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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속이는 야곱.....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273 추천 수 0 2010.02.12 1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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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27:14-29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4·07·17
그리스도인들은 능력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야만 합니다. 이것은 특별한 어떤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이러한 삶을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못하지요. 왜 그럴까요? 

    성령충만한 삶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능력의 원동력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 계십니다. 누구나 예수 믿을 때 성령께서 그 마음을 여시고 오셔서 함께 하십니다. 성령의 감화하심이 없이는 그 누구도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십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도록 이끄십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지극히 인격적이셔서 우리를 강제로 이끌어 가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얼마든지 불순종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 불순종하며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이렇게 성령님께 불순종하며 살게 되면 성령의 감화하심은 더욱 희미해지고 우리는 점점 더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 순종하면 할수록 성령께서 점점 더 강하게 나를 붙드십니다. 갈라디아서 5:16-17은 이러한 진리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께서 나를 더욱 강하게 붙드시고, 나는 더욱 더 성령님께 순종하며 사는 상태를 가리켜서 성령충만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께서 도우시며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신앙인격이 아름답게 성숙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오늘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성령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충만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아도 당장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지 않다고 해서 몸이 아프거나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교회는 나오고 그리스도인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과 열매가 없습니다. 작은 시험도 이기지 못하며, 충성하며 헌신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여 자주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다운 능력 있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려면 반드시 성령충만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성령충만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합니다. 

  이삭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받은 족장이었으며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달아 사람들에게 전하며 그들을 인도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는 이삭은 영적으로 매우 침체되고 성령의 감화하심을 상실해버린 모습입니다. 왜 이삭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야곱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에서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자기 맘에 드는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불순종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삭의 불순종은 다른 가족들까지 범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했던 반면에 리브가는 야곱이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속이고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제 야곱은 어머니의 음모에 따라 아버지를 속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가 만들어 준 요리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갔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눈이 침침해져서 잘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은 보지 못하는 아버지 앞에서 에서의 흉내를 냈지만 아버지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네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18절) 야곱이 얼마나 뜨끔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시침을 떼고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19절)

  야곱은 자신이 에서라고 속였으며, 염소 새끼 요리를 가지고 와서 사냥해 온 짐승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무래도 이상하고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따져 묻습니다.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20상) 사냥을 나가서 짐승을 잡아 오려면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게 마련입니다. 때로는 며칠씩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렇게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왔으니 이상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더욱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이름까지 팔고 있습니다.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20하)

  아무래도 의심이 풀리지 않자 이삭은 야곱을 가까이 오게 하여 그를 만져보고자 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만지려 하노라”(21절)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었고 야곱은 매끈매끈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은 바로 이 점을 확인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야곱을 만져보고도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예상했던 리브가가 이미 조치를 취해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리브가가 집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15-16절) 이삭은 혼란에 빠져서 도대체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22-23절)

  이삭은 매우 혼란스럽고 곤혹스러웠습니다. 앞에 있는 아들이 에서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이삭이 가로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삭이 가로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24-25절) 결국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하고 말았습니다.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그가 가까이 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26-27상) 

    혼란에 빠진 이삭

  이렇게 해서 이삭은 결국 야곱에게 축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 과정에서 여러 번 주저하며 의심했습니다. 도대체 앞에 있는 이 녀석이 정말 에서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삭이 이렇게 분별력을 잃게 되었을까요? 눈이 어두워졌다고 해서 에서와 야곱을 분간할 수 없단 말입니까? 더구나 그는 당시에 하나님의 선지자이기도 했습니다. 선지자 중에서 아히야라는 사람은 나이가 많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의 아내가 변장을 하고 그를 찾아갔을 때 즉시 그가 여로보암의 아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 아들이 병듦을 인하여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리이리 대답하라 저가 들어올 때에 다른 사람인체 함이니라 저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처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 다른 사람인체 하느뇨”(왕상14:4-6) 하나님의 선지자는 눈으로 보지 못할 때 오히려 더 분명한 것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왜 이렇게 분별력을 잃고 허둥댔을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는 성령의 감화하심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이렇게 어둠 속을 헤매며 혼란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중대한 교훈을 줍니다. 성도에게는 성령의 감화하심과 인도하심이 생명과도 같습니다. 성령의 감화하심과 인도하심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물론 당장에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병이 들어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완전히 둔해지고 어두워져서 혼란과 흑암 가운데서 헤매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만일 성령의 감화하심이 없거나 희미하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당신에게 성령충만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삭은 자기 앞에 있는 아들이 에서인지 야곱인지 분간할 수 없었을 때 하나님께 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지금 그를 속이고 있지만 먼저 잘못한 쪽은 이삭 자신이었음을 상기시켜주셨을 것입니다. 또 이제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축복하라고 말씀해주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가 비록 처음에는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쓰임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불행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혼란스러워 분별할 수 없었을 때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여 축복했습니다. 결국 축복은 야곱에게 돌아갔으나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 되었고, 그의 가정은 큰 불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삭처럼 분별할 수 없거나 곤혹스러운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을 믿고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듣거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어리석고 불완전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은 선하고 완전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당신은 하나님께 묻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십니까?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밝히 인도해주십니다. 

    축복하는 이삭

  이제 이삭은 속아서 야곱이 에서인줄 알고 축복합니다. 이삭은 지금 아버지가 아들을 축복하는 일, 그것도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물려주는 너무나도 중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삭은 영적으로 침체된 상태에서 축복하고 있습니다. 가장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해야 할 일을 성령의 감화가 떠난 가운데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삭의 모습은 그의 젊은 시절의 모습과 얼마나 대조됩니까? 이삭이 40세의 미혼이었을 때 아버지 아브라함은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서 신임하는 종을 고향으로 보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리브가를 만나서 데리고 왔습니다. 그 때 이삭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는 들에 나가서 묵상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창24:63)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신부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사 그처럼 아름다운 신부 리브가를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을 우리는 그의 소년기에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그래서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에 올려놓고 죽이려 했을 때 이삭은 죽기까지 순종했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그렇게 믿음이 좋았던 이삭이 지금은 영적으로 완전히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자기 뜻을 고집하며 불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나이가 들수록 믿음도 성숙되어 가기를 바랍니다. 신앙 연조가 더할수록 더욱 성령충만해지 바랍니다. 

    축복 - 하나님의 나라가 너를 통해 이루어지라!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이삭이 축복한 내용은 물질적인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가 아들에게 축복하고자 했던 것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과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였습니다(28절).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이 아닙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이삭이 성령의 감화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단지 물질적인 축복을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많은 자손과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만민이 그의 후손을 통해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너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며, 너는 그 나라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으며, 이삭 자신이 물려받았고, 이제 그의 아들에게 물려줄 가장 크고 영광스런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엉뚱하고 시시한 것을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 중대한 순간에 이삭이 성령의 감화하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강권적으로 감동하셔서 결국에는 진정한 축복을 하게 하셨습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2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삭이 축복한 내용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다 나타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은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습니까? 정말 꼭 물려주어야 할 축복은 물려주지 못하고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들만 물려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진정한 축복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축복은 억지로 짜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감동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이고 기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충만한 가운데서 예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설교자가 항상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서 말씀을 선포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늘 성령충만한 가운데서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한 가운데서 자녀들을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밝히 분별하며, 성령의 능력 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침체되지 않고 갈수록 믿음이 성숙되며 성령충만해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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