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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창3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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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우제돈 목사 |
| 참고 : | 상원교회 |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엊그저께 동사무소 가서 주민등록증 1통을 떼는데 그 동 직원이 한번 읽어 보고 싸인해 달래서 읽어봤더니 친절 캠페인을 벌이는 겁니다.
10가지 덕목이 있는데 그 내용은 '인사 잘하기', '그 인사도 먼저하기' 그리고 '10번 이상 웃기', '길 잘 찾아 드리기', '허리 세 번 이상 굽혀 휴지 줍기', 그리고 또 한가지는 '참 감사합니다. 참 감사합니다' 였습니다.
본문 35장을 보면 야곱이 부모를 떠나 타관에 가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고향이 제일이지. 어떻게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환난 날에 응답하시고, 나에게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쌓으려 하노니 벧엘로 올라가자."
여러분, 이 마음을 가지고 오늘도 이 제단에 찾아 나오시길 바랍니다. 또 그러신 줄 믿어요.
덕 중에 나쁜 덕은 변덕이고, 고래 중에 나쁜 고래는 술고래고요.
떡 중에 못된 떡은 개떡이고요, 절 중에 좋은 절은 친절입니다. 복중에 좋은 복은 감사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사람, 감사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요.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사는데,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는 복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제 장로님이 기도하셨듯이 돈 많이 가진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처신이 얼마나 곤란한지 모르겠어요. 특히 요즘에 그분들은 감사는커녕 불평만 충만해요. 이 정권이 이래서 되느니 세상이 이래서 되느냐고, 이 돈이 어떻게 번 돈인데…….
그러나 우리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입니다. 우리도 이 제단에 나올 때 야곱이 결심을 한 것처럼 "가자 벧엘로 가자, 거기 가서 나라를 세우자거나 농사를 해서 돈을 벌자 한 것이 아니라, 예배 드리러 가자. 지금까지 나를 도와주시고, 환난 날에 지켜주시고, 응답해 주시고, 우리 가족 다 지켜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 드리러 벧엘로 올라가자."
우리 같이 한번 불러 보실까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여러분, 우리는 귀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잃을 뻔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었습니까. 잃었던 생명 찾았고, 주님 은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예배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시편 100편에 보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러분 우리 여기 오실 때, 주님 전에 나오실 때 첫째가 감사하는 마음이에요.
"감사 감사, 예수. 감사 감사, 예수. 감사 감사, 예수 내 맘에."
아침에도 감사, 저녁에도 감사, 하루종일 감사, 특히 주님 전에 나올 때는 감사의 제물, 감사의 마음, 이것처럼 크고 좋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자꾸자꾸 주시고, 불평하면 이미 주신 것도 거두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는 제사는, "순종의 제단"입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순종에 관해서 이렇게 여러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남자에게서 포로를 잡아 가지고 너희들은 다 이제 참패다, 우리가 이겼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항복해 하고 옷을 다 벗깁니다. 그럴 때 옷 벗기는 것은 항복이요.
또 군대에서 고참이 졸병들을 전부 불러서 기합을 주고, 옷을 벗깁니다. 가끔 옷을 벗깁니다. 저도 군대생활 할 때 추운 겨울철에 느닷없이 자고 있는 사병들을 고참들이 다 깨우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팬티 바람으로 연병장에 0.5초 내로 집합하라는 거예요. 그러나 왜 그런지 몰랐어요. 지금까지도 몰라요. 그런데 왜 가끔 그러냐면 군기를 잡으려고 그래요. 그럴 땐 항변도 못해요. 그럴 땐 복종입니다.
그러나 아빠를 따라간 어린아이가 더운 여름철에 목욕탕에 가서 벗으란 말도 안 했는데 홀랑홀랑 벗고는 첨벙하고 목욕탕 속이나 수영장 속으로 뛰어들어갈 때, 이것은 순종이에요.
또 강도가 칼을 들고 여자 있는 방에 들어가서 칼을 들이대고 옷 벗어. 그럴 때는 목숨이 두려우니까 옷을 벗는 겁니다.
그렇지만 의사가 여자에게 옷을 좀 벗으셔야 겠습니다 라고 하면, 남자 의사지만 내 병을 고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복종하는 겁니다. 그러나 밤에 잠자리에 들어갈 때는 벗으란 말도 안 했는데 홀랑홀랑 벗어요. 그것은 순종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의 순종지수는 지금 어느 정도일까. 우리 예수 믿는 거 이것만 가지고 비교해 봅시다.
나는 지금 항복하고 예수를 믿는 것인가, 복종하고 예수를 믿는 것인가. 아니면 순종하고 예수를 믿는가. 그런데 여기에 따라서 신자가 조금 세분되는 겁니다.
어떻게 나눠지냐면 '교인'과 '신자'와 '성도'입니다.
가령, 오늘 우리 교회 오실 때 "일어나요, 교회 가야지, 아이구 싫어, 나 잠 좀 자게 내버려둬." 이렇게 억지로 옷 입혀서 끌려나오는 정도를 '교인', 그 다음에는 조금 나아요. 교회 갈까 말까 그럴 때 가자고 해서 나오는 사람은 '신자',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 일어나 뭐 이렇게 잠을 자고 있어." 먼저 깨워서 밥 먹고 교회 나오는 이들은 '성도'입니다.
여러분 교인보다 신자가 낫고, 신자보다 성도가 더 낫습니다. 또 헌금 바치는 것도 그래요.
억지로 그냥 막 내고 싶지 아니한데 빼앗기다시피해서 내는 것은 '교인', 그 다음은 떨면서 내고 싶은데 내려면 다녀야지 해 가지고 내는 것은 '신자', 그러나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십일조 생활하고 바치는 사람은 '성도'입니다.
그런데 끌려나오던 '교인'이 나중에는 '신자'가 되고 더 성숙하면 '성도'가 되고, 이것은 영적 성장입니다.
한편 '신자'가 됐다가 '성도'가 되는 척하더니, '교인'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있어요. 여기 아니고, 저 경상도, 경상도 사람들에게 미안하니까 전라도, 전라도 사는 사람들에게도 미안하니까 강원도, 강원도에서 오신 사람들에게도 미안하니까, 충청도. 아니요, 그냥 저 어디 다른데 가니까 그런 사람이 있단 말이요.
여러분 우리가 신자에서 성도 될지언정 교인으로 내려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멘.
처음 나온 분들은 다 이끌려 나와요. 여기도 그런 분들이 계세요. 가자고 가자고, 안 간다고 안 간다고 하는데 가자고 가자고 해서 기분만 나쁘고 이래 가지고 예배당에 나가는 거 무슨 재미가 있겠냐고. 그래도 그런 교인 수준에 있어도 자꾸 나오고, 또 접하고 성경을 읽고 그러는 가운데 신자가 되고 성숙한 성도가 되는데 바로 여기에 순종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야곱이 말입니다. 얼마나 거절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불복종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불복종하면 얻어터지는 거요. 얻어터집니다.
지난번 우리 상계지역 연합 집회 때 오신 강사님이 그런 얘기를 하시는 것을 제가 잠깐 들었습니다. 재수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지는데도 코빼기가 깨진다고.
왜냐니까 전에는 나막신을 신고 길을 다녔는데, 겨울철에 조금 비탈진 데를 나막신을 신고 내려가면 말이죠. 이게 뒤로 엎어져요. 뒤로 넘어지면서 뒤통수가 깨지는가 싶더니 신고 있던 나막신이 휙 하고 올라가 앞으로 떨어지면서 콧잔등을 깨 코피가 터진다 이 말이요. 그래서 재수 없는 사람들은 뒤로 넘어져도 코빼기를 깬대요.
여러분, 우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이요,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 그런 말입니다. 거역하면 축복이 없어요. 여기 보니까 1절에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라는 말이 나오고, 3절에 보면 내가, 내가, 내가 그런 말이 있습니다.
'거기서' '내가', 상원교회에서 우제돈이, 벧엘에서 야곱이, 그러니까 많은 제단을 쌓을 때가 있지만 거기, 거기 가야돼요.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상원교회로 오늘 오신 줄 압니다. 그리고 대신 누가 가주는 게 아니요, 내가 입니다. 여러분, 감옥도 더러 대리 감옥을 갈 수도 있고 민방위 훈련도 대리 훈련 가는 수도 있고, 또 군인도 대리군인 가는 수도 있어요.
그러다가 또 거덜이 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예수 믿는 데에는 대리가 없어요. 내가 직접 와야 돼요. 절간에 가는 사람은 한 가족 이름, 다 올려놓고는 대표로 가서 기도 드리기도 한답니다.
어떤 모친께서 혹은 가정주부가 복채를 놓고 불공을 드리고 그러면 복이 그 가정에 임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 교회는 그게 아니에요.
대리가 없어요. 내가 직접, 우리가 참석해야 돼요.
여러분이 직접 우리 몸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상원교회까지 오실 바에야 늦지 않게 일찍 오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예배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는 여기 보니까 "회개의 제단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야곱의 성격을 보면, 조금 차분하고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었던 거예요. 그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팥죽으로 사고, 그 다음에 아버지의 축복을 먼저 성취하려다가 또 선취했지요.
그건 인위적인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고 외삼촌 집에 가서 20년간 살면서 품값을 안줄 것 같으니까 얼룩덜룩한 양을 일부러 그렇게 태교를 시켜 가지고 자기 양을 많이 만듭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얍복 나루터에서 형 에서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인간적인 방법을 쓰지요. 전부 양떼와 짐승과 처자식들을 보내고 자기는 맨 뒤에 쳐져 남아있고 그렇게 하고 나중에 또 에서를 만나는데 "하나님 얼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부합니다.
그런데 곧장 가지 아니하고 이 창세기 33장 마지막 절에 보면 또 숙곳 이란 곳에서 먼저 짐승을 위하여 그저 겨우 제사를 드렸어요. 그런데 사고가 터지는 거예요.
34장에 보면 그의 딸 디나가 산보 나갔다가 그만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겁탈을 당합니다. 그리하여 세겜이 자기 부인을 삼으려고 하니까, 이 유다랑 야곱의 아들이 있다가 우리는 그냥은 결혼 못한다. 할례를 받아야지. 그래서 할례를 받고 3,4일간 요양 중에 있는 하몰의 아들 세겜 형제들을 가서 다 죽이는 거요. 벌집 쑤셔놓듯 사고가 터진 거요.
이러고 나서 지금 35장에 야곱이 결단하는 거요. 안되겠다. 내가 가려면 진작 갔었어야 하는 건데 내가 이렇게 벧엘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신앙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니까 이렇게 사고가 난다.
나는 올라가서 회개해야지 하면서 이방 신상을 버리고 옷을 바꿔 입고 목욕을 깨끗이 하고 올라가자 그랬어요.
여러분 오늘 예배드리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야곱의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린 순간 순간 회개해야 돼요. 회개해서 나쁠 게 없습니다.
마태복음 3장 8절에 보면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입에 바른 그냥 건성의 회개만 해선 안 되는 거요. 잘못했다고, 그러면 뉘우쳐서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이게 회개의 합당한 열매요. 10년을 다녀도 10년 전 신앙생활 하는 것과 다른 것이 없으면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좀 변화되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 이사야 1 : 11이하에 보면 "회개하라 너희들이 그냥 제물만 가지고서 내게 오는 것을 내가 외면해 버리겠다" 하면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그랬습니다.
순종은 회개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요. 여러분, 우리는 늘 이 회개치 못하도록 하는 마귀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아기 손에 장난감이 들려 있습니다. 한데 그것을 뺏는 방법이 있어요. 그것을 그냥 빼앗으려면 움켜쥐고 안 놔줍니다. 어떻게 하느냐 하면 커튼을 내리고 불을 약간 낮춰요. 그리고 아기를 품에 안고 손을 두드리면서 자장 자장 자장하고 자장가를 불러주면 잠을 자요. 손을 펴고 달라는 말을 안 해도 장난감을 놓고 맙니다.
마귀는 늘 우리에게 커튼을 내리도록 합니다. 불을 끄도록 합니다. 유혹합니다.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우리에게 쥐고 있는 것을 놓게 만듭니다. 우리 스스로 놓게 만들어요.
정말 열심을 냅시다. 금년 우리 교회 표어답게 우리가 열심을 냅시다. 여러분, 교회에 나와서 봉사하시는 분들, 물론 열심히 하시고, 또 집에서 하시는 분들도 열심히 하실 겁니다만, 안 하시는 분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금요일 밤에는 우리 교회 심야기도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회는 토요일 새벽 기도회까지 합쳐서 드립니다. 그래서 토요일 새벽에 제가 어느 교회 새벽기도회를 가봤어요. 죄송합니다. 제 눈이 막 뒤집혀지는 거예요. 어린아이들까지 특히 입시를 앞둔 학생들이 새벽기도에 나와 가지고 기도하고 책가방 들고 학교 가는 거예요.
여러분, 그 사람들이나 우리들이나 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다 같은 밥을 먹고 살아요. 여러분, 우리가 자꾸 느슨해지고, 이러는 가운데 마귀는 우리 손에 들려있는 모든 좋은 것을 자꾸 스스로 놓아버리도록 유혹합니다. 열심을 내십시다. 회개처럼 좋은 기도는 없습니다.
나는 기도할 게 없어 하지만, 여러분 자신을 돌이켜보면 지은 죄가 너무너무 더럽고 추악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마귀는 늘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아, 잠 좀 자. 몸 생각 혀. 심야기도가 뭔가, 성경을 뭘 읽어, 딱딱한 거. 아, 저 천천히 좀 해, 놀면서 해." 그렇게 몸 생각해서 좀 쉬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야곱도 마귀의 시험을 받고서 그 숙 곳에 있다가 그런 변을 당했거든요. 아니, 벧엘로 뭐 하러 올라가느냐고 여기가 좋은데, 짐승 생각해야지. 그래서 요리조리 돌다가 그 사고를 당한 거요.
여러분 마음속에 의롭게 영적으로 좀 살려고 애쓰는 결단을 막는 어떤 방해거리가 있으면 이건 마귀의 시험이다라고 생각하고 결심을 해야 합니다. 내가 벧엘로 올라가야지, 벧엘 중심의 신앙생활 해야지. 그러나 내 힘이 부족해. 여러분 언제 내 힘 가지고 내가 살아왔습니까. 주님의 손에 붙잡히면 내가 못할 것이 없지요.
여러분 나누어드린 그 유인물 찬송가 가사, 복음찬송 가사를 좀 보십시다. 참 이 가사가 좋고, 곡도 좋아서 복사를 해 여러분께 나누어 드린 것입니다.
'주님이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이여 날 도와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아, 우리 반주에 맞춰서 한번 뜻을 생각하며 불러보십시다. 잠깐 그 자리에 모두들 일어서 보십시오. 이 종이를 들고 옆의 사람들과 같이 보시고, 옆의 사람과 손잡고 뜻을 생각하시면서 불러보십시다.
옆 사람 손을 쥐어 보십시다. 느슨하게 쥐다가 점점 힘을 주어서 꼭, "아야" 소리가 날 때까지 한번 쥐어봐요. "아야" 꽉 쥐어요. 쥐면서 꼭 잡고 꼭 잡고 갑시다.
여러분 어린 애기를 꼭 끌어 안아줄 때 그 얼마나 갑갑하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좋아해요. 포근해 하고 꼭 끌어안아 주면 그렇게 좋아해요.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꼭 끌어안아 주면 좋아해요.
우리가 이렇게 손잡는 것도 요. 그냥 느슨하게 잡는 것보다 꽉 쥐면 아프지만 그렇게 좋아요. 든든하고요. 우리를 꼭 잡아주시면 불편할 것 같지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주님 날 좀 꼭 품어주세요. 내 손 꼭 잡아주세요. 할렐루야. 아멘."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서 그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거요. 오늘도 산지 사방에서 지금 이 제단에 오셨어요. 오기를 잘했지. 이 제단 사모하는 분들 특히 몸이 편찮으신 분들 막 엉엉 울어요. 그런 감격으로 드리는 예배와 불평하며 졸며 드리는 예배가 다르지요. 다르고 말고요.
주님 내 손을 꼭 잡아주소서. 붙잡아 주셨기에 이 제단에 나왔지. 주님 손 놓쳤으면 벌써 다른 데 갔을런지도 모르겠어요. 주님 내 손 꼭 붙잡아 주시옵소서. 꼭, 꼭 붙잡아 주시옵소서.
우리 다같이 눈을 감으십시다. 오늘 주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야곱처럼 우리도 험악한 세월을 보냈는데 제단 중심의 벧엘 중심의 신앙생활 하게 해주시옵소서 라고 통성 기도 합시다.
반주를 들어가면서 우리 자신을 돌이켜 주님 손에 꼭 붙잡혀 야곱의 벧엘 중심의 길을 우리도 걸어가게 하옵소서라고 같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야곱이 부모와 형제와 고향을 떠나서 객지에서 얼마나 많이 고생을 했는지. 생각해 보니, 이젠 벧엘로 올라가야겠다 해서 감사의 제단을 쌓고자, 순종의 제단을 쌓고자, 회개의 제단을 쌓고자, 벧엘로 올라가는 저 모습을 저희들 모습과 비교해 보면서 거기서 상원교회에서, 벧엘에서 내가, 야곱이 우리 본인들이 와서 예배 동참하고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해야겠다 하는 우리의 다짐이 이 노래 속에 있는 가사처럼 이루어지도록 주님 내 손잡고 잡되 꼭 잡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주님 앞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1993.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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