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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왕상17:1-24 |
|---|---|
| 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본문/ 왕상17:1-24
1. 들어가는 이야기 / 大學의 經文에 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 라고 하였습니다(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 ). 이 세상 모든 이치에는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이 있으며, 이 세상 모든 일에는 시작 점과 마침 점이 있다. 따라서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알고 행한다면 최선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시험을 앞에 둔 학생이 먼저 놀고 공부하느냐, 아니면 먼저 공부하고 노느냐의 문제입니다. 아버지로부터 갑짜기 회사를 물려 받은 아들이 먼저 차 바꾸기와 예쁜 비서에 관심을 두느냐, 아니면 업무 파악 부터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도로 포장 공사를 하는데 먼저 포장 부터하느냐, 아니면 수도관, 전선, 가스관 배설부터 하고나서 포장을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 할 일이 있습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그 고생과 허비하는 시간과 경비 그리고 심리적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본문은 우리 신앙인의 삶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그 결과 받은 축복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의 기록입니다.
2. 起 위기의 시대 / 북 이스라엘 아합 왕은 사마리아에서 22년 동안 통치하였고,그 아내는 이방인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이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몹씨 간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음모와 폭력으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위한 신전을 지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도록 유도하고 조장한 사람들입니다. 아합 왕 때에 북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지자는 엘리야 한 사람 뿐이요, 바알 선지자는 450, 아세라 선지자는 400 이었다는 기록을 보아도 당시의 형편이 어떻하였던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왕상18:19-22 ). 사람은 재앙을 만나면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존재입니다. 사사기는 이 전통을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하고 범죄 할 때 마다 혹 메소포타미아로, 혹, 미디안으로, 혹 블레셋으로 이스라엘을 괴롭게하여 스스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3년6개월 동안의 < 큰 가뭄 >의 쟁앙을 내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토록 하신 것입니다.
3. 承 핍박 받는 엘리야 선지자와 사르밧 과부 / 아합 왕은 회개하기보다는 이 큰 가뭄의 재앙이 엘리야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갈멜산의 대영웅으로 쓰시기로 예비한 엘리야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로 떡과 고기를 공급케 하십니다. 가뭄의 재앙이 점점 심해져서 마침내 그릿 시냇가도 마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이방인의 땅 시돈의 사르밧 과부에게로 보냅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성문 어귀에 이르러 땔나무를 줍는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 여인이 바로 여호와 이레의 사르밧 과부였습니다. 엘리야는 그 여인에게 냉수 한 대접을 請합니다. 그 여인이 물을 떠오려고 돌이켜 우물가로 향하여 갈 때에 엘리야가 그 여인을 다시 불러 세웁니다. 엘리야는 정중하게 부탁합니다. < 여인이여 물만 가져올 것이 아니라 내가 몹시 시장하니 떡 한덩이도 함께 가져다 주기를 부탁 드리오 >
4. 轉 먼저 내게 가져오라 / 이 부탁을 받은 사르밧 여인은 매우 난처해 합니다. 이 여인의 형편이 매우 딱합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은 과부로서 외아들과 심히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 과부 여인이 하는 말이 < 나는 떡이 없습니다. 다만 쌀독에 쌀 한 웅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오늘 나와 내 외아들이 마지막 저녁을 지어 먹고 그 후에는 굶어 죽을 판이라 대접 할 여유가 없습니다. 심히 죄송합니다 >. 이 말을 듣고 엘리야는 < 그럼 됐습니다. 내 어디 딴 사람에게 부탁하여 보지요 >라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혀 엉뚱한 말을 합니다. < 부인, 사정은 잘 알았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건대 먼저 내게 떡 한덩이를 가져다 주오. 그 후에 부인과 부인의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잡수시오. 굶어 죽을 염려는 아예하지 마시오 >. 이 말을 들은 사르밧 과부는 그대로 믿고 순종 합니다.
5. 結 그 과부가 받은 축복 / 자신은 먹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까지 굶길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과부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먼저 한 덩어리의 떡을 따뜻하게 만들어 공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부는 당장 다음날부터 굶을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왕상17: 16을 보면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여 그 굶주림의 가난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과부는 아들의 생명을 되찾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연인 즉은 그 과부의 외아들이 갑짜기 심한 병에 걸려 덜컥 죽고 말았습니다. 그 과부는 엘리야를 붙들고 탄식하고, 원망하고, 애원합니다. < 살려주십시오. 내 아들을! >. 엘리야는 이 과부의 죽은 아들을 온 몸으로 부등켜 안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내가 숨어 의지하여 사는 이 과부의 아들에게 재앙을 내려 죽게 하십니까 !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아들의 혼으로 그 몸에 다시 돌아가게 하시니 그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엘리야는 그 아들을 과부에게 돌려 줍니다. 그 과부는 엘리야에게 백배 감사하고 엘리야의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6. 마치는 이야기 / 여기 사르밧 과부는 자기 코가 석자인데도 먼저 하나님의 사람에게 바치므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네가 얻은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 가장 귀한 것, 제일 첫 번째 맏물을 가장 우선적으로 먼저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네것부터 챙길 것이 아니라 나에게 먼저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우선 먼저 나에게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신다고 하십니다. 합리적 사고로 단단히 무장된 현대의 신자들의 마음 속에는 < 과연 그럴까?, 혹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치부하기 위한 속임수를 쓴 것은 아닐까? 당장 나 살기도 바쁜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등등의 상념들이 오락가락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 좀 보십시오. 무엇이라고 합리적으로 설명 할 수는 없는데 기독교 역사상 참으로 묘하고 신기한 것은 < 먼저 하나님께 바치고 사는 사람치고 못사는 사람은 없다 >는 것입니다. 누구누구라고 이름을 거명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도 먼저 하나님께 바치면서 사는 사람이 과연 축복 받고 사는구나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사르밧 과부 역시 하나님과 그 분의 종에게 먼저 바침으로 큰 축복을 받은 허다한 증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1. 들어가는 이야기 / 大學의 經文에 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 라고 하였습니다(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 ). 이 세상 모든 이치에는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이 있으며, 이 세상 모든 일에는 시작 점과 마침 점이 있다. 따라서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알고 행한다면 최선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시험을 앞에 둔 학생이 먼저 놀고 공부하느냐, 아니면 먼저 공부하고 노느냐의 문제입니다. 아버지로부터 갑짜기 회사를 물려 받은 아들이 먼저 차 바꾸기와 예쁜 비서에 관심을 두느냐, 아니면 업무 파악 부터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도로 포장 공사를 하는데 먼저 포장 부터하느냐, 아니면 수도관, 전선, 가스관 배설부터 하고나서 포장을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 할 일이 있습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그 고생과 허비하는 시간과 경비 그리고 심리적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본문은 우리 신앙인의 삶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그 결과 받은 축복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의 기록입니다.
2. 起 위기의 시대 / 북 이스라엘 아합 왕은 사마리아에서 22년 동안 통치하였고,그 아내는 이방인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이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몹씨 간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음모와 폭력으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위한 신전을 지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도록 유도하고 조장한 사람들입니다. 아합 왕 때에 북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지자는 엘리야 한 사람 뿐이요, 바알 선지자는 450, 아세라 선지자는 400 이었다는 기록을 보아도 당시의 형편이 어떻하였던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왕상18:19-22 ). 사람은 재앙을 만나면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존재입니다. 사사기는 이 전통을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하고 범죄 할 때 마다 혹 메소포타미아로, 혹, 미디안으로, 혹 블레셋으로 이스라엘을 괴롭게하여 스스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3년6개월 동안의 < 큰 가뭄 >의 쟁앙을 내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토록 하신 것입니다.
3. 承 핍박 받는 엘리야 선지자와 사르밧 과부 / 아합 왕은 회개하기보다는 이 큰 가뭄의 재앙이 엘리야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갈멜산의 대영웅으로 쓰시기로 예비한 엘리야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로 떡과 고기를 공급케 하십니다. 가뭄의 재앙이 점점 심해져서 마침내 그릿 시냇가도 마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이방인의 땅 시돈의 사르밧 과부에게로 보냅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성문 어귀에 이르러 땔나무를 줍는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 여인이 바로 여호와 이레의 사르밧 과부였습니다. 엘리야는 그 여인에게 냉수 한 대접을 請합니다. 그 여인이 물을 떠오려고 돌이켜 우물가로 향하여 갈 때에 엘리야가 그 여인을 다시 불러 세웁니다. 엘리야는 정중하게 부탁합니다. < 여인이여 물만 가져올 것이 아니라 내가 몹시 시장하니 떡 한덩이도 함께 가져다 주기를 부탁 드리오 >
4. 轉 먼저 내게 가져오라 / 이 부탁을 받은 사르밧 여인은 매우 난처해 합니다. 이 여인의 형편이 매우 딱합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은 과부로서 외아들과 심히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 과부 여인이 하는 말이 < 나는 떡이 없습니다. 다만 쌀독에 쌀 한 웅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오늘 나와 내 외아들이 마지막 저녁을 지어 먹고 그 후에는 굶어 죽을 판이라 대접 할 여유가 없습니다. 심히 죄송합니다 >. 이 말을 듣고 엘리야는 < 그럼 됐습니다. 내 어디 딴 사람에게 부탁하여 보지요 >라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혀 엉뚱한 말을 합니다. < 부인, 사정은 잘 알았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건대 먼저 내게 떡 한덩이를 가져다 주오. 그 후에 부인과 부인의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잡수시오. 굶어 죽을 염려는 아예하지 마시오 >. 이 말을 들은 사르밧 과부는 그대로 믿고 순종 합니다.
5. 結 그 과부가 받은 축복 / 자신은 먹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까지 굶길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과부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먼저 한 덩어리의 떡을 따뜻하게 만들어 공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부는 당장 다음날부터 굶을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왕상17: 16을 보면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여 그 굶주림의 가난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과부는 아들의 생명을 되찾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연인 즉은 그 과부의 외아들이 갑짜기 심한 병에 걸려 덜컥 죽고 말았습니다. 그 과부는 엘리야를 붙들고 탄식하고, 원망하고, 애원합니다. < 살려주십시오. 내 아들을! >. 엘리야는 이 과부의 죽은 아들을 온 몸으로 부등켜 안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내가 숨어 의지하여 사는 이 과부의 아들에게 재앙을 내려 죽게 하십니까 !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아들의 혼으로 그 몸에 다시 돌아가게 하시니 그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엘리야는 그 아들을 과부에게 돌려 줍니다. 그 과부는 엘리야에게 백배 감사하고 엘리야의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6. 마치는 이야기 / 여기 사르밧 과부는 자기 코가 석자인데도 먼저 하나님의 사람에게 바치므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네가 얻은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 가장 귀한 것, 제일 첫 번째 맏물을 가장 우선적으로 먼저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네것부터 챙길 것이 아니라 나에게 먼저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우선 먼저 나에게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신다고 하십니다. 합리적 사고로 단단히 무장된 현대의 신자들의 마음 속에는 < 과연 그럴까?, 혹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치부하기 위한 속임수를 쓴 것은 아닐까? 당장 나 살기도 바쁜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등등의 상념들이 오락가락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 좀 보십시오. 무엇이라고 합리적으로 설명 할 수는 없는데 기독교 역사상 참으로 묘하고 신기한 것은 < 먼저 하나님께 바치고 사는 사람치고 못사는 사람은 없다 >는 것입니다. 누구누구라고 이름을 거명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도 먼저 하나님께 바치면서 사는 사람이 과연 축복 받고 사는구나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사르밧 과부 역시 하나님과 그 분의 종에게 먼저 바침으로 큰 축복을 받은 허다한 증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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