이 양을 잡아먹으려는 원수가 없어야 초장에 눕지 이리나 사자나 여우가 주위에 있으면 절대로 초장에 눕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양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화목해야 장에 눕지 뿔로써 싸우고 머리로써 밀치고 하는 싸움이 있을 때, 절대로 초장에 눕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초장에 눕지 않을 때는 몸에 빈대 벼룩이 있을 때는 절대로 초장에 눕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는 충분히 꼴을 먹고 배가 불러야 목장에, 푸른 초장에 드러 눕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눕힌다는 것은 우리에게 원수를 없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 가운데 화목함이 있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빈대벼룩을 없애 주시고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만족케 해주면 우리가 하나님 목장에 드러눕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계절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하심으로 원수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고 모두다 원수가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병든 것을 고치시고 염려, 근심을 재하여 주시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셔서 정말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사는 꿀맛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그런 계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와 축복의 계절에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알고 간증하고 찬송하고 기뻐합니다. 그때는 성령의 생명수가 마음에 넘칩니다. 우리가 목마르고 마실 물이 없을 때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지요. 옛날 제가 어릴 때는 여름철에 밭에 가서 일을 종종 했는데 콩밭을 매든지 여러 가지 밭농사를 지을 때 얼마나 더운지 말로다 할 수 없어요. 땀이 비같이 흐르는데 그때 우물에 가서 찬물을 길러 와서 그냥 찬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간장을 좀 섞어 가지고서 그래서 마시면 굉장히 시원합니다. 아예 천당 같아요. 제가 일정시대에 강제노동에 동원된 보국대들이 화물선을 타고 필리핀을 위시한 남방으로 운송될 때 체험을 들었었습니다. 화물칸에 꽉꽉 한국 노동자들을 태워서 물을 한 방울도 주지 않고 장시간 며칠을 항해를 하니까 사람들이 목말라서 죽을 지경입니다. 물 달라고 아우성을 쳐도 일본 사람들이 물을 안주니까 나중에 목을 쭉 뽑아서 픽 쓰러지고 쭉 뽑아서 푹 쓰러지고 그래서 제일 처음에는 급하게 물을 좀 갖다 먹이더니만 나중에 쓰러진 사람 많으니까 몽둥이를 가지고 두들겨 패고 물을 안줘서 수많은 사람이 목말라 죽었다는 말을 들어본 것입니다. 물을 나흘만 안마시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항상 광야를 지나면서 물이 없어서 불평을 하고 원망, 탄식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사는데도 우리 영혼이 언제나 갈급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라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이 죽었든 살았든 영혼을 사모하는 영혼이 있기 때문에 돈만 벌면 만족하지 싶어도 돈 가지고 만족하지 않습니다. 물질만 많으면 행복하지 싶어도 행복하지 않아요. 권력이 있으면 행복할까 싶어도 행복하지 않아요. 그 무언지 모르게 마음에 언제나 갈급함이 있어요. 무슨 갈급함인지 꼬집어 말하지 못하지만 갈급함입니다. 그 갈급함이란 하나님을 찾는 마음인 것입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이 항상 마음속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사람은 고향이 바로 하나님 품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사람은 모든 세상 것을 다 가져도 항상 마음에 그리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리움을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 쾌락으로 채워 보려고 하지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령의 생수를 마시기 전까지는 마음에 결코 안주함이 없고 만족함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 축복의 계절에는 푸른 풀밭에 누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생수를 마시게 해주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2절에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에 즐거워지고 상쾌해지는 것은 성령의 생수가 마음속에 솟아오르기 시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시면 마음이 흡족해지는 것입니다. 교회 늘 나오고 싶은 마음이 왜 생깁니까? 교회 나오면 마음이 상쾌해지고 평안해지고 즐거워지는 이유가 생명수를 마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는 영혼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킨다”
한참 은혜를 주실 때는 내 영혼이 살아서 홀쩍 홀쩍 뛰는 것입니다. 죽은 생선같이 눈이 썩어서 있지 않고 살아서 팔딱팔딱 뛰는 생선 같습니다.
에베소서 2장 4절로 5절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은혜를 부어 주셔서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전에 몰랐던 찬송을 부르게 되고 전에 못하던 기도를 하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보니 새로운 세계가 내게 다가오고 내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영적인 갈구가 없었는데 이제 주일날이 기다려지고 새벽기도가 기다려지고 수요일날이 기다려지고 철야기도가 즐겁고 말씀을 읽고 기도드리고 예배드리는 것이 굉장히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영혼이 소생해 일어났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 23편 3절에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날 누가 말을 하지도 않는데 이제는 죄의 길이 싫습니다. 옛날 세상 친구가 싫고 옛날에 술, 담배, 세상 쾌락을 쫓아가던 생활이 싫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믿는 친구들이 좋고, 교회가 좋고, 하나님 따라가는 것이 좋고, 죄를 버리고 의롭게 사는 것이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억지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어서 우리가 죄를 버리고 의를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의가 좋아야 의롭게 되지 의가 싫으면 의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죄를 좋아하고 세상을 좋아하기 때문에 죄와 세상을 따라가지만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의를 좋아하고 거룩함을 좋아하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주님을 따라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느니라”
우리가 주님께 나오면 하나님께서 죄를 버리고 값없이 선물로 의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것이 축복의 계절인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는 기가 막힌 좋은 계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이 계절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항상 예수만 믿으면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서 성령의 생수를 마시게 하시고 그리고 내 영혼이 살아서 벌떡벌떡 뛰게 하시고 나를 의의 길로 걸어가게 해 주시는구나!’하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2. 시련의 계절
봄은 지나가면 여름이 다가오는 것처럼 축복의 계절이 지나면 시련의 계절도 꼭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계절과 같습니다. 항상 봄이 있으면 좋지 않겠어요? 그러나 봄이 오면 봄이 가고 여름이 또 오는 것입니다. 축복의 계절이 있으면 그 축복의 계절 다음에는 시련의 계절이 옵니다. 대개 예수 처음 믿을 때 축복의 계절이 오지요. 처음 예수 믿을 때 얼마나 마음이 뜨거워지고 좋고, 기쁘고, 예수 믿는 것이 기쁘기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보고 “저 여자는 발뒤꿈치에 말발굽을 달았느냐? 아침 새벽부터 뛰어 다니면서 교회만 간다.”고 그렇게 비난하는 것을 내가 보았습니다만 그럴 정도로 좋습니다. 그러나 그 계절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가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던 것이 다 사라지고 사방이 어둑 캄캄해지고 눈앞에 캄캄하고 불안과 공포가 나를 휩싸는 어려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집안에 우환 질고가 생겨나고 잘되던 사업에 부도가 나고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고 육체에 어려운 병도 다가오고 아~ 그렇게 좋던데 왜 이렇게 되느냐? 하나님이 천리 만리 밖에 있는 것 같고 하나님이 완전히 나를 버린 것 같습니다. 교회와도 나는 외톨이 같고 부르짖어도 응답을 안 해 주는 것 같고 나는 완전히 하나님이 잊어버린 것 같은 그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꼭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망의 음침한 계절은 주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아홉 자녀를 낳았으니까 내가 우리 누님 다음 둘째로 태어났는데 동생들 보면 어린애부터 끝까지 젖을 먹이고 난 다음 그 다음 젖 떼려고 할 때 옛날에는 젖에다가 금계랍을 칠했어요. 굉장히 쓰거든요. 그러니까 어머니 젖을 물었다가는 막 화를 내서 울고 어머니 젖을 때리고 그냥 어머니를 쥐어박고 웁니다. 그래도 애에게 거기 젖꽂지에다 금계랍을 발라서 쓰게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는 너무 써서 빨다가 못 빨고 빨다가 못 빨다가 낙심하고는 그 다음에는 젖을 빨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젖을 빨지 밥을 안 먹으려고 하거든요. 우리 신앙생활도 축복의 계절을 체험한 사람은 전부 축복 속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찬송 부르고 춤만 추기를 원하지 고난의 길을 걸어가서 믿음으로 서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음을 가르치기 위해서 축복의 계절이 지나가고 고난의 계절이 다가오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시련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저히 하나님이 이제는 나를 버리고 그렇게 나를 사랑하던 사람이 사라지고 은혜도 다 가둬가 버리고 나는 완전히 버림받은 그런 심정을 느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43장 2절은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은 그렇게 해주는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는 성인이 되면 반드시 밤에 산에 올라가서 나무에다가 밧줄로 묶어 놓고 난 다음 혼자 밤을 지내야 되는 것입니다. 성인식을 하고 난 다음에 20세가 되면 그 아들을 아버지가 끌고 산에 가서 나무에 묶어 놓습니다. 점점 어두워지고 캄캄해지는데 짐승의 우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있지 아니하여 사나운 짐승이 곁에 와서 빙글빙글 돕니다. 그런데 짐승이 곁에 가까이 오기만 하면은 휙 하고 어디서 화살이 날아와서 짐승을 쏘아서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무서워서 부들부들 떠는데 짐승이 곁에만 오면 어디서 화살이 날아와요. 그래서 아침에 보니까 바로 앞 나무 위에 아버지가 올라 앉아 가지고서 아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짐승만 오면 화살로 쏘아 버리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바로 앞 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자기 혼자 나무에 묶여 있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보호하면서 곁에 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도 해를 받지 않도록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는 안 들리고 손에는 만질 수가 없어도 하나님은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를 받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면서 고통을 당해도 그 고통이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오고 절망을 가져오고 파괴를 가져오지 못하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숨어서 계실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제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오직 주님이 같이 계심을 믿음으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꿈으로도 환상으로도 계시가 오지 않고 은혜도 느낄 수 없을지라도 주님은 이제는 믿음으로 살아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눈으로 보는 것으로 믿지 말고 귀로 듣는 것으로 믿지 말고 손으로 만지고 느끼는 것으로 믿지 말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일지라도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주님이 같이 계신 것을 믿음으로 살아라. 그 믿음을 훈련하는 시절이 바로 고난의 시절인 것입니다. 캄캄한 밤을 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도 하나님은 주위에 숨어 계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살과 피를 가지고서 값주고 산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쉽게 내버리지 않습니다. 저는 50년의 목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더구나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지을 때 그때 오일쇼크가 와서 성도들이 생활이 어려워지고 직장을 잃고 헌금이 나오지 않고 건축업자들은 저를 고소하고 철근은 오랫동안 비를 맞게 해서 녹이 슬어 녹물이 떨어지고 얼마 있지 아니하면 전부다 거둬내야 된다고 하니 절망에 젖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대답도 없습니다. 꿈에도 나타나지 않고 환상도 주지 않고 음성도 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기도도 안 나오고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래서 교회 가운데 저기 엎드려 가지고 “하나님, 이 철골이 내 위에 떨어져서 합법적으로 죽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자살하면 지옥가지만 합법적으로 죽으면 천당은 갈 터이니까 “주님 내가 죽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고통치며 몸부림 친 것이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영원히 버린 줄 알았습니다. 영원히 나는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없는 줄 알았습니다만 지금 지나보니 옛날이 아주 우습고 재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저의 믿음을 자라게 만든 것입니다.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를 믿어라. 돌아보니 하나님이 그 환난 가운데서 다 건져 내시고 이렇게 훌륭한 교회를 짓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바로 이런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게 하는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고 귀에 안 들리고 만질 것 없고 느낄 수 없어도 하나님은 안 버린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하나님은 나를 안 버린다. 마귀가 아무리 나를 첩첩이 둘러싸도 하나님은 나와 같이 계신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보호하여 주시고 해를 받지 않게 해주신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보호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지팡이는 우리를 인도하는 지팡이입니다. 캄캄하고 아무것도 안보이고 내가 눈을 감고 걸어가도 내가 걸어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르게 지팡이로 인도하고 막대기는 짐승이 오면 내리치는 무기인 것입니다. 원수가 와서 나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면 주님의 권능의 막대기가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나님이 날 버린 것 같고 나는 버림 받은 것 같아도 하나님은 같이 계셔서 지팡이로 나를 인도하고 막대기로 원수를 쳐서 나를 멸하지 못하게 하고 그를 통해서 우리가 믿음을 연단 받고 튼튼한 믿음으로 서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젖만 먹지 말고 밥을 먹고 남의 도움만 받지 말고 스스로 일어나서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믿음의 용사가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잠언서 3장 5절로 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환난이 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다가온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이겨 놓고 너희와 같이 있으므로 너희는 마음에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내 안에서 평안을 가지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꼭 환난의 시절이 필요한 것은 이 환난의 시절을 통해서 우리가 굳센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성도들을 보면 우리 성도들이 환난을 당하지 않고 편안하게 자는 사람은 조그만 어려움이 당해도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조그마한 짐도 짊어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억센 시험과 환난을 당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은 무거운 짐도 짊어지고 나가고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넉넉히 이기고 나가며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란 성도가 되어야 되고 힘이 있는 성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운동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운동을 하는 것은 근육을 살려 놓기 위한 것입니다. 근육이 튼튼해야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운동을 안 하면 근육이 말랑말랑 해져서 힘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신앙의 근육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련의 계절을 주어서 시련을 통하여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하고 부르짖기도 하고 몸부림도 치고 울고 가슴을 치고 몸부림치는 그런 삶을 통해서 신앙의 근육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우리 신앙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이 어려운 세계를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능력 있는 신앙이 있어서 기도를 통해서 흑암을 물리치고 사탄을 이기고 고난과 괴로움을 승리로 이끄는 그런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날 큰 시련을 당한 성도가 호프먼 목사를 찾아와서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그와 같이 울부짖었습니다. 호프먼 목사가 기도해 주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으니 이 어려운 짐을 혼자 지지 말고 예수님께 맡기고 의지하면 주님께서 돌보아 주신다고 위로를 하고 난 다음 기도를 해주니까 이 성도가 말하기를 “그래요. 이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질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성도가 나간 후 갑자기 목사님에게 찬송시가 떠올라서 그 시를 지은 것이 찬송가 363장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우리 다함께 한번 1절만 불러 보십시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시련은 반드시 옵니다.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 신앙 스케쥴에 하나님이 그것을 넣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축복의 계절만 오는 것이 아니라 시련의 계절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은 아무리 시련이 어둡고 캄캄해도 주님께서 숨어서 나와 같이 계시며 내가 해를 받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나와 같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당해서 이제는 벼랑에서 떨어진다. 떨어진다. 이제는 떨어지면 죽는다고 할 때는 반드시 주님이 와서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홀로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근심과 고통 가운데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께 의지하고 나가면 주님이 반드시 우리를 붙들어 준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3. 원수와 싸우는 계절
셋째는 이제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처럼 시련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아휴~ 이제 한숨 돌리고 살겠다’싶은데 상당히 믿음이 강해졌지 않습니까? 그러면 원수와 싸우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제는 갑자기 내 주위에 원수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내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는데 대적하는 원수의 공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경쟁자의 시기와 질투와 비난, 사방으로 우겨 싸이고 답답한 일이 생기고 핍박을 당하고, 넘어뜨리고 온갖 괴로움이 다 다가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미 네가 믿음이 있으니까 이제 원수하고 한번 씨름을 해봐라. 실습을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계절에 반드시 원수와 싸우는 계절이 옵니다. 안 그렇더니 갑자기 남편이 사나워지고 혹은 아내가 바가지를 긁기 시작하고 자식이 부모를 대적하고 형제간에 원수가 되고 그렇게 친한 친구가 배반을 하고 사업적인 동업자가 원수가 되고 사면초가성입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 나하고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나를 그렇게 버릴 수가 있느냐. 마음이 답답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얼토 당토 않은 말로써 비난하고 공격하고 고발을 하고 고소를 당하고 얻어맞고 발길로 차이고 피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나를 이렇게 버리십니까? 그렇게 하지만 그것이 바로 원수와 싸우는 계절인데 왜 원수와 싸우게 하느냐. 하나님은 원수가 오면 축복의 밥상도 차려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원수와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축복해 주시고 승리로써 축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에게도 큰 축복을 받기 전에 반드시 원수의 진을 꿰뚫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의 진을 꿰뚫지 않고는 축복의 밥상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오늘날 있기 전까지는 얼마나 많은 원수와 싸웠는지 모릅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믿지 않는 세계와도 싸우고 같은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타 교단이 우리를 이단이라고 해서 우리를 몰아치고 싸우고 우리 본 교단에서 우리를 쫓아내고 고통을 당하고 우리 교회 내에서 성도들이 서로 분열해서 싸우고 온갖 투쟁과 고통을 다 당한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가 오면 밥상도 차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는 반드시 우리를 시험에서 다가오는 그 계절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갑자기 예수 믿고 평안하고 좋더니 왜 가정이 분란이 다가오느냐? 우리 남편이 안 그런 남편이 왜 지금 싸우고 달려들며 아내가 저렇게 온순하고 좋던 아내가 왜 투쟁을 부리고 대적을 하며 자식들이 왜 저렇게 나를 거역하는고? 내 친구들이 왜 나를 이제는 멀리하고 비난하는고. 내 동업자가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가. 왜 만사가 나를 우겨 싸고 답답한 일이 생기고 핍박을 하고 내가 넘어지고 자빠지는 것이 이 일이 왠일인가. 그럴 때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너희 친구와 너를 돕는 자는 주님밖에 없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는 나를 안 버려. 세상이 너를 버릴 때 일수록 너는 네 주님 품에 가까이 오라. 그것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 친척과 자기 이웃과 친구들을 의지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세상에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없고 하나님밖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 물론 남편도 있고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고 일가도 있고 친척도 있고 친구도 있지요. 옛날에는 그들을 전적으로 믿었다가 마음에 손상을 입고 고통을 당했지만 이 체험을 하고 나면은 그때 마음에 손상과 고통을 안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계신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므로 나는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께만 의지하고 산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 다 너를 버려도 주님은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님만 꽉 의지하고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마음에 인내를 가지고 나가라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원수와 싸우는 계절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7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환난이 다가와 보고 고난이 다가와 보고 기근이 다가와 보고 적신이 다가와 보고 칼이 다가와 보고 원수가 다가와 봐야 주님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진실한 하나님이고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체험해 봐야 영생을 체험할 수 있는 것처럼 고난을 체험해 봐야 평안을 주는 주님을 체험하는 것처럼 배가 고파 봐야 먹을 것을 주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처럼 원수가 와야 나의 영원한 친구는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주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 중심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것을 사랑하고 또 주님을 사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만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험하기 위해서 우리들을 원수의 진에 던져 놓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우리를 마음대로 취급하고 발길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짓밟아도 우리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셔서 그를 통해서 이기고 승리하고 오히려 원수들 보는 앞에서 밥상 차려주고 용용 죽겠지.. 용용 죽겠지.. 이렇게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밥상 차려진다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따라 말씀하세요. 원수가 오면 밥상도 온다. 반드시 주님이 좋은 일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좋은 일이 그 뒤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심하여 뒤로 넘어지면 안 되고 물러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수가 한길로 오면 하나님은 일곱 길로 물리쳐 주시는 것입니다. 성공과 축복을 주님이 원수 앞에서 내리시므로 원수 앞에 길을 당당히 세워주는 것입니다. 원수가 짓밟는데 하나님도 우리를 짓밟으면 우리가 갈 데가 없지 않습니까? 원수가 짓밟으면 하나님이 내가 너하고 같이 있노라 하고 밥상을 차려 주면 원수가 보고 속이 터져 죽을 지경입니다. 저것 죽어야 되는데 왜 저렇게 잘 사느냐? 북한이 6.25를 일으켜서 우리를 쳐서 우리를 멸하고 점령하려고 했는데 6.25가 나고 난 다음 60년째가 이제 명년이 되는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밥상을 차려 주셔서 세계 경제대국이 되게 만들어 주시고 북한은 우리를 보고 동동 발걸음을 치지 않습니까? 왜냐, 주님께서는 원수 앞에 밥상을 차려 주어서 내가 이 백성을 사랑하고 이 백성과 같이 있다는 것을 증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원수 때문에 속상하지 마십시오. 원수가 오면 여러분에게 좋은 일도 생겨나고 원수가 여러분을 도적질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더 채워 주시고 원수가 여러분을 쥐어박으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품에 더 안아 주시고 더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2절로 13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야훼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야훼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이런 일이 그냥 오는 것은 아닙니다. 원수 앞에서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원수가 보아야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원수도 없는데 나 혼자 있는데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복 받으려면 원수의 앞에서 고통을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가 여러분을 치거든 하나님이 복 주려고 준비하시는 줄 알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 신앙이 한 단계 높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고 원수가 오면 밥상도 차려주고 그 다음에는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서 여러분의 인생의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잔이 넘친다는 것 영혼이 잘되고 범사도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잔이 넘치는 삶은 반드시 축복의 계절도 지나가고 시련의 계절도 지나가고 원수의 공격을 받은 계절도 지나가면 그 원수의 계절이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밥상을 차려 주시고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셔서 여러분의 생활에 생명이 넘치고 축복이 넘치고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28편 8절로 9절에 “야훼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시옵소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만족과 기쁨과 행복과 감사가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이 결국에는 부족함이 없게 만든다. 인생의 가을철인 것입니다.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면 그 다음에는 가을은 추수기 아닙니까? 열매가 풍성하고 먹을 것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도 축복의 계절이 지나가고 시련의 계절이 오고 시련의 계절이 지나가고 싸움이 계절이 오고 싸움의 계절이 지나가면 이제는 가을의 계절이 오는 것입니다. 삶의 만족과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계절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종국에 가서는 전부 평안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행복과 만족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로 10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제는 도적은 완전히 지나가고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4. 뒤돌아보고 감격하고 천국으로 감
그리고 넷째로, 마지막에 시편 23편 6절에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뒤돌아보고 감격하고 천국으로 가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이가 먹어서 이제 인생길에 다 은퇴를 하고 앉아서 뒤를 돌아봅니다. 초년시절부터 중년, 장년, 노년이 될 때까지 시대를 지나오면서 그때는 괴로웠는데 이제 돌아보니까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이 되었구나. 축복의 계절, 시험과 환난의 계절, 원수의 공격을 받던 계절, 열매를 맺던 계절 모든 것이 다 합쳐서 내게 유익이 되었구나. 큰 축복이 되었구나.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17살에 형들에게 팔려서 종이 되어 끌려갈 때는 얼마나 큰 절망이었습니까? 그것은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의 극치였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더 어려운 고통이 들어갔어요.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어서 1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는데 그 때 종살이는 짐승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을 축복이라고 부를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겨우 종살이에서 쉬게 되고 가정총무가 되었을 때 보디발 아내의 참소를 받아서 그만 시위대뜰 감방에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에 감방은 완전히 생지옥입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3년을 감옥살이 합니다. 그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얼마나 큰 저주입니까? 그러나 결과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국무총리가 되어서 온 가족을 이스라엘에 있는 가족을 다 불러서 애굽 고센땅에 살게 하고 온 애굽 국민들을 다 먹고 살게 만들어 주고 벼슬이 높아지고 모든 사람이 그를 경배할 때 요셉은 뒤를 돌아보니까 형들이 종으로 판 것이 그때는 고난인데 나중에는 축복이었습니다. 안 팔았으면 애굽에 올 턱이 없습니다. 10년 동안 종살이 한 것이 큰 축복이었습니다. 종살이 안했으면 보디발의 집에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거짓말로 강간하려고 했다고 해서 고소해서 감옥에 들어온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가장 큰 절망이었지만 돌이켜 보니 그것이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서 남은 여생을 큰 영광중에 살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노년이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 뒤를 돌아 보십시오. 젊었을 때 당한 그 심한 고통과 괴로움이 지나고 보니 전부 축복으로 변한 것입니다. 전부 기적적으로 은혜가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뭣도 모르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했으나 이제 돌아보니 그것이 다 축복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평생에 주님은 선하시게 인도하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의 슬픔의 날들도 지나고 보면 늘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이 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5절에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른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당하는 고난은 나중에 장차 지나고 보면 정말로, 정말로 큰 축복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천만번 죽어야 할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구원해 주신 주님을 되돌아 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 은혜 고마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옆길로 나가고 죄많이 짓고 반역하고 마귀를 따라가고 하나님을 괴롭힌 나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나이 늙도록 지켜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격과 감사가 되돌아 볼 때 마음에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2절로 13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한 것처럼 이렇게 자상스럽고 긍휼히 여겨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가 보니 우리 행위로써 구원 받은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과에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의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게 되면 이제는 살아온 날은 다 과거가 되고 앞으로 죽을 날이 가까우므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70이 넘으면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할 것입니다. 요사이는 오래 살아서 80을 살고 90을 산다 해도 70이 되면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날을 생각하면서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죽기를 원해서 기도하게도 되고 죽음 저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천국을 생각하고 사모하고 기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절망과 슬픔이 앞에 다가오기 때문에 죽음의 날을 생각하면 몸서리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괴롭습니다. 어떻게 죽을까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하여 죽고 장사지냈다가 부활하시므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예수님 안에 영생과 복락과 천국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는 안 들리고 잡히는 것 없어도 이미 우리 속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우리의 상황의 변화에 불과한 것입니다. 육의 옷을 벗어 버리고 신령한 몸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그 변화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6절로 17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결론>
한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보면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의 한없는 선하심과 인자하신 손길을 마음에 깨닫고 우리는 감격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축복의 계절이 오거든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즐기십시오. 그 축복의 계절이 영원히 계속하지는 않습니다. 축복의 계절이 오면 젖 뗄 때가 오는 것입니다. 어머니 품에 앉아서 젖을 물고 어머니의 응석을 받던 계절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반드시 밥을 먹을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의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과 환난이 다가와서 몸부림치며 고통 하는 시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의 계절이 늘 계속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나가고 난 다음 이제 좀 살만하면 원수가 다가오는 계절이 오는 것입니다. 원수가 와서 여러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 계절이 있을 동안에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밥상 차려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주시고 여러분에게 잔이 넘치는 삶을 체험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절도 영원히 계속하지 않습니다. 그 계절도 지나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될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과거를 살펴보고 회개할 것 회개하고 감사할 것 감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앞에 내가 거할 영원한 집으로 갈 준비를 할 계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계절을 지나서 우리 인생이, 일생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라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원수가 와서 여러분을 대적할지라도 주님은 밥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 잔이 넘치게 해주시고 그 다음에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여러분 평생을 따랐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고 하나님의 집에 갈 준비를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절이 항상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이상한 일 당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 계신 것이구나 이를 통해서 나를 완성시켜서 영원한 영광의 집에 거하게 만들어 주시는구나. 이것을 알고 믿음으로 감사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체험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의 축복의 계절, 시련의 계절, 원수에게 공격을 당하는 계절, 하나님의 열매를 만끽하는 계절, 죽음의 계절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을 알고 아버지 하나님 낙심하지 말고 어떤 계절이 다가와도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의 영혼을 완성시킨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주와 함께 인생의 모든 계절을 다 지나고 난 다음에 이런 변화와 계절이 없는 천국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우리 성도들이 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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