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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2:3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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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7·11·03
어떤 성도가 어느 집사님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성도는 그 집사님을 ‘사장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회사에서야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교회에서까지 그렇게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사회의 모든 신분과 계급을 초월해서 한 형제로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부르는 호칭이 따로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반드시 교회의 직분을 호칭으로 불러야 합니다. 회사에서는 사장이라 해도, 교회에서는 성도이고 집사이고 장로입니다.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교회 안에서는 박사가 아니라 직분으로 불러야 합니다.
아무리 친하고 나이 차이가 난다고 해도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또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예의를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남자 집사님이 여자 집사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얼마나 민망하고 무례한 모습입니까?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성도들과 대화할 때 습관적으로 반말을 사용하는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모습들은 완전히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친밀하면서도 서로 존경하며 예의를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인자
예수님께서도 호칭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키실 때 가장 많이 사용하신 호칭은 ‘인자’입니다. 간혹 ‘그리스도’, ‘아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하셨지만 ‘인자’라는 호칭이 압도적으로 많이 시용되었습니다. 이 호칭은 복음서에서 80회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로 ‘랍비’, 또는 ‘주’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호칭 대신에 ‘인자’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하신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이 예언한 것과 매우 다른 모습으로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정치적인 영웅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구약에서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사 죄인들을 위해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후 부활 승천하셨다가 재림하실 분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줄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영웅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키실 때 ‘그리스도’라는 호칭보다는 ‘인자’(Son of Man)라는 호칭을 사용하셨습니다. 인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을 의미합니다. 인자는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실 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재림하셔서 성도들을 하나님 나라로 영접하신 후 함께 왕 노릇 하실 분을 가리킵니다.
공중 앞에서의 사역을 마감하심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공중 앞에서의 사역을 마감하시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36하) 그래서 13장 이하에서는 예수님께서 공중 앞에서 가르치시는 모습은 볼 수 없고, 제자들과 말씀하시는 장면들만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시며 가르치시고 이적 행하시던 일을 마무리하셨습니다.
37절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공중 앞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신 시점에서 그 사역의 결과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참으로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고 수많은 이적을 행하시며, 심지어는 죽은 자까지 살려내신 결과라면 너무 빈약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늘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무리하시는 순간에 나타난 반응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중에 소수가 믿었는데, 그들까지도 매우 연약하고 실망스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믿지 않거나 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이유
예수님께서 그토록 권세 있는 말씀을 선포하시고 놀라운 이적들을 많이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실망스럽고 이상한 일입니까? 그러나 요한은 이것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투로 본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38절)
이사야의 예언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누가 믿었습니까? 사람들은 천국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았고, 메시아가 놀라운 이적을 행하여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을 이렇게 예언했는데, 지금 그 예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사람들이 이렇게 믿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실망스럽고 빈약한 결과라고 말하지 않고, 또 이상한 일이라고 하지 않고 구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요한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사람들이 이렇게 믿지 않은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39-40절)
이 말씀은 마치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시고 눈을 가려서 믿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사람들이 마음으로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와 믿어서 구원을 받게 될까봐 일부러 그것을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람의 본래 상태를 그대로 설명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처음부터 마음이 완악하고 하나님을 싫어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이 본래 이렇기 때문에 굳이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완고하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의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두셨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롬1:21-24)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하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타락한 죄인은 자기 맘대로 죄 가운데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영원히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은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와 믿고 구원받으려 하지를 않습니다. 이러한 죄인이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가 있어야만 합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내 마음을 여시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해주셔야만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를 믿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 자기 힘으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 역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은 스스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데, 나 같은 죄인이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런 은혜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오셔서 말씀하셨고 놀라운 이적을 행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믿게 하시고 구원받게 하신 것을 뜨겁게 감사하십시오. 혹시 이 자리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이 시간 마음을 여시고 성령께서 오셔서 믿게 해주시라고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즉시 성령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으시고 감화하셔서 믿게 해주실 것입니다.
거짓된 믿음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진정한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진정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역시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려내시는 것을 보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로부터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 듣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이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37절) 겉으로는 믿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믿음은 거짓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의심을 품고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논쟁하기를 좋아합니다. 반면에 진리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며 늘 자기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이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은 그리스도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 중에는 자기들이 보기에 도저히 맞지 않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32-33절)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34절)
유대인들이 왜 이렇게 따지며 물었을까요? 그들은 그리스도가 그렇게 죽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아는 그리스도는 그렇게 죽는 그리스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하여 예언된 구약의 말씀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었던 내용은 메시아의 승리와 영광에 관한 말씀들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라는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대하고 있던 메시아는 위대한 군사적, 정치적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될 것을 말씀하시자, 그 말씀을 도저히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그대로 믿지 않았으며, 자기들이 좋아하는 말씀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거짓된 믿음이었습니다.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의심하기를 잘하고 성경의 바른 교훈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 그것도 가지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기억합니다. 걸핏하면 트집을 잡고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이 자라지도 않고 인격이 변화되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혹시라도 당신에게 이런 특징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믿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된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겸손하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마음을 새롭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의심을 버리고 나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 순종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주님께서 당신을 붙잡아 주실 것이며, 진정한 믿음 위에 굳게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는 자들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42상) 이 관원들은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지위가 높고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던 사람들 중에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많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42하)
이 사람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두려워 자기들의 믿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출교시키기로 결의해놓고 있었습니다. 출교를 당하면 모든 지위와 특권을 당장 박탈당하게 되며, 유대 사회에서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믿기는 믿었지만 그것이 두려워 자기들의 믿음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당하게 될 불이익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요한은 이런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43절)
오늘도 많은 성도들이 믿기는 믿되 자신의 믿음을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그로 인해 불이익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자신의 믿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니라”(롬10:10) 자기 입으로 분명히 고백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태도에 대해 매우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32-33)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놓고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은 온전한 신앙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온전한 믿음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꾸만 의심하면서 논쟁하기를 좋아하고, 바른 교훈의 말씀을 순종하려 하기보다는 외면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믿음입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불이익이나 핍박을 당할까 두려워 믿음을 숨긴다면 그것은 온전하지 못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영원히 멸망당할 아무 소망이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부끄러운 믿음을 가져서야 되겠습니까?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위해 나의 생명까지도 바치기를 열망하는 믿음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조선족 출신의 박은혜 전도사는 극동방송을 통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남편에게 심한 핍박을 당하고 결국 이혼을 당해 한국으로 쫓겨 왔습니다. 이분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에 와보니 모든 성도들이 대부분 배에 기름이 줄줄 흐르도록 받은 것이 너무 많은데, 이상하게 기도할 때면 하나님께 뭘 그렇게 맡겨놓은 것이 많은지 날마다 달라고만 합니다. 중국 성도들은 그렇게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해도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들어 사용해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무엇을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 장차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예수님 때문에 불이익이나 핍박당하는 것을 회피하려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주님보다 더 사랑해서야 되겠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신 주님을 위해서라면 나의 생명과 남은 생애도 기꺼이 바쳐 헌신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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