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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벧전5: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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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창인 목사 |
| 참고 : | 광성교회 - 김창인 목사 제1설교집 -하늘의 전화/모퉁이돌 에서 |
우리는 흔히 경기장에 직접 가 보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통해서 중계 방송을 시청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스포츠를 보게 되면 거기에는 나름대로 정해진 규칙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 모든 선수들은 그 규칙에 의해서 게임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규칙을 철저히 잘 지키면서 자기의 재간과 기술을 잘 발휘할 때에 일류 스타가 되고 팀의 성공 혹은 개인의 승리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기술이 좋고 재간이 뛰어나고 명성을 떨치는 일류 선수라 할지라도 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실격되고 맙니다. 선수로서는 그만 판정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훌륭한 선수일수록 규칙을 잘 지킵니다. 그러면서 최선을 다해 자기의 기량을 살려 나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생활을 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정해 준 규칙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믿었다, 열심히 믿는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정해 주신 규칙을 잘 지키며 신앙생활을 해야 참 귀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성도가 지켜야 할 생활 원칙이 있다는 말입니다.
I. 겸손하라(5-6절)
① 순종하는 겸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5절 상)
이 순복하는 것이 겸손의 첫 걸음입니다. 내가 "겸손하다" 하면서도 순복할 줄 모르면 겸손의 첫 단계에 아직까지도 이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대로 사람이란 만인이 평등합니다.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창조의 원리가 그렇습니다.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평등합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직책에는 반드시 위아래가 있습니다. 직책상 윗사람이 있고 아래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직책상 순복을 해야 합니다.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했습니다. 직책상 무조건 순복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1절에서 4절까지 보게 되면 장로들에게 순복하되 어떤 장로에게 순복하느냐 하면 장로의 직을 잘 감당하는 장로, 즉 훌륭한 장로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자원봉사하는 장로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이(利)를 위하여 하지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는 장로, 내게 이런 책임이 부과되고 이런 봉사가 지워져도 즐거움으로 하는 장로, 봉사를 즐겁게 하는 장로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3절)고 기록되었습니다. 장로가 됐다고 목에 힘을 주는 장로에겐 복종할 필요 없습니다. 장로의 의무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세는 하지 말고 양 무리들에게 본이 되는 장로들, 출석하는 일에도 본이 되고, 기도하는 일, 헌금하는 일에도 본이 되고, 사랑하는 일에도 본이 되고, 매사에 본이 되는 장로들, 이런 장로들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훌륭히 장로 직분을 잘 감당하는 이에게 순복하는 것이 겸손의 첫 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는 뜻입니다.
한번은 어거스틴의 제자들이 그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덕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까, 아니면 감사입니까? 충성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입니까?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첫째 겸손이다," "그러면 둘째가 사랑입니까?" "아니 둘째도 겸손이다. 셋째도 겸손이다."
겸손이 없는 사랑, 겸손이 없는 감사, 겸손이 없는 충성, 바꿔 말하면 교회 안에서 충성 봉사한 후에 교만하고 도도한 사람들, 그건 충성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겸손이 첫째라는 것입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가 겸손입니다. 겸손의 첫 발걸음은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② 은혜 받는 겸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5절 하)
하나님이 원수로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저것은 내 원수다, 그래서 격파해 버리고 맙니다. 제일 미워하시는 것이 교만입니다. 마귀가 바로 교만한 자의 표본입니다.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자가 교만한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
저는 일본 사람 중에 미우라 아야꼬라는 작가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지금 환갑이 넘었고 불행히 암에 걸려서 투병 중에 있다고 합니다. 북해도에 살고 있는데 일본에 가면 찾아가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그가 쓴 책들은 너무 좋은데 써냈다 하면 꼭 사다 놓습니다. 그에게서는 예수 냄새, 기독교 냄새가 향기처럼 납니다. 그는 빙점이라는 소설을 쓰고 유명해졌는데, 예수의 사상이 그 책에는 꽉 차 있습니다. 각처에서 칭찬하는 편지가 많이 왔더랍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매우 악평하는 편지도 옵니다. 칭찬하는 편지는 수북히 쌓이는데 악평하는 편지는 몇 개 안돼요. 그러나 그녀는 그 악평한 편지를 벽에다 붙여 놨답니다. 자기를 신랄하게 악평하는 편지를 붙여 놨습니다. 왜냐 하면 나쁜 점을 지적해 보낸 것은, 잘 했을 때 잘 한다고 칭찬만 하면 자기가 교만하기 쉬울 텐데... 그것은 그 사람이 쓴 것 아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시켜서 써 보냈다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말라. 그래서 그것을 벽에 붙여 두고 그것을 볼 때마다 항상 겸손해지고 무릎 꿇고 낮아지곤 한답니다. 그 사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필가인데 자기를 악평한 글을 써 붙이고 그것을 보면서 자기를 낮춰 본다고 하니 얼마나 은혜 받는 자세입니까.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고 자기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는 겸손!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느니라."
③ 하나님 앞의 겸손
순종하는 겸손, 은혜 받는 겸손, 하나님 앞의 겸손, 즉 겸손의 표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6절)
우리가 겸손을 말할 때 겸손의 표준을 어디에 둘 것이냐.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이라는 말을 떼 놓고 사람 앞에 겸손할 때는 내 목숨을 주장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에게는 별별 아첨을 다 합니다. 그러나 내가 남의 자리를 주장할 수 있는 권세를 가졌을 때에는 아래 사람을 사정없이 밟아 버립니다. 사람 앞에서 하는 겸손은 그렇습니다.
모 대학교 교수가 이런 수필을 쓴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사람이 출세하려면 자전거를 잘 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전거가 평지를 달릴 때는 얼마나 신나게 잘 달립니까. 그러나 언덕을 올라갈 때에 자전거 타는 사람을 보십시요. 허리를 90도로 폈다 구부렸다 하며 발로는 사정없이 페달을 밟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내 자리 내 생명 내 목을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권세 높은 사람에게는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돌아서서 자기 밑의 사람은 사정없이 밟아버리는 자세, 보통 사람은 이것을 겸손으로 압니다. 그저 권세 있는 사람 앞에서는 굽실 굽실하고 약한 사람은 사정없이 밟아버리고 그것을 겸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표준을 사람에게 두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겸손하면 누구에게나 겸손합니다. 윗 사람을 존경할 줄 알고 아래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겸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가 겸손의 표준입니다.
II. 맡겨 버리라(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7절)
여기 권고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신다 하는 뜻입니다. 한문으로 권고라고 하는 뜻이 또 있습니다. 열심 내라고 권면하는 그런 뜻이 아니고 본문의 권고는 돌보아 준다는 뜻입니다. 가령 막내 아들을 장가들여 살림을 따로 내주었는데 마음이 안 놓여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서 들여다봐야 마음이 놓이는 그것이 돌봐 주는 것이죠. 이처럼 권고하시니 맡겨 버리라는 것입니다.
① 염려를 맡겨 버리라
우리 믿는 사람은 죄를 가지고 씨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가 많습니다. 아담 하와에게서 오는 죄도 있고 내가 짓는 죄도 있는데 그 죄를 모두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 다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거 내가 해결 못하겠습니다 하고 갖다 맡겨버리라는 것입니다. 찬송 부르며 하나님 말씀 듣다 보니 한 시간이 너무나도 기뻤지만 집에 돌아갈 땐 그 죄를 찾아 가지고 갑니다. 주님 내가 맡겼던 죄 주십시오, 내가 해결해야지 어떻게 합니까. 또 일주일 동안 고민을 하고 주일날 그 죄 보따리 다시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는 "맡아 주십쇼" 하고 또 찬송 부르고 예배드립니다. 갈 때에 다시 찾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 10년을 믿어도 기쁨이 없습니다. 염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다 갖다 맡기면서 "주님 처리하십시오" 해야 합니다. 아주 버리는 식으로 맡기라는 말입니다. 내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아까워합니까? 기쁨 없는 신자들은 염려를 맡기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맡겨 버리십시오. 왜? 주님이 다 돌아보고 권고해 주시기 때문에, 처리해 주시기 때문에, 내 죄를 주님이 다 처리해 주심을 믿고 다 맡겨 버리시기 바랍니다.
② 다 맡겨 버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그런데 염려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때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핍박을 당하는데 그 방법이 가지 가지입니다. 이런 저런 핍박 속에서 한가지 한가지 걱정하려니 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다 갖다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것만 주님 맡으시고 그 나머지는 제가 맡겠습니다, 이렇게 나눠 맡지 말고 다 맡기라는 것입니다.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어떤 것은 버리고 몇 가지는 내가 갖습니까? 근심 걱정은 신앙의 쓰레기입니다. 많이 버릴수록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 다 주님께 맡겨버린 사람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③ 주께 맡겨 버리라
첫째로 염려를 맡기고 둘째 그 염려를 다 맡기고, 다음에는 누구에게 맡기느냐? 주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애들을 키워 보면 참 재미가 있습니다. 우리 아들 녀석이 지금 국민학교 1학년입니다. 그 녀석이 성가대 뽑혔다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는 다섯 시에 연습하러 가야 한다면서 자기 누나에게 피아노 치라 하고 연습한다나요. 그러다가 아빠! 나 다섯 시까지 가야 된다고 합니다. 아빠에게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하면서 놀고 있습니다. 걱정도 안 해요. 으레 아버지가 데려다 줄 줄 믿고 있으니, 급한 사람은 자기가 아니고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시간 되어 가자고 하고 데리고 갔습니다. 선생님께 물어보니까 다섯 시에 시작하여 여섯 시에 끝난다고 해서 내가 한 시간을 꼬박 기다렸다가 데리고 왔습니다. 이 녀석은 먹을 것 걱정 전혀 안 합니다. 봄철이 돌아오는데도 갈아입을 옷이 있나 없나 전혀 걱정 안 합니다. 왜? 아버지를 100퍼센트 믿고 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밥 못 먹여줄 사람이 아니며 옷 못 입혀 줄 아버지나 공부 못 시켜줄 아버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하나님처럼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내가 이 설교 준비하면서 바로 저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내 문제 해결 못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길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믿지만 예수님은 안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듯이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면 너희를 권고하여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III. 대적하라(8-11절)
"근신하라 깨어나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8-9절)
① 근신하여 마귀를 대적하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세 번째 원칙입니다. 마귀와는 타협하지 말라, 마귀와는 절대 교제하지 말라, 거침없이 대적하라는 말입니다. 대적하는데 근신하여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근신이란 말은 본래 "신중히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조심하지 아니하면 마귀에게 전부 꼬리를 잡힙니다. 신중하지 아니하면 마귀에게 말꼬리 잡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미우라 아야꼬는 참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는 글 쓰는 재주를 예수 전하는데 사용합니다. 그런 그가 십 삼년 동안을 척추 카리에스에 걸려 누워있는 동안에 니시야마라고 하는 장로에게 전도 받아 병원에서 예수 믿고, 그 사실을 알고 문병 왔던 그녀보다 나이가 아래인 현 남편이 그녀가 낫기를 기다렸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자기 집에 신랑 친구가 왔습니다. 노래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그 신랑 친구가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좋아한다면 악기, 즉 기악도 좋아하겠네요 했더니 자기는 바이올린을 좀 켤 줄 안다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집에 있는 바이올린은 20년째 울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했더니 자기 딴에는 바이올린을 좀 한다고 해서 자기 아내를 위해 켰답니다. 아내가 다 듣고 나서 한다는 말이 "우리 집 머슴도 바이올린을 잘 켰는데..."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바이올린을 구석에 쳐놓고 20년 동안 한 번도 안 켰다는 것입니다. 울지 않는 바이올린, 무슨 소린지 아십니까? 들어본 후에 "당신 바이올린 소리가 멋진데요, 프로급에 가까운데요," 그 말 한마디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자기 집 머슴도 바이올린 잘 켰다고 그러니까 그 말은 자기 집 머슴보다도 못하다는 소리 아닙니까. 그래서 집어치운 겁니다. 아내는 무심코 하는 말인데 남편에게는 그만큼 충격이 된 것입니다. 말 한 마디가 20년 동안 바이올린을 울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근신은 바로 그런 것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내가 하는 한 마디, 내가 하는 하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치명상을 줄지 모르니 조심하고 침착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귀로 하여금 나에게 꼬리를 잡지 못하도록 근신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② 깨어서 대적하라
잠자는 사람 보십시오. 잠자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관심이 없습니다. 의식이 없습니다. 전혀 참여를 안 합니다. 신앙 생활이 잠자고 있다는 것은 무슨 얘기입니까. 교회에 열심히 잘 나오다가 10년 동안 교회 떠나 있는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교회 꼭 나가야만 합니까, 교회 안나가다가도 내 마음으로 예수 다 믿고 있습니다. 교회 안 나가면서 예수 믿는다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결혼 생활하면서 10년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아내에게,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내 아내 다 사랑하고 있다면 그게 말이 됩니까? 그렇다고 하면 교회에 안 나오면서 마음으로만 믿는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신자라 하겠습니까. 그건 믿음의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믿음이 잠자고 있는 사람입니다. 푹 쉬고 있는 사람입니다. "깨어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굴러가는지, 사태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주시하라는 것이며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 참예를 합니다. 교회 일에 관심을 가집니다. 의식을 가지고 동참을 합니다. 깨어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사람, 의식을 가지고 뛰어드는 사람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③ 믿음을 굳게 하녀 대적하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마음에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8절)
믿음을 굳게 하라. 졸병을 보면 그 장수를 압니다. 그 장수가 희미하면 졸병도 희미합니다. 장군의 눈에서 불이 나는 맹장은 졸병들이 희미하게 노는 것을 그냥 내 버려 두지를 않습니다. 졸병들의 눈에서도 불이 나는 법입니다. 그런데 귀신들의 대장이 누구냐 하면 마귀입니다. 이 사탄의 졸병 귀신들이 성도들의 믿음을 제일 잘 압니다. 10년 교회 나왔다고 자랑해도 믿음 없으면 깔보는데 보통 깔보는게 아닙니다. 조상 3대째 믿어도 이 귀신은 영물인지라 어떻게 잘 알아 맞추는지 영락없이 발로 밟아 이겨 버립니다.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강한 믿음만 갖게 되면 그 앞에서는 쩔쩔 매고 항복합니다. 제가 처음에 전도사로 나가 있던 교회에 권찰님 한 분이 계셨는데 어떻게 열심인지 새벽 기도회 종은 맡아놓고 치셨습니다. 이 분은 아침에 자기 집에서 만들어 놓은 물건을 국제 시장에 가서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에게 팔아야 합니다. 그때 물건을 팔지 못하면 재고가 됩니다. 기도회에는 참석 못하고 종만 쳐주고 나갑니다. 그렇게 열심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교인 중에 귀신 들린 한 여자가 있었는데 목사님이 함께 가자고 합니다. 목사님의 보조자로서 전도사인 내가 안 따라갈 수 있습니까? 따라가기는 하면서도 귀신은 잘 안다고 하니 야단났습니다. 내가 그 때 연애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는 연애를 하면 큰 변 날 때입니다. 그거 들춰내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가자고 그러니 할 수 없이 따라갔습니다. 찬송을 열심히 불렀습니다. 저녁 식사 때가 되었을 때 권찰님이 자기가 지키고 있겠으니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벌써 사람이 죽는다고 연락이 급히 왔습니다. 달려갔더니 이 귀신들린 여자가 권찰 등에 올라타 목을 조르며 죽인다고 야단이었습니다. 육신의 완력이 센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 앞에선 벌벌 떨지만, 믿음 없는 사람은 귀신이 죽인다고 달려듭니다.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면 믿음 앞에는 마귀도 항복하고 쫓겨가는 줄로 믿습니다. 믿음을 굳게 하여 대적합시다.
④ 하나님이 하시니 대적하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10절)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는 약한 마귀지만 우리보다는 강한 것이 마귀입니다. 우리가 대적한다 해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마귀를 처리하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에는 각계 각층에 침투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전하여 옵니다. 그러나 마귀보다 강한 하나님께서 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대적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권력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11절) 권력! 대한민국의 권력을 대통령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권력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하나님이 허락해야 되는 겁니다. 누가 하고 싶어서 되는 것 아닙니다. 권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 있는 하나님이 우리 생활의 원칙을 세 가지 정해 주었습니다. 겸손하라, 염려를 맡기라, 마귀를 대적하라 이것들을 철저히 지키면서 신앙의 챔피언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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