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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요8:4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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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참사랑교회 2007·05·12
2005년도 우리 교단 총회에서는 교계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동안 이단으로 지목되어 왔던 한 대형교회가 우리 교단에 가입하기 위해 모든 합법적인 절차를 밟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그 교회가 우리 교단에 받아들여졌더라면 매우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안건은 부결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일을 지지하며 도왔던 사람들이 징계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이 교회가 이단이라는 것을 밝힌 총신대학원 교수들의 연구보고서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그 교회에서 선포된 설교를 분석하여 이단성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유독 이단시비가 많습니다. 또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대단히 배타적이고 독선적입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것은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명한 목사는 기독교만이 아니라 불교나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어디서도 그런 주장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참 신은 하나님밖에 없으며,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20:3-5상) 그리고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밖에는 없다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기독교는 편협한가?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 때문에 기독교는 대단히 배타적이고 편협하다고 비난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에서 유일하게 동화되지 못한 민족은 유대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로마가 천년 동안이나 존속하면서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피정복 민족을 동화시켜 로마의 질서와 모든 혜택 아래로 흡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정복당한 민족들 중에서는 로마 시민권을 얻은 사람들이 많았으며, 원로원에 진출하거나 심지어는 황제에 오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에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우수한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에 동화되었더라면 유대인 출신의 탁월한 로마 지도자들이 많이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에 동화되지 못한 원인은 유대인들의 유일신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로마를 비롯한 모든 민족들은 많은 신들을 섬겼습니다. 여러 신을 섬기던 민족들은 또 다른 새로운 신을 섬기는 데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일신 신앙을 고수했던 유대인들은 절대로 다른 민족들의 신을 섬기지 않았으며, 이것 때문에 끝까지 그들과 동화될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은 독선적이고 편협하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난을 받으면서도 기독교가 유일신 신앙과 유일한 구원의 길을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을 무시하거나 적대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목표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불신자들을 사랑하며, 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끊임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번에 전도대상자를 정해놓고 전도하기로 한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모든 성도들이 반드시 전도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의 이단 논쟁
요한복음 8장에는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의 길고 치열한 논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결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또 자기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았고, 그분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히려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유대인들을 인정해주지 않으시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극단적인 비난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48절)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한 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상스러운 욕설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도 본래는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남 왕국 유다는 B.C.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바벨론은 많은 백성들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갔으며, 이스라엘 땅에는 비천한 국민을 남겨두고 거기에 이방 민족을 이주시켰습니다. 그 결과 거기 남아 있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혼혈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이렇게 혼혈이 된 사람들을 멸시하고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혼혈이 된 사람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의 반목은 이렇게 시작되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렇게 이방인들과 혼혈이 되었으나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과 비슷한 점들도 많았습니다. 그들도 모세오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오경을 해석하는 데는 유대인들과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방 종교에 대해서도 유대인들보다 훨씬 개방적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며 유대인들과 비슷한 점들이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부정하게 여겼고 매우 증오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 역시 그러한 유대인들을 적대하고 증오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사상이 자기들과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태도와 해석만 보아도 너무나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또 유대인들을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라고 하셨으며, 심지어는 마귀의 자식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자기들과 신앙과 견해가 달라서 멸시하며 증오했던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몰아붙였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예수님을 귀신이 들렸다고 비난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였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49절)
한 마디로 말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정죄한 것입니다. 그들이 왜 예수님에게 이렇게 극단적인 비난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자기들의 주장이 옳은 것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가장 믿음이 좋은 사람들로 자타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속을 꿰뚫어 보셨으며, 그들의 잘못된 것들과 죄들을 끄집어내시고 책망하셨습니다. 그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증오하며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주장이 옳고 예수님의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단으로 몰아붙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의 신앙과 주장이 옳은 것임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타협할 수 없는 신앙
이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증오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심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게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적당히 타협하시지 않고 끝까지 대립하셨을까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 독선적이고 배타적이지 않습니까? 왜 사랑이 무한하시고 우리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십자가에서 대신하여 죽기까지 하신 분이 편협하게도 유대인들과는 끝까지 대립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신앙에 있어서는 타협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순전한 믿음을 가져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타협하여 이 믿음이 변질되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앙은 생명보다 귀합니다. 그래서 신앙에 있어서 타협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나 모범적이고 친절하며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웬만하면 좀 더 양보하며 좀 더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주장과 고집을 너무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만큼은 조금도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타협하는 순간 우리의 신앙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했겠습니까? 신앙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구원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을 버리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영광을 추구하는가?
그러면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요? 50절이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행하셨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는 모든 일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기도와 금식까지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태도를 신랄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6:1)
바리새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영광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분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과 예수님 사이의 차이는 좁혀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늘 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인기는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애쓰며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자신을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 자신만을 위해 수고하며 노력한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한 것만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6:19-20)
영생의 길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의 생명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해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생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주어진 인생을 산 후 모두 죽게 됩니다. 그런데 죽은 후에는 영원한 내세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영원한 내세를 준비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일을 이루고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다 해도, 죽은 후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 형벌에 던져진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영생을 얻는 것, 즉 구원을 받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영생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51절) 영생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까? 무엇보다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손해와 고난도 감수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을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설교를 듣거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까? 목숨을 걸고 그 뜻대로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이런 사람은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할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가 죽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만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죽음 이후 내세에 비하면 죽음은 별것이 아닙니다. 지난밤에 곤하게 잠이 들었는데, 새벽 알람 소리에 곤한 잠에서 깨어나 새 날을 맞이했습니다. 죽음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우리는 잠드는 것처럼 죽게 될 것이며,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내세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죽은 후에 맞이할 내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이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타협과 양보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너무나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진리에 대해서는 절대로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편협하고 독선적인 분이어서 그랬을까요? 이것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구원이 달려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든 비난과 미움과 적대와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끝까지 진리를 사수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모범적이고 친절한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남보다 좀 더 열심히 일하고, 할 수만 있으면 양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과 싸우고, 그들에게 욕을 먹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로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와 신앙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사활이, 아니 영원한 내세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와 신앙을 지킬 뿐만 아니라, 안 믿는 사람들도 믿고 구원받도록 최선을 다해 전도해야 합니다.
당신은 진리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손해와 고난을 감수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있습니까? 우리가 영생을 얻지 못하면 우리의 모든 것은 다 헛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진리와 신앙을 굳게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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