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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19: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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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동원 목사 |
참고 : | 지구촌교회 |
제 목 : 하늘의 할렐루야
주 제 : 종 말
성 경 : 계19:1-10
설 교 자 : 이동원 목사
비 고 : 지구촌 교회
개역 계 19: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본문에는“할렐루야”라는 말이 네 번 나옵니다.사실 신약성경에서 이 할렐루야라는 단어는 이 요한계시록 19장에만 나옵니다.구약성경에서는 이 말이 시편에 23회 나옵니다.원래 『할렐』이라는 말은“찬양하라”를,『『루』는 사실 『유(르)』로서 “너희들의”를 그리고『야』는 하나님을 뜻합니다.그렇다면 『할렐루야』는 “너희들의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6-18장에서는 마지막 때에 있을, 이 세상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19장에서 이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지나가면서 장면은 땅에서부터 하늘로 옮겨갑니다.그리하여 하늘에서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광경은“하나님을 찬양하라”는 할렐루야 음악회가 전개되고 있는 광경입니다.이 음악회에는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 하나님의 종들, 그리고 천천 만만의 많은 천사들이 출연하여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늘의 할렐루야의 의미
역사의 마지막 때에 하늘나라에서 울려 퍼질 이 할렐루야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네 번 나오는 할렐루야의 의미는 각각 다릅니다.즉,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네 가지라는 것입니다.
첫째/구원의 할렐루야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1절).이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어 가는 때가 가까워 온다는데 대한 찬양입니다.그리스도인들에게 마지막 때는 구원이 완성되는 때를 의미합니다.“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롬 13:11).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죄 때문에 지옥으로 가는 형벌을 받아야 마땅했던 우리가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죄악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이것은 「과거적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죄악의 형벌과는 상관없는 자가 되었지만 죄악의 세력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우리의 현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우리는 아직도 죄악의 세력과 싸우고 있습니다.죄악과 더불어서 싸우면서 번번이 넘어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주님의 모습을 닮아 갑니다.이것을 성화(聖化)의 과정이라고 합니다.이것은 현재 우리가 이루어 나가고 있는「현재적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면 우리는 언제 이 죄라는 존재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의 성화가 완성되고 영화로운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죄 지을 필요가 전혀 없는 인간이 될 것입니다.이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미래적 구원」입니다.
우리는 죄악의 형벌에 관한 한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그러나 아직도 죄악의 세력과 싸우는 우리가 죄악과 상관없는 존재로서 인격이 완성되는 것은 마지막 때, 곧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마지막 때”를 꼭 부정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주님이 오실 때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다니 이 어찌 기뻐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구원이 완성될 그 시간이 가까왔기에 우리가 “할렐루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하나님께 있도다.(1절).우리를 구원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여기에서 ”영광“과 “능력”이 “구원”과 동시에 강조되어 있습니다.저는 이 세 단어가 다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구원의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가장 놀랍게 드러내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최대의 사건입니다.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감격과 기쁨을 잊어버리고 살기가 쉽습니다.구원받은 사실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사건이 아닌 것처럼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그러나 이 지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기적은 자기가 구원받았다는 기적입니다.그보다 더 위대한 기적은 없습니다.그런데 구원이라는 기적은 영적인 기적이라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간증을 듣고도 별 감동을 못 받는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어떤 집회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났다고 하면 기적이라며 대단하게 여깁니다.물론 하나님은 신유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십니다.그러나 그런 것을 구원이라는 엄청난 기적보다도 더 강조하는 집회가 있다면 이단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에베소서 1장과 2장에서 바울 사도가 구원의 영광스러운 사건에 대해 언급한 것에 주목해 보십시오.아주 감동적입니다.“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엡 1:18-20).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보다 더 위대한 기적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그 능력이 우리에게 베풀어진 것입니다.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예수님을 부활시킨 그 능력으로 하나님은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여기에서 “죽었던”이란 영적으로 죽었던 것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분과의 생동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보다 더 위대한 기적은 없습니다.“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구원의 능력보다 위대한 능력도 없고 구원의 선물보다 더 위대한 선물도 없습니다.이러한 구원을 선물로 받고 그 구원이 완성될 순간을 기다리는 우리가 마지막 날을 바라보면서 해야 할 일은 위대한 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둘째/심판의 할렐루야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2,3절).17,18장에서 이 세상의 정치, 종교, 문화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었습니다.이제 그 심판이 다 끝나자 할렐루야 하는 찬양이 나옵니다.그것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을 통해서 자신의 참되심과 의로우심을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마지막 심판 속에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난 것입니다.우리는 부조리한 이 세상과 역사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습니까?“하나님, 어찌하여 악인들이 잘되고 바르게 살아 보려고 하는 저에게는 이런 괴로움을 주시나요?”그러나 마지막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가 정오의 태양처럼 밝게 나타나는 순간, 모든 불의와 불공평과 모순이 사라지고 지상의 모든 악이 심판받을 것입니다.그 순간 우리가 할 일은 할렐루야를 외치는 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셋째/완성(성취)의 할렐루야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없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4절).여기에서 “아멘”의 의미가 매우 중요합니다.아멘이란 무슨 뜻입니까? 신약성경에는 아멘이라는 말이 다른 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특별히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말씀 가운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거기서 “진실로 라는 말이 바로 “아멘”인 것입니다.그런데 “아멘”이 기도문에서 쓰이게 되면 그때는 “진실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는 뜻이 됩니다.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끝마칠 때 우리가 “아멘”이라고 하는 것은 기도한 내용이 그대를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뜻인 것입니다.신앙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멘을 했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은 개인 문제 뿐만이 아닙니다.우리가 역사와 사회를 내다보면서,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그러한 열망과 소원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황은 몹시도 절망적입니다.그러나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고 구원이 완성되면 이 지상에 이루어져야 할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그리하여 각 개인을 향한 모든 기도를 이루시고 역사를 향한 자신의 뜻을 이루신 그 하나님께 우리는 세세토록 찬양과 경배를 드리면서 할렐루야를 외칠 것입니다.
넷째/섭리(통치)의 할렐루야 :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6절).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역사를 다스리셨다는데 대한 찬양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의 통치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완성인 어린양 혼인 잔치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7절).어린양 예수님의 예비된 신부는 바로 교회입니다.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를 예비시키는 일에 중점을 두고 역사하십니다.우리는 자신이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교회의 중요성을 종종 과소평가 합니다.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안목에서 보면 엄청나게 중요한 것입니다.주님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성도들이 여러 교파로 분열되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리스도 안에 속한 모든 자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보십니다.교회를 사랑의 대상으로 보십니다.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엡 1:21,22).맨 위에 예수님이 계시고 그 다음에 교회가 있고 그 아래에 만물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즉, 부활 승천하신 주께서 교회를 통해서 만물을 섭리하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교회를 통한다는 말은 곧 성도들을 통한다는 말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통해 역사 속에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우리는 각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입니다.하나님은 개개인을 쓰시기도 하지만 교회를 자신의 뜻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여기십니다.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교회다운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주님은 가장 가슴 아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교회다운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교회를 준비시키십니다.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여러 사건과 경험들을 통해서, 교회에 속한 개개인인 우리 성도들을 끊임없이 정화시키십니다.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쓰러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모든 과정을 통해서 점점 더 깨끗해지게 됩니다.그리하여 하나님께 점점 더 쓰임받고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다가 마침내는 이 세상에서 그분의 뜻을 이룰 뿐 아니라 모든 과정에서 우리를 다루시는 그 손길을 통해서 주님 앞에 온전한 자로 예비될 것입니다.
재림하실 때 신랑 되신 주님은 우리 개개인의 혹은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내적인 아름다움, 곧 인격적인 거룩함을 보고 싶어하십니다.“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7,8절).마지막에 주님이 우리에게서 보고 싶어하시는 것은 바로 의(義)입니다.우리가 얼마를 벌었고 우리가 얼마나 명예를 얻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신랑 되신 주님 앞에 서는 순간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의로움이 우리의 삶 속에 얼마만큼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그렇게 정결해졌을 때 비로소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거행되게 됩니다.
옛날 유대의 결혼에는 세 단계의 절차가 있었습니다.우선 정혼식이 있었습니다. 옛날 유대인들에게는 정혼식이 결혼식보다 더 중요했습니다.그들은 어렸을 때 일치감치 배필감을 정해 버립니다.그렇게 정해지면 그만이기 때문에 정혼식은 결혼식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그런데 정혼할 때 반드시 신랑 집에서는 신부 집에 지참금을 주어야 했습니다.그리고 기다림의 때를 거친 뒤에 때가 다 차면 일단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서 신부를 데리고 다시 신랑 집으로 옵니다.그때 신랑 집에서 잔치가 열리는데 본문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바로 그 단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차를 우리에게도 적용해 봅시다.언제 우리가 주님과 정혼을 했습니까? 에베소서 1장 4절을 보면 우리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들을 주님의 영원한 신부로 삼을 계획을 창세 이전부터 갖고 계셨습니다.그것이 우리의 정혼식입니다.그리고 우리를 주님의 신부로 삼으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게 하셨습니다.그 흘리신 피가 바로 지참금에 해당하는 것입니다.그 다음에 예수님의 초림에서부터 재림까지의 시간이 기다림의 때에 해당합니다.그런데 기다림의 때에 신부는 신랑의 기대에 합당하도록 자기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지금도 약혼 후에 신랑 신부가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결혼 때까지 상대방을 위해 정성껏 준비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이처럼 우리는 재림 때까지 하나님 앞에 점점 더 합당한 사람이 되어 가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에베소서에서는 어떻게 설명되어 있는 살펴봅시다.“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5-27).결혼식장에서 “신부 예쁘다”는 말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당사자인 신부가 아니라 신랑입니다.신부는 신랑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신랑 되신 예수께서도 교회가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신부로 설 수 있도록 손수 화장품을 제공하십니다.그것이 바로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도구는 말씀입니다.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말씀으로 자신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여 점점 성화(聖化)되어 그 성화가 완성될 때 교회는 비로소 그리스도와 결혼식을 하게 됩니다.그럼으로써 우리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기다려집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이는 일입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주님 곁에서 그분과 사랑을 나누는 삶이 몹시도 기다려지겠지만,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그러한 삶을 이해조차 할 수 없습니다.“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다”(9절)고 했습니다.마지막 때가 왔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마지막을 의미하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영원히 교제를 나눌 순간이 찾아온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 때에 할 일은 “할렐루야”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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