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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잠24: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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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우제돈 목사 |
참고 : | 상원교회 |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 하시리라……."
지금 재산공개 때문에 그 여파가 일파만파로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했습니까? 침을 질질 흘리면서 아, 부럽네, 부럽네. 권세 있고, 땅 많고 돈 많고 얼마나 부러워했습니까.
그런데 오늘 잠언 24 : 12, 19에 보면 "행악자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행악자의 득의 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분'을 좀 품어왔어요. 바로 지지난 주간인데요. 새 신자 양육 세미나에 우리 교역자들이 함께 참석해 가지고 말씀을 듣는데요. 아니 저 교회나, 이 교회나 같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횐데 저 교회는 교인들이 전도를 잘하고 새 신자가 늘어나고 저렇게 양육을 하여 저렇게 불이 붙었는데, 우리 교회는 이게 뭐냐, 나는 이게 뭐냐.
세미나 참석하다 말고 또 맡은 설교가 있어서 창동의 어느 교회 우리 북노회 청년 연합회 세미나에 개회 설교가 있어서 차를 운전해 가는데 막 분이 나는 거요.
아, 그러면서 차 안에 백밀러에 비친 내 얼굴이 막 붉은 가운데서 벌개지면서 막 분통이 터지는데 나는 뭐냐는 거예요. 나는 뭐냐, 20년 목회가 이게 뭐냐. 내 꼴이 뭐냐 이 말이요.
막 주먹을 쥐고 운전대를 붙잡는데, 아 굳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운전대를 확 붙잡고 그냥 밟는데, 그냥 엑셀을 밟으니 확 나가는 걸 그대로 브레이크를 잡으니 끽하고 급정거를 하는 거예요.
막 눈물이 쏟아지는 거요. 막 가슴을 두드리며, 난 뭐냐, 난 뭐냐 이 말이요.
'우 목사, 넌 뭐냐. 너 목사가 돼 가지고 목회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 주여 나 개떡입니다. 난 개떡같습니다. 난 개떡입니다. 개떡이지, 개떡이야.'
지금 장로님 기도에 기둥이라고 그랬는데 내가 무슨 기둥입니까? 대들보도 못되고 석가래도 못되고, 부엌의 부지깽이도 못되는데 기둥에 연결되어 있는 가지들은 어떻겠어요. 막 분통이 터지는 겁니다. 분통이. 사실은 그 세미나에서 제가 열 받아 왔어요. 우선 그거라도 소득으로 생각해요. 열 받는 것, 자극 받는 것.
여러분도 신선한 영적 충격을 좀 받으시기 바랍니다. 열 좀 받아요. 열 받아요. 신앙은 열 받는 겁니다. 열 받으러 오세요. 열 좀 받아야 되요.
' 주 없이 살 수 없네' 하고 찬송은 부르는데도 맨숭맨숭하게 '어유, 결혼식에 가야 할 텐데. 누구 만나야 할 텐데.' 여러분 제발 이 안에 들어와서는 세상 적인 약속이나 세상 적인 근심 걱정 좀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나와의 직선적인 수직적인 관계에만 신경 씁시다. 길어야 이제 30분 남았어요. 졸지 마시고 좀 열 좀 받아 보세요.
지금 영혼, 네 영혼을 지키라. 영혼을 지키라고 그랬어요. 영혼을 지키라.
나이를 먹으며 밥을 먹으며, 성장을 하지요. 그런데 우리 믿음은 왜 노상 앉은뱅이입니까. 왜 자라나지 못합니까. 이 열좀 받아야 됩니다.
예배소서 4장에 보면 자라나라, 자라나라. 베드로 후서에 보면 자라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그냥 자라나는 게 아니에요. 힘을 쓰라고 했어요. 힘을 써야 되는 거예요.
젖먹는 애기들이 그냥 크는 거 아니에요. 가만히 있다가 하품을 하지요. 쭉쭉, 쭉쭉하고 어른들이 팔을 펴주죠. 이게 뭐에요. 키워주는 거요. 힘써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 주보 사이에 지금 뭐 40일 철야 금식기도, 그리고 뭐뭐 여러 가지 쪽지를 지금 많이 받으셨어요. 그건 금식기도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지. 전도는 전도사들이 하는 거고, 노래는 성가대원들이나 부르는 거고. 새벽기도는 새벽 잠없는 노인들이나 가는 거고. 기도회야 거 문제있는 사람들이 나가는 거지.
남의 일처럼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건 내 일이요. 내 일인데 어찌 이래서야 십자가 사건이 나와 무관합니까? 관계가 있다면 왜 그가 만든 새벽기도와 그가 만든 십일조, 그가 만든 전도, 그가 주신 말씀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까. 생각해 봅시다.
" 아니, 나야 주일 낮예배만 가면 돼." 왜 그럽니까, 밤예배는 예배가 아닙니까. 새벽기도는 기도가 아닙니까. 십일조는 그 예수 잘 믿는 사람만 내는 게 십일조입니까.
그럼 생각해 보십시다. 왜 선교합니까.
저는 영락기도원에 가끔 가는데 꼭 좀 가야 될 사람이 안갈 때는 섭섭합니다. 1,2,3 여전도회에서 가는데 아, 기도의 제목도 많이 있고 한데 안 간단 말이요. 섭섭해요, 섭섭해. 에 그야 뭐 회원들이나 가는 거지. 천만 에요, 천만에.
여러분, 한번 전도해 봤습니까. 눈물 흘리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봤습니까.
방언기도 한번 해보고, 방언기도 나쁘다고 하세요. 십일조 생활 해보고 십일조 생활 가부를 말씀하세요. 전도해 보고 전도의 어려움을 말씀해 보세요.
여러분, 우리가 종합적으로 힘쓰십시다. 자라나기를 힘쓰십시다. 지난 주 일 우리 교회에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부초청 환영예배가 있었습니다. 많이 들 오셨어요.
한 100쌍 들어왔어요. 웨딩마차에 맞춰서 막 가슴이 두근두근 합디다. 좋은 말씀 들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부부간에도 거짓이나 사특 한 것이나 서로 꺼리는 것이 있으면 그건 금방 표가 나타나요. 소중한 가정이요, 귀중한 내 남편이요, 내 아내입니다. 그렇다면 부부는 결혼을 하면 한 몸이 되는 겁니다. 한마음이 한 몸입니다. 같은 생각을 가져야 같은 마음이 되고 같은 마음이 합쳐진게 한 몸입니다. 신앙이 다르면 함 몸 되기 어려워요. 사랑을 똘똘 뭉쳐졌죠. 여러분 부부 사이에 거짓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죠?
예수 믿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어유, 지루하다. 이거 뭐 감동도 없구 귀찮다 기도도 안되고."
물론 그럴 때가 있지요마는 여러분 진지 잡수시는 것 보세요. 어쩔 땐 밥 먹기 싫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억지로라도 먹어야죠. 그게 사활이 달려 있기 때문에. 그런데 어떤 때는 막 땡기는 때가 있어요. 시장해 가지고 막 밥이 맛있을 때가 있어요. 같은 밥인데 그래요. 문제는 사람에게 달려 있는 거예요.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찬송을 부를 때, 기도할 때, 헌금을 드릴 때, 전도할 때, 어떤 땐 감동이 있지만 그냥 감동이 없는 대로 내버려두면 졸음만 오는 거요. 내가 왜 이러는지, 이래선 안되겠다 하고 힘쓰세요. 여기 지금 힘쓰라 그랬어요. 베드로후서에 보면 힘쓰라, 힘쓰라 흠과 티가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기를 힘쓰라고 했어요.
가꾸라는 겁니다. 열심과 정성을 드려 찬송을 가사 생각하면서 불러보면, 눈물이 쏟아질 때가 있어요. 말씀이 나에게 와 닿는 때가 있고, 은혜가 되는 때가 있어요. 성가대 찬양이 막 은혜가 되는 때가 있어요. 하나님께 감사 예물을 바칠 때 기쁨이 충만하게 되고 여러분 이 온전한 예배가 우리 영육 가운데 어울려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여기 보니까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죄악으로 인하여 엎드려지느니라."
어떤 말씀이 어떤 때는 그냥 지나가지만 그 말씀이 나에게는 와 닿는 때가 있고 그 찬송이 나에게는 찡 해질 때가 있어요. 이런 순간 순간들이 많이 있어지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데 모인 곳이 진동하더라고 그랬어요. 사람이 진동하지 않고서 땅이 진동하는 일이 없어요. 먼저 가슴이 진동해야 그 가정이 진동하고, 그 땅이 진동하고 그 기업이 진동하고 그 모인 사람들이 진동하는 겁니다. 그 기업이 진동하고 그 자식들이 진동하고요. 살아 움직이는 걸 말합니다.
이번 주에도 심방을 다니면서 얘기를 좀 들어봤는데 너무너무 지난 주 일 프로그램이 좋았다는 거요. 그리고 어떤 이들은 실제 받을 씻어줬어요. 남편이 아내의 발을 씻어줬어요. 아내가 남편의 발을 씻어줬어요. 우습게 시작했는데 씻고 보니까 달라지더라는 거예요. 저도 그랬어요. 저 두 세 번이나 씻었어요.
아, 다릅니다. 다르고 말고요. 여러분 육체의 건강보다 정신 건강이 중요합니다. 정신건강보다 영적 건강이 더 중요합니다. 육적 관심은 사람에게 달려있지만 영적 관심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더러운 부자보다 깨끗한 빈지가 났다."
신앙생활 하는 데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나방이 고치에서 나오는데 얼마나 얼마나 사력을 다하는지 몰라요.
죽을 힘을 다 해 가지고 스스로 고치에서 나방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도와주기 위해서 구멍을 뚫어주고 혹은 면도날로 그 나오는 입구를 찢어서 그냥 나오게끔 하면 얼마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아요. 면역성이 없어져서, 힘이 없어서 죽고 맙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시련과 연단이 있음을 하나님께서 더 큰 믿음의 장부로 만들어 주시기 위한 축복의 선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행악자의 득의 함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거 분내지 마세요. "아이고, 저분은 어떻게 해서 남편이 저렇게 같이 나와 예배를 드릴꼬. 아니, 저분은 어떻게 저렇게 전도를 잘하고, 구역예배 어려운 구역인데도 구역활동을 잘할까." 이렇게 예수 열심히 믿는 일에 우리가 좀 분을 내보자고요. 분을 내봐요.
여러분, 이 손을 이렇게 주먹을 쥐시고 오른손으로 자기 얼굴을 한 번 꼬 집어 보십시다.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한번 쳐보세요.
한 뼘도 안 되는 체면에 급급해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지겹습니까, 네? 부부 생활에서 가정생활에서 참을, 진실을 떠난 거짓 생활은 지겨워요. 가정이 아니고 천당이 아니고 지옥입니다. 부부가 사랑하는 남편이 아니고 원수요, 원수…….
그런 마음으로 헌금을 하면 그건 헌금이 아니에요. 그런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하면 예배가 아니에요. 그런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하면 예배가 아니에요. 고역입니다. 감옥에 와 있는 거 같아요.
주보에 음악 악보가 있는데 보세요. 거기 난 가사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얼마나 가시가 좋은지,
'내가 먼저 손내밀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높여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추악한 나의 욕심이여 어설픈 나의 자존심이여.'
여러분 가사의 뜻을 생각하면서 선창자에 맞춰서 우리 입 속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러보십시다.
'내가 먼저 손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내밀길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 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더러운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마음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 봐 모르는 채 이렇게 흐느끼며 서 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여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이해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여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추악한 욕심이여. 오,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마음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 봐 모르는 채 이렇게 흐느끼며 서 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아멘.'
여러분 두 사람씩 손을 꼭 잡아보십시다. 옆에 사람들 손을 꼭 잡아보십시다. 장로님 이리좀 오세요. 옆에 사람 손을 꼭 잡아보십시다. 이리 오세요.
두 손을 꼭 잡고요. 둘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요. 서로 아무 말 하지 마세요. 얼굴 꼭 쳐다보시고 저를 보실까요. 눈 쳐다보세요.
자, 주먹 쥐세요. 말없는 가운데 뭔가 통하시기 바랍니다.
자, 주먹 쥐시고, 자, 이제 손을 놓으시고, 눈을 감으십시다. 우리 반주를 들어가면서 여러분 내 자신을 돌이켜 봅시다. 이 서글픈 자존심 때문에 이게 뭡니까. 이것 때문에 내가 죽지 못하는 거요. 이것 때문에 무슨 꼴입니까. 주님 날 위하여 십자가 돌아가신 고난의 사순절인데, 우리 사랑해 주셨는데 이게 뭡니까.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한 2분간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오늘도 저희들을 불러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왜 그렇게 쉬운 손을 내가 먼저 내밀지 못했을까요. 잘못했다고 하면 될 말을 왜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했을까요. 왜 내가 웃음을 먼저 주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까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물질과 부요의 형통을 분을 내면서까지 부러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도 다 헛된 일들로 마치고 맙니다. 진정 우리가 관심을 둬야 하고 우리가 부러워 할 것은 영혼입니다. 예수 잘 믿고 영적 부요한 주의 자녀들이 되게 해주시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며 또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주 앞에 나타나기를 정성을 기울여 힘쓰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 어설픈 나의 자존심, 추악한 욕심, 간교한 입술, 더러운 마음 진정 비우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보시기에 잘했다 칭찬 듣는 믿음을 인정받는 성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1993.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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