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요7:25-36 |
|---|---|
|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참사랑교회 2007·02·24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명을 깨닫고 감당해나갈 때 우리는 복되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주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는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감수해야 할 고난과 손해 등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서 십자가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명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고자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명을 깨달을 때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사명은 우리 인생에 목적을 주고 의미를 부여하며 삶의 원동력을 제공합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깨닫고 감당하며 사는 사람은 인생을 진정 복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명을 감당하기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명을 마지못해 감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명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십자가가 나를 지고 가더라.” 정말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처음에는 힘들고 괴로워도 사명을 감당하려고 애를 썼는데, 나중에 보니 그 사명 때문에 내가 살게 되더라는 뜻입니다. 사명을 깨달은 사람은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사명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향하여 지치지 않고 전진해 나갑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그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기억하고 계셨으며,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생명까지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극심한 미움과 반대와 적대를 당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도 항상 당당하셨고, 끝까지 흔들림 없이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깨닫고 있습니까? 그 사명을 충성 다해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습니까? 그 사명 때문에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습니까? 당신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의 음모
초막절이 되었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틀림없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오실 것으로 예상했으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음모를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은밀하게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초막절 기간의 중간 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성전에 공공연하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공공연하게 나타나 가르치셨으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의 음모를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25-26절) 바리새인들이 죽이려고 찾던 예수님이 이렇게 성전에 나타나셔서 공공연하게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었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체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의 음모를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이제 아마도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오류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은 메시아일 수가 없다고 하면서, 나름대로 그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메시아는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법인데, 자기들은 이 사람 예수가 갈랄리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27절)
당시 유대 사회에는 메시아에 대해서 몇 가지 설이 나돌고 있었습니다. 구약에는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5:2) 그래서 구약을 인정하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은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사람들은 메시아는 그 기원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주장은 메시아가 홀연히 성전에 임하실 것이라는 말라기의 예언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3:1) 또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모세처럼 많은 이적을 행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볼 때 예수님은 메시아일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단지 갈릴리 나사렛 출신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으며, 홀연히 성전에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많으랴 하니”(31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대답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라고 말한 것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그들의 말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더 중요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28-29절) 그런데 문제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왔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구약을 배우며 하나님을 섬겨왔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니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으면 이렇게 되고 맙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생하게 깨닫지 못하면 이렇게 되고 맙니다. 성령의 감화하심을 받지 못하면 이렇게 되고 맙니다. 아무리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어도, 아무리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해도,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습관적인 신앙생활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늘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성령의 감화하심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설교를 듣고 성경을 묵상할 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마음을 다해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고 함께 하시는 것을 늘 생생하게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체포하려 함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기로 했습니다.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32절)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은 26절과 31절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25-26절)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많으랴 하니”(31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에 나타나 공공연하게 가르치시는데도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의 음모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이적들에 대해서 말하면서 아무래도 이분이 메시아인 것 같다고 수군거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지금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체포해오라고 사람들을 보냈던 것입니다.
아직은 때가 아님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자신을 체포하려고 온 사람들을 보시고도 전혀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30절) 예수님께서는 아직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해도 그들의 뜻대로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해오라고 사람들을 보내도 그들은 예수님에게 손 하나 댈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위해 전력투구한다고 해도 모든 것이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되는 것 같다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져버리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잠19:21)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내 뜻을 고집해봐야 내 인생만 곤고해집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평안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고 나면 담대해집니다. (주님의 시간에 그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하루 하루 살 동안 주님 인도하시니 주 뜻 이룰 때까지 기다려 / 기다려 그 때를 그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주의 뜻 이뤄질 때 우리들의 모든 것 아름답게 변하리 기다려)
주님의 뜻에 순종한다고 해서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목숨까지 바쳐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한걸음씩 걸어가신 주님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담대하고 평안하며 기쁨과 확신에 넘치는 모습입니까? 주님을 체포하러 온 사람들 앞에서도, 주님을 심문하는 대제사장들과 총독 앞에서도, 주님은 전혀 흔들림이 없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심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있다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노라”(33절) 예수님께서는 아직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때가 초막절이었으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유월절까지는 약 6개월이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6개월 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말씀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금 있다가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하늘 보좌로 복귀하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사명을 완수하시고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게 될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 여기서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심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35절) 여기서 ‘흩어져 사는 자들’은 디아스포라를 가리킵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일찍이 해외로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교민들인 셈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 해외 교민들에게로 가시겠다는 것이냐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놀랍게도 유대인들의 이 말은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잔혹하게 핍박하던 사울을 붙잡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이 디아스포라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서 그들의 회당을 전초기지로 삼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헬라인들 중에 흩어져 있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극심한 반대와 적대와 위협 가운데서도 당당하게 끝까지 사명 감당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과 33년의 짧은 인생을 사셨으며, 그것도 공생애는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집중하셨고 그 사명을 완수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이 복된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은 우리의 인생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해주며, 우리의 인생을 복되고 영광스럽게 만듭니다. 이 사명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서 강하게 붙으시며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