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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믿음이 그리운 때

마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718 추천 수 0 2010.03.19 12: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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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3:1-9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john316.or.kr 

행동하는 믿음이 그리운 때 (마 13:1-9)

< 삶으로 말하십시오 >

 이번 주에 법정 스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법정 스님을 좋은 글을 잘 쓰시는 이 시대의 스승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에 대한 국민의 추모 열기를 보면서 한경직 목사님 이후로 ‘종교를 초월해서 존경받는 큰 스승’을 배출하지 못하는 기독교계의 현실에 대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생에서 ‘건물이나 숫자의 크기’보다 ‘영향력의 크기’가 훨씬 중요합니다. 10만 명의 자기 교인을 가졌지만 천만 명의 일반인이 교회에 마음 문을 닫게 만들고, 5만 명의 자기 교인을 가졌지만 5백만 명의 일반인이 교회에 마음 문을 닫게 만든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보시겠습니까? 이번 주말은 특별히 성경 말씀을 삶으로 잘 번역해내는 성도가 더욱 그리웠고 행동하는 믿음이 그리웠던 주말이었습니다.

 왜 국민들이 법정 스님을 그렇게 추모합니까? <무소유>란 책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무소유>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용어대로 말하면 그는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선교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교인들이 그처럼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이제 ‘말’로 살지 말고 ‘삶’으로 말하십시오.

 어느 날, 담임목사가 공석인 교회에서 어떤 목사님을 담임목사로 초빙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첫째 주에 놀라운 설교로 성도들을 감격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둘째 주에도 거의 비슷한 설교를 했습니다. 성도들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이 실수했구나!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셋째 주에도 거의 비슷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은 걱정했습니다. “큰일 났다! 목사님을 잘못 모셨구나!”

 마침 셋째 주 오후에 제직회가 있어서 한 교인이 용감하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언제 새 설교를 하시겠습니까?”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난 주 말씀을 정말로 삶 속에 적용하는 것을 볼 때 새 설교를 하겠습니다.” 이 얘기는 오늘날 말씀이 얼마나 외면당하는지를 잘 시사합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어떻게 받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축복이 좌우됩니다. 본문이 그 사실을 잘 교훈합니다.

< 말씀을 받는 4가지 마음 >

 어느 날, 예수님이 바닷가에 앉으셨을 때 큰 무리가 모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습니다(1-2절). 저는 오래 전에 이 본문을 보고 칼럼을 쓰면서 예수님의 별명을 '지남철‘이라고 붙였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면 녹슬어 버려진 못과 같은 인생들이 지남철에 쇳덩이가 끌리듯이 끌렸습니다. 그처럼 몰려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본문의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말씀을 받아들이는 4가지 마음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4가지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요?

1. 길가와 같은 마음

 ‘길가와 같은 마음’이란 말씀이 떨어지나 그 말씀을 사탄이 빼앗아 가서 전혀 뿌리내리지 못하는 마음입니다(4절). 자아가 강해서 말씀에 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마음이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또한 인본적인 이상주의자나 이성을 중시하는 이성주의자의 마음도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또한 무감각한 사람의 마음도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상처를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은 말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해서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게 합니다. 그러나 상처를 느끼는 감각이 있어야 상처가 치료됩니다. 결국 상처와 아픔을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가끔 보면 죄의식에 몸부림치는 분이 있는데, 사실 그런 사람이 은혜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2. 돌밭과 같은 마음

 ‘돌밭과 같은 마음’은 말씀이 떨어져 곧 싹이 나오나 뿌리가 없어 어려움을 당할 때 금방 넘어지는 마음입니다(5-6절). 진리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영혼의 외로운 골짜기를 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왔어도 말씀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기독교는 축복과 고난을 동시에 긍정합니다.

 또한 너무 감정적인 마음도 돌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감정은 좋을 때도 있지만 너무 감정적이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어느 날, 한 할머니가 부흥회에 참석해서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크게 은혜 받은 줄 알고 담임목사님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왜 그렇게 우셔요?” 그때 그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부흥강사님의 얼굴을 보니까 몇 달 전 죽은 당나귀 얼굴과 너무 같아서 그 당나귀가 자꾸만 생각나서 울었어요.”

 신앙을 감정의 토대 위에 두면 쉽게 흔들립니다. 옛날의 부흥회 때 이런 간증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산에 올라가 바위 위에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바위가 뜨거워지면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가슴에 와 닿으며 그때 성령을 받았다.” 그런 간증을 듣고 저도 여러 산을 다니며 바위 위에서 뜨겁게 기도했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감정에 근거한 신앙은 지속력이 약하고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를 만들기 힘듭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악감정을 가졌기에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메시아를 죽였습니다. 그처럼 감정은 사탄의 출입문 역할을 할 때도 많습니다. 감정으로 이성을 잃으면 잘못된 행동도 나오고, 신앙도 팔고, 인격도 팔고, 의리도 팝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감정적인 믿음을 피하십시오.

3. 가시떨기 밭과 같은 마음

 가시떨기 밭과 같은 마음은 말씀이 떨어져 뿌리를 조금은 내리지만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결실이 없는 마음입니다(7절). 요즘은 돈 앞에서 정신을 잃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치 천년의 신비를 연상 짓는 고상한 학 한마리가 한 다리로 서서 영원을 묵상하는 듯해도 그 앞을 지나가는 개구리를 보면 정신없이 잡아먹는 것과 같습니다. 축복은 소유(having)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being)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항상 잊지 마십시오.

 또한 실천이 없는 마음도 가시떨기 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호세아 7장 8절 말씀을 보면 호세아는 자기 백성을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했습니다. 전병을 프라이팬에 익힐 때는 잘 뒤집지 않으면 한쪽은 너무 타고 반대쪽은 너무 설익어서 먹을 수 없습니다. 요새 그런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성도는 입술은 바짝 탔는데 속은 설익었습니다. 그래서 말로는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지만 마음은 전혀 딴 곳을 향해 있습니다. 또한 어떤 분은 귀는 바싹 탔는데 손과 발은 설익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설교를 많이 들어서 귀가 당나귀 귀처럼 커져서 성경 본문만 읽어도 어떤 설교를 할지 거의 알 정도이지만 그 말씀에 대한 실천의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흔히 한국 성도들은 입과 귀만 천당에 갈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천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빨래 줄에 빨래집게가 있고 빨래집게에는 무언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까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주둥아리’였습니다. 말만 하고 행동이 없으니까 주둥아리만 천국에 온 것입니다.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의 입은 ‘입’이지만 말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의 입은 ‘주둥아리’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4. 좋은 땅과 같은 마음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은 말씀이 떨어져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결실하는 마음입니다(8절). 이런 결실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것을 위해서 본문을 부연해서 설명한 23절 말씀은 특별히 3가지가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1)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말씀이 위대한 것이라도 들을 귀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는 귀를 가지십시오.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말씀을 듣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고, 말씀을 주는 사람을 최고로 존중하고, 말씀을 깊이 보는 성경공부에도 열심히 참석하십시오. 기도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뮬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려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가버린 날은 잃어버린 날과 같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시간은 가장 유익한 시간이고 말씀을 멀리하는 시간은 가장 무익한 시간입니다. 이제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러면 신기하게 삶의 변화도 나타납니다. 어떤 분은 겸손하지 못한 문제로 늘 고민하고, 어떤 분은 용서하지 못하는 문제로 늘 고민합니다. 그래서 겸손하려고 노력하고 용서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 삶에서 떠나지 않도록 계속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변화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2)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듣는 것은 좋지만 더 나아가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특히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아져야 합니다. 보통 말씀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말씀 지식이 많아졌다는 말이 아니라 말씀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들렸다는 말입니다. 좋은 책은 여러 번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줍니다. 그처럼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습니다. 그래서 계속 성경을 파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게 하십시오.

3) 말씀을 결실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말이 많다고 합니다. 그 뜻은 정말로 말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많이 듣고 깨닫고 최종적으로 말씀대로 살면서 말씀의 열매가 나타나도록 하십시오. 백 톤의 말보다 일 그램의 실천을 중시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고 나서 금방 교만해지면 밥 먹고 체하는 것과 같고, 말씀을 듣고 나서 금방 염려하면 밥 먹고 설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고 결실해야 말씀이 진정한 양식이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하고 상황에 따라 말씀을 꿰어 맞추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그 속마음을 모르시겠습니까? 그냥 순수하게 말씀대로 사십시오. 꾀를 부려 말씀을 회피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길이 막힙니다.

 저의 두 딸이 초등학교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장난을 좋아하는 동생 한나가 순진한 언니한테 “바보!”라고 말했다가 엄마한테 크게 야단맞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은혜가 일러바쳤습니다. “엄마! 한나가 또 바보라고 했어요.” 자세히 물어보니까 한나가 바보라고는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행동은 바보 같은 행동인데....” 제 딴에는 꾀를 써서 그렇게 돌려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도 엄마한테 손바닥 3대를 맞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핑계를 대고 꾀를 부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마음의 의도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행동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처럼 순수하게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 때 사람은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인도의 간디는 힌두교도였지만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간디는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대로 살면 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마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 같아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않는다(마 7:24-25).” 아무리 큰 시험이 있어도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서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 말씀대로 사는 삶의 축복 >

 복된 신앙생활은 성경말씀을 삶으로 번역하고 신앙고백을 삶으로 나타내는 삶입니다. 말씀을 오감으로 받았으면 먼저 가슴으로 느끼고, 그 다음에는 머리로 이해하고, 그 다음에는 손과 발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요새 크고 화려한 교회는 많지만 시대의 귀감이 되는 교회는 적고, 대형교회 목사는 많지만 대중의 귀감이 되는 목사는 더욱 적습니다.

 교회가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거대한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서 면죄부를 발행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십시오. 거대한 헤롯 성전을 보면서 제자들이 찬탄할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전의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는다(막 13:1-2).” 그 말씀이 있은 지 40년도 되지 않아서 헤롯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성전에 마음이 끌렸지만 주님은 그때 유대인의 처참한 역사를 내다보셨습니다.

 외형은 있지만 내면이 없는 것처럼 허무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성은 마치 유령과 드라큘라가 나올 것 같은 성으로 변합니다. 그처럼 말씀이 삶으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고 겉만 번지르르한 교회는 절망과 허무의 상징이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한국 교회의 지나친 건축 열기는 한민족에게 벌어질 처참한 역사의 예표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삶으로 번역되어 나타나는 말씀만 있다면 아무리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희망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고등학생이 극심한 생활고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고생 많은 세상을 떠나 하루라도 빨리 좋은 천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저를 죽게 해주세요!” 그렇게 금식할 때 사흘째 되는 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개야! 너는 이미 죽었다! 이제부터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그 음성을 듣고 그때부터 말씀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했고, 결국 누구보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말씀은 죽을 인생을 살 인생으로 만들고, 패배자를 성공자로 만듭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갔지만 분당에 있을 때 남의 교인 뺏기로 유명한 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목사는 가끔 이상한 말을 해서 이단성을 의심받고 있고 무엇보다 거만한 태도로 목회자들 사이에서 큰 욕을 먹습니다. 그래도 그 교회가 크게 성장한 데는 그 교회의 신실한 장로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말합니다. “목사가 자질이 부족해도 말씀대로 사는 장로가 그 교회를 살렸다!”

 누군가 말씀대로 사는 한 사람이 있어도 그 공동체는 큰 힘을 얻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역사가 나타나고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됩니다. 아무리 비전한 존재도 말씀을 가까이 하면 어떤 어려운 환경도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따라 행동하십시오. 감동을 따라 즉시 행동해야 축복의 기회를 잡습니다. 좋은 일은 미루지 마십시오. 성공하는 사람들은 감동과 깨달음이 생기면 즉시 행동에 나섭니다. 반면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감동만 하고 뒤따르는 행동이 없습니다. 축복의 기회는 감동을 따라 옵니다. 그 감동을 실천으로 연결시키십시오. 아무리 큰 감동과 깨달음이 있어도 실천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 날, 한 자녀가 공부하지 않고 매일 놀다가 시험을 40점 맞았습니다. 본인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깨달았습니다. “공부를 안 하니까 이렇게 되는구나!” 그는 결심했습니다. “이제 공부하자!” 그런데 집에 와서 또 텔레비전만 보고 인터넷만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인물이 됩니까? 실천이 없는 감동은 영적인 쾌락입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롭게 됩니다. 하나님은 작은 은혜에도 크게 감동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모든 인격관계가 다 그렇습니다. 엄마가 작은 것을 해주었는데 아이가 환한 얼굴로 말합니다. “엄마, 이런 맛있는 것을 어떻게 요리했어요? 정말 감사해요.” 그러면 사는 보람이 느껴집니다. 부부간에도 작은 일을 했는데 “여보, 참 잘했어요.”라고 하면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처럼 하나님도 감동을 잘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감동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감동 후에는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성령의 감동이 옵니다. “이제 잘 믿어야지. 이제 열심히 기도해야지. 이제 선교도 하면서 헌신하며 살아야지. 이제 열심히 봉사하며 뜻 깊게 살아야지!” 그런 감동이 있을 때 실천에 나선다면 신앙에 놀라운 진보기 이뤄지게 됩니다.

 어제 온라인 새벽기도 회원인 한 성도님이 메일을 주셨습니다. “목사님! 아침에 출근하면 온라인 새벽기도로 하루를 엽니다. 늘 말씀에 은혜를 받고 감동 가운데 지내고 있습니다. 그 동안 목사님의 선교사역을 돕고 싶었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아 제가 하는 일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어떤 요건을 충족시키도록 기다리기보다는 일단 실천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저희에게 상당히 많은 십일조를 보내오셨습니다.

 그 메일에서 “일단 실천하려 합니다.”라는 글귀를 보면서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때 바로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감동을 주체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감동이 있기에 선교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너무 행복합니다. 이 감동이 새로운 감동을 낳고 그 감동의 물결이 허전한 마음을 가진 어려운 이웃들에게 확산되게 하소서! 먼저 믿음의 실천을 보인 그분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셔서 그분의 삶과 가정과 생업에 놀라운 축복을 내려주소서!”

 감동이 있을 때 실천에 나서십시오. 실천이 있어야 껍질을 깨고 한 단계 신앙이 성숙해질 수 있고 마음도 개운해집니다. 또한 실천이 있을 때 영혼을 혼미하게 만들던 안개와 먹구름이 어느덧 사라지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그처럼 말씀을 깨닫고 말씀의 감동대로 산다면 누구나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감동을 도전하며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개야! 이제부터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말씀에 감동한 대로 실천하는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어느 것 하나도 헛된 것이 없습니다. 이제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통해 주어진 감동대로 사십시오. 행동하는 믿음이 그리운 때에 누군가 행동하는 믿음을 보여주면 그로 인해서 마음이 허전했던 이웃들이 큰 힘을 얻게 되고, 또한 그 자신은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명문 가문의 창시자가 될 것입니다. 그처럼 행동하는 믿음을 통해 축복된 역사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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