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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 의지하자! .....

창세기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277 추천 수 0 2010.02.25 01:22:17
.........
성경본문 : 창29:31-35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4·09·11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의 길로 들어섰을 때 선배 목사님들로부터 이런 말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매우 의아해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목사가 사람을 믿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목회를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세상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해서 속고 속이면서 살아가지만, 그래도 목사만큼은 성도들을 믿어야 하고, 성도들로부터 신뢰받는 목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람을 믿지 말고 의지하지 말라는 이 말은 정말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를 해오면서 이 말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원칙은 비단 목회하는 데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대개 사람을 믿고 의지하다가 낭패를 당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이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나를 배신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실망과 분노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제는 사람을 경계하는 눈초리를 갖게 됩니다.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본래가 연약하고 거짓되며 믿을 만하지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늘 의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되 사랑하면 됩니다. 사람은 본래 믿고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되 조건을 달지 말고, 대가를 바라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상처를 받지 않게 될 것이며, 실망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가운데 참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복잡한 야곱의 가정

야곱은 원치 않게 두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으며,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서 7년의 머슴살이를 수일 같이 여기며 견뎌왔습니다. 그런데 교활한 장인의 음모에 걸려 언니 레아와 동생 라헬을 모두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결혼생활이 어땠을지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아니 라헬만 사랑했고 레아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자매인 두 여인은 한 남자의 아내들이 되어 서로 원수처럼 시기하고 미워하며 경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레아와 라헬은 경쟁적으로 아이를 낳았는데, 자기들의 하녀를 남편에게 첩으로 주면서까지 아이 낳기 경쟁을 벌였습니다. 결국 야곱은 4명의 아내를 거느리게 되었고, 4명의 아내들에게서 12명의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야곱은 오직 라헬과 결혼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 라반의 음모와 아내들의 시기와 경쟁으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4명의 아내를 두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결혼생활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야곱의 역사를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야곱의 가정을 통하여 12지파를 이루어가셨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해가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복잡하고 흠이 많은 가정을 택하시고 축복해주셨을까요? 왜 이러한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보여주셨습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셨고, 전혀 믿음이 없던 자를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을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와 무한하신 사랑을 보여줍니다. 나 같은 죄인을 부르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늘 이 사랑에 감격하며 더욱 믿음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레아는 사랑하지 않고 라헬만 사랑하는 야곱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고 레아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총각 시절부터 라헬을 사랑했으며, 레아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외삼촌의 음모에 걸려 억지로 레아를 아내로 맞아들여야 했습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큰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았던 레아와 속아서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레아는 본래 매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너무 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편 야곱의 처지가 또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야곱이 레아를 사랑하지 않고 소외시킨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레아가 일단 그의 아내가 되었다면 야곱은 남편으로서 마땅히 레아를 위로해주고 성의를 다해서 사랑하려고 애써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이상형을 찾아서 결혼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아내나 남편이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이런 이유로 쉽게 이혼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려면 배우자를 존중해주며,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사랑으로 채워주어야 합니다. 결혼한 후에 상대방의 부족한 점이 보이면 그것 때문에 사랑하지 않거나 이혼할 생각을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오히려 그 부족한 점을 내가 채워주고 가려줌으로 배우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총각시절에 공주 같은 처녀를 이상형으로 정해놓고 결혼 대상자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짝 지워주신 신부감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보니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신 그 사모님이야말로 그 목사님에게 꼭 필요한 스타일의 배우자였습니다. 그 목사님은 일을 잘 벌이고 다니지만 뒷감당을 통 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약속을 해놓고도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후에 사모님이 그 부족한 부분들을 완벽하게 채워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해나가고 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자기의 배우자를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부부는 서로가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서로에게 더욱 아름다운 배우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비난하기만 한다면 갈수록 비참해지고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부는 서로에게 매력 있는 배우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아내들이 긴장을 풀고 퍼지기 시작하면 곤란합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은 항상 아내가 못생겼다고 구박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는 보따리를 싸들고 친정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모처럼 나들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얼굴에 화장도 하고 깨끗한 옷을 차려 입었습니다. 그리고 집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남편이 아내를 붙들었습니다. 자기 아내가 그렇게 예쁜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아내는 평소에 너무나도 자신을 가꾸지 않아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내를 구박한 남편은 더 나쁘지만, 자신을 전혀 가꾸지 않은 아내의 잘못도 있었던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서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매력 있는 상대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부부관계가 훨씬 더 좋아지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무시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레아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

이렇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녀가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레아를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먼저 자녀를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31절)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집안은 자손이 귀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레아로 하여금 단숨에 4명의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야곱이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레아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아들을 낳을 수 있었을까요? 당시에 남편은 자기가 사랑하지 않는 아내라 할지라도 기본적인 남편의 의무를 이행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의무적으로 레아에게로 들어갔으며, 레아는 이렇게 아들들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녀에게 아들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라헬에게는 아들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을 지키는 것 때문에 남편에게 핍박을 받고 구박을 받는 여성도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이상하게도 남편이 다른 데 빠져서 가정을 돌보지 않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통하여 위로해주시고 축복해주시는 일이 많습니다. 자녀들이 믿음으로 잘 자라서 형통하게 되며, 특히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아드리고 위로해드는 것입니다. 남편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보상해주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레아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늘 불행했던 레아에게 하나님께서는 귀한 아들을 4명이나 낳게 해주셨습니다.

나중에 레아는 두 명의 아들을 더 낳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레아의 자손이 무려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도 결국은 레아를 자신의 본처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레아로 하여금 메시아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레아의 아들 유다를 통하여 메시아가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야곱에게 집착하는 레아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자 하나님께 간구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첫 아들을 낳았을 때 레아는 그 아들의 이름을 르우벤이라 지었습니다.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32절) 이렇게 아들을 낳은 레아는 이제 남편이 자기를 사랑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이렇게 아들을 낳았으니 야곱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그러나 남편은 그녀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레아의 심정은 둘째 아들을 낳아서 그 이름을 지었을 때 더 잘 나타났습니다.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33절) ‘시므온’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레아는 “내가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나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다”는 의미에서 둘째 아들의 이름을 시므온이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들을 둘씩이나 낳았으니 남편이 자기에게로 돌아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마음은 여전히 레아에게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레아는 실망했지만 여전히 남편이 자기에게 마음을 주고 사랑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아들이 태어나자 레아는 더욱 더 그러한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34절) 레아는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아들을 셋이나 낳았습니다. 이제는 남편도 아들을 낳지 못하는 라헬보다는 귀한 아들을 셋씩이나 낳아준 자신을 진정한 아내로 여겨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마음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레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35절) 그런데 이렇게 넷째 아들을 낳은 후 레아에게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이제 아들을 넷씩이나 낳았으니 남편이 틀림없이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셋이나 낳도록 남편을 사모하며 기다리던 레아는 지칠 대로 지치고 상처를 받을 대로 받았으며, 이제 남편에게 대한 기대와 희망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레아는 남편을 의지하며 그토록 매달려봐야 별 볼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늘 사람을 의지하고 믿었다가 상처를 받고 실망하면서도 또 사람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이렇게 허무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 즉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을 무시하거나 불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살게 해주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사랑하며 정성을 쏟은 사람이 내가 기대하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보답해주지 못할 때, 우리는 실망하고 상처를 받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처로 시달리며 마음에 원한을 품고 살아갑니까? 이것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길은 사람을 사랑하되 믿고 의지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연약하고 거짓되고 실망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면 반드시 실망하고 낭패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형제를 사랑하되 의지하는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실망치 않게 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넷째 아들을 낳으면서 레아는 결국 남편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접게 되었고, 이제부터 하나님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반복되는 쓰라린 실망과 아픔을 당하고 나서야 레아는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넷째 아들의 이름은 더 이상 남편을 바라보는 기대를 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향하는 그의 온전한 믿음을 담게 되었습니다. 넷째 아들 유다의 이름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레아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는 결단을 가지고 넷째 아들의 이름을 유다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여인의 믿음이 성숙되어가는 단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토록 남편에게 집착하던 레아는 더 이상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레아가 이렇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가장 귀한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낳은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여전히 세상적인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 성도가 있습니까? 당신의 삶이 그토록 곤고하고 낙심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의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기뻐하며 만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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