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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기다림

누가복음 한태완 목사............... 조회 수 3212 추천 수 0 2010.06.17 01: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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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2:2:25-39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조급병입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성장하는 것보다 급성장을 좋아합니다. 급성장을 자랑거리로 삼습니다. 어떤 버섯은 6시간이면 자랍니다. 호박은 6개월이면 자랍니다. 그러나 참나무는 6년이 걸리고, 건실한 참나무로 자태를 드러내려면 100년이 걸립니다. 100년의 긴 세월에는 따뜻한 햇볕과 솜털 같은 바람의 시간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천둥 번개에 사나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고통과 불행의 시간도 포함됩니다. 조급함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시간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며, 시간을 받아들인다는 뜻은 기다릴 줄도 알고, 견딜 줄도 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몬과 안나 두 사람의 인생에 있었던 그 기다림도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많기에 잠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당시 두 사람의 개인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시대상황도 매우 절망적이었을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이 태어난 지 8일 만에 부모의 품에 안겨 성전에 올라왔을 때 메시아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슴에 품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을 기다리는 대강절 기간 동안 우리가 진정 기다려야 할 이는 누구인지, 그를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주의 백성으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두 사람에게서 교훈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시몬과 안나는 예수님을‘믿음과 희망 중’기다렸습니다. 두 사람이 바라본 당시 시대 모습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처한 현실 속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흔적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몬은 자신의 마음속에 평안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안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주야로 금식하며 탄식의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먼저 시몬과 안나의 나이를 보십시오. 어떤 학자들은 이들이 100살 혹은 적어도 90살은 넘겼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나이가 들면 희망을 노래하기보다 포기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일을 하기 두려워합니다. 희망보다는 절망하기가 쉽습니다. 안나는 남편과 단 7년을 함께 살고 무려 84년이라는 시간을 홀로 살았습니다. 요즘 과부와는 다르게 당시 과부에게는 대외적이고 정치적인 지위를 주지 않았습니다.

 

환경으로만 보면 오로지 절망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시대상황을 보더라도 지도층인 사두개파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로마 권력층에 붙어 평민들을 박해했습니다. 바리새파는 자신들만 경건하다고 자랑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아예 상종도 않았습니다. 에세네파는 이것저것 보기 싫다며 은둔생활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버려진 민중, 아무도 위로하지 않는 민중, 밟으면 밟히고 찍으면 찍힐 수밖에 없는 그 민중에겐 그들을 대변해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간 희망의 메시지는 들려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희망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희망이란 무엇입니까? 불행이라는 터널을 지날 때 터널 끝에 비추이는 빛과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려울 때 이길 수 있는 용기가 되기도 하고, 현실을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주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버림받았다고 생각될 때 혼자가 아니며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희망은 현실의 슬픔을 이길 수 있게 합니다.

안나와 시몬은 그 희망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사람에게 두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늙었어도, 남편이 세상을 떠나 희망이 없다 할지라도 여태껏 약속을 지키신 신실한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그들은 희망 중 하루 하루를 살았습니다.

시몬과 안나가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에 경건하고 진실하게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 삶이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요? 진정 주님을 만나기 원하십니까?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 오늘 우리 삶을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바른 길인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 시간과 물질, 건강을 바로 사용하고 있는지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셔야 합니다. 그것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적극적인 기다림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삶의 현장을 보십시오. 나 개인적으로 봤을 때 경제적인 희망이 없을 수 있습니다. 다시 일어날 건강의 희망이 없을 수 있습니다. 민족 분단의 상황 가운데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불러야 할 희망의 노래는 어디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자기 태에서 나온 자녀도 버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를 자신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담대하게 외치며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노래해야하지 않을까요? 그 희망은 우리 가슴에서부터 터져 나와야 합니다. 세상을 포기하고픈 사람들,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 입술을 통해 희망은 전달되어야 합니다. 교회로부터 어두움을 향한 희망의 빛은 증거 되어야 합니다. 대강절은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희망을 다시 찾게 해 주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희망을 잃어버렸습니까? 희망을 어디에 두셨습니까?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 앞에 다시 두십시오. 어둠을 보지 마십시오. 내 환경을 보지 마십시오. 나 자신을 보지 마십시오. 본래 거기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속에 있습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 속에 있습니다. 세상 끝날 까지 고아와 과부처럼 버려 두지 않으시겠다던 약속을 붙들고 나간다면 우리 삶은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둘째, 안나와 시몬은 언제든지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를 메시아인줄 알아본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가 올 것을 알고 있었고, 오시면 맞이하리라 생각하며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두 사람의 기다림을 나타내는 동사는 수동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기다림’ 이란 단어의 모양은 수동형입니다. 오면 만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두 사람이 기다린 기다림은 수동형이 아닌 능동형입니다. 메시야가 오실 것을 능동적으로 준비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2장 25절 ‘시몬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실 메시아를 위해 시몬은 율법을 지켰습니다. 사람에게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가꾸었습니다. 언제 주님이 오셔도 맞이할 수 있도록 살았다는 것입니다. 2장 37절, 안나도 금식하며 기다렸을 뿐만 아니라 섬기는 일을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해왔다고 증거합니다. 희망이 없다던 시대에 시몬과 한나는 주님께서 보내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아무것도 바랄 것 없는 그 때 간절한 바램으로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삶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흐트러지게 마련입니다. 환자들은 대체적으로 처음엔 희망을 가져보다가 더 이상 살수 없다는 선고를 받으면 자포자기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3절도 말세에 재림이 늦어지면 자기 정욕대로 행하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말씀합니다. 정신과 의사였던 폴 트루니에는 현대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 신앙인들의 비극 중에 하나는 구도의 정신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말하면서도 실제 삶 속에서는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 현대 신앙인들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셋째로 시몬과 안나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감사와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시몬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을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만민 앞에 예비한 것이요 만민을 비추는 빛이라. 주의 백성이 이스라엘의 영광이라.’증거합니다. 38절을 보면 안나는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구속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백 년 가까이 살아온 시몬의 눈에 비친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요? 자기 삶을 보고, 이웃의 삶을 보아도 절망과 상처, 위로 받지 못함과 괴로움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이 희망을 잃지 않고 메시야를 기다렸던 어느 날 이제야 주의 구원을 보았노라고, 어둠 가운데 빛이 되시는 주님을 보았노라고 외쳤다면 그 감격과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요. 일평생 절망과 좌절만 보았던 시몬의 품에 안긴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랬기에 시몬은 더욱 감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안나는 얼마나 감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외치는 안나의 음성은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바로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인생의 갈증 속에 헤매던 사마리아 수가 성의 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주의 구원을 보았노라고 외치는 감격, 안나와 마찬가지로 주를 만난 자의 감격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주를 만난 감격을 갖고 계십니까? 아무리 보아도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나, 버려져 아무도 돌보지 않는 나를 찾아오신 주님, 조건도 이유도 없이 찾아오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까지 사랑하셨던 그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다면 우리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경배 드리며 우리 입술을 다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지 않을까요? 성탄의 계절,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내가 찾은 복음의 소식을 증거하는 것이 진실로 구원을 맛 본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본질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감사와 증인으로서 사는 것은 어렵고 복잡하지 않습니다. 낙담과 탄식의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내 인생을 찾아와 구원하고 인도하실 그 주님의 이름으로 딛고 일어나십시오. 절망과 낙담을 중단하십시오. 삶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이제는 그만 두십시오. 내게도 빛과 희망이 되어주실 주님의 손을 붙잡고 당신을 둘러싼 그 어둠을 뚫고 나가십시오. 바로 그것이 주를 증거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고난 당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려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부인이 대 오페라 공연 극장의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에게 말하기를 지나간 밤 공연에 갔다가 아주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잃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 지배인은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수색 작업 끝에 그 목걸이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다시 전화기로 갔을 때 그 여인은 이미 전화를 끊어 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는 그 여인이 전화를 다시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상하고 어리석은 사람인가?”라고 말하겠지만 실은 우리가 그와 같은 태도로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께 고하고 나서 “수화기를 붙들고 기다리지”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응답 받을 때의 기쁨을 놓치고 끈질기게 기다리는 믿음에 대한 보상과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부합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을 종종 늦추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 마음의 소원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최선을 다했는데도 우리가 바라던 일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때문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낙심치 않고 계속 부르짖어 응답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재판관에게 애원할 때도 물러설 줄 모르고 계속 매어 달리다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응답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때가 되면 내 뜻과 내 생각대로는 안 되어도 다른 방법으로라도 하나님은 꼭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시40:1)

 

둘째, 선을 베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바리아(Bavaria)라는 성에 루드비히(Ludwig) 공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괴롭히는 포악한 공작을 성안에 모든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날 공작이 사냥을 나갔다가 숲 속에 한 작은 예배당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단 앞에서 오랜만에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예배당 벽에 무슨 글씨가 쓰이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보였다가 사라졌기에 앞부분만 기억났습니다. 삼일인지, 석 달인지, 삼 년인지 아무튼 그 안에(In Three ~)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제껏 죄를 많이 지었던 공작은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삼일 안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삼일 동안 아내와 부하들에게 잘 해주었습니다. 죽어서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생각을 하며 삼일 째 되던 날 높은 탑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공작은 다시 생각했습니다. 삼일이 아니라 석 달이었구나. 석 달 동안 가족과 백성들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세 달이 지나도 죽지 않는 것입니다. 공작은 이제야 확신을 가졌습니다. 삼 년이었구나. 3년 동안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팔소리와 함께 독일 왕실에서 사절단이 왔습니다. 바로 루드비히 공작을 독일의 황제로 모시기 위해서. 삼일, 삼 개월, 삼 년을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던 공작의 소문이 전 독일에 퍼져있었던 것입니다. 공작이 독일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행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작의 선행을 가능하게 한 것은‘기다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린 것이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면 다시 오실 메시아를 맞는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이것을 고민하는 것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적극적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앞으로 몇 십 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삼일 뒤에, 삼 주 뒤에, 삼 년 뒤에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 희망 가운데 절제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애3:25)

셋째. 기다리는 자는 마음이 기쁠 것이기 때문입니다.(사30:18)
남편이 밤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라면 그가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과는 아무 상관없이 초저녁부터 혼자 자버린다면 이미 사랑의 농도가 엷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의 신학자 터툴리안은 "신앙이란 불을 켜놓고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는 노력과 고통, 희망을 잃지 않는 인내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살다 보면 믿음을 지키는 것이 정말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믿음의 길을 포기하고 돌아설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을 바란다면 인내를 통해 나타날 최종의 승리와 기쁨을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라는 말씀처럼 비록 현실은 암울하고 고통의 연속일지 모르나 다가올 승리와 기쁨을 바라고 나가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신앙의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승리의 도취감을 생각하며 오늘의 근심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6:22)

 

넷째, 기다리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사30:18)
1948년 5월 14일은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탄생한 날입니다. 이날 유대인들은 한 사람을 기억했습니다. 44년 전 44세를 일기로 외로이 세상을 떠났던 테오도르 허츨(Theodor Herzl)입니다. 그는 파리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했습니다. 자신은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이 아닌 현대 유럽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지 않고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 생각한 테오도르 허츨은 유대인이 믿는 하나님도 믿지 않고 유대인단체의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허츨이 존경하는 유대인이자 프랑스군의 장교인 드레퓌스(Dreyfus)가 반역자로 처형당하게 되었습니다. 드레퓌스는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이기를 포기한 사람이어서 자신과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이 일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허츨은 드레퓌스가 사형 당하는 현장에서 군중들이 외치는 소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반역자를 죽이시오. 유대인을 죽이시오!’ 허츨은 드레퓌스가 처형당하는 이유가 반역자라는 사실보다 유대인이기 때문인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건 후에 허츨은 자신이 유대인인 사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유럽인들은 유대인을 멸종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 살길은 국가로 독립하는 길밖에 없음을 허츨은 알고, 전 세계 유대인들을 향해 유대인의 나라를 만들자고 호소했습니다. 그의 꿈은 전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신문에도‘절망에서 나온 허황된 꿈’이라고 평했습니다. 유대인 친구들조차도 정신 나갔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강력한 소망이 허츨을 독립에 미치도록 만들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잃어도 계속해서 기다리며 외치게 했습니다.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던 희망은 허츨이 세상을 떠난 지 44년 만에 이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그의 기다림은 희망이었고, 결국 현실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잠8:34)

다섯째,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아공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습니다. 만델라 대통령이 감옥에 있을 때에 딸이 아이를 낳아 아버지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아버지,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딸의 요청에 만델라는 아이의 이름을 ‘Hope’ 곧, 희망이라고 지었습니다. “너는 희망이야. 감옥에 있는 동안 희망이 나를 떠난 적이 없었지. 그리고 앞으로도 희망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가 석방되던 날 전 세계 매스컴에 비춰진 만델라의 모습이었습니다.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참 자유자의 표정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습니다. 대권을 이어 받은 만델라 대통령은 한 맺힌 사람의 모습이 아닌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사람으로 또한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평화의 상징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만델라에게서 희망이 떠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품어왔던 희망이 부서지고 깨져 절망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잠20:22)

여섯째, 주의 재림이 가까워 오므로 기다려야 합니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5:8)

지난 특별 새벽기도 집회 중, 첫 대에 예수 믿은 성도들을 위한 축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일어났습니다. 인생의 목표와 의미 그리고 기쁨을 주신 예수님 때문에 혈육과의 갈등까지도 감당하며 복음의 증거자로 살아가고자 애쓰는 그들이었습니다. 남편조차도 아내조차도 이해해 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포기할 수 없는 비밀이 있기에 외롭고 고독하지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아래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낮에 해와 밤에 달도 너를 상치 못하리.’ 축복할 때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았습니다. 왜입니까? 포기할 수 없는 보물을 간직하며 사는 것은 너무나 외롭고 고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달플지라도 가족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감당하고자 힘찬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 성탄의 계절에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납시다. 희망의 노래를 다시 부릅시다. 희망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는 모두 덮어두고 하나님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시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희망의 노래가 여러분의 가슴 깊이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루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만물을 생동케 하시는 위대하신 능력과 은혜로 우리에게 귀한 생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소서. 가정과 학교,직장과 사회에서 하는 일들을 통해 귀한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실망하지 않으며 모든 일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섭리를 기대하며 인내하고 승리하게 하소서.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어둠의 영이 사라지게 하소서. 미신과 우상숭배,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 사상과 사탄의 더러운 영들을 물리쳐 주소서.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용서하시고 절망과 혼란에 빠진 심령들 속에 생명의 역사를 이뤄주소서. 매사에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희망의 창문을 열어라!

회의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사람의 삶이란 불행의 연속이라 한다. 자기의 욕망이 충족되지 못할 때 오는 불만과 충족되었을 때 오는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관주의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감사할 일은 하나도 없다. 불의, 부정, 사기, 살인, 강도 등등...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요 절망스러운 것들이다.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하며 희망이 있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보아야 한다. 아직도 이 나라엔 진리를 좋아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희생하고 봉사할 줄 아는 일들이 많이 있다.
"지금은 좌절보다는 희망의 빛을 보고 일어서야 할 때이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오직 주의 나라가 속히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0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시는 그 때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0 원수가 나를 박해할 때 나는 인내함으로 주님의 구원을 기다릴 수 있는가?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요즘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주위에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하고 물으면 “그저 숨쉬고 있을 뿐입니다. 아니,숨만 쉬어도 다행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숨만 쉬어서는 안됩니다. 지금이야 말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인생 행복론’을 쓴 데일 카네기 사무실에는 풍경화 한 점이 걸려 있습니다. 물이 빠져나간 황량한 바닷가에 낡은 배 한 척이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는 장면입니다. 그 밑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비록 지금은 절망스런 때이지만 곧 온갖 생명체들이 노래할 밀물이 몰려올테니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썰물 때입니다. 모든 것이 빠져나가느라 고통스럽고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사실입니다. 썰물 때 배를 손질하고 그물을 수선하는 자만이 밀물 때 풍요를 누리게 됨을 잊지 마십시오.

* 예화(2): 희망이 있는 한

랍비인 휴고그린은 독일 집단 수용소에서 겪은 뼈아픈 체험담을 전후 독일 잡지에 이렇게 기고했습니다. 그 날은 1944년의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나와 함께 감금된 아버지께서 나와 친구 몇 명을 수용소 건물 한 구석으로 모이게 하셨다. 아버지는 그날이 유대인의 명절인 '하누카의 저녁'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진흙 주발을 내놓으시더니 수용소에서 좀처럼 구하기 힘든 귀한 버터를 녹여서 심지를 적시고 촛불을 대신하여 불을 켜셨다. 나는 아버지께 그 귀한 버터를 먹지 않고 낭비하는데에 항의했다. 아버지는 가만히 나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고도 3주간을 살 수가 있어. 그러나 희망이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가 없단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희망은 성공에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

* 예화(3): 기다림의 유익

우리는 배우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기도 응답이 오기를 기다리고, 반항적인 자녀가 철들기를 기다리고,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건강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갈등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곧 인내다.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운다.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을 보면, 잘 기다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다윗 왕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서 기다렸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기에 앞서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으며, 다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보냈다. 욥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하나님을 기다렸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노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난 후에야 특별한 아이인 세례 요한을 낳았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석방되기를 기다리면서 편지들을 썼는데, 그것이 오늘날 신약 성경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다. 하나님 역시, 세상 죄를 대속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해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리셨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주재권(主宰權)에 얼마나 굴복하며 사는지는 ‘기다림’이라는 도가니에서 시험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운명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체념 상태로 기다리거나 초조해하고 염려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이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이시요, 그 모든 것의 시간 조절에 있어서도 주님이심을 고백하기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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