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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8:1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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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9. 2. 1. 성찬주일 4부 설교 |
<서론>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하여”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김주리 씨의 소설 「아직도 그녀는 행복하다」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거, 가끔 참 신기해요. 나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오로지 그 사람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거..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죽을 때까지 사랑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인생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그 때문에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결혼하여 함께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주님을 뜨겁게 사랑할수록 주님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켜야 될 규범이 있습니다.
<본론>
1. 주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한다.
첫째로, 우리의 삶속에 주님을 제일주의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제2, 제3, 제4, 제5 주의로 살게 되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내 마음 중심을 점령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나의 모든 생각을 주님이 점령하고 마음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로 20절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항상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께 드리고 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말했었습니다. 괴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영국 격언에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면 그 앞날에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학생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대주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에 고맙다는 편지 한 장도 없고 소식 한 장도 없습니다. 그 대학생만 생각하면 내 마음이 울컥 화가 납니다. 괜히 도와주었다. 그런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장학생은 장학금을 받고 난 다음에 얼마나 눈물 어린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님께 감사하고, 또 등록금을 대준 그 당사자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더 주고 싶어요.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 주고 싶고, 전등불 보고 감사하면 달을 주고 싶고, 달을 보고 감사한 사람 태양을 주고 싶고, 태양을 보고 감사한 사람은 천국을 주고 싶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제일주의로 살면 범사에 감사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좋은 것은 좋은 것으로 좋고 감사하고, 나쁜 것은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니 좋고,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실 것이니 좋기 때문에 항상 주님 감사하다는 말씀이 입에서 떠나면 안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1절에서 22절에 “감사하지 않으면 우리 생각이 허망해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어리석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50편에 감사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마음은 지옥과 같고 감사가 없는 가정은 메마른 광야와 같습니다. 우리는 늘 주님께 감사함으로 주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도와 대화를 쉬지 않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화가 멀어지면 사랑도 식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뜨겁게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서로 상대에서 대화를 멀리하면 멀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두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실개천을 만났습니다.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실개천이 점점 커져서 큰 도랑이 되니까 이제 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서로 쳐다보고 고함을 치고 이야기합니다. 그 다음 도랑이 넓어서 강이 되어 버리니까 그 다음 손을 흔들어서 서로 대화를 하다가 강이 넓어서 바다가 되니까 서로서로 딴 세상에 들어가서 자기 스스로의 인생을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랑하면 가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대화를 늘 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화를 하지 아니하면 어떤 뜨거운 사랑도 식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 서로 사랑으로 뭉쳐 살려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들이 항상 대화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식탁에 모여서 대화를 하든지 특별한 시간을 내어서 서로 마주보고 대화를 하든지 대화를 하면 가슴을 열어 놓게 되고 마음이 통하게 되고 사랑이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너무 바쁨으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들, 딸들은 자기 스스로 다 흩어져 살기 때문에 냉랭하고 사랑이 없고 무정하고 인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화를 쉬지 않고 해야 되는데 하나님께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늘 기도하라. 꼭 내가 필요해서 부탁할 것이 있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것 없으면 감사기도를 하라.
저는 늘 말씀 드리지만, 불광동에서 개척할 때 장로교 장로님 한분이 새벽기도는 우리 천막교회로 나왔는데 그 장로님은 앉아서 몇 시간 기도를 하고 떠날 때까지 하는 말이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나중에는 제가 그 장로님 싫었습니다. 무슨 기도를 그저, 그저 감사하냐고 그래서 제가 “장로님, 기도를 좀 해야지 그저, 그저 감사한게 뭡니까?”하니까 “목사님 모든 것이 그저, 그저 감사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피난생활 나와서 내 자식들 잃지 않고 고스란히 나왔지요.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해서 교육 다 시키고 먹고 살았지요.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이렇게 늙었지요. 이 교회 잘 나오고 난 장로 되고 우리 집사람은 권사 되고 자식들 다 주님 잘 믿지요. 그 이상 더 좋은 게 뭐가 있습니까? 감사할 것밖에 없어요.” 그것을 몇 시간씩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나중에 신학교 들어가서 목사가 되었다가 하나님 사업 잘하다가 세상 떠나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도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기도하니까 힘이 드니까 안하려고 해 그렇지 기도하려면 끝이 없지요. 주님이 기쁘시게 할 것을 찾아서 행해야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우리의 삶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행하면 주님과 가까이 있을 수가 있고 주님과 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8절로 19절에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화평의 일을 하고 덕을 세우는 일을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우리가 땅에 있어서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고 있는 것을 사랑과 은혜를 나누어 주고 나누어 받는 이러한 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기주의적 세계 속에서 우리는 전부다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내 것이라고 움켜쥐고 나누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개인의 불행, 가정의 불행, 세계의 불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호인 록펠러는 33세가 되었을 때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는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를 갖게 되었고, 53세에는 억만 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알로피셔라는 병에 걸려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온 몸이 말라가는 병인데 의사들은 말하기를 아무리 오래 살아도 1년 이상 못산다는 진단이 내려왔습니다. 그 진단을 받고 그 날 밤 록펠러는 ‘사업이 잘되어 하루에 100만 불씩 벌지만 그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허무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밤에 괴로워하다가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돈은 아무것도 아니야! 하나님이 다 된다. 돈은 아무것도 아니야! 하나님이 모든 것이야!” 외치고 난 다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와 함께 새벽을 맞이한 록펠러의 인생은 달라졌습니다. 습관적으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하던 그가 이제는 진실로 교회 와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찬송을 하며 죽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리버사이드 교회를 건축하여 전 재산을 드리고 큰 교회를 지었습니다. 지금도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는 제일 아름답고 큰 교회인 것입니다. 그 다음 남은 모든 돈을 다 들여서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가지고서 그 재단에서 가난하고 병들었으나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의료사업에 전적으로 기부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마자 그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게 되어서 의사들이 55세를 넘기기 어렵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록펠러는 98세까지 살면서 사회 많은 활동을 하며 건강하게 살았었습니다. 우리가 남을 사랑하고 서로 나누어 주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자기도 잘살고 남도 잘살고 하나님도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제일주의로 산다는 것은 이처럼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찾아 행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단계적인 것을 찾기 애를 쓰고 주된 것을 찾지 않습니다. 주된 것을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과 함께 살면 주님이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능력으로 모든 것을 알아서 우리에게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2. 거룩한 삶이 있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자면 성품이 같아야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가정이 이혼한 이유는 결혼을 하고 보니 너무나 성격이 다르다. 성격차이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 물과 기름이 안 섞이듯이 성격차이가 나서 섞이지 않는다. 그러니 할 수 없이 헤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시골 총각들이 호기심 반, 연애 반으로 월남에 가서 혹은 태국에 가서 말레이시아에 가서 결혼을 하고 옵니다. 그리고 와서 조금 지나고 난 다음은 호기심도 사라지고 신기한 마음도 없어지고 나니까, 그 다음 실제 생활에 부딪히는데 말이 안통하지요. 문화가 다르지요. 성격이 다르지요. 아주 생지옥인 것입니다. 가라하면 도로가고 달라고 하면 가져가고 말이 안 통합니다. 세상에 말이 안 통하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성격이 다르니까. 그래서 치고 박고 싸우다가 이혼을 하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성격이 같아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성격과 취미가 전혀 다르면 함께 살기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오랫동안 사귀어 보고 성격을 알고 취미를 알고 나하고 조화가 되는지 안 되는지 보아서 최소한도 50% 이상이 되면 서로 함께 살 수 있지만 50% 이하가 되면 고통을 당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00% 성격과 취미가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50% 이상만 되면 충분히 좋습니다. 그러나 그 이하가 되면 상당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절로 16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그 두드러진 성격이 거룩한 성격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정욕, 타락한 문화, 썩어져 가는 구습을 가지고 사니까 하나님 하고 맞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데 우리 인간은 더럽고 추하고 불결하고 세상 습관과 구습을 따라 사니까 하나님이 같이 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세가 양을 치다가 가시넝쿨 속에 불이 활활 타오르므로 그것을 구경하러 가니까 가시넝쿨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어라!”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인간의 신발을 벗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발은 행위를 말하는데 행위를 회개하고 정결하게 해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구습을 벗고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변화되어서 새사람을 입어야 하나님과 함께 함께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 그대로 술 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세속적인 사람으로 하나님과 같이 살려고 해도 하나님이 떠나고 같이 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가려면 주님과 성격이 같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늘 회개하고 늘 성령충만을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매일 같이 세수하지 않아요. 옷도 정기적으로 빨아 입지 않아요. 방도 매일같이 청소하지 않아요. 저는 어릴 때 방청소는 내 담당인데 우리 형제간이 아홉이기 때문에 언제나 방이 어지럽기 짝이 없습니다. 애들이 다 일어나서 그냥 옷도 이 구석 저 구석 던져 놓고 요강에 오줌도 넘치도록 해가지고서 방바닥에 오줌이 흥건하고 뭐 쓰레기가 매일 많습니다. 항상 아버님께서 저에게 소제를 하라고 해서 하루는 소제를 하다가 하도 화가 나서 빗자루를 땅에 확 던지면서 “이놈의 소제 밤낮해도 무슨 소용이냐?” 해놔도 또 더러워지고 또 더러워진다. 아버님이 “용기야 이리 오너라!”가니까 “너 여기 앉아라.” “뭐라고 그랬느냐?” “아무리 소제해도 자꾸 더러워지기 때문에 소제하지 말고 그대로 살자고 했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몰라서 그렇지 인생은 밤낮 소제하는 것이다. 밤낮 더러워지면 밤낮 소제하고 밤낮 더러워지기 때문에 때를 또 씻고 목욕하고 밤낮 더러워지므로 옷을 빨래하고 밤낮 더러워지므로 얼굴을 씻고 밤낮 양치질을 하는 것은 늘 더러워지기 때문에 씻어야 되느니라.”우리가 한번 의롭다고 영원히 의로워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의롭다가 내일 더러워지고 내일 회개하면 모레 의로워지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물로 씻어 깨끗함을 얻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정결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 받는 것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을 때 성령께서 와 계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성령이 안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말하기를 “내 성격이 태어날 때부터 고약한데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카네기는 성격에 대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밝은 성격은 어떤 재산보다도 귀중한 것인데 성격이란 가꾸고 기를 수 있는 것이다. 사람 마음도 몸처럼 그늘에서 햇빛이 비치는 자리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늘에 있으면서 춥다고 하지 말고 햇빛이 비취는 양지볕으로 가야 되는 것처럼 마음도 음울한 성격을 가졌으면 밝은 성격으로 옮겨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나쁜 성격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다고 한탄하기보다는 지금 자신의 마음을 좀 더 밝은 곳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죄와 불의로 더러워진 우리의 성품을 주님의 거룩하신 성품으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회개하고 노력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3. 말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열심히 공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야 주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D.L.무디 는 제일 처음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너무 좋아서 천국에 올라간 것 같았습니다. 즐거워 기뻐서 일터에 가서도 늘 노래를 부르고 했는데 아! 얼마있지 아니하며 중생한 기쁨이 사라지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사라지고 세상을 따라 나갔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일주일 시간을 내어서 산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산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충만히 받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이제는 모든 것이 해결 되었다고 하고 내려왔는데, 아! 얼마 있다가 또 옛날로 돌아갔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하나님 나는 화인 맞은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놈이 무슨 천국을 갑니까? 중생했다가 세상으로 나가고, 은혜 받았다가 다 쏟아 버리고, 나는 버림받은 사람입니다.”탄식을 하면서 성경을 읽는데 성경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뜨거워져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렇다. 내가 중생했다고 기뻐하고 기도해서 은혜 받았다고 기뻐하지만 나는 성경을 안 읽어서 은혜가 없고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정결하지 못하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생활은 바뀌어지기 시작해서 마귀가 떠나가고 죄와 세상이 떠나가고, 그 마음속이 점점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성결하고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다는 간증을 한 것입니다.
신명기 6장 6절로 7절에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일어나도 누워도 길을 가도 앉아도 하나님 말씀을 늘 묵상하고 강론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우리가 굉장한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말씀을 통해야 알지요. 많은 사람들이 주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꿈에 나타나 주시옵소서. 환상에 나타나 주시옵소서. 음성을 듣게 해 주시옵소서.”하는데 여러분 그것은 특별한 사항이고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이 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루 밥은 세 번 먹는데 왜 성경은 하루에 한 페이지도 안 읽습니까? 밥은 세 번 먹어야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말씀을 하루에 몇 페이지고 읽어야 말씀을 통해서 영혼의 건강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로 17절에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는 것은 말씀을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충만하면 말씀이 살아 움직여서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게는 역사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송명희 시인의 간증인 것입니다. 그는 은혜로운 시와 찬양을 써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잘 알다시피 그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온 전신이 마비되어 꿈쩍하지 못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굉장한 신앙인으로써 송명희를 어릴 때부터 휠체어에 태워서 기도하는데는 다 데리고 다니면서 안수 받고 부흥회라는 부흥회는 다 돌아다니면서 안수 받았는데 조금도 낫지 않고 오히려 송명희씨는 그것을 마음속에 수치로 느끼고 아픔을 느끼게 되어서 점점 더 부정적인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탄식을 했습니다. “왜 다른 사람은 건강하게 태어나서 잘 사는데 나는 소아마비로 태어나서 이렇게 무참하게 수치를 당하는가.” 탄식을 하고 고통을 당하다가 그래도 의지할 곳 없으니 절망의 끝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와 만나 주세요! 제 모든 걸 다 드리겠습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자기 눈앞에 빛이 환하게 비취더니 큰 두루마리가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그 두루마리의 글을 자세히 읽어 보니까 거기에 뭐라고 하냐면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죽으리라”이런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알아야 되겠다고 작정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작정기도를 하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성경을 100번을 읽었습니다. 아니 100번이 아니라 10번을 읽었습니다. 내가 너무 칭찬을 많이 했네요. 10번을 읽고 나니까 눈이 확 뜨이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준 사명을 알려 주세요. 하나님 말씀을 10번 읽으면서 마음에 영감이 떠올라 와서 시를 적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시를 적어서 그 시를 책으로 발표하니까 일약에 그 시가 찬송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이 되고 유명해졌습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곧장 방송국과 잡지사가 인터뷰를 요청했고 각 교회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해서 1,500회 이상의 국내외 집회에서 간증을 했었습니다. 송명희 씨는 오늘날도 늘 밝게 웃으며 자신의 모든 생활은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고 말씀해 주시어 늘 그분의 모습 안에서 기쁘게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 전신마비는 낫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그만큼 유명해지고 그만큼 하나님 사역을 많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소아마비가 되므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시를 적게 되고 모든 교회에 환영을 받고 들어가서 강연을 하게 되고 어떤 유명한 부흥사보다도 더 유명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건강해서만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전신을 못 쓰게 만들어서라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 그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말씀이 이 사랑하는 자매님을 변화시킨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따라서 나아가야 우리 생활이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면 여러분 마음이 천국 문화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전체가 분위기 속에 사는 것입니다. 세상 문화가 꽉 들어찬 곳에는 세상 분위기가 꽉 들어차서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오고 기도회에 모이고 전도회에 가면 하늘나라 문화가 충만합니다. 분위기가 전부 하나님의 분위기인 것입니다. 신앙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돌아보세요. 여러분 친구 중에 세상이 충만한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와 있는 동안에 늘 듣는 이야기가 집값 이야기, 물건 값 이야기, 술집에 가서 노는 이야기, 노래방에 가서 노래하는 이야기, 춤추는 이야기, 나오는 것마다 전부 세상 말을 해서 세상 분위기가 꽉 들어차게 해서 여러분을 세상에 물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잘 믿고 주님 잘 섬기는 친구하고 만나 이야기 하면 하늘나라 이야기, 말씀 이야기, 성령 충만 이야기, 하나님의 기적 이야기를 하므로 마음이 번쩍 눈에 뜨이고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분위기 속에 살기 위해서 제일 좋은 것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충만하고 말씀을 통해서 나가면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분위기 속에 하나님의 문화 속에 들어가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마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4. 꿈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넷째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꿈과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의 하나님이요, 믿음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영어로 되어 있는데 한국어는 잠언서 29장 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번역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묵시라는 것이 다른 것으로는 꿈이요, 환상인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환상이 없으면 묵시가 없으면 사람이 방자히 행한다. 내 마음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일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소원 즉 꿈, 환상을 마음속에 집어넣어 주어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 소원, 바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미래를 가지기 위해서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음속에 꿈을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데 무엇을 성취합니까? 좋은 집에 살겠다는 꿈이 있어야 좋은 집을 구하지 좋은 집에 살겠다는 꿈도 없는데 언제 좋은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새 옷을 사 입겠다는 꿈이 있어야 새 옷을 사게 되지 꿈이 없으면 좋은 새 옷을 사 입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청년, 처녀는 좋은 신랑감, 좋은 신붓감을 맞이하겠다는 꿈이 있어야 사람들을 택할 수 있지 꿈이 없으면 택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꿈이 없으면 열정도 없습니다. 꿈이 있어야 마음에 뜨거운 열정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50년간을 교회 성장을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정신없이 뛰었는데 내가 지금 돌아보면 왜 그렇게 정신없이 뛰었는가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꿈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 최대의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에 열정이 생긴 것입니다. 뜨거운 열정이 생겨서 이 일을 이루겠다고 밤낮 주야로 뛸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그냥 늘 낮잠이나 자고 배가 부르면 배나 툭툭 두드리고 산천구경이나 하고 다니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모든 것을 거기에 집중하고 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이 없으면 믿음도 없습니다. 뭘 꿈이 있습니까? 꿈이 있어야 믿지 꿈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데 뭘 믿어요? 그러므로 확실한 꿈이 있으면 믿음도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믿음의 담대함 모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습니다 하고 나가는 것은 앞에 나갈 꿈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꿈이 없으면 그런 일을 못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꿈이 있어야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여러분은 집 담 넘어가는 호박나무잎이 생각나지요? 호박꽃이 피고 호박이 담에 줄줄 달리는 것을 볼 것입니다. 호박꽃이 피면 호박벌레가 와서 꿀을 따는 것입니다. 이 호박벌레는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절대 못 날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몸은 2.5센티인데 날개는 너무 가늘고 너무 작아서 과학적으로는 공중에 뜰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호박벌레는 하루에 4백리나 날라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날수 있느냐. 호박벌레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기가 못 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나는 것입니다. 자기가 과학적으로 연구해보니 몸무게에 비해서 날개는 도저히 자기를 띠우지 못한다고 알았으면 낙심하고 날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과학을 모르고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날개 있으니까 난다고 나니까 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꿈을 갖고 믿음을 갖고 나가면 할 수 없는 것이 없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범 잡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범이 무서운 줄 모르고 달라 들어서 범을 잡아요. 범이 무서운줄 알면 아예 범이 오면 오그라들어서 싸움도 못해요. 다윗이 골리앗을 대적해서 나간 것을 보십시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사울 하에서 골리앗이라면 두려워서 다 숨었습니다. 왜냐하면 골리앗은 너무나 키가 장대하고 힘이 센지라 대적할 수 없다고 미리 겁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조그만 초립동 소년이 “나는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양을 칠 때 곰이 오면 곰과 싸워서 곰을 물리치고 사자가 와서 짐승을 빼앗아 가면 사자와 싸워서 죽이기도 했는데 구 할례 없는 이방인이 무엇이 겁나냐?” 겁이 없기 때문에 골리앗을 향해서 나간 것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누구냐?” “여기 있다.” 여기 보니까 조그마한 소년입니다. 그래서 골리앗이 얕잡아 봤던 것입니다. “너같이 조그마한 소년이 나를 대적해 오냐? 내가 너를 죽여서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으로 만들겠다.” 그때 다윗은 뭐라고 했습니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아오려니와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왕의 왕 야훼의 이름으로 나온다. 오늘 내가 너를 죽여 공중의 새의 밥과 땅의 짐승의 밥과 나누겠다. 전쟁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야훼에게 있다.” 그러면서 물맷돌을 가지고 나갔는데 골리앗이 얕잡아 보았기 때문에 그 얼굴을 가지고 날뛰라고 얼굴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물맷돌이 콱 박혀서 죽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병사들처럼 골리앗과 못 싸운다고 미리 겁을 집어 먹었으면 과학적으로 계산해서 못한다고 생각했으면 절대로 골리앗을 못 죽였을 것입니다. 자기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고 나갔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해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나 하나님의 능으로 영으로 될 수 있다. 믿음으로써 도전하기 때문에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도 될 것이요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마음에 담대함이 굉장히 필요한 것입니다. 꿈과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같이해서 역사하지 꿈도 없고 믿음도 없고 항상 불안과 공포와 좌절에 벌벌 떠는 사람하고는 주님이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가문이 좋지 않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습니다.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가문에 의지하지 않고 과거의 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현재 여러분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로 태어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떡으로 살아도 우리는 말씀을 삽니다. 말씀이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된다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성공한다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늘날 호박벌레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날개를 보고 겁을 먹어서 아예 날려고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지 말고 못난 것을 인간적으로 보면 것 알지만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나의 조그마한 능력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고 담대하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제가 1964년 도에 세계 선교를 나갈 때 미국 사람이나 구라파 사람이 저를 만나고 여러 번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네 한국은 피선교국으로써 선교사들이 와서 선교를 전한 나라인데 거기에서 구라파에 와서 선교를 하려고 하냐? 너 건방지지 않느냐? 아직까지 한국은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가 안 되었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라!” 그런 말을 나보고 많이 했습니다. 그럴 때 내가 상당히 마음이 위축되고 “정말인가 보다. 나 같은 사람은 세계적으로 나가서 선교를 못할까보다.” 그러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놈아! 무슨 소리 하는 거냐? 그 사람들이 너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쓴다. 너는 후진국 한국의 종이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주의 종이다. 나와 같이 하므로 나를 바라보고 강하고 담대하라.” 그래서 언제나 배짱을 내놓고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못한다는 것에 예수 이름으로 뛰어 들어서 하고 난 다음 이제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지구를 백 바퀴나 돌고 도시의 집회를 4백 도시에서 집회를 하고 수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고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옛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요 새사람이기 때문에 말씀의 사람이요, 성령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이요, 꿈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하면 도저히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미래가 원한다면 지금 그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행동 하십시오. 꿈이 없으면 성취도 없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전진할 때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있는 그 사람은 정말로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가지며 참된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면 모든 일이 다 합동하여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들에게 종으로 팔릴 때도 주님이 같이 계셨고 보디발의 집 종으로 10년 있을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종들에서도 1등 종이 되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방에 들어갔을 때도 감옥에도 주님이 같이 하셔서 간수가 요셉만 믿고 열쇠를 맡겼을 정도로 우수해졌고, 나중에는 애굽의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고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애굽의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셨기 때문에.. 요셉이 잘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성공합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 가정은 축복받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있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하나님이 같이 있는 나라는 부흥 발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그래도 지금 1,200만 성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이 나라가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많음에도 불구하고 잘 되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삶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주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되고 말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말씀으로 충만해야 되고 꿈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여러분은 어느 곳에 가나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꿈을 가지고 그런 자화상을 가지고 승리로운 삶을 살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개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 살아갈 동안에 주님이 없으면 자기 제일주의로 살고 세상을 따라 살고 세상의 풍습을 따라 살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욕심을 따라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 새사람이 되었으므로 우리 삶속에 앉으나 서나 주님 제일주의로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따라가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는 이 세상과 죄악을 등지고 거룩한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볼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거룩하게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우리 속에 충만하여 말씀으로 살고 말씀으로 가르치고 교훈하며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마음속에 내일을 향한 꿈과 믿음이 불타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우리와 같이 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 나타난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하여”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김주리 씨의 소설 「아직도 그녀는 행복하다」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거, 가끔 참 신기해요. 나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오로지 그 사람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거..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죽을 때까지 사랑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인생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그 때문에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결혼하여 함께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주님을 뜨겁게 사랑할수록 주님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켜야 될 규범이 있습니다.
<본론>
1. 주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한다.
첫째로, 우리의 삶속에 주님을 제일주의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제2, 제3, 제4, 제5 주의로 살게 되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내 마음 중심을 점령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나의 모든 생각을 주님이 점령하고 마음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로 20절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항상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께 드리고 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말했었습니다. 괴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영국 격언에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면 그 앞날에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학생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대주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에 고맙다는 편지 한 장도 없고 소식 한 장도 없습니다. 그 대학생만 생각하면 내 마음이 울컥 화가 납니다. 괜히 도와주었다. 그런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장학생은 장학금을 받고 난 다음에 얼마나 눈물 어린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님께 감사하고, 또 등록금을 대준 그 당사자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더 주고 싶어요.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 주고 싶고, 전등불 보고 감사하면 달을 주고 싶고, 달을 보고 감사한 사람 태양을 주고 싶고, 태양을 보고 감사한 사람은 천국을 주고 싶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제일주의로 살면 범사에 감사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좋은 것은 좋은 것으로 좋고 감사하고, 나쁜 것은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니 좋고,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실 것이니 좋기 때문에 항상 주님 감사하다는 말씀이 입에서 떠나면 안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1절에서 22절에 “감사하지 않으면 우리 생각이 허망해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어리석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50편에 감사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마음은 지옥과 같고 감사가 없는 가정은 메마른 광야와 같습니다. 우리는 늘 주님께 감사함으로 주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도와 대화를 쉬지 않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화가 멀어지면 사랑도 식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뜨겁게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서로 상대에서 대화를 멀리하면 멀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두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실개천을 만났습니다.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실개천이 점점 커져서 큰 도랑이 되니까 이제 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서로 쳐다보고 고함을 치고 이야기합니다. 그 다음 도랑이 넓어서 강이 되어 버리니까 그 다음 손을 흔들어서 서로 대화를 하다가 강이 넓어서 바다가 되니까 서로서로 딴 세상에 들어가서 자기 스스로의 인생을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랑하면 가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대화를 늘 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화를 하지 아니하면 어떤 뜨거운 사랑도 식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 서로 사랑으로 뭉쳐 살려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들이 항상 대화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식탁에 모여서 대화를 하든지 특별한 시간을 내어서 서로 마주보고 대화를 하든지 대화를 하면 가슴을 열어 놓게 되고 마음이 통하게 되고 사랑이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너무 바쁨으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들, 딸들은 자기 스스로 다 흩어져 살기 때문에 냉랭하고 사랑이 없고 무정하고 인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화를 쉬지 않고 해야 되는데 하나님께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늘 기도하라. 꼭 내가 필요해서 부탁할 것이 있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것 없으면 감사기도를 하라.
저는 늘 말씀 드리지만, 불광동에서 개척할 때 장로교 장로님 한분이 새벽기도는 우리 천막교회로 나왔는데 그 장로님은 앉아서 몇 시간 기도를 하고 떠날 때까지 하는 말이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나중에는 제가 그 장로님 싫었습니다. 무슨 기도를 그저, 그저 감사하냐고 그래서 제가 “장로님, 기도를 좀 해야지 그저, 그저 감사한게 뭡니까?”하니까 “목사님 모든 것이 그저, 그저 감사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피난생활 나와서 내 자식들 잃지 않고 고스란히 나왔지요.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해서 교육 다 시키고 먹고 살았지요.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이렇게 늙었지요. 이 교회 잘 나오고 난 장로 되고 우리 집사람은 권사 되고 자식들 다 주님 잘 믿지요. 그 이상 더 좋은 게 뭐가 있습니까? 감사할 것밖에 없어요.” 그것을 몇 시간씩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나중에 신학교 들어가서 목사가 되었다가 하나님 사업 잘하다가 세상 떠나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도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기도하니까 힘이 드니까 안하려고 해 그렇지 기도하려면 끝이 없지요. 주님이 기쁘시게 할 것을 찾아서 행해야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우리의 삶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행하면 주님과 가까이 있을 수가 있고 주님과 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8절로 19절에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화평의 일을 하고 덕을 세우는 일을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우리가 땅에 있어서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고 있는 것을 사랑과 은혜를 나누어 주고 나누어 받는 이러한 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기주의적 세계 속에서 우리는 전부다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내 것이라고 움켜쥐고 나누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개인의 불행, 가정의 불행, 세계의 불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호인 록펠러는 33세가 되었을 때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는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를 갖게 되었고, 53세에는 억만 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알로피셔라는 병에 걸려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온 몸이 말라가는 병인데 의사들은 말하기를 아무리 오래 살아도 1년 이상 못산다는 진단이 내려왔습니다. 그 진단을 받고 그 날 밤 록펠러는 ‘사업이 잘되어 하루에 100만 불씩 벌지만 그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허무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밤에 괴로워하다가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돈은 아무것도 아니야! 하나님이 다 된다. 돈은 아무것도 아니야! 하나님이 모든 것이야!” 외치고 난 다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와 함께 새벽을 맞이한 록펠러의 인생은 달라졌습니다. 습관적으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하던 그가 이제는 진실로 교회 와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찬송을 하며 죽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리버사이드 교회를 건축하여 전 재산을 드리고 큰 교회를 지었습니다. 지금도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는 제일 아름답고 큰 교회인 것입니다. 그 다음 남은 모든 돈을 다 들여서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가지고서 그 재단에서 가난하고 병들었으나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의료사업에 전적으로 기부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마자 그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게 되어서 의사들이 55세를 넘기기 어렵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록펠러는 98세까지 살면서 사회 많은 활동을 하며 건강하게 살았었습니다. 우리가 남을 사랑하고 서로 나누어 주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자기도 잘살고 남도 잘살고 하나님도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제일주의로 산다는 것은 이처럼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찾아 행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단계적인 것을 찾기 애를 쓰고 주된 것을 찾지 않습니다. 주된 것을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과 함께 살면 주님이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능력으로 모든 것을 알아서 우리에게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2. 거룩한 삶이 있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자면 성품이 같아야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가정이 이혼한 이유는 결혼을 하고 보니 너무나 성격이 다르다. 성격차이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 물과 기름이 안 섞이듯이 성격차이가 나서 섞이지 않는다. 그러니 할 수 없이 헤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시골 총각들이 호기심 반, 연애 반으로 월남에 가서 혹은 태국에 가서 말레이시아에 가서 결혼을 하고 옵니다. 그리고 와서 조금 지나고 난 다음은 호기심도 사라지고 신기한 마음도 없어지고 나니까, 그 다음 실제 생활에 부딪히는데 말이 안통하지요. 문화가 다르지요. 성격이 다르지요. 아주 생지옥인 것입니다. 가라하면 도로가고 달라고 하면 가져가고 말이 안 통합니다. 세상에 말이 안 통하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성격이 다르니까. 그래서 치고 박고 싸우다가 이혼을 하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성격이 같아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성격과 취미가 전혀 다르면 함께 살기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오랫동안 사귀어 보고 성격을 알고 취미를 알고 나하고 조화가 되는지 안 되는지 보아서 최소한도 50% 이상이 되면 서로 함께 살 수 있지만 50% 이하가 되면 고통을 당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00% 성격과 취미가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50% 이상만 되면 충분히 좋습니다. 그러나 그 이하가 되면 상당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절로 16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그 두드러진 성격이 거룩한 성격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정욕, 타락한 문화, 썩어져 가는 구습을 가지고 사니까 하나님 하고 맞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데 우리 인간은 더럽고 추하고 불결하고 세상 습관과 구습을 따라 사니까 하나님이 같이 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세가 양을 치다가 가시넝쿨 속에 불이 활활 타오르므로 그것을 구경하러 가니까 가시넝쿨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어라!”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인간의 신발을 벗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발은 행위를 말하는데 행위를 회개하고 정결하게 해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구습을 벗고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변화되어서 새사람을 입어야 하나님과 함께 함께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 그대로 술 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세속적인 사람으로 하나님과 같이 살려고 해도 하나님이 떠나고 같이 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가려면 주님과 성격이 같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늘 회개하고 늘 성령충만을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매일 같이 세수하지 않아요. 옷도 정기적으로 빨아 입지 않아요. 방도 매일같이 청소하지 않아요. 저는 어릴 때 방청소는 내 담당인데 우리 형제간이 아홉이기 때문에 언제나 방이 어지럽기 짝이 없습니다. 애들이 다 일어나서 그냥 옷도 이 구석 저 구석 던져 놓고 요강에 오줌도 넘치도록 해가지고서 방바닥에 오줌이 흥건하고 뭐 쓰레기가 매일 많습니다. 항상 아버님께서 저에게 소제를 하라고 해서 하루는 소제를 하다가 하도 화가 나서 빗자루를 땅에 확 던지면서 “이놈의 소제 밤낮해도 무슨 소용이냐?” 해놔도 또 더러워지고 또 더러워진다. 아버님이 “용기야 이리 오너라!”가니까 “너 여기 앉아라.” “뭐라고 그랬느냐?” “아무리 소제해도 자꾸 더러워지기 때문에 소제하지 말고 그대로 살자고 했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몰라서 그렇지 인생은 밤낮 소제하는 것이다. 밤낮 더러워지면 밤낮 소제하고 밤낮 더러워지기 때문에 때를 또 씻고 목욕하고 밤낮 더러워지므로 옷을 빨래하고 밤낮 더러워지므로 얼굴을 씻고 밤낮 양치질을 하는 것은 늘 더러워지기 때문에 씻어야 되느니라.”우리가 한번 의롭다고 영원히 의로워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의롭다가 내일 더러워지고 내일 회개하면 모레 의로워지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물로 씻어 깨끗함을 얻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정결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 받는 것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을 때 성령께서 와 계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성령이 안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말하기를 “내 성격이 태어날 때부터 고약한데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카네기는 성격에 대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밝은 성격은 어떤 재산보다도 귀중한 것인데 성격이란 가꾸고 기를 수 있는 것이다. 사람 마음도 몸처럼 그늘에서 햇빛이 비치는 자리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늘에 있으면서 춥다고 하지 말고 햇빛이 비취는 양지볕으로 가야 되는 것처럼 마음도 음울한 성격을 가졌으면 밝은 성격으로 옮겨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나쁜 성격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다고 한탄하기보다는 지금 자신의 마음을 좀 더 밝은 곳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죄와 불의로 더러워진 우리의 성품을 주님의 거룩하신 성품으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회개하고 노력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3. 말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열심히 공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야 주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D.L.무디 는 제일 처음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너무 좋아서 천국에 올라간 것 같았습니다. 즐거워 기뻐서 일터에 가서도 늘 노래를 부르고 했는데 아! 얼마있지 아니하며 중생한 기쁨이 사라지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사라지고 세상을 따라 나갔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일주일 시간을 내어서 산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산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충만히 받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이제는 모든 것이 해결 되었다고 하고 내려왔는데, 아! 얼마 있다가 또 옛날로 돌아갔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하나님 나는 화인 맞은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놈이 무슨 천국을 갑니까? 중생했다가 세상으로 나가고, 은혜 받았다가 다 쏟아 버리고, 나는 버림받은 사람입니다.”탄식을 하면서 성경을 읽는데 성경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뜨거워져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렇다. 내가 중생했다고 기뻐하고 기도해서 은혜 받았다고 기뻐하지만 나는 성경을 안 읽어서 은혜가 없고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정결하지 못하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생활은 바뀌어지기 시작해서 마귀가 떠나가고 죄와 세상이 떠나가고, 그 마음속이 점점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성결하고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다는 간증을 한 것입니다.
신명기 6장 6절로 7절에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일어나도 누워도 길을 가도 앉아도 하나님 말씀을 늘 묵상하고 강론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우리가 굉장한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말씀을 통해야 알지요. 많은 사람들이 주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꿈에 나타나 주시옵소서. 환상에 나타나 주시옵소서. 음성을 듣게 해 주시옵소서.”하는데 여러분 그것은 특별한 사항이고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이 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루 밥은 세 번 먹는데 왜 성경은 하루에 한 페이지도 안 읽습니까? 밥은 세 번 먹어야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말씀을 하루에 몇 페이지고 읽어야 말씀을 통해서 영혼의 건강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로 17절에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는 것은 말씀을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충만하면 말씀이 살아 움직여서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게는 역사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송명희 시인의 간증인 것입니다. 그는 은혜로운 시와 찬양을 써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잘 알다시피 그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온 전신이 마비되어 꿈쩍하지 못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굉장한 신앙인으로써 송명희를 어릴 때부터 휠체어에 태워서 기도하는데는 다 데리고 다니면서 안수 받고 부흥회라는 부흥회는 다 돌아다니면서 안수 받았는데 조금도 낫지 않고 오히려 송명희씨는 그것을 마음속에 수치로 느끼고 아픔을 느끼게 되어서 점점 더 부정적인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탄식을 했습니다. “왜 다른 사람은 건강하게 태어나서 잘 사는데 나는 소아마비로 태어나서 이렇게 무참하게 수치를 당하는가.” 탄식을 하고 고통을 당하다가 그래도 의지할 곳 없으니 절망의 끝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와 만나 주세요! 제 모든 걸 다 드리겠습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자기 눈앞에 빛이 환하게 비취더니 큰 두루마리가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그 두루마리의 글을 자세히 읽어 보니까 거기에 뭐라고 하냐면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죽으리라”이런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알아야 되겠다고 작정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작정기도를 하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성경을 100번을 읽었습니다. 아니 100번이 아니라 10번을 읽었습니다. 내가 너무 칭찬을 많이 했네요. 10번을 읽고 나니까 눈이 확 뜨이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준 사명을 알려 주세요. 하나님 말씀을 10번 읽으면서 마음에 영감이 떠올라 와서 시를 적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시를 적어서 그 시를 책으로 발표하니까 일약에 그 시가 찬송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이 되고 유명해졌습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곧장 방송국과 잡지사가 인터뷰를 요청했고 각 교회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해서 1,500회 이상의 국내외 집회에서 간증을 했었습니다. 송명희 씨는 오늘날도 늘 밝게 웃으며 자신의 모든 생활은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고 말씀해 주시어 늘 그분의 모습 안에서 기쁘게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 전신마비는 낫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그만큼 유명해지고 그만큼 하나님 사역을 많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소아마비가 되므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시를 적게 되고 모든 교회에 환영을 받고 들어가서 강연을 하게 되고 어떤 유명한 부흥사보다도 더 유명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건강해서만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전신을 못 쓰게 만들어서라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 그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말씀이 이 사랑하는 자매님을 변화시킨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따라서 나아가야 우리 생활이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면 여러분 마음이 천국 문화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전체가 분위기 속에 사는 것입니다. 세상 문화가 꽉 들어찬 곳에는 세상 분위기가 꽉 들어차서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오고 기도회에 모이고 전도회에 가면 하늘나라 문화가 충만합니다. 분위기가 전부 하나님의 분위기인 것입니다. 신앙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돌아보세요. 여러분 친구 중에 세상이 충만한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와 있는 동안에 늘 듣는 이야기가 집값 이야기, 물건 값 이야기, 술집에 가서 노는 이야기, 노래방에 가서 노래하는 이야기, 춤추는 이야기, 나오는 것마다 전부 세상 말을 해서 세상 분위기가 꽉 들어차게 해서 여러분을 세상에 물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잘 믿고 주님 잘 섬기는 친구하고 만나 이야기 하면 하늘나라 이야기, 말씀 이야기, 성령 충만 이야기, 하나님의 기적 이야기를 하므로 마음이 번쩍 눈에 뜨이고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분위기 속에 살기 위해서 제일 좋은 것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충만하고 말씀을 통해서 나가면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분위기 속에 하나님의 문화 속에 들어가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마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4. 꿈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넷째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꿈과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의 하나님이요, 믿음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영어로 되어 있는데 한국어는 잠언서 29장 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번역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묵시라는 것이 다른 것으로는 꿈이요, 환상인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환상이 없으면 묵시가 없으면 사람이 방자히 행한다. 내 마음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일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소원 즉 꿈, 환상을 마음속에 집어넣어 주어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 소원, 바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미래를 가지기 위해서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음속에 꿈을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데 무엇을 성취합니까? 좋은 집에 살겠다는 꿈이 있어야 좋은 집을 구하지 좋은 집에 살겠다는 꿈도 없는데 언제 좋은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새 옷을 사 입겠다는 꿈이 있어야 새 옷을 사게 되지 꿈이 없으면 좋은 새 옷을 사 입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청년, 처녀는 좋은 신랑감, 좋은 신붓감을 맞이하겠다는 꿈이 있어야 사람들을 택할 수 있지 꿈이 없으면 택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꿈이 없으면 열정도 없습니다. 꿈이 있어야 마음에 뜨거운 열정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50년간을 교회 성장을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정신없이 뛰었는데 내가 지금 돌아보면 왜 그렇게 정신없이 뛰었는가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꿈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 최대의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에 열정이 생긴 것입니다. 뜨거운 열정이 생겨서 이 일을 이루겠다고 밤낮 주야로 뛸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그냥 늘 낮잠이나 자고 배가 부르면 배나 툭툭 두드리고 산천구경이나 하고 다니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모든 것을 거기에 집중하고 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이 없으면 믿음도 없습니다. 뭘 꿈이 있습니까? 꿈이 있어야 믿지 꿈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데 뭘 믿어요? 그러므로 확실한 꿈이 있으면 믿음도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믿음의 담대함 모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습니다 하고 나가는 것은 앞에 나갈 꿈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꿈이 없으면 그런 일을 못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꿈이 있어야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여러분은 집 담 넘어가는 호박나무잎이 생각나지요? 호박꽃이 피고 호박이 담에 줄줄 달리는 것을 볼 것입니다. 호박꽃이 피면 호박벌레가 와서 꿀을 따는 것입니다. 이 호박벌레는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절대 못 날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몸은 2.5센티인데 날개는 너무 가늘고 너무 작아서 과학적으로는 공중에 뜰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호박벌레는 하루에 4백리나 날라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날수 있느냐. 호박벌레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기가 못 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나는 것입니다. 자기가 과학적으로 연구해보니 몸무게에 비해서 날개는 도저히 자기를 띠우지 못한다고 알았으면 낙심하고 날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과학을 모르고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날개 있으니까 난다고 나니까 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꿈을 갖고 믿음을 갖고 나가면 할 수 없는 것이 없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범 잡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범이 무서운 줄 모르고 달라 들어서 범을 잡아요. 범이 무서운줄 알면 아예 범이 오면 오그라들어서 싸움도 못해요. 다윗이 골리앗을 대적해서 나간 것을 보십시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사울 하에서 골리앗이라면 두려워서 다 숨었습니다. 왜냐하면 골리앗은 너무나 키가 장대하고 힘이 센지라 대적할 수 없다고 미리 겁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조그만 초립동 소년이 “나는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양을 칠 때 곰이 오면 곰과 싸워서 곰을 물리치고 사자가 와서 짐승을 빼앗아 가면 사자와 싸워서 죽이기도 했는데 구 할례 없는 이방인이 무엇이 겁나냐?” 겁이 없기 때문에 골리앗을 향해서 나간 것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누구냐?” “여기 있다.” 여기 보니까 조그마한 소년입니다. 그래서 골리앗이 얕잡아 봤던 것입니다. “너같이 조그마한 소년이 나를 대적해 오냐? 내가 너를 죽여서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으로 만들겠다.” 그때 다윗은 뭐라고 했습니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아오려니와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왕의 왕 야훼의 이름으로 나온다. 오늘 내가 너를 죽여 공중의 새의 밥과 땅의 짐승의 밥과 나누겠다. 전쟁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야훼에게 있다.” 그러면서 물맷돌을 가지고 나갔는데 골리앗이 얕잡아 보았기 때문에 그 얼굴을 가지고 날뛰라고 얼굴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물맷돌이 콱 박혀서 죽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병사들처럼 골리앗과 못 싸운다고 미리 겁을 집어 먹었으면 과학적으로 계산해서 못한다고 생각했으면 절대로 골리앗을 못 죽였을 것입니다. 자기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고 나갔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해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나 하나님의 능으로 영으로 될 수 있다. 믿음으로써 도전하기 때문에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도 될 것이요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마음에 담대함이 굉장히 필요한 것입니다. 꿈과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같이해서 역사하지 꿈도 없고 믿음도 없고 항상 불안과 공포와 좌절에 벌벌 떠는 사람하고는 주님이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가문이 좋지 않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습니다.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가문에 의지하지 않고 과거의 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현재 여러분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로 태어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떡으로 살아도 우리는 말씀을 삽니다. 말씀이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된다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성공한다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늘날 호박벌레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날개를 보고 겁을 먹어서 아예 날려고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지 말고 못난 것을 인간적으로 보면 것 알지만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나의 조그마한 능력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고 담대하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제가 1964년 도에 세계 선교를 나갈 때 미국 사람이나 구라파 사람이 저를 만나고 여러 번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네 한국은 피선교국으로써 선교사들이 와서 선교를 전한 나라인데 거기에서 구라파에 와서 선교를 하려고 하냐? 너 건방지지 않느냐? 아직까지 한국은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가 안 되었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라!” 그런 말을 나보고 많이 했습니다. 그럴 때 내가 상당히 마음이 위축되고 “정말인가 보다. 나 같은 사람은 세계적으로 나가서 선교를 못할까보다.” 그러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놈아! 무슨 소리 하는 거냐? 그 사람들이 너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쓴다. 너는 후진국 한국의 종이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주의 종이다. 나와 같이 하므로 나를 바라보고 강하고 담대하라.” 그래서 언제나 배짱을 내놓고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못한다는 것에 예수 이름으로 뛰어 들어서 하고 난 다음 이제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지구를 백 바퀴나 돌고 도시의 집회를 4백 도시에서 집회를 하고 수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고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옛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요 새사람이기 때문에 말씀의 사람이요, 성령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이요, 꿈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하면 도저히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미래가 원한다면 지금 그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행동 하십시오. 꿈이 없으면 성취도 없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전진할 때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있는 그 사람은 정말로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가지며 참된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면 모든 일이 다 합동하여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들에게 종으로 팔릴 때도 주님이 같이 계셨고 보디발의 집 종으로 10년 있을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종들에서도 1등 종이 되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방에 들어갔을 때도 감옥에도 주님이 같이 하셔서 간수가 요셉만 믿고 열쇠를 맡겼을 정도로 우수해졌고, 나중에는 애굽의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고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애굽의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셨기 때문에.. 요셉이 잘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성공합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 가정은 축복받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있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하나님이 같이 있는 나라는 부흥 발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그래도 지금 1,200만 성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이 나라가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많음에도 불구하고 잘 되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삶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주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되고 말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말씀으로 충만해야 되고 꿈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여러분은 어느 곳에 가나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꿈을 가지고 그런 자화상을 가지고 승리로운 삶을 살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개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 살아갈 동안에 주님이 없으면 자기 제일주의로 살고 세상을 따라 살고 세상의 풍습을 따라 살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욕심을 따라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 새사람이 되었으므로 우리 삶속에 앉으나 서나 주님 제일주의로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따라가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는 이 세상과 죄악을 등지고 거룩한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볼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거룩하게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우리 속에 충만하여 말씀으로 살고 말씀으로 가르치고 교훈하며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마음속에 내일을 향한 꿈과 믿음이 불타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우리와 같이 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 나타난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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