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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행2:3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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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정용섭 목사 |
참고 : | http://dabia.net/xe/39646 |
2008.4.6.
기독교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1,2백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2천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의 전모를 지금 정확하게 밝히는 건 불가능합니다. 요즘은 신문이나 라디오나 티이브이 같은 매스컴이 있어서 웬만한 사건들은 기록으로 남지만, 기독교가 시작한 그 당시는 상황이 전혀 달랐습니다. 2천 년 전이라고 하더라도 정치, 사회적으로 크게 드러나는 사건은 역사가들에 의해서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기독교는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초기 교회에 관해서 일반 역사가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활동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아주 작은 지역에 한정되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곳에 퍼뜨리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루살렘에서 조용하게 지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건을 세상에 알릴 생각이 없었으며, 아주 소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을 기다리면서 그냥 유대교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 당시 유럽의 역사를 기록하던 로마 역사가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침묵을 지켰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기독교가 밖으로 드러나게 된 역사적 출발은 바울의 이방인 선교였습니다. 바울에 의해서 이제 복음은 유대교의 한 지파에서 전혀 새로운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기독교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갔을 겁니다. 기독교가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처럼 유대교 안에서 나사렛파로 명맥을 유지하던지, 아니면 그것조차 잃은 채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 공동체처럼 그냥 유대교에 흡수당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이 기독교 역사는 처음 사도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복음이 헬라 지역에 전파되었고, 급기야 로마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랑 칙령’에 의해서 기독교는 로마에서 공인을 받았고, 391년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서 국교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로마의 정치가와 학자들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하던 기독교가 어떻게, 어떤 힘에 의해서 로마의 국교가 되었을까요? 이런 사태에는 사회과학을 뛰어넘는 기독교의 본질이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기독교의 시작에 관해 보도하면서 그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 이후
오늘 본문은 바로 앞에 나온 베드로의 설교에 이어진 이야기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행 2:14-36절에 나옵니다. 소위 ‘오순절 설교’라고 합니다. 그 설교에 오순절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오순절에 행한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역사에서 오순절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때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성령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의 절기인데, 유월절로부터 50일 후에 오는 절기를 가리킵니다.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이 오순절에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갑자가 하늘에서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리고, 불길이 갈라지면서 신자들에게 내렸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방언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방언은 마침 오순절을 맞아 성지인 예루살렘을 방문한 디아스포라들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말로 들렸습니다. 사도들은 아람어로 말하는데 이집트에서 온 디아스포라들에게 이집트어로 들렸다는 겁니다. 그런 걸 경험한 디아스포라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들을 가리켜 술에 취했다고 빈정거렸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이들 앞에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도들이 술에 취한 게 아니라 구약의 예언자인 요엘이 예언한 것처럼 성령에 취한 것이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특히 헬라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한 번역인 70인 역을 인용하면서 복음의 핵심인 케리그마를 선포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였지만,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높이 올리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셨고, 구약의 약속대로 성령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내려주셨습니다. 그 설교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분명히 알아두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행 2:36)
드라마틱한 이야기이지만, 오순절 성령 임재와 베드로의 설교를 초기 기독교의 시작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기록 영화처럼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순절 성령 체험을 오늘 우리에게 반복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하며, 베드로의 설교가 이미 처음부터 사실 그대로 선포된 것처럼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베드로가 설교할 때 그걸 어떤 사람이 옆에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에서 한번 짚었듯이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그렇게 공격적으로 설교하지도, 그렇게 선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주 조용한 태도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는 없는 이야기를 꾸며서 사도행전을 쓴 거냐, 하는 의문이 들 겁니다. 사도행전은 기원 후 80-90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과 뒤 이은 베드로의 설교가 행해진 건 기원 후 30-35년 사이입니다. 그렇다면 사건과 기록 사이에는 최소한 50년 이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는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의 역사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공동체가 아니라 바울의 이방 공동체 계열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할 당시에는 이미 초기에 기독교의 토대를 닦은 예루살렘 공동체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바울이 복음의 씨를 뿌린 이방인 교회가 중심으로 올라섰을 때입니다. 누가는 그리스와 로마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방인 교회의 뿌리가 예루살렘 교회라는 사실을, 따라서 이방인 교회의 태두인 바울의 가르침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변증하기 위해서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이방인 교회는 소극적인 예루살렘 교회와 달리 선교 활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이런 구도에서 누가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를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고, 베드로가 예루살렘 저자거리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했다고 말입니다. 본문의 내용이 예루살렘 교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건 아니지만, 전체 기독교의 신앙을 정확하게 진술하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베드로의 이 설교는 바로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공동체의 신앙고백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성서 본문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설교 시간에 이런 이야기 안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최소한 이런 정도는 알아야겠다고 생각되어서 말씀드렸습니다. 평소에 성서를 꼼꼼히 따져서 읽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오늘 본문에서도 어떤 모순을 발견하게 될 텐데, 그런 모순을 극복하려면 제가 드린 설명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본문 41절에 따르면 베드로의 말을 듣고 그날 세례를 받아 새로 신자가 된 사람이 삼천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어졌을 것이며, 그 지역을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던 로마 정권이 그냥 두고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숫자는 매우 소극적인 자세로 예수의 재림만을 열망하고 있던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의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제가 설명했듯이 누가의 이런 진술이 이미 그리스와 로마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후기의 기독교 모습이라고 한다면, 삼천 명이라는 숫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서 여러분에게 강조하려는 것은 오늘 본문에서 누가의 신학적 진술에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방언 현상과 삼천 명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당시 거대한 세력이었던 유대 종교와 로마 정치의 틈바구니에서도 기독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신앙의 본질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게 중요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것으로 인해서 초기 기독교는 비록 표면적으로는 미미한 존재였으나 내면적으로는 그 어떤 강력한 세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영적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는 바로 그것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세례 공동체
그것이 무엇인지는 여러분이 이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평소에 흔하게 듣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확인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조금 희미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걸 확인하거나 또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걸 정확하게 알게 해드리려면, 아무래도 제가 보충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누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귀를 기울이십시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린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되냐, 하고 베드로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베드로는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회개, 세례, 성령이 그것입니다. 38절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이외에서 여러 가지 증거를 대면서 사람들을 설득시켰고, 사람들은 베드로의 말에 따라서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시나요? 아니면 너무 복잡한 이야기로 들리시나요?
여기서 키워드는 세례입니다. 회개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물론 자기가 행한 구체적인 잘못을 사람들 앞에 고백하면 회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닙니다. 아무리 겉으로 말을 해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간혹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회개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회중 앞에서 시시콜콜하게 그 내용을 밝히기도 합니다. 그건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게 바람직한 게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성서가 말하는 회개는 자기가 행한 몇 가지 부도덕한 행위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삶의 전향을 가리킵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는 주님의 말씀은(막 1:15)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 사람이 회개했는지 아닌지는 사람이 결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례는 겉으로 드러나는 예전이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집례자가 피세례자의 머리에 물을 뿌리면서 “세례를 베푼다.”고 선언합니다. 이 세례 예식은 원래 유대교의 전통입니다. 물론 그 당시는 침례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개는 세례를 받았을 겁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는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세례는 훗날 기독교 안에서 행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보편적인 현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에 따르면 바울은 몇몇 사람 이외에는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까지 조금 부정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고전 1:17a)
사도행전에 세례 이야기가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사도행전이 기록되던 당시의 교회에서 교회의 예전으로 자리를 굳힌 게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신앙의 중요한 외적 표시로 세례가 반복해서 거론되었습니다. 38절에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으며, 41절에서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세례는 이제 기독교 공동체에서 회개와 사죄의 증표일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세례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름은 본질을 내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곧 예수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담보합니다. 초기 기독교는 바로 이 사실 한 가지에 매달렸습니다. 그들은 여기에 참여하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요? 구원은 인간이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의 율법도 결코 인간을 근본적으로 의롭게 만들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로마의 정치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연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은총으로 주셨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은총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으며,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은 그 어떤 정치, 경제적인 수단이나 문화, 예술적인 길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리와 동일한 삶을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예수는 역사적으로 오직 한 분이며, 그의 십자가와 부활도 역시 역사적으로 유일회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그 예수님을 믿고 그의 운명에 자기의 운명을 일치시키는 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의 표지가 곧 세례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더불어 죽고, 그의 부활과 더불어 산다는 의미의 세례 말입니다.
오늘 여기 모인 분들은 대개 세례를 받았을 겁니다. 세례를 받긴 했지만 그게 정말 구원의 길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세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형식적으로 받았기 때문일 텐데, 그렇다고 해서 세례를 다시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한 분이신 것처럼 세례도 한번으로 족합니다. 다만 세례의 의미를 일상의 신앙생활에서 심화해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일상에서 죽음과 생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세례의 의미도 깊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게 될 성만찬은 신앙의 여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대하는 성만찬은 곧 세례의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유일회적 사건이지만 성만찬은 반복적인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42절에 따르면 세례 받은 이들이 빵을 나누어먹었다고 합니다. 친교 식사를 가리키는데, 크게 보면 그것도 역시 성만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과 하나가 되는 세례에서 우리의 생명이 보장되며,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교회는 바로 세례 공동체이며, 더 나아가 교회는 바로 세례의 반복인 성만찬 공동체입니다. 아멘!
기독교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1,2백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2천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의 전모를 지금 정확하게 밝히는 건 불가능합니다. 요즘은 신문이나 라디오나 티이브이 같은 매스컴이 있어서 웬만한 사건들은 기록으로 남지만, 기독교가 시작한 그 당시는 상황이 전혀 달랐습니다. 2천 년 전이라고 하더라도 정치, 사회적으로 크게 드러나는 사건은 역사가들에 의해서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기독교는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초기 교회에 관해서 일반 역사가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활동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아주 작은 지역에 한정되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곳에 퍼뜨리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루살렘에서 조용하게 지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건을 세상에 알릴 생각이 없었으며, 아주 소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을 기다리면서 그냥 유대교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 당시 유럽의 역사를 기록하던 로마 역사가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침묵을 지켰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기독교가 밖으로 드러나게 된 역사적 출발은 바울의 이방인 선교였습니다. 바울에 의해서 이제 복음은 유대교의 한 지파에서 전혀 새로운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기독교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갔을 겁니다. 기독교가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처럼 유대교 안에서 나사렛파로 명맥을 유지하던지, 아니면 그것조차 잃은 채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 공동체처럼 그냥 유대교에 흡수당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이 기독교 역사는 처음 사도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복음이 헬라 지역에 전파되었고, 급기야 로마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랑 칙령’에 의해서 기독교는 로마에서 공인을 받았고, 391년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서 국교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로마의 정치가와 학자들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하던 기독교가 어떻게, 어떤 힘에 의해서 로마의 국교가 되었을까요? 이런 사태에는 사회과학을 뛰어넘는 기독교의 본질이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기독교의 시작에 관해 보도하면서 그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 이후
오늘 본문은 바로 앞에 나온 베드로의 설교에 이어진 이야기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행 2:14-36절에 나옵니다. 소위 ‘오순절 설교’라고 합니다. 그 설교에 오순절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오순절에 행한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역사에서 오순절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때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성령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의 절기인데, 유월절로부터 50일 후에 오는 절기를 가리킵니다.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이 오순절에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갑자가 하늘에서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리고, 불길이 갈라지면서 신자들에게 내렸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방언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방언은 마침 오순절을 맞아 성지인 예루살렘을 방문한 디아스포라들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말로 들렸습니다. 사도들은 아람어로 말하는데 이집트에서 온 디아스포라들에게 이집트어로 들렸다는 겁니다. 그런 걸 경험한 디아스포라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들을 가리켜 술에 취했다고 빈정거렸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이들 앞에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도들이 술에 취한 게 아니라 구약의 예언자인 요엘이 예언한 것처럼 성령에 취한 것이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특히 헬라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한 번역인 70인 역을 인용하면서 복음의 핵심인 케리그마를 선포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였지만,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높이 올리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셨고, 구약의 약속대로 성령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내려주셨습니다. 그 설교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분명히 알아두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행 2:36)
드라마틱한 이야기이지만, 오순절 성령 임재와 베드로의 설교를 초기 기독교의 시작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기록 영화처럼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순절 성령 체험을 오늘 우리에게 반복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하며, 베드로의 설교가 이미 처음부터 사실 그대로 선포된 것처럼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베드로가 설교할 때 그걸 어떤 사람이 옆에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에서 한번 짚었듯이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그렇게 공격적으로 설교하지도, 그렇게 선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주 조용한 태도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는 없는 이야기를 꾸며서 사도행전을 쓴 거냐, 하는 의문이 들 겁니다. 사도행전은 기원 후 80-90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과 뒤 이은 베드로의 설교가 행해진 건 기원 후 30-35년 사이입니다. 그렇다면 사건과 기록 사이에는 최소한 50년 이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는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의 역사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공동체가 아니라 바울의 이방 공동체 계열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할 당시에는 이미 초기에 기독교의 토대를 닦은 예루살렘 공동체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바울이 복음의 씨를 뿌린 이방인 교회가 중심으로 올라섰을 때입니다. 누가는 그리스와 로마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방인 교회의 뿌리가 예루살렘 교회라는 사실을, 따라서 이방인 교회의 태두인 바울의 가르침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변증하기 위해서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이방인 교회는 소극적인 예루살렘 교회와 달리 선교 활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이런 구도에서 누가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를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고, 베드로가 예루살렘 저자거리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했다고 말입니다. 본문의 내용이 예루살렘 교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건 아니지만, 전체 기독교의 신앙을 정확하게 진술하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베드로의 이 설교는 바로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공동체의 신앙고백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성서 본문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설교 시간에 이런 이야기 안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최소한 이런 정도는 알아야겠다고 생각되어서 말씀드렸습니다. 평소에 성서를 꼼꼼히 따져서 읽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오늘 본문에서도 어떤 모순을 발견하게 될 텐데, 그런 모순을 극복하려면 제가 드린 설명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본문 41절에 따르면 베드로의 말을 듣고 그날 세례를 받아 새로 신자가 된 사람이 삼천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어졌을 것이며, 그 지역을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던 로마 정권이 그냥 두고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숫자는 매우 소극적인 자세로 예수의 재림만을 열망하고 있던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의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제가 설명했듯이 누가의 이런 진술이 이미 그리스와 로마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후기의 기독교 모습이라고 한다면, 삼천 명이라는 숫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서 여러분에게 강조하려는 것은 오늘 본문에서 누가의 신학적 진술에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방언 현상과 삼천 명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당시 거대한 세력이었던 유대 종교와 로마 정치의 틈바구니에서도 기독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신앙의 본질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게 중요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것으로 인해서 초기 기독교는 비록 표면적으로는 미미한 존재였으나 내면적으로는 그 어떤 강력한 세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영적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는 바로 그것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세례 공동체
그것이 무엇인지는 여러분이 이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평소에 흔하게 듣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확인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조금 희미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걸 확인하거나 또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걸 정확하게 알게 해드리려면, 아무래도 제가 보충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누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귀를 기울이십시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린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되냐, 하고 베드로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베드로는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회개, 세례, 성령이 그것입니다. 38절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이외에서 여러 가지 증거를 대면서 사람들을 설득시켰고, 사람들은 베드로의 말에 따라서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시나요? 아니면 너무 복잡한 이야기로 들리시나요?
여기서 키워드는 세례입니다. 회개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물론 자기가 행한 구체적인 잘못을 사람들 앞에 고백하면 회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닙니다. 아무리 겉으로 말을 해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간혹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회개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회중 앞에서 시시콜콜하게 그 내용을 밝히기도 합니다. 그건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게 바람직한 게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성서가 말하는 회개는 자기가 행한 몇 가지 부도덕한 행위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삶의 전향을 가리킵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는 주님의 말씀은(막 1:15)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 사람이 회개했는지 아닌지는 사람이 결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례는 겉으로 드러나는 예전이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집례자가 피세례자의 머리에 물을 뿌리면서 “세례를 베푼다.”고 선언합니다. 이 세례 예식은 원래 유대교의 전통입니다. 물론 그 당시는 침례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개는 세례를 받았을 겁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는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세례는 훗날 기독교 안에서 행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보편적인 현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에 따르면 바울은 몇몇 사람 이외에는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까지 조금 부정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고전 1:17a)
사도행전에 세례 이야기가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사도행전이 기록되던 당시의 교회에서 교회의 예전으로 자리를 굳힌 게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신앙의 중요한 외적 표시로 세례가 반복해서 거론되었습니다. 38절에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으며, 41절에서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세례는 이제 기독교 공동체에서 회개와 사죄의 증표일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세례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름은 본질을 내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곧 예수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담보합니다. 초기 기독교는 바로 이 사실 한 가지에 매달렸습니다. 그들은 여기에 참여하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요? 구원은 인간이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의 율법도 결코 인간을 근본적으로 의롭게 만들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로마의 정치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연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은총으로 주셨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은총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으며,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은 그 어떤 정치, 경제적인 수단이나 문화, 예술적인 길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리와 동일한 삶을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예수는 역사적으로 오직 한 분이며, 그의 십자가와 부활도 역시 역사적으로 유일회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그 예수님을 믿고 그의 운명에 자기의 운명을 일치시키는 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의 표지가 곧 세례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더불어 죽고, 그의 부활과 더불어 산다는 의미의 세례 말입니다.
오늘 여기 모인 분들은 대개 세례를 받았을 겁니다. 세례를 받긴 했지만 그게 정말 구원의 길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세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형식적으로 받았기 때문일 텐데, 그렇다고 해서 세례를 다시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한 분이신 것처럼 세례도 한번으로 족합니다. 다만 세례의 의미를 일상의 신앙생활에서 심화해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일상에서 죽음과 생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세례의 의미도 깊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게 될 성만찬은 신앙의 여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대하는 성만찬은 곧 세례의 반복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유일회적 사건이지만 성만찬은 반복적인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42절에 따르면 세례 받은 이들이 빵을 나누어먹었다고 합니다. 친교 식사를 가리키는데, 크게 보면 그것도 역시 성만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과 하나가 되는 세례에서 우리의 생명이 보장되며,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교회는 바로 세례 공동체이며, 더 나아가 교회는 바로 세례의 반복인 성만찬 공동체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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