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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의미 .....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164 추천 수 0 2010.10.07 15: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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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9:1-12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참사랑교회 2007·05·26

 

지금은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장애인들을 부당하게 차별하거나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은 그들이 어떤 저주나 벌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불교나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동양권에서 더 심합니다. 예를 들면 불교국가인 태국에서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타고 난 사람들은 전부 전생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눈 먼 사람들하고는 절대 악수하지 말라. 눈 먼 사람 가까이에 있지도 말라. 가까이 있다 보면 병에 걸리거나 액운을 당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장애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편견은 그들에게 더 큰 고통과 좌절을 안겨줍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도 아직까지 이런 편견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대인들과 심지어는 제자들까지도 사람이 고통을 당하거나 장애인이 되는 것은 모두 죄 때문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존의 편견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이 놀라운 말씀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놀랍고 풍성한 복음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특히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큰 소망과 위로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이 사람을 보면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 사람이 이렇게 소경이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인지 물었습니다.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이니이까”(2절)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3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소경을 고쳐주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시며,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하시어 구원을 얻게 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소경은 눈을 떠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믿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소경되었다가 눈을 뜬 이 사람에게 압력을 넣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진정한 소경은 바로 유대인들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죄와 고통과의 관계
  

유대인들은 모든 병과 고통은 다 죄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문둥병이었습니다. 문둥병은 하나님께 저주 받은 것을 의미했습니다. 모세의 누이였던 미리암은 모세를 대적하고 원망하다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도 거짓말로 나아만을 속이고 엘리사가 거절했던 선물을 받아왔다가 저주를 받아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모든 고난은 죄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고난당하고 있는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찾아왔다가 그가 이렇게 참혹한 고난당하는 것은 죄 때문이라고 단정했습니다.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욥11:6)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외함을 인함이냐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극하니라 까닭 없이 형제의 물건을 볼모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갈한 자에게 물을 마시우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권세 있는 자가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가 거기서 사는구나 네가 과부를 공수로 돌아가게 하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이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홀연히 너를 침범하며 어두움이 너로 보지 못하게 하고 창수가 너를 덮느니라”(욥22:4-11)
  

유대인들은 이렇게 모든 병과 고통은 다 죄 때문에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병이 나거나 고통을 당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죄인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렇잖아도 고통스러운데, 그 위에다 사회적인 정죄와 경멸을 당했던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소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죄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 되는 경우는 과연 자기 자신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그 부모의 죄 때문인지 단정 짓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고난이 죄 때문에 온 것이라는 생각은 옳습니다. 죽음과 질병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천재지변도 근본적으로 죄 때문에 온 것입니다. 죄가 없을 때는 죽음이나 질병이나 천재지변과 같은 것들이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죄가 들어온 후에 생긴 것들입니다. 이렇게 모든 질병이나 고통이 죄 때문에 온 것이라는 견해는 본질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죄와 고통이 항상 일대일로 상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범죄하여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거나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건강을 해쳤다면, 그 고난은 자기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무고하게 고통을 당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운전부주의로 내 차를 받아서 사고가 났다면 그것이 왜 내 잘못 때문이겠습니까? 공해나 사회문제들로 고통당하는 경우도 애매한 경우입니다.
  

본질적으로 모든 고난은 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개인이 당하는 모든 고난이 그 사람의 죄 때문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죄를 지어서 그 결과로 고난 받는 것이 분명다면 그 사람에게 회개할 것을 권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고난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확신시키며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
  

사람이 당하는 모든 질병과 고통은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제자들도 날 때부터 소경이 된 사람은 과연 누구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기 전에 죄를 짓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부모가 죄를 지어서 자식이 이렇게 소경으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 문제에 대해서 물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이니이까”(2절)
  

그래도 제자들은 다른 유대인들과는 달리 예수님께로부터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거듭남의 진리를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과는 생각이 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지금 날 때부터 소경이 되어 평생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놓고서 이렇게 신학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무심하고 잔인한 일입니까? 가련한 이 소경은 지금까지 그런 말들을 수도 없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3절) 예수님의 생각은 유대인들처럼 운명론이나 인과응보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참하고 불쌍한 이 소경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새롭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소경도 그런 말씀은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아마도 그의 귀가 번쩍 뜨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누가 병이 들거나 사고를 당하면 무슨 죄를 지어서 그런 일을 당하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향은 특히 믿는 사람들에게 더 많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고 모든 일이 형통한다는데 저 사람들은 뭔가 죄를 지었거나 신앙에 문제가 있어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난당하는 형제를 더 아프고 힘들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 소경은 자기처럼 천하고 가치 없는 죄인이 감히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약점과 고민과 문제와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당하며 불행해집니다. 물론 그 중에는 우리의 죄 때문에 생긴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회개가 가장 확실한 해결책입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정말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스럽고 답답한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대한 주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타나내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고통이나 불행도 일단 예수님께 맡겨진 이상, 그것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도구요 기회인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고통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고민과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가지고 혼자서 고민하고 원망하며 몸부림친다면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절망시킬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끌어안고 팔자타령을 하는가 하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일을 당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기도 합니다. 부모를 잘못 만났다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할수록 우리는 더욱 불행하지고 소망이 없어집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다. 오늘 당신의 모든 문제와 고통과 약점이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르심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날 때부터 소경이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그 소경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한 방법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6절)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만져 고쳐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 말씀만 하셔도 얼마든지 고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서 그의 눈에다 바르셨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침에 무슨 효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또 침으로 진흙을 이겨서 발라주셨을까요? 능력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이지 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이 소경을 고쳐주신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처음부터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4-5) 그들은 참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소경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눈을 떠서 하나님의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알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소경의 눈을 고쳐주신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진리를 계시하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믿고 구원을 얻게 하려고 오신 세상의 빛이심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소경은 그렇잖아도 보이지 않는 눈에다 진흙을 잔뜩 바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실로암 못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들 이 이상한 모습을 구경했습니다. 한참 후에 이 사람은 실로암 못에 눈을 씻고 고침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다시 만났을 때 그분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소경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41절)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은 율법을 다 알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도 다 알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은 것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더욱 심각한 소경은 바로 이 유대인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겸손하게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었으면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교만하게 예수님을 배척하고 대적했습니다. 그 결과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이 소경보다 더 심각한 영적인 소경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르신 것은 영적인 소경인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소경된 상태를 자각하도록 촉구하신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로암으로
  

예수님께서 이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고 보내신 곳은 실로암 못이었습니다.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7절)
  

예수님께서는 이 소경을 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으로 완전히 고쳐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을까요? 우리는 실로암이라는 말을 번역해 놓은 괄호 속의 말씀에서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께로 오는 자들을 직접 고쳐주실 수 있지만, 대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어딘가로 보내십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말씀이 있는 곳이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함께 하시며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 교회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치유와 구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교회로 보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주님께 예배하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고쳐주십니다. 이곳에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귀합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주님 이곳에) 오늘 이 시간에도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연약함과 고통과 문제를 치유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자신이 소경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약점과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며, 주님께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심각한 영적인 소경들인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당신의 죄는 무엇입니까? 아직도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도 눈에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 못으로 가야 합니다.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나의 죄와 연약함과 문제를 깨닫고, 정직하게 인정하고, 주님께 겸손히 내어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며, 우리의 약점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오늘 당신에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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