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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의 복

마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780 추천 수 0 2010.04.03 07: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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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4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산상수훈(2)

애통하는 자의 복 (마 5:4)

 

< 애통하는 자의 복 >

 일전에 한 백화점에서 어떤 여자가 물건 훔치는 것을 CCTV에서 봤다고 해서 백화점 경비요원들이 출동했다. 그리고 급히 그 여자를 연행하듯이 끌고 가서 사적으로 물건 훔친 것을 조사한다고 하면서 여자의 속옷까지 벗겼다. 경찰조차 영장 없이는 몸수색을 못하는 시대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여성이 얼마나 큰 모욕감을 느꼈겠는가? 그 일이 방송되면서 큰 사회적인 반향이 일어났다.

 며칠 전에 그와 유사한 일이 내게도 벌어졌다. 자주 다니던 집 근처의 ‘발리’란 사우나 장에서 내가 무단으로 헬스 시설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젊은 직원들이 나를 상대로 검사가 취조하듯이 나왔다. 이미 다 조사를 해보았고 “나를 헬스 시설에서 봤다.”는 증인도 몇 명 확보했다는 것이다.

 헬스 시설로 가려면 사우나 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3층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헬스장으로 가본 적이 없었고, 갈 시간도 없었다. 2006년쯤, 한 성도가 비전을 이루려면 건강을 위해 꼭 운동하라고 해서 1년 회원권을 끊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1년에 10번쯤밖에 가지 못했다. 헬스장을 이용하라고 사정해도 이용하지 못할 형편인데 그런 누명을 쓰고 너무 기가 막혔다.

 누명을 쓴 것도 기가 막혔지만 젊은 직원들이 보여준 오만불손한 태도에는 더욱 할 말이 안 나왔다. 아내가 답답해서 “저의 남편이 목회자입니다.”라고 하자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그 말을 듣고 더욱 충격 받았다.”는 얘기까지 했다. 또한 아내가 “만약 남편이 이용한 것이 사실이 아니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니까 매니저가 큰소리쳤다. “그러면 5억, 10억이든 배상하겠고 회사에서 어떤 책임이든 지겠다.”

 결국 나를 봤다는 사람도 불러내 따지고, CCTV도 검사하고, 여러 가지 상황을 판단해서 그들도 자신들의 판단미스임을 인정하고 결국 사과했다. 그 과정에서 당한 모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체험을 하면서 특별히 3가지를 감사했다. 첫째, 이제까지 살면서 더욱 큰 누명을 쓰지 않은 것이 감사했다. 살다 보면 “누가 봤다.”는 얘기로 살인자로 몰릴 수도 있는데 그런 큰 누명이 없었던 것이 감사했다. 둘째, 그마나 억울함을 변호할 수 있는 여건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지인들이 주위에 있고, 그나마 모든 상황이 결백이 증명되는 상황으로 된 것이 감사했다. 셋째, 고난 주간을 앞두고 주님의 억울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더 느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전 인류를 사랑했지만 도둑 바라바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수치스런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이 세상에 억울하기로 말하면 주님처럼 억울할 데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주님은 그 억울함을 참고 결국 인류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주님의 애통과 눈물은 결국 최종 승리로 귀결되었다. 이제 애통한 상황을 너무 슬퍼하지 말라. 그때 주님의 지극한 위로가 있을 것이다.

< 애통함이 복이 되는 이유 >

 주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어떻게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는가? 언뜻 보면 웃는 자가 복이 있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왜 그런가?

1. 심령이 가난해지기 때문이다

 애통은 심령이 가난한 표식이다. 더 나아가 심령을 가난하게 만든다. 왜 사람들이 애통해하는가? 자신의 부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족을 인식함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나님은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신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헌신을 해도 ‘자신의 공로에 대한 인식’보다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지금보다 더욱 애통이 나올 정도로 겸손해지라. 그래야 축복도 찾아온다.

 어느 날, 한 미국 여성이 독일에 있는 베토벤 박물관을 방문했다. 그녀는 그곳에 베토벤의 실물 피아노가 전시된 것을 보고 흥분했다. 그리고 박물관 관리인에게 그 피아노로 잠깐 연주할 수 있는지 묻고 슬쩍 팁을 주었다. 관리인이 허락해주자 그녀는 그 피아노로 월광 소나타의 첫 부분을 연주했다.

 황홀감에 젖어 잠깐 동안 연주하고 곧 피아노 곁을 떠나면서 관리인에게 말했다. “아저씨! 이곳을 찾는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은 이 피아노에서 한번쯤 연주하길 원하겠지요?” 그때 관리인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아니오. 몇 년 전, 폴란드의 최대 피아니스트인 파데렙스키가 왔는데 그는 자신이 그 피아노를 만질 가치조차 없다고 했어요.”

 위대한 사람은 대개 겸손하다. 주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셨는가? 스스로 죄인처럼 되신 것이다. 그 주님의 모습은 어떤 도전을 주는가? 주님이 스스로를 죄인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자기가 제일 옳다고 믿지 말라는 암시도 있다. 자기만 옳다고 하면 그로부터 주님의 향내 나는 삶은 나오지 않고 오히려 악취가 난다. 그러므로 남을 죄인이라고 하기 전에 항상 자신의 부족에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라.

2. 자신을 알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을 아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복된 삶은 자신을 볼 줄 아는 삶이다. 그런데 자신을 보게 하는 렌즈가 있다. 그것은 바로 ‘눈물의 렌즈’이다.

 멀리 보게 하는 것은 ‘망원경(telescope)’이라고 한다. 작은 것을 보게 하는 것을 ‘현미경(microscope)’, 둘러보게 하는 것은 ‘잠망경 혹은 회전 전망경(periscope)’이라고 하고, 안을 보게 하는 것은 ‘내시경(endoscope)’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신을 보게 하는 것은 ‘눈물경(tearscope)’이다. 물론 내가 만든 용어지만 자신을 보고 자신을 알게 하는 것으로서 ‘애통의 눈물’만큼 좋은 것은 없다.

 사람은 어느 순간에 착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흉악범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또한 사람은 어느 순간에 진실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그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기를 소원하면 그때 꼭 생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작은 죄에도 애통하는 것이다. 진실하게 살고 싶은데 그 소원을 거역하며 사는 자기의 부족이 속속들이 보이면 어떻게 애통함이 나오지 않는가? 그러나 그 애통이 바로 자신을 알게 하고 자신을 보게 하는 ‘서광’이다.

 자신의 영혼의 모습을 볼 줄 알고, 자기의 현재 위치를 깨닫고 애통하면 하늘의 놀라운 위로가 있다. 그때 하나님과의 관계도 바르게 된다. 산상팔복의 핵심 교훈이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사람이 애통하는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상대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추한 죄인인가를 깨닫기 때문이다. 결국 애통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나가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축복을 많이 받아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없으면 영혼은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얻지 못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자유를 누림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정립에 힘쓰라. 하나님 관계가 바르게 될 때 이웃 관계가 바르게 되고, 결국 자신 관계도 바르게 된다. 그런 바른 관계가 있어야 행복과 축복도 찾아온다.

 왜 고난이 한편으로 축복이 되는가? 대개 고난을 통해 애통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음은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이다. 얼마나 역설적인 말인가? 고난의 가치는 그것이 주는 고통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무엇인가 더욱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울어야 할 때는 울라. 자기를 위해서도 울고 남을 위해서도 울라. 누가 선교하는가? 애통할 줄 아는 자가 선교를 한다. 누가 십자가를 지는가? 애통하는 자가 십자가를 진다. 주님의 애통은 십자가를 지는 힘이 되었다. 사도 바울도 애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로마서 9장 3절에서 자기의 골육 친척을 위해서는 자기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좋다고 했다. 그처럼 애통할 줄 아는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의 최고의 위로와 사랑을 받는다.

3. 진실한 기도를 배우기 때문이다

 애통은 기도하게 만든다. 애통이 기도로 변한다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제 힘들고 억울하고 고통스런 일을 당하면 그 에너지를 기도로 승화시키라. 절망의 밤을 기도의 밤으로 바꾸라. 누구에게나 새벽이 찾아오지만 사람마다 맞이하는 새벽은 다르다. 충분한 숙면을 취한 사람이 맞이하는 새벽과 뜬눈으로 밤을 새운 사람이 맞이하는 새벽은 전혀 다르다. 기도 없이 맞이하는 새벽과 기도로 씨름하다가 맞이하는 새벽은 같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그리고 예고 없이 절망의 밤을 만난다. 왜 절망의 밤이 찾아오는가? 모든 절망은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라는 싸인이다. 아침햇살이 비치면 자욱한 안개가 걷히듯이 기도의 무릎이 세워지면 절망의 기운은 사라진다. 결국 성도에게 가장 큰 절망은 ‘절망 중에도 애통하며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기도하는 성도에게 절대절망은 없다. 하나님은 기도하도록 잠시 절망을 허용하신 것이다. 기도와 절망은 양립하지 못한다. 기도가 없으면 절망이 찾아오고 기도가 있으면 절망이 사라진다. 결국 삶의 최대 위기는 기도가 없는 것이고, 병 중에 최대 병은 기도가 없는 병이다. 왜 애통이 축복인가? 애통이 기도로 이끄는 최고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기도가 없는 삶은 호흡이 없는 삶과 같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도하라고 절망과 애통의 밤을 지나게 하신다. 애통이 없고도 기도를 잘하면 좋겠지만 사람은 대개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애통이 필요하다. 이제 실패와 상처와 외로움으로 낙심하지 말고, 사람에 대한 기대도 버리라. 힘들 때는 애통하면서 절망의 밤을 기도의 밤으로 승화시키라. 그러면 곧 소망의 항구로 나가게 된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밤새 씨름했던 기도의 결과로 야곱에 맞이한 새벽은 어느 때보다도 눈부셨을 것이다. 잠이 안 오면 야곱처럼 기도로 씨름하며 새벽을 맞고, 히스기야처럼 벽을 향한 집중 기도로 새벽을 맞고, 한나처럼 눈물의 기도로 새벽을 기다리라. 절망의 밤을 고민과 분노와 자책으로 지새우면 새벽은 또 다른 어둠의 연장이다. 기도 없는 절망의 밤은 새벽을 더디 오게 하지만 애통하며 기도하는 밤은 새벽의 여명을 앞당겨 준다.

 기도를 못하는 것에 대한 어떤 핑계도 버리라.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인생의 승리가 보장된다. 사람 앞에서 말도 안 하고 “뚱!”하면 환영을 못 받듯이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말하지 않는 심령은 환영 받지 못한다. 사람은 대개 쉼과 에너지로 살지만 성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산다. 그러므로 기도를 도중에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떤 합리화도 구상하지 말라.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 되라. 기도 없이 맞이하는 새벽은 찬란하지 않다. 기도로 아침을 맞아야 아침이 찬란해진다. 누가 밤중에도 아침을 사는가? 기도하는 사람이다. 누가 아침에도 밤을 사는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다. 인생의 내용은 기도로 좌우된다. 새벽의 내용도 기도로 좌우된다. 기도 없이 뒤척이며 밤을 새우는 것도 문제지만 기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새벽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늘의 만나’를 취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절망 중에도 기도의 무릎을 앞세워 절망을 지치게 하고 소망의 바다로 나가라. 그곳에서 주님은 기도의 눈물과 땀으로 범벅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 주님의 기다림은 오래 전부터 계속되었다. 주님은 오래도록 일방적으로 우리를 짝사랑하셨다. 그런 상황에서 기도하지 못한 것을 애통해하고, 기도로 애통해하라. 그처럼 애통하며 기도할 때 하늘의 놀라운 위로가 주어질 것이다.  

4. 진정한 친구를 얻기 때문이다

 애통한 순간을 만날 때 어떤 친구는 내 곁을 떠난다. 반면에 어떤 친구는 내 곁을 지켜준다. 결국 애통은 진정한 친구를 얻게 하는 시금석이다. 교회가 애통한 순간을 만나면 그때 진짜 목자를 얻게 하고, 진짜 교인을 얻게 한다. 그처럼 애통한 순간을 통해 내 곁에 함께 있어주고 마음을 함께 해주는 진정한 친구를 얻을 수 있다면 애통한 순간을 10번, 100번이라도 환영할 수 있다.

 힘들 때 누군가 “요즘 많이 힘들지요?”라고 하며 그 힘든 것을 알아주면 덜 힘들다. 아파도 누군가 같이 울어주면 덜 아프고, 배고파도 누군가 함께 해주면 때로는 배부를 때보다 더 행복하다. 반면에 힘들고 아플 때 아무도 몰라주면 더 힘들고 아프다. 배고플 때 누군가 배를 두드리면 더 허기진다. 결국 사람이 힘든 이유는 내 곁에 아무도 없어서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이 들기에 힘든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배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 배고픔의 통증보다 나를 배고프도록 방치한 세상과 이웃의 대한 서운함이 더 크다. 절망은 죽음의 이르는 병이라고 하지만 외로움과 소외감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침묵을 통해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왜 하나님은 이런 중요한 때에 침묵하실까?” 그 침묵의 고통이 문제의 고통보다 더 크다. 그때는 자신이 하나님께도 사랑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기도하다 지쳐 잠든 후에 내일은 오늘과 다를 줄 기대했는데 아침이 되니까 어제의 문제가 여전히 오늘의 문제로 다가올 때 영혼은 깊은 수렁에 빠진다. 바로 그때 누군가 찾아와 축 처진 어깨를 감싸며 “많이 힘들지?”라고 하면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새 힘을 얻는다. 그때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때는 좋아진 것도 없고 해결된 것도 없는데 그 위로가 꿀맛 같이 느껴진다.

 이제 내 곁에 같이 있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기뻐하고 감사하고 행복해하라. 사람은 배고파 죽는 것이 아니고 외로워 죽는 것이다. 또한 병들고 힘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고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해서 죽는 것이다. 사람은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었다. 힘들어도 더불어 힘들면 괜찮고, 죽어도 더불어 죽으면 괜찮다. 태산 같은 문제가 있어도 더불어 산을 넘으면 오히려 태산길이 흥미진진해지고, 한 겨울 칼바람에도 누군가 함께 있으면 한여름처럼 따뜻해진다.

 사람은 사소한 것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또한 사소한 것으로 힘을 얻기도 하고 힘을 잃기도 한다. 어떤 때는 어른도 유치원생처럼 유치하다. 주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리라 하다가도 말 한 마디에 상처를 받고 무너진다. 평생을 남을 위해 헌신하리라 다짐하다가도 억울한 누명에 정신을 잃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 필요하고, 하나님을 버선발로 달려오시게 할 애통이 필요한 것이다.

< 사랑과 눈물을 회복하라 >

 이제 서로 위로해주라. 서로 위로의 문자 메시지도 보내주라. 한번 위로를 받으면 두 번 위로를 주고, 한번 위로의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본인은 두 번 문자메시지를 주라. 물질 문제처럼 위로 문제에서도 받기보다는 주기를 힘쓰라. 내 격려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살린다. 심지어는 나 자신도 살린다. 내가 위로해주었는데 오히려 내 영혼이 사는 축복이 바로 하나님이 감춰두신 역설적이고 신비한 축복의 원리이다.

 부부끼리도 서로 위로해주라. “여보! 고생시켜서 미안해요! 내가 조금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 말이 마음의 천 냥 빚을 갚는다. 부자간에도 서로 위로해주라. “얘들아 힘들게 해서 미안하구나! 엄마아빠! 힘들게 해서 죄송해요!” 그때 그 가정이 얼마나 행복해지겠는가? 교회에서도 목회자와 성도가 서로에게 “집사님! 목사님! 별로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라고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고백하면 그때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것이고 바로 그곳에 지상천국이 펼쳐질 것이다.

 이제 사랑의 눈물을 회복하라. 애통의 눈물을 사랑의 눈물로 승화시키라. 전설에 의하면 사도 요한은 말년에 에베소 교회의 담임목사로 있으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설교했다고 한다. 그때 교인들이 질문했다. “요한 사도님! 왜 매번 사랑만 설교하세요?” 그때 사도 요한이 말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배운 것이나 다름없네.” 그 사도 요한의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다.

 주님은 첫 사랑의 눈물이 회복되길 원한다. 눈물은 육체와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최고의 강장제이고, 이미 병든 영혼과 육신까지 치료하는 최선의 치료제이다. 눈물로 하나님께 매달릴 때 기적을 많이 체험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관계나 신앙이 메마르게 된 것은 눈물이 없기 때문이다. 우는 것도 잘하라. 예수님도 항상 기뻐하며 사셨지만 때때로 우셨고, 또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제 눈물을 찾으라. 감격적인 눈물을 줄만한 좋은 영화나 책, TV 프로그램이 있으면 반드시 보라. 이산가족 상봉 장면도 많이 보고, 그늘진 곳을 항상 살피며, 타 문화권에서 문화충격을 딛고 어렵게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의 형편에 항상 깊은 관심을 기울이라. 그처럼 수시로 빠지려는 ‘눈물의 렌즈’를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 무엇보다도 무수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회개하며 애통하는 눈물을 회복하라.

 가끔 답답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진정되고 시원해진다. 그런 눈물도 귀하지만 그 눈물보다 더 귀한 눈물이 바로 회개의 눈물이다. 회개의 눈물은 잃었던 첫 사랑도 찾게 하고 병도 극적으로 치유시켜준다. 이제 눈물을 회복해 잠도 잘 자고, 피도 맑아지고, 뼈도 튼튼해지고, 관계도 회복되는 축복을 받으라. 그처럼 첫 사랑의 눈물을 회복하면 모든 얽혔던 문제도 신기하게 풀릴 것이다. 항상 애통하는 심령에서 비롯된 넘치는 사랑을 통해 놀라운 생명력과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며 살라.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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