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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3) 치유를 가져다주는 3대 원천 (슥 1:7-13)
1. 그리스도의 십자가 다리오왕 2년(주전 520년) 11월 24일 스가랴는 한날한시에 8가지 환상을 봅니다. 본문은 그 환상 중에서 첫째 환상으로, 먼저 홍마를 탄 사람이 골짜기 속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환상을 봤습니다(8절). 홍마를 탄 사람은 ‘여호와의 사자’인데(11절),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천사’가 아니라 구약시대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학적인 용어로 ‘사전성육신하신 그리스도’입니다. 홍마를 탄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억울함과 상처를 씻어주는 최대의 특효약입니다. 현대인의 특징은 ‘상처’입니다. 요새 봄이 왔지만 겨울의 삶을 살고 새벽이 왔지만 밤중의 삶을 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해도 그때뿐이고, 말씀을 통해 감동 받고 눈물을 흘려도 역시 그때뿐입니다. 깨달음은 많으나 적용에 실패하고, 은혜의 도가니에 온몸을 담근 듯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문제로 남습니다. 또한 웃음 뒤에 그늘이 있고, 눈물 뒤에 한숨이 있고, 뜨거움 뒤에 한기가 느껴지고, 즐거움 뒤에 외로움이 보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존재가 땅의 삶을 삽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성도는 겨울에도 봄의 삶을 살수 있고 밤중에도 빛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세상에 주님의 축복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사랑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넉넉한 자도 없고, 용서받지 않아도 될 만큼 깨끗한 사람도 없고, 치유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몸과 마음이 온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 상처 입은 치료자이신 주님을 통해 모든 상처를 치유 받으십시오. 2. 그리스도의 동행 골짜기는 흔히 ‘세상의 고통’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홍마를 탄 그리스도가 골짜기 속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섰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고통 받는 자와 동행하심을 상징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복된 일은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기복신앙은 예수님을 통해 세상적인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빌어 아들을 좋은 대학 보내고, 남편을 성공시키고,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동행하심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기복주의는 교회에 많은 혼란을 불러들이고 성도의 정체성을 잃게 만듭니다. 그처럼 예수의 초월적 능력을 통하여 자신의 세속적인 욕구를 채우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주님을 진정한 주님으로 여기는 태도가 아닙니다. 기복주의자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지옥에 가지는 않겠지만 대신에 훈련과 시험의 가능성은 커집니다. 그런 훈련과 시험을 통해 점차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존재로 바로 잡아가실 것입니다. 가끔 극심한 고난을 만나면 한탄합니다. “하나님! 정말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겠는가?” 그처럼 하나님을 피고처럼 여기는 태도도 결국 기복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신묘한 섭리를 인간의 머리로 어떻게 이해합니까? 중요한 것은 고통 중에도 주님은 진실한 성도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때마다 골짜기 속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힘을 내십시오. 그러면 골짜기를 벗어나 정상에 설 때가 옵니다. 3. 그리스도의 중보기도 본문 11절에 나오는 강요된 평안과 정온은 택함 받은 백성이 그만큼 힘이 없음을 상징합니다. 그때 그리스도는 중보기도를 드립니다(12절). 택한 백성을 위한 중보기도는 주님의 특기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중보기도의 중요한 내용은 고통을 면제시켜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살면서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면제 받으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기도는 ‘고통을 없기’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진노 중에도 하나님의 긍휼함이 있기’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중보기도를 드리자 하나님은 즉시 천사를 통해 선한 말씀과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13절). 기도는 축복과 영적인 능력을 저축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움직이는 가장 위대한 도구이지만 그리스도의 중보기도가 없다면 능력 있는 기도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이유는 주님의 끊임없는 중보기도 때문입니다.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축적해 놓은 것은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처럼 중보기도를 하십시오. 중보기도가 왜 소중합니까? 첫째, 남을 위해 기도하면 용서의 능력이 커지면서 내 상처가 치유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욕심이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남을 위해 기도할 때 내 기도제목이 더욱 열납되기 때문입니다. 넷째, 그 기도 자체가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를 통해서 내 기도가 열납되고 내 상처가 치유되는 놀라운 기도 체험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응답은 항상 성도의 기도보다 큽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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