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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창3: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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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우제돈 목사 |
| 참고 : | 상원교회 |
(창 3 : 8-21)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2 : 17).
태초에 하나님께서 그 형상대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에덴동산에 기거 동작케 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 : 28)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 : 16∼17)고 하였는데 저들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하라'는 권장사항을 많이 말씀하셨고 금지조항은 단 한가지 '선악과'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금단의 과일을 따먹고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정처 없이 유리하며 육체적 고통을 받게 하였는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에 보면 '하라'는 권장사항은 단 두 조목 뿐이요, 나머지 여덟 가지 계명은 '하지 말라'는 금지조항입니다. 타락한 인간일수록 금지조항의 '선악과'가 많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하게 된 이유를 살펴봅시다.
1. 선악과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넓은 동산에 먹기 좋은 과일이 많이 있었는데도 하필이면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 밑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선악과나무 밑에 와서는 쳐다보고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냄새맡고 흔들어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뱀이 그들을 오라고 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먼저 유혹의 장소에 와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형편에서 뱀의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시편 1 : 1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유혹을 듣기는 하지만 그 꾀에 따르지 않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유혹을 받기는 하지만 그 길에 서지 않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유혹을 받지만 그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붓글씨 쓰는 곳에 가까이 있으면 옷에 먹물이 튀기기 쉽다는 뜻입니다. 노름방에 함께 있으면 노름하기 쉽고 술상에 함께 있으면 술 마시기 쉽습니다.
2. '말씀'을 변조합니다.
유혹과 감동은 차이가 있습니다. '유혹'이란 그럴듯한 말로 사람을 속이는 것이고, '감동'은 진리의 말씀으로 사람을 움직입니다. 유혹은 사람의 육체를 타락시키지만 감동은 사람의 영혼을 깨우칩니다.
식사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정식'과 같고, 뱀의 유혹은 '간식'과 같습니다.
정식은 때가 있고 간식은 때가 없습니다. 정식은 대개 양이 정해져 있고 간식은 그 양이 불규칙적입니다. 정식은 메뉴가 일정하나 간식은 다양합니다. 정식은 맛이 거의 같지만 간식은 그 맛이 독특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정식으로 살아가야지 아무렇게나 간식으로 배를 채우려 해서는 배탈만 나고 맙니다.
그런 의미에서 '간증'은 '설교'와 다릅니다. 간증은 개인 각각의 영적 체험을 말합니다. 간증은 아무리 잘해도 간증에 불과합니다. 누가 어떤 영적 체험을 경험했다고 해서 나도 꼭 그 공식에 맞춰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어렸을 적에 '흥부' 흉내내느라고 제비 다리 꺾어 붕대로 처내고 박씨 물어오도록 해 보았지만 다 허사였습니다. 간식은 잘먹어도 어디까지나 간식이지 못 먹어도 하루 세끼 때맞추어 정식을 먹어야 되듯이 우리 성도들도 '간식신자'가 되지 말고 '정식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 기도원이나 가정제단에 가서 안수 받고 은혜체험 했다고 해서 정상적인 신자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자기 이름이 등록된 본 교회에서 주어진 직분에 충성 봉사하는 것이 더 정상적인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간식은 선악과와 같습니다. 독버섯이 더 색깔 좋고 복어 알이 더 맛있어 보이고 유해식품일수록 더 싱싱해 보이는 법입니다.
3. 일상의 선악과를 경계해야 합니다.
①일주일간의 선악과는 '주일'입니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우리의 육신을 위해 세상일에 몰두하지만 주일은 '주의 날'이요, '성일'인고로 세상일과 구별하여 신령한 주의 일에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느 날은 내 날이요, 주일은 주의 날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내 육체만을 생각하여 따먹어서는 안 되는 이른바 '선악과'입니다.
②돈에도 선악과가 있습니다. 십일조를 말합니다. 우리가 번 돈 중에서 십분의 일은 주님의 것이요 나머지는 내 것입니다. 십 분의 구는 우리를 위해서 써도 되지만 십일조는 꼭 주님께 바쳐야 하는 선악과입니다. 이것은 '종자돈(seed money)과도 같은 것입니다.
③그림에도 선악과가 있습니다. 선정적 그림이나 조각품은 만들지 말고 사지도 말아야 합니다. 족자 병풍 같은 표구나 도자기, 장롱 등의 가구에 맹수 같은 그림이나 이방 우상의 상징물이 새겨진 것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용 대신 포도나무, 호랑이 대신 비둘기 그림이 더 좋습니다.
④퇴폐음악, 기생관광, 외설영화, 도색잡지 등도 우리 성도들이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선악과입니다. 그런 것들보다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게 더 좋습니다. 어떤 노인들은 귀만 더러워진다고 해서 '경로당'등에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화에도 의상에도 화장에도 선악과가 있습니다. 말에 부도내지 않도록 조심하고 짙은 화장, 야한 옷차림, 혐오감을 주는 몸짓은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⑤주신 직분에도 선악과가 있습니다. 세상직분과 달리 교회에서 받은 귀한 성직에는 사명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감당하도록 충성 봉사해야 합니다. 성직을 소홀히 취급하거나 홀대해서는 안됩니다. 기름부음 받은 주의 종들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4. 종교적 선악과가 있습니다.
지난번 미국 다녀오는 비행기에서 끽연석에 앉아 있었는데 앞 뒤 옆에 앉은 승객들이 어찌나 담배를 피워대는지 골머리가 아파 혼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이상한 괴물의 형체를 띠고 있었습니다.
공항에 내려 모 일간 스포츠 신문에 미 텍사스 공항에 나타난 예수님과 마귀가 대결하는 구름모양의 사진이 게재된 것을 보았고 그 다음날 국제 종교문제 연구소 탁명환 소장의 비보를 들었습니다. 그는 종교적 선악과를 감별하다가 희생된 속죄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신앙 생활함에 있어서 매사에 선악과를 조심해야겠습니다.
①나는 덕으로 산다. 무슨 덕이냐? 예수 덕이다.
②나는 빽으로 산다. 무슨 빽이냐? 예수 빽이다.
③나는 깡으로 산다. 무슨 깡이냐? 예수 깡이다.
④나는 배짱으로 산다. 무슨 배짱이냐? 예수 배짱이다.
⑤나는 뚝심으로 산다. 무슨 뚝심이냐? 예수 뚝심이다.
⑥나는 끼로 산다. 무슨 끼이냐? 예수 끼이다.
⑦나는 곤조가 있다. 무슨 곤조이냐? 예수 곤조이다.
⑧나는 힘이 세다. 무슨 힘이냐? 예수 힘이다.
⑨나는 철이 들었다. 무슨 철이냐? 예수 철이다.
⑩나는 고집이 있다. 무슨 고집이냐? 예수 고집이다.
(1994.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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