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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1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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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성남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세상엔 참 어렵고 힘들게 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낮은 울타리 9월 호에 보니 발가락 시인 이흥렬 시인의 간증이 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오직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던 왼쪽 발가락으로 시를 쓰는 분입니다. 돌을 두 달 앞둔 어느날 고모가 엎다가 뒤로 떨어트리는 바람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골방에서 하루 종일을 혼자 보내야 했고 형편이 어려워 약 한 채 지어 먹이지 못한 채 열일곱 살이 되어서야 병원게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원망하며 사는 인생,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교회가면 낫는다는 이웃 아주머니의 말에 반신반의로 어머니에게 업혀 갔던 교회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변한 것입니다. 손으로는 연필을 잡을 수 없어 발가락에 연필을 끼워 글을 배우고 시를 썼답니다. 어느 날부터 인가 그의 글에 하나님의 형상이 스며들기 시작했답니다. 하나님께 매달릴수록 마음에는 평안함이 깃들고 몸을 원망했던 마음도, 가족을 미워했던 마음도 하나님 앞에 풀어놓았을 때, 내 삶은 더 이상 원망이 아닌 희망의 노래가 되어 한 편의 시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입술 한번 떼기조차 힘겨워 발가락으로 겨우겨우 써내려가기 시작했던 시. 하나님은 그 시에 사랑을 불어 넣어 주셨고, 희망을 새겨 주셨답니다. 평생 자기 손으로는 숟가락질 한번 못 할 거라던 그가 스물세 살에 어설프게나마 내 손으로 밥을 먹게 되었고 누군가 붙잡아 줘도 일어서기조차 어려웠던 다리가 힘을 얻어 처음으로 아무것도 안 잡고 화장실을 다녀오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제는 결혼도 하여 감사하며 살고 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며 살던 사람이 예수님은 만나 52세에 늦장가를 가게 되었고 손이 아닌 발가락으로 청소도 하고, 넥타이도 매고, 피아노도 능숙하게 연주하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변화는 만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 만남
인생의 변화의 첫단계는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변화는 만남을 통해 출발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내용과 질이 달라집니다. 어떤 부모, 어떤 친구, 어떤 스승, 어떤 책, 어떤 직업, 어떤 지도자, 어떤 종교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행복해 질 수도, 불행해 질 수도 있습니다. 헬런 켈러가 탄생하기까지는 설리반과의 만남이 있었고 마이클 조던에게는 딘 스미스가, 플라톤에게는 소크라테스가,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습니다. 귀중한 만남은 인생의 축복입니다.
여러 만남 중 인생의 변화를 결정 짓는 중요한 만남 셋을 들라면 첫째는 부모와의 만남이고 둘째는 배우자와의 만남이고 셋째는 예수님과의 만남이라고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와 안드레(16).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19)은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변화된 인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평생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동안 고기를 잡으며 먹고 사는 것 걱정하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사의 주역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무식한 어부였습니다. 시기심도 많고 의심도 많고 충동적이고 욕심도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야로 믿고 훈련받고 변화되어 죽음의 역사를 소망의 역사, 부활의 역사로 바꾸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별로 배운 것이 없는 베드로가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하고 능력이 없는 그가 성령 충만을 받고 오순절 설교를 통하여 3천명을 회개시키고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욕심많고 시기심이 많았던 야고보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고,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 1·2·3서, 요한 계시록를 기록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믿게 만들고 오늘도 그의 기록을 통하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예수님 만나면 인생이 변화됩니다. 예수님은 그물을 던지는 시몬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찾아가서 만나 주셨습니다.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찾아가 만나주셨습니다.
경제 문제로 지쳐 있습니까? 미래를 향하여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질병 때문에 염려하고 있습니까? 마음의 불안과 걱정으로 기쁨을 잃었습니까?
삶의 현장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불치의 병을 앓는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자 그 지긋지긋한 질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38년 동안 일어나지 못하는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자 일어섰습니다. 남편 다섯을 두고 수치심으로 방황하던 여인이 예수님 만나니까 참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히 예수님을 만나자 용서를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오늘 이시간도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예수 만나면 인생이 바뀌고 가정이 바뀌며 사회가 바뀝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자 소아시아와 유럽이 변화되었습니다. 이레니우스가 예수님을 만나자 프랑스가 복음화되었고 영국에서 건너온 보니페이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독일이 기독교 나라가 되었습니다. 패트릭이라는 16살 난 포로 소년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아일랜드가 복음화되었으며, 언더우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한국 땅에 복음의 씨가 뿌려져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미얀마가, 허드슨 테일러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중국이 변화되었습니다.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화 했는데 그것은 그 어머니 헬레나의 신앙적 감화력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예수님을 만난 이름 모를 한 하녀로부터 예수님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 독실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이름 모를 하인도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를 만나라라는 책을 쓴 지니 세일즈 는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나 그 방법을 실현하는 첫걸음은 바로 부자를 많이 만나야 한다는 것이고, 부자와의 인맥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진정 부자가 되려면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과 만나면 가장 값진 인생이 됩니다. 우리 인생 중에 가장 귀중한 만남은 예수님입니다. 소크라테스는 40년을 가르쳤고, 플라톤은 50년, 아리스토텔레스는 40년, 그리고 예수님은 겨우 3년을 가르치셨지만 예수님의 3년 사역이 끼친 영향력은 고대 세계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하다고들 하는 위의 세 사람의 영향력을 합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어떤 만남보다 가장 고귀한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인생 변화의 첫단계입니다.
2. 버림
인생 변화의 두 번째 단계는 버림입니다. 변화는 버림을 통해 성숙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입니다. 그릇은 비울 때 새것을 채울 수 있습니다. 헌 옷을 벗어 던질 때 새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버리지 않으면 변화를 위한 두 번째 단계를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어떤 집사님께서 신앙 생활을 30년을 했답니다. 그런데 아주 자존심이 강해 남에게 지고는 못 살았답니다. 예수님을 만났지만 이것은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살았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출근하는데 버스가 끼어들었답니다. 아침부터 자존심이 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차를 세워 놓고 버스 기사에게 “왜 끼어 드냐”라고 항의를 하였답니다. 버스 기사고지지 않고 말다툼을 하다 이 집사님이 버스 안에 들어가 손가락질을 하고 쌍소리를 하며 싸웠답니다. 그러자 버스 기사가 약이 올라 버스 문을 닫고 달렸답니다.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들이 그들의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출근하기에 바쁜 이 집사님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으니까 내리기 위해 “ 차 세워 ”라고 소리쳤답니다. 그래도 기사는 차를 세워주지 않고 달려가니까 욕을 하며 차를 세워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기사가 “차세울라며 벨눌러 짜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벨을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날 따라 벨이 고장난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앞에 탄 할머니가 일어서더니 기사 앞에 가서 “삐” 소리치니까 차가 멈추었다는 유머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으면서 나를 변화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장애물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보다 성숙하고 행복한 신앙인으로 변화될 수 없습니다.
오늘 첫 번째 예수님을 통해 부름받은 4명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만난 후 무엇을 합니까?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분명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 주셨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그들을 만났고 그들을 만나자 분명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 주고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그물을 버려 두고 좇았다고 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과 삯군들을 배에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변화를 원하면 두 번째 단계는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는데 방해되는 것을 버려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행복한 삶을 방해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사역을 방해하는 나쁜 기억, 불행한 과거, 두려움, 염려, 근심, 걱정, 의심, 욕심, 이기주의, 자만심, 나태, 불쾌하고 안좋은 습관, 수치심, 지역감정, 편견, 아집, 마음에 들고 싶어 하기, 짜증내기, 초조와 불안, 시기하기, 헤프게 낭비하기, 흉내 내기, 파괴적으로 행동하기 등을 버려 버려야 합니다. 고통을 놓아버려야 하고 사람들의 배신을 놓아 버려야 하며 상실과 손실의 아픔을 놓아 버려야 합니다. 않놓으려고 애를 써도 때가 되면 생물들을 때가 되면 다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삶의 무게를 줄이는 버리는 기술(Simple Life)가 필요합니다. 걸음마 할 때 엄마의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면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해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이 생깁니다. 그러나 나를 부르신 예수님을 신뢰하고 놓아 버리면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어차피 놓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 소유, 장소, 습관, 시간 이 모든 것이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놓아버리기는 변화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놓아버리고 나면 손이 자유로워집니다. 어느새 몸에 배어버린 습관에서 벗어나면서 얻는 것이 한 조각 자그마한 자유라 하더라도 이미 그것으로 우리는 새로운 변화에 이르게 됩니다. 놓아 버리기는 나를 종으로 만드는 끈을 끊는 것입니다. 그것은 손실이 아닙니다. 발전입니다. 놓아버리기는 '미루기'가 아닙니다. 놓아 버리기는 자포자기가 아닙니다. 변화를 위한 새로운 선택입니다.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그의 작품이 지닌 예술적 비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답니다. 그 때 그는 "넘치는 것을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는 돌 속에 감추어져 있는 예술 작품을 자유롭게 풀어놓기 위해 조각 작품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것이 없어질 때까지 돌을 쪼고 또 쪼았답니다.
버림이 없다면 진정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세, 아브라함, 다윗 모두 믿음을 따라 고향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익숙한 것 떠나기 쉽지 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인생의 행복을 좀먹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이라며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제가 몇주 전에 주보에 소개한 “내려놓음”이란 책이 있습니다. 몽골 선교사로 봉사하시는 이용규 선교사님이 쓴 책입니다. 감명 깊은 책입니다. 이미 읽어 본 성도님도 계실 것입니다. 이분은 서울대를 나오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아내도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움켜잡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부가 죽어 가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몽골로 떠났습니다. 그분은 "내려놓음의 결심과 실행만이 진정한 행복을 택하는 크리스천의 덕목인 것"을 온몸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그 책에서 가장 좋은 것을 붙들기 위하여 자신이 세우는 미래의 계획을 내려놓고 텅 빈 물질 창고까지 하나님께 내려놓고 생명과 안전에 대한 염려와 결과를 예상하는 경험과 지식, '죄'와 '판단'의 짐, 명예와 인정받기의 욕구, 사역의 열매를 다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는 사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지라고, 꼭 붙들고 있으라고 유혹하고 내려놓는 순간 모두 잃어버릴 거라고 말하면서, 후히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게 만들지만 내려놓는 순간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과 평강,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 분이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데 적어도 35만에서 40만불의 비용이 들었는데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박사 과정을 다니면서 팔에 통증을 느끼고 팔을 잘 움직이지 못해 산부인과에 진찰을 받으러 갔다가, 가슴에 난 작은 멍울을 발견하였답니다. 의사는 종양이 작아서 악성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세한 검사를 먼저 해보자고 제안했답니다. 그 때 스스로 물었답니다. '너는 최악으로 혹시 아내를 잃는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니?' 언젠가는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 부분을 놓고 기도했답니다. 결국 아내도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 의탁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자신을 힘들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믿음을 더하게 하시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더욱 쌓아가게 만드는 도구에 불과할 뿐임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아내의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내려놓는 시험을 이미 통과했다고 합니다. 더 이상 그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을 확신하게 되었답니다. 그 때 그는 담대하게 아내에게 말했답니다. "여보, 이것은 그냥 지나가는 과정이에요. 결코 이 문제가 우리 가정에 더 이상 어려움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당신은 안전해요." 아내는 건강하게 지금도 몽골에서 선교사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우리에게 주셔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좌절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우리는 감사와 평강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은 향유 옥합이 무엇입니까? '버리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폐기학습(Unlearning)'이 필요합니다. 버릴 때 진정 값진 것으로 채워져 변화의 진전이 일어납니다. 인생의 풍랑이 다가 모면 내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3. 좇음
인생의 세 번째 변화의 단계는 좇음입니다. 변화는 좇음을 통해 완성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18절에 그물을 버려 두고 좇았다고 했습니다. 20절에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고기를 좇는 생활이었습니다. 눈을 감든 눈을 뜨든 오직 고기가 어디에 많이 있을까? 기상을 볼 때 오늘은 어디로 고기가 이동할까? 고기를 어떻게 팔아야 할까? 온통 고기를 좇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고기를 낚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예수님을 좇는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좇는 삶을 살다보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갖가지 좋은 것들을 만들어 놓고 “나를 따르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를 현혹하는 갖가지 복이라는 올무를 걸어 놓고 좇아 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나비처럼 그것을 좇다가는 결국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마귀의 팔복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한 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에 나가지 않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가장 믿을 만한 일꾼이 될 수 있음이요. 목사의 흠이나 과오를 보고 트집만 잡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설교를 들어도 은혜 받지 못할 것임이요. 자기 교회이면서도 나오라고 사정사정 하여야만 교회에 나오는 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교회 안에서 말썽꾸러기가 될 것임이요.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내가 좋아하는 다툼과 분쟁을 일으킬 것임이요. 걸핏하면 삐쭉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교회를 곧 그만둘 것임이요. 하나님의 일에 인색하여 헌금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일을 가장 잘 돕는 잘일 것임이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자기의 형제와 이웃을 미워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영원한 친구가 될 것임이요. 성경을 읽고 기도할 시간이 없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꾐임에 쉽게 넘어가 마침내 조롱거리가 될 것임이라.”
우리가 진정 변화된 복된 삶을 살려면 사탄을 좇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대하여 아주 명료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진정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1) 자기를 부인하라고 합니다. 부인하라는 말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나를 주관하는 것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인생의 주제권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이제까지는 네가 살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의 왕권을 주님께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나의 결정권을 주님께 주라는 것입니다.
2)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외면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을 말합니다. 십자가는 사랑을 말합니다. 십자가는 희생을 말합니다. 바울은 고전1:1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미련한 것 같으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고난의 십자가를 지면 변화를 진정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자신들에게 지어진 십자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전례되는 말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안드레는 에데사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고 사도 요한은 백세까지 온갖 시련을 겪다가 죽어간 살아 있는 순교자였습니다.
3) 그리고 예수님을 좇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능한 사람을 좇으면 미래가 보장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스승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삶의 길, 평안의 길, 복된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막 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좇다 당하는 고난과 눈물 언젠가는 주님께서 다 갚아 주실 것입니다.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언젠가 우리 주님께서 영광 중에 오실 것입니다.(살전4:13-18 고전15:51-53)
자신을 부정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삶이 변화를 위한 최종적인 단계입니다. 주님을 좇으면 우리의 성품이 변화됩니다. 우리의 능력이 변화됩니다. 우리의 삶의 질이 변화됩니다. 우리의 태도가 변화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변화됩니다. 우리의 감정이 변화됩니다. 내가 주안에 주님이 내안에 사는 삶의 신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내려 놓음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미국 유학 시절 애리조나 주의 호피 인디언 부족이 사는 곳으로 단기선교를 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하시는 선교사님이 구호물품을 운반하던 중 수중에 타이어 살 돈이 없어서 싸구려 재생 타이어를 사용했다가 그만 타이어가 사고의 원인이 되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눈물로 장례식을 마치고 금요 철야기도를 하며 부르짖었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단기 선교를 취소하자고 했답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질문해 주셨답니다. "너 혹시 두훈이 대신 그곳에 가줄 수 있겠니?" 그 때 울면서 대답했답니다. "하나님, 그곳에 우리 팀을 재워줄 곳이 없을지라도, 그 땅 사람 중에 우리를 맞아줄 사람이 없을지라도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예수님을 좇기로 결심하고 호피 부족을 찾아간 선교를 하였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은 준비시켜 놓고 있었답니다. 다리 한쪽을 잃은 채, 사탄의 음악을 하고 주술적인 문양을 팔아 돈을 버는 청년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90세 넘은 할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했고, 영어를 하지 못하는 형제자매들을 통해서도 아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답니다. 80명의 아이들 중 60여 명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변화는 만남을 통해 출발하며 변화는 버림을 통해 성숙하며 변화는 좇음을 통해 완성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6.11.12
출처/ 열린교회 http://yeoli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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