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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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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창11:1-12:9 |
|---|---|
| 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본문/ 창11:1 - 12:9
1. 들어가는 이야기 /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끔 빠지는 오류는 성경의 장, 절 구분을 너무 존중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의 章은 1226년 캔터베리 대주교 Stephen Lanton이 구분 하였고, 節은 1551년 인쇄업자인 Robert Estienne가 리용에서 파리로 마차 여행을 하는 동안 구분하여 놓은 것입니다. ( How to Read The Old Testament p.7 ). 실제로 창1장은 2장3절까지를 1장으로 구분 하여야 퍽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본문도 그런 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바벨탑 이야기와 아브라함의 소명 기사를 전혀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여 왔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따로따로 설교하고 해석하여 왔습니다. 왜냐하면 바벨탑 이야기는 11장이고 아브라함 사건은 12장에 있기 때문에 바벨탑 이야기와 아브라함 소명 사건을 연장선 상에서 보기 보다는 장이 다르다는 선입관 때문에 각각 별개의 기사로 취급하여 온 것입니다.
2. 起 / 그런데 바벨탑 이야기와 아브라함 소명 사건을 장 구별을 무시하고 연속성 상에서 읽으면 뚜렷한 연결점들이 발견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무슨 상세한 주석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 뚜렷한 점을 드러냄으로 이 두 사건은 별개로 취급 할 사건이 아니고 하나로 꿰어져 있는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신 자연스럽다는 것을 밝혀보자는 것입니다. 그 뚜렷한 공통점은 바벨탑 이야기에서 취급되는 주제와 아브라함 사건에서 취급되는 주제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창11:1-4를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다. 바벨탑을 짓고자한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땅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들은 시날 평지를 택하였습니다. 넓은 땅입니다. 광대하고 살기 좋은 땅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둘째, 이름의 문제입니다. 성과 대를 쌓아 그 이름을 온 천하에 내자고 하였습니다. 셋째, 큰 민족의 문제입니다.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습니다. 흩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연히 큰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창12:1-4를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주신 축복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 땅에 관한 문제입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둘째, 이름의 문제입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큰 민족의 문제입니다. 너로부터 시작하여 네 자손이 밤 하늘의 별과 같이 되게하겠노라고 약속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3. 承 / 우리는 여기서 바벨탑 사건과 아브라함 사건은 별개의 기록이 아니라 연속선 상에 있는 기록인 것을 분명하게 감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더욱 확실한 증거는 바벨탑 사건 이후 창11:10-32의 셈의 족보입니다. 창10장에 이미 야벳과 함과 셈의 족보가 다 나옵니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 이후 유독 셈의 족보만 다시 반복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브라함 사건과 바벨탑 사건을 연결 시켜주는 고리 역할을 튼튼히 수행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4. 轉 / 우리는 흔히 인간 세상의 언어가 이 처럼 달라진 것은 바벨탑 사건 이후라고 말하고 또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그렇치 않습니다. 11장 앞 10장에 이미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들의 삶의 터전과 언어가 다 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창10:5, 20, 31, 각기 지방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 이었더라 ).
그렇다면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언어가 달라진 유래를 가르쳐 주시려는 의도에서 기록하신 말씀이 아니라, 보다 깊은 뜻이 있는 의도에서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비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 바벨탑 이야기가 원래 아브라함 소명 사건의 전주곡으로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땅과 이름과 큰 민족 곧 내 자손의 번성입니다. 성경은 소설이 아닙니다. 성경은 길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은 돌려 말씀하지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말씀합니다. 사람이 바라는 것은 복입니다. 복이란 철학적, 심리학적, 종교적 각가지 이론과 주석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만 그런 높은 이론과 학적 해석은 그런 분야를 전공하신 분들의 몫이고, 실제 시장 터에서 몸 부대끼며 사는 사람, 하루하루 스트레스 받으며 사는 사람, 자식문제, 결혼문제, 취직문제, 노후문제, 직장 생활의 불안 속에서 사는 현실적 사람들에게 있어서 복이란 무엇입니까? 현실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 배 부르고 등 따스한 삶 >아니겠습니까?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이 원하였던 것도 별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바로 그런 복된 삶이었습니다. 곧, 그들도 오늘날의 우리들과 꼭 마찬가지로 뿌리박고 살 땅과 명예로운 이름과 넓게 말하여 큰 나라, 좁게 말하여 번성한 가정을 이루고자 한 것입니다.
5. 結 / 그런데 바벨탑을 중심으로 한 번 잘 살아보고자 하였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셔서 그들을 흩으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라 실제 역사인 아브라함 사건을 잘 설명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로 바벨탑을 쌓으려던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저주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다만 흩어진 것 뿐입니다. 그리하여 탑 샇는 일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 바벨탑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 하나님 없이는 복도 없다 >는 것입니다. 사람끼리 모여서 아무리 지혜를 짜내서 복을 누리려고 하여도 그 결과는 실패 뿐임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께 이런 질문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 하나님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 알았다. 내가 이제부터 한 사람의 삶의 여정을 보여 주리니 이 사람이 살아간 삶의 궤적이 곧 네가 그토록 원하는 땅과 자손과 이름이 창대케 되는 그 복을 받는 비결인 것이니라 >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6. 마치는 이야기 / 나는 축복 받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바벨탑 사람들 처럼 살지 말라. 아브라함 처럼 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길래? < 아브라함은 가는 곳 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라 > 아 멘.
1. 들어가는 이야기 /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끔 빠지는 오류는 성경의 장, 절 구분을 너무 존중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의 章은 1226년 캔터베리 대주교 Stephen Lanton이 구분 하였고, 節은 1551년 인쇄업자인 Robert Estienne가 리용에서 파리로 마차 여행을 하는 동안 구분하여 놓은 것입니다. ( How to Read The Old Testament p.7 ). 실제로 창1장은 2장3절까지를 1장으로 구분 하여야 퍽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본문도 그런 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바벨탑 이야기와 아브라함의 소명 기사를 전혀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여 왔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따로따로 설교하고 해석하여 왔습니다. 왜냐하면 바벨탑 이야기는 11장이고 아브라함 사건은 12장에 있기 때문에 바벨탑 이야기와 아브라함 소명 사건을 연장선 상에서 보기 보다는 장이 다르다는 선입관 때문에 각각 별개의 기사로 취급하여 온 것입니다.
2. 起 / 그런데 바벨탑 이야기와 아브라함 소명 사건을 장 구별을 무시하고 연속성 상에서 읽으면 뚜렷한 연결점들이 발견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무슨 상세한 주석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 뚜렷한 점을 드러냄으로 이 두 사건은 별개로 취급 할 사건이 아니고 하나로 꿰어져 있는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신 자연스럽다는 것을 밝혀보자는 것입니다. 그 뚜렷한 공통점은 바벨탑 이야기에서 취급되는 주제와 아브라함 사건에서 취급되는 주제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창11:1-4를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다. 바벨탑을 짓고자한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땅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들은 시날 평지를 택하였습니다. 넓은 땅입니다. 광대하고 살기 좋은 땅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둘째, 이름의 문제입니다. 성과 대를 쌓아 그 이름을 온 천하에 내자고 하였습니다. 셋째, 큰 민족의 문제입니다.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습니다. 흩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연히 큰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창12:1-4를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주신 축복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 땅에 관한 문제입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둘째, 이름의 문제입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큰 민족의 문제입니다. 너로부터 시작하여 네 자손이 밤 하늘의 별과 같이 되게하겠노라고 약속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3. 承 / 우리는 여기서 바벨탑 사건과 아브라함 사건은 별개의 기록이 아니라 연속선 상에 있는 기록인 것을 분명하게 감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더욱 확실한 증거는 바벨탑 사건 이후 창11:10-32의 셈의 족보입니다. 창10장에 이미 야벳과 함과 셈의 족보가 다 나옵니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 이후 유독 셈의 족보만 다시 반복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브라함 사건과 바벨탑 사건을 연결 시켜주는 고리 역할을 튼튼히 수행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4. 轉 / 우리는 흔히 인간 세상의 언어가 이 처럼 달라진 것은 바벨탑 사건 이후라고 말하고 또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그렇치 않습니다. 11장 앞 10장에 이미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들의 삶의 터전과 언어가 다 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창10:5, 20, 31, 각기 지방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 이었더라 ).
그렇다면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언어가 달라진 유래를 가르쳐 주시려는 의도에서 기록하신 말씀이 아니라, 보다 깊은 뜻이 있는 의도에서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비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 바벨탑 이야기가 원래 아브라함 소명 사건의 전주곡으로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땅과 이름과 큰 민족 곧 내 자손의 번성입니다. 성경은 소설이 아닙니다. 성경은 길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은 돌려 말씀하지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말씀합니다. 사람이 바라는 것은 복입니다. 복이란 철학적, 심리학적, 종교적 각가지 이론과 주석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만 그런 높은 이론과 학적 해석은 그런 분야를 전공하신 분들의 몫이고, 실제 시장 터에서 몸 부대끼며 사는 사람, 하루하루 스트레스 받으며 사는 사람, 자식문제, 결혼문제, 취직문제, 노후문제, 직장 생활의 불안 속에서 사는 현실적 사람들에게 있어서 복이란 무엇입니까? 현실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 배 부르고 등 따스한 삶 >아니겠습니까?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이 원하였던 것도 별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바로 그런 복된 삶이었습니다. 곧, 그들도 오늘날의 우리들과 꼭 마찬가지로 뿌리박고 살 땅과 명예로운 이름과 넓게 말하여 큰 나라, 좁게 말하여 번성한 가정을 이루고자 한 것입니다.
5. 結 / 그런데 바벨탑을 중심으로 한 번 잘 살아보고자 하였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셔서 그들을 흩으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라 실제 역사인 아브라함 사건을 잘 설명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로 바벨탑을 쌓으려던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저주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다만 흩어진 것 뿐입니다. 그리하여 탑 샇는 일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 바벨탑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 하나님 없이는 복도 없다 >는 것입니다. 사람끼리 모여서 아무리 지혜를 짜내서 복을 누리려고 하여도 그 결과는 실패 뿐임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께 이런 질문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 하나님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 알았다. 내가 이제부터 한 사람의 삶의 여정을 보여 주리니 이 사람이 살아간 삶의 궤적이 곧 네가 그토록 원하는 땅과 자손과 이름이 창대케 되는 그 복을 받는 비결인 것이니라 >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6. 마치는 이야기 / 나는 축복 받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바벨탑 사람들 처럼 살지 말라. 아브라함 처럼 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길래? < 아브라함은 가는 곳 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라 >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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