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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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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우제돈 목사 |
참고 : | 상원교회 |
불교를 죽음을 말하는 허무 종교라고 하면 유교는 제사의 종교요, 기독교는 축제의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에 첫 번째 기적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나타났습니다. 음식 문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간만의 잔치는 아무리 잘 준비되었다 해도 부족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준비를 잘 했으련만 모자랐습니다. 인간이 하는 일은 모두 이렇습니다. 남거나 모자라거나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생각해 봅시다. 나는 지금 무엇이 모자라는 것일까? 혹 도끼 날은 빼 놀고 도끼 자루만 들고 다니는 겉껍질 신자는 아닙니까? 포도주가 없어진 빈 항아리와 같은 신자는 아닙니까?
음식이 부족하고 재정이 부족하여 야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함께 하시니 풍족해졌다고 했습니다. 모자람의 문제가 주님 함께 하심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모자라는 것을 주님께 기도하면 주님의 도움으로 해결되는 것임을 다같이 믿기 바랍니다.
나에게 무엇이 부족하고, 어디가 아프고, 무슨 문제가 어렵고, 무슨 불평이 충만하고, 이렇게 저렇게 일이 꼬이고, 일이 뒤틀리고, 내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지만 예수께 부탁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와 연결하여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주님이 옆에 계시기만 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배에 모시고 갈릴리 바다를 밤에 건너오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고생했습니다. 배를 움직여 보려 애를 썼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거의 침몰하기 직전에야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구원해 주십시오"하고 그리하여 예수님은 바다를 잔잔히 하시며 믿음 없는 것을 꾸중하셨습니다.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옆에 모셔만 놓고 내가 하려고 한다면 일은 더욱 뒤틀리고 풍랑은 더욱 거세어지게 마련입니다.
이사야 6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찬송 받으시기까지 쉬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쉴 틈이 없도록 부르짖어라. 주님을 자꾸 청하라"고 했습니다. 자꾸 청하여 주님께 물어보고 주님을 활용하고 주님 뜻을 받들어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5절에서 마리아도 "무슨 말씀을 하시거든 그대로 하라"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소상히 아뢰고 예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 이름 없는 돌 항아리가 있습니다. 소리만 요란한 빈 항아리입니다. 물이 없으니 먼지만 가득한 것을 실속 없는 사람에 비유합니다. 그 속에 물이 가득 들어가면 소리가 없어집니다.
물이 가득 채워졌습니다. 이름이 붙여집니다. 포도주 항아리가 된 것입니다. 물 항아리가 된 것입니다. 빈 항아리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빈 그릇은 소리만 요란합니다. 속이 비어 있는 사람은 마귀소리만 납니다. 그릇은 내용물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이름이 붙여지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첫째, 들어가야 할 것은 물입니다. 우리 항아리에 물을 채웁시다. 성경에서 물은 성령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물은 믿음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물은 은혜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물은 사랑과 소망을 뜻합니다.
에스겔서 47장을 보면 얕은 물가에 있는 선지자가 일천 척 들어가서 무릎에 차고, 또 일천 척 들어가서 허리에 잠기고, 또 일천 척 들어가서 온몸이 잠기니, 이것은 은혜의 물을 말합니다.
신자에는 발바닥 신자, 허리 신자, 무릎 신자, 온몸 신자가 있습니다.
은혜의 물이 복숭아 뼈에만 찰랑찰랑하여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자를 발바닥 신자라 합니다. 은혜의 물이 무릎에 차서 무릎 끓고 기도하는 자를 무릎 신자라 말합니다. 허리까지 차는 물 속에 들어가 허리를 구부려 봉사하는 신자를 허리 신자라 말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봉사하는 열성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야 더 일천 척 들어가 온몸이 물에 잠기고 주님의 은혜로 충만한 지경에 이릅니다. 이것이 온몸 신자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 물 속에 들어가도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7번 계속해서 들어갔을 때에야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이와 같이 물로 채워야 합니다. 물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물이 채워져야 합니다.
갈멜산에 가뭄이 계속되는 현상을 보고 엘리야는‘바알의 신이 참신이냐 내가 섬기는 여호와가 참신이냐’내기를 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온종일 그 몸에 상처를 내어 피를 뽑고 신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 앞 그릿 시냇가에 가서 물을 12통이나 실어다 제단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불이 나타나 그 제물을 태움과 동시에, 그름이 나타나 하늘을 뒤엎으며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문제는 물입니다. 항아리에 먼저 물을 채워야 합니다. 빈 그릇 속에는 먼지만 묻어 있습니다. 빈 밭에는 무성한 잡초만 있듯이 예수가 없는 사람은 마귀가 채 갑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워야 합니다. 물은 예수의 말씀이요, 기도요, 성령이요, 은혜요,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물을 채우러 왔습니다. "와서 내게 배우라"는 것은 물 채우는 작업입니다. 물을 채워야 이것을 근거로 기적을 베푸십니다. 기적을 그냥 베푸시지 않습니다. 사르밧 과부를 그냥 살리시지 않았습니다. 과부가 가진 기름 통, 밀가루 통을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떡을 만들고,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끊어지지 않고, 기름통에 기름이 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통에 물을 채웁시다. 물을 채우는 것은 우리의 작업이요,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은 주님의 기적입니다. 물을 채웁시다. 채우더라도 하나 가득 채우라고 했습니다. 채워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로, 성령으로, 은혜로 채우되 가득가득 채워야 합니다.
우리 인체의 70%가 물입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물이 없으면 죽습니다. 수분이 제일입니다. 이 교회 안은 굉장히 건조합니다. 그래서 가습기를 설치했습니다. 가습기를 써서 조금이라도 건조함을 감소시키자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 4절에 보면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천국의 비유입니다. 천국은 습기입니다. 습기는 무엇입니까? 눈물과 피와 땀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얼마나 중노동의 기도를 하셨는지 이마에 흐르는 땀이 피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항아리를 채우는 것은 물이요 채운 다음에 변화시키는 것은 주님의 역사입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포도주는 4가지가 변했습니다. 색깔이 변하고 맛이 변하고 값이 변하고 용도가 변했습니다.
프랑스는 포도주의 원산지인데, 값이 비싼 포도주는 지금 만든 것이 아니고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전에 만들어서 통나무에 밀봉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오래 묵은 포도주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많이 배웠다고 해도 속이 비어 있다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속에 인격이 들어 있고 예수의 사랑이 들어 있다면,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속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물을 채웁시다. 물을 길러 가야 물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채워진 물의 맛이 변하고, 색깔이 변하고 용도가 변하고 가치가 변합니다.
10절에 "연회장이 신랑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어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의 기적인데 칭찬은 신랑이 받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일을 다 하시고 사람이 칭찬을 받습니다.
오늘날 좋은 물을 간직하고도 더러운 물로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환경과 좋은 조건에서 배운 사람이 그 배움을 나쁜 일 하는데 씁니다.
이름 있는 저명 인사들이 놀음하다가 걸려 쇠고랑차고 구치소에 들어갑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못 들고 수이고 감추고 합니다. 왜 떳떳하지 못하게 살다가 고개를 들지 못합니까?
우리는 어렵지만 물을 준비하고, 이 물을 주님 필요하신 대로 쓰이도록 기도하고, 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어 남에게 유익을 끼치고 보람 있게 살며 주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빈 항아리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 속에 물이 들어 갈 때 역사가 나타나는 것처럼 돌 항아리 같은 우리 속에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실 때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물을 채웁시다. 물은 그냥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를 너무 편하게 믿으려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어려운 일들은 멀리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갑시다. 그 속에 물과 함께 예수가 있습니다. 빈 항아리 속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물이 들어갈 때 그 물과 함께 포도주로 변합니다.
이 변화를 재창조의 기회로 삼고 열심히 살아가는 권속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199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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