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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4: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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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8·01·19
현대인들은 논리와 과정보다는 그 자리에서 직접 보고 체험하여 확인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문화뿐만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도 분명하게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현대인들은 종교에서도 체험을 좋아합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받은 증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느 믿음 좋은 성도에게 예수 믿은 후 그가 체험한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간증할 내용이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체험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 없는 체험은 건전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체험은 반드시 말씀에 근거해야 하고, 말씀으로 검증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쁘고 체험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은 이렇게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는 일을 귀찮아하거나 힘들어합니다.
하나님을 보여주소서
오늘 본문에서 빌립은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빌립도 오늘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것만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만 하시는 예수님께 빌립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8절)
빌립은 말씀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얼굴 뵙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은 이론과 논리보다는 체험을 좋아합니다. 긴 논리적인 과정은 지루해하고 잘 참지를 못합니다. 당장에 눈으로 보아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체험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뭔가 특별한 체험이 있다고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 이단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교회가 성경 말씀만 가르치지 말고 하나님을 직접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시종일관 말씀만 가르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자신을 보여주시지 않고 이렇게 말씀으로만 자신을 계시하실까요? 여기에는 큰 비밀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은 쉬지 않고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계십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인간이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만물을 통하여 인간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오셨습니다. 천체의 운행과 자연의 변화들, 그리고 동물들과 식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계속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직 어떻게 하면 보이는 것들을 소유하고 이용하고 잡아먹을까 하는 것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된 이유는 타락하여 하나님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법을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씀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상) 처음에는 족장들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는 주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들을 보내셔서 직접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선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직접 나타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으로만 자신을 나타내셨을까요?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오셔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하여 죄인이 된 후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친히 오시는 것은 심판을 의미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조금도 용납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친히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하나님을 직접 보여 달라는 빌립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9절)
하나님은 영이시며 지극히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인이 하나님을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육신 속에 감추어져 있을 뿐이지 모든 것이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을 본 자들 중에 하나님을 본 자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겉모습, 즉 사람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들은 그분에게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본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눈으로 하나님의 모습 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전인격으로 체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그분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정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좀 더 실감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10절)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 계시며,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십니다. 이 말씀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똑같으신 분이라고 해서, 또 삼위가 일체시라고 해서 예수님과 하나님이 동일체시라고 생각한다면 오해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독립된 인격체이십니다. 삼위일체에서 ‘위’는 인격을 나타냅니다. 각각 구별되게 존재하시지만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관계는 특별하십니다.
아들은 오직 아버지께만 속하십니다. 성자 예수님의 모든 능력과 말씀은 오직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성자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만 행하셨습니다. 아들은 오직 성부 하나님께 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부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성부 하나님께서는 오직 성자 예수님을 통해서만 모든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시고, 아들이 원하는 자들을 다 받아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님 사이는 이처럼 특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늘 자신이 하시는 말씀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말씀하신 것과 똑같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오직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일이었으며,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하신 말씀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과 같았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할 것이요
빌립이 왜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신다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가신다고 하시자 제자들은 마음이 불안했고 근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한 번 보여 달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사 그들과 함께 있게 하실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할 것이요, 더 나아가서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12절)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능력 있게 살 수 있는 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능력 있게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모든 것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신성과 영광과 능력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능력 있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전적으로 예수님 안에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방법은 오직 그분만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 한 분만 믿고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당황하고 불안해하며 근심했겠습니까?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다 해도, 변함없이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주님께서 하신 일을 하게 될 것이며,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병든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놀라운 이적들을 행하셨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끝까지 예수님을 굳게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있으면 이러한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제자들은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죽은 다비다를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보다 더 큰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여 죄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제자들은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한 번에 삼천 명, 오천 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와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했으며,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이적 중에 가장 큰 이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씀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며 큰 일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변하기 어렵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죄악된 본성이 없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사람이 변화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먼저 당신 자신을 보십시오. 예수 믿기 전과는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이것은 죽은 자가 살아난 것보다 더 큰 이적입니다. 어떻게 죄인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이런 놀라운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더욱 힘써 복음을 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전하면 죄인들이 죄를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놀라운 일은 초대교회 이후 오늘까지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크고 귀한 일은 없습니다. 금년에는 전도의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됩시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시행하리니
예수님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세상에는 예수님께서 육체로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변함없이 당신의 일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만나셔서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를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계속해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예수님의 일을 계속해나가려면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만 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13-14절) 교회가 주님의 능력을 힘입는 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주님께서 이루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가 세상에서 능력 있게 살아가는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 안에 거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써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주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제 특별새벽기도회가 끝났습니다. 우리 교회 역사상 이렇게 열심히 모여서 기도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년에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이 기대됩니다. 우리는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다시금 기도의 능력을 회복했습니다. 육신은 피곤했지만 영은 새로워진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 더욱 힘써 기도합시다. 자신을 버리고 오직 주님 안에 살면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당신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빌립은 하나님을 한 번 보여 달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는 즉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과 지각을 통해 보는 것이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확실하고 생생합니다. 자아를 꺾어버리고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늘 기도하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께서 강하고 친밀하게 찾아와 만나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힘입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만나며 능력을 힘입어 오늘 우리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주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능력 있게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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