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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8:2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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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참사랑교회 2007·04·14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울 때는 아마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일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인격적인 관계가 불가능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얼마나 갈등이 많아집니까? 부부 사이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부부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말이 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면 어떤 관계도 잘 풀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불행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세워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도 없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못하며, 하나님의 은혜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늘 확인하며 살아가는 성도는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새롭고도 풍성하게 경험하는 성도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유대인들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친밀한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았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일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를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수를 말씀하실 때 사마리아 여자는 마시는 물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중생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죄 가운데서 멸망당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21절) 주님께서는 24절에서도 이것을 반복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알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22절) 유대인들은 “자기가 죽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가 가는 곳이면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불경스럽게도 “그런 말 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자살이라도 하려는 모양이지?”라고 비웃었습니다. 구원이라는 너무나도 중대한 문제 앞에서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말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왜 예수님의 말씀을 그렇게 알아듣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소속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23절) 소속이 달랐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하늘의 것을 말씀하시는데 그들은 땅의 것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며,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위로부터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왜곡된 메시아관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왔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믿지 않았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1:9-11)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키실 때 가장 자주 사용하신 호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인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부르시기 보다는 인자라고 부르셨을까요?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던 그리스도는 성경이 보여주는 그리스도와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는 다윗과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출하고 강대하고 풍요로운 나라를 세울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는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 아들은 세상에 오셔서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서 구약성경이 보여주는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메시아관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구약성경을 자신의 현실에 맞추어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강대국에게 시달리며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가장 강대하고 풍요로웠던 다윗 시대를 이상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다윗 시대와 같은 태평성대를 이룰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기대했던 메시아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던 메시아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고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해석과 적용을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철저하게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깨닫고 순종함으로 늘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성경을 자기의 생각과 형편에다 억지로 짜 맞추면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왜곡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성경을 함부로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 신학자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큰 벌을 받게 되는 줄 아십니까?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우리는 오직 성경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진단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따라 말씀으로 항상 새로워져야 합니다. 성경으로 우리의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늘 그렇게 하면 우리는 유대인들과 같은 오류에 빠지지 않고 진리 가운데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말하여 온 자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서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알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24절)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25절)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말하여 온 자’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구약에서 처음부터 예언되고 약속된 분이라는 뜻입니다. 인류가 타락한 이후 성경은 죄인을 구원할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구약성경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의 구원자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15에 그분은 여자의 후손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 같은 족장들은 그분을 사모하며 기다렸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모세가 그분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18:15) 율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물의 어린양을 비롯한 모든 제사 제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성막과 그 모든 제도들 역시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얼마나 그분을 사모하며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다윗의 시편에는 메시아를 가리키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시편 22편입니다. 이 시편은 이렇게 유명한 말로 시작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시22:1상) 그는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조롱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시22:7-8) 군병들이 주님의 옷을 제비뽑을 것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시22:18)
선지자들은 이분에 대해서 더욱 분명하게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분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사11:1-2) 또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그는 또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자세히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선지자들은 심지어 그분이 탄생하실 동네까지도 예언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5:2) 그밖에도 예수님의 생애와 부활과 승천에 대해 구약은 자세히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예언은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처음부터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해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그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왜곡한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성경이 처음부터 줄곧 예언해온 바로 그 메시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자를 든 후에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정직하고 진지하게 구약을 믿고 상고했더라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얼마든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구미에 맞게 고쳐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그분이 자기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던 메시아와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그분을 믿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될 때가 올 것이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28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인자가 든 후에’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후에야 그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을 때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한 후에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그들의 죄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앞으로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그러나 이 기회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회가 다 지나가고 곧 마지막 심판날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는 사람들이 깨닫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날에는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기에는 너무 늦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최후의 통첩이었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최후의 통첩을 듣고도 믿지 않고 결국 멸망을 당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처럼 위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우리는 거듭나서 주님처럼 하늘에 속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알고 그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주님과 잘 통하고 있습니까? 주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져 있습니까? 그분의 뜻을 깨닫고 기쁨으로 온전히 순종하며 살고 있습니까?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당신이 기도하는 것은 얼마든지 응답받고 있습니까? 하늘로서 내리시는 풍성한 은혜를 날마다 새롭게 체험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고 있습니까? 하늘나라의 소망과 즐거움이 매일 새롭게 다가오고 있습니까?
지금은 구원의 날이며 은혜 받을 때입니다. 기회가 항상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최후의 통첩을 하셨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머지않아 순식간에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후회해도 너무 늦을 것입니다. 오늘 이 기회를 놓쳐버리고 그날에 후회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오직 말씀을 굳게 붙들고 믿음으로 살며, 오늘 나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을 다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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