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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0:2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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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7·07·21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그 잠재력은 무한합니다. 인류의 지식과 기술과 문명은 눈부시게 발달해왔으며,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 해도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무엇이나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율적인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의존해서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맘대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이 자기 맘대로 살면 반드시 파멸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더욱 분명합니다. 요즘 많은 성도들이 자기 맘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을 인정하고 예배에도 나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 생각대로 해나갑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믿었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기 맘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을 중단하십시오. 성경대로 믿으십시오. 교회에서 지도하는 대로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오. 그래야 낭패를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맘대로 믿었던 유대인들에게 강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6절) 자기 맘대로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양이 아닙니다.
수전절
오늘 본문은 수전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전절은 구약에 나오지 않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신구약 중간기에 생긴 것입니다. B.C.170년에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라는 왕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8만 여명의 유대인들을 죽이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를 잡아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최대의 모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책을 모조리 불태우고 필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 할례를 금지했는데, 만일 할례를 행하다가 적발되면 모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견디다 못한 유대인들은 마카비 형제들을 중심으로 봉기하여 시리아 군대를 쳐부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성전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수전절은 바로 이 승리를 기념하여 제정된 절기로서, 일 년에 한 번씩 모여서 8일 동안 절기를 지켰습니다.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자 다짜고짜로 따져 물었습니다. 당신이 정말 메시아입니까? 우리를 헷갈리게 만들지 말고 확실히 말해보십시오.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미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24절) 이들의 말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5-26절)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증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이적들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적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은 고침을 받은 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9:32-33)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은 곧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증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자 이렇게 에워싸고 따져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분명한 증거를 보고도 믿지 않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6절)
유대인들의 혼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심을 보여주는 증거는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교훈과는 전혀 다른 권세 있는 교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무나도 크고 놀라운 이적들을 행하셨는데, 그 모든 이적이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이심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적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대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헷갈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혼란가운데 빠져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성경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도 예수님의 교훈과 이적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것만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에게는 메시아라고 인정할 만한 결정적인 한 가지 요소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는 군사적, 정치적 영웅으로 오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었는데, 메시아가 오시면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메시아라면 마땅히 하나님 백성인 유대인들을 로마로부터 구해낼 것이라고 믿었던 유대인들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교훈과 이적을 보면 메시아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이렇게 말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요7:31)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헷갈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메시아인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전혀 메시아 같지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 맘대로 믿는 신앙
유대인들이 이렇게 헷갈리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보다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메시아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만들어 놓은 메시아는 어떤 모습입니까? 어느 날 홀연히 다윗과 같은 영웅으로 나타나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원해줄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는 그런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아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기 위해서 오실 것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실 것이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메시아가 오시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선포되며, 소경이 눈을 뜨게 되며 불구자들이 뛰게 될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사61:1)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사35:5)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메시아는 죄인들을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는 종의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 모든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대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신앙이 성경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올바른 신앙(그리스도 중심)
믿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가장 잘 믿는다고 자부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신앙은 잘못된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믿는 신앙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 신앙이 아니었니다. 그들의 신앙은 유대인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메시아는 오셔서 오직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자기 맘대로 믿는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유대인들과 같은 함정에 빠지기 쉽니다.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믿는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 마음대로 믿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든지 내 맘과 형편에 맞지 않으면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사가 아무리 강조하고 권면해도 끝내 자기 맘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기 맘대로 믿는 것이 왜 문제가 됩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내 양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맘대로 신앙생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날에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그러면 어떻게 믿는 것이 올바른 믿음일까요? 하나님 말씀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에 대한 유일하고 절대무오한 법입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올바른 신앙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믿는다는 말은 곧 예수님 중심으로 믿는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이 왜 결정적으로 잘못될 수밖에 없었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들이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외면하고 거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철저히 예수님 중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철저히 주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 역시 예수님을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우리의 직장과 모든 생활에도 주님께서 중심에 계셔야만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내 맘대로 믿지 마십시오. 철저히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오직 주님만이 당신의 중심이 되시고, 더 나아가서 당신 인생의 전부가 되셔야만 올바른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양과 목자의 관계
예수님께서는 다시 양과 목자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27절) 목자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양인 우리의 관계는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히 아시며, 우리는 주님을 잘 압니다. 이것이 목자이신 주님과 그분의 양인 우리의 정상적인 관계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정말 주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까?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분의 뜻에 늘 민감하십니까? 그분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늘 감격하며 행복합니까? 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주님을 위해 당신의 모든 생애를 드리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한 주님의 양입니다.
당신이 주님께 “주님은 저를 아시나요?”라고 묻는다면 주님께서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당연히 잘 알지! 네가 늘 내 옆에 와서 떠난 적이 없었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모르겠니? 네가 늘 나한테 와서 울었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잊겠니? 네가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내가 왜 너를 모르겠니? 너와 내가 늘 대화를 나누면 함께 지냈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몰라보겠니?”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해주시는 성도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주님과 당신과의 관계가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견인
주님께서는 이러한 주님의 양들에게 영생을 주실 것이며,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28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칠팔십 년을 사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그것도 우리 인생은 실패와 고통과 슬픔과 눈물로 점철이 되지 않습니까? 이것이 전부라면 우리는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 존재입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양인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다면 이 세상에서의 삶은 별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단지 영생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생은 단지 영원히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10절에서 말씀하신 풍성한 삶을 의미합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하) 이 풍성한 삶은 목자이신 주님 안에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삶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이 풍성한 삶, 즉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영접한 이후로 갈수록 인생이 풍성하고 만족스럽습니까? 이것은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몸이 건강해지고 자녀들이 잘 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당신은 갈수록 평안하고 안정되며 기쁨과 감사가 충만해지고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영생을 여기서 미리 맛보는 생활입니다. 이런 성도는 세상 그 무엇도 넘어뜨리거나 패배시킬 수 없습니다. 세상 그 무엇도 우리를 주님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29절) 성도는 주님의 품안에서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날 때까지 더욱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이렇게 지키시며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께서 주시는 이 영생을 얻어서 이 세상에서부터 누리려면 반드시 결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믿음과 인생에서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신앙과 삶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신앙과 인생에서 여전히 자신이 주인이 되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주님의 양이 아닙니다. 이 시간 이후 철저히 말씀 중심,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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