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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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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7·11·24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 뿐예요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네게 축복 더 하노라
하나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성도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나의 가슴 깊이 뜨겁게 다가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알고 계십니까?
나는 요즘 새벽기도 시간마다 하나님의 신실하시고 크신 사랑에 대해서 새롭게 깨닫고 감격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불충한 종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심하게 여기시고 탄식하시겠는가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너무나 송구스럽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하나님께서 나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이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종이 되어야겠다는 결단을 새롭게 다져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사랑을 제대로 깨달으면 인생이 변화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어렵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체험적으로 알기 전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명을 해도 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명을 하라고 한다면 그냥 엉엉 울어버리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입으로,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던 그 감격을 눈물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말로 다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들어야만 합니다. 그것도 자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자주 듣다보면 그 사랑이 드디어 내 마음 속에 뜨겁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슴에 깨달아지고 체험되어야만 그 사랑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나에게 체험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뜨겁게 체험한 성도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속 깊이 깨달은 성도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되며,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한 성도는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오늘 이 짧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크고 신실하시며 무한하신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오늘 짧은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에게 매우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고 지극히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면 예수님을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좀 더 구체적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며, 그 후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시간은 얼마나 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실 것을 생각하실 때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드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한 주간을 오직 제자들과 함께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까지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셔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주님을 미워했기 때문에 제자들도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담대하게 싸워 이겨야 한다고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특히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잡수셨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주님께서는 기도하시며 사탄에게 최후의 승리를 거두셨고, 결연하게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다 되어가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이렇게 끝까지 사랑해주셨던 것입니다.
자기 사람들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사람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물론 열두 제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이 열두 제자를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그들을 곁에 두시고 끊임없이 양육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사람들’이 열두 제자들만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 역시 여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여기에는 오늘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가 포함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이 사람들을 가리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들을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사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신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엡1:5). 사도 베드로는 이 사람들을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불렀습니다(벧전2:9).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내 것’이라고 부르셨습니다(사43:1).
이 모든 명칭은 오늘 우리에게 해당되는 명칭들입니다. 우리는 당시의 제자들처럼 주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9하)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던지 한 사람도, 그 누구에게도 내어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하나님의 이 사랑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눈물겹습니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가정을 보면, 부모들은 자신을 위해서는 전혀 돈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을 위해서는 수백만 원씩 하는 등록금도 주저 없이 지불합니다. 옷 한 벌을 제대로 사 입지 못하면서 매월 자녀들의 교육비로 수십만 원씩 사용합니다. 어쩌다 자녀가 아프거나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밤잠을 자지 못하고 간호하거나 고민합니다. 어린 자녀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분들이 간혹 있을 것입니다. 그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대충 찾아보고 포기하셨습니까? 찾을 수만 있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지 않습니까? 자녀들이 속을 썩여도 부모의 사랑은 약해지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자식은 이렇게 귀합니다. 혹시라도 남의 자녀에 대해서 말 한 마디라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그 부모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받습니다. 부모에게 그 자녀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자녀가 그렇게 귀하다면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부모는 이렇게 자기 자녀를 끝까지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봅시다. 베드로는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했으며,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였습니다. 주님께서 붙잡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때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 그러던 베드로가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베드로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든 것을 체념하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던 베드로를 주님께서는 이른 새벽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끝까지 사랑해주셨던 것입니다. 베드로만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그리고 오늘 우리까지도 주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야곱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9:13) 그런데 왜 야곱이 그렇게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야 했을까요? 야곱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라헬은 젊은 나이에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야곱이 목숨보다 사랑했던 아들 요셉은 가장 아름다운 청소년기에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야곱에게 어떻게 그런 고통스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고 계셨음을 뜨겁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깨닫고 전하던 바울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격과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심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사용된 세상이라는 단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라는 의미의 세상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타락한 세상, 죄로 인하여 오염되고 사탄이 권세를 잡고 역사하는 세상,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세상에 제자들을 남겨놓고 떠나시는 것이 마음에 걸리셨습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많은 불편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본향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낯설음과 불편함과 고통을 당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고생스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실 것을 생각하실 때 마음이 아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불편함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 잘 아십니다. 우리가 죄와 싸우며 탄식하는 것을 다 아십니다. 남모르는 나의 눈물을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늘 나그네 같고, 불편하고 고생하는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며 지켜보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한숨과 눈물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고생하며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서는 나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순간도 나를 잊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힘든 일이 있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외치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랑의 품에 품어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고 나면 당신은 완전히 변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당신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게 될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다 표현 못해도 나 표현하리라 다 고백 못해도 나 고백하리라
다 알 수 없어도 나 알아 가리라 다 닮지 못해도 나 닮아가리라
그 사랑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사랑 얼마나 날 부요케 하는지
그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그 사랑 얼마나 나를 감격하게 하는지
오늘 내가 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를 치료하며 회복시키고 굳게 세웁니다. 이 사랑 안에는 그 어떤 비극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깨닫고 온 몸으로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 때문에 담대하고 부요하며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 때문에 이제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을 뜨겁게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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