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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5: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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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2006·09·30 참사랑교회 주일 설교
우리는 대개 심판은 미래에, 세상 마지막 때에 있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 천사의 나팔이 울려 퍼질 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심판을 현재적인 사건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진행되고 있습니다. 구원받을 자와 멸망당할 자가 이미 갈라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충격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심판이 지금 행해지고 있다면 오늘 나의 결단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다음부터 잘하겠다는 생각은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이 순간이 우리의 구원과 멸망이 결정되는 순간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성육신하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아들께서는 이처럼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아들에게 구원과 심판의 전권을 위임하셨습니다. 이제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심판하실 것인지를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원과 심판의 현재성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전도하면 죽기 직전에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아직은 죽을 때가 멀었기 때문에 구원의 문제가 급하지 않다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모한 생각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죽을 때 예수 믿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성경은 우리의 구원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결정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24절)
예수님께서는 영생과 심판은 미래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이루어지는 것으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정확무오한 절대적인 말씀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을 덧붙이신 것은 이 말씀이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심판이 오늘 이 세상에서 결정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구원과 심판은 무엇에 달려 있습니까?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데 달려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말은 믿고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또 오늘 우리의 구원은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데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복음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셨으며, 하나님의 아들께서 나를 위해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지금 여기서 구원을 받고 심판에 이르지 않게 됩니다.
지금 용서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죄 때문에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것은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죄를 용서받지 못하면 심판 날에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죄 사함을 받으면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게 됩니다. 지금 죄 용서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겸손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려 합니다. 나름대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내가 뭐 그리 큰 죄인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죄를 고민하며 눈물로 회개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겸손히 인정하십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죄가 내 안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마음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얼마든지 죄 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죄 용서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고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 당장 눈앞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24절 말씀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놀라운 자유를 누리며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인격을 갖추게 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절실히 깨닫고 회개하여 용서 받은 성도는 이제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며 용서할 줄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죄를 용서받은 감격과 기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심판과 종말을 잊지 말라
우리의 구원과 심판이 지금 결정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지금 결단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25절) 구원의 복음이 울려 퍼지고 있는 지금, 누구나 듣고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서 죽은 자들은 모든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살아난다는 말은 구원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구원과 심판의 전권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26-27절)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28절)
심판과 종말의 날에 무덤 속에 있는 자들, 즉 죽은 자들도 다 살아나서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왜 이 말씀을 이상하게 여겼을까요? 그들에게는 심판에 대한 말씀이 생소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종말론적인 심판에 대해서 들어본지가 벌써 오래 되었습니다. 그들은 현실생활에 급급했기 때문에 심판과 종말에 관한 말씀을 들을 때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에게는 심판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당시 유대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육신적인 삶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필요한 것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갖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돈을 더 벌기만 한다면 세상은 얼마든지 살기 좋은 곳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몰두하다보면 심판과 종말에 대해서 무감각해져버립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종말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 세상에서 좀 더 잘 사는 데 온통 우리의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변함없이 철저하게 종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날과 심판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습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이렇게 살고 있지만 우리의 인생은 순식간에 끝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종말과 재림의 징조로 더욱 진하게 물들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실 날이 정말 가까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말과 심판에 대해서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신앙과 삶에는 긴장이 있게 됩니다. 깨어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깨어 있는 성도는 언제 주님께서 오셔도 준비된 가운데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신앙과 삶에는 긴장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지금 오신다 해도 괜찮겠습니까?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의 이야기를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시면 그동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수고하며 얻으려고 했던 것들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그런 것들에 얽매여 재림과 심판을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주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과 심판과 종말이 오게 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깨어 믿음으로 준비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심판의 기준
이제 심판주가 되시는 주님께서 오셔서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에 주님께서는 무엇에 따라 인류를 심판하실까요?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으로 여겼습니다. 자기들은 택함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의 그러한 생각을 가차 없이 깨뜨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눅3:8-9)
그러면 심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각 사람이 행한 일들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29절) 주님께서 심판하실 때 그 사람의 행위를 보실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줄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신앙과 행위는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신앙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구원받는 믿음은 반드시 행위를 수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에게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행위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우리가 영광스런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우리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널리 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한 일을 위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심판하실 때 바로 이것을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방심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받은 성도가 함부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심판의 날까지 깨어서 선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심판주이신 주님께서는 그날에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심판하시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공판중심주의
요즘 우리 사회에는 법원과 검찰, 그리고 변호사 협회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갈등은 대법원장의 발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대법원장은 법원을 순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밀실수사로 만들어진 검찰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는 대개 사람을 속여 먹으려고 말로 장난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검찰과 변호사 협회에서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대법원장의 사과로 갈등은 일단 봉합되었습니다. 한편 대법원장의 발언은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한 것으로 여론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공판중심주의라는 것은 재판에서 모든 증거자료를 공판에 집중시켜 공판정에서 형성된 심증만을 토대로 사안의 실체를 심판하는 원칙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재판은 검사나 변호사가 만든 자료에 의해서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재판정에서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가운데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면 국민들은 좀 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실 때도 완전한 공판중심주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심판주이신 주님의 심판은 세상에서 행해지는 재판과는 달리 추호의 착오나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는 일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30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의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30절) 그날 우리의 모든 죄가 재판정에서 다 공개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거기에 따라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아무도 그날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최후의 심판을 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범죄했다 하더라도 오늘 철저하게 회개하면 그 죄는 없었던 것으로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여 용서받은 죄는 심판 자리에서 공개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날에는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죄를 회개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더욱 회개하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 참좋은교회가 세워진지 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뜻 깊은 날에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우리가 부족했던 것들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교회를 반드시 이루어 이루어나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좋은 교회란 어떤 교회입니까?
좋은 교회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는 교회입니다. 좋은 교회란 마지막 심판을 잘 준비하는 교회입니다. 마지막 심판날에 어느 교회가 진정 좋은 교회인지 밝혀질 것입니다. 말씀에 바로 서서 죄를 버리고 믿음의 순결을 지키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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