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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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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6:2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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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42) 빵과 말씀의 대결 (요 6:22-26) 믿음은 헛되지 않습니다 >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와치만 니는 논란이 되는 여러 자신의 주장과는 별도로 그의 삶 자체는 존경받을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1951년 정월 초하루, 그는 상하이의 섬기던 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본문은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에 관한 설교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교를 마무리했습니다. “당신의 능력이 구원에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때가 곧 올 것입니다. 심지어는 모든 것의 마지막 때가 오겠지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에 마지막 때가 바로 시작하는 때가 될 것입니다.”
그는 1952년 4월 10일, 50세의 나이로 체포된 후 자유를 맛보지 못하고 20년 후에 죽었습니다. 그의 아내도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죽었습니다. 그는 누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할 수 없었지만 짧은 편지에서 자신의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나는 여전히 기쁨을 유지하고 있어요.” 20년 동안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기뻐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1946년, 그는 4억 5천만 중국 전체 인구 중에 100만 명의 성도가 있다고 예측했고 그때부터 교회는 문을 닫고 선교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1996년 중국 내부 공산당 조사에 의하면 공산당원 수보다 기독교인 수가 더 많았습니다. 50년 만에 죽의 장막 중국의 뚜껑을 열자 약 5천 3백만 공산당이 있는 반면, 그 숫자의 배에 해당하는 1억 이상의 사람들이 성도였습니다. 믿음과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믿음 안에서 인간의 의지가 끝나는 때가 하나님의 의지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 빵과 말씀의 대결 >
주님 세상에 오실 때 유대 땅은 기갈과 허덕임이 심했습니다. 로마의 앞잡이들에 의해 백성들이 수탈되면서 곳곳에 굶주림이 만연했는데 그때 주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이란 말은 ‘떡집’이란 말입니다.
특히 요한복음 6장에는 ‘떡’이란 말이 21번 나옵니다. 그래서 ‘떡장’이란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백성들이 주님을 따르니까 주님이 하늘의 떡, 즉 생명의 떡에 관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생명의 떡에 관한 말씀의 서론 부분인데,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떡, 양식’이란 단어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을 찾는 무리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표적은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절).” 떡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주님을 찾으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먹을 것을 바라고 기도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만큼 자신을 낮게 만드는 자세도 없고, 그런 자세는 축복을 차버리는 자세입니다.
야곱과 에서를 보십시오. 에서가 별로 큰 잘못을 한 것 같지 않지만 팥죽 한 그릇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판 것 자체가 무엇보다 큰 잘못입니다. 돈이 있어도 주님 없으면 못산다고 고백을 할 줄 아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십시오. 세상의 떡 때문에 생명의 떡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공산주의와 기독교의 대결은 간단히 말하면 빵과 말씀의 대결입니다. 공산주의의 창시자 마르크스는 분명한 철학을 가졌습니다. “먹는 문제, 경제 문제만 해결하면 다른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먹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먹는 문제에 매달리면 먹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사십일을 굶어서 지금 죽어가도 빵이 먼저가 아니라 말씀이 먼저로 둡니다. 그래서 사단은 가장 먼저 떡으로 유혹했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절박해도 말씀이 먼저입니다. 그처럼 말씀을 앞세우면 신비하게 먹는 문제가 해결됩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와치만 니는 논란이 되는 여러 자신의 주장과는 별도로 그의 삶 자체는 존경받을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1951년 정월 초하루, 그는 상하이의 섬기던 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본문은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에 관한 설교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교를 마무리했습니다. “당신의 능력이 구원에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때가 곧 올 것입니다. 심지어는 모든 것의 마지막 때가 오겠지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에 마지막 때가 바로 시작하는 때가 될 것입니다.”
그는 1952년 4월 10일, 50세의 나이로 체포된 후 자유를 맛보지 못하고 20년 후에 죽었습니다. 그의 아내도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죽었습니다. 그는 누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할 수 없었지만 짧은 편지에서 자신의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나는 여전히 기쁨을 유지하고 있어요.” 20년 동안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기뻐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1946년, 그는 4억 5천만 중국 전체 인구 중에 100만 명의 성도가 있다고 예측했고 그때부터 교회는 문을 닫고 선교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1996년 중국 내부 공산당 조사에 의하면 공산당원 수보다 기독교인 수가 더 많았습니다. 50년 만에 죽의 장막 중국의 뚜껑을 열자 약 5천 3백만 공산당이 있는 반면, 그 숫자의 배에 해당하는 1억 이상의 사람들이 성도였습니다. 믿음과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믿음 안에서 인간의 의지가 끝나는 때가 하나님의 의지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 빵과 말씀의 대결 >
주님 세상에 오실 때 유대 땅은 기갈과 허덕임이 심했습니다. 로마의 앞잡이들에 의해 백성들이 수탈되면서 곳곳에 굶주림이 만연했는데 그때 주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이란 말은 ‘떡집’이란 말입니다.
특히 요한복음 6장에는 ‘떡’이란 말이 21번 나옵니다. 그래서 ‘떡장’이란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백성들이 주님을 따르니까 주님이 하늘의 떡, 즉 생명의 떡에 관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생명의 떡에 관한 말씀의 서론 부분인데,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떡, 양식’이란 단어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을 찾는 무리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표적은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절).” 떡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주님을 찾으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먹을 것을 바라고 기도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만큼 자신을 낮게 만드는 자세도 없고, 그런 자세는 축복을 차버리는 자세입니다.
야곱과 에서를 보십시오. 에서가 별로 큰 잘못을 한 것 같지 않지만 팥죽 한 그릇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판 것 자체가 무엇보다 큰 잘못입니다. 돈이 있어도 주님 없으면 못산다고 고백을 할 줄 아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십시오. 세상의 떡 때문에 생명의 떡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공산주의와 기독교의 대결은 간단히 말하면 빵과 말씀의 대결입니다. 공산주의의 창시자 마르크스는 분명한 철학을 가졌습니다. “먹는 문제, 경제 문제만 해결하면 다른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먹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먹는 문제에 매달리면 먹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사십일을 굶어서 지금 죽어가도 빵이 먼저가 아니라 말씀이 먼저로 둡니다. 그래서 사단은 가장 먼저 떡으로 유혹했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절박해도 말씀이 먼저입니다. 그처럼 말씀을 앞세우면 신비하게 먹는 문제가 해결됩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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