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4살부터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은 수없이 많다. 나에게 가르쳐 주시는 분들이 다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라면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제일 기억에 남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초등학생 때 제일 기억에 남는 학년이 1학년, 또는 6학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6학년이라 6학년 때의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1학년 때의 선생님은 내가 제일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 중 한분이시다.
선생님과 만난 사연은 회남 초등학교에 있는 병설 유치원을 졸업하고 그대로 회남 초등학교를 입학하려했다. 하였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판암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나는 1학년 4반이 되었는데 4반 선생님의 별명은 ‘호랑이 선생님’ 이었다. ‘호랑이 선생님이라면 엄청 무서운 선생님일 땐데⋯’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렇게 4반 교실에 들어와 앉고 싶은 자리에 앉고 잠시 후 우리 반의 담임선생님이 되실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한 편 으로는 별명처럼 무섭고 한 편 으로는 자상한 선생님인 것 같았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줄을 서서 강당으로 갔다. 조회를 하면서 1학년들의 선생님들의 소개가 있었다.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러 그 선생님의 성함은 생각나지 않는다. 조회가 끝나고 교실로 와 선생님과 함께 학교를 둘러보았다. 어디가 어디고, 어디가 어딘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은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 아니라 자상하시고 좋은 선생님 같았다. 다음날 학교에 와 교실을 가려고 하는데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학교가 워낙 컸기에 어제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셨어도 헷갈렸고 다른 학교처럼 직사각형으로 된 학교가 아니라 원형이나 곡선으로 된 학교였기 때문이다. 우리 반을 찾아 여기저기를 해매고 있는데 그걸 선생님이 발견하셨다. 선생님은 교실로 쉽게 올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음 함께 교실로 왔다.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때 나는 종이 칠 때까지 학교를 헤매고 다녔을 것이다.
이제 학교생활이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날 왜 선생님의 별명이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로 그날 선생님이 화가 나셨던 것이다. 아침부터 왠지 기분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으시던 선생님. 그날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때와 달리 더 시끄럽게 떠들고 더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나는 책을 보고 있었는데 친구들의 떠드는 소리 때문에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 선생님은 드디어 폭발을 하셨다. 그렇게 우리들은 단체 기합을 받고 말았다. 그날 선생님은 호랑이처럼 무서웠다. 그런데 나는 조금 억울했다. 가만히 책만 보고 있었는데 기합을 받았으니 말이다. 하긴, 나 말고도 책을 보고 있는 아이들도 몇몇은 있었다. 그 애들도 억울했을 것 같다. 그날 선생님이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친구들은 학교수업이 다 끝나고 집이나 학원에 가지 않고 학교에 계속 남아 있으면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 애가 공부를 못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남거나 나머지 공부를 하는 것을 엄청 싫어했다. 자기가 공부를 못한다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 이다. 나의 대한 친구들의 오해는 내가 학교에 남는 것부터 시작 되었다. 나는 수업 시간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는 시험이나 일상생활의 단골손님이었는데 나는 학교가 끝나고 학교에 남아 선생님께 그 문제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이해를 쉽게 시켜주시기 위해 마주 앉아 공부를 했다. 마침 그것을 본 친구들이 오해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음 날부터 나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것을 눈치 채시고 수업이 시작되자 오해가 풀리는 이야기를 하셨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모르는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죠? 그 문제를 그냥 무시하지는 않나요? 혹시 그 문제를 풀어 보려고 노력하지는 않나요?” 친구들은 조용했다. “좋은이는 모르는 문제를 무시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선생님께 물어 보았어요. 그런 것을 이렇게 물러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것 이예요. 여러분도 좋은이처럼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학교 끝나고 물어보세요.” 그렇게 나에 대한 친구들의 오해는 풀리게 되었고 선생님은 나를 보고 웃어주셨다. 그날 나는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다. 선생님이 배려 깊은 친구 같았다.
나는 선생님이 또 하나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간단하게 줄이자면 엄청 챙기시고 걱정하시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가 아직 1학년이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정말 선생님이 정이 많으셨던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박물관으로 현장체험 학습으로 갔을 때였다. 인원을 세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놀라시는 것이었다. 우리 반에 한명이 없어진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그 아이를 찾으러 다녔고 그 아이를 찾는 다는 방송도 여러 번 나왔다. 나중에는 찾았는데 그 아이를 혼내시는 선생님의 눈가에 눈물이 조금 잡혀 있었다.
어느 날은 우리 반 친구들 단체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오전에 사진을 찍었는데 키순으로 서면서 나는 일어서서 사진을 찍게 되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들이 떠드는 바람에 사진을 찍는 시간이 늘어나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어지러워 사진을 찍자마자 픽 쓰러져 버렸다. 선생님은 그것을 보시고 얼른 업고는 보건실로 뛰어갔는데 안 무거우셨는지 모르겠다. 소화가 되지 않아 그랬다는데 나는 그날 점심도 먹지 못하고 오전 수업 내내 보건실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 마다 계속 찾아 오셨다. 그렇게 선생님이 우리를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알았다. 유치원 선생님들도 그렇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가시게 되었다. 조회 시간에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가신다는 말을 들은 우리 반 친구들은 막 울어대는 친구들도 있었다. 정말 그랬다. 선생님과 그동안 정도 엄청 많이 들었는데. 나도 너무 슬펐다. 조회가 끝나고 교실에서 친구들은 선생님께 매달리며 가시지 말라고 울었다. 선생님은 소리 없이 울으실 뿐이었다. 그렇게 선생님은 우리들을 한명씩 꼬옥 안아주시고 다음 날부터 오시지 않았다.
나는 그때 그 선생님이 지금까지 제일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다. 지금 생각해도 선생님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쩔땐 무섭고 어쩔땐 자상하시기도 한 선생님이 너무 그립다. 지금은 조금씩 잊혀져가는 과거이지만 그때 그 선생님의 기억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생님과 만난 사연은 회남 초등학교에 있는 병설 유치원을 졸업하고 그대로 회남 초등학교를 입학하려했다. 하였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판암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나는 1학년 4반이 되었는데 4반 선생님의 별명은 ‘호랑이 선생님’ 이었다. ‘호랑이 선생님이라면 엄청 무서운 선생님일 땐데⋯’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렇게 4반 교실에 들어와 앉고 싶은 자리에 앉고 잠시 후 우리 반의 담임선생님이 되실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한 편 으로는 별명처럼 무섭고 한 편 으로는 자상한 선생님인 것 같았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줄을 서서 강당으로 갔다. 조회를 하면서 1학년들의 선생님들의 소개가 있었다.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러 그 선생님의 성함은 생각나지 않는다. 조회가 끝나고 교실로 와 선생님과 함께 학교를 둘러보았다. 어디가 어디고, 어디가 어딘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은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 아니라 자상하시고 좋은 선생님 같았다. 다음날 학교에 와 교실을 가려고 하는데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학교가 워낙 컸기에 어제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셨어도 헷갈렸고 다른 학교처럼 직사각형으로 된 학교가 아니라 원형이나 곡선으로 된 학교였기 때문이다. 우리 반을 찾아 여기저기를 해매고 있는데 그걸 선생님이 발견하셨다. 선생님은 교실로 쉽게 올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음 함께 교실로 왔다.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때 나는 종이 칠 때까지 학교를 헤매고 다녔을 것이다.
이제 학교생활이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날 왜 선생님의 별명이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로 그날 선생님이 화가 나셨던 것이다. 아침부터 왠지 기분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으시던 선생님. 그날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때와 달리 더 시끄럽게 떠들고 더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나는 책을 보고 있었는데 친구들의 떠드는 소리 때문에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 선생님은 드디어 폭발을 하셨다. 그렇게 우리들은 단체 기합을 받고 말았다. 그날 선생님은 호랑이처럼 무서웠다. 그런데 나는 조금 억울했다. 가만히 책만 보고 있었는데 기합을 받았으니 말이다. 하긴, 나 말고도 책을 보고 있는 아이들도 몇몇은 있었다. 그 애들도 억울했을 것 같다. 그날 선생님이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친구들은 학교수업이 다 끝나고 집이나 학원에 가지 않고 학교에 계속 남아 있으면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 애가 공부를 못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남거나 나머지 공부를 하는 것을 엄청 싫어했다. 자기가 공부를 못한다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 이다. 나의 대한 친구들의 오해는 내가 학교에 남는 것부터 시작 되었다. 나는 수업 시간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는 시험이나 일상생활의 단골손님이었는데 나는 학교가 끝나고 학교에 남아 선생님께 그 문제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이해를 쉽게 시켜주시기 위해 마주 앉아 공부를 했다. 마침 그것을 본 친구들이 오해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음 날부터 나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것을 눈치 채시고 수업이 시작되자 오해가 풀리는 이야기를 하셨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모르는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죠? 그 문제를 그냥 무시하지는 않나요? 혹시 그 문제를 풀어 보려고 노력하지는 않나요?” 친구들은 조용했다. “좋은이는 모르는 문제를 무시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선생님께 물어 보았어요. 그런 것을 이렇게 물러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것 이예요. 여러분도 좋은이처럼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학교 끝나고 물어보세요.” 그렇게 나에 대한 친구들의 오해는 풀리게 되었고 선생님은 나를 보고 웃어주셨다. 그날 나는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다. 선생님이 배려 깊은 친구 같았다.
나는 선생님이 또 하나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간단하게 줄이자면 엄청 챙기시고 걱정하시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가 아직 1학년이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정말 선생님이 정이 많으셨던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박물관으로 현장체험 학습으로 갔을 때였다. 인원을 세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놀라시는 것이었다. 우리 반에 한명이 없어진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그 아이를 찾으러 다녔고 그 아이를 찾는 다는 방송도 여러 번 나왔다. 나중에는 찾았는데 그 아이를 혼내시는 선생님의 눈가에 눈물이 조금 잡혀 있었다.
어느 날은 우리 반 친구들 단체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오전에 사진을 찍었는데 키순으로 서면서 나는 일어서서 사진을 찍게 되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들이 떠드는 바람에 사진을 찍는 시간이 늘어나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어지러워 사진을 찍자마자 픽 쓰러져 버렸다. 선생님은 그것을 보시고 얼른 업고는 보건실로 뛰어갔는데 안 무거우셨는지 모르겠다. 소화가 되지 않아 그랬다는데 나는 그날 점심도 먹지 못하고 오전 수업 내내 보건실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 마다 계속 찾아 오셨다. 그렇게 선생님이 우리를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알았다. 유치원 선생님들도 그렇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가시게 되었다. 조회 시간에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가신다는 말을 들은 우리 반 친구들은 막 울어대는 친구들도 있었다. 정말 그랬다. 선생님과 그동안 정도 엄청 많이 들었는데. 나도 너무 슬펐다. 조회가 끝나고 교실에서 친구들은 선생님께 매달리며 가시지 말라고 울었다. 선생님은 소리 없이 울으실 뿐이었다. 그렇게 선생님은 우리들을 한명씩 꼬옥 안아주시고 다음 날부터 오시지 않았다.
나는 그때 그 선생님이 지금까지 제일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다. 지금 생각해도 선생님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쩔땐 무섭고 어쩔땐 자상하시기도 한 선생님이 너무 그립다. 지금은 조금씩 잊혀져가는 과거이지만 그때 그 선생님의 기억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