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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9: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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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신생교회 http://www.bamjoongsori.org 2005.6.26 |
[민병석 잠언 강해] 18
지혜의 향연 ( 본문 : 잠언 9 : 1 - 10 )
오늘 밤 잠언 강해 시간에는 지혜의 향연, 곧 지혜의 잔치란 말씀으로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잠언에 나오는 지혜란 하나의 인격체로 나오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잠언 9장에서는 이 지혜가 인류를 초청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죄인들을 초청하는 모습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11:28절에 나오는 초청은 너무나도 유명한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사55:1-3절에 나오는 목마른 자들의 초청도 같은 말씀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목마른 자들이란 인생길에서 쉴 곳이 없이 피곤하고 지친 자들을 의미하며 포도주와 젖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계22:17절에 나오는 말씀은 온 인류들에게 주시는 마지막 초청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1. 지혜가 준비한 잔치
오늘 본문 1절에서 6절에 걸쳐 나오는 말씀은 초청 객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지혜의 향연입니다. 이 향연은 마치 마22장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들려주신 어느 한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한 혼인 잔치에 초청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마22: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주신 1절로 6절까지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놀라운 은혜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혜가 그 집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지혜가 지은 집은 이 땅에 그리스도로 세워진 집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자신이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시어 죄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죄인들을 피로 값 주고 당신의 것으로 소유하심으로 우리로 당신의 몸의 지체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그 지체의 머리가 되심으로 교회를 이루신 것입니다.
1절에서 지혜로 지은 집에 대해서 ‘일곱 기둥을 다듬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일곱 기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첫째 일곱이란 하나님의 안식의 숫자입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레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안식을 축복하셨습니다. 이 안식일에 대한 축복은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하는 축복으로 이 일에 참 의미는 안식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영원한 안식 세계인 천국에 있다는 사실을 히4:4-11절에서 밝혀 주셨습니다.
안식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으나 이 안식에 들어갈 사람이 있고 들어가지 못할 사람도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원했던 가나안은 안식의 땅이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준 가나안 안식은 제 칠일 안식이 아니라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히4:9절에서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에 들어간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지극히 영화로운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하는 축복인 것입니다.
계14:13절에 나오는 주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자에 대한 복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에 대하여 그렇게 두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죽음에는 소망이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며 되새기면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오히려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셋째 하늘로 표현된 이 안식 세계에 직접 가 본 일이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몸을 떠나 그곳에 가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사모했습니다.
그러면 안식에는 누가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처럼 복음 전함을 먼저 들었지만 그 들은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이 유익 되지 못했다는 말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공식이 있습니다. 말씀 + 믿음 = 안식 이런 공식입니다. 그러나 말씀 - 믿음 =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온 사람들은 천국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지만 광야에서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기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천국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신 말씀은 순종의 열매를 맺기 위해 힘쓰는 생활을 하라는 권면입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순종하는 생활이 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 곧 순종하는 생활은 우리가 힘써야 가능한 것입니다. 힘쓰는 일이 없으면 순종하는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쳐놓고 자신의 생각과 육신이 요구하는 일에 포로가 되어 육신이 이것을 원하면 이것을 따라가고 저것을 원하면 또 저것을 따라가는 생활을 한다면 언제 이런 사람들이 말씀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를 힘쓰는 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생활이 우리에게 인생의 승리를 안겨줍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일곱 기둥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의 안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교회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안식의 모형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몸이요 교회의 머리가 되시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교회만이 안식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복된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는 이처럼 하나님의 안식이신 7 기둥으로 다듬은 집인데 이 집 안에는 무엇이 준비되고 있는 것입니까?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었다고 한 것입니다. 이 호화로운 잔칫상은 교회에서 구원을 위해 베풀어주는 영적 양식을 의미합니다. 짐승을 잡았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회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혀진 영원한 원수의 담을 허시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화목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제물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그 몸을 찢으신 것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니 내 죄 값으로 내 대신 죽어 주실 속죄 제물이 필요했으며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으므로 내대신 피를 흘려 내 죄를 사해 줄 속죄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제물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처럼 그 아들의 몸으로 화목제물을 삼으시고 그의 피로 속죄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 잔치에 초청하신 것입니다. 이 초청에 대하여 요6:55절에서 이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이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이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
그리고 이 향연에는 포도주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포도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씀하기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사람이 거듭날 수 없습니다. 팔만대장경의 부피는 성경보다 엄청납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불경을 통독한다고 해도 구원은 고사하고 자신들이 말하는 인간 번뇌에서조차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 길은 믿음인데 그 믿음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 생명을 성장시켜 줍니다. 벧전2:2절에서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순정하고 신령한 젖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2. 교회의 세 가지 요소
교회에는 세 가지 요소가 구비되어 있어야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7 기둥으로 다음어진 교회라야 합니다. 지금 여러 곳에 세워진 맘모스 교회의 화려한 겉모양을 가리킨 표현이 아닙니다. 다만 몇 평 안 되는 판잣집에 세워진 성전이라도 하늘의 안식에 소망을 두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이 안식의 소망을 스스로 상실해 버렸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주는 대신에 땅의 소망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곱 기둥으로 다듬어진 교회를 기뻐하십니다. 우리 신생교회는 비록 작은 교회지만 일곱 기둥으로 다음어진 교회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에 교회에는 짐승으로 나타난 어린양이 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교회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시간 시간마다 그의 화목제물과 속죄제물이 드려지는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이 제물은 주의 종의 입의 말씀으로 모든 성도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살을 하늘의 양식으로 먹게 하고 그리스도의 피를 속죄의 음료로 마시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일곱 기둥으로 다듬어진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강단에서 이런 예수가 살아지면 하나님과의 화목제물도 없는 교회, 속죄 제물도 없는 교회가 되어 버립니다.
이적을 따르는 교회는 이적 때문에 일곱 기둥이 무너집니다. 기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져야지 이적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지혜를 따르는 교회는 그 지혜로 인하여 일곱 기둥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기둥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로 세워져야지 세상 지혜로 세워진 교회의 기둥은 무너집니다. 요즘 목사님들 중, 박사 학위를 받는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모릅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시찰회만 해도 젊은 목사, 나이 든 목사 할 것 없이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노회 행사나 시찰회 행사 때 가보면 박사 가운을 입고 단에 올라서는데 이 민목사는 나이는 들었는데 그냥 목사 가운을 입었습니다. 언제인가 어떤 목사님이 민목사님이 박사학위를 받으셔야죠. 책을 십여 권씩 저술하셨는데 박사 학위 받기에 그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외국에 잘 아는 신학대학이 있으니 자기가 힘쓰면 돈 몇 푼 안들여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박사학위를 돈 주고 삽니다. 그리고는 목사님이라고 불러주기보다 박사님 칭호를 듣기를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한심스러운 현상입니다.
박사 아니면 목사들도 행세를 못합니다. 그러나 목사님들이 박사 학위를 갖는 일은 허영에 불과합니다. 저는 목회하는 동안은 박사 학위를 받지 않으려고 오래전부터 결심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교회에는 포도주인 진리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이 진리의 말씀에서 떠나게 된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딤후4:3절에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풍조는 지금도 만연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참된 영의 양식을 듣기를 즐겨 하지 않고 먹기를 싫어합니다. 육신의 사욕을 좇는 일에 유익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을 좋아합니다. 육신의 소망을 이루는 설교에 매력을 가집니다.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연결이 안 되는 말씀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영적 생명을 잃고 육적 생명에 풍족한 은혜를 받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신생교회는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교회가 아니라 주의 재림과 천국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서의 시련과 어려움과 고통을 믿음으로 이기며 승리하는 교회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결론 : 우리는 이런 교회를 이루어 참된 생명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초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집을 구성하는 지체들입니다. 화목제물 되신 그리스도와 한 지체가 되어야 합니다. 속죄제물이신 그리스도와 하나의 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곱 기둥으로 다듬어진 집에서 짐승과 포도주로 차린 참 생명의 양식으로 배불림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저 안식의 소망을 바라보시고 매일같이 주님의 피와 살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므로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늘의 생명을 얻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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