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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골3:1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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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고용봉 목사 |
참고 : | 기둥교회 원로 목사 |
본문 : 골로 새서 3 : 18-25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누가 말하기를 행복한 가정은 얼굴이 닮아 오누이 같은 부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가정이니 얼굴이 닳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행복한 가정은 얼굴은 닳았어도 성격은 닮지 않은 부부로 맞추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여자는 왜 강한 남자를 도와야 하느냐고 남자를 돕는 배필 됨을 조물주께 항의하며 자주 우는 여자라 했습니다만 어찌했든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가정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는 어디로 가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보면 자기 가정에 대하여 만족과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불만과 불행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석 지 않습니다. 그러면 행복한 가정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1 . 약속한 사랑이 변치 않는 가정입니다.
남녀가 연애 시절에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하고, 그리워하며, 아끼다가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얼마 못가서부터는 이 뜨거운 사랑이 식어져 가다가 심하면 이혼까지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것은 결혼 후 내 소유라는 안정감 때문에 약속한 사랑이 변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한 부부는 하나님께는 예배하고, 부모님에게는 효도를, 형제끼리는 화목을. 남편에게는 순종을, 아내에게는 애정을, 자녀에게는 교양과 덕을 주는 가정을 꾸며야합니다.
어떤 가정은 마치 싸우려고 결혼한 부부 같은 가정이 있습니다. 사랑이 싸우는 것인지 싸우면서 사랑을 하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는 가정을 목사 가정, 장로 가정, 박사 가정, 권사 가정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가정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싸우지 않는 가정을 이루려면 부부는 결혼 전과 결혼식 날 약속한 사랑을 변치 않도록 서로 서로 협조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결혼 전 연애 시절에 약속한 것은 결혼하고 나면 자동으로 무효가 된다고 하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모든 단체를 관리하고 유지하려면 반드시 법과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만은 법과 규칙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 관리가 되고 유지되는 곳입니다. 한 가정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다툴 때에 윗사람은 말하기를 윗사람을 잘 공경하고 윗사람 말씀에 잘 순종해야지 하고 야단을 칩니다. 그러면 아랫사람은 말하기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죠"하고 대답합니다.
이런 문제가 법이나 어떤 규칙으로 해 결될 수 있겠습니까? 만일 부부의 관계가 법으로 유지가 되고 자녀의 문제가 규칙으로 관리된다면 그것은 이미 가정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은 이 사회에서 가장 불행스러운 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약속한 사랑이 변치 않도록 서로서로 협조하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2. 머리가 있는 가정이 행복합니다.
본문에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
(2)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3)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5)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라.
이 말씀들은 다 위와 아래,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종과 상전 사이를 잘 구별하라는 말씀으로 압니다.
첫째로, 부모를 머리로 모셔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옭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 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 :1-3).
미국의 20대 대통령으로 제임스 가필드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식을 거행할 때에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식에 모시는 편지를 드렸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기쁨이 충만하면서도 아들의 대통령 취임에 훌륭한 많은 사람 틈에 초라한 시골 늙은이인 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나는 고향에 머물러 아들을 위해 기도나 드리겠다하고 사양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필드 대통령은 "어머님께서 이번 식장에 참석치 않으시면 저도 식장에 나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오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려 마침내 아들의 지극한 효성을 받아들여 아들의 부축을 받아 화려한 식장에 나타나셨습니다.
아들은 대통령의 자리를 어머님께 내어 드리고 자기는 그 옆의 의자에 앉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은 아들과 어머니에게로 흠뻑 쏠렸습니다. 가질드는 대통령 취임 연설을 끝내고 자리에 돌아와서 어머니를 껴안고 뜨거운 키스했습니다. 이때 십만의 군중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퍼부었습니다. 그는 아깝게도 1881년 취임 4개월만에 암살 당하고 말았습니다.
둘째로, 부부는 한 몸이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안이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마 19:4-6)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에게나 아내에게 공연한 트집을 잡거나, 처가나 시집의 약점을 들추거나, 상대방의 아픈 곳을 자꾸 찌르거나, 대중 악에서 상대방의 인격을 깎으면 그 가정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큰집에 사느니 차라리 움막에 혼자 사는 것이 낫다"(잠 21:9)고 했습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부부는 언제나 약속한 사랑으로 불붙어야 합니다.
셋째로, 자녀는 지체 중의 지체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드리는 요구를 들어보세요.
(1)저를 버릇없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제가 구하는 걸다 받자는 것은 아니니까요.
(2) 제게 엄하게 나오시는 걸 겁내실 필요는 없어요. 그편이 오히려 제게는 안전하니까요.
(3) 할 수 있으면 남들 보는 앞에서 꾸중하지 말아 주세요. 조용히 단둘이 얘기하시면 얼마든지 더 잘 받아 들 일 테니까요.
(4) 시시한 병을 가지고 너무 지나치게 수선떨지 말아 주세요. 저도 그런 것쯤 이겨 낼만 하니까요.
(5) 너무 잔소리하지 마세요. 그러시면 귀먹은 척 할 테니까요.
(6) 성급한 약속일랑 말아 주세요. 약속이 깨어 질 때의 저의 마음은 참 따분하기 그지없으니까요.
(7) 정직하지 못한걸 지나치게 나무라지 마세요. 저도 모르게 그만 놀라서 거짓말을 하는 수가 있으니까요.
(8) 이랬다 저랬다 하지 마세요, 그건 절 당황하게 하여 엄마 아빠의 신임을 깎게 할뿐이니까요.
(9) 제가 무엇을 물을 때 발뺌하지 마세요. 그럼 전 다른데 가서 알아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10) 저를 소홀히 하지 말아 주세요. 죽어도 불량아가 되고 싶은 맘은 없으니까요.
이것은 우리교회에서 그룹 토의를 할 때 학생 그룹에서 나온 제안입니다. "마땅히 행한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고 말씀했습니다.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겸손을 가르쳐야 합니다. 겸손은 기가 죽어서 누가 뭐라고 해도 무걸 호인처럼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고 어린아이의 겸손은 평생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심어 주는 것이요. 남의 장점을 발견하는 좋은 성품을 길러 주는 일이요, 변덕을 부리지 아니하고 근면함을 심어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어 릴 때부터 도둑질을 하다가 큰 도둑이 되었습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일이 사형 날인데 어머니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어머니 귀에 살 짝 대고 이야기하는 척하다가 어머니의 귀를 물어뜯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머니 ! 어릴 때 내가 남의 집에 가서 돈을 훔쳐 왔을 때 그때 사정없이 매로 때리고 나에게 하나님 섬기는 것을 가르쳐 주었으면 내가 이렇게 인생을 망치는 것이 아닌데 하고 사형수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시편 127편에 "자식은 여호와 주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식의 기업이 결단코 복되어야하겠습니다.
믿음의 정치가로 아웅산 묘소의 이슬로 사라진 이범석 장관의 자녀에게 기자들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서 기억되는 추억이 무엇이며, 아버지의 교훈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으니 "우리 아버지는 평소에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자녀가 잘하든 못하든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그저 생활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하고 대답하더랍니다. 행복한 가정은 많은 잔소리보다는 생활로 가르칩니다.
3. 대화가 있는 가정이 행복합니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다투는 부녀는 비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잠 27:14-15)했으니 행복한 가정은 큰 소리 치는 가정이 아니라 부부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대화가 오고가는 가정입니다. 어디나 대화가 있으면 이해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 위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함께 사는 생활 속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대화입니다. 대화가 없이 함께 산다는 것은 피차에 큰 고역이며 비극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부간의 대화,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전통으로 보아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부간에는 여필종부(女必從夫)란 말이 것이 미덕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간에는 동등한 대화가 있을 수 없고 다만 일방적인 명령과 복종만 있을 분입니다. 또한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도 성립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가정은 아직도 부모 중심이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이해나 대화보다는 명령과 지배로 양육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더불어 대화가 없는 자녀들에게서 나타나는 결과는 반항과 가출현상 분입니다.
가정은 하숙집과는 다릅니다. 하숙집은 먹고 자는 문제만 해결하면 되지만 가정에는 그 외에 진정한 대화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화가 없이 한 울타리에서 계속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은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한 식구만이 아니라 어른으로부터 어린아이까지 다같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온 집안에 대화가 이루어 질 때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하는 화가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가룟 유아로 누구를 그릴까 생각하다가 자기가 제일 싫어하고 미워하는 친구의 얼굴을 그려서 가를 유아를 삼았습니다. 그리고서 예수 님의 얼굴을 그리려고 암만 노력을 해도 그려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최후의 만찬을 그리다가 실패하고 왜 그런가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자기가 미워하는 친구를 가를 유다로 그린 그런 관용이 없었던 자기를 회개하고 그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서 내가 실상 당신의 얼굴을 가룟 유다의 얼굴로 만들어 그리려고 하다가 그림이 그려지지를 않아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왔다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친구에게 자기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나서, 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 유명한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남을 미워하고, 시기할 때는 위대한 창조적인 일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행복한 마음이나 가정도 형성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전용과 대화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서 최후의 만찬을 그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관용의 마음으로 대화할 수 없는 사람과도 대화할 때 그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찾아 을 수 있습니다.
4.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가정이 행복합니다.
가정은 위로의 처소요, 소생케 하는 병원이요, 안식처요 사랑의 요양소요, 지상의 낙원이어야 합니다.
근대에 와서 문제아 속에 문제의 부모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이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해 주며. 가정불화가 많고 어린아이의 갈등을 해 결해 주지 못하는 가정에서 문제아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른이나 어린이나 가정에서 안식을 누릴 수 없을 때 극장을 찾고, 다방과 술집을 찾는 것입니다.
가정은 우리에게 세 가지 면에서 연식을 주는 곳입니다. 마음의 평안, 정신적인 안정. 육체적인 피로회복 등 입니다. 그러나 가정에 들어가서 오히려 마음이 괴롭고, 정신적으로 불안해지며, 육체적으로 피곤을 느끼게 된다면 얼마나 불행스러운 일이며, 가정지옥입니까?
어느 사형수에게 "당신이 마지막 가고 싶은 곳이 어디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가정"이라고 대답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거치른 사회에서 진정한 안식처는 가정뿐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피곤하실 때마다 베다니에 있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가정을 찾아가셨던 일을 기억합니다. 피곤할 때에 찾아갈 수 있는 곳은 가정뿐입니다. 남편은 가정에 만족하고 아내는 가정을 지키는데 보람을 느끼며 자녀들은 가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가정은 인격이 바로 조화된 식구끼리만 가능합니다.
인도의 유명한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에게 영국의 기자가 "지금 인도의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인도의 시급한 과제는 경제 건설이나 사회복지 건설이 아니라, 인격건설(Character Building)이라고 대답한 일이 있습니다. 어떤 교수가 국민교육 헌장에 대하여 얘기하기를 모든 것이 잘 되었는데 그 속에 인격의 존엄성과 인격교육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은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인격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인간은 건실한 인격건설에 힘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건실한 인격은 건전한 사회와 건전한 가정을 가져오니까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은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신앙인의 인격에 대하여 환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본훼퍼(Bohnoeffer)라는 신학자는 말하기를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참인간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5. 온 가족이 구원받은 확신을 가질 때 행복합니다.
수년 전 어떤 은행 지점장이 병석에서 자기가 며칠 더 살지 못할 것을 알고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거든 관 양편에 구멍을 뚫고 내 양손을 관 밖으로 내어놓아 내 시체가 빈손으로 화장터로 나가는 것을 만인이 보게 하여 주시오." 사람들은 그의 유언대로 했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장례식이었습니다.
그 은행 지점장이 후세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교훈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수억 대의 부자였고, 마치 돈 속에 파묻혀 사는 인생이었으나 그러나 임종시에 생각한 것은 인생이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손에 한푼도 들고 가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부(富) 란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하여 공수래 공수거를 실제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우리는 아무 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라는 말씀은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에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을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어도 온 집안이 구원받지 못하였으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다 지은 다음에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으며. 사도 바울은 구원을 묻는 옥사 장에게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개인과 가정을 구원하고 국가를 구원하는 생명 있는 종교입니다. 내가 주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내 가정이 구원받지 못하였으면 내 사랑스러운 가족이 나의 신앙생활의 걸림돌이 되고, 내 귀여운 자녀들이 나의 신앙생활의 가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원수가 네 집안 식구다"라는 말씀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아웅산 사건에 희생된 우리 나라의 17명의 인물들은 4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특별한 인재들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공통된 생활 네 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1.모두가 한국적인 실력자들이며, 머리가 비상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2.청렴결백하여 어떤 이는 대통령께 신고하러 갈 때도 친척 옷을 빌려 입고 간 이가 있으며, 구두창을 두 번이나 같아 신을 만큼 검소하며, 생활이 깨끗했다 합니다.
3. 모두가 가정적이어서 생활로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준 사장들이라 합니다.
4. 대부분이 종교인인데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성공하는 사람,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가 신앙 인이요, 가정에서부터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오늘의 본문 말씀에 준해서,
1. 약속한 사랑은 변치 않는 가정입니다.
2. 머리가 있는 가정입니다.
3. 대화가 있는 가정입니다.
4.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가정입니다.
5. 온 가족이 구원받은 확신이 있는 가정입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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