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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1847 추천 수 0 2010.10.20 18:59:14
.........
성경본문 : 요11:1-6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7·08·04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아서 일이 잘 되었다고 간증하는 것을 간혹 듣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형통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사는 성도에게는 항상 모든 일이 다 잘 되기만 할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믿음으로 살기를 힘쓰는 성도도 어려움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성도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되고 복을 많이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왜 이런 성도가 어려움과 역경을 당하게 될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가정에는 성인이 되었으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삼남매 - 마르다, 나사로, 마리아 - 가 있었습니다. 이 삼남매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고, 사랑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겼습니다. 복음서에 또 다른 나사로가 나오는데, 부자 집 문간에서 구걸하며 지내다가 천국에 들어간 거지 나사로가 있습니다. 요한은 본문에 기록한 나사로는 그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1절) 삼남매 중 막내였던 마리아는 매우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긴 여인이었습니다.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더라”(2절)
  이 삼남매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자주 자기 집에 초대하여 대접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에서 사셨는데, 유대와 예루살렘에 자주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머리 둘 곳이 없으셨던 예수님께서는 특히 유대 지방에서는 머무실 마땅한 거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대 지방 베다니에 살던 나사로와 그의 두 누이가 예수님을 극진히 섬겼던 것입니다.
  나사로의 가정과 예수님 사이는 참으로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받았으며,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수님을 따르고 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나사로를 ‘사랑하시는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극진히 섬기며, 또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이 세 남매는 정말 복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가정의 기둥이었던 나사로가 병이 들었던 것입니다. 병세는 점점 중해져서 생명이 위급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급히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3절) 두 자매는 이 긴급한 상황을 급히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주시라는 요청이 없는 것은, 이 소식을 들으시면 예수님께서 가장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이들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알리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결국 나사로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 나사로가 죽어가고 있다는 위급한 상황을 알린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즉시 오셔서 고쳐주시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두 자매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믿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특별히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위급한 소식을 들으시면 예수님께서 틀림없이 달려오셔서 해결해주시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올바르고 정당한 믿음입니다. 성경은 어려움을 당할 때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고 해결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11)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간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응답해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믿음과 기도가 항상 그대로 응답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그렇게 믿고 기도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믿음 좋은 성도에게도 간혹 어려운 일이 닥쳐옵니다. 오늘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왜 믿음 좋은 성도에게 안 좋은 일이 닥쳐올까요? 왜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기도했는데 응답되지 못할 때가 있을까요?

지체하시는 주님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상한 주님의 행동에 충격을 받습니다. 나사로가 죽어간다는 절박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즉시 그들에게로 달려가지 않으시고 고의로 지체하셨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6절) 예수님께서 그렇게 지체하시는 동안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통곡 속에 나사로를 장사지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마리아는 그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었던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귀한 것까지 기꺼이 드렸던 것입니다. 마르다는 늘 주님을 위해 음식을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이 삼남매는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했고,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진정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을 때, 그리고 오직 주님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께서 즉시 달려가셨더라면 나사로를 고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계시던 곳에서 한 말씀만 하셨어도 나사로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죽어가는 나사로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틀이나 지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에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나사로를 죽게 하신 셈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을까요?
  나사로가 죽어버리자 마르다와 마리아의 소망도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위독하다 해도 아직 생명이 붙어있을 때 우리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숨이 끊어지고 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이제 마르다와 마리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끝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두 자매가 얼마나 상심이 되었겠습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들을 도우실 기회를 일부러 외면하셨다면 우리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절망하며 포기한 지점에서 하나님은 새롭고 놀라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인간의 한계가 하나님께는 한계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사람과 하나님의 차이점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우리는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며, 다 끝나버린 일도 새롭게 하십니다. 나쁜 일도 선하게 바꾸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완전히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위급한 전갈을 받으시고도 즉시 가지 않으시고 오히려 지체하신 이유는 바로 이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에게 문제가 되고 한계가 되는 것도 주님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선하신 의도를 가지고 나사로가 죽게 내버려두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을 때, 믿음으로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버렸을 때, 이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게 되었을 때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상황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하고 올바르게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원하고 기대하는 대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고집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주셔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우리는 불평하며 원망하고 화를 냅니다. 도대체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 나를 믿으라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내 생각과 기대와는 다를 때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이고 내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하십시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주님께서는 가장 선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가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는 것을 아시고도 즉시 달려가시거나 고쳐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4절)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을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이 죽음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이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실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위급한 소식을 들으시고도 지체하셨습니다. 즉시 달려가서 고쳐주시는 것보다 죽게 내버려두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그들에게도 큰 축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10장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완벽하게 돌보시며 좋은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한 목자이신 주님만 따라가면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이번 수련회에서 마지막 식사 암송구절이 요10:4이었습니다.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주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만 따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성도를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잊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살아가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따라가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돌보시며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런데 때로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지 않으시며,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주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 것처럼 응답이 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일이 해결되기는커녕 더 어려워지기만 하고, 심지어는 완전히 돌이킬 수 없도록 최악으로 끝나버릴 때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시고 우리를 돌보시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일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4절)
  나사로가 죽게 내버려 두신 것은 주님께서 병이나 고치시는 선지자 정도가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사로를 죽기 전에 고쳐주시지 않고 죽게 하신 것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을 온전케 하시기 위함이었으며, 그들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며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하게 하실 때, 그것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는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
  

이제 우리의 믿음을 한 번 돌아봅시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다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도 말씀을 지켜 행하면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많이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실망하며 불평하기 쉽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더욱 깊고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한계를 넘어서 더 견고하고 성숙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음까지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으로 복 받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천박한 믿음은 시련이 오면 금방 바닥이 드러나고 맙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때로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우리 믿음을 성숙시키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십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심지어는 시련과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갖도록 훈련시키십니다. 이 훈련을 통과하면 더 풍성한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죽어가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즉시 가서 고쳐주시기 않고 이틀이나 지체하셨습니다. 그 사이에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아무 소망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보다 큰 믿음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어도 주님께서 얼마든지 살리실 수 있음을 믿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생명을 좌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믿음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심으로 그들에게 이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병들었던 나사로가 고침을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요 능력이요 축복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신뢰했던 이 삼남매는 부활의 능력과 영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그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주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러한 믿음입니다. 당신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조금만 어려움을 당해도 바닥이 드러나는 믿음은 아닙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경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주님을 사랑하며 온전히 신뢰하는 성도가 되시고, 이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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