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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0:3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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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7·07·28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가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하셨던 모든 사역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며, 이 세상에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세상을 치유하며, 능력 있고 아름다운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주님처럼 거룩하고 능력있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믿은 후에도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부당한 일들을 겪습니다. 또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이 모든 것을 이기고 여전히 감사하면서 기쁘게, 그리고 힘차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직면하는 이 모든 문제들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며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나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사실 그렇게 결정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이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능히 이길 수 있게 되며, 여전히 감사하며 기쁘고 능력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직면한 문제들을 넉넉히 이기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모습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거룩하고 능력 있고 아름다운 모습과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많은 선한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권세 있는 교훈을 선포하셨고 놀라운 이적을 행하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나타내셨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표적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이적들 중에서 복음서에 기록된 것만 해도 35가지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그 중에서 7가지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적을 말할 때 특별히 ‘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적을 통해서 보여주시고자 하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직접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37-38절)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신 것은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행하신 후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적을 보고 놀라면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거절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예수님을 대적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5:18-19)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후에도 역시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6:48,51) 엄청난 이적을 보고 예수님께로 몰려들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버렸습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 이러므로 제자 중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6:60,66)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치셨을 때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고침 받은 사람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고침 받은 사람은 바리새인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9:32-33) 바리새인들까지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우신 일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고 결국 고침 받은 사람을 출교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출교당한 이 사람을 만나셔서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요9:35-38)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이적을 행하시고 그 이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눈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
유대인들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어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사탄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악의적으로 왜곡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눈앞에서 일어난 이적을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신 것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유대인들은 이것만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을 보고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을까요?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곧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 남에게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 비밀까지도 다 전수해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아들과 의논해서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아들을 통해서, 그리고 아들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이렇게 밀접했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의 눈빛만 보아도 아버지의 생각을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사회에 있어서 아들은 곧 아버지와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을 곧 하나님과 동일시하신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문제가 되었을까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그토록 열심히 잘 믿었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면 그들이 가장 기뻐하고 좋아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대적하며 죽이려고 했을까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모든 삶에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삶을 간섭하시고 그들의 잘못된 것들을 지적하시며 책망하시자, 그들은 죽도록 싫어하고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간섭받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입으로는 성경을 말하며 겉으로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들 맘대로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오늘 우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예배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기도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의 모든 일들이 잘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의 전부는 아닙니다. 믿음의 더 중요한 요소는 우리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내가 내 맘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려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다 포기하고, 재미가 하나도 없고 가난하고 고생스럽게 살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왜 하나님을 그렇게 시시한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놓고 계시며,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십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우리의 행복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이 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신뢰한 모든 사람들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위대한 인물로 만드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간섭을 싫어하고 자기 맘대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하고 대적하여 죽이고자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전적으로 순종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것 때문에 신성모독죄를 범했다 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33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하는 유대인들에게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34-3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이 말씀은 시편 82편에서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범인 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 같이 엎더지리로다”(시82:6-7) 이 말씀은 구약의 재판장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구약의 재판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재판하도록 위임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신적인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불의를 일삼아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적인 권위를 가졌던 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처럼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을 재판하던 사람들을 신적인 권위를 가졌다는 의미에서 ‘신들이며 지존자의 아들들’이라고 했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성자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반문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판하는 자들을 신들이라 했다면,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분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이겠습니까?
주인이 오실 때까지
이 세상에는 권세를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선하건 악하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세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권세를 가진 자들이 부정하고 악하게 권세를 휘두르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잘 압니다.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세상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직 모든 권세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그 권세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신 분이 마침내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때 악한 권세자들과 그들에게 동조했던 자들은 함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권세 아래서도 믿음을 지키며 의롭게 살았던 성도들은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권세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두 번 오시는데, 초림과 재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천년 전에 이미 오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과 사역과 행하신 모든 이적들을 통하여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37-38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군사적인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가난하고 온유하고 겸손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선포하신 말씀은 너무나도 놀랍고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행하신 일들은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 이적들은 하나님이 아니면 사람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하게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알게 되며, 믿을 수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번에는 가난하고 비천한 모습이 아니라 전능하신 심판주로서 영광스럽게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다시 오실, 심판하신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재림하실 주님 만날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끝까지 믿지 않으려 합니다. 심지어는 성도들 중에도 재림은 안중에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누가 그들에게 주님을 전할까요? 그들에게 재림하실 주님을 전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들에게 다시 오실 주님을 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연약합니다. 아무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믿음을 지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타협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십시오. 그래서 마지막 때 사람들에게 다시 오실 주님을 생생하게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믿음으로 살아가는 당신의 모습이 다시 오실 주님을 증거하는 살아 있는 표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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